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거 First!

잠시 생각을 2020. 10. 23. 17:07

요즘 연락 오는 게 정말이지, 더럽게 많다. 

거의 초반기에 내년 말까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년 초에도 백신이 대량 보급되는 건 택도 없고, 그보다는 조금 일찍 치료제가 나올 수는 있지만, 타미플루급의 기적의 약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은 12월이 되기 전에는 내리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두는 것이 맞을 때가 있다. 코로나의 경우는 그렇다. 

한 가지 영 아니게 된 것은 수능에 관한 것 같다. 수능은 보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죽어라고 수능은 봐야겠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수능을 안 보면 긴 파장은 몰라도, 단기 파장이 너무 클 거라서 그렇게 하는 상황은 이해가 가기는 한다. 

며칠 전에 홍대 앞을 산책할 일이 있었다. 킬링필드가 따로 없다. 

정치는 보통은 정무와 정책으로 구분된다. 우리 편 내 편을 나누는 일을 정무라고 하고, 홍보와 관련된 일까지도 이런 정무에 해당한다. 그리고 보통의 정치인들이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나머지 일들이 정책이다. 정책으로 분류는 되지만, 자기 동네 예산을 확보하거나 그 지역 숙원 사업에 관한 소위 민원사항이 정책이라는 이름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정치이기는 하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한국은 대체적으로 정무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는 정무에는 별 관심은 없다. 대부분의 시간을 정책이라고 흔히 부르는 것에 관해서 생각하면서 지낸다. 별 특별한 이유는 없다. 정무는 나 말고도 하는 사람도 많고,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정책에도 트렌드가 있다. 그 시기에 공무원들이 무슨 서류를 쓰든, 헤드 타이틀이나 서브 타이틀에 꼭 쓰는 메가 트렌드들이 있다. 박근혜 때 창조경제, 이번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최근의 ‘언택트’ 같은 게 그렇다. 그것보다 조금 서브로 ‘콘텐츠’ 같이 우리 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것 혹은 ‘스토리 텔링’ 같은 게 유행을 했다. 뭐, 좀 그렇게 하다가 만다. 최근에는 뉴딜이 그런 서브 트렌드 정도 된다. 그린 뉴딜이라고 쓰고, 수소경제라고 읽는.. 한동안 우루루 몰려갔다가, 나중에 매몰비용 처리하고 손 털고 빠지는 그런 유행이 대부분이다. 

그런 유행을 조금만 벗어나면 갑자기 넓은 개활지가 펼쳐진다. 사실상 황무지다. 아무도 없고, 자료도 거의 없다. 참고할 만한 논문도 국내에서는 보기 어렵고. 나는 그런 동네에서 논다.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런 황무지라야 텃세가 없어서 편안하게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사회적 경제나 직장 민주주의 다룰 때에도 그랬다. 조금만 옆으로 벗어나면 갑자기 아무도 없어진다. 물론 현실에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에서 공모하는 주제를 약간만 벗어나면 뻥 뚫린 개활지가 나타난다. 거기서 혼자 공을 몰고 가든 말든, 슛을 하든 말든, 아무도 신경도 안 쓴다. 중요하지가 않아서가 아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거기에 돈을 아직 넣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 쪽으로 돈 들어가는 것을 집권 세력이 싫어하는 분야들이 그렇다. 

떼돈 벌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유명해지는 공명심도 좀 버리면.. 한국은 탄자니아에서 봤던 밀림과 밀림 사이에 아주 넓게 펼쳐진 황량하다 싶은 그런 평원이 나타난다. 아주 가끔 바오밥 나무가 있다. 인기 있는 연구 주제는 그런 평원에 있는 바오밥 나무와 딱 같다. 그 근처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몰려 있다. 그리고 약간만 벗어나면 아무 것도 없다. 

일본은 우리 보다는 상대적으로 좀 촘촘한 사회 같다. 우리처럼 그렇게 뻥 뚫린 개활지가 별로 없다. 

20대 여성의 자살에 관한 주제가 그렇다. 누가 좀 하면 좋겠는데, 이게 돈 도는 연구가 아니니까 텅 빈다. 상대적으로는 노인 자살은 고독사 같은 주제가 공무원들이 선호하는 주제라서 뭐가 좀 있는데, 다른 분야는 텅 빈다. 

