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 가장 큰 일이 있다면, 1995년 BBC 드라마로부터 시작한 일종의 다시 연대기를 거의 한 바퀴 돈 것이다. 드라마도 다 봤고,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도 다시 몇 번씩 돌려가면서 봤다. 심지어 <킹스맨>도 봤다. 다아시, 바로 콜린 퍼스의 이야기이다. 브리짓 존스 3편이 작년에 나왔으니까, 95년의 BBC 드라마부터 물경 20년간 다아시는 콜린 퍼스가 했었다. <킹스맨>의 극중 캐릭터 이름이 다아시가 아닌 게 서운할 정도였다. 그 때 방한한 콜린 퍼스의 인터뷰 방송까지 찾아서 봤다.


다아시 혹은 콜린 퍼스, 이 얘기는 다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까지 이어졌다. 원래 소설이 있고, 소설 역시 엄청 히트쳤다고 들었다. <오만과 편견> 패로디는 엄청나게 나왔고, 아직도 나오는 중인가 보다. 다아시를 엄청 좋아하거나, 영국 B급 코메디, 소위 화장실 유머를 그닥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 돈 들여서 이런 영화를 왜 만들었어, 캐 박살 날 영화다.


<고무 인간의 최후>를 끝까지 볼 수 있는 사람에게 다아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좀비 영화는 아무 것도 아니다. <고무 인간의 최후>를 만든 피터 잭슨이 뉴라인시네마에서 <반지의 제왕> 만든다고 했을 때, 배신이라고 한바탕 난리들 났었다. 대중적인 감성은 아닐지 몰라도, <고무 인간의 최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름 폭넓게 존재한다.


나는 <고무 인간의 최후>를 보았을 정도가 아니라 DVD로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이건 간만에 엔돌핀 팍팍 돌게 하는, 도대체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출발했는가, 나의 감성의 기원에 관한 영화이기도 했다.


그래, 저 장면에서 바로 "19세기 영국에서는...", 이렇게 역사 왜곡 들어가야지, 갖다붙이기, 그래 바로 저거야. B급 정서에서는 은유와 직설, 이런 게 탁탁 들어가면서 "그래, 저런 게 순실이야", 요 정도로 바로 꺽고 들어가줘야 한다.


원작에서 백작부인 캐서린 드뵈프 매우 강직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나온다. 물론 하는 역할은 좀 그렇다 싶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는 와중에서도 나름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리하여 결코 밉지만은 않은 캐릭터이다. 캐서린 여사와 엘리자베스의 논쟁, 이 밀리지 않는 최강의 여상 캐릭터 둘의 설전이 원작에서는 클라이막스에 해당한다.


좀비판 오만과 편견에서는 캐서린 여사가 아예 영국 최강의 여전사이며, 사상최대의 좀비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초강력 캐릭터로 나온다.


오 예, 캐서린 드푀프, 이 정도 해줘야지! 거럼 거럼, 원작을 정말 충실하게 잘 해석했다니까! (이 장면을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나말고 동아시아에 또 있을지는 모르겠다.)


심지어는 캐서린 여사는 애꾸눈 안대까지 하고 나온다. 오 마이 갓! 혹시나 모르고 그냥 넘어갈 관객을 위해서 짚고 넘어간다.


"안대는 기능성이예요, 패션이예요?"


"당연히 기능성이지."


19세기 영국 사교계 여성들의 과장스러울 정도의 패션이 나름 기능성이었다는 꼼꼼함, 이 장면에서 문득 그 시대를 살았던 경제학자, 톨스타인 베블렌을 연상.


영화 시간 대에 집어넣기 위해서 중요한 장면들은 많이 스킵하고 넘어가지만, 결정적 장면들은 대부분 살렸다. 아, 이런 패로디 소설이나 영화를 볼 사람들은 이미 원전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 그냥 보면, 다아시가 도대체 왜 강물에 뛰어들어? 그 날이 엘리자베스가 나중에 실제로 다아시를 사랑하게 된 첫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소감,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걸 다시 깨달았다.


