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모르지../소소한 패러독스'에 해당되는 글 46건

  1. 2020.11.06 아내 생일 선물..
  2. 2020.11.05 야구 끝난 날.. 1
  3. 2020.11.03 중도 유감..
  4. 2020.11.03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1
  5. 2020.10.31 어떤 벤치 사진.. 1
  6. 2020.10.30 지금 여기서 행복하면 안 돼?
  7. 2020.08.26 오늘도 감사한다.. 1
  8. 2020.08.23 누군가의 맹활약.. 1
  9. 2020.06.10 내일의 나..
  10. 2020.06.10 주류의 교체.. 1

다음 주에 아내 생일이다. 결혼하고 첫 해에만 슈바로브스키 목걸이 셋트를 선물하고, 내내 립스틱으로 때웠다. 그냥 쓸 돈이 내내 부족해서, 그 돈이나 이 돈이나..

올해는 간만에 통장이 좀 넉넉해서 슈바로브스키 셋트 다시 살려고 했다.. 애들은 보석을 외쳤는데, 아내는 백을 골랐다. 살까 했었는데, 도니가 달랑달랑해서 안 샀다는..

아내 생일에 제대로 된 선물을 한 게 정말 몇 년만인가 싶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거의 실시간으로 아내가 빼간다. 그래서 난 늘 달랑달랑 하고 살고, 아내는 나보다 넉넉하게 산다. 올해는 외국에 두 번 정도 갈 계획이 있었는데, 한 번 움직이면 워낙 대부대가 움직이니까 돈이 솔찮게 들어간다. 코로나 덕분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하여간 국경을 넘어가기 어렵게 되어서 그 돈이 고스란히 남아서.. 생각지도 않게 통장에 돈이 남아돈다.

후배들 밥 사주던 것도.. 코로나 국면으로 정말 꼭 봐야하는 경우만 살짝살짝 보니까, 이래저래 돈이 남아돈다. 에헤라 디야!

내가 다루는 주제들은 보통은 인기 없는 분야들이고, 기피하는 분야들이다. 슬픈 일들이 많고, 힘든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최선을 다 한다고 해도, 많이 개선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능하면 나는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려고 한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크게 웃으려고 한다. 내 마음이 힘들면, 힘든 주제를 다루기가 어렵다.

그래서 늘 웃는다. 야구 엄청 깨진 날에는 웃기 어렵지만, 그래도 즐거운 구석을 조금이라도 찾아서 웃으려고 한다. 상대편이 잘 하면, 기가 막히네, 그렇게 웃으려고 한다. 그래야 어려운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된다.

지방에 갔다 오거나, 밖에 길게 나갔다 들어오면 애들 먹을 거나 선물 같은 것을 꼭 사오려고 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 즐거운 기억이 많아야, 다른 사람들 좀 살피고 돌볼 수 있지 않을까, 아비의 작은 소망이다.

내년에 써야 하는 주제들 잠시 생각을 해봤다. 판데믹, 젠더, 도서관, 다 슬픈 주제들이고, 사람들이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주제들이다.

프랑스에서 코로나 2차 봉쇄가 시작되었다. 정부에서 그 기간에 열어도 되는 필수 상점들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동네 책방은 그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파리 시장이 나서서, 이러면 안 된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필수 품목에 술도 들어갔는데, 책이 필수 품목이 아니란 말인가? 게다가 곧 노엘, 크리스마스인데, 그 때 책을 못 팔면 동네 책방들은 너무너무 어려워진다는 얘기.. 그걸 파리 시장이 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잠시 뭉클해졌다.

시락이 파리 시장하던 시절에 대한 약간의 기억이 있다. 나중에 대통령도 했지만, 뭐 별로.. 명박이 그 모델을 따라 서울 시장을 하고, 대통령도 했다. 파리 시장, 그냥 대충 인기 있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동네 책방을 필수 항목에 넣어달라고 파리 시장이 나서는 걸 보면서.. 작은 감동이 생겼다.

우린 요즘 감동이 너무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사람 그 얘기 할 줄 알았어..

요즘 성공한 사람들의 말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90%는 자기 잘났다는 얘기를 하고, 10%는 저 새끼 잡아죽여라.. 그런 것 같다. 가끔 그 비율을 거꾸로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성공한 사람, 아니 성공한 아저씨 중에서 "저 사람을 돕자", 그런 얘기 하는 사람은 김훈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김훈이 이렇게 감동을 주는 원로가 될 줄은, 5년 전에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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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끝났다. 코로나 국면에 신경이 잔뜩 서 있던 한 해, 그래도 야구 보면서 긴장을 좀 풀었다. 이길 때나, 질 때나, 잘 하는 해나 못 하는 해나, 그래도 야구 좀 보면서 저녁 시간에 쉰다.

