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분야 소요재정 및 재정 방안 (문재인)

 

<요약>

- 문재인 후보의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는 각종 비보험을 대거 건강보험 적용대상으로 포함하면서, 연간 본인부담 상한을 100만원으로 인하하는 것

- 2013년 전체 국민의 하위 50%에 대해 본인부담 상한을 100만원으로 인하, 2017년까지 전 소득계층을 대상으로 100만원으로 인하

-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각종 비보험 항목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서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를 시행하는데 필요한 재정은 연 평균 8.5조원. 이 수치는 보장성 강화로 인한 의료이용 증가까지 반영된 수치

* 이 수치는 올 7월 건강보험공단이 추계한 수치와 거의 일치

-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과 국고지원 증액을 통해 각각 연 평균 3.6조원, 2.9조원 확충 보험료 인상을 통해 2.0조원만 확충하면 됨. 2.0조원 중에서도 0.8조원은 사용주 부담 보험료, 나머지 1.2조원이 국민이 직접 부담하는 보험료 건강보험 가입세대 약 2,100만 세대로 나누면, 월 평균 5천원

- 의료비 상한제는 이미 대다수 선진국에서 도입한 제도. 대다수 국가의 연간 상한이 2050만원, 독일은 총 소득의 2%

 

1.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소요재정

 

1) 보장성 강화 목표

 

- 외래: 60% 중반대인 현행 수준 유지

- 입원: 2010년 기준 64% 90%(OECD 평균 입원진료 보장률 수준)

- 각종 비보험 진료 항목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MRI, 초음파, 의학적으로 필요한 각종 검사와 치료

- 본인부담 의료비 연간 100만원 상한제

* 소득계층별 연간 200400만원(하위 50% 200만원, 중위 30% 300만원, 상위 20% 400만원)인 현행 본인부담 상한을 2017년까지 소득계층별로 단계적으로 100만원으로 인하(2013년 하위 50%, 2015년 중위 30%, 2017년 상위 20%의 본인부담 상한을 100만원으로 인하)

* 우리나라에서 본인부담 상한제는 2004년 도입되었지만, 본인부담 상한제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비보험 진료가 너무 많아서, 고액의료비로 인한 가계 파탄을 막아주는 실질적인 효과 미흡

 

=> 2017년까지 질병 치료에 필요한 의료비가 연간 100만원을 넘지 않도록

=> 이렇게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도, 2017년 기준 건강보험 총 보장률(입원, 외래, 의약품)70% 후반대로 OECD 평균에 미달(OECD 평균 85%)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의 공약에 비해 극히 미약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제시하면서도, 건강보험의 총 보장률 목표치를 80%로 제시

 

2) 보장성 강화 소요재정

 

- 20132.2조원 201712.2조원 추가 재정소요, 연 평균 8.5조원

20127, 국민건강보험공단 쇄신위원회는 2017년까지 건강보험의 총 보장률을 80%까지 향상시키는데 연 평균 7.3조원의 추가 재정이 소요된다는 추계 결과를 발표(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차액, 환자 간병, 각종 비급여의 급여화 등 포함). 총액 기준으로 문재인 후보의 소요재정과 거의 일치함.

 

 

<보장성 강화 연차별 추가 재정소요(단위: 조원)>

 

20131)

2014

2015

2016

2017

연 평균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와 입원 본인부담률 10%2)

0.9

3.7

5.4

6.1

6.7

4.6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3)

1.0

2.9

3.0

3.9

4.8

3.1

간병/노인틀니/치석제거/치과주치의/저소득층 건보료 지원4)

0.2

0.4

0.9

1.3

1.3

0.8

합계

2.1

7.0

9.3

11.2

12.8

8.5

1) 2013년은 하반기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추계하여 추가 재정소요가 1년치의 절반

2) 2013년 하반기에 입원본인부담률 10% 인하 & 선택진료비 급여화, 2014년 치료부문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2015년 진단부문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 상급병실료 차액 급여화

각 부문별로 급여화 조치로 인한 수요 증가는 가격탄력도 -0.1을 적용하여 반영

3) 2013년 하반기에 하위 50% 본인부담 상한을 100만원으로 인하, 2016년 중위 30%, 2017년 상위 20%에 대해서 각각 본인부담 상한을 100만원으로 인하

4) 건강보험 가입자 최하위 5% 건강보험료 면제, 하위 515% 무이자 대출(대출 이용률 20% 가정)

 

관련통계

- OECD 평균 건강보험 총 보장률: 85%(입원은 90%)

- 우리나라 평균 건강보험 보장률: 63%(입원은 64%)

가계 파탄 원인: 실직 29%, 수입 감소 22%, 의료비 18%(보건복지부, 2011)

가계 소득의 40% 이상을 의료비에 지출하는 파국적 의료비 지출 가구규모: 40만 가구(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9%, OECD 평균은 0.68%)

- 우리나라 가구당 월 평균 건강보험료: 78천원(2011년 기준)

- 우리나라 민간의료보험 현황: 전체 가구의 80% 가입, 가구당 월 평균 민간의료보험료 20만원

 

2.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소요재정 확충

 

1) 보장성 강화 소요재정 확충 방안

 

- 국고지원 증액: 2013년부터 국고지원 사후정산제 시행(20%), 2017년까지 국고지원 비율을 25%로 인상

-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건강보험 상위 10% 고소득층 추가 부담): 2013년부터 직장가입자의 고소득 피부양자 자격 전환, 2014년부터 종합소득 기준 건강보험료 부과

* 건강보험료 부과대상에서 제외된 임대소득·금융소득 등에 보험료 부과, 직장가입자의 고소득 피부양자에 건강보험료 부과

- 건강보험료율 인상: 국고지원 증액과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에도 불구하고, 부족 재정은 국민적 동의를 구해 건강보험료율 인상을 통해 확충(2014년부터)

 

2) 보장성 강화 소요재정 확충(20132017년 연 평균)

 

- 국고지원 추가 수입: 연 평균 3.6조원

- 부과체계 개편 추가 보험료 수입: 연 평균 2.9조원

- 건강보험료율 인상으로 인한 추가 보험료 수입: 연 평균 2.0조원

2.0조원 중 1.2조원은 국민 부담 보험료, 0.8조원은 사용주 부담 보험료

건강보험 가입자 세대 당 자가 부담 건강보험료 인상액: 월 평균 5,100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의 ‘11천원과 차이가 나는 이유: 건강보험 하나로 추계는 부과체계 개편국고지원 증액을 고려하지 않은 추계

 

<보장성 강화 연차별 추가 재정소요(단위: 조원)>

 

2013

2014

2015

2016

2017

연 평균

추가 국고지원

1.4

2.4

3.6

4.5

6.1

3.6

부과체계 개편

1.6

2.7

3.1

3.4

3.7

2.9

보험료 인상*

0.0

1.1

2.9

3.0

3.0

2.0

 

3. 박근혜 후보의 ‘4대 중증질환 국가 100% 책임공약 비판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 vs. 4대 중증질환 국가 100% 책임

 

문재인 후보

박근혜 후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핵심 공약

본인부담 의료비 연간 100만원 상한제

4대 중증질환 국가 100% 책임

특징

실제 발생 의료비 액수에 따른 보장성 강화

질병 구분에 따른 보장성 강화

수혜 대상

질병에 상관없이 모든 고액의료비 환자

4대 중증질환자

(, 심혈관계질환, 뇌혈관계질환, 희귀난치성질환)

형평성

질병에 상관없이 연간 환자가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는 100만원 이내(질병에 따른 차등 없음)

4대 중증질환은 소액 의료비라도 100% 보장.