그런 문제들이 내 책상 옆에 올라와 있는 게 몇 개 있다. 그래도 애 보다가 잠깐 남는 시간에 하는 건 한계가 있다. “저요”, 그렇게 손을 들기는커녕, 때려 죽여도 지금 하는 것 보다 더 늘리기가 어렵다고 손사레 치기가 바쁘다. 직접 하기가 어려우면, 그냥 지휘만 해달라고 하는데, 그게 그거다. 그럼 주제 제목이라도 정해 달라는데, 그것도 마찬가지다. 돌고 돌아 결국 나한테 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어떤 넘이 이런 골 아픈 주제를 밀어넣었댜고, 실무진들에게 욕 디지게 먹거나.. 

내일은 일단 다 내려놓고 식구들하고 강릉 여행하기로 했다. 나도 골 아프다. 

한참 4차 산업혁명이니 이런 거 유행할 때 “Digital First!”라는 구호가 돌았던 적이 있었다. “노는 거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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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탈당..

잠시 생각을 2020. 10. 21. 16:55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그런 말이 있다. 정을 맞다 맞다, 그냥 떨어져 나갔다. 

영화 <황산벌> 생각이 났다. 계백아, 니가 좀 거시기해야 쓰겄다. 좀 거시기 하다. 한 때 민주당에는 전라도 순혈주의가 강했는데, 요즘은 다른 방식의 순혈주의가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용광로 대선', 이런 말들이 지난 대선 때 유행했던 말이다. 이제 용광로의 시대는 끝나고, 개국 공신들의 순혈주의로 가는 것 같다. 대안과 정책은 눈을 씻고 볼려고 해도 없고, 개국공신들의 순혈주의만 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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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이 정의당의 새로운 대표가 되었다. 

더럽게 고생 많이 한 인간이고, 가슴 속에 늘 안스러움으로 남은 막내 동생 같은 인간이다. 

집 밖에서 위스키 마시는 날이 1년에 몇 번 없다. 아주 오랫동안 못 보던 친구를 만났을 때, 반가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위스키 한 병씩 산다. 결혼 하고 9시면 술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잽싸게 2차로 옮겨서 위스키 한 병을 사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친구들은 술 자리의 길이로 우정의 깊이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오래 있지는 못 하니까 술이나 한 병 사는 걸로 그 시간의 깊이를..

안스러움을 가지고 기회 될 때마다 위스키를 사고 싶은 사람이 김종철이다. 뭐, 그래봐야 실제로 산 적은 몇 번 없다. 그는 늘 무슨무슨 선거에서 졌고, 선거에서 질 때마다 삶은 더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그를 가장 안스럽게 만났던 것은, 2012년 이재영 상가 집에서 만났을 때였던 것 같다. 

가장 즐거운 만남은? 용산역 CGV에서 낮에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옆자리에서 만났다. 영화 보러 같이 가는 사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극장 옆자리에서 만났던 게 꽤 오래 기억에 갔다. 

이제 김종철의 시대가 열린다. 

이 시대가 얼마나 갈지, 얼마나 큰 파장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전환점 하나가 생긴 것 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지난 몇 년간의 한국은 어떤 사회였을까? 나머지는 다 그냥 기분학상으로 돌아가는 얘기이고, 돈으로만 보자면.. 정부 예산 심의과정에서 보건복지고용 예산 증가율은 지난 3년 동안 2%였는데,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연간 13% 늘었다. 

"사람이 먼저다", 이건 그냥 입으로만 한 얘기이고, 실제로는 여전히 시멘트가 먼저인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나마 이헌재 때에는, 이렇게 하겠다고 얘기라도 하고 했지, 지금은 말은 국민을 위해서, 복지를 위해서, 엄청나게 하는데, 나중에 결과를 보면.. 엥? 똑같잖아? 

그러니 결국 누가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고, 기분학상 변화만 가지고 좋아진 거다, 아니다, 그렇게 서로 싸움박질만 하고 살았던 거 아닌가 싶다. 

코로나 이후, 국가가 다시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방역의 주체가 국가이다 보니, "아무나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치 허무주의의 시대가 끝나고, 국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당연한 논리적 결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다. 당장 내일 집 밖으로 나가도 되는지, 셧다운 되는 건지 관심이 첨예한데, 누가 국가를 움직일 것인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정치도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아마 이런 흐름이 아니라면 김종철이 정의당 당대표가 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지금 누가 민주당 다음 대권 주자가 될 것인지 같은 핫하고 긴박한 것 외에 관심을 가지겠느냐? 정의당의 당대표야 누가 되거나 말거나, 어차피 모르는 사람인데, 누군가 되겠지, 그런 거 아니겠나 싶다. 

