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리그, 드디어 즐기기 시작하다

 

1.

요즘 딱 20년 된 대우 프린스 자동차를 주로 타고 다닌다. 문제가 많을 거라고는 생각을 했지만, 삼복더위에 에어컨이 이 정도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내가 부딪힌 문제는 이게 구냉매라는 걸 사용하는 차라서, 요즘 사용하는 신냉매 위주의 정비소에서는 아예 처리를 할 수가 없다는 것. 진짜 고생고생해서, 구냉매라는 걸 처리할 수 있는, 정말로 서울의 끝에 있는 어떤 정비소를 찾아냈다.

 

기후변화협약 문제를 다루기 전, 몬트리올 의정서가 내가 주로 다루던 문제였다. 프레온 가스로 인한 오존층 파괴에 관한 문제였는데, 한동안 이 문제에서 내가 최전선이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죽어라고 프레온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을 단종시키고, 그 후에도 이 문제의 뒷처리가 미진하다고 총리한테 보고하던, 뭐 그 사안이다. 익숙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실생활에서 이 문제와 내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될 줄이야, 내가 알았나? 구냉매라는 게, 쓰면 안 된다. 그러니까 생산까지 어렵도록 한 것 아니냐? 캐나다 북쪽에서 처음 관찰된 오존층의 구멍, 그건 정말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면 지금은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절대 아니다. 그냥 뭔가 하는 척만 했지, 실제 해법은 아직도 좀 거리가 멀다. 하여간 프레온 가스에서 뭔가 전문성을 보이면서, 내가 밥을 먹고 살게 된 바로 그 문제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여름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구냉매를 체워줄 수 있는 곳을 죽어라고 찾고 있던 거라이거 너무 미안한 문제라서, 자동차 문제에는 전문가라고 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도 못해보고.

 

그 후에도 20년 된 자동차는 연속해서 에어컨 문제를 일으켰다. 에바프레스라고 불리는, 에어컨 핵심 부품이 망가져서, 그야말로 전국의 부품상을 총 연결하다시피 해서 하여간 거의 마지막 남은 신품으로 교체를 했다. 당연, 이런 복잡한 얘기에는 이게 끝이 아니라서, 잠시 후 에어컨 벨트에 이어 몇 년 전에 교체했다는 콤프레서까지 문제를. 결국 힘들게 부품들을 구해서 다 교체했다.

 

그 사이에 서울 끝에 있는 카센터를 4번이나 갔고, 거의 폐차장 비슷한 분위기의 가계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간당간당한 핸펀 밧테리를 보면서 애묘인간이라는 카툰을 결국 끝까지 다 읽었다.

 

이 더운 여름, 왜 이렇게 쭈그리고 있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안 들면 내가 사람이겠는가? , 돈이 없어서 그렇다, 그렇게 쉽게 말하기에는 사정은 조금 더 복잡하고. 도대체 이 간단한 에어컨 장비조차 이 정도로 방치시켰던 전 주인에게 원망을 하면 내가 더 비참해 보인다. 선의로 그냥 준 사람을 조금이라도 원망하면, 그게 사람인가?

 

그렇게 결국 몇 주에 걸쳐서 하여간 형식적으로 20년 된 승용차의 에어컨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아직도 다 해결된 건 아니다. 1~2단은 부품 문제로 안 나오고 3단부터 나오는데, 부품 구하려면 폐차장에 가서 이제는 나오지 않는 저항을 구해야 한다는오매,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지는 못하겠다. 어쨌든 문제는 풀었다.

 

그러나오늘 오후,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유아들에게 장난감 빌려주는 시청 뒤의 장난감 도서관에 아내와 아직 돌이 안된 아기랑 같이 갔는데, 차가 덥다고 뒷자리에 앉은 아내와 아기는 결국 쭉 뻗었다. 어쩌란 말이냐!

 

에어컨 성능이 워낙 낮고, 차는 검은색, 복사열은 있는 대로 다 받아들인다, 뭐 그거 외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결론.

 

하여간 아기가 덥다고 뒷좌석에서 쭉 퍼져있는 걸 보면서도,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 내가 진짜로 3부 리그에 있구나, 그런 생각이 머리를 띠옹.

 

돈이 없어서 20년된 구형 자동차를 타면서 에어컨 고치러 카센터를 들락날락하는 상황, 이 정도면 3부 리그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2.

처음 낸 책이 1쇄 터는데 3년인가 걸렸던 것 같다.

 

나도 잘 아는 게, 사람들이 내 책을 기다리면서 열심히 보는, 그런 일은 절대 없고, 뭔가 잘 맞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아니다 싶으면 그냥 처 박는. 그래도 데뷔했던 책부터 지금까지 1쇄를 못 터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하여간 그런 일이 벌어졌다.

