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아이들 메모 2018. 12. 28. 10:33

 

큰 애가 아침에 식탁 위에 있던 아내 노트북을 떨어뜨렸다. 작살만 겨우 면했다. 지난 주에 서비스 센터 갔다 온 애인데.. 반성문 썼다. 보다가 웃겨 죽을 뻔 했다. 아들아, 아빠도 술 처먹고 들어오면 반성문 쓴다. 냉장고에 붙여놓는다. 너도 반성문 많이 쓰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아이들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들의 꿈  (0) 2019.01.06
거북선 돌격!  (0) 2019.01.05
화장실 불 끄고 도망가기..  (3) 2018.12.26
큰 애의 첫 극장 나들이..  (6) 2018.12.25
일곱 살 큰 애가 준 크리스마스 카드  (0) 2018.12.21
Posted by retired
,
지난 10월부터 강연을 없애는 중이었다. 내년에는 강연 계획이 없었다. 애들 보면서 강연 일정 소화하는 것도 무리고, 그렇게까지 힘들게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직장 민주주의 책은, 결점이 없는 책이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거나, 구조를 너무 무리하게 짰거나, 아니면 너무 안이하게 주제에 접근했거나.. 지나고 보면 크고 작은 결점들이 책에서 보인다. 직장 민주주의 책은 더 잘 쓰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좋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내 실력으로는 여기까지가 거의 극한치다. 그리고 게임이론을 비롯해서 지나치게 어려워보이는 2장을 완전히 들어내서, 몇 페이지로 결론만 요약했다.

책 반응은 별로다. 보통은 이러면 그냥 내려놓고 다음 책 일정으로 넘어간다. 그래도 이 주제는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제일 큰 문제는, 일단 내가 인기가 바닥이라는 점. 애 보면서 방송에도 안 나가고, 딱히 노출될 만한 일을 하는 게 없다. 국민연대 공동대표하던 시절처럼 시민운동 맨 앞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되는대로 지방에서 몇 군데 강연 일정을 잡았다. 부산이나 광주 같은 데는 강연장 채우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강연도 못 잡았다. 부산대에서 대형 강의실 꽉꽉 채우던 시절도 있었지만, 애 둘 보는 아빠가 그런 옛날 생각 해봐야 별로 정신건강에 좋은 일도 아니고.

나는 강연은 정말 최소한만 하고, 그것도 되게 까다롭게 고른다. 기업 강의는 안 하고, 특히 직원 교육용 강의는 절대 안 한다. 그런 데는 '긍정적 마인드' 같은 강의가 더 어울린다. 괜히 이것저것 비판하는 얘기를 그런 데 가서 해봐야, 서로 불편하기만 하다.

이번에는 기업 강의도 하기로 했다. 주제가 그렇다.

아직 날짜는 안 정해졌는데, 여성정책연구원에서 하기로 했고, 연금관리공단 노조에서 하기로 했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되는대로. 그래도 많이 가면 갈수록 뭔가 변화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한다. 삼성계열사에서도 강연 부탁 들어온 게 하나 있다. 할 생각이다.

시민운동 하던 시절에는 정말 바닥에서 돌아다니는 일을 많이 했었다.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지역에서 조그만 단체 생길 때 창립 기념 특강, 이런 것도 많이 했다. 강의료 받는 것 보다 술 사주는 돈이 더 많이 들어간.. 나는 그런 일에는 아주 익숙하다.

본격적인 직장 민주주의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나왔다. 생활 경제, 생활 민주주의, 최근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책을 계속 써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좀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날은 춥다. 그리고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먼, 그런 나그네 심정은 아니다. 낙수물은 차고, 장부가 길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으리, 그런 형가의 심정도 아니다. 초봄에 씨 뿌리는 농부의 심정에 더 가깝다.

당분간은 좀 돌아다니려고 한다..

 
Posted by retired
,

저녁 때 분리수거 쓰레기 왕창 옮겼다. 화장실에 좀 씻으러 갔더니, 둘째가 불 꺼버리고 도망갔다. 둘이 도망다니면서 웃음소리가 집안 가득이다. 내가 골탕 먹으면, 애들은 좋아한다. 팔자야..

