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둘째가 오늘 물었다. 

“아빠, 나는 쌍카풀 있어요?”

“없어, 아빠 닮아서 그래. 미안해.”

아빠 닮아서 쌍카풀이 없는 걸 왜 내가 미안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큰 애는 쌍카풀 있다. 사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다 쌍카풀 있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 안 하고 살았는데, 대학 때 영화 <우견아랑> 보면서, 연인 둘 다 쌍카풀이 있는데, 태어난 아이가 쌍카풀이 없다는 대사 보면서 그런 생각을 처음 했다. 

그나저나 둘째한테 내가 그걸 왜 미안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마음 속 깊숙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쌍카풀이 있거나 없거나, 그건 살면서 별 상관 없었는데, 눈이 심하게 안 좋아서 잘 안 보이는 건 많이 불편했다. 큰 애는 올해 눈이 많이 나빠져서 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안경 꼈다. 

큰 애한테는 아빠 닮아 눈 나빠서 미안하다고 하고, 둘째한테는 아빠 닮아 쌍카풀 없어서 미안하다고 한다. 아빠로 살면, 맨날 미안한 것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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