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26건

  1. 2009.09.11 하류인생과 김민선 2
  2. 2009.09.10 인디 스페이스와 다큐 11
  3. 2009.09.06 코코 샤넬 8
  4. 2009.08.25 쿡 티비, 그리고 <타짜> 12
  5. 2009.06.01 카모메 식당 9
  6. 2009.04.25 반딧불의 묘 12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이거야 내 취향이니까. 나는 그보다는 훨씬 더 B급 감성을 좋아하고, 류승완의 '아라한 장풍 대작전', 요따구 영화를 더 좋아한다. (이 영화에, 최근처럼 유명해지기 전의 칩거 시절 이외수가 등장한다.)

 

하여간 그래서 임권택 영화는 뜨문뜨문 보고, <서편제>는 영 내 취향 아니다. 하여간 그렇긴 한데.

 

얼마 전부터 쿡 TV를 PD 저널 칼럼 때문에 달게 되었고, 이 안에 VOD 영화들이 있어서, 틈 나면 하나씩 꺼내본다. 그렇게 해서, 정말로 집에서 뒹굴뒹글 하다가 짜장면 시켜먹으면서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보다보다 더 볼게 없어서, 허름한 B급 영화들 중에서 대박을 기대하며 - 물론 대개는 실망하지만 - 보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쿡 TV의 VOD 서비스는, 정말로 비디오방이 TV 안으로 들어온 딱 느낌이다.

 

하여간 그리그리 하여 임권택의 2004년 영화, <하류인생>을 보았는데.

 

영화는 재밌고, 아련한 기억들을 떠올르기 해주었다.

 

나도 이제는 짤탱이 없이 아저씨인가, 뭐, 그런 묘한 후줄근한 느낌을.

 

제목은 하류인생이지만, 여기에 하류인생은 나오지는 않는다.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하는 무소속 진보주의 정치인,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그녀의 딸, 명동파의 결국 제일 잘 나가게 되는 주먹, 이런 사람들이 주로 나온다.

 

자꾸 시라소니 생각이 났고, "동데, 한 판 붙자우" 하던 <야인시대>의 대사가 자꾸 입에 감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채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결국 유화풍이 되어버린 어색한 느낌 속에 그야말로 '공화국' - 경향신문의 그 공화국 시리즈 - 의 출발이 생각나는 그런 영화였다.

 

여선생 역할을 맡은 여배우가 인상에 남았는데, 그녀의 이름이 김민선이었다. 영화를 짝짝 입에 붙게 맛갈나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는데, 한국 영화에서 이런 여배우를 본 게 도대체 몇 년만인가, 박수를 다 쳐주고 싶었다.

 

하여간 임권택 손에만 들어가면, 하류인생도 상류인생이 되어버리는, 아주 묘한 불균형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 교묘하게 만들어진 불균형이 바로 임권택의 영화를 예술로 만드는 그 힘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김민선이 어깨에 힘 주고 연기했다면, 우와, 또 임권택 필 난다, 하면서 우웩 했을텐데.

 

정말로 어깨에 힘 빼고, 부드러우면서도 도저히 살아갈 길이 없었던 60~70년대의 한국 여인들의 묘한 내적 모순들, 그걸 김민선이 재연한 것 같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막내 이모 생각이 났고, 어렸을 적에 우리 집에 놀러오시던 그 수많던 교대 출신의 여 선생님들, 나에게 이모라고 말해주던 그 수많은 얼굴들이 살짝 머리를 스쳐갔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그 당시에는 드문 양장을 곱게 차려입고 우리 집에 놀러오시던 그분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실까, 그런 지나버린 시절의 노스탈지아가 살짝 느껴지면서.

 

2004년도 영화인데, 그래도 시간을 다루는 데에는 임권택 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참 다루기 어려운 소재인데, 임권택은 간만에 B급 영화 찍던 다작 시절의 감성을 잠시 회복한 듯 싶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임권택이 자신을 위해서 만들었던 영화인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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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디 영화와 관련되어 극장에서 하는 토크쇼에 두 개나 참가를 하기로 했다.

