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경제학, 표지 나왔다. 아마 곧 나올 것 같다. 몇 번 탈탈 털어서 고치느라고,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이제 나도 체력이 떨어지는 게, 한 해가 아니라 한 달이 다르다.

농업경제학 원고를 전면 개정하는 작업을 가을에 할까 했는데, 무리인 것 같다. 내년으로 넘겨야할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일정 소화하면서도 시간이 남아서 다른 것도 좀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일정대로 가는 것도 힘들다.

책이 점점 더 안 팔리니까, 한 권 한 권, 누르고 눌러서 꾹꾹 담아내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

Posted by retired
,

정세균 책 초고 끝냈다. 언젠가 정세균 은퇴하면 평전 쓴다고는 했는데, 그걸 지금 써달라고 해서.. 고민을 하다가, 그와 거의 매일 같이 만나면서 지냈던 2년간 그리고 그에게 해 줄 잔소리들을 쓰기로 했다. 기왕에 정치에 대한 에세이를 쓰면서, 나중에 빨갱이 에세이 쓸 때 쓰려고 꼬불쳐두었던 것까지 탈탈 꺼내 쓰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없던 스타일의 원고가 되었다. 일단은 '다크 히어로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부제는 '오세훈을 꺾은 사나이'. 읽은 사람들은 엄청 웃기다고는 하는데, 내가 웃겨봤자지..

이걸 쓰면서 한 명이라도 사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다. 정치인에 관한 책은 정말 잘 안 팔린다. 선거철에 팬덤이 있으면 몰라도, 정세균은 팬 별로 없다. 그에 관한 책까지 찾아다니면서 읽을 사람은? 글쎄올시다.

그래서 진짜로 한 명이라도 순수하게 책 내용 때문에 읽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썼고, 정말로 한 명이 그렇게 본다면 일단은 성공. 매우 솔직하고 내가 알고 있는, 무의식 속의 기억까지 탈탈 털어낼 정도로 공들여 썼다. 그리고 그 한 명이 이 책을 읽고, 뭔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거나,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공들여서 썼다.

내 주변에서는 다들 반대했다. 안 팔릴 것도 안 팔릴 거지만, 정세균 책을 뭐하러 쓰느냐는 거다. 그 말들도 이해는 가는 말이지만, 나와 정세균이 지냈던 시간들을 알리는 기록하고 알리는 것이 책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특별하고 독특한 경험을 한 것은 맞다. 한국에서 정책 라인이 뭐고, 그런 게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런 얘기를 이 기회를 빌려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기도 했고, 아울러 이 기회를 빌어 내가 한국 경제에 대해서 기대하는 얘기를 좀 편안하게 해보기도 싶었다.

하여간 초고는 끝났고.. 이제 곧 내 손을 떠나갈 것이다. 진짜 한 명의 독자라도 책을 집어들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출판사 대표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웃는다. 겉은 웃어도 속은 쓰리겠지. 그래도 그 한 사람의 독자에게 저자로서 충분히 좋은 책을 읽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면 나는 대만족이다. 책이라는 게 늘 편안한 상황에서 안전한 주제만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극한의 작업을 한 번 마친 느낌이다. 개운하다.

'낸책, 낼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세균 책 교정 끝내고..  (0) 2021.05.23
팬데믹 경제학, 표지..  (0) 2021.05.13
팬데믹 경제학, 정말 마지막 원고..  (0) 2021.04.19
빨갱이라는 소수자..  (10) 2021.04.17
나는 빨갱이다..  (5) 2021.04.12
Posted by retired
,

큰 애가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집 얘기를 하게 되었나 보다.

"아빠는 요즘 마감이래요."

내가 마감 때문에 바쁘다는 말을 집에서 했나? 큰 애가 마감이 언제 끝나냐고 물어본다. 글쎄, 늘 뭔가 마감 중이라서, 나도 마감 기간이 언제 끝나는지 잘 모르겠다.

"아빠는 15년째 마감 중이야."

아내가 말했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건강이 좋은 때보다는 안 좋은 때가 더 많았는데, 그렇다고 확 쓰러지는 경우도 별로 없어서.. 생각보다 여유 없이 살았다.

이것저것 계획을 많이 세웠는데, 대부분 나의 계획은 불발탄이 되거나, 실패의 경우가 더 많았다. 이렇게까지 여유 없이 지낼 생각은 아니었는데, 너무 못 쉬고 살았다. 애들 보면서부터는 속도가 떨어져서 더욱 어려워졌다.

2016년에 애들 보면서 했던 작은 결심 하나가 "바쁘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외부에는 대체적으로 바쁘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바빠도 안 바쁘다고 하는게, 바쁘다고 해봐야 봐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약간의 경험 때문에. 할 일 없어 보이고, 놀고 있어 보이는 게 더 맘이 편하다. 그래도 애들한테는 가끔 바쁘다고 말하게 된다. 뭔가 놀아달라고 하는데,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내 인생에 마지막 바쁜 순간이라고, 이를 악물면서 8월까지만 버티려고 한다.

