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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다큐, 정말로 해보고 싶다

 

1.

연출을 왜 안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기획에 참가하는 일은 종종 한다. 내가 방송에서 주로 하는 일이 출연이나 진행이 아니라 기획이었다. 숨은 기획자로 남는 게 좋아서 숨어서 일하지만, 그런 게 참 재밌었다. 영화에서도 기획을 한다. 제작까지 하게 될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제작에 대한 제안이 온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올해 아기 키우면서 영화 제작을 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영화 연출은 안 한다. 그게 영화사 나가면서 아내와 했던 첫 번째 약속이다. 아내는 내가 영화 연출을 한다고 하면서 밖으로 돌아다니면, 오래 못 살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이유를 대지는 않았지만, 내 성격상, 한다고 하면 정말로 목숨 걸고 하기 때문에, 단명할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내가 안 한다고 한 이유는, 난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처럼 12시가 되어야 일어나고, 또 긴장이 걸리지 않았을 떄에나 머리가 움직이는 사람과는 도저히 맞춰볼 여지가 얺는 종류의 일이다. 그래서 연출은 안 한다. 여러 사람 피 말리게 하는 악덕 감독이 될 이유는 없다.

 

2.

시나리오 버전의 모피아는 여러 가지로 애착이 많이 가는 스토리였다. 만약 내가 직접 연출을 한다고 하면, 15억 미만으로 만들 수 있게, 그렇게 얘기를 구성했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한다고 했으면, 소품 형태로 펀딩도 받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난 연출은 안할 거니까

 

그래서 그걸 다시 소설 버전으로 바꾸는 작업을 작년 3월부터 시작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가슴에서 피눈물 났었다. 그러나 안 되는 걸 어찌하랴! 그게 현실인걸. 그걸 받아들이고, 시나리오에 버전의 원래 주인공들을 전면 교체하고, 새롭게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아쉬움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 아니냐?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아직은 40대 중반이다. 막혔다고 돌아가기에는, 아직은 피가 뜨겁다.

 

3.

그래서 최종 버전으로 구상한 풀 셋트가 소설 모피아의 이론적 기반이 되는 화폐경제학이론서, 그리고 그 책에 같이 딸려서 배포할 금융 다큐, 이렇게 한 셋트를 디자인했다.

 

다큐를 연출할 감독도 구했고, 싼 가격이지만 같이 할 의향이 있는 촬영감독도 어느 정도는 섭외가 되었다. 돈은, 출판사에서 일부를 대고, 나는 제작자로 참여해서 다큐 한 편을 만들어낼 준비를 했다.

 

꼭 해보고 싶었다.

 

초저예산 다큐지만, 내용과 품질만큼은 최상급인 그런 한국판 인사이드잡에 대한 구상을 마쳤고, 소설과 함께 그렇게 풀 세트를 한국 사회에 던지는 게 내가 했던 구상이었다.

 

그 때 아기가 태어났다.

 

자연분만을 늘 생각했지만, 아기 목이 걸려서 결국에는 수술을 해서 낳았다. 그 즈음에 모든 것이 섰고, 나는 기획자나 제작자가 아니라, 아빠라는 사회적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

 

소설 모피아가 뜬굼없이 덜렁 한 권이 나오고, 그 책과 매칭되는 이론서 없이 혼자 나오게 된 데에는, 아기의 탄생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

 

뭐가 더 중요한가, 그 철학적 질문 앞에서, 나는 그냥 아빠의 삶을 선택했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렇게 태어난 아기의 100일 즈음에 대선 캠페인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4.

올해도 예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몇 권의 책이 나간다.

 

대선 마지막 해를 맞아서 세워놓고 있던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마지막 권들을 올해는 다시 론칭하려고 한다.

 

욕심을 내려고 하면 끝이 없겠지만 올해는 세워놓았던 이 시리즈를 다시 론칭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이 시리즈는 9, 문화경제학의 실패 이후 세워놓고 있는 중이다. 10권은 농업경제학이다. 농업

 

어쨌든 세워놓고 있는 시리즈를 다시 출발할 때, 나도 비범한 각오가 필요하지 않겠나?

 

문화경제학의 실패를 놓고, 참 고민 많이 했다. 그렇게 중요한 얘기인데, 이렇게 무참하게 만드는 건,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문제일까? 솔직히 이 답을 잘 못 찾았다. 돈도 많이 들였고, 시간도 많이 들였고, 정성도 많이 들였다. 근데 왜? 그 답을 못 찾았다.

 

그 다음 권이 농업이라서 부담이 너무 컸다. 간단하게 말하면, 문화 경제학도 그렇게 참패인데, 농업 경제학은 얼마나 참패할 것인가, 십중팔구! 그 부담감을 떨치지를 못했다.

 

어쩌면 그게 무서워서 내가 도망간 것인지도 모른다.

 

나꼽살 방송 내내, 농업도 정말로 밀만큼 밀었다. 모니터링해준 사람들의 조언에 의하면, 부동산이나 보험에 비해서, 별 반향 없다는 것

 

아주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벽 앞에 서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민을 해본다.

 

5.

모피아는 운이 좋아서, 드라마라도 제작의 길에 들어섰고, 영화도 제작 검토 중인 단계에 들어섰다.

 

농업의 경우는, 그렇게 소 뒷걸음질 치다가 뭔가 걸릴 확률이 사실상 0%이다. 그거야 원래 잘 알고 있는 거고

 

그래서 한 번쯤은 기획한 적이 있던, 농업 다큐를 이번 기회에 만들어서 책과 같이 배포하는

 

그걸 진짜로 해볼까,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예전에 화폐 경제학 때 기획했던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스토리 보드는 생각해둔 게 약간은 있고, 최소한 한국에서의 농업은 이래야 한다그런 방향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고, 책을 죽어라고 보지 않는 사람도 한 시간 반 동안 동영상만 보면서 간편하게 소비할 수 있게 만들어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는 생각이 부드럽게 진행되는데

 

아내 복직 이후, 아기 등에 엎고 다큐 제작자로 내가 움직일 수 있는가그런 현실적인 고민에 다시 부딪히게 되었다.

 

마음 속의 에너지는 해야 한다는 게 강한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1월 말, 어쨌든 마음을 먹어야 올해 계획을 세울 수 있는데, 아기 옆에 놓고 아무런 계획도 세우기가 어렵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농업 다큐는 정말로 한 번 만들어보고 싶기는 하다.

 

나한테 제작 의뢰가 왔던 영화도, 기본적으로는 농업 영화였다.