'아이들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북선 돌격!  (0) 2019.01.05
반성문  (0) 2018.12.28
큰 애의 첫 극장 나들이..  (6) 2018.12.25
일곱 살 큰 애가 준 크리스마스 카드  (0) 2018.12.21
푸와 친구들  (1) 2018.12.18
Posted by retired
,

 

포스가 함께 하기를.”

 

8편까지 이어져온 <스타워즈>가 만든 대표적인 유행어다.

 

스타워즈의 세계관과 명랑을 합쳐서, 국적불문의 요상한 문장 하나를 만들었다.

 

전에도 책 사인할 때 가끔 명랑이 함께 하기를”, 요렇게 썼었다. 내년부터는 아예 더 파격적으로, “May the 명랑 be with you..”

 

사실 내가 요즘 명랑하기 좋은 시절을 보내는 건 아니다. 아이들 둘 보는데, 내년에는 큰 애 학교 들어가서, 학교, 어린이집, 서로 시간 다르게 두 탕을 뛰어야 한다. 생각만 해도, 진짜 죽을 것 같다.

 

잔고라도 좀 넉넉하면 좋겠지만, 그냥그냥, 딱 세 끼 입에 밥 들어가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다. 기분 전환으로 쇼핑, 이런 건 택도 없다. 겨울에 입을 슈트 한 벌 사야 하는데, 이것도 그냥 미루고 미루고..

 

버티고 버티면서, 그야말로 시간을 버티는 거지, 뭐가 엄청나게 잘 되고, 그냥 막 웃음이 나오고, 그런 시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나는 웃음을 잃지 않고, 명랑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한국 사람 아닌 것 같다. 가슴 속에 이 없다. 억지로 기억하면 고통스러운 순간이 없지는 않은데, 흔히 한이라고 부르는 그 한이 없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밉고, 막 복수하고, 그런 사람도 없다. 빈정 상하는 사람들 리스트를 만들면 DB 하나는 채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진짜 싫은 사람, 그런 것도 없다. 그냥,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좀 있을 뿐이다.

 

내년에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꽤 많은 글을 쓰게 된다. 그리고 형식도 정말 다양하다.

 

최대한의 파격을, 그것도 웃기고 명랑한 방식으로 해보려고 한다. 남 야지 놓으면서 웃기는 것도 별로고, 성적 농담으로 자기만 웃기는 것도 별로다. 좀 다른 방식으로 명랑해보고 싶다.

 

자기 속을 쥐어 파면서 뭔가 만드는 것도 별로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만 할까? 그냥 좀 웃으면서, 그렇게 적당히 하면서도 의미 있는 건 못하는 걸까?

 

에세이 제목으로 “May the 명랑 be with you”라고 쓰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냉정하게 얘기하면, 아무 일도 안 벌어진다. 난 그렇게 인기 있는 저자가 아니다. 그냥 밑바닥을 박박 기면서 버티는 중일 뿐이다. 그러니 그런 걸 못 할 이유도 없다.

 

나는 출발부터 ‘C급 경제학자였다. 그렇다고 재야 경제학자는 아니다 (여전히 이렇게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 그러신가보다 하고 나도 무시한다. 나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실력이 떨어지는 거지, 재야는 아니다..)

 

더 파격적으로, 더 명랑스럽게, 그렇게 해 보려고 한다. 어차피 잃을 것도 별로 없고, 신경 쓸 사람도 별로 없다.

 

30대에 시도하던 걸, 더 꼴통스럽게 몇 단계 올려서 다시 한 번 해보려고 한다. 그래야.. 나라도 명랑해지니까.

 

Posted by retired
,

예전에 나이키의 상대는 닌텐도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닌텐도 사는 사람이나 나이키 사는 사람이나, 청년들의 주머니를 놓고 경쟁하는 것과 같다.

오랫동안 영화의 상대는 닌텐도라는 말도 유행했었다. 사람들의 24시간을 어떻게 나누어가질 것인가, 그런 점에서 이 말도 맞다.