 

거기에 덧붙여, 나와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하던 일을 접어야 하는.

 

곰곰이 생각했는데

 

, 내가 지금 3부 리그에 있구나그런 걸 느끼게 하는 계기가.

 

3부 리그면 3부 리그답게, 용돈도 줄이고, 생활비도 줄이고, 하던 일의 규모도 줄이고.

 

, 줄였다.

 

그리고 별 돈 들지 않는 허장성세 같은 일들도 줄이고.

 

20년 만인가? 드디어 앰프와 스피커 없는 삶을 꾸렸다. 턴테이블은 벽 한 구석으로 밀렸고, 지금 CD TV에 물려서 듣는다. 그리고 나는 아예 음악을 듣지 않는다.

 

하여간 박근혜를 지지한 사람들이 삶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이 시기, 최대한 줄이고, 아무런 소비도 하지 않는 것, 그게 그나마 정신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것 아닌가?

 

3부 리그, 그 단어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3.

솔로 현상이라는 주제를 가진 책을 하나 준비하는 중이다. 일정이 잡히면 보통 일정대로 달리는 편인데, 처음으로 내가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내 이해도의 문제로, 속도를 줄였다.

 

‘88만원 세대를 비롯해서 지금까지 나온 책들은 대부분 2002~2003년도에 했던 생각이나, 그 때 알고 있던 것들을 중심으로 기획된 것들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아주 시간이 지나서 써낸 것, 그게 내 책이다.

 

솔로 현상을 접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아직 결론도 잘 모르고, 중요한 내용들도 잘 모른다.

 

석사 시절이나 박사 시절,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공부하고 그렇게 논문을 썼었다. 책을 쓸 때는, 그렇게 못했다. 이미 아는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런 고민만 했다.

 

경제 대장정 시리즈가 다 그랬고, 그 중의 1편이었던 88만원 세대 때는 더 그랬다. 결론의 톤, 이런 것에 대해서만 죽어라고 고민을 했다. 그리고 제목에 대해서

 

솔로 현상은, 만약 이게 책으로 나오면, 내가 낸 책 중에서 처음으로 내가 몰랐던 것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집필 과정에서 정말로 뭔가 새롭게 공부해야만 했던, 그런 책이 될 것이다.

 

그걸 뒤집으면역시 내가 3부 리그에 있는 것 맞다.

 

모르는 얘기를 왜 하고, 모르는 얘기를 왜 쓰려고 해… 3부 리그니까.

 

그렇지만 정말로 결론도 모르겠고, 솔로로 살아간다는 것, 이게 뭔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맬더스가 했던 얘기는, 그러다가 전쟁 난다, 그런 얘기다. 맑스는 그런 식이면 혁명 난다고 얘기했고, 아담 스미스나 케인즈는 알도 못했던 현상이다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생태학자가 한 분 계시다. 그 양반이 대충 한 얘기를 거칠게 내 식으로 정리해보면

 

여자들이 결혼해서 아기 날 생각은 안 하고, 대학원에만 자꾸 오려고 하니, 나라 망하겠다

 

, 원래 표현은 큰 일이야, 큰 일, 그런 감탄사 연발이지만, 모아보면 이 얘기다.

 

그게 한국 1부리그에 있는 남자들이 하는 얘기라고 보아도 좋을 성 싶다.

 

표현의 강도만 조금씩 다르지, 뉘앙스 차이도 없이 완전히 똑 같은, 같은 표현들이 대부분이다.

 

3부리그에서 계속해서 선수 생활을 할지 말지 갈팡질팡하는 내가 풀어볼 수 있는 질문이 애당초 아니다.

 

나도 결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책 작업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로,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3부 리그 아니겠나?

 

잡기 어려운 볼은 잡지 않고, 치기 어려운 볼은 치지 않고

 

형식적으로는 1부 리그이지만 영원히 우리 마음의 번외 리그에 있는 삼미 슈퍼스타즈나는 거기보다 한 두칸 더 낮추어야 하는 3부 리그 아닌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할 수 없더라도.

 

솔로 현상에 대한 분석이 나한테는 그런 것이다.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아는 지식으로 해석하기에는 너무 크고 어려운 현상이다.

 

잡을 수도 없고, 칠 수도 없지만,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그리하여 이제 나는 정말로 3부 리그를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

 

돈만 안 쓰면, 생각보다 오래 3부 리그에서 버틸 지도 모른다.

 

그래도 당분간은 더 게임을 뛰고는 싶어졌다. 뭘 해도 잘 안 되는 3부 리그, 잘 할려고 할수록 더 잘 안 되는 3부 리그, 이제 그냥 3부 리그 게임을 즐기려고 한다.

 

차 에어컨만 잘 나와도 좋겠건만, 그나마도 잘 안 되는 나는야 3부 리그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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