솔로 계급의 경제학, 헤매는 중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올해, 나는 되는 일이 없다. 뭘 해도 잘 안되고, 어떤 시도를 해도 별 볼 일 없다.

 

보통 나는 계산을 많이 해보고 움직이는 편이다. 계산 같은 건 전혀 안하고 안 따지는 듯하기는 하지만, 사실 생각보다 많이 따진다. 그리고는손해 볼 것 알아도 의리나 명분에 의한 결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의리, 뭐 아닌 듯싶게 살아왔지만, 의리에 의한 결정도 많이 내렸다. 그렇지만 손해 본다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다.

 

하여간, 딴 건 몰라도 하루 세 끼 밥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내 계산은 거의 맞지 않고, 나도 내 계산을 믿지 않는다. 올해는 무조건 안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최악으로 안될 것이다, 그런 예상들은 잘 맞는다. 그걸 꼭 계산해봐야 알고, 예상해봐야 아나

 

그러면 아무 일도 안 해야 하고, 가만히 있는 게 맞는데, 8월이 막 시작되는 지금까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했고, 예상보다 많은 시도를 했다.

 

그래서 결과가

 

연전연패.

 

아놔,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맞다는 건 처음부터 알았다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막 던진 건, 박근혜와 살게 된 첫 해, 아주 어려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머리 박고 있었다

 

그렇게 박근혜 시대에 나는 조용히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어려울 줄 알았다, 그렇게 내 삶에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잠시는 현명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너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것 같았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올해, 나는 연전연패 중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정답이긴 한데, 그럴 수는 없어서 움직이기는 하는데, 내 실력에.

 

이렇게 헤매는 와중에 새롭게 붙잡고 있는 연구 주제가 솔로 계급의 경제학이라는 거다.

 

보통 같으면 도서관에 몇 년씩 틀어박히고, 볼 수 있는 책은 싹 다 뒤지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다 만나고

 

지금은 그러기가 어렵고. 아기 보는 와중에 며칠에 한 번 잠깐 인터뷰하고.

 

컴 작업은 낮에는 상상도 못하고, 노트북 아니라 노트도 아기 앞에서 꺼내놓기가 어렵다.

 

이러다가 진짜 애기 업고 방송 촬영하러 나가게 생겼다. 당장 이번 주는 수요일 오전부터 촬영인데, 아기 맡길 데가 없다. 에라, 정 안되면 그냥 아기 들처 엎고 나가야겠다. 그러는 중이다.

 

하여간 연구자로서는 최악의 상황에서 그냥 그냥 버티는 중이다.

 

이 와중에 솔로로 지내는 사람들 인터뷰하고, 의견들 묻고, 그런 걸 모아낼 수 있는 데이터 뒤져보니와 죽겠네.

 

민간기업에서 연구할 때에도 이 정도로 최악은 아니었고, 국제협상 나가는 틈틈이 데이터 뒤져볼 때에도 이 정도로 열악하지는 않았다.

 

그렇기는 한데

 

워낙 주제가 재밌는 주제다. 그리고 야구로 비유하면, 뭔가 배트 끝에 딱 걸렸다는 느낌?

 

연구 여건으로는 최악의 상황이기는 한데, 나름대로는 주어진 조건 내에서는 최선을 다 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솔로로 시작했다가, 청년에 관한 얘기 그리고 젠더 이코노미라고 잠정적으로 이름 붙였던 책 세 개 분량의 얘기들을 지금 한 권에 따 내려놓는 중이다.

 

솔로라는 게, 꼭 청년에 대한 얘기인 것만도 아니고, 꼭 여성 혹은 젠더에 대한 얘기인 것만도 아니다. 구분을 하면 별도의 얘기이기는 한데, 결국에는 그 얘기가 그 얘기이다. 억지로 나눌까, 아니면 합칠까, 나는 합치는 것을 선택했다.

 

그 와중에 최근의 변화에 대해서 좀 극적으로 느낀 게 있다.

 

남성들의 여성에 대하 적대감이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것, 그리고 연령이 낮아질수록 이게 더욱 더 높아진다는 사실.

