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고통을 준 책이 '생태 요괴전'이라는 책이다. 12권으로 된 대장정 시리즈 중 5권을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이래저래, 이 책은 귀신들린 책이기는 하다. 원 모티브나, 책을 결정적으로 쓰기로 한 그 순간이나, 다 귀신 들린 얘기들로 구성된 책이다.

그리고 겁나게 안 팔린 책이기도 해서, 7권 째인, 본 책의 하일라이트를 거의 1년이 되도록 길게 고민하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쓰기로 한 원 모티브는 동경에서 있었던 어느 날 사건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정확히는 꿈 얘기이다.

1권인 <88만원 세대>가 일본에서 출간된 이후에 일본에 이런저런 이유로 가게 될 일이 좀 있었는데, 그 중의 어느 날.
나를 아주 힘들게 했던 어떤 사람이 꿈에 나타났고,

나는 꿈에서 아주 힘들었다.

그러다가, 너는 가짜야, 그렇게 말했더니,

그 사람이 낙엽으로 부수어져서 사라졌다...

그런 얘기다만. 어차피 꿈의 얘기고.

약간 디테일을 기억하면, 날 힘들게 했던 여인이 자신의 '쌍둥이 동생'이라고 해서 나타났던 게 그 꿈의 내용이고,

내가 진실이라고 말한 것은, 그런 쌍둥이 동생이 있을리가 없다..,

뭐, 그런 자다말다, 그런 꿈 속의 얘기들이다.

어쨌든 즐겁든, 즐거지 않던, 나는 그런 꿈의 얘기들을 좋아하고, 말은 과학의 세계라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요괴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 때 한 번 해봤다.

내 주변에 귀신들이 살까?

하여간 마흔이 넘어가려던 그 시점에, 어쩌면 아주 어린 시절에 봤던 그런 귀신들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었다.

자, 그건 일본판 요괴들에 관한 얘기고...

<여고괴담>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참 좋았던 영화 시리즈이다. 그 끔찍한 얘기들이, 서양 얘기나 기껏해야 일본식 요괴 얘기나 들으면서 살아야 했던 내 10대와 20대의 기억을 넘어, 우리도 그런 얘기 정도 있어...

하는 그런 시리즈가 되었다.

<생태요괴전>을 준비하면서, <여고괴담> 시리즈를 전부 한 번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이미 너무 늦어서 DVD도 구할 수가 없었고... 사려고 해도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여간 어쨌든 여기서 빌리고 저기서 빌려서, 볼 수 있는 만큼은 봤다만...

전체 시리즈를 다 보고 나니, 가장 기억에 남는 게 3편, 여우계단 이야기이다.

박한별이라는, 정말 좋은 배우가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었던 배우가 나왔던 영화이고.

그는 요즘 뭐 하나?

여교괴담은 수 없는 여배우들이 데뷔한 무데가 되기도 하였지만, 전체를 다 놓고 보니, 영화 내에서는 박한별의 느낌이 제일 좋았다.

여우계단은, 무용, 다이어트, 그리고 경쟁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물론 여고괴담 시리즈는 전부 다, 대학 입시라는 큰 틀, 그리고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귀신이 되어, 자신을 죽게 만든 바로 그 친구를 여우계단에서 만났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박한별은, 그 친구의 허리를 졸라 죽음으로 이루게 하는 선택을 했다.

날, 다시는 기다리게 하지 마...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이 그 시대를 버리고 있던 시절,

여고괴담을 보면, 지난 10년이 어땠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이 시리즈가 6편이 나온다고 한다. 한국에서 리얼리티를 말한다면, 여고괴담 외에는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가끔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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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 감독의 <어느날 그 길에서>를 포함한 DVD 셋트가 발매되었다. 나는 보자마자 샀다.

아까워서 아직 뜯지도 못하고 있다.

DVD 박스는, 언제나 로망을 준다.

어제 반이다에서 만들었던 <개청춘>을 동숭아트센타에서 봤다. 처음 티저를 받아들었을 때, 이게 과연 상업극장에 올라갈까, 참 안타까웠었다.

그 한동안의 무거운 마음을 털고 오는 자리가 되었다.