4대 중증질환이 아니면 고액 의료비라도 혜택 없음

연간 본인부담 500만원 이상인 환자 중 혜택 규모(‘11년 기준)

본인부담 500만원 이상인 환자 335만 명 전체(100%)

본인부담 500만원 이상인 환자 335만 명 중

4대 중증질환자는 51만 명(15.1%)

284만 명(84.9%)은 혜택에서 제외

연간 본인부담 1,000만원 이상인 환자 중 혜택 규모(‘11년 기준)

본인부담 1,000만원 이상인 환자 95만 명 전체(100%)

본인부담 1,000만원 이상인 환자 95만 명 중

4대 중증질환자는 16만 명(17.1%)

79만 명(82.9%)은 혜택에서 제외

==> 박근혜 후보의 ‘4대 중증질환 국가 100% 책임공약은 고액의료비 환자 중 15%는 살리고, 85%는 방치하는 정책

박근혜 후보의 건강보험은 ‘15%짜리 건강보험’, 문재인 후보의 건강보험은 ‘100%짜리 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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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전쟁과 이번 대선

 

대선 전 마지막 책으로 준비되던 게, 50대 보수에 관한 책이었고, 가제는 세대 전쟁이라고 붙여놓았었다. 약간 사연이 있는 책인데, 준비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책이다. ‘88만원 세대에서 유신세대라는 이름으로 50대를 분류했었는데, 그들이 요즘 보여주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다. 그래서 조금 더 각을 50대 보수라는 시각으로 정리하는 책을 대선 전에 한 권 낼 생각이 있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없었다.

 

일단 내 건강이, 수 년째 그렇지만 좋은 편이 아니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몇 년간 계속 과로상태였고, 그 사이 나이도 먹었다. ‘88만원 세대처음 쓰고, 경제 대장정 시작할 때만 해도 나도 30대였지만, 이젠 40대 중반이다. 조금 지나면 50대를 생각해야 할 나이다. 이젠 정말 눈도 잘 안 보이고, 몸도 아프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와 지내는 시간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 당연한 일이겠지만.

 

거기에 모피아작업이 생각보다 늦어졌다. 거의 마지막 순간에 에피소드 몇 개를 추가하고, 연애 라인을 강화하면서나는 무한대의 돈을 그려보고 싶었는데, 정말로 무한대의 시간이 이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뭔가 작업들을 덜어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와중에 뒤로 밀린 게 세대전쟁이 되었다.

 

게다가 아내가 이 작업에 반대했다. 내가 하는 일들에는 보통은 찬성을 보내는데, ‘세대 전쟁은 그렇게 재밌을 것 같지도 않고, 잘 팔릴 것 같지도 않다고, 반대가 심했다. 물론 안 팔리는 거 뻔히 알면서도 의미만 가지고도 아내는 찬성해주고 지지해주는 편이었는데, 이 책은 반대가 좀 있었다. 어쨌든 육아를 뒤로 미루면서까지 써야 할 정도로 시급한 것 아니라는, 뭐 그런 의미로 이해했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번 대선은, 그야말로 세대 전쟁이라는 양상을 보일 정도로, 세대간 분배에서는 많은 것이 걸린 그런 대선이 되었다. 내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더 극렬한데. 그런 조치나 공약들의 정치적 효과에 대한 분석은 기이하게도 거의 없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조치들이만 실제 효과가 큰 것들이 많다.

 

그리고 맨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는 그 속도들이 더 빨라지고 있다. 그런 걸 좀 차분하게 분석해보고 싶었는데, 그럴만한 시간도,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어쨌든 이번 대선은 단순히 투표율과 표라는 눈보다는 세대 효과가 더 큰 선거가 될 것 같다. 오히려 그 이후에 생겨나는 결과들에 비하면, 투표에서 투표율로 나타나는 양상은 새 발의 피인 것이고.

 

이제는 너무 많이 써서 식상한 느낌이 드는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이라는 말, 그러나 이번 대선은 정말로 패러다임이 변화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두 개의 세계관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순간이다.

 

어느 쪽이 이길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느 쪽이 망하는 길인지는 안다. 적어도 청년들에게는 말이다.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다. 좀 더 차분하게 분석을 해보는 사람들이 한국에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맘 먹고 하면 할 수 있을 능력을 충분히 갖춘 젊은 교수들도 정부 프로젝트 딴다고 정신 없고, 얼마 주지도 않는 기업체 강연 한다고 난리들이다. 정당 안에 소속된 사람들도 의외로 자기가 혼자서 움직일 공간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누군가 시다바리 한다고 정신들 없고.

 

어떻게 보면, 일반인 만큼이나 한국의 경제학자들도 다들 먹고 사느라고 바쁘다. 그러다 보니, 청년 문제나 이런 세대간 형평성 같이, 딱히 직접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연구들은 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그냥 보면 보일 것 같지만그렇게는 안 보인다. 이렇게 맞춰보고 저렇게 조합해보고, 그렇게 해야 뭐가 조금 보일랑 말랑, 그렇다. 그냥 딱 보고 알 수 있다면 이론이라는 것이 왜 있고, 분석이라는 것이 왜 존재하겠는가.

 

하여간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남는다.

 

난 늘 결핍이라는 조건 내에서, 그래도 무엇인가 찾아내려고 한 편이다. 현대에 있을 때에는, 정말로 기업 자료들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정부 안에 있을 때에는, 복잡하게 따져보기 보다는 직접 전화통 들거나 찾아가서 바로 조사하는 그런 스타일을 더 좋아했다. 총리실에 있을 때 좋았던 것은, 어쨌든 저녁 해가 지기 전까지, 그것이 맞는 자료든 틀린 자료든, 내 자리 위에 해당 부처의 1차 자료가 올라오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는난 늘 결핍이라는 조건과 싸웠다. 자료는 늘 부족했고, 시간도 늘 없었다. 그리고 로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아주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별 수 없었다. 그냥 그런 조건을 감수하고 연구를 했었다. 그걸 밤을 새워서 시간 투입을 늘리고, 책을 아주 많이 읽는 또 다른 물량 투입으로 커버하면서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 전쟁제목의 제목으로 최소한 책 한 권 분량의 읽을만한 분석거리로 세울 정도의 자신은 있었다. 한국은 아직 밀실에서 대충 정하고,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밀어붙이는 그런 정책이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많지만

 

내가 20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런 분석들이 보여줄 부정적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은그래도 이번에는 투표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양심상,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풀린다고 말 못하고, 또 이미 시행하기로 한 황당한 것들을 다 세울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아예 투표도 안 한다면, 정말 대책 없는 결과가 벌어진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한구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것저것 잠시 검색해보고, 이한구가 누구를 위한 정책을 만들 것인가, 그 정도만 생각해보면 좋을 듯싶다.