살면서 언제 가장 바빴을까? 현대 있던 시절의 3년차가 좀 바빴다. 결국 imf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그 바쁜 것도 끝났다. 공단 있던 시절, 총리실 있던 시절에는 바쁜 적이 좀 있었다. 문재인 당대표 시절에도 좀 바빴다.

지금이랑 비교해보니까 그때 바쁜 건 축에도 못드는 일이었다. 애들 안 보던 시절하고는 아예 비교 자체가 어렵고, 긴장감도 지금이 더 높다.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들, 내가 사랑했던 것들,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 그런 것들 생각하면서 8월까지만 버텨보려고 한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은 한두 주 정도지, 몇달을 그렇게 버티지는 못 한다. 그렇게 때우면서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자체가 그렇게 많지가 않다. 버리는 시간으로 버티는 방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출판사 등 주변 여건을 되는대로 하고 살았는데, '당인리' 이후로 나도 느낀 바가 있다. 이제는 책도 거의 안 팔리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 이제는 좀 더 힘을 덜 빼는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당인리 읽지 않은 출판사 대표랑은 일을 안 할 거다. 내가 생각하는 저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예전에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냥 책 내자고 하면 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힘들어서 그런 방식으로는 도저히 못 하겠다.

하루하루가 긴장감이 너무 높으니까 8월이 끝나고 살아갈 인생에 대해서 이것저것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이고, 하루 넘어가기가 너무 힘들다..

'아린이들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둘째의 선언..  (0) 2021.06.03
신비 아파트 극장판..  (1) 2021.05.31
나는 그냥 물이나 한 잔..  (0) 2021.04.26
아들. 미안해..  (3) 2021.04.25
조립식 건담 사건..  (1) 2021.04.18
Posted by retired
,

애들하고 백화점 왔다가 카페에서 잠시 휴식 중. 애들 하나씩 사주고 나는 커피 대신 맹물. 내 입이라도 줄여야..

'아린이들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비 아파트 극장판..  (1) 2021.05.31
아빠는 마감 중..  (1) 2021.04.27
아들. 미안해..  (3) 2021.04.25
조립식 건담 사건..  (1) 2021.04.18
돈이 주머니에서 술술..  (0) 2021.04.17
Posted by retired
,

여덟 살 둘째가 오늘 물었다. 

“아빠, 나는 쌍카풀 있어요?”

“없어, 아빠 닮아서 그래. 미안해.”

아빠 닮아서 쌍카풀이 없는 걸 왜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큰 애는 쌍카풀 있다. 사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다 쌍카풀 있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 안 하고 살았는데, 대학 때 영화 <우견아랑> 보면서, 연인 둘 다 쌍카풀이 있는데, 태어난 아이가 쌍카풀이 없다는 대사 보면서 그런 생각을 처음 했다. 

그나저나 둘째한테 내가 그걸 왜 미안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마음 속 깊숙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쌍카풀이 있거나 없거나, 그건 살면서 별 상관 없었는데, 눈이 심하게 안 좋아서 잘 안 보이는 건 많이 불편했다. 큰 애는 올해 눈이 많이 나빠져서 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안경 꼈다. 

큰 애한테는 아빠 닮아 눈 나빠서 미안하다고 하고, 둘째한테는 아빠 닮아 쌍카풀 없어서 미안하다고 한다. 아빠로 살면, 맨날 미안한 것 투성이다. 

'아린이들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빠는 마감 중..  (1) 2021.04.27
나는 그냥 물이나 한 잔..  (0) 2021.04.26
조립식 건담 사건..  (1) 2021.04.18
돈이 주머니에서 술술..  (0) 2021.04.17
슈퍼에 가면  (3) 2021.04.06
Posted by retired
,

'낸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씨네 21, 연극편..  (0) 2021.06.17
경향 칼럼. 구청장에 대하여..  (0) 2021.05.24
lh와 정권, 어느 것을 지킬 것인가?  (6) 2021.03.29
가덕도 '대타협 특별법'  (1) 2021.03.01
<일탈>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가?  (0) 2021.02.24
Posted by retired
,

재택근무 원고와 결론을 수정한 팬데믹 경제학 최종 원고를 끝냈다. 요즘 누가 책을 본다고 그렇게 책을 쓰느냐, 그런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방송은 그 시기에 가장 핫한 얘기 1회성으로 다루고 넘어가는 것 이상은 하기 힘들다. 언론의 기획 기사도 깊이는 들어갈 수 있어도, 종합적으로 사태를 다루기는 힘들다. 한 사건을 일정한 깊이 이상으로 넓게 볼 수 있는 매체는 여전히 책이다.

