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플레인..

좌파 에세이 2021. 6. 17. 01:54

저녁 때 이소영 의원실에서 하는 도시락 대화모임에 갔다왔다. 어지간히 중요한 일 아니면 저녁 시간에는 안 나가는데, 그 방 보좌관이 이래저래 좀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라..

이소영과는 이래저래 겹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실제 본 건 처음이다.

애들 키우면서, 높은 사람들 만나는 것은 극도로 제한하는 중이다. 특별히 내가 뭔가 하려고 하면 그런 사람들 만나면서 해야할 것인기는 하지만, 요즘은 글 쓰는 것 외에는 특별하게 하는 게 없다. 할 여력도 안 되고.

이준석 이후의 변화에 대해서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마침 공희준에게 부탁받은 글 마무리하던 중에 나가게 되어서.. 막 생각하고 있던 몇 가지 얘기를 하게 되었다.

시간과 여력은 안 되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더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사는 거 어려운 사람들을 조금 더 만나려고 하는 편이다. 경제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가능하면 현장 근처에 있으려고 하는 것이 나의 전통적인 삶이라서..

높은 사람 안 본다고 하지만, 그래도 살다보면 그렇게 되지만은 않는다. 잠시 되짚어 보니까, 지난 주 금요일에는 박용진과 가볍게 소주 한 잔 했고.. 월요일에는 책 제목하고 내용 조율 마지막으로 하느라고 총리였던 정세균과 점심을 먹었다. '다크 히어로의 탄생'으로 책 제목을 잡았다는 얘기를 했고. 어차피 내가 책임지고 내는 내 책이라서, 원고는 안 보여주었다. 보면, 섭섭해할지도 모르는 내용이 좀 있기는 한데..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시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이소영과 저녁.. 뭐야, 이틀에 한 번씩은 높은 사람 만난 거잖아? 그 사이에 도시 문제 전문가들과 서울신문 대담을 핑게 삼아서 봤었고.

2016년에 애들 보기 시작하면서, 가급적이면 너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친한 사람들만 보지 않으려고 약간 노력을 하기는 했다.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책의 일정에 맞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보통 2~3권 후에 낼 사람들을 주로 신경 써서 만난다. 막상 책 낼 즈음에는 잘 안 만난다. 굳히 인터뷰 형식이나 취재 형식을 취하지 않고,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미리미리 만난다. 그게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할 때에 비로서 책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편안할 때 미리 해야 일 같이 안 만나서 좋다. 막상 해당 책 작업에 들어가면, 데이타들 업데이트 하고, 못 읽은 거 급하게 읽어야 해서 인터뷰할 여력은 없다. 책 작업 들어가서도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그건 아직 준비가 덜 된 거라서, 작업 중간이라도 세운다. 다 준비된 거 아니면 원고 작업에 안 들어간다.

지금 내가 주력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거나 그들을 키우느라고 인생이 뒤틀린 혹은 뒤틀려간다고 느끼는 그 부모들 혹은 주변 사람들이다. 작년에 10대 연구를 다시 집어들어서, 현실적인 삶이 그렇게 되었다.

지금 내 형편에서는 높은 사람들 만나봐야 아무 도움 안 된다. 욕망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학교 가기 싫고, 게임만 좋은 중학교 2학년, 3학년, 딱 그 세계의 일이다. 물론 매우 만나기 힘들다. 시간을 들여서 공을 들인 결과로, 그런 친구들 중에 부모랑 우리 집에 놀러오는 아이들이 좀 있다. 대화를 하기 보다는 그냥 흘려가면서 하는 얘기들을 듣는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한다.

보통의 경우는 나는 정말 말이 없다. 가만히 바위처럼 있으면 조금씩 사람들이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많다. 너무 지겨워서 게임 하다 말고 자기 얘기를 하면, 그때 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좀 배운다.

리베카 솔닛의 글들을 좋아한다. 그녀가 '맨스플레인'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나는 그 전작인 <어둠 속의 희망>을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 표현을 보고도, 원래도 사람들하고 있으면 나는 말이 없는 편인데, 입을 더 다물게 되었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거의 듣지 못하고 간다. 어색해하다가, 나중에는 익숙해지고, 그 후에야 자기 얘기들을 좀 한다. 물론 나도 중간에 끼어들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냥 참는다.

나중에 죽고 나서 "하따 그 양반 말 많네", 그런 소리를 안 들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곧 나올 책까지 포함해서 39권이 책을 썼다. 책이 좋은 건, 볼 사람 보고, 말 사람 말고.. 그렇게 많이 썼는데, 말까지 많으면 좀 이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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