 

50대 보수, 그 모든 것을 집결시킨 상징적 인간 한 사람을 고르자면, 이한구다. 그가 만들어낼 세상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은, 이한구가 누구인지 잠시 검색해서 이해해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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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올드하다

 

예전에 유학 시절에 선생한테 들은 얘기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냈다는 생각이 들면, 유일하게 새로운 것은 자신이 새로운 것을 생각해냈다는 그 생각이라는 것. 유사 이래 아무도 새로운 것을 못했는데, 자신은 새로운 것을 했다, 그 생각만이 독창적이라는 것이다. 하긴 그렇다. 모든 요소들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새로움은 그 요소들의 조합을 바꾸는 것 외에는 없다. 아니 있을지라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는 좋을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순환론적이다. 지나간 유행이 다시 돌아오면서 첨단이 되고. 이런 것들을 철학사적 운동이라고 부른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것은 모든 창작자와 이론가들의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새로운 것, 그게 도대체 무엇인가? 새롭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어디선가 본 것이거나 누군가 말해준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세상의 모든 얘기는 신화적 원형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원형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얘기처럼 보이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뭔가에 암시를 받지 않고, 어디선가 보지 않은 것들을 스스로 생각해내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천재라고 부른다. 모차르트가 그랬고, 카프카가 그랬고, 샤넬이 그랬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어쩔 수 없이 무엇인가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들, 결국 교육을 받고 책을 손에 쥐는 수밖에 없다. 책을 읽을 때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배우는 방식 그리고 혹시 내가 생각한 것을 다른 사람이 이미 생각하지 않았을까, 검토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주 나중에 배우게 된다. 내가 새로 생각한 것은 없다, 혹은 아직은 그런 것을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부터 새로운 요소를 만든다는 생각은 포기했다. 내 능력과 내 실력으로, 그런 것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혹시 그런 것이 가능한 사람이, 예를 들면 조지 루카스처럼 아직도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요소들의 새로운 조합이다. 조합만큼은, 경우의 수만큼 다양하고, 무한대에 가깝다. 같은 얘기를 다르게 하거나, 같은 요소를 다른 셋팅 안에 집어넣거나그건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민은 남는다. 새로운 조합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너무 익숙해서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것, 그것을 나와 영화사의 동료들은 올드하다라고 부른다. 이것은 스타일의 문제이고, 미학의 문제일 수도 있다. 얘기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혹은 얘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올드하다’, 그게 우리가 늘 부딪히는 문제이다.

 

그 얘기는 재밌어, 그렇지만 너무 올드한 거 아냐?

 

아 놔, 미치겠네, 어쩌란 말이냐!

 

그러다보면, 결국 그로테스크한 조합들을 집어들게 된다. 기괴하고 괴팍스러운 것. 그러나 그것도 한 두번만 반복하면 금방 올드한 것이 된다.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는 연애에 관한 것은 질리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공공연하게 연애를 주제로 삼는 얘기들은 그 때에 비하면 엄청나게 줄었다. 그 시절, 시나리오 지망생들이 만들어오는 얘기는 열에 아홉은 연애 얘기였다. 요즘 시나리오 공모전에 나오는 시나리오에 연애 얘기는 거의 없다. 이제는 열에 아홉은 기괴한 살인 아니면 SF. 실제로 영화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보기 어렵지만, 시나리오 작가로 새로 데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얘기에서 좀비 얘기는 이제 너무 진부한 소재가 되어버렸다. 골프장의 좀비, 논두렁의 좀비, 각양각색의 좀비들이 나온다. 아직 한 번도 제대로 한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좀비 얘기지만, 얘기 그 자체로는 너무 올드한 것이 되어버렸다. 당장 나만 해도, 또 좀비 얘기야, 그렇게 신경질부터 낼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드라마, 영화, 소설, 동화, 다들 새로운 얘기를 찾아 헤맨다. 새로운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너무 올드해 보이지 않게, 과연 이 얘기가 2013년에도 혹은 2014년에도 새로운 것으로 보일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한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의 작업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를 한다그것은 너무 올드하다.

 

나도 거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바보 삼촌을 모티브로 동화책을 구상 중인데, 기왕 하는 거면 루이스 세풀베다 보다는 잘 하고 싶다마음이야 그렇지만, 무슨 수로 세풀베다보다 잘 할 수가 있겠는가. 의인화된 고양이 얘기로는 전세계 갑이 바로 세풀베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풀베다를 모방하거나 심지어 카피하지만, 그걸 뛰어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누군가 말할 것이다.

 

그것은 올드하다.

 

새롭지는 않아도, 올드하지는 않으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리고 그걸 다 뛰어넘어 진짜로 새로운 것을 만든다면, 그건 너무 이상해서 아무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얘기가 되어버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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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활동에 대한 지불 비용은?

 

경제 대장정시리즈는 지금 9권까지 나오고 표류 중이다. 인간적으로, 이거 너무 안 팔리는데, 조사비용 등 책당 제작비용은 상상초월로 높다. 딱 본전만 나와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내가 연구를 위해서 미리 쓴 돈과 인터뷰 비용을 도저히 뽑을 길이 없다. 물론 잘 쓰면 되는데잘 쓸 능력이 나에게 갑자기 생길 리가 없지 않겠는가?

 

대장정이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붙여놓고, 9권까지 하고 자빠졌다, 그게 정확한 표현일 거다. 남은 게, 농업경제학, 과학과 기술의 경제학 그리고 마지막권으로 언론의 경제학이 잡혀 있다아 놔, 세 개 다, 돈은 엄청 많이 들어갈 연구들인데, 역시 판매는 전혀 안될 주제들이다. 하여나도 모르겠다, 일단 자빠져버렸다.

 

9권인 문화로 먹고 살기의 실패가 아주 뼈아팠다. 하여간 내가 가진 돈은 다 갔다가 넣었는데, 책은 나중에 이것저것 상을 좀 받기는 했지만, 내가 넣은 돈을 회수하기에는 태부족.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문제 안 풀린다, 일단 세워놓았다. , 내가 쓴 책 중에, 가장 큰 적자를 만들어준 책이다. 물론 출판사에 적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건 출판사 사정이고, 나는 연구와 인터뷰에 일단 넣은 돈이 최소한 본전은 나와야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래서 일단 여기에서 자빠졌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더는 못하겠다, 그런 상황이다.

 

그냥 비용을 갖다 박는 건, 나꼽살도 마찬가지이다. 이건 그냥 보람으로 참았다. 어차피 대선까지니까, 제한된 시기에 그 정도 출혈은 감수할 수 있다.

 

하여간, 무슨 일이 있어도 농업경제학까지는 하려고 한다. 그 정도는 보람으로 할 수 있다. 11권인 과학과 12권인 언론, 그건 잘 모르겠다. 들여야 할 시간과 돈, 솔직히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나도 이제 마흔 중반이다. 1권인 ‘88만원 세대준비할 때만 해도, 나는 아직 30대 후반이었고, 청춘의 힘 같은 게 남아있을 때였다. 지금은 그렇게 힘만으로 밀어붙이면서 출혈을 감내하기에, 나는 이제 나이를 먹었다. 안타깝지만, 그럴 힘이 안 나온다.

 

하여간 그런 상황에서… 12권의 맨 마지막 질문 중의 하나가, 인터넷 신문 기사에 대한 willingness-to-pay, 지불비용에 관한 문제이다. 몇 년 전에 싱가포르에서 했던 연구로는, 0원이다. 사람들은 인터넷 신문기사에 10원도 자발적으로는 지불할 생각이 없다, 최소한 싱가포르에서는그게 그 얘기이다.

 

차이는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조만간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다. 신문기사를 읽는데 돈을 내라, 그러면 미쳤어? 그런 상황에 갈 것이다. 아직은 좋은 기사에는 좀 돈을 내고, 그렇지 않은 기사에는 안 내고, 그 정도이지만, 몇 년 지나면 미쳤어, 인터넷 보는데 돈을 내게전세계적으로 그럴 것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번 정권에서는 종편이라고 불리는 TV를 아예 시청하지 않는 것이 의로운 일이 되었다. , 피차 불행한 일이다.

 

, 그거야 그렇다치고, 몇 년 지나면, 결국은 한겨레나 경향 아니면 그 뭐라도, 독특한 관계망을 형성하지 않은 언론의 기사 외에는 아무 돈도 내지 않겠다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 빈 공백을 광고가 매우고, 언론사들의 토건 사업으로 메웠는데

 

이제 조만간 토건으로는 돈이 되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광고? 사람들이 돈이 없는데, 광고를 하거나 말거나, 그런 순간이 올 것 같다.