비주류의 비주류,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감성과 느낌의 출발점이다. 비주류만 해도 벌써 주류 축이지, 뭐. 비주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진짜 축에도 못끼는. 그게 내 감성이고, 그럴 때 딱 좋다.


영화 <황산벌>에 악의 축에 관한 대사가 나온다. 그리고 곧 이어,


"이런, 축에도 끼지 못하는..."


난 이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이 감성이 딱 좋다. 한국에서는 영국식 B급 코미디, 축에도 못 들어간다. 90년대, 2000년대, 프랑스의 극단적 예술영화와 영국식 B급 코미디 그리고 간간히 나오는 이해 난이도 너무 높은 독일 영화, 이런 게 헐리우드가 싫으면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그 시절에는 일본 문화가 수입금지라서, 일본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 때부터 나는 B급 영화, 그 중에서도 화장실 유머 범벅이고, 도대체 왜 만들었을까, 기획의도 같은 게 잘 안보이는 영화들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렇게 살았다.


유학은 왜? 목표, 그딴 거 없었다. 그냥 되는 대로 살고, 흐르는 대로 흐르고, 가끔 수틀리면 팍 개겼다. 입 다물고 살지만, 가끔 개기는 일도 안 하지는 않았다.


그 시절에 내 피에 흐르는 극단적 비주류 감성, 오 예,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이걸 보면서 다시 살아났다.


도대체 이런 걸 왜 만들었어? 너는 다아시 다시 한 번 안보고 싶어. 네네, 보고 싶어요, 소희 선생님 (둘째 아이의 작년 담임이신데, 새학기 들어 담임이 바뀌니까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요즘 난리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거, 다 맞다고 할 때, 아니 난 그냥 딴 거 할래요, 이런 축에도 못끼는 사람들의 많이 가볍고, 약간 저질스러운 정서, 이게 그냥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에는 이런 캐릭들이 많이 나온다. 간만에 긴장 풀고 편하게 영화 봤다. 딱 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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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영화 <베테랑> 감상문

 

아기 둘 키우면서 극장 가기가 정말 어려워졌다. 정말로 급한 일 아니면 늦더라도 아기들 잠 자기 전에는 집에 들어오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극장 가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영화 <베테랑>, 진짜로 큰 맘 먹고 시사회를 가게 되었다. 사실 좀 미안한 얘기지만, 30분 정도 보고 바로 집에 올 생각이었다. 게다가 시사회가 8 50분에 시작한다. 집에 죽어라고 돌아가야 12

 

그렇게 좀 미안한 마음으로 앉았는데, 결국 끝까지 앉아서 다 보고 나왔다. 시계를 연신 쳐다보면서 초조하게 시간을 봤지만, 어쨌든 중간에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뒤가 궁금했다.  

 

솔직히 얘기하면, <베테랑>의 시나리오 1고를 제일 먼저 본 사람 중의 한 명이 나였을 것이다. 앞 부분과 중간 부분의 상당수는 그 때의 대사 거의 그대로 살아남아 있기는 했지만, 뒷부분은 거의 새로 개비하다시피 싹 다 바뀌어있었고.

 

하여간 그 시절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여유가 없어서 그 작업을 같이 하지는 못했다. 해보고 싶지는 못하는 일은 세상에는 많다.

 

영화 <베테랑>을 감상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류승완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좀 더 그의 농후해진 연출에 맞추어서 볼 수도 있고, 류승완 영화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정두홍의 액션신을 맞춰서 볼 수도 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맹인 검객과 <신세계>의 그 유들유들함이 합쳐진 듯한 황정민을 중심으로 봐도 좋을 것 같고, 새로운 악인 유형이라고 할 수도 있는 유아인을 중심으로 봐도 좋을 듯 싶다. 초고 상태에서의 악인에게서 그렇게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는데, 유아인이 투입되면서 그야말로 소름 쭉쭉, 안타까움 반. 악인에게서, 잘 좀 해라,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되겠냐, 그런 동정심 유발을 느끼는 별스러운 느낌?

