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다이빙벨 그후> 봤다. 만약 한두 달 전이었으면 좀 더 편안하게 봤을지도 모른다. 지금 새 정권은 심하게 위기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과연 세상은 좋아지고 있는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다이빙벨 그후>는 <블랙리스트 그후>로 바꾸어서 보아도 재밌다. 블랙리스트, 말이 좋아 리스트지,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데스노트였다...

_________

며칠 전에 만난 피디가 블랙리스트에 대해서 물어봤다. 이게 참 대답하기 어렵다. 오래 전에 지난 일들을 지금 다시 꺼내서 얘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하여간 고생을 많이 하기는 했다. 그리고 나를 추천한 사람들도 멀리 쫓겨나기도 하고, 심하게 고생하기도 했고.

한 가지 확실하게 바뀐 것은, 작은 출판사 한두 곳 정도에서 책을 냈었는데,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큰 출판사 아주 여러 곳으로 책 내는 곳을 분산시켰다. 한 군데 모으면 털리기 좋다고.

책을 제외하면 털릴 수 있는 곳은 거의 다 털렸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도 그 얘기 계속하고 싶지 않은 것은, 그게 무슨 독립운동하는 것 같이 열심히 뭘 한 것도 아니고.. 그런다고 누가 알아줄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냥 가슴에 묻고 살기로 했다. 섭섭한 마음도 가슴에 묻고, 억울한 얘기도 가슴에 묻기로 했다. 얘기 해봐야, 입증해봐, 이러고 오면 별로 입증하기 쉽지도 않고, 갈 길이 구만리인데 그런 거나 입증하겠다고 신경 쓰는 것도 귀찮은 일이고.

방송은 안 하면 그만이고, 정부에서 주는 약간의 지원 같은 것은 안 받으면 그만이다. 어쨌든 그렇게 10년을 보내고 나니까, 이젠 방송국 근처만 가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정부청사도 가기 싫고. 안 보면 그만이고, 안 만나면 그만이다. 얽히고 싶지도 않고.

줄 서는 것도 싫고, 나 좀 해달라고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것은 이제 죽기 보다 싫다.

이렇게 몇 년을 보내다보니까, 이젠 진짜로 가슴 속에 별로 남은 게 없는 것 같은 기분이다. 다큐 <다이빙벨> 보다가 블랙리스트 얘기가 나와서, 몇 년간 기억도 못하고 묻어두던 것들이 잠시 기억 속으로.

이런 약간의 잔상도 1~2년 지나면 사라질 것 같다. 시간은 많은 것을 자연스럽게 해소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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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극은 어렵다. 위아래 편차가 너무 크다. 적당히 영점 맞추기가 어렵다. 잘 된 영화와 잘 안 된 영화 사이의 격차가, 하늘과 땅 차이다. 거기다 돈은 많이 든다. 적당히 작게, 이런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걸 감안하고 봐주느냐, 그런 건 또 아니다.

 

영화 <흥부>는 여러 가지로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주었던 영화다. 매우 김주혁에게는 이게 유작이 되었다. 이래저래 쉽게 말하기가 어렵다.

 

원래의 얘기와는 상관없지만 글이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게 된 영화로 <대장 김창수>를 생각할 수 있다. 이게 김구 얘기인 것은 마지막 엔딩에서나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리고 그걸 끌어가는 큰 얘기는 인천 감옥에서 김구가 수감자들에게 한글과 한문 등 글을 가르치는 과정이다.

 

영화 <흥부>는 기본적으로는 작가에 대한 영화다. 여의도에만도 수만 명의 이무기가 있다고 하는 드라마 작가로 치환하고 보면 좀 더 편할 것 같다. 1류와 2류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드라마 작가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고, 뭘 꿈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영화 각본을 맡은 백미경 자신의 삶이 상당 부분 영화에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끔 각본의 세계관이 영화의 중심을 구성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형식적으로나 본질적으로나, <흥부>도 그런 영화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흥부 얘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해본 사람 역시 없을 것 같다. 글을 쓰는 작가, 흥부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시대상은 헌종, 조선조 후기의 최고 인기스타 효명세자의 아들이다. 효명은 그냥 아우라로만 나올 줄 알았는데, 후반부의 마당놀이 장면에서 탈을 쓰고 소환된다. 아 효명… (나도 효명세자에 대한 책을 쓰는 게 영원한 로망이다.)

 

그리고 수렴청정을 하는 대비, 어 누구지? , 깜딱야, 김완선이다. “피에로는 나를 보고 웃지”,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웃을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김완선의 등장에 , 이건 영화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역시 망한 영화인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선조로 김창완 아저씨가 나온 적이 있다. 그 때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영화 끝날 때까지도 잔상만 남지, 김창완인 줄 몰랐다.

 

이후로는 장면 장면 넘어갈 때 개연성들이 좀 안 맞는다. 정치적 라이벌인 김씨가 사약을 받게 되는 장면은 딱 컷트 두 개로 처리된다. 물론 그 전에 눈치챌 정황들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갑자기 , 이 배신자 새끼”, 요 대사 하나를 남기고 사약 마시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팽팽할 수도 있던 라이벌 구도의 형성이 무너지고 난 뒤에 영화는 다시 긴장을 끌어올리지는 못한 것 같다.

 

나중에 <심청전>의 저자로 설정된 천우희가 독박 옴팡 뒤집어쓰고 그냥 죽음을 맞는 것도 조금은 어색하다. 뭐야, 여자라서 저렇게 수동적으로 스승 사랑을 하라는 거야? <곡성>에서 소름 이빠이 오르게 했던 천우희가 갑자기 1차원적 인간으로 내려온 느낌이다.

