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파크에서 연락이 왔는데, 최근에 나온 팬데믹 책으로 했던 인터뷰에 여혐 관련된 악플이 달렸단다. 게시판 창을 닫을 수가 있다고 의견을 물어보는 건데, 그냥 두시라고 했다.

시대가 그렇게 된 건데, 어쩌겠냐.. 그래도 지금 20대는 좀 낫다. 10대로 내려가면 더 하다. 그들이 20대가 될 때쯤, 한국은 더 무서운 사회가 되어있을 것 같다. 누구를 원망하겠냐, 한국이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서운 사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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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북으로 공산당 선언문 샀다. 세상 참 좋아졌다. 대학교 2학년 겨울에 학교 도서관에서 뜨문뜨문 읽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경제학 교과서도 그렇고, 우리 말로 읽을 수 있는 게 진짜 별로 없었다. <자본론>도 그 시절에 읽었다. 그 시절에 공부를 해야겠다고 처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경제학이 뭔지도 얼떨결에 점수 맞춰서 대학에 갔었다. 경제학 별로 재미 없어서 재수할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친구들하고 술 처먹다가 이래저래 재수할 시기를 놓쳤다. 2학년 가을부터 겨울 사이에 자본론 같은 책들을 읽었는데.. 남들은 어렵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경제학 진짜 별 거 아니라고.. 그냥 박사까지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한 것 같다. 대학원은 국제경제학 전공이었는데, 불어가 어려워서 그렇지 내용은 진짜 재밌었고.. 박사 과정 때 경제 철학을 전공하려고 했었는데, 동구가 무너져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때 약간 맘고생한 거 빼고는, 박사까지는 진짜 '껌값'에 가까웠다. 그 시절에는 수학만 왠만큼 하면 그렇게 어려운 과목이 별 거 없었다. 수학과 관련된 과목에서 과목에서 다들 점수를 왕창들 까먹었는데, 진짜 수학과 수학이 어렵지, 경제학과에서 하는 수학은 그렇게까지 맛탱이 가는 수준은 아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선형대수 공부할 때, 진짜 너무너무 재밌었다. 완전 세상이 새로 보이는 느낌이었다. 햐, 이런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웠어야 나의 10대가 훨씬 즐거웠을텐데. 토폴로지도 완전 신세계, 기하학 다시 공부하면서 고등학교까지의 배운 수학이 허무해졌다. 이런 재밌는 세계가 있었는데, 별 의미도 없는 문제풀이만 죽어라고 배웠던지.. 

지금 돌아보면, 좀 재수 없는 얘기지만, 초등학교 입학하고 박사 끝날 때까지, 그야말로 한걸음에 달렸던 것 같다. 대학교 3학년 여름부터 전민련 만들던 시절에 서울민중연합, 서민련에서 1년 조금 안 되게 비상근 간사로 일했었다. 일이라고 해봐야 김수행 선생 같은 양반들 시민 강의하는데, 강의 수발 들고 조별 모임 지도하고, 뭐 그런 거였는데.. 결국 경찰이 털어서 며 사람 잡혀갔고, 나는 그냥 강좌 들으러 온 학생으로 처리되어서 쪼르르. 그런 거에 비하면, 그냥 수업 듣고, 시험 보고, 논문 쓰는 건 덜 위험하고, 맘고생도 훨씬 적은 일이었다. 남들은 감옥도 가는데, 이 정도도 못해?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공산당 선언문 다시 읽으니까, 처음 이거 읽던 그 시절의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 한국이나 프랑스나, 그 시절에는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내 삶은 그냥 그랬다. 그걸 진작에 깨닫고, 얌전하게 처박혀서 애들 보고, 글이나 조금씩 쓰는 걸로 나의 노년이 시작되었다. 

손에 가슴을 얹고 지금 이 순간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잠시 눈을 감았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타노이 미니, 북쉘프 스피커! 며칠 전부터 이 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진짜 원하는 것도 별 거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아무 것도 없는 삶을 몇 년째 살아간다. 아마도 이 상태를 눈을 감는 순간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순간이 되어서야 '고스트의 속삭임'이라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문은 '고스트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좌파 에세이에서 청년 좌파에 대해서 얘기하는 3장은 '고스트의 속삼임'이라는 단어로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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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좌파가 젊은 좌파에게', 좌파 에세이 새로 잡은 제목이다. '젊은 좌파들에게 보내는 연가' 정도 생각했었는데, 연가가 너무 올드한 느낌이라고 원성이 자자했다. 그래서 몇 개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고민을 하다가, 2장 끝나갈 때쯤.. 늙은 사람들 얘기가 한참 이어지다 보니까, '늘은 좌파'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서. 

요 며칠 사이 은퇴하고도 한참 지난 할아버지들하고 문자 메시지 오고 갈 일들이 좀 있었다. 종이책은 노안이 와서 잘 못 보고, 전자책 없냐고 물어봤더니.. 노안 오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 아니냐는 얘기가 왔다. 이래저래 나보고 젊다고 하는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젊기는.. 나도 낼 모래면 환갑이다. 둘째 초등학교 정문 보안관실에서는 얄짤 없이 '할아버님' 애기 듣는다. 

'늙은 좌파'라고 쓰고 나니까, 내가 속이 다 시원하다. 원래 늙으면 말이 많아지는 법.. 괜히 젊고 발랄한 척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아예 마빡에다가 '늙은 좌파'라고 하고 가는 게 더 경쾌한 느낌이 들었다. 

나이 먹으면 폼도 좀 잡고, 우아하고 품위있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난 그런 건 버렸다. 원래도 폼 나는 스타일 아니다. 그냥 머리 박고, db 뒤적뒤적거리고, 가끔 엑셀 작업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아마 내 인생의 뒷부분도 별 폼 나는 일은 안 하고, 적당히 고생하고, 밥이나 먹고 살아가는, 그렇게 살 게 될 것 같다. 