국가가 돌아오고, 정치가 돌아오고, 마지막으로 로컬이 돌아온다. 로컬의 시대, 중앙을 상징했던 김종철이 어떤 모습을 가지고 돌아올지가 관심거리다. 다른 건 어떻게 할지 좀 알겠는데, 로컬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겠다. 

민주당의 로컬은 새만금이라는 말이 상징한다. 참 슬픈 일인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뭘 원해, 나도 그걸 줄께", 자치라는 관점에서 토호들이 승리하는 역사는 바뀐 적이 없다. 그런데 동네로 들어가면, 그나마 중앙에서 곁불이라도 쬐던 정의당은 흔적도 없다. 

한국 경제도 이제 덩치가 커졌다.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가던 탄성이 너무 강해져서 방향을 틀기가 어렵다. 조금이라도 방향을 바꾸려면 아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김종철, 그래도 그가 뭔가 많은 방향을 바꿀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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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선물..

잠시 생각을 2020. 9. 27. 11:50

청와대에서 온 추석 선물.

비록 코로나 국면이지만, 다들 마음만은 행복한 한가위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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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그레이버.. 아나키즘에 대해서 잠시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영화 배트맨을 누구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 1:99의 설명틀을 만든 사나이. 여당 시절, 정부를 옹호하는 게 민주주의의 핵심인가, 그런 생각을 잠시. 한국 민주주의의 적은 지금의 야당인가, 천박한 한국 자본주의인가, 그런 근본적인 질문을 잠시 가져보게 되었다..

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961868.html?_fr=mt2

 

인류학을 바꾼 아나키스트, 데이비드 그레이버

[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27) 데이비드 그레이버(1961~2020)제국주의 침략 첨병이던 인류학을자본주의 비판 대안학문으로 바꿔‘월가 시위’ 등으로 예일대서 해고‘부채, 그 첫 5000년’ 등 �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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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장기적으로 기본소득을 지지하지만, 꼭 모든 재정지출의 원칙에서 보편적 복지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선별적 복지가 더 나을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와 관련된 긴급 재정은 전례가 별로 없어서 여러모로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이번의 2차 지원금은 '맞춤형'이라는 이름으로, 선별 지급 그것도 극단적으로 미세한 검토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수많은 논란거리가 생길 것이다. 

자영업자는 누굴 주느냐, 얼만큼 주느냐를 비롯한 세세한 논란들은 '선별'이라는 말 속에 이미 포함된 논란이다. 고르기로 하면 '어떻게' 고를 것이냐, 이 질문은 '자연빵'이다. 

선별복지와 보편복지라는 넓고 기본적인 차이 혹은 자영업자에게 직접 주는 게 낫느냐, 소비할 사람들에게 주는 게 낫느냐, 이런 차이점 보다 더 근본적인 차이점이 하나 숨어있는 것 같다. 

중산층에게도 지원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게 1차 지원과 2차 지원의 가장 큰 정신적인 차이다. 좀 넓게 구분을 하자면, 복지 기반 전문가와 격차 현상, 소위 '양극화' 기반의 전문가 사이에 생겨나는 시선 차이가 바로 이 문제다. 

복지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저소득 기반으로 사유를 한다. 전통적인 시각이다. 멀게는 90년대의 세계화 그리고 격차와 분리 현상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은 중산층의 붕괴를 경제의 가장 큰 위협으로 본다. 중산층을 잡아야한다는 것은 경제도 마찬가지겠지만, 경제의 구조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산층이 갈수록 줄어드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협소해가는 중산층에 대한 지원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반면 협소한 의미의 복지는 중산층 이상은 알아서들 하시고, 사회 최약층의 최소한의 기반 마련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도 국민경제의 건전성과 국민경제의 최소 기반 같은 시선의 차이가 존재한다. 

코로나 19와 중산층이라는 질문..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국민의 70% 안을 지지하게 된다. 그래야 부유층을 제외하고 중산층 이상을 지급한다는 말이 형성된다. 여기에 기술적인 애로사항까지 감안하면, 구분하느라고 힘을 빼느니, 차라리 다 주고, 부자들에게는 세제 등 별도의 메카니즘을 만들자, 이렇게 된다. 어차피 세금은 그 사람들이 많이 낸다. 맨날 받기만 하고 줄 때 빼면, 장기적으로 조세 저항이 오히려 구조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할 수 있다. 

