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사에서 마케팅이라기 보다는 독자 팬 서비스 차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의 간담회를 연다.

작년에 할 때에는 준비모임이 따로 없었는데, 아무래도 오래는 작심하고 대규모로 한 거라서 그런지 예비모임이라는 것이 있었다.

박경철 선생은 방송에서 꽤 자주 뵈었고, 금태섭 변호사도 예전 그 양반 하던 라디오에서 뵈었고,

김용철 변호사는 처음...

김용철 변호사가 최근에 겪은 고초에 대해서 좀 얘기를 들었는데, 아마 대담회 때 본인이 직접 얘기하실 것 같다.

(기가 막힌 사연이...)

몇 가지 얼핏 드는 생각들이 있어서 약간의 단상을 적어보면...

1.
작년 건대에서 했던 조합에도 그렇고, 이번 조합에도 그렇고, 여성이 없다.

진짜 F4 컨셉인가?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여성 저자가 적어서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고미숙 등 인기 저자가 없는 건 아닌 것 같고. 어쨌든 여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요즘 강연의 특징이 대형화되는 추세가 좀 있는 것 같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최근에 내가 본 강연회나 대담회 같은 게, 작고 소박하게 한다는 것은, 예를 들면 50명, 이렇게 한 것은 그 절반도 못 채우는데, 오히려 100명 이상 혹은 1,000명, 그렇게 스케일감 있게 하는 것은 오히려 성황리에 잘 된다.

박경철 선생한테 들었는데, 어떤 지방대학의 강연회에서는 2,000명도 온 적이 있다는 것이다.

작년까지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장하준 강연회 때 500명이 왔던 게 가장 큰 것이었다. 역시 장하준의 힘, 그랬었는데, 박경철 선생 2,000명 얘기를 듣고는 입이 딱 벌어졌다.

이번 대담회도 종로5가에서 하는데, 1,000명이 좌석 규모인데, 신청자만 벌써 500명이 넘었다는 것 같다. 일단 신청을 받기는 하는데, 현장으로 그냥 오는 사람들도 다 입장을 시키겠다고 하는 것 같고, 최근의 흐름으로 봐서는 1,000명짜리 대형 방에서도 미리 가지 않으면 서서 듣거나 아니면 입장이 어려운 경우가 생길 것 같다.

작년에는 700명 정도 오셨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 때는 자리가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올해는 부족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

불과 1년 사이인데, 점점 대형화되는 추세가 있고, 이상하게 규모가 큰 것들은 잘 되는데, '소박 버전'이 오히려 잘 안된다.

현재 내가 생각해본 가설로는...

집회가 불가능해지고, 광장이 사실상 막히다 보니까, 집회로 갈 힘들이 실내에서 하는 강연회 같은 데로 몰리는 것 같다. 어쨌든 참석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렇게 모인다는 게 기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명박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 편이, 이 정도 규모는 되는구나, 그런 걸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가 좀 생긴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대중집회는 사람이 많이 모이면 재미도 있고, 괜히 뿌듯하기도 한데, 같은 내용이라도 사람 별로 없이 파리 날리면 영 재미없다...

그런 집회 대용품으로 대형 강연회를 사람들이 이해하는 거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검증하기는 어려운 가설이다.)

이 정도 되면, 원래는 TV에서 하거나 중계를 해주기도 하는데, 지금 한국 TV가 이래저래 다 막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강당으로 가게 된다.

지금 한국에서는 강당이 광장 대용, 그리고 TV 대용인 셈이다.

3.
괜히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다.

최근의 김용철 변호사의 경우가 그렇다.

나는 그를 처음 봤는데, 엄청 재밌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원래 유쾌한 건지, 아니면 최근에 살아가는 또 다른 재미를 찾은 건지...

한국에서 양심선언했던, 소위 인사이더들의 불행이 늘 마음에 아팠다만, 김용철 변호사가 행복해져야 우리 모두의 미래가 밝아진다는 그런 생각이 잠시, 머리를 빡 때리고 지나갔다.

"시민들이 당신 옆에 항상 있을 지어다..."

제발 좀 그런 해피엔딩의 역사가 있었으면 좋겠고, 살아서 그런 걸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

(아직 김용철 변호사 책 안 사신 분들은, 그걸로 어쩌면 천당에 들어갈 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좀...)

(전기라는 형식에 꽤 관심이 있는데, 10년쯤 후에 김용철 변호사의 전기를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잠시.)

4.
작년 조합에는 진중권, 홍기빈 등 밝은 '젊은 오빠' 스타일들이 좀 있었는데,

올해 조합은 영락없는 아저씨 필의 중년 조합이다.

(왠지 강연회 보다는 삼겹살 구워놓은 소주집이 어울릴 듯한... 독일의 맥주 축제처럼, 우리나라도 거대한 삼겹살 축제 같은 거 한 번 하면 안될까? 오랫동안 민중의 술은, 역시 소주였다...)