죽을 때까지 뭐라도 더 쥐어잡고 살겠다는 모습을 보면서, 꼭 그렇게까지 할 게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의미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하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파에 대한 얘기들을 정리하면서, 나도 살아온 삶을 한 번 크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뭐, 나쁜 일을 꼭 안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별로 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격도 지랄 맞고, 이상한 거 보면 꼭 한 마디 하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어쨌든 3장 시작에는 다시 한 번 크게 나에게 질문을 한다. 내가 지금 다시 대학생이라도 나는 좌파의 삶을 살까?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지금의 청년 좌파에 대한 얘기로 넘어간다. 나도 내 선택에 대해서 깊이 한 번 고민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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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에세이는 절반 넘어가는 중이다. 말 그대로 하고 싶은 얘기들 편안하게 써보는 중이다. 한참 남들 하는 얘기랑은 엄청 다른 쪽에 서 있다. 원래도 흐름 따라 사는 인생이 아니었다. '마이너의 마이너'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여기에 수식어가 하나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좌파' 마이너의 마이너. 

중간에 목차를 한 번 정리했다. 

1. 좌파라는 멸종 위기종
2. 10대 남성의 보수화, 더 무서운 게 온다
3. 청년 좌파의 자연스러운 등장
4. 취미로서의 좌파 생활 – 생활 좌파

한국에서 좌파에 대한 얘기, 특히 '지금 여기'에서의 얘기는 처음인 것 같다. 먼 미래에 대한 얘기, 주로 유럽 어디에선가 벌어지는 다른 나라 얘기 혹은 일제시대 얘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걸 이 시대에 가지고 와서 해보고 싶었다. 

되도록이면 가볍고 경쾌한 스타일로 써보려고 하는데, 좌파 얘기가 마냥 경쾌하기만은 어렵다. 중간중간에 이론도 나오고, 학자들 얘기도 나오게 된다. 최소한으로 가지만, 가끔은 무거워지거나 가슴 답답해지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런가부다 한다. 

어려운 작업이기는 하지만, 아무도 안 해본 일을 한다는 재미는 있다. 참고할 것도 없고, 따라할 것도 없고, 모방할 것은 더더욱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쓰는 재미가 있고, 보람도 있다. 한국에서 좌파 같은 안 팔리고 인기 없는 얘기를 나 아니면 누가 하겠나, 그런 약간의 자부심으로 편하게 편하게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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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에세이는 슬슬 중반부 넘어간다. 좌파적 관점에서의 한국 사회에 대한 얘기를 나도 이렇게 전면적으로 해보는 것은 처음이다. 다른 일정들 좀 조정을 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 나도 내 얘기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이 정말 잘 안 팔리고, 나도 언제까지 책을 쓸 수 있을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40번째 책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제일 쓰고 싶은 책을 지금 쓰기로 했다. 내가 지금 제일 하고 싶은 얘기는 좌파 얘기다. 좌파로 살아왔고, 남은 생도 좌파로 살아갈 거다. 그리고 자랑스러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좌파로 죽을 거고.

제목은 몇 가지 버전이 있었는데, 지금은 '젊은 좌파들을 위한 연가'가 제목이다. 부제는 '취미로서의 좌파 생활'과 '슬기로운 좌파 생활'이 경합 중이다. 책 초반에 크게 한 번 흔들린 적이 있었는데, '취미 생활'이라는 개념을 탑재하면서 중반부로 넘어갈 동력을 찾았다. 무겁지 않고, 무섭지 않게 해주는 힘을 취미라는 단어가 준다. 그런데 읽은 사람들은 '슬기로운 좌파 생활'이 더 가볍고, 이 시대의 얘기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한다. 좌파들에게는 안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

좌파로서 잘 살지는 모르겠지만, 재밌게 살아가려고는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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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김호기의 표현에 '훌리건'이라는 말이 나온다. 훌리건 사회학도 생겼다고 들었다. 이 축구와 관련된 집단적 현상에 대한 지적은 움베르트 에코의 90년 글까지 올라갈 수 있다. "축구 이야기를 하지 않는 방법'.

요즘 현상에 대해서 생각보다 유용하다. 60대 훌리건, 태극기들. 50대 훌리건, 진보 훌리건.

20대가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그룹화된 것을 본 건 사시 폐지 때였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 모임'.

이게 점점 커지고 커져서, 정작 그들이 주장하던 로스쿨 폐지는 오간데 없고, 점점 더 시험 훌리건이 되었다. 뭐든지 시험으로 하자, 시험을 거치지 않은 것은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훌리건으로 완성된 시기는, 이준석과 치룬 서울시 보궐과 이준석이 당대표된 사건도 아니라고 본다.

박성민이 청와대 청년비서관이 되었을 때, 과연 그가 청년을 대표할 수 있느냐, 그게 최선이냐,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다고 본다. 나도 이 사건에 대해서 입을 다무는 이유는, 과연 박성민? 이게 최선은 아니라고 본다. 더 나은 대안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포장지' 전략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지금도 박성민 인사를 찬성하지도 않고, 지지하지도 않는다. 속으로만 "그래, 니들 맘대로 해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구나 인사에 대해서 반대를 할 수도 있고, 여러가지 의견을 피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공개적으로 해임을 요구하는 순간, '훌리건'이라는 단어를 완성하는 폭력 혹은 괴롭힘의 단계로 넘어갔다.

뭐든지 시험으로 하자, 사시폐지에서부터 커져나온 시험주의자들이 '시험 훌리건'으로 한 단계 넘어간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시험 훌리건들은 태극기 훌리건과는 달리, 정권도 잡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훌리건은 훌리건이다.

바야흐로 한국은 다양한 훌리건들의 나라로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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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멸종위기종, 좌파, 그러나 보호종은 아닌! 

