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하다보니, 장하준의 새 책을 아직 못 읽었다.

여러가지로 쉽지 않은 상황인데, 그래도 우리에게는 장하준이 있었다, 그렇게 밖에 할 말이 없다.

장하준에 대해서는, 그가 학위 준비할 때 그리고 캠브리지에 임용될 때, 기타 등등 여러가지로 애틋함이 많다.

생각보다 자주 볼 관계였던 것 같은데, 그렇게 자주 보지는 못했다.

누구나 그렇게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장하준하고 딱 일치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건 어느 학자라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만...

요즘은 장하준이라는 학자가 한국에 있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

올해는 마이클 샌들과 함께 한 해를 시작해서 장하준과 함께 마감을 하는 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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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적인 강좌에서는 하지 못하는 얘기들이 많다만.

내가 직접 끌어갔던 스터디팀에서는 한 번도 빼지 않고 꼭 읽으라고 한 책이 이 책이다. 지난 여름에 했던 사회과학 방법론 기초에서도 이 책을 중요하게 거론했었다.

그러나 번역본이 없어서, 어지간히 찾아서 읽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읽지 않는 책.

내용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네오 스토이시즘과 스코트랜드의 독특한 철학 전통을 모르고는 경제사상사는 하기가 어렵다.

경제사상사를 출발하기 위해서 반드시 읽는 책...

드디어 번역이 되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에라스무스, 조금 내려가면 마키아벨리와 함께, 경제사상사에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만베딜의 <꿀벌의 우화>...

내용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 책만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책이 인류 역사에 몇 번이나 있었을까 싶은. 우리는 만데빌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여전히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보통은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의 스승격이라고 분석한다.

만약 이 책을 보고 진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면, 그 다음에는 다시 한 대를 건너 띄어서 장-밥티스트 세이의 원전들을 읽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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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혼자 있다가 심심하면 방문 앞에서 울다가, 얼마 전부터 방문을 북북 긁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나가서 놀아줘야 한다.

진짜 아무 생각없이 책이나 읽을까 하고 책꽂이를 살피다가 어떻게 거기 꽂혀 있는지 영문을 모르는 만화책 한 권을 발견했다.

<한 남자의 그림자>. 스퀸텐 & 페테르스의 '어둠의 도시들'이라는 연작 만화의 한 권인데, 너무 재밌어서 잡은 김에 한숨에 읽어내려갔다.

악몽 그리고 이어지는 그림자의 변화, 그리고 다시 그림자가 되돌아왔을 때의 당혹스러움.

이어지는 일상으로의 복귀.

보험회사 직원을 모티브로 하는 얘기들은, 그 스스로가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카프카의 얘기들에게 <마스터 키튼>의 얘기들까지.

만화책 형식인데, 책을 덮고나서 왜 사람들은 보험회사 직원을 모티브로 할까, 잠시 생각해봤다.

일단 큰 돈이 걸려있고, 약간의 글자나 사인 한 장으로 많은 것들이 변하게 되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산, 믿음, 선입관, 편견,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개입하는 아주 인간적인 상황들이 종종 연출되고.

보험가입자와 보험직원과의 관계, 그리고 돌아서면 보험직원과 회사와의 관계, 역시 그도 한 사람의 인간이므로 그가 가지고 있는 일상적인 모습들, 최소한 이 세 가지의 레이어가 중층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을 모티브로 할 수 있다. 

만화는 짧지만, 직장 생활을 하는 누구에게나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아울러 시대 아니 최소한 건물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뒤틀면서 그야말로 '존재적 상황' 속에서 답변을 하도록 요구한다. 

어느 가을의 특징 없는 가을, 간만에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질문 앞에 서 보았다.

만화책을 읽어내리는 내내, 고양은 마루의 전기장판 위에서 흡족한 듯이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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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의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내용에는 흠 잡을 데가 없었지만 지나치게 보고서 느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쉬움이 전혀 없는 책은 아니다. 익숙한 정책 보고서 양식을 벗어나서 얘기를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풍성함을 더 많이 살렸으면 어떨까, 초고를 덮고 나서 머리에 남는 아쉬움은 그런 것이었다. 이 문제는, 아마 저자로서의 오건호가 앞으로 고민할 문제일 것 같다.