 

원래 마당극이 이렇게 점프가 많잖아? 그럴 수도 있기는 한데, 원래 마당극의 인물들보다도 더 평면적인 인물들의 연속이다.

 

3.

결국 영화가 달려간 곳은 백성이다. 그리고 그 백성들은 임금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조가네의 역모를 막아낸다

 

이게 근본적인 딜레마이기도 하다. 너무 외국 것만 좋은 거시여, 그런 것도 좀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마리 앙뚜와네뜨에게 달려가고 도망가려는 루이 16세를 막아서서, 결국에는 단두대에 올리는 그 기세등등한 프랑스 여인들의 얘기와는 좀 거리가 멀다. 굳이 이렇게 기능적으로만 작동할 백성 얘기를 보자고 앞에서부터 머리에 스팀을 올렸나, 생각하면 좀 뒤가 허무하다. 그게 백성 패러다임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는 왕과 귀족 그리고 외세인 일본의 한계를 넘어선 동학의 어린이개념은 더 모던하다. <흥부>에서 보여준 백성은 좀 올드하다. 왕이 나쁜 게 아니라, 조가나 김가에 휘둘리지 말고 제대로 좀 하라고 말이여옴머머머, 이거 뭔 말이여?

 

현실과 이런 백성들의 인식이 아주 다르다고 하기는 어렵다. 비운의 세자인 효명세자가 끊임없이 이 시대에 소명되는 것과 같은 이해다. 고종 역시 서류상으로는 효명의 핏줄. 효명이 왕이 되었더라면, 이 아쉬움을 떨쳐내는 것과 백성에 대한 끊임없는 호명이 올드해 보이는 것이 어느 정도는 같은 맥락일 것이다. <흥부>는 구조적으로 요 틀에 갇혔다. 그래서 익숙하고 때로는 진부해보이기도 하는, 흔히 하는 조선 말기의 역사 그대로다.

 

그래도 새로운 시도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효명에서 철종에 이르는 기간을 우리는 맨날 비극의 역사라고만 하는데, 음악 등 예술의 눈으로 보면 가장 멋지게 예술이 피어난 기간이기도 하다. 왕실을 틀어쥔 세도가들 얘기만 이 시대에 있던 것 아닌 듯싶다. 그래서 이 시기에 집중한 얘기들이 좀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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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경찰 패트레이버는 tv판을 굉장히 재밌게 봤다. 워낙 오래된 일이었는데, 극장판 1, 2를 안 본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주말을 맞아, 아직 안 본 극장판 1, 2를.

오시이 마모루 작품은 대체적으로 다 재밌다. 공각기동대는 TV용 dvd는 파는 건 다 샀다. 극장용도 재밌고, 최근에 다시 시작한 시리즈도 보는 중이다. 내가 최고로 생각하는 캐릭터인 다치코마는 패트레이버와 공각기동대를 연결하는 메인 테마이기도 한 것 같다.

지금 봐도, 패트러이버는 역시 다층적이다. 조직론에 대한 얘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조직론으로 보니까 역시 재밌다. 2편은 특히 그렇다. 일본 사람들이 조직에 대한 고민이 많기는 한 것 같다. 자위대와 경찰 사이의 전면적 대립 그리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 작은 조직들의 독자행동. 특차 2과의 움직임, 이런 것들의 개별적 동기… 역시 재밌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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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의 <다음 침공은 어디?>, 하여간 이건 꼭 봐야 한다는 사람이 내 주변에 많았다.


극장 관객은 2만명 약간 넘는... 도대체 10명이 넘는 내 주변의 이 영화 본 사람들은? 심하게 내 주변이 왜곡되어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다음 침공은 어디?>를 보면서, 마이클 무어와 싱크로율이 최소 90%는 넘는 것 같다. 게다가 클라이막스 지점쯤에서, 울었다. 이 영화가 울 데가 어디 있다고? 그래도 울었다. 약간은 감동, 그리고 요즘 내 처지를 좀 생각하면서 잠시. 차별이 당당한 우리나라 생각하면서 억울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미국을 반성하면서 유럽 특히 독일이나 프랑스에 관한 책들은 그간 나온 것들이 꽤 있다. 독일의 휴가와 노동강도에 대한 얘기들, 프랑스의 육아와 학교급식...


그 외에도 미국 입장으로 보면 생각할 만한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은.


튀니지 얘기는 나도 처음 봤다. 튜니지 얘기부터 슬슬 눈가에 눈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아일랜드 얘기나 노르웨이 얘기 나오는데, 정말로 펑펑 울 뻔했다.


겁나게 재밌다...


마이클 무어의 뻔뻐니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이미 성공을 거두었으니까 그렇게 뻔뻔할 수 있는 건지, 그렇게 뻔뻔하니까 성공을 한 건지.


하여간 안면 딱 깔고 대놓고 뻔뻔질을 해도, 그것이 정당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감독, 마이클 무어!


딜레마가 남는다.


이 정도 재밌고, 이 정도 뻔뻔하고, 이 정도 완성도 높은 다큐 관객이 2만명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유머와 뻔뻐니즘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깊은 고민에 빠트리게 한 작품이다.


(그리고 튀니지에 가보고 싶어졌다...)


쎈 넘이 독한 맘 먹고 만든 건, 뭐라도 배울 게 있다.


어여들 한 번씩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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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작업하는 감독이 영화 <박열>이 최소한 이 영화보다는 일본 각료들의 회의 시쿼스가 훨씬 낫다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찾아서 보게 된.


일본의 사소설에 기반한 개인 영화는 이 얘기를 하든 저 얘기를 하든 별 상관이 없는데, 조금만 심각한 영화에 대한 건 한국에서는 여전히 말하기 힘들다. 그냥 가만 있는 게 장땡?


