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깔로레아용 프랑스 경제 교과서는 좀 깊은 스토리가 있는 책이고, 앞으로도 당분간 스토리가 진행될 얘기이다.

출판사에서는 꼭 돈이 되는 책만 내는 것은 아니고, 의미가 있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내기도 한다. 이번에 휴머니스트에서 출간한 <프랑스 경제사회 통합 교과서>가 그런 경우이다. 중간에 준비하는 과정에서, 돈도 꽤 많이 쓴 걸로 알고 있다.

대안 경제 교과서에 대한 논의가 한국에서 시작된 것은 좀 되는데, 아마 2003년, 딱 요 맘때처럼 더웠던 어느 여름날이라고 기억나는데.

사회교사모임이라는 곳에서 대안 경제 교과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 혼자서는 추스릴 수가 없었는데, 결국 한사경에서 이 일을 맡기로 했는데, 강남훈 선생이 일을 좀 끌어가셨다.

나중에 강남훈 선생이 교수노조 사무국장이 되고, 서로 바빠서 누구도 제대로 대안 교과서 집필에 관한 일을 챙길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역시 지금처럼 더운 여름날, 김수행 선생과 한국에 맑스경제학 전공했던 사람들이 어지간히 팔공산에 모여서 엠티를 한 적이 있었다. 보통은 이 양반이 화를 내거나 뭐라고 하는 일은 별로 없는데, 그 때는 불 같이 화를 내셨다.

요지야, 너네들 도대체 뭐하고 살고 있는 거냐, 뭐 그런 건데.

자칭타칭, 유명 교수들이 밤 12시에 전부 일어나서 벌 서듯이 한 명씩 요즘 하는 일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김수행 선생한테 왕창 깨지고...

사실 그 나이에 혼나는 것도 익숙지 않고, 새우깡에 소주 마시면서 밤 새는 게, 와 힘들다...

하여간 그날 밤에 대안 경제 교과서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는데, 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고 김수행 선생이 정말 불같이 화를 내신 적이 있었다.

(그후로도 가끔 김수행 선생이 후학들에게 섭섭함을 얘기하는 걸 듣기는 했는데, 하여간 그렇게 화를 내시는 건 처음 보았다.)

그리하여, 다시 몇 년이 흐르고. 직접 교과서를 쓸 수가 없으면, 대안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걸 일단 번역이라도 해서, 이렇게 생겨먹은 걸로 외국에서는 공부를 하자, 그렇게 해서 이 책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참 커도 너무 큰  책이고, 게다가 용어도 너무 복잡했고, 미국 용어를 그냥 번역한 우리나라 경제 용어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미묘한 맥락들이 있었다.

보통 번역 책의 감수를 맡으면, 문맥이 거칠지 않은지, 복문을 해체하는 과정이 제대로 되었는지, 혹시라도 문장의 맥락이 거꾸로 번역된 것은 없는지, 그런 걸 중심으로 보는데.

이 책은, socio-professional category에 속한 수 십개의 용어를 일관되게 번역하는 것 자체가 돌아버릴 일이었다.

하여간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 거대한 떡대가 한국의 독자 앞에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엄청난 떡대라고 하지만, 그냥 프랑스에서는 고등학생들이 대학 가기 위해서 보는 교과서일 뿐이다.

철학의 경우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수준은 학부생 수준을 가뿐히 넘어간다. 제대로 된 학부생 훈련 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한 엉성한 경제학과 수준을 사뿐 넘어갈 정도이다.

한국 학부에서 폴라니를 제대로 가르치나? 아니면 뒤르케임을 읽게 하나? 혹은 지역경제, 우리 식으로 예를 들면 동북아 경제에 대해서 기본 메카니즘을 가르치기는 하나?

작업 중에 그런 질문이 계속 들었는데, 어쨌든 수준 차이가 너무 높게 느껴져서, 아, 우리는 어쩌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끊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번 주에 겨우겨우 출간을 하게 되었고, 얼마나 되는 한국의 고등학생들 손에 이 책이 '배달'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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