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책 중에서 이 책이 가장 의미있는 책이다. 세상은 못바꿨어도, 몇 사람의 인생은 행복해진 것 같다..) 

 

 

1.

90년대 대만의 젊은 감독들이 카메라 워크를 극단적으로 배제하고, 그야말로 스탠딩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기술이 발달해서 카메라를 다양하게 움직이고, 앵글도 훨씬 많아졌다. 실력이란, 카메라 딱 세워놓고 누가 잘 찍을 수 있느냐, 그게 진짜 예술이란 얘기다. 어차피 자본과 장비로는 헐리우드 이기기 어려우니까, 이런 논쟁이 나왔다. <붉은 수수밭> 나오던 시절의 기술적 논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대형 지비집은 기본이고, 드론도 비행허가만 나면 다 쓴다. 물론 카메라를 세워놓고 그 안에서 긴박감을 만드는 고전적 영화 <구멍>을 비롯해서 여전히 그런 예술적 시도들이 있다. 그렇게 하면 대단한 게 맞기는 하다. 그런 걸로 승부 보려는 사람, 거의 없다. 하다못해 간단한 실외 예능방송도 동원할 수 있는 건 다 동원한다. 사람들의 변한 시선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2.

2년 전에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을 냈다. 겁나게 안 팔렸다. 그 뒤에 낸 육아 에세이도 역시 겁나게 안 팔렸다. 아마 몇 권이 계약되어 있지 않았으면 그 시점쯤 나는 책을 그만 쓰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을 것 같다. 생각은 그런데, 그 전에 약속한 게 있어서 억지로 억지로 끌고 갔다. 다행히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가 체면치례 정도는 할 수 있을 수준은 되었다. 사회적 경제, 딱 견적 안 나오는 주제이기는 한데, 했던 작업들의 흔적은 남겨놓아야 할 것 같아서 한 책이다. 그야말로 시한부 생명연장’, 내 상황은 그렇다.

 

그 때쯤 나는 나도 돌아보고, 내가 내는 책도 돌아보고, 그리고 바뀐 세상도 돌아보게 되었다. 다들 책이란 원래 안 팔린다,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책을 쓸 이유도 없다. 도서관에 납품하려고 책 쓰는 건 아니다. 안 팔려도 괜찮지만, 그냥 안 팔려서, 그런 건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3.

내 생각에는, 내가 다루는 주제나 내용에는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책을 둘러싼 여건도 너무 안 좋아지기는 했는데, 이건 내가 손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다들 방송에 좀 더 나가고, 케이블에서 하는 예능방송 같은 데에도 나가라고 했다. 라디오도 진행 섭외 들어오면 그냥 빼고만 있지 말고. 마침 그 때 신동엽이 mc를 맡는 새로운 방송 같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파일롯부터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왔다.

 

나는 그게 본말이 뒤집힌 거라고 생각을 했다. 방송을 하다 보면 나갈 수는 있지만, 책을 팔기 위해서 방송을 나가는 것은 좀 아니다 싶었다. 그렇게까지 책을 써야 하면, 차라리 그만 쓰고, 편안하게 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그래서 오히려 방송도 안 하기로 더욱 마음을 굳혔다. 어쩌다 오는 일회성은 몰라도, 진행을 하거나 고정을 하는 건 아니하기로 (하여간 성격 진짜 지랄 맞다. 이것 좀 해봐, 그랬더니, “절대로 안 할 거야”, 이렇게 삐둘어질 테다 버전..)

 

4.

그리고 살펴봤는데, 내가 변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변했다. 유튜브의 짧은 동영상의 영향 등으로 호흡이 더 짧아져 있다. 책은 호흡이 길다. 책을 잘 안 보기도 하고, 텍스트의 묘미로부터 멀어져 있기도 하지만, 호흡 자체의 길이가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많은 아날로그 매체들이 그렇게 디지털 시대의 변한 호흡에 잘 적응하지를 못한다. 그건 매체 속성상, 어쩔 수가 없다. 한국에서 디지털이 들어와서 시장이 붕괴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매체가 영화 정도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다음을 꼽으면 웹튠. 그런데 여기도 이익 분배 등 근본적인 문제들이 심각해지는 중이기는 한 것 같다.

 

,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작년에 맞닥거렸던 잘문이었다. 바꾸는 수밖에 없다. 그 실험적 시도를 해본 게 50대 에세이였다. 문제 실험을 많이 했다. 물론 망했다. 그렇기는 한데, 읽은 독자들의 팬레터 같은 게 좀 열렬하게.

