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는 애들 목욕할 때면 나도 같이 들어가서 세 명이서 난리를 치면서 했었다. 그래도 전부 다 해서 30분도 안 걸렸다. 나중에는 욕조가 좁아서 애들만 들어가고, 내가 나중에 머리 감겨주고, 그렇게 했다.

요즘은 지들이 하나씩 들어간다. 큰 애는 이제 혼자 머리 감는다. 한 명이 40분씩 욕조에 들어가서, 신나게 놀다 나온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우리 집에서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양동이에 물을 끓여서 머리만 감았던 기억이다. 그 시절에도 보일러로 뜨거운 물이 나오는 집이 있기는 했는데, 우리 집은 그렇지는 않았다. 겨울이면 머리 감는 게 아주 큰 일이다. 우리 집은 보일러를 아주 늦게 설치했다.

우리 집 애들은 다른 건 몰라도 욕조에서 노는 건 아주 제대로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 있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옥토넛을 비롯한 장난감을 잔뜩 들고 들어갔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따뜻한 물 속에 있는 걸 즐긴다. 확실히 선진국 국민이다.

박영선과 반지하 같은 거주지에 대한 메카니즘을 논의하려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바람에 전국의 반지하 통계를 전부 찾고, 서울, 대전, 제주, 이런 몇 개의 도시의 샘플 비교도 했었다.

이래저래 정치일정이 급해져서, 반지하법은 논의만 하다가 형성화시키지 못했다.

대전 이하로는 반지하는 거의 의미가 없고, 주로 서울 등 수도권에 해당하는 얘기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고.. 구옥과 단독주택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가난한 지역과 부촌에 크게 상관하지 않고 오래된 건물이 있는 곳에서는 다 발생하는 일이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그 시절에 조사차 반지하 몇 군데 가봤다. 그리고는 몇 년간 반지하에 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애들 욕조에서 40분씩 목욕하는 거 보면서, 반지하법 고민하던 시절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흔히 지옥고라고 하기는 하는데, 각각 조금씩 작동 방식이 다르고, 접근하는 방식도 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30대~40대, 나도 우리 사회의 가장 춥고 배고픈 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살았는데.. 어느덧 나도 현장 싸움을 접고, 더 이상 춥고 어두운 곳에는 잘 가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시기를 보내기는 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그냥 살다가 편안하게 뒤지면 그만인가 하는 생각이, 애들 목욕하는 거 보면서 문득 들었다.

학위 받고 도시빈민 운동 한다고 부천에 가서 살았던 시절이 잠시 생각났다. urbanism, 그 시절의 흔적이 이제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그 때 필요해서 공부했던 도시 공학의 지식들만 나이테처럼 내 몸 한 구석에 남은 것 같다.

무슨 운동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부천 살던 시절의 기억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 몇 년의 기억이 가끔 꿈에서 나오면, 진짜로 고통스럽다.

그 후로는 가난한 것에 대해서 안다.. 그딴 얘기는 안 하게 되었다.

언젠가 정신적 여유가 되면 서울의 반지하에 대한 얘기들을 한 번 해보고는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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