야구가 끝나고 나니까, 한 해가 다 지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올해의 휴식은 야구와 '미스터 선샤인'이 책임진 것 같은.. 미스터 선샤인은 벌써 다섯 번째인가, 보는 중이다. 이래저래 돈 많이 들어간.

마루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데, 작은 공하고 플라스틱 배트로 애들 둘하고 야구하면서 저녁 시간에 놀아준다. 우리 집 애들은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한다. 이제는 곧 잘 친다. 이제 슬슬 큰 애하고는 캐치 볼 해도 될 순간이 온 것 같다.

고등학교 들어가면 우리 집 애들은 둘 다 동네 편의점 같은 데에서 한 달간 알바하는 걸 시킬까 하는 생각이다. 누군가를 모시고, 시중도 들고, 그런 굳은 일도 배워야 할 것 같다.

유학 시절, 너무 돈이 없던 적이 있었다. 박사과정 때 결국 방학 때 식당에서 서빙하는 알바를 했다.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니었는데..

그 때 배운 걸로 아내 친구들 오면 가끔 진짜 카페 프라페를 만들어준다.

아주 크게 돌아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 배운 게 적지 않은 것 같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누군가에게 시중 드는 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살다 보면 빈정 상하는 일이 많다. 예전에 식당에서 서빙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빈정 상하는 일이 사실 또 그런 거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이다. 잘 참는다. 그리고 술 처먹고 나면, 또 아무 기억에 없을 정도로, 금방 까먹는다.

몇 달 전에 장관 한 명이 나에게 생지랄을 했다. 진짜 뭐라고 해줄까 하다가, 에라이 양아치.. 그리고 말았다.

차관 한 명이 나에게 완전 얼음 뚝뚝 묻어나는 표정으로 싸늘하게 뭐라고 하고 간 적이 있다. 아주 더운 날이었는데.. 마침 옆자리에 박용진 의원이 있었다. 야, 어마무시하게 찬바람 풍기고 갔다고 했더니, 박용진이 웃으면서.. 자기에게도 그러고 갔다고 한다.

에라이, 양아치, 그리고 넘어갔다.

청와대에서 엄청 싫어할 글을 하나 써야 하는데, 야구 지는 거 보면서, 그냥 못 본 척 뭉개고 넘어갈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는 않았다.

힘 있는 데에 착 달라붙어서 살아갈 거면, 그냥 잘 하는 팀 우리 팀, 그러면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너무 가난했던 집은 아니다. 먹고 사는 게 불편하지는 않은데, 부모에게 뭔가 물려받을 것은 없는, 그냥 고만고만한 중산층 정도인 것 같다.

지금 내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 이 나이에도 집 없고, 전세 살거나, 심지어 월세 사는 사람들도.

차 없는 사람이 요즘 시대에 누가 있냐고 하는데, 내 주변에는 차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천지삐까리다. 일부러 가난한 사람들과 주로 노는 건 아닌데, 외골수로 살아오고, 남들 안 가는 길을 혼자 가는 사람들과 주로 어울리다 보니까.. 가난한 사람들 투성이다. 그래서 챙겨줘야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모두를 챙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살다보니까..

욕심을 덜 내고, 손에 든 걸 그래도 많이 풀면서 살게 되었다. 입에 세 끼 밥 들어가는 게 고통스럽지 않으면, 삶은 그만하면 충분하다.

그저 야구를 조금만 더 잘 했으면 하는 약간의 바램이 있지만, 그런 것도 내려놓은지 좀 되었다.

오늘은 야구 끝난 날이다. 나의 올해는 아직 좀 남았다. 처리해야 하는 골 아픈 일들도 산더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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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유감..

정치권에서 습관적으로 중도라는 표현을 쓴다. 좌우의 중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는 뉘앙스.

민주당을 기준으로 보면 좀 더 왼쪽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 민주당에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의 민주당 주류는 예전의 동교동 계열 보다는 좀 더 왼쪽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민주당 중에서는 오른쪽.

민주당 좌파를 비주류라는 의미에서 중도라고 많이 표현하는 것 같은데, 거기가 왜 중도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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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하는 클래스 e 강의 4회분을 촬영하고 돌아왔더니, 아이고 삭신이야.