 

우린 지금까지, 조중동 망하면 좋다,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기자들의 기사에 대해서 지불비용이 0원인 상황, 그건 잘 생각해보면 근대를 형성한 한 축이 붕괴되는 것과 같다.

 

프랑스 혁명 이후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역사와 같고, 결국에는 신문이 왕권신수설, 왕은 곧 신이라는 그 독특한 한 시대를 붕괴시킨 힘이다. 편하게 얘기하면, 기자들은 누가 먹여살려주나, 그런 궁극의 질문과 부딪히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기자 혹은 평생 기자로 살아간 사람들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 그 질문 앞에 부딪히게 된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필요한데, 개별적으로 그것에 대해서 지불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말 것인가?

 

시민이 하면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건 보완적 의미이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론은, 다른 언론이 있을 때, 대안적인 의미로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다른 게 다 없어지고, 혹시 남은 것은 대기업이 그냥 자기 홍보 창구로서만 남은 언론만 남는다면?

 

그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내가 해보고 싶었던 마지막 질문이었다. 그 얘기를 다룰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고.

 

꼭 그 얘기를 해보라고 해준 사람은, 아직까지는 수 년 전의 강준만 선생 한 분 밖에는 없다.

 

편하게 얘기하면, 기자들은 누가 먹여 살려주나? 이 질문은, 생각보다 깊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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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백일

 

아기가 태어난지 100일째가 되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별 의미 없는 행사로 사람들 힘 빼는 걸 아주 싫어한다. 거기에 이사 등 복잡한 일들이 겹쳐서, 아기 백일은 따로 하지 않았다. 장모님이 수수떡을 만들어주셔서, 잠시 밥상 하나 차리고 사진 찍은 게 전부.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나의 아들이라서 특별 대접을 하거나, 정말로 좋은 것들로 치장해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옷도 거칠게 입힐 생각이고, 음식도 특별히 맛있는 것을 구해다가 먹일 생각도 없다. 다들 산다는 유모차, 아직도 안 샀다. 그냥 아가방 같은, 국산으로 살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유식은 내가 직접 만들어서 먹이려고 한다. 그 정도가 내가 해줄 수 있는 거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만큼은, 내가 직접 해주고 싶다.

 

대치동 교육이라는 게 있고, 목동 교육이라는 게 있다. 물론 그 길과는 반대의 길을 갈 거다. 아기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건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옳지 않고, 길게 보면, 자식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그리고 꿈을 가지라는 둥, 희망이 뭐냐는 둥, 그런 택도 없는 얘기를 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동화책을 많이 읽어주려고 하고, 되도록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하고, 아이가 글자를 알게 되면 볼 수 있는 동화책을 쓰려고 한다. 아내가 그런다.

 

지 아버지가 쓴 동화책 읽으면서 크면, 아무래도 좋겠지…”

 

내가 나의 아들이 읽었으면 하는 글, 그건 내가 상업적인 고려로 쓰는 책이 아닐 것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장사 속으로 쓴 책을 자기 자식에게 읽히려는 부모도 있는가? 어쨌든 이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를 써보려고 한다. 그건 내가 아기 백일을 맞으면서 생각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아프리카에, 그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아기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부족 하나가 필요하다고맞는 말이다. 아기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좋은 학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 그야말로 개수작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공동체는 복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지금 없으니, 학원이라도 보내야 하지 않느냐고? 진짜로 개수작이다.

 

백일도 안 했지만, 아내는 돌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다. 하긴 그렇다. 그런 게 뭐가 필요하겠나 싶다.

 

교육과 보육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놓은 상식 밖의 일이 너무 많다. ‘88만원 세대에서 인질 경제학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정말로 인질 경제학이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인질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듯한 트라우마가 남는다. 그런 트라우마를 일부를 다음 세대에게 줄 이유가 없다.

 

한국에서 제일 불행한 부모는, 자식을 국제중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다. 그 자식이 불행해지기 전에, 부모들이 먼저 불행해진다. 명박이 죽어라고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국제중학교, 그 동기와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너무 뻔하지 않은가?

 

아기 백일에 찍은 사진 몇 장을 정리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잠시 들었다. 이것저것, 조금씩 실천해보려고 한다.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아직 잘 모른다. 그러나 뭘 하면 안 되는지, 그런 건 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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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시대

 

많은 고양이들이 한꺼번에 떠나고, 이제 세 마리가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삶이 있다. 그러나 하루에 잠시 시간을 내서 그들을 돌보는 것은,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녀석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내가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한 건 아니다. 그리고 사료와 물 정도 챙겨주고, 가끔 특식 준다고 해서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4, 그러나 나에게 생겨난 변화가 작지 않다.

 

제일 큰 건, 짧은 시간이지만 매일매일 행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명박 시대, 참 어려운 시대였다. 우리는 그가 참 미웠고, 매일매일 그의 친구들을 미워했다. 그리고 돌아서면, 나 자신이 그렇게 무기력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무기력한 나 자신을 또한 미워했다. 열 마리 조금 넘는, 내 손을 거쳐간 녀석들과 즐거움과 귀여움 그리고 헤어짐의 아픔을 같이 나누면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그 틈 속에 작은 행복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내서 다시 돌아보니, 누가 누굴 돌본 것인지, 정말로 모르겠다. 그냥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 고양이들과 지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더 많은 분노와, 분노급에도 못 들어가는 짜증 같은 것을 내면서, 늘 서러워하거나 안타까워 하면서 명박 시대 5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도 사람인지라, 분노와 무기력증이 생겨나는 것을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늘 용기를 내면서, 앞으로 앞으로, 그렇게 기계적인 행동으로만 자신을 위로할 수도 없다. 뭔가 하고 있으면,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니까 분노를 잠시 잊을 수는 있지만, 그게 허탈하다는 생각마저도 지울 수는 없다. 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자는 말이 있다. 그 말 그대로, 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 미처 버리게 된다. 명박 시대, 감정에 충실해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시기였다.

 

그렇다고 옆으로, 한 발만 더 돌아나가면 이제는 일탈의 삐딱선을 타게 된다. 미치는 방법도 가지가지, 그 소리 안 들을 방법이 없다. 돌봄은 그 사이 어디엔가 있다. 세상에서 아주 눈을 돌리는 일탈의 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충실이라는 이름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모두 증오로 돌려버리는 것도 아닌, 그 양 극단 사이에 돌봄이 있다. 이게 누구에게나 유효한 해법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에게는 그랬다.

 

왜 고양이를 돌보냐는 사람도 있고, 왜 고양이만 돌보냐는 사람도 있다. 첫 번째 질문은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고양이라도 돌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IMF 이후, 우리는 부자되세요라고 서로에게 인사하는 시대를 지났다. 내가 힘들어 죽겠어, 내가 가난해서 죽겠어, 내가 외로워서 죽겠어, 하여간 죽겠다고 얘기하는 게 미덕인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경쟁하고, 누군가를 죽이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온 사회가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한 부분이고, 인생의 한 파편일 뿐이다. 그 기간 동안 의도적으로 우리가 회피했거나 망각한 삶의 미덕, 그것이 돌봄이라는 개념 안에 들어가 있는 것 아닌가?

 

무엇인가를 돌본다는 것, 그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 중의 하나이다. 누군가 아프면 같이 아프고, 누군가 배고프면 자신의 마음도 아픈 것, 그런 걸 우리는 귀찮은 것 정도가 아니라, 현대인이라면 절대로 가져서는 안되는 악덕 혹은 시대에 뒤떨어진, 팬시하지 못한 것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마당 고양이 식구들이 아주 단촐해졌다. 녀석들과 나는,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다시 시작한다.)