영화 <일본 패망 하루 전>은, 사실 그렇게 재밌게 보지는 않았다. 일본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고 '하따 일본넘들 징하제'하는 한국 사람들 아니라면, 이걸 앉아서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한다.


그렇지만 남는 것이 아주 없지는 않다.


전쟁광이라고, 어차피 역사에는 그렇게 남게 될 패전국 사람들이 그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심각하지 않은 스케치들이 몽타쥬라고 생각하면 생각할 거리가 좀 남기는 한다.


그리고 나도 또 일본 현대사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상식도 약간 남기도 하고.


일본이 평화헌법을 과연 고칠까? 흐름으로만 보면 결국 고칠 것 같은.


우리보다는 일본 사람들에게, 곰곰이 한 번 생각해봐, 그런 효과가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몇 년 되었는데, 야스쿠니 신사에 가 본 적이 있다. 그냥 간 정도가 아니라, 거기서 해주는 40분짜리 홍보 영화도 보았다.


배경 음악이 힙합이라, 그야말로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 아주 몸부림을 친다는 생각이 잠시.


군사정권에서 육군과 해군을 대표하는 장관이 있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도죠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나미 육군대신을 맡은 아쿠쇼 코지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꼭 자살하는 장면을 그렇게까지 길게 처리해야 했을까 싶은.


(보니까 심지어 나는 <우나기>도 재밌게 보았다. 이 양반 나온 영화 한 두 개 본 게 아닌데, 전혀 기억을, 끌끌...)


역사의 전환기에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굵은 흔적을 남긴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찬찬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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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종의 전쟁, 꺼져, 트럼프!


 


1.


-미셀 발랑탱(Jean-Michel Valantin)이라는 프랑스 학자가 있다. 만날려면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억지로 누군가를 꼭 만나는 것을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아직 만난 적은 없다. 어쨌든 내 인생을 가장 극적으로 바꾼 한 사람을 꼽으라면, 이 이름도 발음하기 어려운 장-미셀 발랑탱일 것이다. 지금 살아있는 학자 중에서, 나와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사람을 꼽으라면, 역시 장-미셀 발랑탱을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하다. 내가 그의 책을 가지고 죽도록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책 두 권 정도 내고 시시껄렁하게 지내고 있던 시절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나 아내는 괜히 돈 쓰는 걸 죽도록 싫어했다. 아내는 그 때 활동가 생활을 접고 박사 과정에 다니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프랑스 문화원에 가서 이것저것 잡지 뒤적뒤적거리고 가끔 신간 찾아보는 게 거의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그 때 두둥, -미셀 발랭탱의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나보다 2~3살 많을까?


 


하여간 붙잡자 말자, 바로 번역하기 시작해서 번역을 끝냈다 (그리고는 수 년, 내가 아는 모든 출판사에 출간을 의뢰했는데, 한국에서는 시장성 없다고 결국 못 냈다. 내가 한국어 출판을 위해서 뛰어다니는 동안, 그 사이 영어로는 번역되어서 나왔고, 이 분야 고전처럼 되었다. 엄한 책을 집었던 것은 아니라고 약간은 안도…) 번역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책에 나온 영화들은 구할 수 있는 건 일단 다 샀고, 구할 수 없는 것은, 그래도 구해서 봤다. <노스페라투> 수준의, 정말 오래된 영화라서 포스터만 볼 수 있는 몇 개 빼고는 다 구했다. 그리고는? <콜래트럴>처럼 3~4번 보면, 진짜 지겨워서 어쩔 수 없는 것 빼고는 100번씩 봤다. 영화 한 번 보면 100번씩 보는 내 습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00? 어떤 놈은 분석도 하고, 관련된 영화 감독과 제작자 다 만나서 물어보고, 시시껄렁해 보이는 메모들까지 다 뒤져서 책을 내는데그 분석을 뒤에서 따라가면서, 아 그렇군, 배 내 밀고 고개 끄덕끄덕하면서 건방 떨어서야 내 입에 밥이 들어가겠는가? 그런 생각을 했다.


 


천외천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그 말도 장-미셀 발랑탱 이후로 쓰게 되었다. 정말로, 하늘 밖의 하늘을 본 것 같았다. 위대하고 거대하고, 에 또, 고매하고 그런 저자나 작가들은 많이 보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 앞에도 없고, 뒤에도 없고, 그런 비슷한 것도 없는 분석을 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오방. 외울 수 없으면 많이 보기라도. 정말로 죽도록 보고, 대사 적어가면서 보고, 그렇게 영화를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그렇게 하나의 테제에 집중해서, 이미 누군가 친절하게,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그렇게 해놓은 것을 따라가면서 그냥 보는 일을 죽도록 했다. 효과가 있었을까? 직접 효과는 모르겠다. 하여간 그렇게 생난리를 치고 난 다음에 낸 책이 처음으로 만권을 넘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낸 책이 20만권을 넘어갔다. 그게 <88만원 세대>…


 


그 때 배웠다. 잘 난 넘 있으면, 흉내라도. 난 흉내는 냈다. 안되면 시늉이라도.


 


2.




-미셀 발랑탱의 책은, 당시만 해도 불어 아니면 볼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영어로도 볼 수 있고, 문고판은 정말 싸다. 그 뒤로는 번역본 출간에 대한 노력은 접었다.


 


대학교 때 미학 공부를 한 적이 좀 있었고, 어설프게나 영화 미학 같은 것도 좀 봤다. 그 시절에는 리얼리즘 미학이 왕 먹던 시절이다. 그 때, 헐리우드는 상업적 코드와 제국주의 코드를 가지고 있으며, 디즈니의 악한 점은 어쩌구, 저쩌구, 그렇게 배웠다. 돈 되는 건 뭐든지 하고, 뭐든지 하지만 문화 제국주의의 첨병으로서, 뭐 그랬다.