 

정부에서 다큐멘타리 제작과 관련되어 돈을 좀 줄테니, 내용 있는 다큐를 좀 만들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건너건너 받았고, 그래서 다큐 제작을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물론 나는 촬영이나 그런 건 잼뱅이니, 내가 뭘 하겠다는 건 아니고, 정부에서 돈 따고, 기업 후원 받아서 돈 만들어내는 건, 하던 가락이 있어서, 20대들이 다큐를 하고 싶다면, 돈이나 지원해주는 그런 제작을 해볼 생각이 있었다.

 

결국 접은 건, 명박 정부한테 돈 받았고 궁시렁궁시렁 하는 소리들을 괜히 듣고 있을 필요도 없고, 또 정부 돈이라는 것은 아무리 꼬리표가 없다고 해도, 꼬리표 없는 공짜는 없다. 무엇인가 또 양보하고, 결국에는 검열을 하게 된다.

 

이래저래, 귀찮다, 마침 몸도 아프고. 그래서 접고 나서 인디 영화하는 사람들한테 약간의 마음의 빚이 있어서, 이름이라도 올려달라는데, 그 정도야.

 

하여간 그 첫 번째 일로, 오늘 인디 스페이스에서 하는 청춘불패라는, 의미는 있고, 좋은 다큐이지만, 감성상 좀 서글프고, 약간은 후반부에서 늘어지는 그런 다큐를 봤다.

 

영화 보다가 세 번쯤 울었는데, 내가 영화나 드라마 보면서 우는 건 아무 사건도 아니다.

 

심지어 차마 눈뜨고 봐주기 어려운 오드리 또뚜의 <코코 아방 샤넬>을 보면서도, 사실 울었다. 뭘 보면서 내가 울었다는 것은, 아무런 정보값도 없는 일이다.

 

난 눈물이 헤프다. 주성치 영화에 안 울면서 본 영화가 거의 없을 정도라면, 얼마나 헤픈지.

 

몇 년 전인데, 강연하다 말고 운 적도 있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타... 그날따라 몇 백명 모인 큰 강연이었는데.

 

하여간 인티 스페이스에 준 다큐 DVD가 몇 개 있고, 극장에서 기다리다가 자신이 만든 다큐라고 DVD를 건네 준 감독들이 몇 명 있었다.

 

솔직히, 이거 한 번 봐주세요, 하고 DVD를 건네는데, 괜히 코끝이 짜릿해졌다. 난 DVD든 CD든, 어지간하면  다 돈내고 사서 본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다.

 

간단한 다큐라도, 몇 년은 고생하는데, 봐 달라고 그냥 건네주는 감독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도 정말 무명시절 거치면서 출판사 문 앞에서 "출판 불가"라고 타박맞고 쫓겨나서, 들어오는 길에 그냥 쓰레기통으로 보낸 책이 10권 가깝다.

 

<88만원 세대>도, 출판 불가 판정을 받은, 그것도 몇 군데 출판사에서 받았던 원고였다.

 

독기가 올라서, 하나도 안 고치고, 그 대신 더 좌파 필 나는 내용을 더해서, 그렇게 출간한 원고였다.

 

<조직의 재발견>이, 내가 마지막으로 출판 판정을 받은 책이었다.

 

책 두 권을 놓고, 두 개의 원고가 다 출판 불가라는데, 참 홍대 앞에서 에디터 기다리면서 만화가게에서 만화 보는데, 자꾸 눈물이 만화책 위로 떨어지던데.

 

짜장면 까지 시켜먹으면서 다섯 시간 동안 홍대 앞에서 기다리다가 에디터에게 바람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늘이 노랬다. 정말 노랬다. 그런 시절이 3년 전의 내 모습이다. 마흔을 코 앞에 남겨둔, 에디터 전화 연락 기다리면서 홍대 앞 만화가게에서 너무 배 고파서 짜장면 시켜먹던.