로버타 플랙의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을 들었다. 진짜 좋았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대에서 유배자로 지내고 있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보통은 지치면 TV를 틀어놓고 멍하니 있는다. BTS는 적응을 포기했다. 남들 듣는 걸 뭐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나는 그걸로 전혀 휴식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 시절까지는, 아, 저런 걸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참으면서 봤다.

그 나머지의 절반 아니 거의 대부분은 트로트다. 10년 가까이 멍하게 TV 아니면 영화를 많이 보다가, 드디어 TV를 껐다. 젊은 세대의 문화 감각 탐방과 최신 트렌드의 이해.. 그런 거 말고 나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문화적이고 정서적으로, 나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그냥 받아들인다. 내친 김에 로버타 플랙 노래를 조금 더 들었다.

비슷한 노래를 몇 개 더 찾아 듣다보니 007의 주제가 'Gold Finger"까지.. 좋기는 좋은데, 이거 좀 너무 하다 싶은 생각이 문득.

어쨌든 잠시 멘탈이 회복, 저녁 먹고 나서 내일 마감인 서평까지 무사히 마무리.

최근에 우연히 이래저래 미술관을 좀 갔고, 일요일에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쥐어짜서 연극도 보고 왔다. 파우스트 얘기, 대가리 뽀개지는 줄 알았다.

연출가에게 어렵다고 했더니, 너한테 예전에 배운 얘기를 쓴 건데 니가 어렵다고 그러면 어쩌냐.. 돌아버리겠네. 에전에 내가 그런 얘기도 했었나? 참,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얘기 많이 하면서 나도 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20대부터, 유행과는 약간, 아니 꽤 비껴서서 살아온 것 같기는 하다. 남들 아무도 안 보는 책들 보고, 시대와 안 맞는 음악들 들으면서.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소리 떠들면서..

그렇게 좀 똘아이 스타일로 살았던 것 같은데.. 여전히 그 지랄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연극도 좀 보고, 미술관도 지금 보다는 좀 더 자주 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문화적 치매 방지에는 좀 효과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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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보이는 벤치 사진인데, 며칠째 계속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혹시라도 노숙자가 벤치에 누울까봐 누움방지용 칸막이가 있는 벤치다. 사진은 눈에 익숙한 건데..

2018년인가, 영국에서 이 벤치를 도입하려고 했었나보다. 난리가 났다. 이게 인간이 할 짓이냐? 결국 도입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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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주말에 강릉에 갔다왔더니, 한 주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그냥 지나가버렸다. 어떤 때는 한 주가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월요일인가 싶은데 벌써 금요일이고. 

코로나 때문에 애들 태권도장 문 닫고 있을 때에는 정말 일주일이 몇 년처럼 지나간 것 같다. 그 때는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다.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던 시간들. 그리고 그 때 밀린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은.. 우와 돌아버리겠네! 

행복이란 게 별 거인가 싶다. 몇 주 전에 비하면, 지금은 일상이 행복이다. 훨씬 나아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입이 방정이다”라고 말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면 마치 그 얘기 때문에 아직 오지도 않은 행복이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은, 그래서 우울하고, 불행해야 삶의 기본인 것 같은.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점잖은 사람이 할 얘기가 아닌 것 같은. 

그래서 뭔가 사고, 뭔가 갖추고, 그래야 행복하다고 느끼도록 훈련 받은 것 같다. 그냥 행복하다고 느끼면, 뭔가 좀 모자라거나, 피지배적 길들임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늘 행복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늘 불행한 것도 좀 이상하다. 행복과 슬픔 같은 것들은 교차로 오는 것인데, 우리의 한국 문명은 행복은 감추고, 슬픔은 과장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니까, 어딘가 가야 행복하고, 그래서 늘 어디론가 떠나려고 하고. 그렇지만 현실은 일상성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일상적으로 불행하게 생각하게 되고. 

그냥 여기서 행복하면 안 돼? 

외국에 가지 못해서 자기가 요즘 얼마나 불행한가를 한참을 공들여 설명하는 사람들을 요즘 좀 봤다. 이해는 가는데, 좀 측은하기도 했다. 자신이 얼마나 여행을 좋아하는데, 코로나 이후로 여행이 어려워서 너무나 불행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나도 외국에 가는 걸 몇 개나 취소했고, 지방에 가는 여행도 많이 없앴다. 좀 아쉽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지금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코로나 이후로 문득 여행과 행복, 일상성에 대해서 잠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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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면서, 그저 감사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악악거리고 억울한 것만 생각해봐야, 답도 안 나오고, 남은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큰 애 방학 때 교실 리모델링 한다고 꼼짝 없이 애 보느라 죽는 줄 알았다. 이제 겨우 개학인가 했더니, 개학 첫 주에는 코로나 때문에 돌봄 교실 못 한다고.. 망했스요.