 

두 마리의 영화사 고양이들과 봄부터 같이 지냈는데, 한 마리는 벌써 죽었고, 남은 한 마리는 혼자서 1주일간 사투를 벌였다. 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스스로 이겨내는 것 외에는 별 방법이 없었다. 녀석은 살아 돌아왔고, 이제는 며칠 동안 놀지 못했던 것이 억울하다는 듯이 난장을 펼치고 있다.

 

논쟁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적 논쟁도 있고, 집에서도 논쟁을 한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혹은 어떤 길로 가야 하는가, 누구나 크든 작든 그런 논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옳고 그른 것, 그건 삶의 한 단편일 뿐이다. 누구나 먹어야 하고, 누구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 포유류는 원래 그렇다. 알에서 깨어나서, 나오자마자 스스로 걸어가고 먹이를 찾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른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아니 많은 남자들은 많은 것을 자신에 대한 유불리와 소유의 개념으로 사유하기 시작한다.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그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무엇인가를 돌보아서는 안되고, 일상은 전쟁과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사람은 본시 그런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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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삼부작 그리고 바보 삼촌

 

얘기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 만드는 것과는 상관없이, 일단은 우스꽝스럽든 기괴하든, 얘기 만드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들이 그렇지만, 영화사에 소위 디벨로퍼 혹은 기획자라고 모여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얘기 만드는 것을 기질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명박 시대 5년을 지내면서, 다른 사람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정말로 참을 수 없는 심정을 느꼈었다. 부당한 것이나 정의롭지 않은 것까지는 참을 수 있을 듯 싶은데, 꼬질꼬질한 것은 정말로 참기 어려웠다. 말도 안 되는 걸 말이라고 하고, 그게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믿으라고 하는데

 

힘으로 밀어붙이고, 알아서 기거나, 아니면 그냥 뒤지던지. 이런 식으로 국가를 운용하고, 꼬질꼬질한 일방주의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참고 버텨야 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게 참아지냐고?

 

공무원 3부작에 대한 구상이 시작된 것은, 그렇게 명박 시대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던 순간이었다. 명박이 나빠요 하는 공무원들, 내가 보기에는 니가 더 나빠… ‘모피아얘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얘기를 시작하는 순서가 있을텐데, 위험도의 순으로, 모피아, 교육마피아, 토건족, 이렇게 우리 시대의 3대 문제적 집단을 잡고, 하나씩 얘기를 채워나기로 생각한 게 작년 가을의 일이다. 나꼽살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의 일인데, 방송은 일단 론칭을 성공했지만, 이것만으로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아주 끈적끈적한 곳에서 벌어지는 질펀한 일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모피아작업은 이번에 끝이 나서 출간을 했는데, 두 번째 작업과 세 번째 작업은 아직 톤이나 프레임 같은 것도 못 정했을 뿐더러, 순서도 못 정했다. 일단 영화로 생각해본다면, ‘토건족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갈 영화다. 4대강으로 한다고 해도 그렇고, 새만금으로 한다고 해도 그렇고아직 테마도 못 정했지만, 아파트 공사현장 작은 거 하나 가지고 꼬질꼬질하게 뒷돈 먹는 방식 정도를 그려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우리 시대의 대표적 토건 사업인 4대강이나 새만금 같은 얘기를 다루어보고 싶은데이 정도 되면 한 번 나왔다 마는 장면이 아니라서 CG로 처리하기에는, 문제가 생긴다. 어쨌든 셋트가 필요한데, 새만금을 셋트로 구연한다, 이거 난감한 일이다. 물결, 물살, 이런 게 CG로 만들 때에 가장 난감한 장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거대한 갤럭시나 은하계 같은 거 보여주는 장면도 아니니, 딱 눈을 끌 수 있게 만들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효과는 불투명한데, 일단 돈의 규모는 너무 커지는, 그런 게 토건족 얘기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 딜레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넘어설 방법이? 일단 잘 모르겠다, 그렇게 뒤로 미루어놓은 게 토건족 얘기이다.

 

이에 비하면 교육은, 훨씬 작은 스케일로 밀도감 있는 얘기를 만들 수 있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다루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순서상으로는, 교육 마피아 얘기를 모피아 다음 얘기로 하고 싶은데모든 사람이 여기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출판사에서는, 토건족 쪽이 더 관심이 있지 않을까, 그런 의견이 왔다. 아직은 뭔가 결정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좀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교육 얘기는, 지금 준비 중인 또 다른 얘기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에니메이션을 염두에 두고 고양이 얘기를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이걸 순수 동물 버전으로 가는 방법이 하나 있고, 교육 버전으로 가는 또 다른 버전이 있다. 이것도 아직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모색 중이다.

 

어쨌든 내가 바보삼촌을 워낙 좋아하니까, 녀석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골룸과 스미골이 하나의 얼굴 안에 있었다. 녀석은, 태생이 입체적인 캐릭터이다. 이게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해본다그 정도 마음이다. 어쨌든 동화는 논리로 만드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만드는 거그 정도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꾸 어른들도 볼 수 있는 그런 그림책으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물론 판매나 그런 걸 생각해보면, 아이나 어른이 다 볼 수 있는 얘기 같으면 좋겠지만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진짜로 이해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의 세상을 보는 눈과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88만원 세대때에도, 결과야 어떻게 되었든, 그런 마음으로 처음 접근을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뷰와 조사 과정이 그런 전제 하에서 진행되었었다.

 

아이들에게 무슨 얘기를 들려줄까 보다, 지금의 아이들은 어떻게 세상을 보고,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가, 그런 걸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그게 좋은 건지 아닌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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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꼽사리다, 막방을 준비하며

 

막방이라는 말을 쓰게 될 날이 올 줄 몰랐다. 어쨌든 모든 시작하는 것에는 끝이 있는 법, 우리도 이제는 마지막 방송을 준비해야 한다. 나꼽살팀은 7명이 한 팀이다. 출연진 외에, 뒤에서 도와주시는 황덕창 작가, 팀 매니저 역할을 해주신 배영란씨 그리고 녹음 엔지니어 선생님, 이렇게 세 분의 스탭이 더 있다.

 

한 회분 제작에 보통 4주 정도가 걸린다. 처음 주제 정한 다음에 게스트 섭외 여부와 질문지 작성 등, 평균 4주 정도를 쓴다. 보통 이 정도 내용이면, 공중파 기준으로 3팀 혹은 4팀 정도가 붙을텐데, 그냥 우리는 몸빵으로 다 때우면서 왔다. 이미 지난 여름을 지나면서 제작진의 피로도가 극으로 달했고, 요즘은 거의 한계 상황이다. 나도 도저히 이렇게는 더 못 버티겠다고, 출산으로 제호를 바뀌면서 방송 기획을 선대인에게 넘겼다. 그러나 우리가 예상치 못하게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방송 기획과 섭외 등을 다시 내가 맡게 되었다.

 

일정을 살펴보니, 대선 이후의 화요일은 크리스마스이고, 그 때 녹음하면 공개가 내년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결국 대선 전주 방송을 막방으로 하기로 했고, 이게 12 11일이다.

 

지난 여름에 아주 더울 때, 선대인이 처음 대안 경제방송 만들어보자고 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멀리 왔다. 김용민 총선 출마한 이후, 선대인 안캠 합류 이후, 누가 봐도 위기의 순간이라고 할 때가 몇 번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우리는 방송 기간 내내 가족처럼 지냈다. 매 방송마다 이런 저런 문제들이 터져 나왔지만, 어쨌든 임기 웅변과 몸빵으로 넘어간 것이고.