20세기 들어와 많은 나라에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서 20대 우파들의 더 많이 등장하고, 그 중의 일부는 극우파로 자리를 잡았다. 유럽의회의 제1당은 이미 극우파 정당이다. 우리나라에도 마찬가지 흐름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는데, 나의 진보 친구들은 한국의 20대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없기는! 

“한국의 20대가 집단적으로 새누리당을 찍을 리가 없다니까!” 

서울 시장 오세훈 보궐과 함께 많은 20대들이 기꺼이 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꾼 국민의 힘에 표를 던졌다. 다를 리가 없다. 한국의 진보들이 이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자본주의 작동 방식에 언젠가 만나게 될 ‘성장의 한계’를 만나면서 생겨나게 된 자연스러운 사회적 흐름이다. 조국이 아니더라도 이런 일은 벌어졌을 것이고, 1980년대 맹활약했던 586 권력이 아니더라도 이 일은 생겼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빠르게 변화할 필요는 없잖아? 한국의 변화는 늘 그렇게 빠르다. 오죽하면 한국을 대표하는 현상이 ‘다이나믹 코리아’겠느냐?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좌파가 30대 혹은 20대에서도 등장할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극적인 반전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20대에서 점차적으로 보수가 우세할 것이고, 그 중에 더욱 강렬한 마초 스타일의 극우파들이 분화되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진보가 소수 그룹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는? 보통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그리고 학계와 문화계에서 좌파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다 좁은 구멍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에서 좌파는 소수자다. 스스로 드러내기 어렵고, 감추고, 숨기면서 살아간다. 지금 환경부 장관인 한정애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노조위원장이 되면서 본격적인 사회적 활동을 시작한 사람이다. 한국노총의 대외협력을 맡았고,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전형적으로 노조를 대표하는 정치인이고, 무주공산의 환경부 장관이 되었다. 한정애는 좌파일까? 유럽식 기준으로는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하지만, 한정애는 아마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 같다. 그녀는 그냥 진보다. 만약 그녀가 좌파의 정체성을 가졌고, 그렇게 행동했다면 환경부 장관은 커녕, 비례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재선을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그녀를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다. 진보나, 좌파나, 그게 그거인 것 같지만, 한국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다. 집권 후, 진보는 부패가 문제지만, 좌파는 자뻑 할 기회는 많아도, 부패할 기회가 아예 없다. 뭘 처먹을 게 게 있어야 부패 비슷한 거라도 하지, 현실은 삶은 쉬리가 산다는 청정 1급수, 아주 맑고 맑은 물에서 혼자 도도하게 살게 된다. 

정서적으로 자신이 진보라고 생각한 20대들을 몇 명 아는데, 대부분 이준석에게 투표했다. “문재인 너무 싫고, 조국 싫다”, 그들이 나에게 해준 짧은 이유다. 그리고 “페미니즘 너무 싫다”, 그런 얘기도 곁들였다. 일제 때 총독부에서 하는 일에 거부하는 것이 나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점점 더 그런 20대들이 늘어날 것 같다. 

한국에서 좌파는 이제 멸종위기종이다. 20대 좌파는 점점 더 보기 힘들 것이다. 혹시라도 등장해도 그 또래 집단에서 무시당하거나 괴롭힘 당하면서 생각을 바꾸거나 말수를 줄이게 될 것이다. 정의당의 류호정이 너무 재수없다고 하는 사람이 좌파일리는 없지 않은가? 68혁명 이후 유럽에서 등장한 신좌파는 문화, 환경 그리고 여성이 세 가지 축이었다. 마초주의에 가까운 구좌파도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서 류호정을 너무 싫어하는 사람들은 진보에 속할 수는 있어도 좌파에 속하지는 않는다. 

보통의 멸종위기종은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멸종이 뻔해도 뭔가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한국의 좌파는 50대가 가장 많지만, 점점 줄어들어 20대에서는 매우 희소하고, 10대에서는 멸종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이게 보호종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없다. 멸종해가는 동물에 대해서 사람들이 연민을 느끼지만, 냉정하게 한국에서 좌파는 ‘혐오재’다. 국민의 힘은 민주당을 좌파라고 몰아붙이기 이해서 혐오를 극대화하고, 민주당 결선투표가 없는 한국 현실에서 표가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더 악착같이 괴롭힌다. 객관적으로 보면 20대 좌파는 멸종될 가능성이 높다. 이건 논리적 추론이다. 아쉬지만, 그렇게 시대가 가는 것을 어쩌겠는가? 

전형적인 신좌파로 생각할 수 있는 이길보라 감독의 책 <당신을 이어 말한다>를 우연하게 읽었다. 다큐 감독이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CODA(Children of Deaf Adult) 그리고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둔 ‘탈학교’ 출신, 마초 자본주의의 상업적 주류들이 싫어할 코드는 고루고루 갖춘 사람이다. 그녀가 주류 사회 아니, 장애 앞에 서 있는 멀쩡한 사람들 앞에서 부딪힌 얘기들을 읽으면서 이 책이 내 인생을 바꿀 책이라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었다. 

나는 내가 살아오면서 내가 어렵다는 생각만 했지, 20대 혹은30대에 어떤 이유로든 한국에 등장한 좌파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갈지 생각을 별로 못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좌파에 대한 얘기들은 전부 노스탈지아에 가득 찬 옛날 얘기들이고,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영웅에 관한 이야이들이 대부분이다. 안물안궁,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궁금한 사람도 없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 옛날의 영광을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결혼은 커녕 연애도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이 시대에 청춘들이 보수에 투표하든, 우파가 되든, 극우파가 되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자본주의가 후반부에 도달하면 이런 모습을 보여줄 것을 우리가 몰랐던 것인가? 

그렇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구석텅이, 후미진 곳, 별로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시대와 불화하고 구조와 충돌하며 젊은 좌파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누구와 얘기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 것 같지도 않고, 떼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살 인생도 아니다. 그런 거 할 줄도 모르고, 별로 할 생각도 없다. 