<개청춘>을 비롯해서 <미얀마> 등 20대 감독들이 만든 장편 다큐들이 있고, 단편도 몇 편 있다. 그리고 찾아보면, 그런 작품이 인디 영화에서도 몇 편 더 있을 것이다.

이런 걸 보아서 DVD 셋트로 나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빡 하고 때리고 지나간다.

박스본은, 언제나 로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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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영화 이야기 2010. 7. 5. 03:24
나도 나를 잘 못 믿겠다. 내 직관과 감각은, 진짜 나도 못 믿겠다.

<워낭소리> DVD는 샀고, <어느날 그 길> DVD 셋트도, 사실 감독한테 직접 받은 DVD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샀다.

그렇게 지나는 길에 <똥파리> DVD를 보고, 내가 이걸 볼까, 싶어서 안 샀다. 참, 내 감각이란... 진짜 빙신이다.

하여간 개봉한지도 한참 지난 어느날, 우여곡절 끝에 똥파리를 보게 되었다.

아, 이 느낌이란!

내가 최근에 가장 많이 보는 영화는 <황산벌>인데, 이건 극장에서 볼 때는, 아, 이런 게 있구나 싶다가,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서 아주 재미었진 영화이다. 그래도 <여배우>까지 극장에서 챙겨볼 정도로, 생각보다는 극장도 자주 가고, 영화도 챙겨보는 편인데...

극장에서도 보고 DVD도 챙겨서 사서 본 영화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짝패>, 조금 더 올라가면 <달마야 놀자> 정도?
하여간 그런 내 인생에 <똥파리>는, 그야말로 한 방에 충격,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었다.

자, 곰곰히 생각해보자, 처음에 보자마자, 팍 녹아버린 그런 영화가 뭐가 잇었을까? <반지의 제왕>? 그건 아니다. 공부해서 나중에 해석한 거지, 처음에 1편 보러 갔을 때, 입이 툴툴 나와서 - 영화와는 다른 사정이 좀 있었다 - 좀 심드렁했었다. 

자, 다시 생각을 해보자, 뭐가 이렇게 한 방에 가게 만들었던 영화일까? 

전또깡 시절에 숨어서 봤던 <전함 포템킨호> 그리고 영화에 목숨 건 사람들이 나한테 이건 꼭 봐야 한다고 보라고 해서 본 구로자와 아키라의  <난> 그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들은, 생각만 바꾼게 아니라, 내 삶도 바꾸었다.

<똥파리>는, 그러나 솔직히, 충격의 깊이로는 그런 영화와도 정도가 달랐다. 한 마디로, 뭐 저런 게 다 있나...

처음에는 배우한테 관심이 갔다. 어디서 저런 개뼉다구가 튀어 나왔나, 옛날에 <깜보> 보면서 박중훈 유명해지기 시절에 처음 봤을 때의 느낌보다 더 강렬했다. 뭐야, 저 개뼉다구는, (씨발넘이..).

어서 저런 게 튀어나왔나 싶었는데, 아, 이 씨발넘이 감독이랜다, 돌아버리겠네...

충격에 젖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생각해본다. 이 익숙한 느낌은, 어디에서 나왔던 건가?

아, ,<쏘나티네>... (이건 DVD만 벌써 3번을 샀는데, 첫번째거는 트랙이 날라가서 불랴이었고, 그 뒤에 산 2장은, 어렵쇼, 안 보이네? 한 장 더 살까 하는데, 어째 나와는 인연이 없다 싶어, 고심 중이다.)

기타노 다케시 생각할 때마다, 왜 우리에게는 저런 넘이 없나 싶었는데, <똥파리>, 이건 확실히 기타노 타케시로 쳐도, 살짝 넘는다. 게다가, 그는 조선말로 말한다, 시빨넘아...

리얼리즘은 한국 영화에서는 다신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한 구석에서 돌아왔고, 난 넘들은 마치 시대가 만드는 것처럼, 충격으로 다시 돌아왔다.