누군가 나한테 뭔가 부탁할 때, 특별히 토달지 않고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생각보다는 나도 까다로운 편인데, 내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아주 드문 사람 중의 한 명이 오건호이다.

사실 오건호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 지난 대선 때, 당시 민주노동당의 공약집을 총괄할 수도 있는 그런 위치에 내가 서 있었는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다. 당내의 아주 오묘한 정파사이의 갈등도 일일이 조정하기에는 좀 복잡했고,

결국 정책을 총괄하는 일은 포기했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미안함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뭔가 한 번 해보자고 마음을 맞췄던 오건호 박사에게는 아직도 갚지 못한 빚이 남아있는 것처럼, 마음 속으로부터 미안함이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책의 해제에는 지나치게 선정적인 것 같아 내용을 집어넣지는 않았지만, 지난 정권 후반기에서 진짜 유시민 저격수는 오건호였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유시민은, 솔직히 좀 너무하다 싶었다.

크게 보면 두 가지 흐름이 있었는데, 첫째는 송기호와 박상표 그리고 내가 추진하던 식품안전기본법에 대한 기존의 논의 과정이다. 송기호는 <곱창을 위한 변론> 등 광우병 때 맹활약했던 농업 분야의 통상을 전문하던 변호사, 역시 광우병 사태로 아주 유명해졌던 수의사 박상표 역시 식품 위생 문제로 같이 연구를 하던 동료였다. 나는 여기에 생태라는 관점을 집어넣는 일을 했었고, 시민단체에서 그렇게 꽤 오랫동안 식품안전기본법의 기본 방향에 대한 논이를 생각보다는 오래 했다. 유시민이 장관이 되면서 이런 논의가 다 뒤집어지고, 원래의 취지와는 상관없는 삼천포로 갔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유시민을 정책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 때의 기억 때문이다. 그는 그런 일보다는 '새만금에 골프장 100개', 요런 일들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흐름이, 여전히 폭탄처럼 잠재하고 있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에 대한 유시민식 개혁이었다. 와... 이게 계산 과정이나 시뮬레이션이 엄청나게 복잡했는데, 나는 원래 내가 하던 분석이 아니라서 이걸 손을 대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때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바로 오건호 박사였다. 솔직히, 이렇게 성실하고 꼼꼼한 사람이 다 있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당시의 유시민 개혁안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과 왜 근본적으로 이게 반동에 가까운 개혁안인가, 그리고 그가 열려고 있던 연기금 운용방안, 그 문제점을 실제로 현장에서 분석했던 것은 오건호였다. 외부에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자들끼리, 혹은 정책담당자들끼리, 오건호는 유시민 저격수로 불렸다.

그런 오건호가 지난 몇 년 동안 당시의 공공연금 개혁안에서 더 진도를 나갔다. 그의 연구소 활동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그가 새롭게 손을 맞춘 동료들과 꽤 많은 분석을 한 셈이다.

하여간 이게 책으로 나올까 싶었던 게 출간과정을 지켜보던 사람의 첫 번째 질문이었고, 과연 이걸 사람들이 읽을까, 그게 두 번째 질문이었다.

이건 일종의 파일롯 플랜트랑 비슷하다. 오건호 정도 되는 사람의 정책 보고서 정도의 내용을 가진 책이 어느 정도 한국 출판계에서 수용이 된다면, 이런 유사한 급의 연구결과들이 줄줄줄 출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실패하면, 이런 종류의 책들은 정부 출간기금의 지원을 받기 전에는 출간되기 어렵다. 명박 시대, 정부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서 "이건 좀 아니다"라는 결론과 의도를 가진 책들이 출판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크게 돈이 되지 않더라도 이건 의미있는 일이라서 내가 좀 돕겠다, 그런 독지가가 한국에는 지독하게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하여, 오건호의 새 책은 무조건 팔려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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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새 책을 읽었다. 일단 책은 읽기에 편하다.