 

경제의 눈으로 본다면, 아쉽기는 하다. 원래 영화가 시도했던 경제의 밑바닥까지 들추어본다는 생각이, 약간은 느슨해진 듯 싶다. 영화 작업에서는 사실 이게 제일 어렵기는 하다. 구조적인 모순을 제대로 배열하면, 바로 다큐가 되어버린다. 그걸 빼고 좀 더 쉽게 가자고 하면, 특수한 개인의 일탈적 상황이 되어버리고

 

하여간 구조와 일탈,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애로 사항이 종종 보인다.

 

지난 몇 번의 류승완 영화는 대체적으로 재밌다. 그리고 연출도, 그야말로 물 올랐다고 할 정도로.

 

반면에 구조와 메시지는 좀 더 단순해졌다.

 

<베를린> 때는 반공영화, <베테랑>에서는 서민이 승리한다

 

뒤집어 얘기하면 단순 메시지의 변주에 좀 더 능통해졌다고 할까? 좋은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치마와리>의 메타구조에서 좀 더 단순하고 편안한 구조로 바뀌었다.

 

하여간 간만에 극장에서 정색을 하고 본 영화인데, 아기 재우러 집에 가야 한다는 아빠의 엉덩이를 끝까지 붙잡아놓았던. 그리고 간만에 영화 분석도 좀 더 해보고 싶어지게 만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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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되어야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게 될까...

 

마음이 답답하고 막막한 오후, 영화 <머니 볼> 마지막 장면을 보고 또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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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Q를 보고 나서

 

아기 때문에 요즘 영화를 거의 못 본다. 가끔씩 밤에 케이블에서 해주는 영화를 짧게 보는 것이 전부일 정도.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느냐, 아기가 달려들기를 피하면서 잠시 읽는 정도. 하루에 한 권 읽기도 정신 없다.

 

에바 얘기를 처음 보기 시작한 건, 서른 살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살기가 힘들었고, 뭘 해야할지도 잘 몰랐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대체적으로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때는 특히 더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게다가 그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30대 초반이 지나면서 대인기피증이 아주 심해졌다.

 

다른 우울증은 그 이후로 많이 없어지고, 이젠 왜 그랬는지도 별로 생각이 나지도 않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대인기피증은 여전한 것 같다. 여전히 혼자 있는 게 편하고, 혼자 생각하는 게 좋다.

 

아마 일본 80년대와 9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나와 비슷하게, 꽉 짜여진 사회 속에서 그렇게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서, 좀 더 다른 공간과 시간을 상상했던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헐리우드의 작법을 따라 편하게 만들어진 4시퀀스 구조를 따라, 혹은 13579로 나가는 플롯을 따라 얘기를 만드는 방법은, 별로 그렇게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많은 돈과 전문적 시스템을 통해서 뭔가 만들 가능성은 아예 없다는 현실적 절망이, 다른 방식의 얘기 전개에 더 매력을 느끼게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에바 시리즈에는 서로 다른 엔딩이 몇 가지가 있다. 도대체 이게 뭐냐, 그런 혹평을 받았던 극장판의, 그야말로 집단 심리상담 같던 그 엔딩도 좋았다. 나는 누구인가, 전혀 질문은 생략한 채로 지구 평화를 위해서 죽어라고 날아다녔던 아톰에서 수많은 자이언트 로봇들의 얘기, 그런 데에는 존재의 질문은 생략되어 있었다. 사랑과 욕망 혹은 의무감, 그런 것들이 사람을 움직이는 데에 충분했다.

 

에바에서 던져진 그 질문이 좋았다. 에바 초호기를 타면서 느끼게 되는 신지의 불안과 공포, 도대체 동기는 무엇인가, 그렇게 계속 던져지는 질문이 좋았었다.