 

나꼽살 지방 버전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이 때쯤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를 놓고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뭔가 기획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꼽살 대구편, 나꼽살 부산편, 이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봤었는데, 순전히 내가 게을러서.

 

미화 누님과 일년간 방송을 같이 했던 것, 선대인과 매주 만난 것, 김용민이 얼마나 착하고 실력있는 인간인지 알게 된 것, 이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최고의 스탭들과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것이, 정말로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우리 일정상, 대선 앞이라고 해서 별도의 호외 방송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고, 11일 방송에서 투표 참여 독려와 우리끼리의 조촐한 방송 정리,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경제 전문방송으로, 정말 이 정도 성공시킬 수 있을지, 우리도 잘 몰랐었다. 회당 300만명에서 400만명이 듣는데, 그 정도로까지 갈 수 있을지는 상상도 못했다. 어쨌든 매주, 펑크내지 않고 간다, 그런 생각밖에 없었다. 선대인이나 나나, 범생이들이라서, 숙제 내라면 하여간 제때 제때 내는 거, 그런 건 잘 한다. 그거 말고는, 사실 별로 잘 하는 건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 나꼽살 막방이 현업 경제학자로서는 공식적으로 은퇴하는 순간으로 생각하고 있다. 신문에 주기적으로 쓰는 칼럼은 벌써 연초에 정리했다. 나머지 일들도 조금씩 덜어내는 중이었고, 이제 남은 일은 거의 없다. 그 동안 관여하던 단체에서 하던 일들도 정리했고, 이제 남은 건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남은 책 몇 권 정도. 쉬엄쉬엄, 가끔 밀린 경제학 책 내는 정도, 그렇게 경제학자로서의 나의 사회적 역할을 정리하려고 한다.

 

한미 FTA나 새만금 같은 것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 결국 마음에 남는다. 우리 시대에, 내가 주도해서 했던 큰 싸움에서, 나는 대부분 졌다. 그게 나의 한계이고, 나의 실력은 거기까지이다. 이기고 물러설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런 게 삶이다. 벌써 전에 내려놓고 싶었지만, 어쨌든 나꼽살 막방까지는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틴 것이다.

 

나의 싸움은 졌지만, 경제학자로서는 과도한 영광을 누렸었다. 나에게는 아무 영광이 없지만, 중요한 싸움을 이기는 편을 정말로 소망했었다. 그러나 나의 소망은, 이제는 가슴 속에만 남게 될 것 같다. 세상을 몇 사람의 힘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은 들기에, 마음만은 편하다.

 

막방 때 어떤 식으로 정리할지, 12월 방송은 어떻게 진행할지,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중이다. 이젠, 정말로 막방 준비.

 

이 방송에서 해보고 싶었는데 못한 것 중 하나가 경제 콩트였다. 내부에서 몇 번 얘기는 나왔지만, 너무 정신 없어서 제대로 챙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짧게라도 시도해 볼 수 있었으면, 사람들에게 경제를 좀 더 편안하게 전달할 수 있는 포맷 실험이 되었을텐데, 그건 못했다.

 

본격적으로 경제학 공부를 시작한 것은 학부 2학년 때였고, 정말로 경제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학부 3학년 때였다. 그 때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처음 생각했다. 20년이 넘도록, 경제학만 하고, 경제학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경제학자로서의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내놓는다고 생각하는 방송을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 이상의 영광은 없을 것이다.

 

몇 달 전부터, 나꼽살팀은 완전 방전에 기진맥진, ‘완주라는 단어가 멤버들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성과나 평가, 그런 건 모르겠고, 일단은 완주하는 게 유일한 목적이었다. 우리가 대선 국면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여가, 완주라는 단어에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완주가 눈 앞에 보인다. 그러니 또한 기쁘다.

 

이번 대선, 시대의 전환점이다. 꼭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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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이름은 생협, 몸은 고양이별에, 마음은 내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다음 에세이집 키워드는, 돌봄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몇 권의 책을 냈는지 까먹게 되었다. 좋게 얘기하면 초월하게 된 거고, 나쁘게 얘기하면 교만해진 거다. 그리고 재수 없게 얘기하면, 앞으로 하고 싶은 얘기에 더 집중하느라고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지 않는 거고. 그 어느 편이든, 진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진짜로 잘 모르겠다.

 

<1인분 인생>은 여러 가지로 나에게 의미 있는 책이다. 문학이라는 분류로는 처음 낸 책이기도 하지만, 늘 고통스럽게 생각하던 책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던 책이기도 하고. 이 책에서 출판사에서 번 돈이 봉도사가 감옥에 가자마자 낸 포토 에세이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간직하는 보람이기도 하고 (그 책, 참 우라지게도 안 팔렸다...) 무엇보다, 이 책은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다. 이선지라는, 크고 작은 결정을 내가 내릴 때마다 늘 상의하는 동료가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대학 시절, 카프카를 같이 읽던 여성 동지가 이 책의 기획자로, 이거 좀 내자고 해서, 어린 시절의 친구와 같이 작업할 수 있었던 것도 즐거운 일이었고.

 

어쨌든 <1인분 인생>은 대략적으로 2년 정도 작업을 한 건데, 마흔을 모티브로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한 게, 마흔 넷이 되어서야 출간하게 된. 하여간 급하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쥐고 있다가 오래 된 친구의 권유로 내게 된 책이었다.

 

<1인분 인생> 다음 책은, 여전히 그 시절의 에디터인 이선지씨와 같이 고민을 한다. 어지간해서는 난 에디터를 바꾸지 않고, 출판사도 잘 바꾸지 않는다. 태생이 게을러서 그렇다. 그냥 하던 사람하고 계속 작업하는 게 편하다. 즐거움이든 아픔이든, 같이 나누는 그런 오래된 관계를 더 좋아한다. 문제가 있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을 거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게, 속 편하다.

 

어쨌든 <1인분 인생>에서의 키워드는 40대였는데, 나는 그 주제로 글을 쓰는 게, 편안하고 즐거웠다. 그 이후, 후속 작업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었는데, 결정된 것은 다음 번 작업은 포토 에세이 형식으로 한다는 거 그리고 더 편안한 얘기를 해보겠다는 정도였다.

 

맨 처음 잡았던 주제는 명박 시대였다. 누구에게나, 어떤 이유로나, 명박 시대는 치열한 고민이다. 내가 알기로는, 보수들에게도 이 시대는 고민스러웠던 걸로 알고 있다. 그들도 사람이다. 저 꼬라지를 봐라, 겉으로는 쉴드 치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우리끼리 얘기할 수 있는 자리에서는 고통을 토로한다.

 

명박 시대 들어오자마자, 대운하는 아니다, 니가 좀 막아봐라,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꼭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인 것만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보수 중의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 명박에게 자랑스럽게 투표한 사람들도, 저건 좀 아니다 싶다, 니가 어떻게든 막아봐라,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새만금 개발에 대해서도, 이건 좀 아니라고 나를 격려해준 사람들이 꼭 평소에 좌파나 생태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만은 아니다. 누가 딱 봐도 보수 중의 보수인 그런 사람들도, 새만금 얘기는 니 얘기가 맞다, 절대 굴복하지 마라, 내가 도와줄 수는 없어도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 내가 칼럼으로 처음 데뷔한 것은 서울신문을 통해서였는데, 그 때 나를 추천해준 사람이 조선일보 기자였다는 사실을세상 참 복잡하고 교묘하게 얽혀있다. 삶이란, 원래 그런 건가 보다.