 


-미셀 발랑탱 얘기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다른 어떤 나라의 영화와도 다르게, 펜타곤과 백악관과 밀접하거나 때로는 심하게 반목하면서, 어쨌든 때로는 협력 때로는 갈등, 그런 장르의 영화들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이런 '전략 영화'의 범주와 범위가, 상상초월 넓다. 아 그렇구나, 끄덕끄덕.


 


-미셀 발랑탱은 영화 전공자가 아니라 국제 정치학 혹은 국제 관계학 전공이고, 미국 분야에서 나름 특성이 있는 학자다. 근데 왜 영화를 이렇게 많이 봤고, 이렇게 잘 알아? 할 말이 없었다.


 


그 때 헐리우드 영화의 겉얘기와 속얘기라는 것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고, 영화 기획 단계부터 어떤 것들이 때로는 협력적으로 때로는 적대적으로 작동하는가, 이런 걸 좀 생각하게 되었다.


 


헐리우드 영화는 아무 얘기도 없이 그냥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코드만 범벅? 그런 게 아니란다. 고뤠?


 


그야말로 해석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렇지만 장-미셀 발랑탱이 때로 들이대는 사무실과 사무실 사이에 오갔던 팩스의 문구, 그런 게 반영된 주요 정치인의 연설문 속의 거의 아무도 보는 문구들, 이런 걸 보면서, 그야말로 입 딱. 할 말 없다.


 


, 세상에 뭐 이런 넘이 있나 싶었다.


 


3.


<혹성탈출> 68년에 나왔다. 한국에서도 워낙 인기가 높아서, 혹성은 제대로 된 말이 아니고 행성이라고 해야 한다는 친절한 지침서가 등장할 정도로. 이제는 <혹성탈출>이라는 영화를 표현할 때만 우리는 혹성이라는 말을 쓴다. 안 그러면, 무식하고, 일본식 한자어를 쓰고, 더럽게 터진다. 혹성 아닙니다, 행성!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6학년 때인가, 주말의 명화 같은 데에서 처음 봤던 기억이다. 앞에부터 다 보지는 못했고 중간부터 봤는데, 찰톤 해스턴이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는 엔딩신, 그건 그 시절의 나에게도 충격적이었다. , 이런 게 있구나.


 


그 때의 충격이 워낙 강해서인지, 그 뒤에 나온 자잘한 후속편들도 거의 다 본 것 같다. 물론 날 잡고 본 게 아니라서 쫙쫙 줄거리가 서 있지는 않다.


 


오래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혹성탈출>이 이 비슷비슷한 시리즈물에서 우뚝 서 있는 이유는, 이게 '우주 아니다, 지구야 지구', 이런 라인을 세운 첫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마 문화적으로 가장 전격적으로 <혹성탈출>의 대척점에 서 있는 얘기를 잡자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일 것이다 (<스타워즈>도 역시 우주 얘기이기긴 하지만, 이건 기획 의도나 전개가, 조금 다른 각도다.)


 


<혹성탈출>이나 <파운데이션>이나, 핵전쟁과 그 이후의 지구 오염을 모티브로 하는 것 같다. 냉전 시대에, "나가자 우주로", 이 얘기를 가장 대중적으로 축으로 세운 것이 아이작 아시모프 정도 될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가자 우주" sf 문학이나 sf 영화의 기본 줄기가 된다. 버리자고, 지구는.


 


과학을 좀 하고, 공부를 좀 한 사람들은 60년대에 "나가자 우주", 쒼나게 상상을 펼쳤다. 그 흐름 속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세계적 빅힛트를 쳤고,


 


그런데 갑자가 유인원들이 말 타고 등장하는 영화가 두둥둥, 뭐야 이 촌스러운 것들은, 보던 관객들들은 너무너무 후지고 감성적으로도 올드하다고 느꼈다.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 신을 보기 전까지는.


 


영화가 이제 끝나나, 크레딧 타이틀이 올라가려나, 대체 뭔 소리한 거여, 이렇게 슬슬 엉덩이를 들썩 거릴즈음, 오매나야, 여그가 뉴욕?


 


먼 우주를 돌고 돌아, 이상한 행성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참말로 뉴욕? 그렇다니까!


 


우주냐, 지구냐, 이 끝나지 않을 SF 장르의 논쟁의 대척점 하나를 거대하게 세운 것이 바로 <혹성탈출>이다. 지구를 수백번 터뜨리고도 남을 핵전쟁, 그리고 미소의 냉전 갈등, 알아 알아그런데 우린 뭘 해야 해? 우주로 갈까? 아니거던요. 지구에서 그래도 버티면서 살아남는 수밖에 없거던요!


 


요 라인을 타고 막 21세기로 넘어가려는 시점에 <매트릭스>가 나오게 된다. 그 정도 기술이 발달하고, 그 정도 과학이 발달했으면 안드로메다는 아니더라도 어디 명황성 정도 가줘야 하는 거 아냐? <매트릭스>는 지구 땅 구석 어딘가에 있는 시온의 땅을 찾아 헤매고, 프로그램 내의 위상 공간을 헤맨다. 우주? 몰러, 거긴 멀어.


 


그냥 냉전시대와 핵전쟁 위험만을 얘기했으면 <혹성탈출>이 지금의 그 위치에 가지고 못했을 것이고, 그야말로 리부팅해서 다시 3부작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당히 원숭이 분장하고 허접한 옷 입고 말 타고 다니던 이 영화가 문명사에 남을 정도로 깊은 충격을 준 것은, 우주냐 지구냐, 이 깊고 오래된 논쟁에 한 축을 빡 그었던우주복 입고 진공 놀이하면 재밌디? 좋아 보이디?