물론.. 결국 닌텐도도 그 시장에서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콘솔, 누가 그걸로 게임하나?

닌텐도가 나이키와 영화를 다 묶어서 경쟁했듯이, 요즘 유튜브가 한참 때 닌텐도 보다 더 핫하다. 사람들의 24시간을 놓고 경쟁을 하는 것도 같고, 광고비를 비롯한 돈을 굴리는 것도 가장 핫하다. 어떤 개인 매체도 지금의 유튜브처럼 매달리면 돈이 툭툭 튀어나오는, 그 경지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유튜브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다.

대충매체와 관련된 거의 대부분의 것들은 유튜브에 진출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걸 놓고 지금 판단 중이다.

팟캐스트 시작할 때, 나도 거의 초창기에 이 시장에 들어갔다. 만약 mb 시절이 아니었으면, 나도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 때는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 다운로드 수가 몇 백만까지 갔었고, 한 때는 글로벌 팟캐 순위의 앞자리에 있기도 했었다. 물론 내가 아주 힘 좋던 시절의 일이다. 삼성이 공유수면 사업 시작한다는 소문 날 때 '갤럭시 넙치' 같은 말을 써서 빵 터지게 하기도 했다. '과일방' 얘기는 농업 분야에서는 지금도 전설과 같이 내려오는 말이기도 하고. 실제 삼각김밥이 중국산 찐쌀에서 국내산 쌀로 많이 변경되기도 했다.

그럼 나는 유튜브를 할까 말까?

일단 나는 그 시절에 비하면 나이를 먹어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뭔가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애도 키워야 하고.

그리고 모든 것을 정치적이고 이념적으로 보는 것이 꼭 옳은 것인지, 이념 앞에 서 있는 것이 길게 봐서 도움이 되는 것인지, 그런 것도 잘 모르겠다.

유튜브도 네트워크 효과 같은 것이 있어서, 쌩판 처음으로 움직이면 진짜 힘들다.

물론 나는 용민이라는 좋은 친구가 있다. 할 생각이 있으면 김용민 옆에 살짝 붙어서, 난 잘 모르니까 이것저것 니가 다 해줘, 이러고 붙어 가면 된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경제를 제대로 다루는 매체는 거의 없다. 너무 얕거나, 너무 뒤틀려 있거나..

그렇지만 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들일 시간이 없고, 들일 정성도 없다. 팟캐스트도 마찬가지지만, 기왕 한다고 하면 최선을 다 해서 해야 뭔가가 생기지, 그냥 때우는 방식으로는 아무 것도 안 생긴다. 매체와 상관없이, 최전선에 서야 뭐라도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물론 책을 쓰면서 중요한 내용을 살짝살짝 만들어 가공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별로 내가 선호하는 양식은 아니다.

모르겠다. 1~2년 지나서, 내가 정말 편안해지면 한 시간 반 내외의 경제다큐를 매우 저렴하게 만들어서, 용민이네 채널에 트는 방식 같은 것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극장판으로 해봐야 원금 회수되지 않을 건 마찬가지인데, 저 부담감 없이 저예산으로 하는 것은 가능한 방식일 것 같다.

그리고 한 번 만들면서 생겨난 내용들을 부산물로 좀 더 가공하는 2차 시장까지도.

가능은 한데, 당장 고민할 일은 아닌 것 같고.

그리하여..

나는 지금 하는 일들이나 무리하지 않게 끌고 나가는 정도로, 일단은 유튜브에 관한 검토 끝.

'잠시 생각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지] 멜 주소..  (0) 2019.01.01
탈토건 보수? 비토건 보수  (0) 2018.12.31
빈집에 입주하면, 정리정돈부터..  (0) 2018.12.25
주간조선의 20대론에 관한 짧은 코멘트..  (0) 2018.12.23
청와대 연하장  (0) 2018.12.21
Posted by retired
,

길고 긴 크리스마스가 끝났다. 이제 설거지 시작하면 연휴도 끝.

어제 저녁에 식구들 전부 명동성당에 가서 한참 싸돌아다니고, 이것저것 먹고 왔다.