 

하여간 현실과,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1월말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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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1/h2013012720384024370.htm

 

[아침을 열며/1월 28일] 박근혜 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 우석훈 타이거픽쳐스 자문·경제학 박사
입력시간 : 2013.01.27 20:38:40
대략 3.6% 정도의 차이로 박근혜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승리하였다. 이 결과에 대해 다양한 여러 가지 해석과 분석들이 있을 수 있지만, 경제학자로서 나는 진보 쪽이 완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과 여성들이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진보, 이건 진 것이다. 어떤 지표를 보더라도 남성들에 비하여 열악한 경제적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 지지하지 않는 진보, 이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 수치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방향성 자체가 그 동안 우리들이 얼마나 오만했고, 우리들만의 세계에 갇혀 산 것인가, 그걸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70년대 학번들, 그들이 50대다. 80년대 학번들, 그들이 40대를 구성한다. 40대~50대 남성 엘리트 중심의 운동 정서와 문화, 그것이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과 여성들에게 비토당한 것,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이번 대선이다.

자, 그렇다면 앞으로 5년, 한국의 진보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박근혜의 실패를 바라보며, 그의 실패 위에서 자신의 기회를 찾고자 하는 것은 치졸한 전략이라는 점이다. 그가 최소한 경제정책에서 성공하고,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5년을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은 세상을 준비하고 기획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만약 박근혜 경제가 실패한다면, 흔히 중남미 경제라는 투박한 이름으로 불렀던, 그런 경제 상하층이 완전히 단절된 사회로 갈 위험이 있다. 그건 우리 모두의 실패이다. 그렇게 가면 안될 듯싶다.

IMF 경제위기를 DJ가 극복하던 1999년 상황을 생각해보자. 당시에 한국은 힘들었지만, 세계적으로는 상황이 좋았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만 어느 정도 정비하면 곧바로 경제를 자기 궤도로 되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글로벌 경제가 위기다. 여기에 더해서 대기업 중심의 수출경제를 IMF 이후에도 끌고 오면서 생겨난 구조왜곡의 문제가 겹쳐진다. 우리는 우리대로 힘들고, 세계는 그들대로 힘들다. 이 2중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게, 지금 한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다. 우리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쉽지 않은 조건이라는 점은 서로 인정하면 좋겠다. 내가 하면 다르다? 경제는 기본적으로는 심리나 이념의 영역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이다. 누가 해도 어려운 건 어려운 거다.

보수신문에서 당선 이후 제일 먼저 한 얘기가 공약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같은 논리로, 지방토호들과 한 토건 약속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토건, 모피아, 교육 마피아, 이들에게 포위당하지 않는다면 일단은 절반의 성공이다. 진보든 보수든, 앞선 정부들이 이렇게 실패했다. 뻔히 이상한 것인 줄 알면서도 정치적 이유로, 현실적 이유로, 앞선 대통령들이 꼼짝 못하고 당하는 과정을 우리 모두 다 지켜보지 않았는가? 소수 관료 집단을 위해서 다수가 희생하는 것, 그게 한국 경제의 딜레마였다. 그 문제를 풀면, 이미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임자들은 못했다.

임기 5년간 평균 성장률 2% 정도를 달성하면 성공이고, 3%에 갈 수 있으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외 위기를 헤쳐 나가면서 그 정도 하기 위해서는 비밀스러운 특권과 공공연한 전관예우 등, 한국 경제가 만들어낸 기형적 구조들을 해소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경제도 기본적으로는 시스템의 문제이고, 시스템의 가장 근본 요소는 의사결정을 어떻게 내릴 것인가의 문제이다.

대선을 치르면서 가장 감탄한 것은, 천막당사 이후로 새누리당이 정말로 당의 구조와 체질을 바꾸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다. 관료화와 전문화, 그걸 이룬 공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 경제, 예전에 천막당사 이끌고 새누리당 개혁하던 만큼만 하면 박근혜 경제도 성공할 수 있다. 선택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 이런 건 오히려 부차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아직 시간이 많고, 고민할 공간도 열려있다. 좌클릭이냐, 선택적 복지냐,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천막당사 시절의 참신함을 대통령으로서 얼마나 회복하느냐, 그게 박근혜 경제의 성공 여부를 보는 나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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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쓸 책, 약간의 마음 정리

 

1.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되든 안되든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편이다. 좀 심하다고 할 정도로, 이것저것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움직인다.

 

해마다 간이노트를 겸하는 다이어리에 날짜를 빼곡히 적어가면서 움직이는데, 올해는 1월 말이나 되어서 다이어리를 사러 갔더니 이미 올해 것은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올해 뭘 어떻게 해야할지, 사실 생각해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대선 이후의 삶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안한다, 그런 간단한 생각 외에는 없었다.

 

게다가 아기 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기는 인정사정 봐주는 법이 없다. 아내와 둘이 매달리는데, 그래도 어른 둘이서 쩔쩔 맨다. 아기가 워낙 힘이 좋아서 그런지, ‘늙은 아빠는 정말로 죽을 지경이다. 아기와 지내는 시간의 대부분은 즐겁다. 그렇지만 평생 마사지나 이런 것에 대한 충동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나도, 근육통을 느끼면서, 마사지 아니 온천이라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2.

이래저래 벌려놓은 일들은 오지랍 많기도 하다.

 

모피아는 원래는 3권짜리 책이다. 이제 1권이 나간 건데, 2권과 3권은 주제만 정해놓았지, 아직 프레임이나 플롯 등 정해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어떻게 하다보니, ‘모피아드라마 판권이 팔리게 되면서, 2권은 아직 교육 얘기를 한다는 것 외에는 정해진 게 아무 것도 없는데, 판권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데가 몇 군데 생겼다. 1권 후에 1년 간격으로, 어쨌든 처음에 계획한 3권까지는 가보려고 한다.

 

3.

생각만 해놓고 전혀 구상하지 못한 얘기들 중 정리해야 하는 게 동화책들이 좀 있다. 이게 좀 사연이 있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한 일인데,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는 얘기들이 끼면서,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애초에 내가 생각한 것은, 고양이들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지금은 몇 가지 버전이 왔다갔다 하는데, 아직은 도통 오리무중이다.

 

(사실 성인용 책과는 달리, 어느 출판사에서, 누구를 파트너로 해야할지, 결정을 못한 게 헤매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는 하다. 막상 겪어보니, 아동책 움직이는 방식이 내가 익숙한 성인용 책과는 많이 달랐다.)

 

파트너로 일하는 화가가 있어서, 어쨌든 정리는 하기는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로 유아들이 즐길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는 하다. 이념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바른생활 스타일도 아닌, 건들건들, 정말로 아동들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그런 세계에 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

 

4. 경제대장정 시리즈

 

큰 맘 먹고 12권으로 기획한 경제대장정 시리즈가 있다. 8권을 건너뛰고 9권까지 왔는데, 10권인 농업경제학부터 대기 중인 게 벌써 1년이 넘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9권인 문화경제학의 실패가 뼈아팠다. 여기에는 시간과 돈을 많이 들였고, 실제 인터뷰 작업도 엄청나게 많이 했는데

 

좀 모질게 말하자면, 원가의 1/10도 이 책으로 건지지 못했다. 물론 원가 상관없이 쓰는 책이 많기는 한데, 이 책은 내가 돈을 너무 많이 들였다.