노안이 꽤 심해지면서 점점 책을 읽기가 어려워졌고, 그러다보니 책에다 줄을 그어가며서 읽는 습관이 새로 생겼는데... 이 책은 펜을 준비하고 정색을 읽지 않아도 되는, 간만에 편한 책이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해제를 써 달라고 같이 보내준 원고는, 골 아플 생각을 하니까 차마 손이 가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데, 같이 온 목수정 책을 먼저 집었다. 집자 마자 읽어내려갔고, 다음 커피가 마시고 싶어지기 전에 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저자로서의 목수정에 대해서, 나는 문화복지와 문화행정과 같은, 그가 전공이었던 그런 분야에 대해서 분석하는 그런 사회과학풍의 책을 더 많이 써주기를 바랬지만.

일단은 에세이부터 먼저 시작하기로 했나보다.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

책은 최근 한국에서 진행된 연애에 대한 담론 실종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학자들이 이런 문제에 들어갈 때 일단 통계부터 현황을 살펴보고, 관련 논문들이나 저작에 나오는 얘기들을 죽 풀어놓고, 그리고 끝날 때쯤 되어서 자신의 생각을 아주 약간 보여주는 것과 달리...

목수정의 책은 솔직하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지금 한국의 연애 현상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총체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년에 이대 대학원에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자본주의와 여성, 그런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했는데, 공동수업이었던 이유인지, 아니면 뭔가 삼투압 현상을 일으키는데 실패한 것인지, 생각만큼 그렇게 성공한 수업은 아닌 것 같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꽤 많은 것들을 배웠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여성들이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그 속에서 불안감 그런 것들과 함께 그 또래 여성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아무래도 남성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들이 상상하면서 생각해보는 그런 세상, 그런 것은 없다. 그 솔직함을 목수정이라는, 매우 세밀하면서도 민감한 센서를 따라서, 혹은 잔잔하면서도 순간 폭발의 문체를 가지고 있는 가이드를 따라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1~2년 사이의 한국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에 걸친 여성들의 생각의 한 부분과 목수정이 묘사해준 한국의 모습은, 상당 부분이 일치하는 것 같다.

목수정한테 새롭게 배운 것 중 하나가, '헌팅'이라고 하는, 아마 불어로는 draguer라는 속어로 표현하는 것 같은, 그런 행위가 한국에서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뭐, 아주 없어진 것 같지는 않다. 길거리에서 "아가씨 차나 한 잔 합시다, 장미 빛깔 그 입술", 그런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들이, 이제는 웨이터를 매개로 한 나이트 클럽으로 전환되거나. 아니면 홍대 앞에서 예술을 매개로 한 상업 공간으로 숨어들어갔거나.

비슷한 얘기를 나도 몇 번 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연애편지를 가슴 절이며 쓰는 대학생을, 연구를 위해서 수소문을 해봤는데 결국 못 찾은 적이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과 함께 토건이 한국을 휩쓸면서 경제 근본주의가 클라이막스로 갔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여성한테 말을 거는 것, 절절하게 연애편지를 쓰는 것, 이런 것들은 사라졌다. 그 빈 공간을 이벤트가 채웠고, 럭셔리 선물이 채운다. 물론 감성은 상업성으로 치환되었고, 사랑은 경제성이라는 저울에 놓고 잴 수 있는 것과 동치되어 버린 것 같다.

성경에 나왔던가,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아마 예수가 "너희는 서로 거래하라",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같기는 하다.

목수정의 책을 읽으며, 간만에 나도 연애와 연애 실종,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볼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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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의 저자인 마스모토 하지메가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 책의 한국어판 해제를 내가 달았다. 작년에 아마미아 카린과 함께 메이데이 행사 때 한국에 왔을 때 그 때 만난 적이 있다.

다큐는 한국에서 본 사람이 꽤 되는 것 같은데, 책은 생각만큼 잘 팔리지는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마스모토 하지메는, 어쨌든 일본에서 정권 바꾸는데 상당한 기여를 해서,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여당 쪽 인사라고 할 수도 있다.