이번에 2차 긴급 지원이 가지고 있는 정책적 철학은 "중산층은 안 준다"이다. '피해'라고 말은 하지만, 중산층들은 별 피해가 없거나, 어차피 먹고 살만하잖아, 이런 생각이 근저에 깔려 있다. 이게 90년대 이전의 경제이론으로 무장한 경제 관료들의 생각이기는 하다. 그 사람들은 옛날에 교육 받았고, 중산층 이상은 효율상, 빈민층은 복지, 이런 시대의 시선이 기본이다. 

홍남기로 대표되는 정부의 시선의 기본은 이거다. 돈이 부족하니, 이번에는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지원하겠습니다, 송구합니다.. 이 말을 축약하면 "이번에는 중산층은 아닙니다", 이 말이다. 그리고 이건 최소한 90년대의 민주화 이후로 한국 엘리트 경제 관료들의 머리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프레임이다. 중산층에게도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 믿거나 말거나, 이건 대선 후보 시절의 박근혜가 처음 본격적으로 들고 온 프레임이다. 

경제 관료들은 이번에 자기들이 수십 년간 하던 습관대로 했다. 이건 그럴 수 있다. 가끔 정권과 정부를 같은 의미로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권은 정권이고, 정부는 정부다. 정부는 수장이 바뀌어도 잘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코로나 19와 중산층 사이의 경제적 관계에 대한 연관성은 차지하고라도.. 나도 중산층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말을 지도부가 하고 있는 거다. 이낙연이 "송구스럽습니다"라고 말을 해도, "아, 나는 아니구나", 이런 걸 그런 메시지와 방송 속에서 사람들이 일일이 확인하는 거다. 바보다. 신념을 지켜서 노무현식 의미로 바보인 게 아니라,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무슨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면서 착한 얼굴로 그냥 말하는 건, 그게 바로 바보다. 

자, 이제 계산의 문제로 가보자. 

많은 중산층들이 최근 코로나 블루를 호소할 정도로 어려워졌다. 일자리든 육아든 혹은 개인의 정신세계든, 어려워진 것은 마찬가지다. 이 사람들에게 민주당이 준 메시지는 "참으시라", 이 한 마디다. 예를 들면, 무슨 돌봄교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옴팡지게 집에서 같이 버텨야 하는 중학생이라고 생각해보자. "엄마, 우리 집은 이번에 안 준대?",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응." 그러면 바로 반문할 것이다. "왜? 우리도 힘들잖아?" 

그럼 그 반대편에 있는 자영업자나 저소득층은 중산층의 실망감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 아니 남지는 않더라도 딱 본전인 정도로 정부의 대책에 대해서 감사할까? 이리저리 쪼개고 나면 최대 200만 원 정도다. 자영업자 가정이라도 4인 기준이면 지난 번에 100만 원 정도 받았는데, 온갖 수혜를 집중시켜서 받는다고 해야 200만 원이다. "고맙습니다"라고 그런 마음이 들 정도의 지원은 애당초 없다. 

개개인에게 주는 것이 자영업자에 대한 효과가 높을지, 자영업자에게 몰아주는 게 좋을지, 사실 지금의 지원금은 그런 계산을 해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 돈이 그 돈이다. 중산층이 이번에 받게 되는 상실감을 상쇄할 정도의 '감사한 마음'은 별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인 손실 계산은 차지하고라도, 정치적인 손실은 확실하다. 민주당 폭망. 

지나간 얘기지만, 박근혜도 이 정도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산층이라는 국정 기조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슈퍼 여당이 된 지금의 민주당이 정치적으로는 처음하는 경제적 결정이 이번 긴급 지원금이다. 경제를 누구랑 할 거냐는 건 좀 복잡한 질문인데, 정치를 누구랑 할 거냐는 건 좀 상대적으로 좀 단순한 질문이다. 

부자들을 확실하게 부자로 만들고, 그 대신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거기에서 뒤처지는 소외된 사람들은 복지 정책으로 확실하게 안고 가겠다.. 이게 90년대의 신자유주의 경제 프레임이다. 지금 우리는 이낙연과 함께, 이 과거 프레임의 귀환을 보는 중이다. 

정치는 누구랑 할 거냐? 그게 바로 경제 운용의 기반이기도 하다. 

그래도 빚을 져야 하지 않느냐? 질 빚은 지고, 부자들에게 더 걷을 방법을 생각해내라, 이게 지난 총선의 메시지 중의 하나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걸 기대하면서 수도권의 중산층들이 민주당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았을까 싶다. 