 

게다가 이 책 준비할 때만 해도 아직은 엑셀 파일 그대로 열어서 쭉 자료분석할 정도는 되었는데, 그새 노안이 심해져서 이제는 그렇게 수치표를 순식간에 볼 수가 없다.

 

게다가 대선 정국을 맞으면서, 이것보다는 중요한 것들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래저래 미루어두었던 시리즈이다. 사소하게는 파트너로 일하는 에디터가 아기 낳느라고 출산 휴가 중이기도 했고

 

8권은 건너뛰거나 완간이 끝난 다음에 쓸 생각이다. 그야말로, 손이 안가는 책이기도 하다.

 

어쨌든 올해는 이 책의 10권에 해당하는 농업경제학은 하반기에 출간할 생각이다. 이 책 앞 권들은 한 번에 두 권씩 발간할 정도로, 나도 30대라서 힘이 좋았는데, 이젠 나도 나이를 먹었다. 눈도 잘 안 보이고, 그 때만큼 체력도 안 된다. 기분 같아서는 내친 김에 끝까지 한숨에 달리면 좋겠지만, 그건 무리다.

 

상황 봐서, 농업경제학을 올해 발간하는 정도

 

11권은 과학 경제학이다. 좀 길게 보고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서, 이화여자대학교의 에코과학부의 연구원 등록을 하였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익숙한 이공계 사회로 다시

 

한국에 돌아온 후, 대학에서의 주요 활동은 원래도 공대 건물에서 했고, 나는 이공계 건물이 대학으로는 더 익숙하다.

 

어쨌든,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기왕에 시작한 거니까, 마감을 지으려고 한다. 노무현, 이명박,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정책적으로는 비슷한 시기라서, 어느 정도 내용은 잡아놓았었다.

 

박근혜 시대는, 아직 도통 모르겠다. 실제로 어떻게 갈지, 좀 봐야할 것 같다.

 

그래서 상황도 보고, 전개과정도 보고,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시리즈 완성을 시키려고 한다.

 

5. 이재영 평전

 

운동권 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한국의 운동권은 이재영을 중심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재영을 좋아하는 사람, 이재영을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이재영을 모르는 사람.

 

월요일날 이정희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재영이 암으로 죽지 않았다면 그와 밥을 먹지는 않았을텐데, 그의 죽음을 보면서 나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세상 참 묘하다문재인의 두 번째 광화문 유세, 그 날이 나의 친구 이재영이 장지로 떠나는 날이었다. 그의 공동 장례위원장 중 한 명이 바로 나였다. 내가 정말로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의 마지막 날에도 나는 같이 하지 못했다.

 

짧게 잡으면 20, 길게 보면 25, 인민노련 시절 이후로 오랫동안 우리들의 지도자였던 사람이 이재영이다.

 

그에 관한 평전을 쓰는 것은 의무감과는 좀 다른 일이다. 그렇게 매력적이었던 사람을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을까? 그걸 책으로라도 남기고 싶다.

 

그렇다고 무지막지하게 기록물처럼 할 생각은 없다. 한 사나이의 매력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좀 고민을 해보려고 한다.

 

심상정 처음 만났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는 이재영을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집에서 이재영과 노회찬이 마당에서 같이 삼겹살 구워먹던 순간도 떠오른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노회찬, 심상정, 모두 이재영과의 우정의 연장선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다.

 

6. 기타 등등

 

5년은 길다. 나의 40대 초반은 명박과 함께 지나갔고, 그 뒤는 박근혜와 함께 지나간다.

 

기분 더럽다.

 

그렇다고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도모한다고 해서, 뭐가 될 것 같지도 않다.

 

아기 아빠로, 아이 돌보면서 너무 무리하지 않은 일을 내가 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일들이 아직은 많다. 그러나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년에 둘째 아이를 낳으려고 아내와 이것저것 작전을 세우는 중이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것은 어차피 뻔하다.

 

그 사이사이에, 영화와 관련된 일을 좀 하게 될 것이다. 기회만 하게 될지, 아니면 제작자로 직접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게 될지, 아직 그것도 모른다. 영화에 대해서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연출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여간 무리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들을 가급적이면 편안하게 풀어보려고 한다.

 

내가 이 시대, 아니 정확히는 박근혜 시대, 세상에 무슨 대단한 기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냥 나 서 있는 곳에서, 그냥 그렇게 서 있는 것. 만약 누군가 나중에 어느 인적 드문 외딴 바닷가에 서 있는 등대 같은 인간이었다고 이해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큰 길을 내가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아주 길을 잃지 않도록, 한 쪽 구석을 지키고는 있으려고 한다.

 

대선과 함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고양이들 돌보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대선은 졌고, 박근혜 시대는 너무나 급박하게 우리 곁으로 밀려왔다.

 

어쨌든 내가 할 일을 조금씩 정리해볼 필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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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주의자를 위한 변명

 

 

 

대선 이후, 최고의 명대사는 백낙청 선생 입에서 나왔다.

 

다른 건 참겠는데, 약 올라서 못 참겠다.”

 

약이 오르다, 이 표현은 영어로도 잘 모르겠고, 불어로도 잘 모르겠다. 우리 말 고유의 표현인 것 같은데, 정말 힘들게 살아남은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낸 기막힌 표현 아닌가 싶다. 문득 생각해보니, 백낙청 선생, 이 양반이 원래는 문학도 아니었던가! 그래 문학과 과학의 세계는 길이 다르지만, 문학이 가지고 있는 이 맛갈난 표현은 과학을 표방하는 사람들이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 나는 대선에서 이기든 지든, 일본에 몇 달 가있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기존에 하던 히로시마 연구도 있고, 하여간 핑계를 대려면 얼마든지 댈 수 있었다. 대선 결과가 나온 순간, 꽤 많은 사람과 통화를 했었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외국에 가겠다고 하거나, 당분간 칩거하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한 첫 번째 사회적 행위는 일본에 가기로 한 일정을 취소한 것이다.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고통이라도 사람들과 같이 겪어야 할 것 같았다. 하여간 그렇게 고통스럽게 한 달 정도를 지냈다. 편했다면 거짓말이고, 지낼만했다고 해도 거짓말이다. 지내기 힘든 시간을 참고 보냈다.