살아서 한국에서 이런 영화를 볼 날이 올 줄은, 미처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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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끝 간데 없는 슬럼프 중이다. 하여, 원래 뭔가 잘 될 데 극장도 가고, 놀러도 다니는데, 극장 가본지도 몇 달 된다. 하여 <내 깡패같은 애인>은 극장에서 못 보고, 쿡티비에서 그냥 3,500원 내고 봤다. 괜히 KT 돈 벌게 하는 것 같아 맘이 썩 편치는 않지만, 하여간 공짜로 보는 짓은 어지간해서는 안 하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감독과 박중훈에게 집중되는 영화인데, 나는 김광식 감독의 인터뷰를 먼저 봤다.

인터뷰가 많이 있기는 할텐데, 가장 길게 인터뷰 기사를 내는 곳은 보통 <인물과 사상>과 의외로 <월간 바둑>이다.

나는 <월간 바둑>에 나온 인터뷰를 먼저 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월간 바둑>에 나온 사람들은 민감한 얘기들도 술술 털고, 자기의 민감한 얘기들도 자발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으로 복잡한 매체가 아니고, 또 바둑이라는 소재가 워낙 중립적이며, 경계심을 늦추게 하는 때문일까? 아니면 월간 바둑 인터뷰 준비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는 것일까?

어쨌든 김광식 감독의 월간바둑 인터뷰는, 간만에 보는 재밌는 인터뷰였다. 그가 어떤 경로로 예술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저예산 영화 감독으로 데뷔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면으로 나온 인터뷰 중에 하나가  기억에 남는 것은 박중훈에 대한 감독의 평가였다.

"그는 데뷔하는 감독이 뭐가 필요한지, 미리 알고, 그렇게 했다."

이걸 보면서, 나는 박중훈이 이제는 슬슬 한국의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이해를 했다. 작년에 KBS에서 열었던 토크쇼는 전 정권에 있던 수많은 MC들을 학살하고 펼쳐진, 그야말로 킬링필드였다. 그 자리에 떡 하니 자기 토크쇼를 여는 걸 보면서, 내심 섭섭하기는 했다.

아니, 저러고 입에 밥이 넘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 토크쇼는 실패했고, 대체적으로 시기를 보면 토크쇼의 실패 이후 그 직후 아니면 약간 뒤에 시작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뭔가 생각이 있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박중훈급 되는 스타가 저예산 영화에 기꺼이 끼어들고, 그 안에서 혼심의 힘을 보여준 영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동강 보존 그리고 KBS의 광역화라는 두 가지 민감한 주제를 다루었던 <라디오 스타>도 간만에 박중훈의 매력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후일담이지만, 나는 이 영화를 무척 재미있게 보았고, 의미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KBS 피디들은 이 영화의 예기치 않은 영향으로 좀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내 깡패같은 애인>은, 박중훈이 있어야 설명이 될 것 같고, 이미 <투 가이즈>부터, 양아로 나오는 껄렁껄렁 스타일에 상당히 익숙해 있으니, 그야말로 예습 많이 하고 보는 셈이다. (또 그래서, 너무 익숙한 분위기로 놓치는 부분도 많아진다는 문제점도 있는 것 같다.)

두목급 어깨에서 자동차 유리창 닦이로 전락한 사례는, 그 옛날에 <영웅본색>의 윤발이 오빠와 이미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하여간 비장하지 않아서 좋았다.

여배우인 정유미는, 익숙하지 않은 배우라서, 사실 아무 느낌 오지 않았다.

(<가족의 탄생>을 한 10분 보다가, 도저히 재미없어서 못 보겠다, 꺼버린 적이 있어서, 불행히도 그의 전작 중에 본 게 없다.)

<걸 스카우트>에서 처음 봤던 박원상이 여전히 매력적이었는데, 박원상만 중심으로 보면 이번 영화가 훨씬 더 매력적이면서도 느끼하지만, 약간은 비장한, 그래서 입체적인 인물로 나왔던 것 같다.

박중훈이 연기는 잘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는 깡패 영화에서 그를 살려냈던 그 모티브가 워낙 반복되다 보니, 입체적인 느낌이 들었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를, 그런 점에서 좋아한다.)