 

이게, 세상이 돈이 전부가 아니듯이, 책도 돈이 전부가 아니다. 가끔 나한테 가장 의미 있는 책을 꼽으라고 하면 아직도 아날로그 사랑법을 꼽는다. 책은 완전 망했다. 그리고 가난한 출판사의 마지막 카드였는데, 나는 반전의 계기를 만들지 못했다. 에디터는 결국 가난한 출판사를 떠나게 되었다. 나도 한동안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그 책이 내 인생을 바꾸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연락을 해왔다. 세상을 바꾸는 아니, 바꾸는 척만 책보다, 단 한 명이라도 행복하게 해준 책이 진짜 좋은 책이다. 그래서 저자로서 아날로그 사랑법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과 비슷한 현상이 50대 에세이 때 벌어졌다. 안 팔리는 책이 미운 책일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해서 나쁜 책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안 팔리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많은 요소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유튜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맞춰서 호흡도 더 짧게 가져가고, 웃기거나 화나게 하거나 어쨌든 감정 포인트를 더 자주 가져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까지는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이제는 일부러 밀도를 낮춘다. 밀도를 높이면 숨이 막힐 정도로 꽉꽉 조이는 느낌을 받지만, 요즘은 밀도만 너무 높이면 힘들다고 책 집어 던진다. 밀도 조절도 이제는 신경 쓰는 항목 중의 하나가 되었다. 너무 낮추면, 글이 건들건들거려서 불량한 책이 되거나, 가짜 책이 된다.

 

5.

50대 에세이 때 했던 문체 실험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한 책이 직장 민주주의 책이다. 그래도 여전히 완성형은 아닌 것 같고. 중간 편집을 하면서 게임이론으로 조직론 설명한 2장을 통째로 날렸다. 그리고 그걸 짧은 몇 페이지로 축약해서 앞의 장 끝에 넣어버렸다. 독자를 웃길 수는 없어도 재우는 것은 너무 실었다. 책의 난이도가 확 내려갔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느냐고 하지만, 사람들의 호흡이 변했다. 방법 없다. ‘88만원 세대에서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까지는 주로 생각의 흐름을 간결하게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제 그렇게 하면 잘 훈련된 독자들 말고는 책을 못 읽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하려면 거기에 맞추는 것 말고는 별 방법이 없다는 게 내 판단이다.

 

물론 그런다고 책의 내용이 더 좋아지느냐, 그렇지는 않다. 내용은 이러거나 저러거나, 같다. 결론도 같다. 이것저것 맞추다 보면 힘은 몇 배로 든다. 그래도 방법이 없다. 내가 제일 걱정하는 것은, 이러다가 1쇄도 못 털게 되고, 출판사에 돈을 벌어주기는커녕 매번 손해만 입히게 되는 것.. 그건 책을 그만 쓰는 게 아니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런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싶다.

 

이렇게 하면 책이 훨씬 더 팔리느냐? 꼭 그런 건 아니다. 책의 판매에는 개입하는 요소들이 아주 많다. 그리고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인지도와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방송에 나가지는 않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정말로 책의 힘만으로 파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게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다. 엄청 팔고, 겁나게 팔고, 그런 건 옛날에 다 해봤다. 책의 힘만으로 팔리는 책 그리고 그 힘만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책, 그게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다. 그래서 여전히 책을 쓰는 것이다.

 

다음 번 책에서는 더 많은 실험을 해보려고 한다. 농업경제학에서는 편지 형식의 형식 실험을 해보려고 하고, 젠더 경제학에서는 어투와 문체, 가장 저렴한 싸구려 문체를 사용할까 생각 중이다.

 

디지털 시대, 사람들은 유튜브의 영향을 받아서 호흡과 감성도 변한다. 책이 완전히 디지털 방식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호흡에 맞춘 변화 정도는 할 수 있다.

 

6.

권위도 더 내려놓고 싶다. 자꾸 사람들이 나한테 교수라고 한다. 애 태어난 다음부터는 도저히 여유가 없어서 학교 수업도 안 했다. 난 교수 아니다. 이제는 박사라고 불리는 것도 좀 그렇다. 박사면 어떻게 아니면 어떻고..

 

그냥 씨라고 불리는 게 차라리 더 편하다는 생각이 요즘 들기 시작한다.

 

글도 그런 마음으로 쓰려고 한다. 더 허당스럽고, 힘도 더 빼고. 좀 더 저자가 권위가 있어야 독자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거 아냐? 10년 전에는 그랬다. 지금은 안 그렇다. 권위 있는 저자, 그냥 20대들은 아예 돌아보지도 않는다. 방법이 없다. 내려놓을 수 있는 건 극한으로 내려놓는 수밖에.

 

그렇게까지 해야 해? 물론이다. 좋은 세상을 보고 싶은 그 욕망을 위해서, 내가 뭔들 못하겠냐? 못해서 못하는 거지, 싫어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

 

더 짧게, 더 낮게 그리고 더 많은 주기적 패턴의 포커스들을 배치, 그런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의 감성이 변한다. 그리고 20대의 감성은 정말로 흐름을 알기가 어렵다. 자기들도 사실 서로 잘 모르는 것 같다. 죽어라고 맞추려고 해도 어색하다. 그러나 맞추려는 노력도 안 하면, 진짜 급식체가 아니라 꼰데체라고 불리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방법이 없다, 맞춰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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