 

매일매일 이제 다섯 달 지난 아기를 돌보면서 시간을 보냈고, 아직 이사온 집에 적응하지 못하는 야옹구를 위해서 시간을 보냈고, 겨우겨우 포획해서 마당에 설치한 케이지에 들어와 있는 세 마리 마당 고양이들을 위해서 시간을 보냈다. 녀석들은 끊임없이 자기들이 밤을 지내야 할 캣 아후스를 낮 시간에 뭉개놓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케이지 안에 들어가서 자리를 살펴본다. 생협이라고 불렀던 고양이를 정말로 울면서 시체를 받아주었던 기억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겨울, 요만큼만 잘 버티면 녀석들은 앞으로도 10년을 살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대선 이후 한 달, 나는 눈코 뜰새 없이 보냈다. 100일을 조금 지난 아들, 새로 이사온 집에 아직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네 마리 고양이, 녀석들과 씨름하면서 한 달이 그냥 갔다. 마당 고양이들은 엄청나게 먹어대고, 엄청나게 똥을 싸댄다. 고양이들 똥 치우다 보면 하루가 간다는 말 그대로, 나는 누군가를 돌보면서 한 달을 보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아기 안아주느라고 간만에 팔에 근육이 다시 돌아오고, 고양이들 네 마리 돌보다 보니, 뉴스 따위에는 관심도 가지 않느라, 마음만은 편하게 되었다. 과연 이게 편한 건가, 나에게 물어보기는 하지만, 어쨌든 한 달 동안 내가 시간을 많이 쓴 덕분에, 새로 이사온 마당 고양이들까지, 다들 편안하다. 바보 삼촌은 이전 집에서 가지고 놀던 장갑을 다시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내 주변은 다들 편안하다. 고양이 네 마리와 아기, 아침에 눈 뜨면 하루 종일 돌보아야 하는 이 생명들과 함께, 나는 정신 없이 한 달을 보냈다.

 

경제학 최대의 애증의 인물이라면 바로 로빈슨 크루소우일 것이다. 전세계 모든 경제학자가 로빈슨 크루우소우의 선택과 함께 경제학을 배운다. 그게 최적이론이고 효용이론이다. 세상에 단 한 사람이 있을 때, 그가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선택을 내릴 것인가, 그게 19세기에 등장한 멩거, 제본스, 왈라스, 이 세 사람이 제각기 주장한 얘기들을 모아내기 위한 기본 모델이 되었다. 경제적 인간, 그는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우소우처럼 고독하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아니 대화할 수 없는, 그런 인간이 바로 경제적 인간이다. 이렇게 세상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을 한계효용학파라고 부른다. 지금의 경제학 교과서는 이 사람들이 한 얘기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로빈슨 크루우소우처럼 생각하고 행위하도록, 그렇게 경제학은 가르친다. 그래서 근대 경제학이 이데올로기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노동자이며 동시에 자본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무인도를 소유하고, 그걸 관리하고 경영하는 사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스스로 노동해야 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20세기의 인간들은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훈련 받는다.

 

 

 

어쨌든 이런 한 달간을 보내고 돌아서니, 갑자기 기회주의자라는 단어가 머리 속을 빡하고 때리고 지나갔다. 영어로는 opportunist, 문자 그대로 opportune이 생기면 그걸 잡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살면서 내 자신을 기회주의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이 부쩍 든다.

 

행복? 나는 행복하다, 최근 몇 달. 그 행복이 영원한 것인가, 아니면 궁극의 것인가, 그렇게 물으면 복잡해지겠지만, 날 보면서 행복하게 웃는 아기의 얼굴을 하루 종일 보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나만 믿고 이전 집에서 이 집까지 따라온 세 마리 마당 고양이들이 새로운 집에 적응하는 걸 보면서, 가슴 뿌듯한 느낌이 들지 않기도 어렵지 않은가?

 

이렇게 질문을 해보자. 만약 내가 왜정 시대에 태어났다면, 정말로 목숨을 걸고 만주에 가서 독립운동을 하고, 그렇게 목숨을 내놓았을까, 아니면 좀 하는 척하고, 나름대로는 했다, 그러고 말았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도 왜정 시대에 태어났더라도 결국은 지금처럼 아기 돌보고, 고양이 돌보고, “나는 할만큼 했다”, 그러지 않았을까, 그게 냉정한 나의 판단이다. 아마 독립군 군자금은 나름대로 댄다고 하기는 했을 것 같지만, 만주 벌판에 총을 들고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그 현장까지는 가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지금의 내 성정이라면.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기회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할 그럴 근거가 별로 없다. 왜냐면 난 지금 행복하니까. 그리고 내 평생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시기를 지금 보내고 있으니까. 100일 막 지난 아기와 하루 종일 보내고, 기저귀 갈아주고 목욕시키고, 병원에 데리고 가서 예방접종 맞추고그런 행복을 만끽할 기회를 가진 한국의 남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다시 둘째 아이 가질 계획을 아내와 세우고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많겠는가?

 

그러나 잠깐 돌아서면 마음이 허하다. 박근혜 시대, 어떻게 갈 것인가, 이 시대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런 고민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도 고양이들 똥통 비워줘야 하고, 쭈그리고 앉아서 고양이들 똥가루 부숴진 것을 모래 사이로 퍼내고 있는 게, 요즘 내가 사는 삶이다.

 

기회주의자를 위한 변명, 그건 박근혜 진영으로 간 전향자들을 위한 단어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단어이다. 어쩌겠는가, 지금! 삶이란 왜 이렇게 각박한 것인가! 죽거나 비열하거나 기회주의자이거나, 그 외의 선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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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0대학, 모피아 후속편 구상

 

모피아 때에는 제목이 참 많았었는데, 결국 맨 처음에 잡았던 제목으로 돌아왔다.

 

교육 얘기를 먼저 할까, 금융 얘기를 먼저 할까, 그런 고민이 좀 있었다. 몇 가지 이유로 금융 얘기를 먼저 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어떤 경우로든, 토건 얘기는 맨 나중에 할 생각이었다.

 

토건은 내년에나지금 결정해놓은 건, 토건은 코미디로 가겠다는 거. 돈 까밀로와 뻬뻬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풍의 블랙 코미디 형태로 가겠다는 정도만 마음을 먹고 있다. 2년 정도 꾸준히 웃길만한 소재들을 모으다 보면어쨌든 이 시리즈를 어렸을 때 너무너무 재밌게 봐서, 그런 느낌의 책을 써보고 싶었다.

 

교육 얘기는, 모피아 보다 더 판타지 형태로 갈까, 생각 중이다. 모피아에 나왔던 주인공들을 그냥 투입하고 깊은 생각이 좀 있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원래 구상했던 얘기의 틀이었는데, 생각이 좀 변했다.

 

일단어른들의 얘기가 아니라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투입할까 한다. 고등학생들이 전국적으로 수능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한바탕 아수라장이 벌어지는, 그런 상황.

 

당연히 68의 재현 같은 것인데, 아무래도내 마음 속에 영원한 로망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68이다. 내 마음의 판타지가 아니면 신이 나지도 않고, 흥명이 나지도 않을 듯싶다.