 

극장편에는 조금 다른 결론들이 있었고, 더 전격적이며 더 현실적인 엔딩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 것 나름대로는 좋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수많은 다른 엔딩들이 필요할 것인가,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일관되게 얘기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열린 결론들로 계속해서 끌어나가는 수 많은 다른 엔딩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에반게리온 Q는 앞에 나온 서, 파와는 달리 그 후의 얘기를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TV판이 처음 공개된 후, 처음으로 서드 임팩트 이후의 얘기를 한 것이다. 그 이후로 14년이 흘렀는데, 그냥 구경만 하던 내 삶도 그새 15년이나 흘러갔다. 그 사이에 나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나도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신지가 14년 동안 잠들어있으면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과연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뭔가 본질적인 변화가 생겼는가?

 

글쎄, 그런 복잡한 건 잘 모르겠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여전히 잘 모르겠고, 뭔가 꼭 하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도 여전히 없는 듯 싶다. 만약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민중들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은 좀 있었던 듯 싶은데, 아주 솔직히, 요즘은 그런 의무감도 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때도 아침에 일어나면 뭘 해야할지 잘 몰랐는데, 요즘도 잘 모른다는 것. 해야할 일들의 리스트는 있지만, 그걸 꼭 오늘 해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 해야 하는지, 그런 것도 잘 모르겠다는 게 여전히 같은 듯싶다.

 

사는 집은 좀 바뀌기는 했는데, 어쨌든 그 때도 집이 있었고, 지금도 집이 있었고당시는 내 방에서 편하게 담배를 피웠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것, 억지로 찾으면 그 정도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럼 도대체 지난 15년 동안, 도대체 난 뭐를 한 거야? 신지처럼 잠자고 있었던 거야?

 

그 때도 내가 지켜줄 수 없는 사람들 생각하면서 괴로웠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좌파로 살다 보면, 동료들을 지킬 수 없는 순간들이 종종 오게 된다. 평생 초등학교 동창회부터 다 챙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좀 다르게. 같이 일하던 팀이 깨지고, 동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그걸 무기력하게 보고 있어야 하는 순간들이 종종 온다.

 

그런 일을 다시는 겪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지만,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며 마지 데쟈뷰처럼 그런 일을 겪게 된다. 그러면 다시 무기력한 생각에 치를 떨면서, 다시 방안에 틀어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내는

 

그러면 팍 그만두거나 팍 떠나버리면 될 거 아냐예전처럼 그냥 외국으로 나가버릴 만한 그런 힘도 용기도 없다는 데에 사태의 어려움이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이를 먹으면 늘어난 뱃살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같이 많아진다. 좋게 해석하면 안정감이지만, , 의욕상실과 용기 감소, 그런 것 아니겠나 싶다.

 

하여간 이런 불안감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6월을 보냈다. , 6월이 다간 건 아니다. 이제 막 절반이 지났을 뿐이니

 

어쨌든 좋든 싫든, 이번 주부터는 새로운 방송의 촬영이 시작되고, 성과가 있든 없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움직여나가게 될 것이다.

 

에반게리온 파는 2편으로 나누어져, 이번에 본 것은 전편이다. 에바의 세계에서는 진작에 나온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그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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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곰씹는다

 

 

어느덧 나도 마흔 중반이 되었다. 지금 살아온 것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을 것이다. 추억이라는 말이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를 며칠 전에 보았다. 자기 전에 틀어놓고 잠시만 보려고 하다가 너무너무 재밌어서 결국 3시간이 넘는 오리지날 버전을 해가 뜰 때까지 다 보고 말았다. 1984년에 나온 이 영화를 아직도 몰두해서 볼 수 있다는 데에 놀랐다. , 내가 영화를 정말로 좋아하기는 하는구나!