 


4.


전작은 이리하여 역사가 되었고, 다시 3부작을 시작한지도 몇 년, 이제 그 대단원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다. 소소하게는 배경과 주요 등장인물 등 차이가 좀 있기도 하지만, 원전 <혹성탈출>과 가장 큰 차이점은, 핵전쟁이 영화 배경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 냉전은 깨졌다. 소련은 벌써 망했고, 동독 출신의 과학자가 이제 독일의 지도자다. 동독? 뭐여? (이언주가 한국의 메르켈이 되겠단다. 이건 또 뭔 소리여?)


 


냉전, 핵전쟁 그리고 살아남는 존재들의 미래, 이런 굵직한 소재 위에 혹성탈출이 얹혀져 있었다. 핵전쟁을 빼고 나니까, 확 힘 떨어진다. 그래 이제 21세기니까! 그럼 이제 뭔 얘기를 하지? , 이거 어려운데. 여기서부터가 창작자의 고통이다. 게다가 리부팅 이후 이미 성공한 1, 2편을 마무리지어야 하는 입장이라면?


 


1, 2, 3편이 독립된 각각의 구성이라고 놓고 분석하는 방법이 있고, 3편을 위해서 1, 2편이 셋업이라고 분석하는 방법이 있다. 어느 편이든, 자기 맘대로일 때가 많다. 원작자가 이런 것까지 얘기해주는 법은 거의 없다. 그럴 리도 없고, 그렇게 소소하게 설명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니다.


 


어쨌든 3 <종의 전쟁>만을 떼어놓고 본다면, 명백히 그리고 다른 소리 할 것 없이, 이건 지도자에 대한 얘기다. 지도자의 속성, 지도자의 덕목,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지도자? 뭔 맥락없이 갑자기 지도자?


 


하여간 3편은 유인원의 유일무이한 지도자인 시저와, 사람들 사이에서도 배척당하고 결정적인 타격을 기다리고 있는 대령, 그렇게 주요 대립을 형성한다. 그리고 실패한 지도자 코바의 죽은 혼령과, '당나귀'라고 불리는 굴욕을 참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코바의 옛 부하들, 그렇게 한무더기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 모든 얘기들은 '증오'라는 한 단어로 수렴된다.


 


증오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


 


코바는 증오를 내려놓지 못했는데, 과연 우리들의 지도자 시저는? 그렇다면 저 잔혹무도한, <지옥의 묵시록>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대령은? 그리고 그의 증오는? 그는 증오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마지막이 너무 비참하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최후의 자존심을 놓고 몸부림을 치는 것인가?


 


원자탄을 내려놓은 <혹성탈출>이 세롭게 안티테제로 형성한 것은 증오에 기반한 국가주의 그리고 그런 상징들이 엉겨 붙으면서 만들어진, 두둥, 바로 극우파 아니겠는가? 여기에 유럽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 미국식 인종주의.


 


유럽에 극우가 또 다른 정당으로 형성된 것은 이미 90년대이고, 일부에서는 대선 결선투표까지도 갈 정도다. 브렉시트로 상징되는 이런 극우파의 흐름에 헐리우드가 눈을 기울이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영화적으로 핵전쟁이 갖는 짧고 강한 임팩트에 비해서, 극우파와 증오는 형상화시키기 어렵다. 그리고 그 딜레마를 개념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형상화하기는 더욱 어렵다.


 


3편 클라이막스의 약간 복잡한 설정은 극우파 코드가 비쥬얼로 형성화시키는 것이 한계를 어느 정도는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옥의 묵시록> 이후, 독단적인 지휘관이 독자적 카리스마가 보여주는 비극적 결말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기획하고 준비할 때부터 유럽은 물론이고 전세계를 한번쯤 덮치고 갈 극우파의 시대를 어느 정도는 예견한 것 같다. 우파든 좌파든, 인간의 조직이라는 한 번쯤 "지도자는?", 이 질문을 하게 된다. 그게 사람 사는 사회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시대가 변하면서 새롭게 다시 한 번 질문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영화를 준비하면서 이미 '트럼프의 미국'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고, 누구든 상관없다. 증오와 두려움 위에 세운 독재, 그리하여 자신들 안에서도 영원하기 어려운 짧은 악몽과도 같은 것이다 (북쪽의 상관이 기동하는 강력한 부대가 영화 안에서 과연 왜 필요했던 것일까,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를 만들 때에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 <종의 전쟁> "꺼져, 트럼프!"라는 짧은 명제와 기묘한 싱크로율을 만들어 내었다. (미국 보수들 내에서도 트럼프가 지나치게 독단적이고, 너무 강하다는 불만이…) 우연이겠지만, 기막힌 우연이 되었다.


 


만약 우리가 <종의 전쟁> MB 정권 마지막 해에 봤다거나, 아니면 박근혜 한참 헤매던 2~3년 차에 봤다면, 우리의 이 영화 해석법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탈애굽 이후, 낙원에 도착하기 직전의 행복감을 맛보려고 하는 시점이다. 극우파 혹은 증오만 강조하는 지도자, 아니, 이건 지나간 얘기라니까. (그러나 미국이라면!)


 


증오와 차별, 어쨌든 21세기가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면하게 되는 주요 주제가 이미 되어버렸다. 이걸 잠시 환기하게 해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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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회 2

영화 이야기 2017. 5. 21. 10:15

별 생각없이 두기봉 감독의 <흑사회 2>를 보게 되었다. 그냥 tv 에서 해주는 일부를 보고는 결국 tv에 2,500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보았다.
멍...