이번의 팬데믹 경제는 내가 책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애먹었던 책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팔리지 않아서 힘들었던 책들은 좀 있었는데, 쓰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이렇게 애를 먹었던 책은 처음이다. 책 말고도 주변 여건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었다.

지난 몇 달간 진짜 이를 악물고 버텼다. 팬데믹 상황에서 팬데믹에 대한 얘기를 하기,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렇다고 애들이 협조를 하냐, 절대 그런 거 없다.

방학 중에 끝낼 생각이었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서 그새 개강을 했고, 벌써 학기도 절반이나 지나갔다. 낮은 걸음걸이로, 조금씩 조금씩.

사회과학책만 기준으로 하면, 10대를 위한 독서 책이 여름 후반부부터 작업을 시작할 것이고, 그게 끝나면 젠더 경제학 작업을 할 예정이다. 그 틈틈이 빨갱이 에세이를 몇 달에 걸쳐서 조금씩 쓸 생각이고.

어떻게든 필라델피아에 갈 수 있으면 도서관 경제학을 올해 시작하려고 했었는데, 아마도 미국은 올해에도 가기 어려울 것 같다.

내년까지 밀린 책들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면 '한중일 경제학' 준비 모드로 넘어가려고 한다. 50권을 채우려고 지난 몇 년간 계속 책을 쓴 건데, 몇 년 전부터 이 책을 마지막 책으로 하려고 했었다. 준비 기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다.

지인들이 북경에 있는데, 간만에 북경도 좀 다녀오고.. 준비하면서 일본에 좀 길게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정 내 실력으로 딸리면 중국과 일본의 주요 인사들 인터뷰를 할 생각도 있다. 그 전에 출판사 관련된 일들을 좀 정리정돈을 하려는 것은.. 출판사에 돈을 좀 벌어줘야 몇 년이 될 이 큰 일에 연구자금을 좀 투입할 수 있을 거라서.

나도 학자 생명의 마지막을 건 일이라서, 숨 크게 쉬고 여유 있게 가려고 한다.

'낸책, 낼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팬데믹 경제학, 표지..  (0) 2021.05.13
정세균 책 초고 끝내고..  (4) 2021.05.13
빨갱이라는 소수자..  (10) 2021.04.17
나는 빨갱이다..  (5) 2021.04.12
윤여정은 나의 선생님  (1) 2021.03.18
Posted by retired
,

 

큰 애가 처음 만든 조립식 건담.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둘째가 가지고 놀다가 한 쪽 뿔을 해먹은. 난리 났다. 결국 다음 주에 새 거 사기로. 돌아삐리.

'아린이들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그냥 물이나 한 잔..  (0) 2021.04.26
아들. 미안해..  (3) 2021.04.25
돈이 주머니에서 술술..  (0) 2021.04.17
슈퍼에 가면  (3) 2021.04.06
집짓기 놀이..  (0) 2021.04.03
Posted by retired
,

 

"빨갱이라는 소수자" 정도의 제목으로 생활 좌파 에세이를 써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난 번 에세이집이 왕창 망해서, 에세이집은 쉬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도 생활 좌파에 대한 얘기들이 뭔가 가슴에 불을 당긴다. 의무감으로 쓰는 책들이 있다. 농업 경제학이나 젠더 경제학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도서관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에세이집은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글들이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아직은 그런대로 머리가 도는데, 몇 년 지나면 이것도 힘들 것 같다. 아직 힘 있을 때, 이런 불편하고 골 아픈 얘기를 한 번 다루어 보고 싶어졌다. 

데뷔할 때 ‘C급 경제학자’라는 타이틀을 들고 데뷔했다. 실제로 그 시절 사람들이 나를 부르던 별명이 그거였다. 그냥 나는 평생 C급 타이틀을 들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빨갱이는 줄이라도 잘 서야 하는데, 나는 그것도 싫었다. 

DJ 정부 때 청와대에 들어갈 일이 있었다. 적당히 좌파 말고 진보 경제학자라고 하고 청와대 행정관 정도 하면 좋겠다고 하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 나이에 그렇게 나의 신념을 접으면 평생 이상하게 살 것 같았다. 그냥 싫다고 했다. 인연이 이상하게 꼬여서 청와대 가는 대신에 총리실로 가게 되었다. 

그 뒤로는 청와대 갈 생각을 진지하게는 한 번도 안 해 본 것이, 내가 거길 갈 마음이 있었으면 30대 초반, 진작에 갔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 나는 나 혼자서 ‘자랑스러운 빨갱이’로 이번 생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세상을 왕따시키는 편을 선택한 것 같다. 니들하고는 안 놀아.. 