 

뭐, 그래도 청춘불패의 주인공처럼 외롭지는 않았다.

 

친구 불러서, 12시까지 술 처먹고 잘 놀다가 집에 들어갔다.

 

어쨌든 오늘 인디 스페이스에서 받아온 다큐들, 시간 나는 대로 곰곰이 하나씩 보고, 꼼꼼하게 독후감을 써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이 장면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된다, 오늘도 풀빵으로 끼니를 떼우며 카메라 들고 몸빵하는 다큐 감독들에게,

 

내가 보낼 수 있는 최선의 경의와 지지를 보내고 싶다.

 

다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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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

영화 이야기 2009. 9. 6. 00:13

간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코코 샤넬>...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 가브리엘 샤넬에 대한 얘기를 좀 길게 썼고, 사실상 결론이 가브리엘 샤넬인 셈이라서 봤다만...

 

샤넬 얘기를 가지고 이렇게 영화를 재미없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구나, 그리고 오드리 또뚜가 나오는 데도 이럴 수 있구나, 사실상 경악을 금치못하게 재미는 없었다.

 

샤넬이라는 최고의 상품을 가지고도 이렇게 장사를 못하는 수도 있나 싶었다. 꺄날 +에서 후원한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재미는 있었는데, 도대체 이럴 수가 있나.

 

지금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샤날에 대한 책을 써보고 싶었고, 내가 샤넬을 얼마나 좋아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니까, 더 괴로웠다.

 

그래도 배운 건 있다. 한국은 망할 것이라는 점.

 

용산 CGV에서 봤는데, 관객이 열 명이 채 안되었는데, 이 관객들은 아주 특색있는 사람들이었다.

 

40대 중후반은 될듯한 부부가 전부였는데, 아마 샤넬을 동경하거나 흠모하거나 혹은 소유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남편을 끌고 온,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내 극장 생활에서 이렇게 중년 부부들로만 차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 본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마크 제이콥스의 옷을 입는다거나 아니면 샤넬의 옷을 입는다고 해서 내가 뭐라고 그런 적은 없다.

 

샤넬의 옷을 입는다거나 샤넬의 상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샤넬의 혁명 정신을 소비하는 것이고, 그래서 일종의 언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내에서는 별 중요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푸르동의 저서를 샤넬이 읽게 된다. 그리고 푸르동의 책을 다 읽은 샤넬은, 아마 틀림없이 다음 책으로 니체를 읽게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자본론>을 모든 것의 전부라고 아는 사람들은 푸르동을 아주 이상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고, 비과학적 접근을 한 사회주의자로 알고 있겠지만, 사실 프랑스 좌파의 역사에서 푸르동은 아주 중요한 사상가이다.

 

푸르동과 샤넬의 만남, 그리고 그의 혁명성 같은 것들은 아직도 채 해석이 끝나지는 않은 일이라고 알고 있다.

 

하여간 충격적인 것은...

 

샤넬을 그렇게 좋아하면 샤넬에 대해서 좀 궁금해지기라도 할텐데, 그런 흔적은 극장에서 전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아니, 샤넬의 정신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샤넬처럼 돈 벌고 싶지는 않은가 보지? 샤넬처럼 돈 벌고, 샤넬처럼 신나게 사는 것도 즐거운 일 아닌가?

 

영화는 재미없었지만, 그래도 샤넬이 어떤 사람인지, 지금 샤넬을 소비하는 사람들 중에서 전혀 궁금증이 없다는 사실에, 약간 절망하고, 이 나라가 결국 망하기는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세상에는 샤넬을 소비하는 사람과 샤넬과 같이 무엇인가를 만드는 두 부류의 존재로 나뉘어진다.