 

어쨌든 <1인분 인생> 다음 책은 포토 에세이로 하기로 마음을 먹은 데에는 좀 사연이 있다.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8, 핵발전에 관한 문제가 지금 권수로 비어 있다. 그리고 <문화로 먹고 살기>, 9권이 먼저 나갔다. 8권을 포토 에세이로 할 생각이 있는데, 그 중간에 넘어가는 단계로 좀 더 쉬운 주제로 포토 에세이를 한 번그런 생각이었다.

 

문제는, 이걸 문제라고 표현하는 것은 좀 그렇기는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게 되었기에해외든, 국내든, 여행을 늘 다니던 삶에서, 아이를 준비하고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가기는 어딜 가집과 영화사, 그리고 가끔 국회, 그렇게만 움직이는 삶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고양이들과 꽃 그리고 아주 약간의 일상적인 사진 외에는 찍어놓은 게 없다.

 

하여간 이건 제약 조건이고

 

명박 시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는데, 아내의 임신 기간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리고 급박한 출산과 이제 100일이 되는 아기와의 삶, 그 속에서 차마 명박 시대를 카메라로 표현해보겠다고 뛰어다닐만한 용기도 또 그럴 의욕도 나에게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무엇인가를 증오하며 그 속에서 창작욕을 불태운다는 게, 새로운 생명의 탄생 앞에서는 정말로 어색해 보였다. 그래서 그 길은 포기했다.

 

올 봄에 태어난 두 마리 고양이들에게, 각각 강북과 생협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또 다른 키워드를 그 고양이들 속에서 발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두 번째 에세이집의 가제목은 강북과 생협이었다. 생명을 보는 경이로움과 안타까움, 그게 내가 생각한 강북이라는 가치와 생협이라는 가치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녀석들에게, 나는 당시 내 머리를 차지하고 있던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부여했었다.

 

이번 첫 추위, 그날 영도까지 가는 추위도 추위였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던 그 밤에, 마당 고양이들이 많이 죽었다. 그리고 진짜로 내가 애지중지하던, 생협이 그 밤에 죽었다.

 

고양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앞뜰, 뒷뜰, 여기저기 구석진 곳을 찾아서 고양이 사체를 치우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 그래도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몇 달간 썩어가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양이별로 가는 마지막 길이라도, 내 손으로 치워주고 싶었다.

 

생협의 사체는 며칠 후, 마루 바로 바깥에 있는, 녀석이 늘 숨어있기를 좋아하는 회양목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녀석은 늘 내가 TV를 보던 마루 바로 바깥에서 정말로 자는 듯이 쓰러져 누워있었다. 고양이 사체를 치우는 것에는 이제는 좀 익숙해질 만하기도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집게로는 집을 수 없는 회양목 깊은 곳에 있어서, 결국 두 손으로 안아내면서, 정말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났다. 너무너무 예쁜 녀석이었다. 한 번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못했고, 마음껏 안아주지도 못했다. 그렇게 한 번쯤 만져보고 싶었던 녀석을, 죽은 다음에야 안타깝게 만져볼 수 있었다. 아, 삶이란! 왜 우리는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던가!

 

생전의 그 털 그대로, 그렇게 곱게 누워있는 녀석을 안아 들고, 구청 직원을 기다리면서, 집에 있는 제일 좋은 종이 봉투를 몇 개 겹쳐서 그 안에 넣어주었다.

 

올 봄에 녀석과 한 배에서 같이 태어났다가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누운 녀석의 형제들도 내 손으로 받아주었었다. 그 때는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나지는 않았었다. 솔직히, 그냥 안되었다, 넋이라도 좋은 곳으로 가면 좋겠다, 그렇게 무덤덤했다.

 

그러나 내 책의 모티브로 생각했던 생협, 그러니 내가 얼마나 더 정을 주었겠는가. 잠든 듯이 누워있는 녀석의 뻣뻣한 몸을 들어내면서, 문득 털이 참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을 내가 그렇게 모시는 동안에, 정말로 녀석을 애지중지 돌보던 엄마 고양이가 담벼락 위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어머니 생각이 났다. 동생들이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전부 다섯 명을 낳으셨다. 내 바로 밑에, 아주 어려서 죽은 여동생이 있다. 워낙 내 어린 시절이라, 기억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밑에 남동생이 하나 더 있다. 걔는 기억에 난다.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삼형제로만 알고 있지만, 내가 알기로는 어머님은 다섯 명을 낳으셨다.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그 생각이 났다.

 

이래저래 생각해보면, 지난 4년 동안 내가 돌본 고양이들이 열 마리가 넘는다. 맨 처음 우리 집 마당에 자리를 잡았던 삼색 모녀 고양이, 거기에서부터 아직까지 마냥 자기 집이라고 우기면서 오는, 우리 집 아기 고양이들의 아빠가 된 검둥이, 그런 녀석들과 내가 지낸 지난 4년간의 삶, 그것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돌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녀석들을 돌본 건지, 녀석들이 나를 돌본 건지, 그걸 잘 모르겠다.

 

사람들과의 티격태격하는 관계, 언제나 내가 질게 뻔한 새만금이나 FTA 같은 싸움 속에서, 내가 즐거움을 잃지 않고, “, 빨리 집에 가봐야 합니다, 얘들 굶고 있을 거라서”, 이렇게 내가 아프면 안되고, 쓰러지면 안 된다고 격려하던 건 오히려 내가 돌보는 고양이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가 누구를 돌보는 것이냐, 이게 요즘 내가 하는 고민의 가장 큰 주제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익관계인지, 협력관계인지, 잘 따져보면 말하기 나름이다. 이건 좀 복잡하다. 그러나 고양이를 돌보면서, 이게 이익관계가 아닌 건, 너무너무 뻔하지 않은가? 걸핏하면 집 나가고, 툭하면 죽고, 그런 어설픈 녀석들과 지낸 4, 돈과 이익으로 삶이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진짜로 내가 배운 것 같다.

 

내가 생협이라고 불렀던 고양이, 너무너무 예뻤었다. 녀석의 사체를 커다란 종이봉투에 담으면서

 

몸은 고양이별로 가고, 마음은 내 마음에 담고.

 

그 생각을 하면서, 정말로 많이 울었다.

 

마지막 길을 보내는 건, 귀찮은 일이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게 싫다고 돌보지 않는 것, 그건 좀 아닌 듯 싶다. 우리의 삶은, 좋든 싫든,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어른이 되는 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예전에는 대가족이었고, 형제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기본적인 사회화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집안 내에서 형제들끼리, 어느 정도는 한다. 그게 전통적 삶이다.

 

그러나 지금은, 혼자 많아야 두 명이 큰다. 집안에서 형제, 자매들끼리, 그렇게 하는 사회화를 우리는 생략하고 넘어간다. 돌봄? 부모가 날 돌보는 거, 그게 당연해지는 사회이다. 학교? 지금 학교에서 그런 걸 가르쳐주지 않는 건 뻔하게 다 알고 있는 거 아닌가? 강남과 목동 엄마들이 신봉하는 사교육, 거기에는 예쁨받고 돌봄받는 귀공자, 귀공녀들 양산처 아닌가?

 

우리의 교육에서는, 좋든 싫든, 죽여라, 그래야 산다, 대학입시를 향해서 단 하나만을 가르친다. 대학교육? 뻔하지 않는가. 지금 우리는 태어나서 취직할 때까지, 남을 죽이라고만 가르친다. 그리고 그게 장땡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게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은,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다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돌봄은 올드한 개념이다. 영어로 캐어’, 그야말로 니미 뿡이다.