한국에서 좌파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유럽의 좌파들이 주로 투표하는 사회당이나 사민주의 정당이 생겨날 것 같지 않고, 좌파들이 집권하는 시대는 아마도 내가 살아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노회찬과 긴 기간 친구처럼 지냈고, 그가 대통령이 되는 걸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마음 속의 꿈을 펼쳐 놓기에 그는 너무 일찍 떠나버렸다. 

그렇지만 좌파는 ‘진보’라는 불분명한 상대적 개념과 달리,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한 끊임없는 상상력과 미학을 지금까지 제공하였다. 문학에서 연극, 영화 그리고 패션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서 좌파는 지금까지 상상력의 원천이고, 시대가 부패하는 것을 막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진보할까? 진보의 개념 자체가 불분명한 데다가, 고도 성장이 어려워진 시점에 이를 제어하기 위한 적절한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였다. 진보는 적당한 경제 성장률 속에서만 작동하기에 좋은데, 성장률이 내려가면서 한국 사회는 성과는 나지 않으면서 점점 더 경쟁만 많아지는 형태로 갈 것이다. 그래서 20대는 전 세대보다 가난하지만 더욱 보수적으로, 지금 10대는 그보다 더 가난하지만 더더욱 보수로 갈 확률이 높다. 그리고 수많은 보통의 남자들은 여자들만 욕하면서 젠더가 열어낸 극우파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퇴행적이지만, 그걸 퇴행적이라고 말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시대가 앞으로 10년간 펼쳐질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멸종 위기종 같은 좌파들은 한국 사회에서 계속해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그리고 고통받을 것이다. 내가 이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편안하게 입을 수 있고, 적당히 숨을 수 있는 ‘진보’라는 강력한 갑옷을 벗고, ‘좌파’라는 새로운 붉은 셔츠를 입는 것은 내가 한국의 20대, 30대 좌파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큰 의미는 없지만, “내 마음은 이래요”, 그렇게 말하는 것 이상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다. 

지난 부산 시장 보궐 선거 때, 미래당의 손상우 후보가 가덕도 신공항 반대를 걸고 출마하였다. 나는 그를 지지하였다. 한국의 보수들은 부산에 공항이 필요하다고 외쳤고, 한국의 진보들은 더욱 가열차게 “그걸 당장 하자”고 외쳤다. 줌으로 전국의 활동가들과 관련된 토론회를 하면서, 진보도 보수도 아닌 환경주의자와 청년들이 모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좌파는 한국 사회에서 무슨 얘기를 할까? 상징적이지만, “난 공항 반댈세”,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한국에서 좌파들이 사라지면 은밀한 토건과 음습한 거래에서 진보와 보수가 대동단결하는 지점이 너무 많아진다. 

“나는 좌파다”, 이 좌파 에세이집은 나의 41번째 책이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누구와 남은 생을 지낼 것인지를 얘기하는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나는 좌파로 살았고, 앞으로도 좌파로 살아갈 것이다. 내 삶은 큰 의미는 없고, 그냥 밥이나 먹고 산 인생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부패할 기회가 없었고, 청탁할 기회가 없어서, “너네 그렇게 양아치처럼 살면 안 된다”고 힘 있는 진보 친구들에게 뭐라고 한 마디 할 정도의 삶은 산 것 같다. 

언젠가 내 또래의 한국 좌파들이 힘을 모아서, 청년 좌파들에게 국밥이라도 한 그릇 대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한국의 좌파, 우리는 소수고, 그 중에서도 극소수다. 그냥 살아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렇게 얘기했다. 물론 단결하지 않았다. 그 말을 한국 상황에서 하면 “한국의 좌파들이여, 연대하라”, 이런 문장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면 큰 일 난다. 소수파의 연대 전략은 언제나 유효할 것 같지만, 지금 같은 절대 열세 상태에서는 연대해도 큰 힘 나지 않는다. 그걸 한 번 더 틀어서 얘기하면 “한국의 좌파들이여, 웃겨라!”, 이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는 정말로 왕에게 목이 날아갈 뻔했는데, 그의 연극을 본 왕이 웃어서 살아났다고 한다. 

다행히도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모두 근엄주의, 어깨 힘 빡이다. 소수파의 전략은 웃기는 길이 최고다. 물론 살기에 힘든 사람들을 웃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웃기려고 시도를 해야 어쩌다 한 번이라도 웃길 수 있다. 심각한 얼굴로 진실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다 단두대로 가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의 좌파가 멸종하지 않을 유인한 전략은 웃기기, 이것 아닐까 한다. 물론 엄청나게 잘 생기면 좀 낫겠지만, 그건 노력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1등만 기억하는 개 좃 같은 나라”가 20년 가까이 진행되다 보니까, 정말로 1등들의 나라가 되었다. 어쩌다 등장하는 한국의 청년 좌파들에게, 하늘이 그들에게 남들을 조금이라도 더 웃길 수 있는 재능을 주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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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영부영 하기 직전

1.
“어영부영 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버나드 쇼의 에피타프, 묘비병으로 유명한 말이다. 그의 소설 <피그말리온>은 세계적으로 빅히트를 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1964년)>의 원작이다. 이 영화의 오디션에서 오드리 햅번과 쥴리 앤드류스가 맞붙었다. 결국 오드리 햅번을 배역을 따갔고, 절치부심 쥴리 앤드류스는 결국 뮤지컬 <매리 포핀스(1964년)>의 주연이 되었다. 그 성공에 힘입어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1969년)>의 주인공이 되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여배우로 남게 된다. 세기의 대결인데, 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은 버나드 쇼를 노벨문학상을 탄 문호 혹은 영화인으로 안다.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름을 들으면, 아 그거, 그렇게 할 영화로는 <시저와 클레오파트라(1945년)>이 있다. 대부분 이름만 알 비비안 리가 이 흑백 영화의 바로 그 클레오파트라다. 물론 이제는 시간이 흘러서, 버나드 쇼의 이름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그 묘지명만 남게 되었다. 버나드 쇼를 알든 모르든, “어영부영 하다 이 꼴 난다”, 그 얘기를 다 들어봤을 것이다. 