오늘은 오전에 아이들하고 목욕탕에서 옥터넛 놀이하고, 그 김에 목욕까지.

점심 먹기 전에는 애들 태어나고는 정말 처음으로 악보집도 좀 만들고, 기타도 약간.

오후에는 큰 애 데리고 처음으로 극장에서 점박이2를 보고 오는 쾌거를. 극장만 가면 어두워서 무섭다고, 결국 데리고 나왔어야 했는데, 오늘은 눈도 떼지 않고 끝까지 봤다. 팝콘 먹어가면서.

저녁은 겁나 맛있게 먹고, 애들 둘과 격투를 30분이나. 놀만큼 놀았다.

그러면 기분이 아주 좋은가? 그렇지는 않다.

내가 하는 일들은 여전히 지지부진, 혹독한 시간을 버티고 있다. 잘 되는 일과 잘 되지 않는 일들이 섞여 있는데, 그래서 그럭저럭 버티기는 한다. 버티기는 하지만, 마음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잘 못한다. 그리고 왜 못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뭐라도 좀 적어서 보내보라는 주문들이 약간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내가 뭘 엄청나게 아는 것도 아니고.

태안 발전소 사건은 나에게 충격과 그리고 골치아픔을 남겨주었다. 다음 달에 발전소 한 번 가볼까 말까, 그렇게 일정을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지금에라도 다음에 사고 날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쭉 짚어서 어디에 쓸까? 그러나 나는 시간이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는다. 마음이 그냥 답답하다.

연구소 같은 거라도 하나 만들자고 후배들이 나를 달달 볶는다. 그러나 여력이 안 된다, 도니도..

나이 50, 깃발 들기 딱 좋은 나이이기는 한데, 뭣 모르고 깃발 들었다가 "죽기 딱 좋은 날이네", 이런 꼬라지를 만나게 될 것 같다.

딱히 시원하게 되는 일은 없는데, 뭔가 꽈배기 꼬이듯이 배배 꼬여들어가는 듯한 이 느낌적인 느낌은 뭘까?

'남들은 모르지.. > 50대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웃음에 대한 메모..  (0) 2019.01.13
더 살살 살기..  (1) 2019.01.13
50대들의 수다..  (0) 2018.12.19
나의 삶..  (2) 2018.12.17
큰 아이가 운다..  (11) 2018.12.14
Posted by retired
,

 

 

나는 처음 극장 가본 게 추석날 사촌 형들이랑 <정무문> 봤던 것 같다. 이소룡이 도망다니면서 토끼 구워먹던 거, 마지막에 죽으러 뛰어든 것만 기억난다. 그리고 아마 그 다음 정월인가, <신바드의 모험>을 봤던 것 같다.

 

만화영화는 <로보트 태권브이> 2편을 극장에서 봤는데, 중간에 들어가서 보다가 처음부터 다시.. 그 때의 짜증이 워낙 강렬해서 그런지, 그렇게 영화보는 일은 절대로 안 하게 되었다.

 

큰 애는 다섯 살 때 <카봇> 뮤지컬을 데리고 갔었다. 10분도 채 안 보고 어두운 게 무섭다고 울어서 어쩔 수 없이 바로 나왔다.

 

얼마 전에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은 끝까지 잘 봤다.

 

큰 마음 먹고, 크리스마스고 해서 점박이2를 보러 갔다. 길거리에 지나가다가 포스터를 보고, 저거 꼭 봐야겠다고 해서 생긴 일이다. 크리스마스 개봉이다.

 

팝콘도 사고, 쥬스도 사고.

 

아이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봤다. 너무너무 재밌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까지 재밌지는 않았는데, 뭐 애가 재밌다면 다행.

 

다섯 살 둘째도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 무섭다고 안 간다고 해서. 둘 데리고 가서 하나는 더 보겠다고 하고, 하나는 나가겠다고 하면 난감할 것 같았다.

 

다음 크리스마스에는 둘째도 데리고 꼭 같이 극장 오기로 큰 애랑 약속했다.

 

시간은 흐른다. 벌써 많이 흘렀다. 기저귀 하던 '애기' 시절이 언제인가 싶게, 그 사이 극장도 같이 다니고.

