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인리>는 저자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게 될 책이 될 것 같다. 쓰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치고, 또 고치고, 진짜 뼈골을 갈아 넣는 마음으로 엎고, 갈아엎고. 이건 두었다 다음에 써먹어야지, 그런 것들까지 다 털어 넣었다. 이젠 더 이상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에 조금씩 꼬불치면서 글을 썼는데, <당인리> 때는 다 털어 넣었다. 

그렇지만 그런 건 변화라고 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글을 쓰면서 넣을 수 있는 건 다 털어 넣는다. 기술이 좀 늘면 다행이고, 그런 것도 없으면 좀 허무해진다. 

<당인리>가 끝나고 도움 받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못 본 사람들을 좀 몰아서 만났다. 한동안 술값 내기 싫어서 자리도 잘 안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아내한테 허락 받고 술값도 꽤 냈다. 

그리고 나서 기분이 좋아졌느냐, 물론 아니다. 기분 안 좋아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내가 떠나온 옛날 공간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때 누가 잘 했느니, 못 했느니, 누구 말이 맞았느니, 안 맞았느니, 한동안 하지 않던 옛날 얘기 속으로 들어가서.. 이겨도 아무에게도 도움되지 않는, 옛날에는 많이 하던 그 남자 엘리트들의 세계로 다시 돌아갔다. 결론적으로, 기분 안 좋아졌다. 

요번에는 할아버지들 특히 70 가까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아예 안 볼 건 아니니까, 가끔씩 만나기는 할텐데, 지금처럼 집중적으로 특정 기간에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건 안 하기로 했다. 

옛날 사람들 만나니까 옛날 얘기를 한다. 이제 그게 별로 재미 없다. 무엇보다 내가 감성이 많이 변했다. 

농업 경제학은 10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고, 작년부터 내 생각의 상당 부분은 10대들 그것도 중학생의 삶에 많이 맞추어져 있다. 공부 잘 하는 10대도 아니다. 게임 중독이고, 사고 치는 중학생 얘기를 몇 달 동안 쓰다 보니까, 20대도 아니고 10대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주로 살펴보는 중이다. 덩달아 나도 10대들의 감성에 많이 움직여간다. 

연말에는 젠더 경제학 쓸 예정이다. 왕창 쌓아 놓고는 아니지만 예열 차원에서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꼭 그래서 그런 건 아닌데, 아줌마들이 최근에 나한테 이혼 관련된 얘기들을 많이 한다. 남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그런 거 아닌가 싶었는데, 좀 지나면서 보니까, 나도 ‘참새 방앗간’ 수다형 인간으로 감성이 좀 변한 것 같다. 

중학생들 일상 살펴보고, 아줌마들 이혼 고민 얘기 들어주다, 나도 그런 대화와 시선에 적합한 방식으로 감성이 변해버린 것 같은..

그러다 문득 칼잡이들 같은 엘리트 남성의 거칠고 공격스러운 어깨싸움을 한동안 계속 봤더니, 감성적으로 충돌을 느낀 것 같다. 난 이제 그렇게 안 살아. 

남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일단 칼질부터 하고 본다. 그리고 자신의 맹활약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낼 것 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거칠게 칼질을 한다. 돌아보면, 나도 그렇게 살았다. 나라고 뭐 다르겠나 싶다. 

바로 뭐라고 할까 했는데, 그건 또 내 삶의 방식이 흔들리는 것 같아, 그냥 참고 웃었는데.. 그래도 마음이 편안하면 해탈인데, 나는 아직 해탈과는 거리가 먼. 

며칠 생각을 하다가 마음을 먹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맹활약했던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는 작은 결심. “마, 왕년에 누군 깡패 수사 안 해본 줄 알아”,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 나왔던 대사다. 이게 너무 입에 짝짝 붙어, 나도 비슷한 식으로 몇 번 말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그 영화에서는 이놈도 저놈도, 다 나쁜 놈들이다. 웃고 말아도 되는 일들을 꼭 “왕년에 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종종 했다. 습관이다. 

일부러라도, 지난 얘기는 하지 않는 습관을 가져야겠다는 생각. 필요 없는 얘기고, 쓸 데 없는 얘기다. <응답하라 1988>에서 이적이 속삭였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남들 어려운 얘기나 속상한 얘기 좀 더 들어주고, 그걸로 다른 사람이 스트레스라도 좀 줄이는 도움을 주면 그걸로 족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그렇게 맨날 남의 얘기만 들어주면 내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

스트레스 없이 살면 최고고, 그게 힘들면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과는 안 만나면 된다. 간단하다. 