 

이 영화는 한국 공개버전까지 세 개의 버전이 있다. 시간을 줄여서 스튜디오에서 공개한 건 최악의 영화로 악평을 받았고, 오리지날 버전으로 다시 공개한 건, 개봉 후 8, 지난 10년간 최고의 영화에 꼽혔다. 한국 버전은 너무 삭제가 많아서 스토리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하고.

 

나는 이 영화를 파리 시절, TF1에서 해준 TV 영화로 보았다. 그 때도 참 재밌게 보았었고, 지금 다시 보았을 때만큼 가슴이 저리도록 아팠다. 정작 놀란 건, 다음 날 학교 갔을 때. 대학원 시절이었는데, 당시 대학원 동기 중에 남자는 정말 거의 없고, 정말 여자들 밖에 없었다. 로버트 드 니로 멋있다고, 완전 난리가 났었다. 20대 초반의 파리 여성, 정말로 그들의 가슴을 깊게 후벼판 영화였다. 1년간 대학원을 같이 다니면서 TV에서 틀어준 영화 때문에 학교가 난리난 것은 그 때 딱 한 번이었다.

 

연애 얘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다. 영화의 연애 얘기로, 정말로 내 가슴을 친 영화는 이것 하나 밖에는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에게 오랫동안 가슴에 남은 유일한 얘기는, 김형경의 데뷔작이기도 했던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그거였던 듯싶다. 별로 중요한 얘기도 아니었지만, 20대 때 이 얘기의 잔상이 참 오래 남았다. 정말로 가슴 한 편에 오래 남았다. 나중에 유사한 얘기겠거니 하면서 은희경의 소설들을 모아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가슴에 남은 얘기는 없다. 나중에 다 까먹었다. 억지로 기억을 하자면 영화 <세런디퍼티>를 좀 재밌게, 그래서 몇 번 봤던 기억 정도.

 

나는 이런 연애 얘기에 대해서, 내가 원래 안 좋아하고, 더군다나 나이를 먹으면서, 이젠 정말로 그런 얘기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 혹은 세월과 함께 전혀 다른 감성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보면서, 그 때나 지금이나, 나의 감성은 똑 같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한 소녀의 10대 모습에서 60이 넘은 모습까지, 누들스의 삶과 겹쳐가는 이 영화의 제일 중요한 라인은 역시 연애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사연이 너무 절절하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자신의 목숨과 이 영화를 바꾸었다. 심장 이식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는 수술을 포기했다. 깐느에서 10년간 자신에게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제작자를 기다리던 그, 결국 목숨과 바꾼 영화가 되었다. 이 정도는, 사실 바꿀만하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영화 메이킹에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나왔다. 레오네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던 사람, 그 숱한 사람 중에 나도 포함될까?

 

요즘 영화식으로 얘기하면, 전개는 늦고, 구멍도 생각보다 많다. 데보라의 오빠로 나온 뚱보는 데보라가 빅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맥스의 정체에 대해서 전혀 몰랐을까? 아니면 입을 다문 것일까?

 

중간에 휴식 시간까지 있는, 세 시간이 넘는 이런 긴 영화는 요즘은 못 만든다. 두 시간만 넘어도 길다고 못 참는다. 그러나 세 시간 동안, 이런저런 에피소드들로 감정을 쌓아놓고 있어야, 진정하게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진지하다. 가만히 눈물을 흘리면서 신파를 떨게 내버려두지 않고, 이게 끝이 아니야, 계속해서 가슴을 후벼파게 만든다.

 

멍하다,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젊은 시절 봤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이다. 얇다는 표현을 쓴다. 요즘은 영화를 얇게 만들고, 그래야 오히려 흥행이 더 잘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두껍다. 정말로 두껍다. 심도 얕은 사진들에 익숙해지면, 가끔씩 보는 심도 깊은 사진들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런 것과 비슷한 차이일까?