 

작년, 올해, 사회적 트렌드의 키워드는 힐링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 명박 시대가 만든,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사기성 농후한 개념이다. 사람을 수동태로 만들고, 누군가 날 좀 치유해줘, 그러나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뭔가 좀 나아진 것 같지만, 돌아서면 허무하거나 사기 당한 생각이 드는 개념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멘토 열풍에서 힐링 열풍까지, 명박 시대를 지내느라고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잠시 그런 데 기대고 있었던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곰곰 생각해보면, 내가 생협을 돌보고 있었던 것인지, 생협이 나를 돌보고 있었던 것인지, 난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생협의 사체를 발견하고, 그걸 정리하면서, 돌본다는 것은 누가 누구를 돌보고,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또한 삶이다. 생협은 6월에 태어나 11월에 눈을 감을 때까지, 다섯 달 동안 짧은 삶을 살았다. 그리고 나는 그 다섯 달 동안, 그의 삶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걸로, 하나의 우주가 완성된 것이다. 영생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고, 번영도 아니다. 삶은, 그냥 삶이다.

 

그런 생각을 곰곰이 하면서, 다음 에세이집의 키워드는 돌봄으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무슨 돌봄 전문가인 것도 아니고, 스웨덴식의 돌봄 노동과 성의 고착화 같은 인류학 논문을 쓸 만큼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각 잡고, 이게 돌봄이고, 이건 그릇된 돌봄이고, 그런 얘기를 할 마음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지난 4년 동안, 열 마리 넘는 길냥이들에게 매일 같이 밥을 주게 된 과정, 그 속에서 생겨난 인간적인 즐거움과 갈등 혹은 가끔 있는 아픔, 그런 얘기들을 이젠 좀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눈 앞에서 죽었을 때, 마당에 있던 개나리 나무 아래에 묻어주었던 게 생각이 난다.

 

문득 생각해보니, 대한민국이라고 불리는 나라가 더 이상 교육과정에서 가르치지 않는 게, 우리는 뭔가를 돌보고 또 뭔가가 자신을 돌보는 그런 관계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는 죽이라고만 가르친다. 시험을 잘 봐서 남을 죽이고, 입사 면접에 잘 대답해서 남을 죽이고, 그렇게 남을 죽여야만 니가 사는 것이다, 그렇게만 가르친다.

 

이게 나라냐? , 양아치들의 공화국 아닌가?

 

수경스님이 새만금 갯벌에서 삼보일배를 떠나면서 유마경 얘기하신 게, 오랫동안 마음을 적셨다.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우리는 유마힐이 했던 그 얘기 속에서, 앞의 문장 반은 빼어먹고, ‘내가 아프다만 줄구장창 반복하고 있던 것 아닌가? 네가 아픈 건 안 보이고, 내가 아프다고만 말하고 있는 이 기이한 상황

 

내가 늘 있던 마루 앞에서 얼어 죽은 생협의 사체 앞에서, “참 추웠겠구나, 미안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사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대에 나를 투사라고 생각하면서 삶을 시작했다. 이제는 그만 싸워야지, 하면서도 평생을 싸우면서 살았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싸우는 게, 결국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고, 뭇 생명을 위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다. 과연 그럴까? 겨우 다섯 달, 나와 같이 지냈던, 아직 어른이 채 되지 못한 고양이의 사체를 손에 안고, 참 생각 많이 했다.

 

싸우는 게 다가 아니고, 힐링이 다가 아니다. 우리 편 만만세, 이건 더더욱 아니다. 삶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명박 씹새, 그것 또한 과정의 일부일 뿐, 깨달음은 아니다.

 

우리는 너무 날이 선 채로 살아간다. 그리고 정말로 날을 세울 것을 잊은 채, 증오 위에 삶을 세우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양이를 열심히 돌본다, 그것 역시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한다, 그것도 소박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돌본다는 것, 그것은 소유하지 않으려는 사랑이 아닌가, 그 정도가 내가 내린 임시 결론이다. 내가 길거리에 떠도는 고양이 몇 마리에게 밥을 준다고 해서, 그들이 내 소유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속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런 질문들을 다시 해보게 된다.

 

과연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가? 어차피 우리는, 영원히 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은, 생협이나 우리나,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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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삼촌, 굽은 나무가 선산지킨다고 하더니, 정말로 강하다...)

 

하룻밤 사이에 고양이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고양이별로 떠나갔다.

 

아직 11월 중순밖에 안되었는데, 때이른 한파가 찾아왔다. 이번에 태어난 아기들, 아직 이름도 못 붙여주었는데, 한꺼번에 떠났다. 봄에 태어난 네 마리 중, 두 마리가 살아남았는데, 목둘레를 감은 흰털로 인기를 독차지하던 생협도 이번 추위를 못 이겼다.

 

영화사 고양이 둘은, 아마도 인근 아파트촌에서 도둑고양이 퇴치한다고 놓은 쥐약을 먹은 것 같다. 천만이는 그날 바로 고양이별로 갔다. 대박이는 며칠을 죽어라고 버티더니, 병원에 입원하면서 사투하다가 천만다행으로 살아 돌아왔다.

 

고양이들과의 삶은 늘 이렇게 이별을 눈 앞에 둔 안타까운 사랑과 같다.

 

 

(한꺼번에 자식을 넷이나 잃은 엄마 고양이, 표정이 애잔하다.)

 

몇 달 동안 정들면서 살아왔던 생협은 늘 그 녀석이 놀던 화단 한 구석에서 발견되었다. 혹시라도 영역 다툼 때문에 밀려난 거 아닌가, 그렇게 마음을 돌리려고 했는데, 결국 추위에 얼어죽은 시신으로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일인 듯 싶지만, 늘 자신들이 먹고 놀던 그 어디에선가 고양이들의 사체를 발견하고 처리할 때마다, 경건해진다. 태어난지 한 달도 안 되는 아기 고양이들은, 정말로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같이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마다 몇 마리의 고양이를 새로 만나고, 또 몇 마리의 고양이를 이렇게 내 손으로 떠나 보낸다.  

 

펫 로스라는 말이 있다. 반려동물들과 헤어짐은 그 자체로 심한 정신적 충격이기에 그런 말이 생긴 것이다. 물론 매번 떠나 보낼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그냥 삶이라는 것은 그런 것 아니냐나는 그렇게 좀 신경을 무디게 하려고 한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말로 마음이 무뎌지지는 않는다.

 

처음에 죽은 고양이 사체를 만질 때에는, 참 당혹스러웠다. 요즘은, 그래도 그 마지막 모습이라도 눈 속에 담아두려고 한다.

 

몸은 고양이별로 떠나고, 마음은 내 마음 속에 담아두려고 한다. 내 마음은 넓다. 내 마음 속에서라도 그 혼이 배불리 먹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으면 한다.

 

졸지에 자식 넷을 추위에 떠나 보낸 엄마 고양이의 모습이 애잔하다. 얼마나 끔찍하게 애지중지하던 녀석들인데, 그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간만에 살아남은 녀석들이 모여서, 어쨌든 사는 놈들은 또 살아야 하니까, 겨울을 준비하면서 몸에 살을 붙이기 시작한다.

 

지금 있는 아이들의 아빠인 검둥이가 간만에 집에 와서 개집 옆에 누워있는 걸 봤다. 녀석도 자식들이 고양이별로 떠난 걸 아나 보다. 어지간해서는 잘 보이지 않더니, 집에 왔다. 검둥이의 애인이면서, 바보 삼촌이 연애를 걸려고 했던 걸로 알고 있는 삼색 고양이 한 마리도 간만에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갔다. 살아남은 녀석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고양이별이여 영원하라!

 

그런 얘기가 하고 싶어졌다.

 

 

 

 

 

(내가 찍은 생협의 마지막 사진... 정말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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