좀 지나면 나도 50대 중반으로 넘어간다. 아직도 나의 맹활약을 얘기해야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분도 좋아진다면, 그건 내 인생이 꽝이라는 얘기와 같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 먹고 편안하게 살았다. 재밌게 살고, 재밌는 얘기 만들기도 정신 없다. 지난 시절의 맹활약은 아무 의미도 없다. 앞으로 올 얘기, 앞으로 만들 얘기들, 이런 게 훨씬 재미 있다. 

남들이 우러러봐야 재밌는 삶, 그거 재미 하나도 없다. 어차피 한 평생 사는 거, 남들 밀치고 어깨싸움하면서 살아갈 이유가 하나도 없다. 

내가 간다고 해봐야 얼마나 가겠나. 뱃살 빼는 것도 힘들어서 제대로 못 하는 처지에. 
그래도 나는 지나간 것보다는 앞으로 올 얘기들이 훨씬 재밌다. 그것만 해도 고마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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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던 일을 내려놓고 아이들 시간에 맞춰 산지 4년 조금 넘는다. 작년부터는 일을 더 줄였다. 뭐, 정확히는 줄인 게 아니라 줄어든 거다. 망하는 일이 너무 많아져다. 이제 밖에서 고정적으로 해야하는 일은 하나도 남은 게 없고, 주기적으로 하는 일은 정말로 한 개도 없다.

변화가 생겼을까? 한 가지는 변화가 생겼다.

남자들의 어깨싸움에서 나왔다. 공작과 음모, 시기와 질투의 세계를 더 이상 볼 일도 없고, 끼워주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애들하고 밥 먹고 사는 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일만 하면 된다.

그랬더니.. 아줌마들이 이혼을 생각할 때 나하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생각보다 많다. 이렇게 많은 아줌마들이 이미 이혼을 결심하고 디데이만 보고 있는지 처음 알았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혼도 종종 보게 되었다.

여자 후배들은 숫제 나한테 '언니'라고 부른다. 언니들과 얘기하는 것과 똑같다고.

인생이 크게 한 번 바뀌기는 한 것 같다. 이제 더는 열심히 살지 않고, 되는 만큼만 하고, 안 되어도 그만이다, 그렇게 내려놓는 데 익숙해진다. 뭐, 바둥거려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원래도 말수가 별로 없는데, 점점 더 없어진다. 그리고 주로 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내가 입을 다물어야, 힘든 사람들이 입을 여는 것 같다.

"자, 얘기 해보세요.."

이런 상황에서 말을 하면 그건 힘든 사람이 아니다. 어려운 사람은 어렵게 말을 연다.

어렸을 때, 참새가 참 많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섯 살, 여섯 살, 그 시절의 기억이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참새가 줄었다. 참새 보기 어렵다. 한국이 참새의 나라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어린 시절에는 갈매기 조나단을 너무 재밌게 봤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으니 내 삶은 참새와 비슷해진 것 같다.

높이 나는 갈매기들 사이에서 혼자 참새처럼 지내다보니, 쟤들 왜들 저렇게 힘들게 살아, 그런 생각이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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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 관하여..

낸글 2020. 6. 2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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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제학, 초고 막 끝났다. 하이고..

이걸 누가 보겠다고 이 고생이냐 싶지만, 그래도 쓸 때에는 그런 생각들은 잠시 접고. 나도 머나먼 여행을 떠난다는 가벼운 마음을 가져야 책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는다. 웃기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인상 쓰게 만들고 싶지는 않은.

앞으로 고칠 생각하면 또 뒷골이 빡빡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초고 마무리..

몇 달 있다가 고칠 생각이다. 출간은 코로나 피해서 내년에나 하게 된. (사람들 코로나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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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이상하다고는 가끔 생각을 하지만.

경제랑 이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검찰이 기소해라, 기소하지 마라, 이런 논의를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대평성대는 태평성대라고 경제 문제라고 하고,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경제 문제라고 하고. 경제가 문제면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법치지, 경제가 문제라고 하던 대로 하자.. 이걸 왜 검찰에서 고민을 하고, 또 그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인 건지.

분식회계를 비롯한 화이트 칼러의 경제 범죄, 중대 사범이다. 엔론은 완전 망했다.. 그 시절에 미국 경제가 최고로 잘 나갔다.