 

이건 예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흐름과는 좀 다르다.

 

90년대 이후,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지고 다음 세대가 될수록 마초 지수는 낮아지고, 좀 더 젠더 평등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우리는 생각했다. 어쨌든 추세상, 그 때의 예상은 틀리게 된 것 같다. 90년대 중후반을 정점으로, 남성들은 점점 더 여성들을 혐오하고 적대적으로 느끼는 듯 싶다.

 

그리고 지금 고등학생은?

 

이게 전수조사를 해보지 못해서 뭐라고 하기는 그런데, 최소한 여성에 대한 적개심은 일베 수준으로 현재의 고등학생들이 높지 않을까

 

이런 게 일단 작업 가설이고.

 

대안 학교 남학생들은 전혀 다를 듯싶지만, 아직까지 살펴본 바로는, 뭐 그닥.

 

시간만 좀 더 있고, 자금만 여유가 있으면 이건 좀 더 현황 조사를 해보고 싶은데, 현재 상태로서는 곤란하고.

 

90년대 초중반의 유럽과는 지금 한국의 10~20대 의식의 흐름은 좀 다른 듯 싶다는 작업 가설 하나 정도로.

 

청년 경제에 관한 건, 워낙 오래 작업하던 거라서 어느 정도 기초 작업이 되어있는데, 젠더 이코노미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흐름으로 예상했던 거와 다른 추세가 꽤 튀어나온다.

 

어쨌든 책 작업 시작하고 처음으로 목차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 지금 벌어졌다.

 

목차 안 잡고 작업했던 책들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렇게 중간에 다음 목차 잡아가면서 썼던 책들이 좀 많이 팔린 책들이었다.

 

그렇지만 일부러 목차를 안 잡지는 않는다. 잡으려고 했는데, 못 잡았던 것일 뿐이고.

 

솔로 얘기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던 책을 세워놓고, 다시 디자인한 경우라서 목차는 걱정도 안했는데

 

하여간 지금 목차도 못 잡고 있다. 결론은, , 당연히 못 잡고 있고.

 

아마도 당분간 더 헤맬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만에 딱 걸린 느낌인데, 대충해서 그냥 밀어내기, 그런 식으로 작업할 생각은 없고.

 

동화책도 재밌는 얘기 하나가 구상 중이었고, 모피아 2부인 교육 마피아 얘기도 한참 구상 중이었는데, 솔로 얘기에 다 밀렸다.

 

그러나 그럴만한 얘기다.

 

서승환 선생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그 양반한테 첫 경제원론을 배웠다. 그 때 편미분이니 전미분이니, 그런 것만 배운 게 아니라 경제학에 임하는 경제학자의 자세 같은 것도 같이 배웠다.

 

강사 시절에도, 작지 않은 격려를 받았다. 별 거 아니더라도, 그 시절에는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평생 잊지 못할 격려가 된다.

 

하여간 지금 그 양반이 국토부 장관인데, 좀 미안한 얘기지만, 이 양반이 너무 편안하게 살았던 거라자기 손으로 부동산 거래라도 한 번 해봤을까 싶은. 현실과 이념의 차이, 그런 걸 너무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여간 그 건으로 나도 좀 느낀 바가 있어서, 현실성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해보려고 하는.

 

(생각은 그런데, 대부분의 시간은 아직 돌 지나지 않은 아기랑 놀아주고 이유식 먹이고, 똥 기저귀 갈아주는…)

 

이러 고민 하다가 가끔 TV 틀어서 NLL 얘기하는 거 보면, 나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짜증 팍 난다.

 

올해는 되는 일 없다. 그리고 몇 년간 역시 되는 일 없을 듯 싶다.

 

우리들의 영웅은 쓰러지거나 배신당하거나 혹은 배신하거나

 

하여간 나는 헤매는 중이다. 그리고 연전연패 중이다. 그렇지만 눈도 뜨지 않고 무작정 맞고 있는 건 아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무쟈게 맞는 중이다.

 

그렇게 눈이라도 뜨면서 맞아야, 맞아 죽지는 않는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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