 

지금 좌파가 해야 할 일은, 내 평소의 소신이라면, 샤넬과 같이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샤넬처럼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한국은 소비하면서도 도대체 뭘 소비하는지도 모르고, 생산한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집단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샤넬이라는 이름을 듣고도 가슴이 설래이지 않는 사람들, 도대체 입에 밥이 들어갈까, 그런 생각이 좀 들었다.

 

샤넬을 소비하면서 샤넬에 대해서 궁금해서 어쨌든 극장까지 오는 40대 주부들과, 역시 샤넬을 동경하면서도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20대 여성들이 경쟁하면 누가 이길까?

 

어쨌든 영화라도 보는 아줌마들이 결국에는 파라다임 싸움에서 이기게 되지 않을까?

 

샤넬도 푸르동 정도는 읽고, 자본론도 읽었고, 니체도 읽었다. 그리고 20세기가 열었다.

 

샤넬이 연 20세기는 버나드 쇼와 같은 남자들이 열어제낀 그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이거 진짜... 샤넬 전기라도 한 번 쓰던지 해야지.

 

아르테꼬의 진지한 전사들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국가 장식학교로 번역되나? 하여간 정부에서 연간 수 백만원씩 재료비 지원하면서 패션을 배우는 사람들을 좀 안다.

 

20대 초반에, 샤넬이 사치품이라고 한 마디 했다가, 아주 뼈도 못추리게 프랑스 넘들한테 논쟁으로 당했던 기억이 소록소록.

 

넌 샤넬을 이해못하면, 20세기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아주 처절하게 당하고, 뼈도 못추리게 당한 적이 있다.

 

하긴, 그러면 뭐하나...

 

프랑스도 사르코지한테 넘어가고, 자신들이 자랑하는 그 생산체계도 마크 데이콥스 같은 뉴욕 좌파들에게 결국 조금씩 넘어가는 중인데 말이다.

 

한국은 패션계로 들어오면, 우파와 극우파들이 득실득실하다.

 

프랑스는 패션계의 마네킹이라고 부르는 모델들까지, 좌파들이 득실득실하다.

 

이 차이가 생산과 소비의 차이인 것 아닐까, 그런 가설들을 하나 가지고 있다.

 

우파들이 패션 시장에서 쪽도 못 쓰는데, 우파 코드로 대구에서 밀라노 프로젝트 하다가 결국 지방 토호들 주머니만 채워주게 되었다.

 

우파들은 생산, 특히 이론과 예술 분야에서 아주 약하기 때문에, 결국 밀라노 모델이든, 파리 모델이든, 프랑스 모델이든, 그런 생산의 영역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좌파 코드와 좌파의 유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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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에 유학 시절에 케이블 TV를 잠깐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나는 TV는 공중파만 보는 편이다. 유학 시절부터 머리 맡에 CD를 켜거나 TV를 틀어놓는 게 습관이 되어서, 남들처럼 조용한 방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차 마시는 중에 책도 보고, 글도 쓰고.

 

나는 조용해지면 잡념이 늘어서, 대체적으로 뭐라도 틀어놓는 편이다. 이게 참 성격 이상하다. 시끄러운 데에서는 아무 일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조용한 방에서는 또 아무 것도 못한다.

 

대체로 그렇게 살았는데...

 

이사하고 나서는 청와대랑 등을 대고 북악산 한 가운데의 계곡 입구에 살고 있는데, 여기가 지독할 정도의 난시청 지역이다. 튜너를 위해서 꽤 비싼 FM용 안테나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도 전혀 통하지가 않는다.

 

여덟달만에 포기하고 결국 케이블을 들이기로 했다. 매주 PD 저널에 칼럼을 쓰는데, TV는 하나도 보지 않고 PD들에게 뭔가 말을 한다는 것도 영 양심상 꺼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비 내리는 호남선'을 참으면서 선덕여왕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결국 쿡 티비를 달았다.