 

더불어 한국에서 금기처럼 되다 시피한 10대들의 성 문제.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여인숙이나 친구 방에서 벌어지는 고등학생들의 섹스에 대한 얘기들. , 어차피 그게 현실인데.

 

어른 쪽 주인공들은 어떻게 구성을 할지, 아직은 생각이 명확하지 않다. 모피아에 등장했던 오지환을 다시 투입시키는 것이 손쉬운 해법이기는 하지만, 시간 대와 뭐 그런 게 잘 맞지가 않는다.

 

악인들은, 뭐 교육계의 악인들이야 교육 마피아들이니까, 이건 생각보다 쉽다. 공정택 같은 사람 상상해 보면실제로는 그것보다는 좀 더 뿌리 깊은 사연들을 보여줄 생각이기는 하지만.

 

모피아도 좀 스케일을 펼쳐놓은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주 작은 장소에서 계속 얘기를 끌고 나가다, 점차적으로 서울로, 다시 전국으로 규모를 넓혀나가는, 뻔한 수법을 쓸까 싶다.

 

시간은 박근혜 3년차에서 4년차 사이에 벌어지는 일, 그 정도로 설정해볼까 한다.

 

판타지,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는 일이겠지만, 상상도 못해볼 건 없지 않은가

 

모피아의 경우는, 시나리오 버전은 예산 15억으로 생각하면서 만들었고, 소설 버전은 예산 50억 정도를 생각하면서 만들었었다. 교육 마피아의 경우는 80억에서 100억 정도의 규모를 설정하고 만들어볼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꼭 영화로 간다는 건 아니지만, 예산을 결정하면 여러 가지가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간편한 점이 있다.

 

처음에는 작은 공간에서 밀도감 있게 진행되는 소품 같은 걸 구상하기는 했는데, 요즘 마음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10대들이 주도하는 68 같은 게 벌어지면 어떤 형상이 생겨날 것인가, 그걸 규모감 있게 보여주는 쪽으로.

 

소설이라는 양식이 좋은 건, 상상에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

 

일단 올해 안에 출간할 생각이기는 한데, 그건 뭐 여전히얘기가 어떻게 풀려갈지, 미리 시간을 정해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4~5월까지는 밀린 책들 정리하면서, 천천히 좀 더 구상을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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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포들을 위한 작은 잡지의 청탁으로 쓰게 된 글이다. 대선 이후 처음 쓴 글이다. 앞으로 이런 글을 또 쓰게 될까? 그건 잘 모르겠다...

 

 

대선 이후, 우리는 뭘 할까?

 

우석훈 (경제학자)

 

1. 지더라도 질서 있게 지자

 

2012 12 1일은 토요일이었다. 별 특징 없는 토요일일 수 있지만, 대선을 불과 18일 앞두고 있던 그 토요일은 좀 특별한 날이었다. 그 때 우리가 본 여론조사의 데이터는 7~8%, 박근혜가 앞서고 있었고, 수치상으로는 점점 박근혜와 문재인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미 오차범위 바깥이었다. 그날 조국 교수를 비롯해서 시내에서 모인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인식은, 선거를 이긴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이렇게 대책 없이 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기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격차를 줄이지 않으면, 도저히 이후에 방어선을 칠 수가 없다, 그게 2012 12 1, 나와 조국 교수 그리고 한 때 안철수 캠프에 몸을 담았던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모여서 가졌던 문제 인식이었다. 이긴다? 그런 건 이미 오차범위 바깥으로 벌어져 버린, 18일 남은 선거판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었다.

 

내가 그 순간에 가장 두려워했던 건, 어차피 질 거니까, 선거 포기가 속출하면서 실제 투표율은 떨어지고, 지지율 격차는 더 높아지는 그런 상황이었다. 지난 대선이 그렇지 않았던가?

 

2차 세계대전, 독일이 졌다. 좋은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전세계 전선에서 어떻게 퇴각할 것인가, 그게 중요했었을 것이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들은 질서 있게 퇴각을 했고, 결국 국가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2012 12 1, 우리가 생각한 것은, 대선 승리가 아니라 질서 있는 퇴각, 그래서 결국 지더라도 최대한 접점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미 오차 범위 바깥으로 후보 지지율이 벌어져 있는 상황, 뭘 더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국민연대라는, 아주 기기묘묘한 조직을 띄우고, 내가 그 조직의 대표를 맡으라고 조국 교수가 강권하던 상황, 그게 2012 12 1일의 상황이었다.

 

2. 부산에서의 마지막 유세

 

2012 12 18, 개인적으로는 이 날이 기억이 많이 날 것 같다. 국민연대가 결성된 이후, 어쨌든 안철수도 움직였고, 분위기는 많이 좋아졌다. 이제 마지막 한 방, 이기자고 하면 이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세 마지막 날, 우여곡절 끝에 당시 선거 유세를 종합적으로 기획하던 탁현민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그렇게 경부선을 따라가는 마지막 유세를 준비하였다. 좀 잔인한 일정이다. 후보는 서울역에서 시작해서, 대전, 대구 등 주요 도시를 거쳐서 마지막에 부산역에서 유세하는 일정이다. 나는 바람잡이로, 후보와 엇갈리면서, 천안, 대구, 부산에서 유세를 하게 되었다. 후보가 오기 전에 먼저 유세를 하고, 후보가 도착하면 다음 도시로 떠나는 그런 일정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유세가 또 있을까? 좀 잔인한 일정이지만, 우리는 그 일정을 소화했다. 도종환 시인 등, 지그재그 방식으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였고, 어쨌든 대선 전 날을 그렇게 보냈다.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천안 유세는 신세계 앞에서 했고, 길이 막혀서 천안역에서 정말 죽도록 뛰어서 기차 출발 5초 전에 도착했다. 원래 그런 기획이 아구가 잘 안 맞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천안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아뿔싸, 후보와 같은 기차로 도착했고, 당연히 후보가 먼저 연설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만큼 열정을 쏟아 부은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갈려고 했는데, 기획자인 탁현민이 기획한 프로그램이 하나 더 있었다. 부산의 대학생들이 문재인 후보에게 꽃다발을 건네주고 공식 선거운동을 마감하는 순서였는데, 그 마이크를 나에게 돌렸다. 결국, 후보 뒤에서 이번 대선 캠페인의 마지막 마이크를 잡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고, 공식적으로 마이크를 쓰는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애국가까지 부르면서 내가 서 있게 되었다. 그 기억은 나에게, 오래 남을 것이다.

 

3. 정동영 그리고 손학규

 

대선 결과는 끔찍했다. 어쨌든 졌다. 그리고 두 명의 정치인을 만났는데, 순서대로, 정동영과 손학규였다. 정동영과는 바로 만났다. 아픔을 나누었다. 손학규는, 독일 가지 말고 여기서 시민들과 아픔을 같이 하자, 그 얘기를 하려고 만났다. 그러나 만나서 들어보니, 그의 사정도 이해가 안 가는 바가 아니다. 그가 대선 중에 만들었던 최고의 구호저녁이 있는 삶’, 그런 걸 정책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랬다. 어쨌든 졌다.