<신세계>의 일부가 보이는 것 같고, <더킹>에서 나왔던 들개신은 아예 통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부산영화제에 나왔나, 하여간 제대로 개봉하지는 않은 영화 정도로만 알고 있다. 확인해보니까 전작인 흑사회는 기념 상연 정도 했던 것 같고, 흑사회2는 상영관 2개에서 누적관객수 364명이다. 아마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면, 기념비적인 364명 중에 한 명이 되었을 것 같다.


20대에서 30대 초반, 나도 이렇게 기념비적인 영화를 보는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아기 태어난 다음에는 다 꽝이다. 1년에 한 번 극장 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보안관> 꼭 봐야 한다고 주위에서 난리인데, 진짜로 갈 형편이 아니다.


<무간도>를 굉장히 재밌게 본 적이 있다. 2편도 재밌게 봤다. 3편은, 음, 그 정도는 아니다.
<흑사회 2>는 충격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많은 제작자나 창작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는 것들이 종종 있다. <더킹>의 들개신은 아마도 여기에서 나온 것 아니겠나 싶다. <더킹>에서의 들개신은 좀 설정적이고, 기능적이다. <흑사회 2>는 영화의 골격에 해당하고, 클라이막스로 달려가기 위한 필수 요소다. 들개에게 물려죽는 것이 주는 원초적 공포가 있나?


최근 한국 영화의 일련의 흐름을 보수신문에서는 '사회파' 혹은 '정의의 상품화', 이런 식으로 부른다. 나는 그냥 '강한 남자 신드롬' 정도로 분석한다. 이런 강한 남자 얘기의 원형과 비슷하기는 한데...


그런 것보다는 스타일이 좀 더 드라이하고, 홍콩 뒷골목의 싸구려 느낌을 잘 살렸다. 한 마디로, 강한 남자라기 보다는 꼬질꼬질한 남자들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구조와 욕망 안에서 그 꼬질꼬질함이 진짜로 지저분한 전략으로 변하게 된다.


나온지 5년도 넘는 영화다. 아마도 수많은 강한 남자 신드롬을 추구한 사람들이 이미 보았을 영화를 뒤늦게 복기 하듯이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보지 않았어도 시대의 영감을 만드는 영화들이 가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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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레이버2

영화 이야기 2017. 3. 22. 11:20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7편의 영화를 며칠에 걸쳐서 봤다. 2014년에서 2015년, 2년에 걸쳐서 영화 7편이 만들어진 거였다. 딱 둘째 애 태어나고 세 살 될 때까지 그리고 내가 뭐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던 그 시절에 만들어진 거였다.

봄이 오고, 둘째 아픈 것도 한시름 놓고 나니까 제일 먼저 한 게 실사판 레이버 영화 찾아본 셈이다. 그 동안에 정신이 없어서 이런 거 있는 줄도 몰랐다.

오시이 마모루가 신이라들 하는데, 진짜로 신 맞는 것 같다. 공각기동대는 매트릭스를 비롯해 수많은 얘기들의 원형이 되었다. 그 정도 하면 어느 정도 한 생에서 해야할 정도의 일은 다 한 거다. 그 반에 반에 반에 반도 못하고 그냥 삶을 낭비하게 되는 게 삶이다.

흔히 하는 말로, '한 바퀴 더' 돈다고 한다.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라는 이 복잡한 제목의 시리즈가, 진짜로 한 바퀴 더 돈 얘기이다.

내 입장에서는 공각기동대보다 더 재밌다. 공각기동대의 최근 시리즈도 봤다. 처음 공안9과가 만들어지는 그 배경에 관한 얘기들이 최근에 다시 하고 있다. 소령이 아직 소령이 아니던 시절...

패트레이버의 특차2과는, 그보다 설정이 훨씬 더 재밌고, 우리의 삶과 더 밀접하다. 그리고 '잉여'와 공무원 사이의 긴장 관계가 더 팽팽하다.

공각기동대는 앞으로 올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전뇌가 더 발달할 것이고, 더 많은 것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설정되어 있다.

패트레이버는, 이미 경쟁에서 밀려버린 기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레이버, 이제는 아무도 만들지 않는 두 발로 걸어다니는 게다가 사람이 타고 조용해야 하는 로봇, 경쟁에서 졌다.

언젠가 퇴화하게 될 기술, 이건 지금 우리의 얘기이다.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이 짧으면 10년 길면 20년 내에 사라지게 된다. 그래도 남을 것과 남지 않을 것, 그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오사이 마모루의 얘기는, 그렇게 경쟁에서 애당초 밀려버렸지만, 아직은 문을 닫지 않은 집단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직이지만, 결코 한가하지는 않은.

며칠에 걸쳐 보면서, 진짜로 몸 세포 구석구석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해리포터, 그런 세계적 빅히트를 친 연작 시리즈들을 아주 재밌게 봤다. 그런 얘기들은, 대부분 내 얘기는 아니다.

Man of the West...

반지의 제왕의 마지막 전투에서 나오는 대사다. 아주 격론이 붙었던 대사다. 그래, 너희는 서양 넘들이고, 저 중간계 한 쪽 끝의 나쁜 넘들은 동양인이라 이거지.

아무리 보편주의, 범용적 감정을 얘기해도 내 얘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는, 딱 우리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 조직, 공기업, 그 중간중간에 잉여 부서들이 있다. 한직, 그렇지만 결코 한가하지 않은...

박근혜와 함께, 한국 자체가 한가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미국에 끼고 중국에 끼고. 전혀 남의 나라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앞으로 뭘 해야할지, 아니 어떻게 해야할지, 좀 방향이 잡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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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실사판은 편이 있다. 공교롭게, 7편부터 봤다. 그리고 한 편을 더 봤는데, 이게 뭔가, 잘 이해를 못했다.

