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 극장 가본 게 추석날 사촌 형들이랑 <정무문> 봤던 것 같다. 이소룡이 도망다니면서 토끼 구워먹던 거, 마지막에 죽으러 뛰어든 것만 기억난다. 그리고 아마 그 다음 정월인가, <신바드의 모험>을 봤던 것 같다.

 

만화영화는 <로보트 태권브이> 2편을 극장에서 봤는데, 중간에 들어가서 보다가 처음부터 다시.. 그 때의 짜증이 워낙 강렬해서 그런지, 그렇게 영화보는 일은 절대로 안 하게 되었다.

 

큰 애는 다섯 살 때 <카봇> 뮤지컬을 데리고 갔었다. 10분도 채 안 보고 어두운 게 무섭다고 울어서 어쩔 수 없이 바로 나왔다.

 

얼마 전에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은 끝까지 잘 봤다.

 

큰 마음 먹고, 크리스마스고 해서 점박이2를 보러 갔다. 길거리에 지나가다가 포스터를 보고, 저거 꼭 봐야겠다고 해서 생긴 일이다. 크리스마스 개봉이다.

 

팝콘도 사고, 쥬스도 사고.

 

아이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봤다. 너무너무 재밌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까지 재밌지는 않았는데, 뭐 애가 재밌다면 다행.

 

다섯 살 둘째도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 무섭다고 안 간다고 해서. 둘 데리고 가서 하나는 더 보겠다고 하고, 하나는 나가겠다고 하면 난감할 것 같았다.

 

다음 크리스마스에는 둘째도 데리고 꼭 같이 극장 오기로 큰 애랑 약속했다.

 

시간은 흐른다. 벌써 많이 흘렀다. 기저귀 하던 '애기' 시절이 언제인가 싶게, 그 사이 극장도 같이 다니고.

 

나는 아버지랑 극장 딱 한 번, 엄마랑은 중학교 때 성인 동반해야 볼 수 있는 영화를 졸라서. '데스 쉽'이었던 것 같다. 너무너무 재밌었다. 어쩌면 평생이 갈 내 영화 취향이 그 시절에 형성된 것 같다.

 

그게 내가 골라서 본 첫 번째 영화였다. 물론 친구들하고 취권 등 홍콩영화는 종종 봤었는데, 그건 내가 골랐다기 보다는 다들 그렇게 보는 거라서.

 

그 때 그 '데스 쉽' 감성이 평생을 갔다.

 

유학 가서 박사 논문들 db를 보고 제일 먼저 찾아본 게, 경제, 화폐, 가치, 그런 게 아니라.. 흡혈귀에 관한 박사 논문들. 아, 흡혈귀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박사로 만들어주었구나.

 

그게 흐르고 흘러서 '생태 요괴전'이라는 책이 되었고, 그걸 읽은 사람들이 영화 같이 하자고 해서, 아직도 10년째, 지지고 볶고.

 

'공포 택시' 리메이크 해보자는 제안이 올 여름에 있었다. 사실 악명 높은 영화이기는 한데, 나는 재밌게 봤다. 이서진의 젊은 시절도 나름 풋풋했고.

 

공포물 하나가 아직도 리스트 한 구석에 얹혀 있다. 진짜 무서운 거 만들어보고 싶은..

 

큰 애도 이렇게 극장에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삶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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