요즘 생각이 든 건, 한국에서 좌파들이 당하는 취급은 일종의 소수자 취급과 같다는 것이다. 진보라고 하면 주류인데, 좌파라고 하면 갑자기 비주류다. 그 중에서도 빨갱이라고 스스로 말하면, 소수자가 된다. 그걸 나는 ‘비주류의 비주류’라는 말로 이해를 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이제 내 나이도 50대 중반이다. 이 나이를 먹고도 “그래, 나는 빨갱이다”, 이 말을 당당하게 못 하면 도대체 내 인생은 뭔가,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 내가 무슨 영광을 더 보겠다고, 적당히 묻어가고, 적당히 숨어서 살겠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워낙 인생이 삐딱선이라서,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그래도 그냥 막 살기는 싫고, 그런 사람들은 내 뒤로도 나오고 또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밀리고 밀리고, 결국은 혼자서 많은 것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세 끼 밥 먹고 살면 더 이상 행복할 게 없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았다. 남들 은근슬쩍 다 하는 소소한 부패도 나는 손이 떨려서 못 했다. 내 노동 소득 외에는 다른 소득을 갖는 것도 나는 싫었다. 집 몇 채씩 사고, 틈틈이 이사 가고, 주식도 여기저기 적당히 털어놓고, 그렇게 해서 돈을 벌어서는 나한테 떳떳하지가 못할 것 같았다. 

아마 남은 인생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적당히 개기면서 살아갈 것 같다. 

좌파라고 해서 꼭 무슨 정당 활동을 해야 하거나, 시민단체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건 지금까지도 넘치도록 많이 했지만,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을 소소하게 생활 속에서 지키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런 걸 ‘생활 좌파’라고 부르고 싶다. 아마 나는 그런 정도의 모습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것 같다. 

난 아직도 가슴 한 구석에 로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고, 명랑한 마음을 유지하고 싶다. 그리고 남을 웃기지는 못해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고 싶다. 

누가 나한테 여유로운 삶을 살았겠다고 얘기하면 “네, 큰 고생은 없었네요”, 그러고 만다. 내가 얼마나 큰 고생을 했는지, 살아남기 위해서 뭔 짓들을 했는지, 그걸 구질구질하게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건 그냥 가슴 한 구석에 가끔 꽃을 피는 선인장처럼 살아남아 있으면 된다. 지우려고 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 그 기억들을 굳이 꺼내서 인생을 다시 지옥 같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해봐야, 결국 아무도 감동받지 않는 빛 바랜 영웅담의 우중충한 이야기일 뿐이다. 

생활 좌파 정도로 키워드를 잡을까 했는데, 기왕에 좌파 얘기 하는 것, 아예 화끈하게 ‘빨갱이’로 키워드를 잡고 나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언제 이런 얘기를 또 쓰겠나 싶다. 이게 묘하게 진보라는 말과 좌파라는 말의 차이점이 있다. 진보는 뭘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옘병. 한국의 진보들은 세상은 안 바꾸고, 자기 인생들만 바꾸었다. 좌파는 변하지 않는 태도를 지키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고, 자본주의에 대한 삶의 방향 같은 것이다. 

나 아직도 진보가 뭔지 모르겠다. 그리고 한 번도 나의 정체성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세상은 변한다. 계속 변한다. 방송에서는 시사 교양이라고 부르는 분야들이 소위 ‘연성화’를 넘어서 괴멸적 타격을 받는다. “이게 맞다, 저게 맞다”, 그런 얘기하는 시기는 한국식 계몽주의의 종료와 함께 끝났다. “가르치는 것 같아요”, 뭔가 얘기하려는 것은 외면 받는다. 시대가 그렇다. 

그래도 여전히 교양이 중요하고, 삶에는 원칙 같은 게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하는 사람 한 명쯤 한국에는 있어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드냐”, 그렇게 얘기하는 것처럼 “권력이 그렇게 좋드냐”, 그런 말 하는 사람 한 명쯤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낸책, 낼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세균 책 초고 끝내고..  (4) 2021.05.13
팬데믹 경제학, 정말 마지막 원고..  (0) 2021.04.19
나는 빨갱이다..  (5) 2021.04.12
윤여정은 나의 선생님  (1) 2021.03.18
리셋 대한민국, 한국일보..  (6) 2021.03.01
Posted by retired
,

애들 조립식 장난감 사준다고 나갔다가, 엉뚱한 칼 두 개까지 뜯겼다. 주머니에서 돈이 술술 흘러나가는 것 같다.

'아린이들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 미안해..  (3) 2021.04.25
조립식 건담 사건..  (1) 2021.04.18
슈퍼에 가면  (3) 2021.04.06
집짓기 놀이..  (0) 2021.04.03
애들 목욕하는 거 보다가..  (1) 2021.04.02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