 

나는 아버지랑 극장 딱 한 번, 엄마랑은 중학교 때 성인 동반해야 볼 수 있는 영화를 졸라서. '데스 쉽'이었던 것 같다. 너무너무 재밌었다. 어쩌면 평생이 갈 내 영화 취향이 그 시절에 형성된 것 같다.

 

그게 내가 골라서 본 첫 번째 영화였다. 물론 친구들하고 취권 등 홍콩영화는 종종 봤었는데, 그건 내가 골랐다기 보다는 다들 그렇게 보는 거라서.

 

그 때 그 '데스 쉽' 감성이 평생을 갔다.

 

유학 가서 박사 논문들 db를 보고 제일 먼저 찾아본 게, 경제, 화폐, 가치, 그런 게 아니라.. 흡혈귀에 관한 박사 논문들. 아, 흡혈귀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박사로 만들어주었구나.

 

그게 흐르고 흘러서 '생태 요괴전'이라는 책이 되었고, 그걸 읽은 사람들이 영화 같이 하자고 해서, 아직도 10년째, 지지고 볶고.

 

'공포 택시' 리메이크 해보자는 제안이 올 여름에 있었다. 사실 악명 높은 영화이기는 한데, 나는 재밌게 봤다. 이서진의 젊은 시절도 나름 풋풋했고.

 

공포물 하나가 아직도 리스트 한 구석에 얹혀 있다. 진짜 무서운 거 만들어보고 싶은..

 

큰 애도 이렇게 극장에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삶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아이들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성문  (0) 2018.12.28
화장실 불 끄고 도망가기..  (3) 2018.12.26
일곱 살 큰 애가 준 크리스마스 카드  (0) 2018.12.21
푸와 친구들  (1) 2018.12.18
고된 하루..  (0) 2018.12.17
Posted by retired
,

태안 발전소 사고를 보면서 진짜 만감이 교차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는 이제 옛날 얘기고, 공적 시설의 관리에 사모펀드 개방하던 mb 시절 얘기까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빈집에 들어오면 빈집 치우고 살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보수 정권 10년 동안 온갖 난장굿을 치룬, 빈집이나 마찬가지인 곳에 들어온 것이다. 그냥 뭉개고 살아던 거 아닌가 싶다.

폐허처럼 방치된 빈집인 거 알았고, 그거 치우라고 사람들이 정권 바꿔준 거 아닌가 싶다. 예를 들면, 안전 총점검, 이런 방식으로라도 곳곳에 안전이 미비하게 된 시스템과 구조를 파악하고, 고칠 거 고치고.. 한국당이 그런 방안에 대해서 반대를 강력하게 할 수 있었을까?

지금이라도 빈집부터 정리정돈하고 새 출발한다는 마음으로, 안전 문제에 대한 투자부터 운영, 예산, 인력, 이런 것을 총체적으로 재검검하는 계기를 만들면 좋겠다.

1년만 더 지나면, 너무 이상한 집에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말을 하기 어렵게 된다. 아직 반환점 돌지 않았을 때, 지금이라도 안전에 대한 것은 발상을 바꾸어야 할 듯 싶다..

Posted by retired
,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김리. 그는 북부 난쟁이의 대표였다..)

 

몇 해 전에 아내와 파리에 좀 길게 가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시트콤을 잠시 봤는데, 난쟁이 아줌마가 사랑의 요정으로 나오는 얘기였다. 앞뒤를 다 보지는 못했는데, 뿌듯하고 감동이 있는 그런 얘기였다.

 

인구 비례로 장애인이 태어나고, 그 중에는 난쟁이도 있고, 또 다양한 종류의 장애가 있다고 알고 있다. 한국의 tv에서 난쟁이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헐리우드 영화에도 난쟁이들은 자주 나온다. <반지의 제왕>에는 주인공급이고, <해리포터>에는 요정 도비를 비롯해서 또 수많은 직군의 난쟁이들이 나온다. 당연히 호그와트의 선생님 중에도 등장한다.