 

좋은 영화는 잔상이 오래 남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잔상을 오래 가지고 가는 능력이 떨어진다. 나이를 먹은 사람에게 느낌을 만들 수 있는 영화, 그것은 강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간만에 깊은 추억을 곰씹는 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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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레이커스

 

 

 

영화로 충격 받는 일이 요즘에는 잘 없는데, 간만에 뒤통수를 맞은 듯정말 재밌게 보았다.

 

물론 나는 흡혈귀 영화나 좀비 영화는, 일단 어지간하면 본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재밌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는 아니다.

 

데이브레이커스의 질문은 cure subsitute, 즉 벰파이어 바이러스로부터 치료를 받을 것이냐, 아니면 혈액의 대체제를 계속해서 판매할 것이냐, 그 질문으로 모인다. 바이러스로 문제를 처리하고 나면, 사실 이 두 가지의 질문만이 남는다.

 

여기에 최근의 다국적 제약회사에 대한 은유가 따라 붙는다. 당연히 계속해서 판매를 해야 회사에 이윤이 남지, 그 거대한 원인을 제거하고 나면 회사가 성립될 근거가 사라진다. 좀비 영화에 비하면, 흡혈귀 영화들이 고전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전통이다. <데이브레이커스>는 이 전통 위에 놓여 있다. 드라큐라 백작 이후의 설정들을 잘 살리면서, 다국적 기업으로 전환된 지금의 회사들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그런 점에서는 설정이 <인셉션>과 유사하다. 여기서도 다국적기업의 경영이 주요한 설정인데, 이 경우에는 대체 에너지원을 찾아나가는 에너지 회사이다. 쉘이나 BP 같은 데를 상상하면서 보면 훨씬 재미있다. 그리고 <데이브레이커스> <캣우먼>에서 처음 시도되고 <레지던트 이블>에서 전면화된 다국적 제약회사들, 우리의 경우는 한미 fta를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실질적인 세력 중의 하나로 의심되는. 넓게 보면 제주도 등 영리병원을 지지하는 그 세력들과도 어느 정도는 맞닿아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을 혈액은행으로 은유했다.

 

흡혈귀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게 여기에서는 cure의 주요 모티브이다. 내 기억상으로는 아마 이 경우는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흡혈귀이지만 더 이상 피를 빨지 않게 된 모티브는 <어딕션>에 나온 적이 있다. 그 때에는 벰파이어에게 피는 일종의 기호의 문제 즉 중독과 같은 것으로 처리되었다. 하긴 <어딕션>에서는 니체나 이런 철학자들이 모두 흡혈귀였다는 기막힌 설정이 나온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이 철학과 박사과정에서 박사 논문을 쓰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고, 정말 공포스럽던 마지막 피의 향연이 벌어지는 순간이 철학 박사 수여식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데이브레이커스>에서 피라는 것은 이런 선호와 기호에 의한 중독 문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에센스 혹은 엑기스 같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일정 기간 피를 마시지 못하거나 피가 없어서 자신의 살을 먹으면 서브사이더라는 변종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흡혈귀 내에도 계급적 서열이 있고, 그 안에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 서브사이더라는 설정이다.

 

좀비영화 <28일후>가 그랬던 것처럼, <데이브레이커스>가 설정된 세계는 말더스의 세계이다. Population model에서의 피식자와 포식자 사이의 predator-prey 모델의 세계이다. , 간단한 거다. 인간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결국 멸종 위기에 몰리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혈액 위에 세워놓은 벰파이어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사회 시스템까지도 위기에 몰리게 된다. 스스로 재생산하지 못하는 문명의 장기적 균형에 관한 질문이다.

 

이 상황에서 모든 것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경제의 맨 하반부를 점유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실험실이다. 당연히 주인공이 그 실험을 주관하고 있는 혈액 박사 흡혈귀로 설정되어 있고.

