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까지는 때려 죽여도 송곳 하나 꼽아 넣을 공간이 없다. 

제일 큰 건, 애들 방학이다. 아내가 육아 휴가 낸다고도 했는데, 육아휴가는 내년에 써야할 것 같다. 둘째 애 몫의 육아휴가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내년은 올해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살아볼까, 이것저것 고민 중이다. 

가을에 할 수 있는 걸 이래저래 전체 일정들을 좀 조정을 하면서 시간을 만들었다. 

젠더 경제학과 좌파 에세이, 이 두 개가 마지막으로 가을 작업용 리스트에 남은 것인데,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젠더 경제학은 팬데믹 경제학만큼 데뷔 초기 리스트에 들어가 있던 책이다. ‘마초 자본주의’는 ‘조직의 재발견’ 후반부에서 일부 사용을 했는데, 원래는 젠더 경제학에서 사용하려고 했던 핵심 개념이었다. 이걸 누가 볼까, 미루고 미루다 지금까지 왔다. Equal pay day도 원래는 젠더 경제학의 결론부에서 쓸 핵심 개념이었는데, 이걸 못 낼 것 같아서 직장 민주주의 책에서 일부 써먹었다. 이래저래 핵심 개념들을 다른 책에서 사용해서, 이래저래 내기 어렵다고 생각을 했었다. 

2년 전인가,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라는 제목의 스웨덴 책을 읽었다. 책은 아주 재밌는데, 이것보다는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하야 책이 다시 살아났다. 

또 다른 책은, 그야말로 가슴에서 나오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에 관한 책이다. ‘좌파 에세이’ 정도로 일단은 책 코드를 잡았다. 20대 때 앙리 르페브르가 유행시킨 ‘일상성’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았었다. ‘진보’라고 스스로를 부르면서 삶은 정말 대충대충 살아가는 선배들에게 질리도록 질렸다. 그래서 나는 그 안에서도 더욱 더 비주류의 비주류의 삶을 살았다. 노동 운동이 주류를 형성하던 시기, 생태 얘기하면 당연 비주류다. 시대가 변해서 녹색 성장의 시대, 나와 같이 춥고 배고픈 데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더 주류 세계로 나아간다. 그걸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한 자리’를 향해가는 그 모습이 그렇게 썩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어차피 두 책을 다 쓰기는 할 것 같은데, 순서 등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문제 앞에 서게 되었다. 잘 모르겠다. 

내 책이 잘 팔리는 시점이면 사실 별로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인데, 팬데믹 경제학처럼 겨우겨우 출판사에 손해 끼치지 않는 정도를 이어가다 보니까, 사실 별로 책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커져간다. 나이도 먹고, 예전 같지 않다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도 싫고. 

책이 안 팔리니까 책에다 더 정성을 많이 들이게 되는데, 그렇게 해야 겨우겨우 기본 3점이라도 나는 상황. 새로운 책을 쓰기 시작하면 설렘보다는 안 팔릴 때, 속을 달래는 기억이 먼저 든다. 그래서 새 책을 시작하기가 싫다. 

그런데도 시작하려고 하니까, 더 많은 이유와 에너지 그리고 명분 같은 게 필요하게 된다. 진짜 손이 가지 않는 것을 억지로 쥐어짜는 것과 같다. 그러다 보니까 나는 책을 왜 써야 하는가, 그런 질문 앞에 끊임없이 서게 된다. 

그런데도 계속 쓰는 것은? 내가 살아서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아직 책을 쓰면서 고민하는 것보다 우아한 일을 아직은 찾아내지 못 했다. 아직도 책을 쓰느냐고 조롱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우아한 일이기는 하다. 

오죽 고민을 많이 했으면, 정조 시절에 벌어졌던 문체 반정에 대한 생각을 다 했을까 싶다. 문장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정조가 박지원을 불러다가 반성문을 쓰게 했다. 왕이, 너 글 이딴 식으로 쓰면 죽어, 이런 얘기를 한 거다.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보게 된다. 그렇다고 없는 능력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계속 고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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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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