 

최근의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난쟁이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헐리우드나 영국 영화에서도 난쟁이들이 이 정도로 존재하지 않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이건 왜 그런 것일까?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가장 상징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게 난쟁이와 꼽추라고 불리는 척추 질환자. 70년대로 형성되는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꼽추들이 동네에 있었던 기억이 난다. 시장에서 짐을 나르는 아저씨가 그랬다. 시장 귀퉁이에서 순대 사먹는 걸 좋아했었는데, 막일 하는 아저씨 한 명이 꼽추였다. “아줌마, 얘 간도 좀 많이 주세요.” 뭐 좀 더 주라고 한 마디씩 거들어주고 가고는 했다.

 

그럼 유신 시대의 한국 사회가 전두환 군사정권을 거치고 다시 민주화 정권을 거치면서 꼽추 같은 장애는 아예 극복을 하게 된 것일까? 더 이상 한국에는 난쟁이는 태어나지 않는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프랑스에서 난쟁이 아줌마가 요정으로 나와 주인공이 되는 시트콤을 보면서,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사회의 차이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폐쇄적이며, 그야말로 선남선녀를 지향하는 국가인지도.

 

외모차별을 하지 말자고 하지만, 말 그대로 예쁜 것들만 좋아하는 좀 지나치게 표준형 사회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진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그렇게 빡빡하다.

 

그 한 극단에서 난쟁이와 꼽추에 대한 생각을 가끔 한다. 그들은 한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길거리에서 꼽추 보신 분 있으신가? 나는 못 본지 좀 된다. 그러면 없는 건가?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혹시 최근에 난쟁이 보신 분 있으신가? 나는 없다.

 

없는 게 아니라, 약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돌아다니기도 어려운 게 한국 사회가 아닐까 싶다. 1인당 gdp 1만 달러 넘어갈 때에도 그랬고, 2만 달러 넘어갈 때도 그랬다. 그리고 이제 막 gdp 3만 달러 넘어간다는 데 여전히 한국은 그렇다.

 

어떻게 보면 21세기 한국인은 냉정한 걸 넘어서 참 잔인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다른 것을 못난 것이라고 하면서 아예 곁을 내주지 않으려고 한다.

 

길거리에 존재하지 않는 난쟁이, 이 문제는 많은 것들의 뿌리에 해당하는 의식일지도 모른다. 임대주택 자녀들이 같은 학교에 들어오지 못하게 아예 사유지라고 길을 차단하는 부모들, 이게 전혀 다른 문제일까?

 

왕한테 예쁨 받는 것들, 여기 다 모였구나?”

 

사도세자 유아인이 영화 <사도>에서 했던 대사다. 크리스마스, tv 어디를 봐도 예쁨 받는 것들만 나온다.

 

예수님의 탄생, 그가 예쁨 받는 예쁜 것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겠는가? 그가 십자가에서 세상 모든 짐을 다 지고 하늘로 떠날 때, 왕한테 예쁨 받는 것들을 위해서 그 모든 짐을 지고 가셨겠는가?

 

크리스마스, 한국에 존재하지 아니 존재하지 못하는 난쟁이와 꼽추, 그렇게 예쁨받지 못하는 것들을 위해서 잠시 머리를 숙인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는 것은, 그들이 당당하고 자신 있게 길거리로 나와서 쇼핑도 하고, 식당도 가고, 그런 순간이다. ‘노키즈존이 정말 역겨운 것은, ‘키즈이하로는 전부 출입금지의 함의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 그런 식당에 난쟁이, 꼽추, 환영 받겠는가?

 

크리스마스다.

 

한국의 모든 예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잠시 머리를 숙인다. 그런 날이 오기를 위해서, 잠시 기도한다.

 

우리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다. 정권의 문제, 경제 문제, 교육 문제, 사회 통합의 문제.. 그러나 가끔 그렇게 여나 야나 문제 축에 끼어주지도 않는 진짜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예수가 말구유에서 태어난 날이다.

 

장애인 아이를 두고 힘들어하는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을 위해서도, 잠시 기도..