중산층과 코로나, 이게 앞으로 2~3년을 관철할 경제 프레임의 핵심이다. 

홍남기는 다른 집 사람이다. 어차피 부총리까지 했고, 지금 그들을 보좌하는 국장급, 실장급, 이런 사람들은 정권 넘어가도 또 승승장구할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승, 민주당 패! 이게 코로나 2차 긴급지원의 경제적 메시지의 핵심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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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이 총리로서 썩 괜찮게 했다는 데에는 나도 동의한다. 최상이었냐고 하면, 그런 건 아닌데,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정도.. 하여간 별 목소리 없이, 무탈하게 총리직을 수행했다.

이제 그는 당 대표가 되었다. 당 대표는 총리와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그런데 이번 4차 추경까지 가는 과정을 보면, 총리 이낙연과 당 대표 이낙연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총리 주제로 앞으로의 코로나 정책 방향에 관한 당정청 협의회에서 모두 발언을 잠시 보았다. 총리 공관에서 열린 자리라서 더 그런 느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총리 뒤에 대표로서 얘기를 하는데, 대표라는 느낌 보다는 총리 발언 뒤에 부총리 얘기하는 것 같았다. 내용으로 보면 더 그렇다. 총리가 하는 얘기에, 옳고, 맞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 느낌이 강했다. 뭐야, 이건.

당이란 무엇인가, 그런 걸 잠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정권을 만들어내는 원천의 힘이 당이고, 그걸 유지하는 힘도 당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집권당의 산물이 정권이고, 정부인 것이고..

총리 시절에 하던 것처럼 대통령이 얘기한 것을 일사불란하게 집행하고, 약간의 양념을 추가하는 것.. 당 대표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총리의 임명권자는 대통령이지만, 당 대표의 임명권자는 당원과 국민이다. 그런 점에서 이낙연의 목소리를 사람들이 귀기울여서 보게 되는데..

지금 같으면 전혀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없는 사람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 같다.

대통령이 하는 얘기를 총리가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게 지금 국면에서 1차 촛점이라면, 당 대표로서는 실격이다.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세균은 여우 스타일이다. 대통령의 얘기를 기계적으로 다 받지는 않는다. 슬쩍슬쩍, 자기 의견을 넣는다. 2차 추경, 그러니까 온국민 지급을 하게 되던 결정적 계기는 정세균이 마련했다. 어느 정도 다 주는 걸로 의견이 수렴되어 가는 과정에서 지재부 실무자들이 개겼다.. 정부 내에서 다른 목소리 나오는 건 곤란하다고, 기재부 깨갱.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재난 지원금을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 판에는? 상황 보면서, 정세균은 머리 안 드는 걸로 . 그렇게 상황 정리?

당 대표가 대통령 보고, 총리 보고, 그리고 자기 얘기를, "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일상적인 정책을 당에다 얘기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거수기.. 뭐하러 힘들게 그 사람들한테 이것저것 설명하고 그러냐. 그냥 속 편하게 청와대에 줄 대지.

이낙연이 당대표로서 자기 존재를 가질 수 있는 시간도 그리 길게 남지 않은 것 같다. 추석 지나고 나면, 한국에서는 대체적으로 상황이 종료다.

저 사람은 대선 나올 때까지는 그냥 머리 숙이고 있겠구나, 아 네..

그런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굳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나? 이낙연은 지금 이 질문 앞에 서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부총리급의 당 대표,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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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몸이 너무 힘들어서 저녁 먹기 전에 좀 잤다. 아이고, 삭신이야. 요번 주에는 태권도장도 안 하고, 세 시 반에 아이들 데리고 오는 중이다. 방법이 없다. 동네에 있는 특공무술에서는 학원은 안 하는데, 차는 운행한다고.. 우와, 진짜 유능한 사범이다. 왜 이렇게 특공 다니는 애들이 많나 싶었는데, 기가 막히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걸 잘 아는. 

작년에 프로야구에서는 ‘간절함’이 유행을 했었다. 뭐, 간절하게 한다고 해서 없는 실력이 생기는 건 아닌데, 코로나 이 와중에 학원은 안 하더라도 차는 운행하는 특공무술 보면서.. 나는 이렇게 간절함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나는 그렇게 간절하게, 그 정도로 열심히 살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은, 아마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서로 웃으면서 살아가려고 하던 거 정도 아닐까 싶다. 