 

에단 호크는 <트레이닝 데이> 이후로 아주 재밌게 지켜보는 배우인데, 여전히 재밌다. 어떤 면에서는 <로마클럽 보고서>를 처음 준비하던 도넬라 메도우 여사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윌렘 데포는 <쉐도우 오브 벰파이어>에서 막스 슈렉을 기똥차게 연기한 적이 있다 (에니메이션 <슈렉>의 이름이 여기서 온 거 아닌가, 나는 아직도 그렇게 의심을 하고 있다.) 독일 표현주의 시절의 그로테스크한 화풍으로 연출된 막스 슈렉만큼, 다시 흡혈귀를 연기한 윌렘 디포는 그 정도까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어쨌든 내가 만약 흡혈귀 영화를 만든다면, 아마도 이렇게 생긴 걸 만들지 않았을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 참 잘 만든 영화이고, 예산 많이 들이지 않고도 필요한 효과들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별 볼 일 없었다. 130

 

어쨌든 이 이후로 한동안 놓고 있던 SF 영화 기획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20억 미만의 저예산 영화를 목표로, 문명의 전환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논의를 지난 주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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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에 관한 짧은 메모

 

 

 

1.

용산 참사가 벌어지던 날은, 공교롭게도 동경에 있던 날이었다. 그 사건에 대한 얘기를 건네 들으면서, 정말로 놀랐다.

 

2.

영화 보는 내내, 좀 괴로웠다. 당연한 것이고. 그리고 또 괴로웠다. 나라면 이 얘기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어떻게 다루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3.

죽어라고 보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인도할 방법은 별로 없다. 용산참사, 과연 우리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

 

영화 내에, 이건 일종의 기준이 되어서, 이 정도로 해도 사람들은 별 반응이 없겠구나, 그런 인터뷰가 나온다. 사실 이게 이 영화의 주제일런지도 모르겠다.

 

너무 재밌는 것이 많기도 하고, 너무 충격적인 것이 많기도 하고, 또 너무 안 보고 싶은 것이 많기도 해서

 

사람들이 시선을 단 1분 붙잡고 있기도 힘들다.

 

4.

누군가는 만들었어야 할 영화이고, 과연 누군가 만들었다.

 

그게 시대의 미학이라는 생각을 잠시.

 

연출 기법이니, 플롯을 잡아가는 방식이나 등등필요 없다일단 그 영화를 만들어서 우리 앞에

 

5.

그래도 힘이 나지 않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사람들한테 전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tv에서 다큐로 만들면 그만인 걸, 극장까지 가서 봐야 하나

 

요건 속 편한 얘기인데, 우린 지금 공중파가 막힌 시대를 살고 있다.

 

6.

큰 모티브는 두 가지로 보였다.

 

얘기치 않던 죽음, 그리고 사라진 진실.

 

죽음을 맨 처음에 보여주었다. 그리고 진실이 사라졌다는 건, 아마 극장에 있던 모두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다.

 

이 두 개를 놓고, 긴장감을 만드는 연출이런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이것도 배부른 투정이다.

 

죽음 앞에 다른 진실이 뭐가 더 필요하겠나? 요즘 재밌는 영화들을 너무 많이 봐서, 내가 배가 부른 거다.

 

7.

한 번 더 볼 꺼냐? 아무래도 극장에서 한 번 더 볼 것 같지는 않고, DVD가 발매되면 살 것 같기는 하다. 분석하려면 정식으로 여러 번 충분히 보고 분석을 하고, 아니라면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묵념.

 

8.

국가의 폭력, 특히 이런 어처구니 없는 폭력은,

 

나나, 내 주변 사람에게나, 혹은 우리 모두에게나 생겨날 수 있다.

 

한 다리 건너 철거민 식구가 없는 국민은 없고,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철거민들에게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계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나 심지어 멀쩡한 회사를 다니다가 얘기치 않게 해고된 사람에게도, 혹은 이도저도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우리는 일상적으로 국가의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다.

 

그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그런 질문이 생겼다.

 

이건, 어느 가난했던, 그래서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어 보였던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분석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해보려고 하고, 일단 메모만 잊어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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