 

난쟁이 아줌마가 tv 시트콤의 주인공이 되는 날, 그날이 우리가 진짜 선진국이 되는 날이다. 대치동의 엄마, 아빠가 주인공인 나라에서, 다른 시대로 한 번 더 넘어가야 한다.

 

그 날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아직도 버린 적은 없다.

 

(명동 성당, 크리스마스 이브, 아이들과 함께..)

 

 

'남들은 모르지.. > 소소한 패러독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친아와 개천용의 시대..  (1) 2019.01.09
건방증..  (0) 2018.12.29
고승과 애정결핍  (0) 2018.12.21
나쁜 넘이 하는 좋은 일..  (0) 2018.12.20
초현실주의..  (2) 2018.12.09
Posted by retired
,

 

(우와, 노회찬과 같이 토크쇼하던 사진을 드디어 찾아냈다..)

 

포위 당해서 섬멸의 위기에 놓였을 때에는 내용은 물론이고 형식에 대한 모든 것들을 고민해봐야 한다. 지금 한국의 지성은, 전멸 위기다. 지성과 지식, 모두 다 전멸 직전.

일부는 청와대 가서 폼 잡는 것은 좋은데, 아, 열심히 공부해서 저거 하려고 하셨구나, 그 회의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 일부는 대중들의 삶과 아주 멀리, 그냥 안드로메다로.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월급만 많이 주면, 땡큐, 열라 땡큐.

이러다 책이 문제가 아니라 지성 자체가 전멸한다. 분서갱유가 아니라 그냥 상업적인 이유로 고립되어 분서폭망. 욕만 하고, 쟤네들 다 나빠요, 이렇게 풀 문제가 아닌 것 같다.

70년대에는 박정희랑 목숨줄 내걸고 싸운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지지해줬다. 80년대, 90년대, 마찬가지다. 지금은 뭐랑 싸우냐? 지지할 이유도 없고, 뒤에서 폼잡고 있을 거면. 지성이 존재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걸 보여줘야 한다. 지금이 그래도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순간 아닌가 싶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둘째가 폐렴으로 입원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특별한 스터디팀 없이 지냈다. 그렇지만 이건 내 인생에 아주 예외적인 순간이다.

 

대학교 1학년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는 늘 스터디를 만들거나 했고, 지금은 젊은 여성학 하는 박사들과 새로운 스터디팀을 만들기 위한 구상을 하는 중이다.

 

그 중에 가장 화려했던 것은 지금은 대통령이 된 문재인과 했던 스터디팀. 매주 했는데, 문재인, 정세균, 추미애 심지어는 김한실까지 고정 멤버였다. 여성부 장관이 된 진선미, 벤처기업부 장관이 된 홍종학도 멤버였다. 야당 시절,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스터디팀을 하나 만들었었다. 거기서 대통령, 국회의장이 나왔고, 장관은 겁나게 많이 나왔다. 그 때 장하성 선생과 김상조 선배도 강사로 왔고, 전번들을 서로 나누었다. 정성인 선생도 강의를 했는데, 그 때는 문 대표가 불참. 아쉬운 순간이었다. 보수 신문들은 이거 그만 하라고 난리들을 쳤었는데, 나는 못 들은 척, 그냥 1년 정도 강행했다. 결국 안철수의 탈당으로 아사리판이 나서 더 이상 끌고 나갈 수가 없어서 접었다. 나중에 문대표 양산 집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때 했던 내용들 꼭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하셨던.. 한다고 대답은 했는데, 둘째 입원하면서 나도 모르겠다, 내 코가 석자다..

 

(당시 스터디 관련 기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23&oid=305&aid=0000017219)

 

그 시절에 딱 한 시간 포맷으로 했다. 30분 발표, 30분 토론. 좀 극단적으로 짧기는 했지만, 그게 매주 그 사람들에게 내가 받아낼 수 있는 시간이 극대치였다.

 

보통 내가 하는 스터디팀은 두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책을 같이 읽을 것인가, 읽지 않을 것인가, 이게 큰 기준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모여서 책을 읽는 형식의 스터디팀을 만든 적은 없다. 책 정도는 혼자서 읽고, 그 뒤의 얘기들을 하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그래서 이게 대학원 박사 과정의 스터디랑 형식이 같은 것이다. 모여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 그러면 책 읽고, 진짜 할 얘기는 뒷풀이 가서.. 그렇게 해놓고 술 처먹다가 한 쪽에서는 싸우고, 한 쪽에서는 연애하고, 뭔 짓인가 싶었다.