정유미의 경우는, 너무 많은 레퍼런스들이 있어서 그런지, 납짝하게 눌린 듯한, 그런 평면적 모습이 나왔다.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떻게 행동할지, 그리고 저 장면에서는 어떠한 표정을 지을지, 그다지 입체적인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하긴, 그 군상에 속한 사람들의 모집단 자체가 워낙 밋밋하고, 단면적이니, 그를 표상화해도 어차피 그런 모습 밖에 나오지 않는 것 아닐까...

대상을 뛰어넘는 표상이 있다면, 그것 역시 공갈인 셈일 것이다.

영화는 재밌었나? 충분히 돈을 지불하고 볼만큼 재밌기도 한데, 소제 자체가 풍성할 수도 있는 얘기라서, 약간은 밋밋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래서 거의 유일하게 입체적인 인물을 묘사했던, 식상하지만 반전이 있는 박원상에게 더 눈이 간 것인지도 모른다.

아, 그리고 어지간해서 울지 않을 듯한 영화였는데,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눈시울을 적셨을 딱 그 장면에서, 나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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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화경제학을 준비하면서 영화계에 대한 현장 조사를 좀 했었다.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20대들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일은 없겠다... 생각보다 좀 처참했다.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었다.

곽지균 감독의 자살 소식은, 올 게 왔다는 생각과, 짠한 마음 그리고 남은 자들의 무거움.

지난 달에 그의 영화 중 <청춘>을 아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내가 지냈던 시간이지만, 90년대의 정서와 2010년의 정서를 비교하기 위해서 찾아본 영화인데, 다른 사람도 재밌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간만에 재밌게 본 영화였다.

진심으로 고인에게 애도를 보내고 싶다.

영화 <붉은 돼지>의 한 대사,

"좋은 놈들은 이미 죽었어..."

진짜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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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느에서 우리는 매번 상탄다매..

한국 영화는 배고플 일 없다는데, 왜 이 사람들은 맨날 배고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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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은 황윤 스타일의 영화가 있다.

한국에서 생태에 관한 영화를 위해서 논하기 위해서는, 정말 황윤의 영화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한국의 생태 다큐멘타리를 대표하는, 그런 영화라면 결국 황윤의 <어느 날 그 길에서>를 꼽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학생들한테 이 영화를 보여주었는데, 정확히 한 지점, 인간이라면 당연히 눈물을 흘리는, 정확히 한 포인트가 있다.

그닥 눈물이 날 것 같지 않은 흐름 속에서, 정확히 누구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 영화를 보고 울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갑자기 머리 속에서,

엠비 리, 오만 오 메이어, 문수 킴 등등, 아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하겠구나 싶었다.

드디어 출시, 소장용 DVD 박스 셋트...

한국을 사랑하고, 생태를 사랑하고, 감성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표현주의 영화의 대중 버전을 사랑한다면, <어느 날 그 길에서> 박스 셋트 정도는 소장하고 있어야.

다큐를 보다 말고 울까 싶었는데, 나도 눈물이 팍. 또 봐도 울까 싶었는데, 또 봐도 팍.

정말 제목 그대로이다. 어느 날 그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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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늘은 딱 낯술 먹기에 좋은 날이었다.

날씨는 좋고, 점심 때부터 사람들 만나서 한바탕...

낯술용 날로는 딱이었지만, 그러나 나는 요즘 집중력 부족, 심하게 슬럼프를 겪는 중일 뿐더러,

어지간하면 조신하게 살려고 맘 먹은 터라...

조용히 집에 와서, 처박아 놓은 영화나 볼려고,

하다가 그것도 여의치 않아 그냥 손 가는 대로. 

<백야>, 이 반공영화를 그래도 춤이 너무 좋아서 보았는데, 

새삼 다시 보니 냉전이나 반공 같은 생각은 나지 않고, 춤이 너무 좋아...

그리고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 이 영감쟁이,

이렇게 보여주든 저렇게 보여주든,

그야말로 삶의 페이소스

그리고 살아있는 것들은 여전히 살아야 한다는...

(당분간, 또 옛날 영화들을 뒤지게 될 것 같다.)

예전 같으면 헤밍웨이 생각을 더 많이 했을 것 같은데,

간만에 본 안소니 퀸, 참 연기 잘 한다는 생각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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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계도시>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이다. 그리고 앞으로 생각할 거리를 더 많이 만들어줄 것이다.