문학과 예술의 아우라 넘치는 버나드 쇼는 경제학자로도 유명한데, 몇 권의 경제학 대중서도 썼고, 심지어 여전히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이름을 떨치는 런던정치경제대학원의 설립장이기도 하다. 학부 시절, 나는 이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좀 알아봤는데,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초반에 바로 꼬리 내리고 등록금이 없는 파리로 방향을 틀었던 적이 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살펴봐야 할 국제적 빨갱이를 생각해보면 역시 버나드 쇼 아니겠나 싶다. 혁명이 아닌 점진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바꿔보자는 흐름을 영국에서 만들었는데, 그 맨 앞에 버나드 쇼가 있었다. 혁명의 시대에 혁명 아닌 방식으로 사회를 바꿔보자는 얘기를 했으니까 살아있을 때 욕도 ‘디지게’ 먹었다. 그렇지만 동구가 붕괴한 이후, 그래도 좀 기억할 만한 좌파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시선이 버나드 쇼에 맺히게 된다. 버나드 쇼, 참 별의별 말도 많이 했고, 책도 많이 썼다. 그렇지만 그는 친절하게도 ‘어영부영’이라는 간단 명료한 단어로 그의 삶을 정리했다. 노벨문학상을 탄 버나드 쇼의 삶이 어영부영이면, 나의 삶은? 

다행인 것은 아직 나는 어영부영할 수 있는 시간이 좀 남아있다는 점 아닐까 싶다. 이럴 때에는 신이 있다는 점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신 앞에서 우리는 모두 공평하고 평등하다. 수많은 사람이 평등을 외쳤지만, 진짜로 평등한 것은 신 앞에서 그리고 죽음 앞에서 그 정도 아닐까 싶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세상 피곤하게 하는 신의 위대함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우리 개개인이 삶도 다 하나의 우주이고, 다 위대한 존재들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평등을 얘기하고,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평등을 외쳤지만, 우리가 아직까지도 평등을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것은 신 덕분 아니겠는가? 그리하야 오늘도 어영부영 살아가는 나의 인생을 위하여, 잠시 하느님께 기도, 할레루야, 아멘! 

2. 
나는 평생을, 아니 대학에 들어간 얼마 이후로는 좌파라고 생각하고 세상을 살았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우파는 뭔가 열심히 하고 이루어야 하고 성취해야 하는 삶이지만, 좌파는 대충 개기고, 아닌 거 아니라고 말하고 살아도 되는 삶이라고 살았다. 나는 아무 사명감이나 성취 의식 없이 살아도 되는 좌파의 삶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버나드 쇼의 어영부영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대충대충’ 살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인생에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았던 것은 딱 두 번인 것 같다. 유학 가서 대학원 석사 과정 입학 시험에 붙고 나서 졸업할 때까지 1년, 문재인 당대표 시절에 그를 도왔던 2년간, 그 시절에는 잠시 죽기 살기로 열심히 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시간, 대충대충 살았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진보라고 불렀다. 참 열심히들 살았다. 그들에 비하면 난 대충대충 산 정도가 아니라, 막 산 것에 가깝다. 차관급 자리와 공기업 사장 얘기가 나왔을 때 “싫어요” 했다. 주변에서 욕 정말 많이 먹었다. 아비로서 제대로 월급을 받아서 아내와 자식들을 편하게 살 생각을 하지 않고, 너무 자기 편한 생각만 한다고 별의별 욕을 다 먹었고, 이기주의적이라는 얘기까지도 들었다. 자식들에게 편안한 삶을 주지 않는 ‘나쁜 아빠’라는 얘기도 들었다. 난 그냥 네네, 하면서 애들이나 봤다. 내 삶에 대해서 내가 기대하는 것은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세 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걱정되지 않는 삶”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인류가 세 끼 걱정을 하지 않게 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보리 고개가 없어지고, 밥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이 없어진 것이 50년 될까말까 한다. 내가 넉넉하게 살지는 않아도,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은 우리 식구들이 세 끼 밥 먹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나도 안 하고 산다. 

몇 년 전부터 나에게 현실적으로 든 고민은 ‘진보 경제학자’라고 붙은 나의 타이틀에 관한 것이다. 내가 특별하게 부탁을 하든 혹은 하지 않든, 언론을 비롯해서 많은 곳에서는 나에게 ‘진보 경제학자’라는 타이틀을 쓴다. 그때마다 불편하다. 솔직히 나는 진보가 뭔지 잘 모르겠다. 경제학에서는 좌파 경제학이 존재하고, 주류(orthodoxe)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주류(heterodoxe)라는 표현을 쓴다. 좌파이고, 비주류 혹은 정치경제학 같은 용어는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진보 경제학이라는 말은 배워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프로그레시브라는 말은 ‘프로그레시브 락’에서 처음 들었다. 무디 블루스, 킹 크림슨, 에머슨 레이크 앤드 파머, 이런 밴드들은 안다. 사이키델릭 락도 좋아하고 우드스탁 페스티벌도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경제학? 이건 정말로 뭔지 모르겠다. 

