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 아내 생일이다. 결혼하고 첫 해에만 슈바로브스키 목걸이 셋트를 선물하고, 내내 립스틱으로 때웠다. 그냥 쓸 돈이 내내 부족해서, 그 돈이나 이 돈이나..
올해는 간만에 통장이 좀 넉넉해서 슈바로브스키 셋트 다시 살려고 했다.. 애들은 보석을 외쳤는데, 아내는 백을 골랐다. 살까 했었는데, 도니가 달랑달랑해서 안 샀다는..
아내 생일에 제대로 된 선물을 한 게 정말 몇 년만인가 싶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거의 실시간으로 아내가 빼간다. 그래서 난 늘 달랑달랑 하고 살고, 아내는 나보다 넉넉하게 산다. 올해는 외국에 두 번 정도 갈 계획이 있었는데, 한 번 움직이면 워낙 대부대가 움직이니까 돈이 솔찮게 들어간다. 코로나 덕분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하여간 국경을 넘어가기 어렵게 되어서 그 돈이 고스란히 남아서.. 생각지도 않게 통장에 돈이 남아돈다.
후배들 밥 사주던 것도.. 코로나 국면으로 정말 꼭 봐야하는 경우만 살짝살짝 보니까, 이래저래 돈이 남아돈다. 에헤라 디야!
내가 다루는 주제들은 보통은 인기 없는 분야들이고, 기피하는 분야들이다. 슬픈 일들이 많고, 힘든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최선을 다 한다고 해도, 많이 개선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능하면 나는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려고 한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크게 웃으려고 한다. 내 마음이 힘들면, 힘든 주제를 다루기가 어렵다.
그래서 늘 웃는다. 야구 엄청 깨진 날에는 웃기 어렵지만, 그래도 즐거운 구석을 조금이라도 찾아서 웃으려고 한다. 상대편이 잘 하면, 기가 막히네, 그렇게 웃으려고 한다. 그래야 어려운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된다.
지방에 갔다 오거나, 밖에 길게 나갔다 들어오면 애들 먹을 거나 선물 같은 것을 꼭 사오려고 하는 편이다. 어렸을 때 즐거운 기억이 많아야, 다른 사람들 좀 살피고 돌볼 수 있지 않을까, 아비의 작은 소망이다.
내년에 써야 하는 주제들 잠시 생각을 해봤다. 판데믹, 젠더, 도서관, 다 슬픈 주제들이고, 사람들이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주제들이다.
프랑스에서 코로나 2차 봉쇄가 시작되었다. 정부에서 그 기간에 열어도 되는 필수 상점들 리스트를 발표했는데, 동네 책방은 그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파리 시장이 나서서, 이러면 안 된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필수 품목에 술도 들어갔는데, 책이 필수 품목이 아니란 말인가? 게다가 곧 노엘, 크리스마스인데, 그 때 책을 못 팔면 동네 책방들은 너무너무 어려워진다는 얘기.. 그걸 파리 시장이 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잠시 뭉클해졌다.
시락이 파리 시장하던 시절에 대한 약간의 기억이 있다. 나중에 대통령도 했지만, 뭐 별로.. 명박이 그 모델을 따라 서울 시장을 하고, 대통령도 했다. 파리 시장, 그냥 대충 인기 있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동네 책방을 필수 항목에 넣어달라고 파리 시장이 나서는 걸 보면서.. 작은 감동이 생겼다.
우린 요즘 감동이 너무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사람 그 얘기 할 줄 알았어..
요즘 성공한 사람들의 말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90%는 자기 잘났다는 얘기를 하고, 10%는 저 새끼 잡아죽여라.. 그런 것 같다. 가끔 그 비율을 거꾸로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성공한 사람, 아니 성공한 아저씨 중에서 "저 사람을 돕자", 그런 얘기 하는 사람은 김훈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김훈이 이렇게 감동을 주는 원로가 될 줄은, 5년 전에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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