 

독립영화라고 사람들이 우습게 생각할지 몰라도, 이게 메인 카메라만 다섯 대인가가 들어간 영화이고, 이 때 여기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나중에 아주 유명한 영화의 촬영감독들이 되었다.

 

요즘 같은 다큐 분위기에서, 그야말로 초대형 블록버스터인 셈이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큰 다큐를, 다시는 찍기가 어렵다. 유인촌과 함께, 우리는 다큐 공멸의 시대로 열심히 가는 중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우연의 산물이다. 원래 기획했던 혹은 의도했던 플롯은 다 사라지고, 그야말로 사태의 추이에 따라서, 일딴 찍어두고 보자, 그렇게 만들어진 얘기이다. 연출도 기획도 없고, 카메라 안과 카메라 밖의 구분도 별로 없다.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참여해서 만들어낸 한 사건에 공등 출연인 셈이다.

 

만 명이라는 숫자를 보고, 이것저것 생각이 많이 든다.

 

사회과학에서, 만 권, 참 대단한 숫자이다. 내 책 중에 만 권 넘은게? 음, 몇 권 안되고, 최근 책들은, 만 권 택도 없다.

 

영화 <경계도시>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았다. 영화평 숫자로는, 이게 기록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형태로 많은 사람들이 매체를 통해서든, 블로그를 통해서든, 힘을 모았었다.

 

하여간 생각할 거리를 여전히 많이 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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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亂)

영화 이야기 2010. 4. 27. 03:14

나도 꽤 영화를 많이 본 편이고, 아마 남들 안 본 영화도 적지 않게 본 것 같다. 상업 영화 아닌 영화도 많이 봤고, 기획 중인 영화, 그래서 결코 개봉되지 못한 슬픈 영화들도 꽤 본 것 같다.

 

그 중에서 정말 원형에 해당하는 영화가 뭘까, 잠깐 생각을 해봤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까지, 나도 내 주변 사람들보다 영화를 덜 본 편은 아니지만, 목숨 걸고 전문적으로 영화를 본 것은 아니다. 영화사 공부는 대학 2학년 때, 약간 집중적으로 한 것 같지만, 그 교과서 안에 있는 영화들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몰래 숨어서 봤던 <전함 포템킨호> 정도가 학부 시절까지 내가 봤던 영화의 거의 마지막 정도일 것 같다.

 

아키라 구로자와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그가 군국주의 찬송자였다는 평이 늘 따라 붙는다.

 

하여간 그 시절에는 펠리니와 구로자와, 그렇게 두 사람을 표현주의 혹은 기타 등등의 사조에 대한 이름을 붙이면서 맨 앞의 사람으로 칭송하던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다.

 

<난>을 본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난>을 보고 난 다음의 감상을 얘기하자면, 아마 그 때 내 나이가 스물 둘인가 했던 것 같은데, 세상에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었다. 얘기는 너무도 익숙한 '리어왕'의 일본 버전이라고 하지만, 스토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걸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이 있었나... 정말 촌놈이, 까박 넘어갔다.

 

지금까지도, 왕의 군대가 전멸하던 그 공성전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약간 맥락은 다르지만, 혁명과도 또 다르고, 민란과도 또 다른, 바로 구로자와 영화에 있는 '난'의 느낌을 가슴 속에 가지고 살아간다.

 

<거미의 성>은 맥베드 , <난>은 리어왕이었다. 세익스피어의 5대 비극을 일본 버전으로 만든 것인데, 여기에서는 리메이크라는 느낌 보다는, 구로자와라는 사람을 바로 맞대어 보는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된다.

 

구로자와의 영화로 영화사에 남는 것은 <7인의 사무라이> 그리고 내가 종종 책에서 인용하는 <카케무샤> 같은 것들이 있고, 거의 마지막 영화이자 유일하다시피한 구로자와의 반전 영화인 <꿈> 같은 것들이 있다.

 

다 재밌다만...

 

<난>은 딱 그 나이 때 나의 감성을 팍 건드렸다.

 

간만에 다시 <난>을 틀어놓고, 스물 두 살의, 처음으로 일본식 스펙타클을 보면서 감탄하던, 그 시절의 촌놈으로 돌아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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