어영부영 살다가 나는 한국의 한 쪽 구텅이에서 찌그러져서 살다가 적당히 나이 처먹고 뒤진 ‘어느 진보 경제학자’로 누군가 묘비명에 새길 것 같다. ‘대충 살다가 꺼진’ 혹은 ‘게으름에 발광하다 뒤진’, 이런 묘비명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묘비병이다. 아니 더 심한 욕으로 도배를 해도 나는 기꺼이 감수할 것 같다. 제일 좋은 것은, 그딴 묘비병 같은 것은 남기지 않고 조용히 사라져서 아무도 모르게 죽는 것이다. 그렇지만 ‘진보 경제학자’라고 묘비명이 선다면, 죽어서도 내내 목구멍이 이질물 들어온 것처럼 따꼼따꼼할 것 같다. 

어영부영,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기 전에 ‘나는 좌파다’라는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전우치>에 젊어서 무당이었던 한 할머니가 이렇게 말한다. 

“맨날 도 닦으면 뭘해,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황진이와의 연애로 유명했던 화담이 영화 속에서는 정의파 도사 중의 한 명이었는데, 그는 원래 요괴였다. 자기 팔에서 떨어진 녹색 피를 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요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자기 안에 흐르던 요괴의 피를 눈으로 보고 화담은 흑화해서 진짜 요괴가 된다. 

딱 맞는 비유는 아닐지 말라도,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대사가 너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게 꼭 내 얘기 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좌파라고 얘기하면 요괴 취급 받는다. 그게 꼭 무섭다기 보다는 귀찮아서, 그냥 ‘진보 경제학자’라고 타이틀이 뜨면, 그냥 대충 “아, 네네” 하면서 넘어갔다. 내가 엄청나게 강력한 이념적 선호를 가지고 있느냐, 그런 것도 아니다. 프로야구에서 어느 팀을 응원할 것인 것, 여기 무슨 이념이 필요하겠냐? 그냥 자기 태어난 고향 아니면 약간의 사회생활에서의 인연, 그 정도로 응원한 팀을 정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런 것과 비슷한 연유로 사람들은 우파가 되고, 보수가 되고, 진보가 되고, 가끔은 좌파가 된다. 노동자가 좌파가 되는 시기, 그런 시기는 한국에는 온 적도 없고, 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자기 편한 대로 정치적 성향 혹은 사상적 성향을 고르게 된다. 진보/보수, 좌파/우파, 이 네 개의 선택지 가운데에서 하나를 고르게 된다. 이것저것 다 귀찮으면 ‘중도’라고 해도 좋고, 조금 더 적극적인 성격이라면 무정부주의. ‘아나키즘’을 골라도 된다. 한국에서 여론조사를 하면 전통적으로는 진보 30%, 보수 30%, 그리고 40% 정도가 이 양 쪽에 속하지 않은 중도라고 답을 한다. 사회학 공부하는 친구가 한국에서 좌파는 10% 미만으로 잡힌다고 얘기해준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10명 중 한 명이 조금 안 되는 비율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 10% 미만에 속하는 좌파들은 평소에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우리 역사가 좀 뒤틀렸다. 그리고 그렇게 뒤틀린 것이 21세기가 들어서도 제대로 펴지지가 않았다. 뭔가 좀 이상하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혹시라도 누군가 소개팅에 나서서 “저는 좌파입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고 생각해보자. 이건 소개팅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조인성급으로 잘 생기지 않았다면 이건 최악이다. 그렇다고 좌파라고 미리 말하지 않고, 나중에 데이트하면서 알게 되었다면? 그것도 곤란한 일이다. 한국에서 좌파는 그런 존재다. 나중에 소개해준 사람이 뭐라고 크게 한 마디 듣기 딱 좋다. 좌파인 게 무슨 죄라고!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편해 한다. 

나는 이미 50대 중반이다. 지금까지는 참고 살았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시간이 억울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30대 초반 총리실 근무를 마지막으로, 공직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진보’ 경제학자로는 원래 일하던 곳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지만, ‘좌파’ 경제학자’로는 공직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보수 계열 신문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거 아니더라도 나는 나의 여생에서 공직은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글을 쓰고 분석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 시간을 그냥 폼 잡고 “나는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중이다”, 이런 되지도 않는 얘기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그냥 어영부영, 남은 인생을 대충 살아도 되지만, 누군가는 “나는 좌파다”라고 공식적으로 얘기하고, 좌파들이 사회 속에서 움직일 공간을 좀 만드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좌파는 ‘잠재적 요괴’ 같은 것이고, 재혼임을 알리지 않고 소개팅에 총각 행사하며 나온 돌싱남 같은 존재다. 싫은 게 아니라 혐오스럽다는, 일종의 혐오의 대상이다. 나는 그렇게 한 평생을 별의별 욕을 다 뒤집어쓰면서 살았다. 지금 와서 그게 어떤 거였고, 얼마나 억울했는지, 그런 얘기를 다시 하지는 않을 정도로 나도 나이를 처먹었다. 

그렇지만 비록 소수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좌파는 끊임없이 새로 탄생하고, 또 탄생할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뭔가 다르게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두 ‘진보’이고 민주당 당원인 것만은 아니다. 그 다른 사람들 중에는 정의당 당원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녹색당 당원도 있을 것이고, 그런 거 귀찮아서 아무 공식적 활동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파 인사들이 꼭 국민의 힘 당원이 되지 않더라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좌파를 사상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꼭 무슨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생활 좌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꼭 뭘 해야 사상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좌파도 살아가고 있고, 똑같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얘기를 나도 더 나이 먹기 전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파라는 소수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강남 좌파’라는 표현이 있는데, 조국을 비롯해서 대표적인 강남 좌파들은 어지간히 나와 동료였거나 친구인 사람들이다. 표현은 ‘좌파’지만, 그 사람들 중에서 공식적으로 좌파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 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부른다. 법무부 장관을 한 조국 선배도 진보라고 불렀고, 중소기업벤처부 초대 장관을 했던 홍종학 선배도 진보다. 다들 친한 사람들이기는 한데, 그 중에서 진보가 아닌 사람은 나밖에 없다. 강남 좌파라는 말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은 이제는 보수 쪽 평론가가 된 공희준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강남 진보’가 맞을 것 같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한국에서 죄 지은 사람은 좌파고, 세련되고 넉넉하고 힘 쓰는 사람들은 진보라고 부른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이상하고도 분열증적인 분류법을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을 듯하다. 유럽의 좌파는 집권을 했고, 부패했고, 그래서 정권을 잃었다. 