뭐 그렇게 과격한 편은 아니고, 청년들의 천진과 발랄 그리고 분노 같은 것을 잘 대변하는 사람이다만.

블랙 리스트에 올라 있어 입국 거부당한 것 같다만.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인지 모르겠다.

진짜? 이게 정부야?

그를 초청했던 하자센타의 원래 이름은 남부지역 청소년 교육원인데, 지금은 서울시에서 위탁받은 프로그램들을 주로 운영하고, 대안학교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명박 정부 들어와서 사회적 기업을 노동부에서 위탁받아 일종의 인큐베이팅을 하는, 반은 정부기관 같은 데다.

얼마 전에 대통령도 여기 가서 "나 잘하고 있어요", 사진 엄청 찍고 온 곳인데.

사실상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정부 기관에서 초청한 것으로 보는 게 맞는데, 블랙 리스트가 있었다니...

일단은 외교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눈으로 보면 운동권이지만, 일본 민주당으로 보면 집권당 인사라고 볼 수도 있다.

내부적으로는...

해외 인사도 블랙 리스트로 관리를 했으니, 국민들 관리야 얼마나 살뜰하게 잘 하셨겠나, 그런 논리적 귀결이 가능한 해괴한 일이다.

반 정부 해외인사까지 블랙 리스트로 관리하고 있다는 걸 만천하에 보여준 셈이니, 끌끌... 얘들 하는 짓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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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에서 허슈만의 새 책이 나온다. 음, 새 책은 아니고, 1991년 책인데, 출간된지 딱 20년만에 나오는 셈이다.

허슈만의 책 중에서 국내에서 번역된 건 'The Passions and the Interests'라는 책이 있는데, 이건 박사과정 세미나마다 매번 내가 학생들에게 읽히는 책인데. 절판되었다.

유명한 책은, Exit, Voice and Loyalty라는 1970년 책이다.

허슈만은 좌파라고 하기에는 좀 어색하고, 70년대 분류법으로 정치경제학으로 하기에도 좀 아닌데, 하여간 비주류 중의 비주류 같은 사람이고, 그런 관계로 노벨경제학상을 못 탔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정부 움직이는 데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움직이는데, 허슈만은 미국 정부의 경제자문 역할도 오래 했었고, 중남미 국가에서 실제 경제 자문관 역할도 꽤 한 사람이다.

폴 사무엘슨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속하지 않고, 그렇다고 정치경제학의 계보에도 기계적으로 들어가지 않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재건 과정에서 맹활약한 사람이, 프랑스의 Bernard Rosier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했던 독일인인 Albert Hirschman, 이 두 사람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Bernard Rosier의 제자 중 철학 쪽을 맞겼던 Andre Nicolai한테 공부를 하고, 생물학 쪽을 맞겼던 Rene Passet의 제자들이 새로 시작한 생태경제학 흐름에서 학위 공부를 했다.

(마지막 지도교수는 Michel Rosier였는데, Bernard Roseir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만... 차마 개인 신상에 관한 것이라서 물어보지는 못했다.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알고 있다만.)

어쨌든 이 베르나르 로지에 쪽의 학풍에서,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허슈만은 신이었다.

대학원의 꽤 많은 과목에서 허슈만의 책을 읽도록 했는데, 처음 그의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정말이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난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신, 어쩌면 그를 묘사하기에 적합한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유일신 세계에서는 신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대단한 권능을 상상하지만, 희랍식 다신교의 체계이거나 아니면 켈트족처럼 별의별 정령과 님프가 난무하는 세계에서, 가끔 가다가 그렇게 큰 권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찌부러진 신들도 종종 있다만.

한국에도 허슈만의 생각은 초기 경제개발 시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걸로 알고 있는데, 그의 이름은 잘 거론하지는 않는다.

'저개발 국가의 불균형 발전 전략', 이게 바로 허슈만이 45년도 이후 여러가지 UN 경제기구에 영향을 주었던 바로 그 개념이다.

91년 허슈만 책의 한국판에 해제를 맡게 되면서, 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한 때 세상을 움직였고, 여전히 매력적인 이 경제학자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할 것인가...