 

아... 이게 스타 리그가 안 나온다. 아무 생각없이 시간 때우기에는 스타 크래프트 만한 게 없는데.

 

그 대신에 VOD 기능이 있다. 좀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지만, 하여간... DVD 보는 마음으로 너무 뻔해 보이는 영화를 골라서 볼 수 있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그리하여 개시 기념으로 영화 한 편을 때렸는데, 이게 <타짜>다. <타짜>는 옛날에 만화로 좀 보기는 했는데, 뜨문뜨문 본 이유 때문에 그렇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섹스, 반전, 돈, 전형적인 B급 코드였다.

 

이 영화는 아마 한국 영화사를 정리한다면, 결국은 김윤석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영화 정도로 남지 않을까... 싶다.

 

호러 특히 괴기 영화나 무서운 영화에 대해서는 나도 한 B급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내가 혀를 내두룰 정도로 무섭다고 느낀 영화가 바로 <추격자>였다. 솔직히, 이 영화는 이제는 좀 끝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공포가 끝까지 같고, 정말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김윤석은... 간만에 보는 좋은 배우 같다. 그는 <즐거운 인생>에서도 아주 느낌이 좋았었다.

 

사람마다 스타일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송강호를 비롯한 몇 명의 맨 앞에 서 있는 배우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론 싫은 이유를 찾으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냥 내 스타일 아니라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어지간하면 싫은 소리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김윤석이 가진 매력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여간 잠깐 그렇게 하고...

 

역시 나는 아저씨는 아저씨고, 옛날 사람이다.

 

DVD로 3편 세트를 전부 가지고 있는 <영웅본색>을 틀고야 말았다.

 

(아버지가 빌려가서 몇 년째 돌려주시지를 않는다.)

 

<영웅본색>을 볼 때, 비로소 나는 가장 편안한 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나는 왜 나에게 윤발이 오빠 느낌이 나지 않을까, 아주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어쩔거냐. 하늘이 나를 이 형편 없고 느낌 없는 모습으로 태어나게 했는데 말이다.)

 

(참 쿡 티비의 VOD 리스트 중에는 김현진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린 바로 그 <언니가 간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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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에서 있던 시절에는 영화를 참 많이 보았다. 구로자와의 영화나 베르히만의 영화를 본 것도 파리에서 있던 영화 페스티발에서였다. 원래 공부 좀 합네하는 식자들이 문화적 취향은 높은데, 파리에서 가장 싸게 할 수 있던 문화 향수는 결국 영화 밖에 없었다.

 

가끔 연극 공부하는 사람들 통해서 터무니없이 값싼 연극표를 구하면 토스토프에스키의 연극들을 보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 일년에 몇 번 벌어지지 않는 일이고. 우연히 기회가 되어서 르와르 강변에서 벌어진 무용 페스티발에 참가해서 정말 원없이 무용을 보기도 했지만, 그건 몇 년에 한 번 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간략하게... 영화 말고는 할 수 있는 문화 행사가 없었다, 가난한 유학생에게는. 그래서 그 몇 년 동안 정말 죽도록 영화를 보았다. 대체적으로 1주일에 두 번 정도 극장에 간 것 같고, 가끔 영화 공부하는 사람들 집에 가서 귀한 영화들을 밤새도록 보기도 하였다.

 

거기에 노스탈지아가 있었다... 한국 영화가 아니더라도, 홍콩 영화가 어쩌다 샹젤리제에서 개봉하는 날에는 도서관에 있던, 그야말로 '학도여, 학도여, 청년 학도여'들이 우르르 몰려나가서 그런 걸 보았다. 첩혈쌍웅을 비롯해서, 천녀유혼 시리즈들, 샹젤리에 어지에선가 봤던 영화들이다.

 

북한 영화 페스티발도 있었다. 홍길동을 거기서 봤는데, 북한 배우가 최재성과 똑 닮았다.

