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끝 간데 없는 슬럼프 중이다. 하여, 원래 뭔가 잘 될 데 극장도 가고, 놀러도 다니는데, 극장 가본지도 몇 달 된다. 하여 <내 깡패같은 애인>은 극장에서 못 보고, 쿡티비에서 그냥 3,500원 내고 봤다. 괜히 KT 돈 벌게 하는 것 같아 맘이 썩 편치는 않지만, 하여간 공짜로 보는 짓은 어지간해서는 안 하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감독과 박중훈에게 집중되는 영화인데, 나는 김광식 감독의 인터뷰를 먼저 봤다.

인터뷰가 많이 있기는 할텐데, 가장 길게 인터뷰 기사를 내는 곳은 보통 <인물과 사상>과 의외로 <월간 바둑>이다.

나는 <월간 바둑>에 나온 인터뷰를 먼저 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월간 바둑>에 나온 사람들은 민감한 얘기들도 술술 털고, 자기의 민감한 얘기들도 자발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으로 복잡한 매체가 아니고, 또 바둑이라는 소재가 워낙 중립적이며, 경계심을 늦추게 하는 때문일까? 아니면 월간 바둑 인터뷰 준비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는 것일까?

어쨌든 김광식 감독의 월간바둑 인터뷰는, 간만에 보는 재밌는 인터뷰였다. 그가 어떤 경로로 예술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저예산 영화 감독으로 데뷔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면으로 나온 인터뷰 중에 하나가  기억에 남는 것은 박중훈에 대한 감독의 평가였다.

"그는 데뷔하는 감독이 뭐가 필요한지, 미리 알고, 그렇게 했다."

이걸 보면서, 나는 박중훈이 이제는 슬슬 한국의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이해를 했다. 작년에 KBS에서 열었던 토크쇼는 전 정권에 있던 수많은 MC들을 학살하고 펼쳐진, 그야말로 킬링필드였다. 그 자리에 떡 하니 자기 토크쇼를 여는 걸 보면서, 내심 섭섭하기는 했다.

아니, 저러고 입에 밥이 넘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 토크쇼는 실패했고, 대체적으로 시기를 보면 토크쇼의 실패 이후 그 직후 아니면 약간 뒤에 시작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뭔가 생각이 있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박중훈급 되는 스타가 저예산 영화에 기꺼이 끼어들고, 그 안에서 혼심의 힘을 보여준 영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동강 보존 그리고 KBS의 광역화라는 두 가지 민감한 주제를 다루었던 <라디오 스타>도 간만에 박중훈의 매력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후일담이지만, 나는 이 영화를 무척 재미있게 보았고, 의미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KBS 피디들은 이 영화의 예기치 않은 영향으로 좀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내 깡패같은 애인>은, 박중훈이 있어야 설명이 될 것 같고, 이미 <투 가이즈>부터, 양아로 나오는 껄렁껄렁 스타일에 상당히 익숙해 있으니, 그야말로 예습 많이 하고 보는 셈이다. (또 그래서, 너무 익숙한 분위기로 놓치는 부분도 많아진다는 문제점도 있는 것 같다.)

두목급 어깨에서 자동차 유리창 닦이로 전락한 사례는, 그 옛날에 <영웅본색>의 윤발이 오빠와 이미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하여간 비장하지 않아서 좋았다.

여배우인 정유미는, 익숙하지 않은 배우라서, 사실 아무 느낌 오지 않았다.

(<가족의 탄생>을 한 10분 보다가, 도저히 재미없어서 못 보겠다, 꺼버린 적이 있어서, 불행히도 그의 전작 중에 본 게 없다.)

<걸 스카우트>에서 처음 봤던 박원상이 여전히 매력적이었는데, 박원상만 중심으로 보면 이번 영화가 훨씬 더 매력적이면서도 느끼하지만, 약간은 비장한, 그래서 입체적인 인물로 나왔던 것 같다.

박중훈이 연기는 잘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는 깡패 영화에서 그를 살려냈던 그 모티브가 워낙 반복되다 보니, 입체적인 느낌이 들었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를, 그런 점에서 좋아한다.)

정유미의 경우는, 너무 많은 레퍼런스들이 있어서 그런지, 납짝하게 눌린 듯한, 그런 평면적 모습이 나왔다.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떻게 행동할지, 그리고 저 장면에서는 어떠한 표정을 지을지, 그다지 입체적인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하긴, 그 군상에 속한 사람들의 모집단 자체가 워낙 밋밋하고, 단면적이니, 그를 표상화해도 어차피 그런 모습 밖에 나오지 않는 것 아닐까...

대상을 뛰어넘는 표상이 있다면, 그것 역시 공갈인 셈일 것이다.

영화는 재밌었나? 충분히 돈을 지불하고 볼만큼 재밌기도 한데, 소제 자체가 풍성할 수도 있는 얘기라서, 약간은 밋밋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래서 거의 유일하게 입체적인 인물을 묘사했던, 식상하지만 반전이 있는 박원상에게 더 눈이 간 것인지도 모른다.

아, 그리고 어지간해서 울지 않을 듯한 영화였는데,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눈시울을 적셨을 딱 그 장면에서, 나도 울었다.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