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상태 혹은 교열지 상태로 책을 읽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때 사실 좀 떨리기는 한다. 과연 이 책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한국 책의 경우는 저자의 숨겨진 매력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주로 해제를 쓰는 것 같다.

외국 책의 경우는, 이 책이 한국에서 어떤 맥락에서 의미가 있는지 혹은 우리의 모습과 어떻게 다른지, 그런 소위 맥락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해제를 쓰는 것 같다.

엘렌 퍼펠 셀의 책의 경우는, 한국의 맥락으로 가지고 오는 방식 그래서 언젠가 내 책의 제목으로 쓸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마케팅 사회>라는 해제 제목을 달아주었다. 현재, 나 하는 꼬라지로 봐서는 이런 제목의 책을 쓰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다시 한겨레의 경제 월간지에 이 책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되는 순간이 생겼다.

보통 해제를 쓴 책에 대해서 감상문까지 쓰는 일은 별로 생기지 않는데, 이 책의 경우는 초교지 상태에서 한 번 생각해보고 다시 이게 책으로 나왔을 때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순간... 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책 내용과는 직접 상관은 없는 것이지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당신들도 해볼 수 있다고 제시하는 모델이 몇 사람 있다.

시오노 나나미가 했던 작업이면 당신들도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아무래도 귀족 출신인 시오노 나나미는 너무 멀어보인다는 반응이다.

그래서 <노 로고>의 나오미 클라인을 종종 제시한다. 나오미 클라인만큼 유명해지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그가 했던 작업 정도는 당신들도 할 수 있지 않느냐?

나오미는 캐나다 출신인데,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것 같다. 요런 경로로 활동한 사람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홀링이 아닐까... 그러나 홀링은 세계를 움직인 천재이다. 캐나다에 살면서 미국에서 활동한 또 다른 사람으로는 폴라니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부인이 혁명의 전사였기 때문에 폴라니는 미국 대학교수로 발령나서 입국하려던 순간, 그의 부인의 입국이 거부되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남편이 먼저 미국에 입국해서 대학에 자리를 잡고, 어떻게든 부인이 들어올 수 있게 한다고 할 것 같은데...

폴라니는 입국이 거절당한 부인을 두고 혼자 입국하는 대신에, 캐나다로 갔고, 교수 자리를 포기 했다. 그래서 한 번도 정식 교수가 된 적이 없이, 계절학기에서 짧은 특강 정도만 진행하면서 캐나다에서 살았다.

유사한 모델로 요즘은 호주의 켄버라에서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서 좀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서 활동하는 저자로, 나오미 클라인을 거론했다면, 이번에는 순수 미국인 모델로 엘렌 러펠 셀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Cheap price라는 책이 이번에 나온 책이고,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진짜 '살 떨리는' 그 책이 바로 <비만 유전자>.

엘렌 퍼셀 셀과 나오미 클라인이라는 두 가지 이름을 동시에 놓고 생각해본다면...

아, 한 명 한 명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연결점이 나온다.

이 두 사람은 21세기에 새로 등장한 저자 모델이라는 생각이...

20세기에 나왔던 책들은, 그것이 유럽이든 미국이든, 거대 이론 위에 세워진 경우가 많은데, 이 두 사람은 거대 이론 위에 자신의 책을 세우지 않고, 관찰기에 가깝도록, 그리고 생활 밀접형 주제를 성공적으로 다룬 사람들이다.

물론 시장에서 성공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는데, 그렇다고 이 사람들의 책을 놓고 상업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약회사, 식품회사, 이런 곳을 다루면 아주 길게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잘 접근하지 않는 주제들에 대해서 용감하게 직설법으로 접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저자의 공통점은 여성이라는 점이다.

생활에서부터 나오는 시각을, 기업이나 자본이나 그런 시각이 아니라, 또 다른 주체인 소비자 혹은 생활인이라는 관점에서 다룬 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다른 시각이 하나 등장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팡 하고 때리고 지나간다.

이 정도 모델이면, 한국에서도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cheap price는 책 내용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저자가 주는 의미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독서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우스 푸어> 강연회  (3) 2010.08.19
하우스 푸어  (1) 2010.08.03
인생기출문제집 2가 나온댄다...  (8) 2010.07.01
<정의란 무엇인가>, 간담회 후기...  (20) 2010.07.01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11) 2010.06.27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