허망한 마음에 산책 나갔는데, 내일부터 긴급 돌봄 받아준다고. 당분간 급식은 없어서 도시락 싸보내라고 학교에서 문자 왔다.

오 예! 살았스!

감사할 일은 이런 게 감사할 일이다. 내가 아무 노력도 안 했는데, 누군가의 노력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그저 감사하며 살아갈 뿐이다.

오늘도 또 한 번의 큰 감사를 한다. 성질 내고 심통 낼려면 하루에도 백 개씩 그런 일이 있다. 설령 그런 일이 없더라도 지나간 날들을 곰곰히 되씹으며, "그 새끼, 그 때 아작을 냈어야", 이러면서 사는 게 속은 편하다. 근데, 좀 그렇다.

그냥 감사하면서 살아간다.

돈 조금만 더 넉넉하게 있었으면, 이런 생각이 가끔 든다. 그래도 세 끼 걱정하지 않고, 먹고 싶은 거 아무 때나 먹고 살면 그거로 충분하다.

얼마 전에 집에 손님이 왔는데, 컴퓨터 모니터로나 쓰는 구닥다리 작은 TV를 아직도 보냐고..

얼래, 저 옆에 있는 스피커 세트 합치면 5백만 원 넘는데?

순간 아차. 내 인성이 아직도 이 모양이다. 아 네, 하고 웃으면 될 일을.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감사하고, 오늘도 반성한다.

매일 해야 할 일은, 이 두 가지 말고는 약간의 운동 그리고 몇 번의 큰 웃음. 우울증을 멀리 하기에는 이 방법 만한 게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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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오후에 회의 한 군데 가기로 약속한 게 있는데, 큰 애가 아직도 방학 중이다. 엉겁결에 대답을 했는데, 방학 중인 걸 생각을 못했다. 아내는 바쁘다. 

오늘 오후에는 내일 가기 어렵다고 전화를 해줘야 하는데, 입이 잘 안 떨어진다. 

몇 년 전부터, 약속을 하기가 싫어졌다. 해봐야 잘 지키지도 못한다. 코로나 이후로 특히 더 그렇게 되었다. 자꾸 몇 달 후 약속을 하자고 하는데, 하나마나다. 나도 내 일정을 모르는 게, 나 아니면 아내가 시간을 내야 하는데, 아내도 먹고 사느라고 코가 석자다. 

돈을 아내보다 내가 더 잘 벌 것 같으니까 아내가 일을 그만두고 내가 움직이는 게 맞다고 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는데.. 내 인생은 2016년, 애들 보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진작에 결정을 했다. 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더 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 조금 하고, 내 주변의 몇 사람들 도와주면서 남은 인생, 잔잔하게 살아갈 뿐이다. 

코로나만이 문제가 아니라, 내 주변의 에디터들 중에서 지금 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올해 대부분 그만두거나 자리를 옮기거나. 책들이 다 붕 떠 있다.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뭔가 행정행위 같은 걸 하면서 제 자리를 찾으려고 노력을 했겠지만, 요즘은 나도 모르겠다, 그냥 방치한다. 지금 내가 부지런하게 움직인다고 해결될 종류의 일은 아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취업에 따른 차별에 대한 자문을 좀 해달라고 한다. 회사별 임금 차이에 관한 문제인데.. 골 아픈 얘기다. 방향은 그 방향이 맞는데, 임금 격차를 너무나 자신이 생산성과 결부시켜서 생각하는 문화적 풍토가 강해서, 임금에 대한 조정이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 머리 한 쪽이 지끈지끈하다. 

별로 소득이 생기는 일은 아닌데, 결정적인 힌트를 달라고 하는 자문 요청이 너무 많다. 누가 물어보면 아는 만큼 성심성의껏 답 해주는 게 예전부터 몸에 배어서 그런지, 하여간 전화 오부지게 많이 온다. 그리고 한 번 전화하면 잘 안 끊는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냐.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만다. 

그냥 남은 인생, 화 내지 않고, 양아치처럼 살지 않아서 최소한의 우아함을 지키면 좋겠다는 정도의 생각. 

그래도 돌아보면 내 삶에 대해서 늘 감사하게 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하루 세 끼 먹고 사는데 특별히 고통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산 인생이다. 굳이 힘든 걸 얘기하자면, 이 코로나 주말에 갑자기 세탁기가 망가져서, 새로 주문한 세탁기는 한참 걸려서나 온다고 하고.. 코인 세탁방에 온 식구가 출동해야 하는, 그런 쪼잔한 일들이 생겨났다는. 