분식회계 눈감아주는 게 경제라는 이상한 얘기를 아직도 들을 줄 몰랐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desk/article/5824363_32524.html

 

검찰 '그대로 기소' 가능성…삼성 '유리한 고지' 선점

검찰의 충격, 대단하겠죠.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까지 청구했었는데, 하루아침에 수사를 중단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습니다. 검찰이 수사심의위원회의 결정에 꼭 따라야 하는 ...

imnews.i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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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새서 컴 새 출발하고, 프로그램들 새로 깔았다. 세상 좋아졌다. 컴 나가면 주섬주섬 플로피 디스크에 도스부터 다시 출발하던 시절 생각해보면..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쭉쭉쭉, 금방 된다.

컴 살까 했는데, 꽤 된 컴이지만 상태 좋은 것 같아서 1년 더 쓸 생각이다.

둘째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지금처럼 애들 등하교 신경 쓰면서 살 거니까, 2년 반 정도 남은 것 같다.

아마 그때쯤이면 50권도 어느 정도 대충은 끝이 보일 것 같다.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좀 더 한국 사회의 최전선의 끝에까지 가보기 위한 몸부림일 뿐.

세상이 좋아져야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들 보이려고 하는 일도 아니고, 영광을 보려고 하는 일도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돈도 큰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세 끼 먹고 사는 데 불편함이 없으면 그걸로 족하다.

몇 년간은 더 애들 살살 보면서 쥐 죽은 듯이 살까 한다. 돈도 아껴 쓰고.

당인리 쓰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한동안 신세진 사람들 밥도 좀 사고, 고맙다는 얘기돋 하면서, 평소보다 많은 사람을 만났다.

글 쓰다 보면 관련된 사람들 만나서 이것저것 배우고 들을 일이 많다. 그렇게 시간을 내고 나면 친구도 만나기가 힘들다. 옛날 친구도 진짜 오래 못 봤다.

그래도 최근에 사람들 너무 많이 만났다. 좀 어색하다.

노회찬 떠나고 나서, 진짜 느껴지는 게 좀 많았다. 나중에 상가 집 문턱에서 만나지 말고, 좀 더 자주 신경 쓰고 보는 게 낫겟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와, 피곤하다.

남자들 특히 엘리트 남자들의 세계가 그렇다. 힘 과시하고, 서로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처절한데.. 그래그래, 니 말이 다 맞다. 하이고, 피곤하다.

다시 좀 처박혀서, 밀린 글들이나 좀 해결해야겠다..

내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농업 경제학 마무리하고 싶다.

컴이 꼬박 나의 24시간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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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는 소규모 독서 모임 위주로 몇 번 가벼운 자리 정도 할 생각이다. 원진녹색병원 노조랑 이동학이 하는 독서 모임 그리고 청주의 독서모임에 가기로 했다. 너무 멀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차 한 잔 마시는 느낌으로 할 수 있는 거, 부탁이 오는대로 몇 번은 더 할 생각이다.

엄청나게 무거운 마음으로 정색하게 얘기하는 거, 사실 내 취향은 아니다. 무거운 얘기도 가볍게, 무서운 얘기도 명랑하게, 그렇게 더 밝게밝게 그런 톤으로.

30대 초중반에 한국의 생태주의자들, 어지간하게 한 번씩 만나고 그랬는데..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엄청 진지하고, 사람들 구박 겁나게 하는데, 도저히 내 취향 아니다.

그때 많이 참고한 게 내가 만났던 파리의 트로츠키주의자들. 마이너 중의 마이너들이고, 똘아이 중에서도 개똘아이 취급 받던 20대 트로주의자들.

근데, 이게 우연인지.. 남자든 여자든, 겁나 잘 생겼다. 철학과 대학원 수업에 잠시 들어갔는데, 동구가 붕괴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느냐.. 한참 열변을 토하다가 울었던, 아직 소녀티가 나던 학생이, 이사도라 덩컨 느낌이었다. 괜히 나도 같이 울어야 할 것 같은.

몰리고 몰리다 보니까 힘들어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늘 웃으려고 하고, 좌우당간.. 그 인간들 분위기가 아주 멋졌다.

그즈음에 이재영과 노회찬과 주로 놀면서, 나도 분위기 확 바꾸어서. 그래 놀자, 그리고 웃자. 그때부터 명랑이 모토가 되었다.

그 뒤로는 되도록이면 웃으려고 하고, 남들한테 어지간해서는 이래라 저래라, 그런 얘기도 안 하려고 한다.

신비주의 같은 것을 권유해준 사람도 있었는데, 신비주의는 뭔 개뿔.. 내 삶에 신비라고는 없다. 내가 재밌게 본 신비는 신비 아파트 외에는.

폼 잡아봐야 다 헛거다.

