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몇 년만에 다시 봤다. 전에도 재밌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까 겁나게 재밌다. 

지금 한국의 상황과 제일 비슷한 영화를 고르다 보니까 <러브 액츄얼리>.. 수많은 크리스마스를 즈음한 사랑과 우정, 그런 것들이 스쳐 지나가는 영국식 더티 유머가 머무려진, 진짜 성인용 로코다. 

98년 IMF 한 가운데 영국 리즈에서 열린 학회에 간 적이 있었다. 저녁 먹고 영국 학자들하고 맥주를 마시는데, 나를 초청한 젊은 그룹들이 토니 블레어는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고, 거의 노무현 대통령 되었을 때 한국의 소장파 학자들이 노무현 지지하던 것 같은 열성적 애정을.. 그리고 좀 시니어급 학자들이 블레어의 앞날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고 뒤에서 얘기하던. 그런 장면들이 기억 속에 있다. 

토니 블레어는 97년, 44살의 나이로 노동당 정권을 만들었다. 전설적 인물이다. 세계적인 바람도 좀 피운 걸로 알고 있다. 

미혼인 젊은 총리가 인턴 직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얘기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클라이막스에 나오는 많은 고백 중의 하나다. 영화는 2003년에 나왔다. 

보수당 쪽에서 데이빗 캐머론이 당대표가 된 것은 39세의 일이고, 그가 드디어 노동당으로 정권을 되찾은 것은 2010년 44세의 일이다. 이번에는 노동당이 아니라 보수당 쪽에서 젊은 총리를 내세웠다. 

우리나라가 대통령제라서 그렇지, 의원내각제였으면, 국회 해산하고 재선거해서 바로 총리가 될 상황이다. 토니 블레어나 데이빗 캐머론이나, 다 그런 길을 걸어갔다. 젊은 대통령 마크롱이 대통령이 된 경로도 별로 다르지 않다. 사회당의 올랑드 정권이 너무 무기력했고, 다시는 집권하기 어려울 조건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극우파에게 대통령을 넘기기도 싫고, 그 중간에 40대 대통령이 등장하였다. 

“Love actually all around.” 사실 이때도 영국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었고, 토니 블레어가 매우 신경 써서 이 문제에 접근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랑에 대한 크리스마스 캐롤 같은 이야기. 

아마 지금 누군가 이런 영화를 만든다면, ‘사랑’에 모든 것을 걸기는 어렵다. 지금의 20~30대의 절반 가까운 숫자는 연애는 필요 없어, 결혼은 꺼져, 그런 것을 인생관으로 가지게 될 것이다. 그 상황에서 “사랑은 진짜로 어디에나”, 그런 얘기는 잘 안 먹힐 것 같다. 하지만 “summrt vacatin actually”, 여름 휴가를 모티브로 얘기를 구성해도 마찬가지 얘기가 나올 것 같다. 우리 다 사랑, 아니 여름 휴가는 필요하잖아! 

맥락은 다르지만 <브렉시트>는 역시 영국 총리실 주변에서 벌어진 더티 게임에 관한 것이지만, 여기서 잠시 데이빗 캐머론 애기가 나왔을 때, 영국은 어디로 가는가, 유사한 고민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정치야 무슨 상관이랴! 사랑은 어디에나.. 그런 2000년대 초반과 같은 사랑의 시대는 한국에서는 당분간 오지 않을 것 같다. 이미 몇 년 전부터 20대들에게 한국은 젠더 전쟁의 양상이었다. 10대로 내려가면 더 하다. 로맨스 영화는 잘 안 만들어지고, 나와도 성공하기가 어렵다. 

얼마 전에 한국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보았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로맨스는 양념으로 스쳐지나가듯, 밑도 끝도 없이 그들은 사랑하였다. 남은 것은 존재도 몰랐던 딸에 대한 아빠의 사랑 그리고 별로 다정하게 지낸 것 같지도 않은 죽은 형에 대한 집착적 사랑, 그런 것들이 악으로 가는 이유가 되었다. 논리적으로는 러브 액츄얼리와는 전혀 다른 사랑에 대한 얘기니까, 트랜스 젠더가 구원으로 가는 마지막 사다리로 내려오게 된. 앞으로는 아마 이런 얘기들이 한국에서는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한국의 10대들이 지금 <러브 액츄얼리>를 보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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