한국의 좌파들은 뭐 해본 것도 없고, 누려본 것도 없이 자신의 얼굴과 생각을 숨기면서 살아왔다. 그리고도 맨날 욕 먹을 때에는 ‘좌파’들이 욕 먹는다. 친북좌파, 원래는 친북 + 좌파라는 의미인데, 말만 그렇게 하고 북한이란 친한 좌파라는 의미로 다들 통용한다. 나는 북한하고 안 친하다. 그 정도면 그래도 양반이다. 나중에는 ‘종북 좌파’라는 말도 쓴다. 졸지에 평양의 지시 받는 사람으로 몰린다. 강남 좌파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강남에서 종로로 이사를 왔더니, 강준만 선생이 강남이라는 물리적 지역을 떠나서 한국에서 먹고 살만한 좌파는 다 강남 좌파라고 한다. 욕 받이도 이런 욕받이가 없다. 더한 것은 ‘진보좌파’라는 표현이다. 진보면 진보고, 좌파면 좌파지, 진보 + 좌파라는 의미라고 하지만, 현실은 좌파 중에서 진보 쪽에 와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아니 그럼 보수적 좌파도 있나? 그냥 온갖 싫은 것, 더러운 것, 가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이미지를 모두 ‘좌파’에 걸어 놓고 있는 것이 21세기 한국의 모습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의 좌파는 그 실체가 불분명하고, 도대체 이 나라에 왜 좌파가 존재할 수 있는지, 그 기원에 대해서도 말하기가 어렵다. 족보도 없고, 조직도 없다. 내가 좌파지만, 나를 좌파하라고 한 사람도 없고, 내가 지금까지 속했던 시민단체나 학회나 혹은 정당에서 나에게 좌파하라고 그런 곳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좌파가 좋았고, 내 양심에 의해서 나를 ‘좌파’라고 소개한다. 

실체가 불분명한 좌파라는 존재에게 한국 사회는 요괴와 같은 악령스러운 이미지를 투사하면서 사회를 전복시키려는 음험하면서도 아주 강력한 집단이 있는 것처럼 처리했다. 좀 이상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좌파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뭔가 이상하거나 손해를 감수하고 기꺼이 살아갈 ‘개똘아이’임에 분명하다. 내가 바로 그 개똘아이다. 개똘아이일지언정, 어영부영 살면서 결국 죽어서 ‘진보적 인간’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딱 그만큼 얘기할 힘이 나에게 남아 있는 것 같다. 

3. 이상한, 아주 이상한 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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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몇 년만에 다시 봤다. 전에도 재밌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까 겁나게 재밌다. 

지금 한국의 상황과 제일 비슷한 영화를 고르다 보니까 <러브 액츄얼리>.. 수많은 크리스마스를 즈음한 사랑과 우정, 그런 것들이 스쳐 지나가는 영국식 더티 유머가 머무려진, 진짜 성인용 로코다. 

98년 IMF 한 가운데 영국 리즈에서 열린 학회에 간 적이 있었다. 저녁 먹고 영국 학자들하고 맥주를 마시는데, 나를 초청한 젊은 그룹들이 토니 블레어는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고, 거의 노무현 대통령 되었을 때 한국의 소장파 학자들이 노무현 지지하던 것 같은 열성적 애정을.. 그리고 좀 시니어급 학자들이 블레어의 앞날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고 뒤에서 얘기하던. 그런 장면들이 기억 속에 있다. 

토니 블레어는 97년, 44살의 나이로 노동당 정권을 만들었다. 전설적 인물이다. 세계적인 바람도 좀 피운 걸로 알고 있다. 

미혼인 젊은 총리가 인턴 직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얘기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클라이막스에 나오는 많은 고백 중의 하나다. 영화는 2003년에 나왔다. 

보수당 쪽에서 데이빗 캐머론이 당대표가 된 것은 39세의 일이고, 그가 드디어 노동당으로 정권을 되찾은 것은 2010년 44세의 일이다. 이번에는 노동당이 아니라 보수당 쪽에서 젊은 총리를 내세웠다. 

우리나라가 대통령제라서 그렇지, 의원내각제였으면, 국회 해산하고 재선거해서 바로 총리가 될 상황이다. 토니 블레어나 데이빗 캐머론이나, 다 그런 길을 걸어갔다. 젊은 대통령 마크롱이 대통령이 된 경로도 별로 다르지 않다. 사회당의 올랑드 정권이 너무 무기력했고, 다시는 집권하기 어려울 조건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극우파에게 대통령을 넘기기도 싫고, 그 중간에 40대 대통령이 등장하였다. 

“Love actually all around.” 사실 이때도 영국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었고, 토니 블레어가 매우 신경 써서 이 문제에 접근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랑에 대한 크리스마스 캐롤 같은 이야기. 

아마 지금 누군가 이런 영화를 만든다면, ‘사랑’에 모든 것을 걸기는 어렵다. 지금의 20~30대의 절반 가까운 숫자는 연애는 필요 없어, 결혼은 꺼져, 그런 것을 인생관으로 가지게 될 것이다. 그 상황에서 “사랑은 진짜로 어디에나”, 그런 얘기는 잘 안 먹힐 것 같다. 하지만 “summrt vacatin actually”, 여름 휴가를 모티브로 얘기를 구성해도 마찬가지 얘기가 나올 것 같다. 우리 다 사랑, 아니 여름 휴가는 필요하잖아! 