당인리는 점점 더 가볍고, 작은 모임 위주로 갈까 한다. 무서운 얘기, 무섭게 하는 게, 그거 별 재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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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제학의 마지막 장은 원래는 에필로그로 하려고 했던 것을 키워서 별도의 장으로 만들게 되었다. 8장이다.

은유만 하고 직접 표현하지 않았던 중학생들의 짝사랑에 관한 얘기가 책 마무리하기 전에 어느 정도는 전모를 드러내는.

8장은 전체적인 통일성에 맞춰서.. 앞의 인트로와 4개의 편지로 구성된다. 이제 텃밭이 끝나고 헤어진 아이들이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기 직전에 보내는 짧은 편지들이다. 원래 농업 경제학 책을 통해서 10대들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들이 이 짧은 편지에 응축된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정말 싫어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약간은 이랬으면 좋겠다는 부탁.

짧은 편지라서 내일이면 아마 다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짧은 농업 경제학에 대한 에필로그.

스콧 니어링 책에서 처음 봤던 구절이 생각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농업 경제학도 아주 사연이 많은 책이 되었다. 초창기 때부터 많은 것을 같이 상의해왔던 에디터가 출판사를 그만두었다.

이래저래 코로나 정국을 맞아, 내년으로 출간 시기가 늦어진. 워낙에도 농업에는 아무도 관심 없는데, 독자를 찾아 나서는 것도 할 수 없으면 정말로 아무 방법이 없다.

코로나 국면에서는 좀 강한 책들을 앞으로 당기고, 약한 것들을 뒤로 미루는 수밖에.

사실 농업 경제학은 출간이 뒤로 갔으니까 좀 꾀를 부리면서 마무리를 뒤로 미루어도 되기는 하는데, 몇 달 지나서 다시 들여다보면 다 까먹을 것 같아서. 겨우 모아놓은 감정을 다시 만들기도 어렵고.

어차피 초고 끝나도 겹치는 거 빼고, 빼먹은 거 채워넣고 이리저리 모양내기 하다보면 아직도 고칠 게 많기는 하다. 그래도 하는 김에 일단 마무리부터.

책 쓰는 걸 직업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안 팔릴 책은 안 쓰게 되다. 쓰기 힘든 책도 안 쓰게 된다.

농업 경제학은 안 팔릴 책이다. 그렇다고 준비하거나 쓰는 과정이 즐겁냐.. 그렇지도 않다. 농업의 현실을 보는 것도 고통스럽고, 지금 한국의 10대들 손에 들린 게임기와 핸펀을 보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외면하고 살면 딱 좋은 주제인데, 그래도 하는 건.. 내가 학자라서 그렇다. 정치인도 이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다. 어차피 농민 표는 지역별로 대충 결정되어 있다. 스윙 보터도 아니다. 그래서 뭔가 잘 정리하면 공약이 되거나, 사회적으로 크게 논의하는.. 그런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아무도 안 한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있다. 시간은 잘 간다. 지난 가을부터 올 여름까지, 후다닥 시간이 지나갔다. 내가 들인 시간과 돈은 절대로 책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알고도 하는 것이다.

50대 초반, 아직도 나에게서 정열이 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그걸 확인하는 게 거의 유일한 위안인지도 모른다.

며칠 동안 농업 경제학 뒷부분 마무리 방식을 결정하기 위해서 긴장도를 최고조로 올렸다. 그 와중에 이것저것 부탁 연락오는 거, 어지간한 건 다 힘들다고 했다. 지금 내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짜증 안 내는 게 할 수 있는 최대한.

허공에 정성을 태운다.

안 그러면 내가 세상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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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제학의 에필로그는 그냥 스케치하듯이 짧게 끝내지는 않고, 별도의 장으로 독립시키기로 했다. 내용은 어차피 정해져 있는데, 이걸 좀 더 정색을 하고 얘기를 할지, 아니면 책 닫으면서 부드럽게 할지, 수위만 가지고 고민을 하는 건데..

기왕에 얘기를 하는 거, 정공법으로 가기로 했다. 결국 이 얘기의 마지막 갈등은 특목고 준비를 한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중학교 3학년 올라가면서 농업 계열 고등학교로 진학하기로 망므을 먹으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에피소드를 처리하는 일이 마지막 고민거리다. 뭐, 부모들의 반대라는 현실에 가로막혀 결국은 그냥 살던 대로 살게 된다.

이 얘기들을 에필로그가 아니라 별도의 장으로 다루기로 했다. 제목은 일단 "10대, 열정, 애정 그리고 게임기", 그렇게 정했다. 이번 주에는 마무리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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