 

손학규에게 내가 했던 얘기의 기본 골조는, 지금 여기에서 시민과 슬픔과 괴로움을 같이 지내는, 내 식으로 얘기하면꼬질꼬질한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이 지도자다, 그러니 가지 마라, 그런 거였다. 우리가 꼬질꼬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손학규는 독일로 간다고 했고, 그날 정동영은 희망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갔다. 나는 두 사람이 순망치한이라고 말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 두 사람은 그런 관계로 보였다. 서로 아웅다웅하는 라이벌이지만, 같이 있을 때 힘을 받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 다, 앞 길이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갈등 속에서도 협력할 수 있듯이, 손을 잡으라고, 두 사람 모두에게 그 얘기를 했다.

 

당신들이 손을 잡지 않으면? 우리가 모두 죽는다. 원로 노릇이라도 똑바로 하시라!

 

4. , 우린 뭘 하지?

 

어쨌든 짧은 몇 주 동안 국민연대의 상임대표로 대선을 치루었다. 최선을 다한다고는 한 것 같다. 그러나 졌다. 그 이후에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나도 생각을 정리해봤다. 아직도 정리가 다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름대로 생각한 것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보고 싶어졌다. 어쨌든 우리는 수다라도 좀 떨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1) 최악의 공포 버전, 보수 18

 

이번 대선에 내가 제일 좋았던 공약은시민의 정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5년을 기다리는 최선의 버전은, 그 시민의 정부가 단지 5년 유예된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건 정말로, 가장 마음 편하게 이 상황을 즐기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기는 어렵다.

 

박근혜가 바보가 아니라면, 집권 3년차쯤, 중임재 개헌, 이전 용어로 하면원 포인트 개헌을 할 것이다. 레임덕을 줄이기 가장 쉬운 방법인데, 그렇게 개헌을 하고 나면 보통은 개헌 추진 주체 쪽이 정권을 잡는다. 그리고 중임제에서의 패턴대로 하면 8년을 집권하게 된다. 이명박 정권까지 합치면, 통합 18년을 하게 되는 셈이다. 박정희 18년 집권과 이렇게 된 18년을 더하면 36년이다. 이 정도면, 막판까지 버티다가 결국 친일을 하게 되는 그 시기가 보이지 않는가? 이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버전이다.

 

2) 최선의 버전, 2014년부터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상이지만, 지금부터 분위기를 바꾼다면 2014년 총선에서의 승리를 상상해볼 수는 있다. 2014년에 승리하고, 그 분위기로 2016년 총선을 승리하고, 그 힘으로 2017년 대선까지 승리하는 것, 만약에 우리가 다음에 이긴다면 거의 유일한 길은 이 길이다. 부시에게 연패한 이후, 미국의 민주당이 오바마를 내세우기 전까지 왔던 길이 이 길이다.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이제부터 우리가 기적 같은 것을 만들어야, 앞으로의 18년 보수 집권이냐, 아니면 다른 대안인가, 그런 분기점이 갈린다.

 

3) 3%, 생각보다 크다

 

이번 대선에 3%의 차이로 졌다. 이 차이를 줄이면 다음에는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는 좌파, 소위진보정당운동했던 사람들이 민주당에 힘을 몰아주었다. 그들은 혹독한 댓가를 감수하고 힘을 몰아주었다. 당장 내가 그렇다. 지난 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내가 바로 노회찬 후원회장을 해주었던 사람이고, ‘닥치고 단일화’, 그런개소리하지 말라고 끝까지 버텼던 사람이다. 그들이 다음 번 대선에서도 이번처럼어쨌든 단일화’, 그렇게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걸 염두에 두면, 3%의 차이, 생각보다 큰 것이다.

 

4) 방송

 

방송 여건은 이번에 최악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조금씩은 개선될 것 같다. 정부나 방송국이 뭘 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시민방송이든 국민방송이든, 하여간 어떻게든 뭔가 만들어내고 그 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쉽지는 않다. 그러나 개선은 될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5) 민주당 당직 개혁

 

이번 대선에서 졌다면, 우린 박근혜한테 진 거다. 정확히는, 박근혜의 새누리당 개혁에 진 거다. 천막당사 시절,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바꿨다. 민주당은 못 바꿨다. 내용은 간단하다. 월급쟁이 혹은 관료로서의 당직자를 새누리당은 만들었는데, 민주당은 대표 바뀔 때마다 줄 서야 하는 구조를 못 바꿨다. 간단히 말하면, 새누리당 당직자는 정규직인데, 민주당은 대표급한테 줄 안서면 비정규직이다. 관료처럼 일하고, 당내 선거에 개입하면 짜른다, 그 간단한 박근혜의 원칙에 이번 대선, 민주당이 진 거다. 이거 못 바꾸면, 영원히 아마와 프로의 싸움, 대선 그렇게 간다.

 

6) 복지 도시, 지금 당장

 

지역 감정 얘기를 한다.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좀 이상하다. 대구는 지역소득, 꼴찌인 도시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광주와 대구의 정책 경쟁, 그것은 지금도 할 수 있다. 꼭 중앙 정부를 바꿔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 그걸 지금 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는가? 예산이 작으면 작은대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광주같은 곳에서복지 도시 광주’, 그런 걸 하자. 그런 시도도 못하면서, 우리가 집권하면 잘 할 수 있다, 그 말이 먹힐 리가 있겠는가?

 

7) 시민 아카데미

 

안철수 캠프에 있던 김수진 교수가 나에게 해준 말, 미안하지만 대부분 허빵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가 한 말 중에 정말 맞는 말은, JP가 공화당 시절에 당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양쪽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말 딱딱한 말이지만, 당원 연수원 같은 것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나는 그 말에 동의를 하였다.

 

당원에 가입하면 1주든 2주든,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 이런 작은 것에서부터 기초의원에서 국회의원까지, 당에서 운영하는 정식 프로그램 이수자들이 나올 수 있게 하는 것, 이런 게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조금 더 상상해보면, 대선 후보들도, 예를 들면 3개월짜리 기본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들 중에서 나오는 것, 그런 게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닌가 싶다.

 

8) 진보 센타

 

부시 재선 이후, 미국의 시민사회가 했던 대부분의 일은 우리도 할 수 있고, 우리도 그 정도의 역량은 있을 법 싶다. 그러나 딱 하나, 힘들다고 생각한 것은 2003년도에 그들이 만든 진보센타이다. , 별 건 없다. 연간 예산 200억원, 100명 수준의 연구원, 이 정도는 우리도 해볼 수는 있다. 다만 차이점은, 미국에는 있던 조지 소로스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 우리에게는 그 정도의 부자는 안철수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는 진보 센타에는 관심이 없었다.