 

그렇게 몇 년간 영화를 보고, 결국... 프랑스 영화에 물리고, 예술 영화에 물렸다.

 

난 이제는 B급 영화들만 보고, 좀비 영화, 흡혈귀 영화, 갱 영화, 이런 B급 영화들을 중심으로 본다.

 

나도 몰랐는데, 내가 B급 감성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새벽에서 황혼까지> 혹은 시큼털털한 좀비 영화, 이런 게 내 감성에 잘 맞는다.

 

전쟁영화는 좋아하지는 않는데, 시대 읽기에 대한 공부 삼아 본다.

 

2.

그러다 보니 늘 미안한 감정이 있다.

 

수 년째 환경영화제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내 스타일 아닌데, 엄청 재밌다고 얘기해야 하는 그 상황에 몰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기는 하다. 물론 환경영화제에 나오는 영화들이나 그런 분위기의 영화들 중에서도 재밌는 것들이 있지만, 어째 선뜻 손이 안 간다.

 

난 여전히 <오스틴 파워>의 세계에 살고, <짝패> 아니면 <다찌마와 리>의 과장스러운 세계에 살고, <자토이치>의 코믹 속에 산다.

 

올해 여성영화제에는 어찌어찌해서 폐막식에 초대를 받았는데, 마침 좀 옮기기 어려운 사정이 생겨버렸다.

 

환경영화, 여성영화, 이런 영화들을 잘 안 보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미안한 감정마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여러 번을 봤었는데, 사정상 한 번도 전편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가 없었다. 결국 감독이 절대로 다른 데서 상영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DVD를 빌려주었다. 한참 가지고 있다가 노무현 자살한 날, 혼자 앉아서 틀어봤다.

 

혼자 앉아서 신나게 울었다. 황윤 감독이 꼭 좋은 시설에서 음향 좋게 해놓고 집중해서 봐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 말이 옳기는 하다. 이걸 보고도 눈물이 안 나면... 이게 사람이냐, 그럴 듯 싶다.

 

다큐멘타리는 수많은 우연이 만든 필연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그 영화가 딱 그랬다.

 

어쨌든 연대로 돌아간 다음에 잠시 상영하게 되는 영화들이나, 혹은 실험적으로 만들어지는 작은 콘서트 같은 데 갈 기회가 아주 많아졌다. 그러나 잘 못 간다.

 

그래서 준비한 사람들에게 늘 미안함을 느끼기는 한다.

 

그러나 최소한 영화만큼은 의무감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책은, 재미있는데 읽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산다. 읽으면 도움이 되니까, 싫거나 지겨운 데도 참으면서 억지로 읽는 것이 책이다. 재밌어서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부럽다. 책은 재미없다. 게다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책은 더더욱 재미없다. 그리고 고전들은, 도저히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재미없다. 그래도 참고 읽는다. 그것이 나에게는 책이다.

 

번역되는 순서로 책을 읽지는 못한다. 대개는 번역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번역될 가능성이 없는 책들을 많이 읽는데, 이런 책들은 구하기도 쉽지가 않다. 게다가 재미는 더럽게 없고, 읽은 사람도 없으므로 같이 얘기를 하기도 쉽지 않고, 또... 한국에서 유행할 것 같아보이지도 않는 책들, 이걸 왜 읽나 생각하면서도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참고 읽는다.

 

그러나 영화를 텍스트로 삼고, 책 읽듯이 하고 싶지는 않다. 최소한 영화만큼은, 나에게 즐거움의 영역으로 남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정성일은 영화를 더 잘 즐기기 위해서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영화를 더 잘 즐기기 위해서, 책을 읽거나 음반을 들을 때와 달리, 의무감 없이 영화를 보고 싶다.

 

3.

 

어쨌든 나는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는 것 같다. 벌써 수 년째, 한 달에 몇 장씩은 사던 LP나 CD의 자리를 DVD가 차지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용돈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책 몇 권, CD 몇 장 사던 자리에서, 이제는 DVD 몇 장 그리고 돈 남으면 책, 이렇게 용돈의 배치 순서가 바뀌었다.