원래 패트레이버는 극장판은 전부 dvd를 가지고 있고, 그 외에도 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찾아봤었다.

주말 내내 애들한테 시달리다가 그 주말의 마지막, 일요일 밤에 아이들 재우고 넥스트 제네레이션 1편의 에피소드 0을 봤다.

뭐지? 이 익숙하고, 오래 전부터 내 피부였던 느낌은?

나중에 보니 감독이 오시이 마모루, 공안 9과의 얘기를 극장으로 옮긴, 바로 그 공각기동대의 오시이 마모루였다.

영화를 보면서, 아니 책이든 소설이든 아니면 시든, 어떤 얘기라도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본다.

98년이었던 것 같다. TV판 에반게리온을 처음 봤을 때, 그 느낌과 유사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강렬했다.

수 년 아니 수십년 동안 잠자고 있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깨어나는 느낌?

내용상 유사한 것은, 2000년인가, <춤추는 대수사선>을 봤을 때...

그 때의 강렬함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자라서, 몇 년 후 결국 공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2.
넥스트 제네레이션 시리즈의 백미는 1편이 에피소드 0이다. 에피소드 제로, 이걸 봐야 그 뒤에 이어지는 허무 시리즈의 줄기가 잡힌다. 나도 이걸 안 보고 뒤의 얘기를 먼저 봤더니, 도통 뭔지 감을 못 잡았다.

얘기는 한직에 관한 얘기이다. 한직이기는 하지만, 진짜로 한가하지는 않다. 두 개의 레이버를 운용하기 위해서 3명씩 두 조, 그 두 조가 24시간 비상 대기한다. 물론 비상 상황은 몇 년째 벌어지지 않는다.

편의점을 딱 두 명이 운용하는 것과 같다고 영화는 설명한다.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바쁘기는 겁나게 바쁘고, 비상 운용체계이다, 몇 년째.

<춤추는 대수사선>이 헤이세이 공황 이후의 일본 관료의 고민을 담고 있다면,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도 마찬가지다. 대수사선에서는 일선서의 애환과 본청 사이의 갈등이 중심이다.

패트레이버는 더 하다. 일선에 있는 경찰서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레이버는 이미 기술적 실패에 대한 논쟁이 끝난 상황이라 - 필요없다고 - 부처가 언제 해체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무의미하지만, 최선을 다 한다...

울 뻔했다. 그리고 조금은 울었다.

난 늘 한직에 있었다. 대기업에 있을 때나, 정부 기관에 있을 때나, 심지어는 연구원 부원장을 할 때나, 늘 한직이었다.

그런데 한직이 한가하지는 않았다. 그런 걸 뭐하러 하느냐는, 남들의 관심 밖에 있는 일들을 했는데, 언제 부서가 없어질지 몰라서 진짜로 죽어라고 밤새고 일했다.

한직이 가끔 바빠진다. 회장 보고 할 때, 장관 보고 할 때 혹은 대통령 보고 할 때, 밤 샌다.

영화 에피소드 2는, 이 한직이 가끔 바빠지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무의미하지만, 안할 수는 없으니까 밤을 새는...

장관 보고로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장하준 교수의 아버님께서, 장관이 되어 상관으로 모시던 시절이 있었다. 겁나 밤 샜다. 장관이 바보면 바보라서 밤 새는 게 힘들고, 바보가 아니면 바보가 아니라서 또 힘들고.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무의미한 일이다.

3.
내 삶은 전체적으로 '한직'이 딱 맞는다. 늘 한직에 있었다. 환경, 에너지, 이런 게 전형적인 한직이다. 아, 그렇다고 해서 바쁘지 않은 건 아니다. 여의도에서는 연구직, 이게 전형적인 한직이다.

지금은?

지금도 한직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 키우고, 기저귀 갈고, 동화책 읽어주고, 빨래 개키고, 그런 데 쓴다.

한직이라고 안 바쁜 건 아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본은 90년대 이후 계속 공황이다. 그러다보니 공직과 대기업의 구호와 위상 그리고 내부적 논의가 많이 바뀌었다.

일상의 한직화?

넥스트 제네레이션 패트레이버 시리즈가 딱 그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화될 가능성 제로,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이 얘기를, 아 딱 내 얘기도, 그렇게 받아먹을 사람들이 있다.

에피소드0을 보면서, 몸 안에 수 년 동안 잠자고 있던 세포들이 막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오 예, 한직. 이게 나의 가장 익숙한 정체성이다. 나, 이런 거 좋아, 딱 좋아.

4.
몇 년째,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 앞에 섰는데, 마땅한 답을 못찾았다.

패트레이버 에프소드 0을 보면서 이 질문에 답을 찾았다.

한직.

공각기동대의 공안9과보다 훨씬 내 삶에 싱크로율이 높은 특차2과 얘기, 진짜 재밌다.

딱 작년 요맘 때, 류승환 감독이랑 사기꾼 얘기를 하면서 '경제 사시꾼'이라고 가제를 잡아놓은 책이 있었다. 출판사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사기'라고 약간 바뀌었다.

어떻게 풀지, 큰 기둥이 세워지지 않아서 계속 미루고 있던 책이다.

한직, 이 생각이 들자마자, 사기꾼 얘기의 주요 줄기들이 딱 맞춰졌다.

오 예, 구성 끝...

점심 때 이 책의 에디터 만나서 밥 먹었다.

이보 보행 로봇이 왜 시대에 뒤떨어졌는가? 인간의 바보 같은 생각...