 

진보센타가 별 거는 아니다. 싱크탱크니 뭐니, 엄청나게 부르지만, 여러 정파들이 얼기설기 모여서 얘기를 나눈 것이 전부다. 다만 학자들이 그렇게 늘 모여있다 보니, 선거와 상관없이, 서로 무슨 얘기하는 건지, 일상적으로 내용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 네트워크라는 게 그런 거 아닌가?

 

우리도 할 수는 있다.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미국처럼 민주당 밖에 차리는 일이다. 우리도 할 수는 있는데, 추진 주체가 강력해야 하고, 펀딩을 잘 처리하면 된다. 간단한 계산으로는 연간 100억원, 5년간 500억원, 만들 수 없는 돈은 아니다. 그러나 그 돈을 믿고 맡길만한 주체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 쉬운 방법은, 지금의 민주당 내부의 민주정책연구원을 정말로 진보의 싱크탱크처럼 만드는 방법이다. 새누리당도 여의도연구소에 어느 정도의 명성을 가진 기관으로 만들었는데, 민주당은 왜 못하는가? 일당 당에서 분리시키면 된다. 그리고 그 역량을 어렵고 힘든 부문 운동들을 위한 지원체로 바꾸면 된다. 이건 당대표 등 지도부가 결심하면 지금도 바로 할 수 있다.

 

싱크탱크를 제대로 만드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걸 하지 않고 다른 세상에 기획을 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말이 안된다. 정책역량 없이 선거 치룬다는 건, 언제나 바람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5. 그리고 시민의 정부

 

안철수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가 말한 새정치가 무슨 말인지, 사실 난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물론 새로운 정치 흐름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는 백퍼센트 동의하지만, 그가 방법으로 말한 국회의원 숫자나 비례대표 문제에 대해서, 나는 크게 동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가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뭔가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다. 만약 그가 5년 후에, ‘국민이 아니라시민의 지도자로 돌아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그가 시민을 걸고 뭔가 한다면 나는 그를 도울 것 같다. 정권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 세상에 대한 미래 모습이 문제라서 그렇다.

 

민주당이냐 아니냐, 친노냐 아니냐, 안철수냐 아니냐, 사실 나는 이런 데에는 관심이 없다. 정권교체? 그 말에는 동의하지만, 무엇을 위한 혹은 누구를 위한 정권교체인가, 그 내용을 채우지 않고, 그냥새정치라고 말하면, 나 같은 경제학자들은 아마 할 말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냐! 그게 바로 민생이라는, 이 지독한 실존적 용어 아닌가?

 

우리는 바람의 선거를 DJ 이후, 아니 87년 이후 끊임없이 치루었다. 그리고 그 선거를 위한 밑바탕, 기본적으로는 시민 사회라는 걸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그러니 맨날 바람이 부느냐 마느냐, 그런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는 스스로를시민이라고 부르고, 그렇게 정체성을 느끼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의 정부가 온다. 그리고 그게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런 일이다.

 

문재인을 열성적으로 지지한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에게도 참 뼈 아픈 사실이었는데, 그 얘기를 이 글을 닫기 전에 해야 할 것 같다. 지난 대선, 가난한 사람들은 박근혜에게 더 많이 투표했고, 여성들 역시 그랬다. 이건 진보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는, 진 거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여성들에게 대안으로 보이지 않는 정치 프로그램,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완패다. 그러나 2014, 우리는 완패하면 안 된다. 그러면 18년 보수 정권, 그렇게 간다. 그 결과, 멕시코보다 더 어려운 나라로 전락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찍어주지 않는 진보 후보, 이건 정말 암 것도 아니다. 다음 대선, 이렇게 치르면 큰 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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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후에는 커피를

 

대선 이후로, 뭘 해야 할지, 사실 방향을 전혀 못 잡았다. 경제학자로서는 그만 살고 싶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뭘 해야 변화가 생길지도 잘 모르겠고. 물론 이것저것, 아는 척 하면서 뻥가는 건 할 수 있겠지만, 진짜로는 잘 모르겠다, 이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다음 주 월요일 오후 3, 광화문 우체국 옆에 있는 커피빈에서 사람들하고 커피 마시는 것을 첫 행사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선 이후, 처음으로 대중들과 만나는 행사이다. 그러나 아무 기획도 없고, 아무 준비도 없다.

 

지 돈 내고, 지가 커피 마시는 거

 

그 이상의 의미도 뜻도 없다. 그러나 그런 거라도 해야 할 듯싶다. 어딘가 장소를 빌려서, 어떻게 알아서 찾아오는 사람들끼리 이것저것 얘기하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간담회라고 하는 것, 그건 좀 아닌 듯싶었다. 그런 행사는 참 많이 했다.

 

내가 움직이면, 옆에서 나를 돕는 사람들이 같이 움직인다. 나도 오랫동안 스탭들이 옆에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해주는 삶을 살았다. 그러면 깔끔하고 무리 없이, 작으면 수십 명에서 크면 천명 정도가 움직이는 행사를 처리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너무 적은 사람이 와서 썰렁하면 또 그대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곤란하게 되면 또 그대로

 

일본식 표현대로 대면관계’, 어쨌든 우리는 온라인 바깥으로 나가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막상 보면 어색하거나 혹은 별 거 없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정말로 만남을 쌓아나가야 할 듯 싶었다.

 

아직 나는 별 뚜렷한 계획은 없는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계획 없이 커피 마시는 이런 패턴의 일이 잘 되면, 지방을 비롯해서 전국을 돌 마음은 있다. 제주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역은 새벽에 출발하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총각 때, 그런 식으로 전국을 돌면서 여행을 했었다. 지금이라고 못할 것은 없다. 월요일 오후 3시면 어디에선가 커피를 마시는 것, 생각보다 낭만적이기도 하다.

 

강연회, 토론회 등등 여러 형식을 생각했는데, 일단은 커피나 한 잔 마시는 걸로 우리의 출발을. 처음 얼굴 보러 나와서 맞는 그 어색함을 이기기 못하면, 박근혜를 죽어라고 지지한 사람들의 끈적끈적함을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어쨌든 일단 커피부터

 

한국에서 버티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영혼과 육신 그대로인 인간들끼리, 커피 한 잔 마시는 거, 그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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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이유로, 나꼼살 막방에서는 무리해서라도 이준익 감독, 즉 내가 일하는 영화사에서 만든 '라디오 스타'의 주제가로 나왔던 '비와 당신'을 부르고 싶었다. 물론 뒤에 고음부는, 제대로 못 부른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지가 못했다.

 

아침이슬을 부르고 마쳤다. 퇴폐적이고 염세적이며, 그러나 로맨틱한 이 노래를 나꼽살 청취자들과 나눌 상황은 아니었다.