 

(요즘은 DVD가 이제 거의 나오지 않아서, 슬프기는 하다.)

 

얼마 전에 다큐멘타리를 좀 찍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필요한 돈 정도는 대주겠다는 얘기인데... 아, 불행히도 나의 감성은 명랑, 코믹 버전이다.

 

나도 가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실제로 지금 문제가 된 한예종 같은 데에 입학해서 진지하게 공부를 해볼까 하는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룹 시절의 현대에 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월급 받고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닌 것은 모든 것이 다 아름다워보였다.

 

PD 시험을 다시 볼까, 영화를 배울 수 있는 학교에 다시 들어가볼까, 아니면 정말로 한문공부 하면서 한국학 공부를 해볼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다 접고 결국 정부기관에 약간 좋은 조건으로 옮기게 된 건, 그게 현실이다! 이런 걸 결국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열심히는 했지만, 나는 결국 좌파였고, 차분차분하게 지내면 장관은 몰라도 청장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는 공무원들의 위로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몇 년간을 알콜 중독으로 지내고, 고민고민 하다가 결국은 황망해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사직서를 내고 떠나고 말았다.

 

그 몇 년간 나락 끝으로 향하는 머나먼 여행을 한 기억이다.

 

여행, 어쩌면 삶은 끊임없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머무름도, 다음 번 여행을 위한 기다림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맥락없이 던져진 노마드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행은 좋아한다. 순례자라는 무거운 단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삶 자체가 그냥 잠시 머물러있다가 가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끊임없이 경쟁을 시킨다. 별 것 아닌 것에서도, 하다못해 식사 하면서의 예절과 작은 지식에 대해서도 경쟁을 시킨다.

 

그런 데에서도 매번 이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필연코 불행해진다. 아니면 결국 위에 구멍이 생기던지...

 

4.

영화 <카메모 식당>은, 내게는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였다.

 

보통의 영화는 특정 주제나 특정 소제 혹은 어떤 장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영화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나에게 영화는 무엇일까?

 

좋은 영화이다. 외로움, 만남, 머무름, 그런 것들과 함께 자기 안의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서열이라는 단어를 생각했고, 머무름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세상, 잠시 잊고, 지나온 시간에 대해서 회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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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의 묘

영화 이야기 2009. 4. 25. 04:33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다카하타 이사오는 여전히 미스테리에 가득한 인물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빨간머리 앤의 감독이었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콤비로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것, 그리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두 개의 축 중에 한 명이었다는 사실 정도이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보다 더 좌파라는 지적이 종종 있는데,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아직은 잘 모른다.

 

그의 에니메이션 중에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마음이 울적해질 때마다 보고는 하는, 그야말로 '내 인생의 에니메이션 탑 파이브'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울적할 때에는 이토 준지의 공포 콜렉션을 주로 본다. 오랫동안 내 감성에 제일 잘 맞는 사람은, 여전히 이토 준지이다.)

 

88년에 나온 에니메이션 <반딧불이의 묘>를 본지는 몇 주 안된다.

 

(요즘 내가 하도 깝깝해하고 있으니까, 아내가 하자센터에서 영화 몇 개를 빌려다주었는데, 그 중에 끼어있었다.)

 

일본 에니메이션 중에는 반전을 메시지로 하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때때로 과하게, 때때로 허황되게 그런 정서들이 그려지는 것 같다. 가장 허황되게 반전을 그린 것은 실사영화로 나왔던 <캐산> 정도로 기억된다.

 

<반딧불의 묘>는 그야마로 극사실주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두 남매가 전쟁 한 가운데에서 굶어죽어가는 현실을 그려냈는데, 다카하타 이사오는 이 에니메이션이야말로 영화가 할 수 없는, 에니메이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다섯살짜리 애의 연기가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나중에 이 원작은 다시 TV 시리즈로도 만들어졌다고 알고 있는데, 일본의 TV 시리즈는, 뭐 구해서 볼 가능성이 거의 없다.)