출판사에서는 제목부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반동의 수사학>이라는, 직역 제목을 일단 달았는데...

Rhetoric of reaction에 어떤 번역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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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새 책에 대해서는 한동안 풍문이 돌았었다.

나는 목수정과는 골프장 싸움 때 처음 알았다. 골프장 싸움이 휴지기로 접어들어갈 때, 민주노동당에서 골프장과 관련된 성명서가 한 장 나왔고, 잠시 논쟁이 계속되는 일이 생겼다. 이 성명서가 내가 기억하는 목수정의 첫 번째 글이었다.

이후 분당 직전, 목수정이 노조 사무국장이 되었나, 하여튼 당내에서 상근자들의 체불 임금 등 여건을 개선하자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가장 목소리를 높였던 것도 목수정이었다.

나는 그가 문화복지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얘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가 그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지, 연애 얘기가 책으로 먼저 나오게 되었다. 웅진에서 나온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야성의 사랑학>이라는 제목의 목수정 새 책에 대한 기사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아마 Bazar 이번 호일 것 같다. 저자의 손을 넘어서 출판사로 갔지만, 아직은 작업 중이라서 책이 나오지 않았으니.

판매부수를 잘 알려주지 않아서, 바자와 보그 사이의 규모는 정확히 모른다만. 보그가 조금 더 많이 찍는 걸로 알고 있다.

영화 <여배우>에서 바자의 얘기들은 일부 공개가 되기는 했는데, 어쨌든 한국에서도 바자나 보그, 데스크가 모두 스타들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보그 쪽이 더 알려져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김경은 최근에 두드러진 활동으로 눈길을 끌어잡는 소위 스타 에디터인 셈이다. 경향신문에 칼럼을 쓰는데, 월간 작가 쪽에 고정적으로 실리는 김경의 글은, 언제나 놀라움을 준다. 매번 챙겨읽지는 못해도, 기회가 닿으면 김경의 글은 꼭 챙겨보는 편이다.

감각적이기도 하고, 또 상업 세계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기자의 감성은? 그런 질문들은 김경 앞에서 재밌는 변주로 나타나게 된다.

그 김경이 목수정을 만났다.

목수정의 이번 연애 얘기는, 퍽 재밌을 것 같다. 신자유주의와 연애, 그리고 감히 도발적 연애를 상상하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아픔은? 인터뷰 내용에 의하면, 그런 얘기들을 여전히 감성적이며 또한 도발적인 목수정의 문체 속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패션지에서 만나보는 목수정, 하여간 반가왔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색다른 소색들을 찾아내는 김경에게도 또한 고마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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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능하면 작가나 저자들을 직접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사람을 직접 알면, 책에 대한 긴장감이 떨어지고, 왠지 상상이 공간이 좁아지는 것 같은 부작용을 느끼게 된다.

잘 모를 때에는 책을 통해서 상상해본 이미지와 목소리 같은 것이 생겨나고, 그렇게 유추해진 상상의 공간 속에서 또 다른 상상이 생겨나고, 그런 과정이 썩이나 즐겁다.

그러다가 직접 작가를 만나게 되면. 그런 상황에서는 다시 책을 읽어도 상상의 폭이 오히려 좁아지는 부작용이 생겨나게 되는 것 같다.

마음 속의 목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본인의 진짜 목소리가 들리면, 영 꽝이다.

그래서 결국은 좀 거리두기를 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 부작용을 느끼지 않은 거의 유일한 작가가 최성각이다.

그는 생동감 있게 상황을 묘사하고 서술하는 데에는, 한국에서는 특A급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글을 잘 쓰고, 또 재밌게 쓴다.

잡자마자 한 번에 읽는 그런 몰입형은 아닌데, 찬찬히 상황을 상상하면서 읽으면 읽는 글 맛이 보통이 아니다.

그가 그동안 썼던 서평들을 모아서 책을 냈다. 역시 재밌다. 어쩌면 이렇게 글을 재밌게 잘 쓸 수 있을까?