재밌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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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 가장 큰 일이 있다면, 1995년 BBC 드라마로부터 시작한 일종의 다시 연대기를 거의 한 바퀴 돈 것이다. 드라마도 다 봤고,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도 다시 몇 번씩 돌려가면서 봤다. 심지어 <킹스맨>도 봤다. 다아시, 바로 콜린 퍼스의 이야기이다. 브리짓 존스 3편이 작년에 나왔으니까, 95년의 BBC 드라마부터 물경 20년간 다아시는 콜린 퍼스가 했었다. <킹스맨>의 극중 캐릭터 이름이 다아시가 아닌 게 서운할 정도였다. 그 때 방한한 콜린 퍼스의 인터뷰 방송까지 찾아서 봤다.


다아시 혹은 콜린 퍼스, 이 얘기는 다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까지 이어졌다. 원래 소설이 있고, 소설 역시 엄청 히트쳤다고 들었다. <오만과 편견> 패로디는 엄청나게 나왔고, 아직도 나오는 중인가 보다. 다아시를 엄청 좋아하거나, 영국 B급 코메디, 소위 화장실 유머를 그닥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이 돈 들여서 이런 영화를 왜 만들었어, 캐 박살 날 영화다.


<고무 인간의 최후>를 끝까지 볼 수 있는 사람에게 다아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좀비 영화는 아무 것도 아니다. <고무 인간의 최후>를 만든 피터 잭슨이 뉴라인시네마에서 <반지의 제왕> 만든다고 했을 때, 배신이라고 한바탕 난리들 났었다. 대중적인 감성은 아닐지 몰라도, <고무 인간의 최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름 폭넓게 존재한다.


나는 <고무 인간의 최후>를 보았을 정도가 아니라 DVD로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이건 간만에 엔돌핀 팍팍 돌게 하는, 도대체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출발했는가, 나의 감성의 기원에 관한 영화이기도 했다.


그래, 저 장면에서 바로 "19세기 영국에서는...", 이렇게 역사 왜곡 들어가야지, 갖다붙이기, 그래 바로 저거야. B급 정서에서는 은유와 직설, 이런 게 탁탁 들어가면서 "그래, 저런 게 순실이야", 요 정도로 바로 꺽고 들어가줘야 한다.


원작에서 백작부인 캐서린 드뵈프 매우 강직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나온다. 물론 하는 역할은 좀 그렇다 싶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는 와중에서도 나름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리하여 결코 밉지만은 않은 캐릭터이다. 캐서린 여사와 엘리자베스의 논쟁, 이 밀리지 않는 최강의 여상 캐릭터 둘의 설전이 원작에서는 클라이막스에 해당한다.


좀비판 오만과 편견에서는 캐서린 여사가 아예 영국 최강의 여전사이며, 사상최대의 좀비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초강력 캐릭터로 나온다.


오 예, 캐서린 드푀프, 이 정도 해줘야지! 거럼 거럼, 원작을 정말 충실하게 잘 해석했다니까! (이 장면을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나말고 동아시아에 또 있을지는 모르겠다.)


심지어는 캐서린 여사는 애꾸눈 안대까지 하고 나온다. 오 마이 갓! 혹시나 모르고 그냥 넘어갈 관객을 위해서 짚고 넘어간다.


"안대는 기능성이예요, 패션이예요?"


"당연히 기능성이지."


19세기 영국 사교계 여성들의 과장스러울 정도의 패션이 나름 기능성이었다는 꼼꼼함, 이 장면에서 문득 그 시대를 살았던 경제학자, 톨스타인 베블렌을 연상.


영화 시간 대에 집어넣기 위해서 중요한 장면들은 많이 스킵하고 넘어가지만, 결정적 장면들은 대부분 살렸다. 아, 이런 패로디 소설이나 영화를 볼 사람들은 이미 원전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 그냥 보면, 다아시가 도대체 왜 강물에 뛰어들어? 그 날이 엘리자베스가 나중에 실제로 다아시를 사랑하게 된 첫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소감,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걸 다시 깨달았다.


비주류의 비주류,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감성과 느낌의 출발점이다. 비주류만 해도 벌써 주류 축이지, 뭐. 비주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진짜 축에도 못끼는. 그게 내 감성이고, 그럴 때 딱 좋다.


영화 <황산벌>에 악의 축에 관한 대사가 나온다. 그리고 곧 이어,


"이런, 축에도 끼지 못하는..."


난 이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이 감성이 딱 좋다. 한국에서는 영국식 B급 코미디, 축에도 못 들어간다. 90년대, 2000년대, 프랑스의 극단적 예술영화와 영국식 B급 코미디 그리고 간간히 나오는 이해 난이도 너무 높은 독일 영화, 이런 게 헐리우드가 싫으면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그 시절에는 일본 문화가 수입금지라서, 일본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 때부터 나는 B급 영화, 그 중에서도 화장실 유머 범벅이고, 도대체 왜 만들었을까, 기획의도 같은 게 잘 안보이는 영화들을 좋아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렇게 살았다.


유학은 왜? 목표, 그딴 거 없었다. 그냥 되는 대로 살고, 흐르는 대로 흐르고, 가끔 수틀리면 팍 개겼다. 입 다물고 살지만, 가끔 개기는 일도 안 하지는 않았다.


그 시절에 내 피에 흐르는 극단적 비주류 감성, 오 예,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이걸 보면서 다시 살아났다.


도대체 이런 걸 왜 만들었어? 너는 다아시 다시 한 번 안보고 싶어. 네네, 보고 싶어요, 소희 선생님 (둘째 아이의 작년 담임이신데, 새학기 들어 담임이 바뀌니까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요즘 난리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거, 다 맞다고 할 때, 아니 난 그냥 딴 거 할래요, 이런 축에도 못끼는 사람들의 많이 가볍고, 약간 저질스러운 정서, 이게 그냥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에는 이런 캐릭들이 많이 나온다. 간만에 긴장 풀고 편하게 영화 봤다. 딱 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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