2020년 여름, 코로나 2단계 거리두기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냥 버티는 시간이지만, 이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강요된 단절’로 인하여 기가 막힌 생각의 전환이 생겨날 수도 있다. 좋게 생각하면, 창조의 시간.. 그런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할 뿐이다. 기술경제학에 spill-over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누군가 잘 해서, 나도 좀 얻어먹고, 그걸 그렇게 표현한다. 이제 나의 맹활약 대신, 누군가의 맹활약을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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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걱정 없는 날이 하루라도 있겠냐만은, 일단 오늘은 걱정이 없다.

뭘 발제할 것도 밀렸고, 쓸 것도 밀렸고, 이래저래 해야 할 게 주루르 밀려있겠지만..

그건 내일의 나가 맹활약해서 해결해줄 거고, 아니면 모레의 나.. 그도 아니면 위대하신 주님이 또 다른 해결 방법을.

오늘의 나는 애들 올 때까지 몇 십분 남은 시간이나마, 그냥 나를 위해서 잠시 뒹굴뒹굴, 놀 거다.

내일의 나가 오늘의 나보다 부지런하고 유능하고, 또 심통내는 법이 없다는 게, 하늘에서 내가 부여받은 거의 유일한 행운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니, "내일의 나"라는 제목으로 에세이집을 해보면 어떨까 싶은, 오늘의 나 같은 개수작 발상이.. 결국 쓰는 건 내일의 나가 할 거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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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로 살아가면, 말수가 줄어들게 된다. 가만히 있는 게, 이것저것 의견을 내서 사람들 경악하게 만드는 것 보다는.

같이 회사 다녔던 사람들 중에서도 내가 진짜로 가졌던 생각을 어느 정도 아는 경우는 드물다.

하고 싶은 말, 시시콜콜이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50이 넘어서 문득 돌아보니까, 이게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이 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 같다. 아주 주책 맞게 맹활약만 계속 얘기하는 성공한 일부 빼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 중에는 아주 수다스럽고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고, 매우 과묵하고 거의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고.

보수로 살아간 남자들 중에는 아주 수다스러운 사람들이 종종 있다. 때로 대구 아저씨들이 매우 수다스럽던, 특히 술 마시러 가면.

돌이켜 보니까, 전라도 출신 친구들도 다 같이 모일 때에는 말수가 적었던 것 같다. 한국은 오랫동안 지역 차별이 체질화된 사회였다.

서울에 온 경상도 아저씨들이 목소리 높일 때, 목소리 낮추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시대가 변한다.

DJ 시절에는 홍어회를 먹는 경우가 많았고, 매생이국을 전라도를 고향으로 둔 실장이랑 밥 먹으면서 처음 먹어봤다.

노무현 때에는 특별히 유행한 음식이 별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여전히 청와대 인근의 홍어회집에 가면 청와대에 파견 온 높은 아저씨들과 옆 테이블에서 만나고는 했다. 부산 음식이 유행할 게 별로 없다. 여전히 부산 최고의 음식은 회다. 음식에 소금 좀 덜 넣었으면.. 정부랑 상관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 새로 팍 퍼진 음식이 보리굴비였던 것 다. 일본식 녹차물에 밥 말어먹던 게, 그 시절에 엄청 유행했다.

명박 때에는 하여간 과매기들 어마무시하게 먹어댔다. 그냥 많이 먹는 정도가 아니라 슈퍼에도 가을이면 쌓아놓고 팔았다. 생각만 해도 코끝에 비린 맛이 돈다. 이젠 과매기 안 먹고 싶다. 명박 때 기억이 너무 많이 난다.

근혜 때에는 한정식 전성시대였던 것 같다. 하여간 죽어라고들 한정식 먹던. 한식 세계화한다고 난리치던 시절, 모였다 하면 돈이 있든 없든, 한정식집이었다.

특별한 음식은 주류의 형성과 함께 움직인다. 문재인 시절, 무슨 음식으로 이 시기가 기억될까?

주류의 교체라고 하는데, 어투와 음식, 이런 것들이 확실히 문화적으로 시대가 변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나는 좌파를 선택하면서 비주류로 살게 되었고, 행위자 보다는 관찰자의 삶을 살게 된 것 같다.

앞으로도 나의 '맹활약'을 얘기하기 보다는 남의 맹활약을 들어주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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