짧은 글쓰기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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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깔로레아용 프랑스 경제 교과서는 좀 깊은 스토리가 있는 책이고, 앞으로도 당분간 스토리가 진행될 얘기이다.

출판사에서는 꼭 돈이 되는 책만 내는 것은 아니고, 의미가 있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내기도 한다. 이번에 휴머니스트에서 출간한 <프랑스 경제사회 통합 교과서>가 그런 경우이다. 중간에 준비하는 과정에서, 돈도 꽤 많이 쓴 걸로 알고 있다.

대안 경제 교과서에 대한 논의가 한국에서 시작된 것은 좀 되는데, 아마 2003년, 딱 요 맘때처럼 더웠던 어느 여름날이라고 기억나는데.

사회교사모임이라는 곳에서 대안 경제 교과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 혼자서는 추스릴 수가 없었는데, 결국 한사경에서 이 일을 맡기로 했는데, 강남훈 선생이 일을 좀 끌어가셨다.

나중에 강남훈 선생이 교수노조 사무국장이 되고, 서로 바빠서 누구도 제대로 대안 교과서 집필에 관한 일을 챙길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역시 지금처럼 더운 여름날, 김수행 선생과 한국에 맑스경제학 전공했던 사람들이 어지간히 팔공산에 모여서 엠티를 한 적이 있었다. 보통은 이 양반이 화를 내거나 뭐라고 하는 일은 별로 없는데, 그 때는 불 같이 화를 내셨다.

요지야, 너네들 도대체 뭐하고 살고 있는 거냐, 뭐 그런 건데.

자칭타칭, 유명 교수들이 밤 12시에 전부 일어나서 벌 서듯이 한 명씩 요즘 하는 일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김수행 선생한테 왕창 깨지고...

사실 그 나이에 혼나는 것도 익숙지 않고, 새우깡에 소주 마시면서 밤 새는 게, 와 힘들다...

하여간 그날 밤에 대안 경제 교과서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는데, 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고 김수행 선생이 정말 불같이 화를 내신 적이 있었다.

(그후로도 가끔 김수행 선생이 후학들에게 섭섭함을 얘기하는 걸 듣기는 했는데, 하여간 그렇게 화를 내시는 건 처음 보았다.)

그리하여, 다시 몇 년이 흐르고. 직접 교과서를 쓸 수가 없으면, 대안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걸 일단 번역이라도 해서, 이렇게 생겨먹은 걸로 외국에서는 공부를 하자, 그렇게 해서 이 책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참 커도 너무 큰  책이고, 게다가 용어도 너무 복잡했고, 미국 용어를 그냥 번역한 우리나라 경제 용어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미묘한 맥락들이 있었다.

보통 번역 책의 감수를 맡으면, 문맥이 거칠지 않은지, 복문을 해체하는 과정이 제대로 되었는지, 혹시라도 문장의 맥락이 거꾸로 번역된 것은 없는지, 그런 걸 중심으로 보는데.

이 책은, socio-professional category에 속한 수 십개의 용어를 일관되게 번역하는 것 자체가 돌아버릴 일이었다.

하여간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 거대한 떡대가 한국의 독자 앞에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엄청난 떡대라고 하지만, 그냥 프랑스에서는 고등학생들이 대학 가기 위해서 보는 교과서일 뿐이다.

철학의 경우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수준은 학부생 수준을 가뿐히 넘어간다. 제대로 된 학부생 훈련 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한 엉성한 경제학과 수준을 사뿐 넘어갈 정도이다.

한국 학부에서 폴라니를 제대로 가르치나? 아니면 뒤르케임을 읽게 하나? 혹은 지역경제, 우리 식으로 예를 들면 동북아 경제에 대해서 기본 메카니즘을 가르치기는 하나?

작업 중에 그런 질문이 계속 들었는데, 어쨌든 수준 차이가 너무 높게 느껴져서, 아, 우리는 어쩌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끊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번 주에 겨우겨우 출간을 하게 되었고, 얼마나 되는 한국의 고등학생들 손에 이 책이 '배달'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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