 

아침이슬 부르면서, 아주 기분 더러웠다.

 

다음 선거에서는, 이겨서, 꼭 비와 당신을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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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길게

 

2012년 크리스마스, 일본 문화원에 갔다. 100일 조금 넘은 아기와의 첫 외출이었다. 아내의 오래된 일본 친구와의 짧은 만남을 가졌다. 수 년 전 동경에서 처음 만났을 때 식사를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몇 년 후, 다시 한국에 왔다. 하다 보니 우리 집에도 초대를 하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그의 아내가 아기 크리스마스 선물을 샀단다. 우리도 조그만 초콜렛 하나를 사서, 일본 문화원 주차장에서 선물을 교환하는. 문득 돌아서면서, 그도 이제는 참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에 처음 봤을 때, , 이런 게 정말 일본의 엘리트구나, 그런 날카로우면서도 예리한, 그런 젊음이 느껴졌었다.

 

그가 문재인의 광화문 유세에 섰다는 얘기를 또 다른 일본인 친구에게 건네 들었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아는 한국의 외국인 친구들에게는, 정치는 별로 관심 없어 하던 내가 유세차에 거듭 올라갔다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아사이 신문의 문재인 광화문 유세에 바로 옆에 서 있던 내 얼굴이 같이 잡혀서, 이래저래, 아니라고 발뺌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돌아서면서, 아내도 이젠 그가 나이를 먹었다고 얘기를 하였다. 아내가 자기도 나이를 먹었다는 애기를, 오늘 처음 했다. 이제 결혼 생활 9년째, 올해는 아이가 생겼고, 나도 올해는 부쩍 나이를 먹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선, 잠 짧은 시간이지만, 오랜만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결과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던 것보다는 더 했던 것 같다. 몇 십년 만에 목이 완전히 쉬었고, 정말로 목이 쉴 정도로 외쳤다.

 

어떻게 보면, 짧은 몇 주 동안이지만, ‘굵고 짧게’, 정말 내 삶과는 다른 방식으로 뜨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20대 때에는 정말로 나는 굵고 짧게를 외치면서 살았다. 뭐가 최선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했고, 굵은 것의 노선을 살았다.

 

30대는 내내 헤매던 시기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가늘고 길게를 좌우명으로 바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조건 하지 않았다. 하는 만큼 하고, 안되면 거기에서 멈추었다. 조금만 더 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는 게 눈에 뻔히 보일 때, 나는 거기에서 멈추어 섰다. 복잡한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내 모습, 그리고 나는 지금 최선을 다 하는 중이야”, 그게 너무 싫었다. 살살 살고, 살살 나오는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으면서솔직히 내 삶은 좀 더 풍요로워졌다. 더 천천히 살고, 결과 보다는 과정을 조금씩 더 즐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가늘게 산다는 게 막 산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길게 산다고 해서, 배신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전향을 하거나 누구에게 의탁하는 것과는 좀 다른 방식의 삶이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성과를 조금 덜 기대하고, 한 방에 뭔가 하는, 그런 일을 절대로 기대하지 않는.

 

가늘고 길게, 이 삶의 핵심은 시니컬해지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데에 있는 듯 싶다. 난 이미 다 알았어, 그래서 내가 그렇게 살살한 거 아냐, 그건 가는 것도, 긴 것도 아니고, 그냥 비겁한 것이다. 비겁한 것은, 굵은 거나 가는 것과는 달리, 거꾸로 사는 삶이다. 신념을 바꾸면, 그것도 정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신념이 바뀔까? 그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궁극으로 이루고 싶은 삶은,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 삶이다. 가늘고 살고, 길게 살기 위해서 산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지나간 일이 아픔을 끊임없이 되새김질 하면서, 자신을 어렵게 하거나, 아니면 남을 어렵게 하는 삶.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귀책 사유를 늘 누구인가 다른 사람에게 돌리면서 사는 삶은, 그건 비겁한 삶이다. 잠시 자신의 마음은 편하겠지만, 자신을 자신이 속일 수 있겠는가?

 

대선이 끝나고 나서, 누군가에게 이정희랑 식사 한 번 같이 하자는 얘기를 들었다. 그도 자신의 속사정이 있을 터, 그거라도 좀 들어보고, 위로해줄 수 있는 건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잠시 생각해보고, 이정희와 식사를 하게 되면, 그 밥값은 내가 내겠다고 했다. 이정희도 사람이다. 그도 박근혜 앞에서 그렇게 버티기 위해서, 자신을 얼마나 다그쳤겠는가? 그 아픔 정도는 같이 나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아프고, 누구나 무섭다. 삶이란 것은 원래 그렇다. 전쟁은 끝나고, 전투도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아픔, 누구의 아픔이든, 깃발 아래에서 인간으로 만나면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정희의 아픔도, 인간으로서는 그가 느꼈을 공포와 슬픔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굵고 짧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뒤를 돌아볼 필요 없이 앞으로 나가면 된다. 그러나 가늘고 길게’, 그 삶에는 돌아봄과 연민 그리고 공감 같은 게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그냥 비겁한 것이거나 지저분한 삶이 되고 만다.

 

경제학자로서, 지금까지 사람들의 경제적 삶과 주머니 사정만을 돌아보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좀 돌아보면서 살려고 한다.

 

정권 교체가 다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다. 정권 교체가 다다. 그 방법 외에는 한국을 더 좋은 사회로 만들 방법은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사회적 삶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을 서로 돌아보면서 위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법률 스님이 정권교체 안되었다고 나라 망하는 거 아니라고 하였다. 좋아하는 분이기는 하지만, 그건 좀 아닌 듯 싶다. 나라 망하는 거 맞다. 다만 민주당 때문에 정권 교체에 실패한 것이냐,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륜 스님의 얘기는, 결국 민주당 작게는 민주당 지도부가 잘못한 것이니까, 그들이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뭐 그런 얘기로 이해된다.

 

우리는 망한다, 지금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그러나 그걸 급히 서두른다고 될 것은 아닐 듯싶다. 민주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사실 그건 아무 것도 안 한 얘기와 같다. 바꿀 수가 없다!

 

이 딜레마 위에 우리는 서 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을 생각해보자. 결국 시민이 이기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늘고 길게, 그렇게 생각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런 걸 천천히 생각해보는 크리스마스였다.

 

예산을 줄이지 않고 국채로 공약, 그것도 아주 일부분을 집행하겠다는 정권, 그건 망하는 길이다. 그러나 그 말을 외연화하기가 참 어렵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절실한 것은, 믿고 의지할 지도부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이 그 지도부가 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가늘고 길게, 버티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머리는 없고, 몸만 있는 이 슬픈 상황, 그게 대선 직후의 우리의 지형도이다. ,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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