 

내가 준비하는 강연은 2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예전에는 딱 한 시간 발표하고, 한 시간 토론이었는데, 이제 점점 더 토론의 강도가 약해져서, 그냥 한 시간 반 정도 얘기한다. 책을 읽고 오면 발표는 사실 필요 없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제일 싫은 것은 기업 연수교육에서 하는 강연이다. 아마 돈은 충분히 받았을 테니까, 한 번 씨부려봐, 품평회 하듯이 배 내밀고 앉아 있는 대기업 직원들 앞에서.. 딱 맘 먹었다. 배 내밀고 앉아 있는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는 건 안 한다. 지금도 사장이 어떻게든 꼭 해달라고 부탁한 예외적인 경우 아니면 기업 교육은 안 한다. 피차 서로 곤욕스러운 자리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전경련에서 부탁 왔을 때. 그야말로 회장급들 교육을 좀 시켜달라고 했다. 일본에서 한다고 했다. 간다고 했다. 그랬더니 나중에 보니까 골프 라운딩을 하면서 거기서 강의를 해달라는. 그래서 골프 못 친다고 했다. 그냥 골프채 들고서 치는 척만 해도 된다고 했다. 싫다고 했다. 돈 많이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싫다고 했다. 이것들이 사람을 뭘로 보고 (사실은 나도 전경련의 환경 분야 주포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서로 전혀 모르는 관계는 아니다.)

 

요즘에 내가 새로운 양식 실험을 해보는 것은 티타임이다. 10명에서 20명 안팎의 사람과 모여서 차 한 잔 마시면서, 나는 30분 이내로 배경에 관한 얘기를 하고.

 

돌아가면서 서로 얘기를 하게 하고, 중간중간 내가 진행성 개입을 하는.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읽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효과는 강연보다 티타임이 훨씬 좋다. 좀 더 비공식적인 얘기의 핵심에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최근에 독자 티타임하면서 나도 안 해본 새로운 포맷을 실험해보는 중이다.

 

티타임 형식이 성공하려면 얘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확실하게 출발점과 목표점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건 내가 하는 거니까 아무 문제 없고.

 

기존의 강연과는 다른 20명 내외의 티타임 형식을 좀 더 많이 만들어볼 생각이 있다. 물론 강연으로 돈을 벌고, 책을 팔 생각이면, 무조건 다다익선이다. 그렇게 보이기는 하는데.. 나는 사실 그런 목적은 별로 없다. 진짜로 사회를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고 싶은. 그럴 때에는 티타임 형식이 좀 더 나을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고, 변화를 만들기 위한 것, 진심이 최고다.

 

후배들하고 하는 스터디에 대해서 내가 약간의 자부심이 있는 게.. 석사 시절에 나와 공부했던 친구들이 대부분 박사가 되었다. 타율로 치면 9할이 넘는다. 셋째 아이를 낳으면서 박사과정 진학을 포기한 드문 경우 일부 아니면 대부분 최종 터치다운까지.

 

나는 그들에게 지식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목적을 주로 가르치고, 공부하는 법을 가르쳤던 것 같다 (내 손을 거쳐간 박사들만 모아도 학과 몇 개는 거뜬히 만들 수 있을 듯한.)

 

이런 유사한 효과를 상식적인 시민들과 나누기 위한 포맷이 현재로서는 티타임이다. 강연보다는 나은 것 같다.

 

내년에는, 어차피 사람 많지 않은 것은 미리 주최측과 얘기해서 티타임 형식의 실험을 좀 더 많이 해보려고 한다. 내가 우스워 보여도 박사 22년차다. 가르치고 지도하고, 이골이 나도록 잔뼈가 굵었다. 좀 더 쉽고, 좀 더 표준화할 수 있는 양식에 대한 실험이 내년의 목표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