저녁 때 비도 오고, 태권도도 못 가는 아이들이 하도 야구 하자고 졸라대서.. 보통은 타격 10개씩 두 턴을 하는데, 오늘은 4턴을 했다. 두 명이니까 공 80개를 던졌다. 뭐, 살살 던지니까 그게 힘든 건 아닌데, 애들은 땀범벅이 되었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힘들기는 한. 

살다 보면 세상이 확 바뀌는 듯한, 정말로 시대 변화와 같은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IMF 경제위기가 그랬다. 그 이전에 하던 얘기가 이 새로운 시대에는 어쩐지 한가해 보이고, 삶의 고생을 모르는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Mb가 집권하고 생겨난 변화가 겹쳐지고, 세상은 미친 듯이 뒤로 갔다. 그 흐름이 결국 순실이라는 괴물스러운 걸 만들어내고, 스스로 파탄에 가고 만 것 같다. 

촛불집회는 정치적으로는 컸지만, 문화적으로까지 그렇게 큰 변화를 만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imf 경제 위기급의 그런 변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마도 한국에서는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큰 변화가 생겨나는 중인 것 같다. 세계적 흐름을 얘기할 때 흔히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경계지점으로 삼는데, 아마 그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은 겹쳐진 사건이라서, 굳이 구분을 할 필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큰 변화가 생기면 사람들의 정서도 바뀌고 문화도 바뀐다. 경제에 대해서 ‘살아남는 것’이라는 은유를 쓰는데, 팬데믹은 진짜로 살아남는 게 급선무인 긴급 상황을 만든다. 런던 같이 대공습을 겪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언가 남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내가 요즈음 노력하는 단 하나는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리고 조급하게 판단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지공,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행동하고, 그 대신 주위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권투에서 맞으면서도 눈을 떠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지금 그와 비슷한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일상성의 소중함을 90년대 이후, 너무 오래 잊고 지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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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때 간만에 슈퍼에 갔다. 한동안 냉장고에 있는 것만 퍼 먹다가, 도저히 먹을 게 없어서 양념도 좀 사고, 이것저것.. 20만 원 넘었다. 오매나야.

그냥 배달시킬까 했는데, 배달이 밀려서 세 시간 넘게 걸린단다. 그럴 수는 없지.

집에서 밥만 해먹으니까 요리 특히 기본기만 는다.

홍석천이 하던 식당도 문을 닫는다는데, 마음이 아프다. 아주 전에는 이태원 자주 가던 시절도 있었는데, 애들 태어나고는 거의 안 갔다. 후배들이 가고 싶다고 해서, 작년에 몇 번 갔던..

밥하기 싫어서 나처럼 외식 자주하던 사람도 집에서 밥만 해먹고 있으니까.. 버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전원에게 주든, 저소득 중심으로 주던, 지금까지의 지원하는 방식을 코로나에서는 좀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얼핏얼핏 들기는 하는데.. 나는 또 내가 쓰는 글에 집중해야 하니까, 머리를 여기에 많이 빼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경제 정책은 크게 보면 미국식, 유럽식을 주로 참고했다. 앵글로 색슨과 콘티넨탈, 뭐 이렇게 나누기도 하고. 영국을 넣을까냐 말까냐. 가끔 노르딕.

코로나에 대한 대응 방안은 사실 다 별로다.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뭔가 좀 새로운 메카니즘을 생각할 때가 된 것 같기는 한데.. 머리 아프다.

예전에 기든스가 제 3의 길 얘기할 때 얼척 없다고 생각을 했었다. 별로 기든스 노선을 따라갈 생각도 없었고..

그런데 코로나를 맞아, 미국식도 아니고 유럽식도 아닌 제 3의 길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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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진보가 무능이라는 프레임과 싸워야 한다면, 보수는 혐오라는 프레임과 싸우게 된다. 태극기 집회에 최대한의 공경심을 가지려고 하는데, 이 코로나 국면에 잔뜩 모여서, 게다가 성조기 휘날리며. 트럼프도 이 정도로 혐오스럽지는 않다. 틈틈히 의도치 않은 개그 코드로 웃겨주기도 하고.

오늘 아내가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 성적 '빡치심'이라는 얘기를 했다. 수치를 느끼는 게 아니라 빡치는 거라고.

광화문 광장을 보면서 그 생각이 문득 났다. 이건 혐오가 아니라 빡침이라는.. 애들 생일 선물 사주러 조심조심 마스크 쓰고 장난감 가게 갔다온 생각이 나면서, 문득 빡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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