 

'드로푸스'라는 모티브, 정확히는 '드로푸스 통'이라는 모티브가 한 가운데 들어가 있는데, 드라마 <서울 1945>에도 드로푸스가 모티브로 등장한다. (전후 관계로 보아, 에니메이션이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어쨌든 내가 본 영화나 에니메이션 중에서 이렇게 사실적으로 영양실조로 굶어죽어가는 것을 주 축으로 하고 있는 얘기가 있나 싶게, 얘기는 슬프고 장면들은 아름답다.

 

몇 달 전에 야스쿠니 신사에 간 적이 있는데, 몇 시간에 걸쳐 박물관까지 꼼꼼하게 돌아보았고, 일부분이지만  문제가 된다는 바로 그 홍보영 영화도 보았었다. 마지막 장면은 놀이터에서 대화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보여주고 있었고, 배경 음악은 비트가 강한 힙합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할아버지들만 공유하고 있는 야스쿠니의 정신을 젊은 층에게도 널리 알리기 위한 장치들을 배치한 거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다는데, 만약 한쪽 끝에 야스쿠니 신사의 박물관에서 틀어주는 홍보영 영화가 있다면, 또 다른 한 쪽 편에는 다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의 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이해하는 두 개의 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여간 <반딧불의 묘>가 나에게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영화 자체의 요소라기 보다는 영화 바깥 쪽의 얘기들이다.

 

다음 주부터는 그동안 모아놨던 자료들과 학생들의 글을 모아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라는, 20대 당사자 운동에 대한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책 작업을 시작한다. 원래는 지난 2월에 하려고 했던 것인데, 연재와 강연, 그리고 얘기치 않았던 방중 프로그램에 치여서 이렇게 몇 달 밀린 셈이다.

 

이번 주까지는 생태경제학 시리즈 1, 2권을 어떻게든 1차 마무리하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이 다음 작업이 바로 이 책인 셈이다.

 

아마 부제가 이렇게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실제로 이 책의 부제로 내가 달고 싶은 것은,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한 때 송강호가 했던 대사이다.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어쨌든 이 대사가 이 순간에는 딱 적합하다 싶다는 생각을 몇 번 했었는데, "밥을 먹지 못하면"이라는 생각의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시퀀스가 딱 머리 속에는 <반딧불의 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만큼 에니메이션은 강렬하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남매의 얘기가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그야말로 경제 위기 속에서 별다른 안전판 없이 개별적으로 세상에 내밀린 사람들, 밥은 먹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조직론에 관한 분석을 할 때, 내가 자주 쓰는 분석틀 중의 하나가 균질성과 이질성이라는 개념인데 - 원래는 경제 주체에 대한 두 가지 접근법에서 따온 것이다 - , 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 역시 이러한 균질성의 문제로 종종 해석한다. 늙탱이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세상을 보니, 도대체 이 밖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 턱이 있나.

 

그래도 너희들은 밥은 먹지 않느냐? 주로 지금의 20대들에게 사람들이 하는 말이기는 한데, 이 말이 정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약간의 극단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전쟁, 구조, 그리고 진짜로 개별적 굶주림 같은 몇 개의 키워드들이 반딧불이 번쩍거리는 환상적 장면들 속으로 묘하게 연결이 된다.

 

(90년대 후반, 삼성에서 반딧불을 그룹 차원에서 이미지로 민 적이 있었다. 약간 어이가 없으면서도 잘 해보라고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 반딧불 얘기하던 사람들은 삼성 내에서 지금쯤은 어디에들 있는지,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반딧불이 돌아올 수 있는 생태계를 위해서 삼성이 생태계 보호에 앞장서겠다는 얘기였는데, 10년도 안된 지금,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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