맥락은 다르지만 <브렉시트>는 역시 영국 총리실 주변에서 벌어진 더티 게임에 관한 것이지만, 여기서 잠시 데이빗 캐머론 애기가 나왔을 때, 영국은 어디로 가는가, 유사한 고민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정치야 무슨 상관이랴! 사랑은 어디에나.. 그런 2000년대 초반과 같은 사랑의 시대는 한국에서는 당분간 오지 않을 것 같다. 이미 몇 년 전부터 20대들에게 한국은 젠더 전쟁의 양상이었다. 10대로 내려가면 더 하다. 로맨스 영화는 잘 안 만들어지고, 나와도 성공하기가 어렵다. 

얼마 전에 한국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보았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로맨스는 양념으로 스쳐지나가듯, 밑도 끝도 없이 그들은 사랑하였다. 남은 것은 존재도 몰랐던 딸에 대한 아빠의 사랑 그리고 별로 다정하게 지낸 것 같지도 않은 죽은 형에 대한 집착적 사랑, 그런 것들이 악으로 가는 이유가 되었다. 논리적으로는 러브 액츄얼리와는 전혀 다른 사랑에 대한 얘기니까, 트랜스 젠더가 구원으로 가는 마지막 사다리로 내려오게 된. 앞으로는 아마 이런 얘기들이 한국에서는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한국의 10대들이 지금 <러브 액츄얼리>를 보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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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플레인..

좌파 에세이 2021. 6. 17. 01:54

저녁 때 이소영 의원실에서 하는 도시락 대화모임에 갔다왔다. 어지간히 중요한 일 아니면 저녁 시간에는 안 나가는데, 그 방 보좌관이 이래저래 좀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라..

이소영과는 이래저래 겹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실제 본 건 처음이다.

애들 키우면서, 높은 사람들 만나는 것은 극도로 제한하는 중이다. 특별히 내가 뭔가 하려고 하면 그런 사람들 만나면서 해야할 것인기는 하지만, 요즘은 글 쓰는 것 외에는 특별하게 하는 게 없다. 할 여력도 안 되고.

이준석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마침 공희준에게 부탁받은 글 마무리하던 중에 나가게 되어서.. 막 생각하고 있던 몇 가지 얘기를 하게 되었다.

시간과 여력은 안 되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더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사는 거 어려운 사람들을 조금 더 만나려고 하는 편이다. 경제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가능하면 현장 근처에 있으려고 하는 것이 나의 전통적인 삶이라서..

높은 사람 안 본다고 하지만, 그래도 살다보면 그렇게 되지만은 않는다. 잠시 되짚어 보니까, 지난 주 금요일에는 박용진과 가볍게 소주 한 잔 했고.. 월요일에는 책 제목하고 내용 조율 마지막으로 하느라고 총리였던 정세균과 점심을 먹었다. '다크 히어로의 탄생'으로 책 제목을 잡았다는 얘기를 했고. 어차피 내가 책임지고 내는 내 책이라서, 원고는 안 보여주었다. 보면, 섭섭해할지도 모르는 내용이 좀 있기는 한데..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시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이소영과 저녁.. 뭐야, 이틀에 한 번씩은 높은 사람 만난 거잖아? 그 사이에 도시 문제 전문가들과 서울신문 대담을 핑게 삼아서 봤었고.

2016년에 애들 보기 시작하면서, 가급적이면 너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친한 사람들만 보지 않으려고 약간 노력을 하기는 했다.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책의 일정에 맞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보통 2~3권 후에 낼 사람들을 주로 신경 써서 만난다. 막상 책 낼 즈음에는 잘 안 만난다. 굳히 인터뷰 형식이나 취재 형식을 취하지 않고,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미리미리 만난다. 그게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할 때에 비로서 책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편안할 때 미리 해야 일 같이 안 만나서 좋다. 막상 해당 책 작업에 들어가면, 데이타들 업데이트 하고, 못 읽은 거 급하게 읽어야 해서 인터뷰할 여력은 없다. 책 작업 들어가서도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그건 아직 준비가 덜 된 거라서, 작업 중간이라도 세운다. 다 준비된 거 아니면 원고 작업에 안 들어간다.

지금 내가 주력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거나 그들을 키우느라고 인생이 뒤틀린 혹은 뒤틀려간다고 느끼는 그 부모들 혹은 주변 사람들이다. 작년에 10대 연구를 다시 집어들어서, 현실적인 삶이 그렇게 되었다.

지금 내 형편에서는 높은 사람들 만나봐야 아무 도움 안 된다. 욕망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학교 가기 싫고, 게임만 좋은 중학교 2학년, 3학년, 딱 그 세계의 일이다. 물론 매우 만나기 힘들다. 시간을 들여서 공을 들인 결과로, 그런 친구들 중에 부모랑 우리 집에 놀러오는 아이들이 좀 있다. 대화를 하기 보다는 그냥 흘려가면서 하는 얘기들을 듣는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한다.

보통의 경우는 나는 정말 말이 없다. 가만히 바위처럼 있으면 조금씩 사람들이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많다. 너무 지겨워서 게임 하다 말고 자기 얘기를 하면, 그때 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좀 배운다.

리베카 솔닛의 글들을 좋아한다. 그녀가 '맨스플레인'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나는 그 전작인 <어둠 속의 희망>을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 표현을 보고도, 원래도 사람들하고 있으면 나는 말이 없는 편인데, 입을 더 다물게 되었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거의 듣지 못하고 간다. 어색해하다가, 나중에는 익숙해지고, 그 후에야 자기 얘기들을 좀 한다. 물론 나도 중간에 끼어들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냥 참는다.

나중에 죽고 나서 "하따 그 양반 말 많네", 그런 소리를 안 들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곧 나올 책까지 포함해서 39권이 책을 썼다. 책이 좋은 건, 볼 사람 보고, 말 사람 말고.. 그렇게 많이 썼는데, 말까지 많으면 좀 이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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