하여 분위기가 너무 칙칙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중간에 캔맥주 마시는 시간과 커피 마시는 시간도 갖기도 했고...

어지간해서 강연 때 기타치는 짓은 잘 안 하는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도 기타를 치기로 했고, 김민웅 선생도 기타 치시기로 했다.

(작년 멤버들은, 김규항이 드럼치고, 홍기빈이 베이스 치고, 진장군이 키보드치고, 나는 대충 기타 반주나, 그렇게 2012년 대선 때 치어업할 밴드 만들기로 얘기를 했었는데, 진장군이 외국으로 가는 등, 다들 정신없어져서 그 후로는 한 번도 못 모였다... 사실은, 김민웅 선생이 본인이 보컬을 하시겠다고 주장을 하셨는데, 그거 때문에 못 모인 거 아닌가 하는, ㅋㅋ... 보컬 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진짜 카수는 홍기빈이 진짜 카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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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 드라마가 끝내준다.

샤니와 얽힌 빵 주인들의 이야기는, 나는 맨날 듣고도, 어느 빵이 어느 빵이고, 헷갈린다. 삼립빵과 샤니의, 그 야사에서만 맴돌던 지겨운 얘기가 요즘 메인 드라마 중에 하나이다. 시청률, 10% 미만...

급기야 6.25를 그린 <전우>까지 등장했다. 도대체 어떤 마음을 먹고 이런 걸 만들었는지, 어제 보고야 말았다. 결론적으로... 급 술마시고 싶어져서 아내와 술 한 탕.

<문화와 예술의 경제학>이라는 책 작업 때문에 드라마 시청률의 추이까지 몇 년째 계속 살피고 있는데.

20대가 본방 시청률에서 사라진 건 벌써 3~4년 된 사건이라서 이제는 사건 축에도 끼지 못하는데, 급기야 아줌마들까지도 드라마를 떠나기 시작한 정말 조선 역사에서는 처음 생긴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는 중이다.

보통 30~40대 여성들, 흔히 아줌마로 분류하는 요 계층이 드라마 본방의 주력군이고, 광고 시장은 물론 주연 배우 캐스팅까지 전부 좌지우지하는, 자칭 타칭 한국 드라마의 주인들이다. 요 사람들 마음에 들어야 드라마 시장이라는 데에 내올 수 있는데, 드라마는 많이 보지만 또한 영화 시청률은 아주 낮은. 아주 까다로운 분류군이다.

베토벤 바이러스에 그렇게 기똥찬 성과를 올렸던 김명민이나 심지어 우리의 '종사관 나으리'까지, 드라마에서는 완전 날라다니지만 극장판으로만 옮기면 완전 깨빡 나는 이유가, 드라마는 보지만 극장에는 가지 않는, 아주 독특한 시청자 집단으로 설명하면 쉽게 설명이 된다. 한 마디로, TV 내에서는 막강 파워그룹이고, 여기는 또 '무한도전'의 지지층하고도 좀 특색이 다른 것 같다.

하여간 이 불패의 주력군이, 요즘 드라마를 떠나고 있는, 정말 초유의 일이 벌어지는 중이다.

그 빈자리를 대신 매우는 게 40~50대 아저씨들인데,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더 많이 보는 건 아니고, 그냥 보던 만큼 보는데 아줌마들이 빠져 나가니까 아저씨들만 남은 거 아니냐... 그게 10% 밑으로 돌고 있는 험블한 시청률이 말해주는 것 아닌가, 그렇게들 추정을 하는 것 같다.

한 마리도, 한나라당 주력층들만 요즘 TV에 남아서 <전우>라는 대형 스펙타클 전투 드라마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뭐, 정치력 무기력증도 만들고, 이래저래 종편 편성으로 방송사들 망한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TV 많이 봐서 좋을 거 없다는 게 한나라당 프로그램인 셈인데.

이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게, 한국 아줌마들이 외국의 여성들과는 달리, 엄청난 고학력이라서 그나마 드라마로라도 붙잡고 있어야지, TV도 재미없다고 하면 어쩌면 한나라당이 가장 무서워하는, 주부들마저도 손에 책을 잡는...

그런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까?

PD 수첩이 창간 20주년을 맞아서 지승호가 인터뷰를 통해서 책을 펴냈다.

내가 쓴 글도 약간 들어가 있기는 한데, 드라마 <전우>를 틀어놓고 이 책을 뒤적뒤적 하다가, 도저히 <전우> 같은 것은 못 보겠다고 드라마를 끈 한국 드라마의 주력군이 바로 이렇게 생긴, TV 방송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우여곡절을 쓴 책을 짚을까, 안 짚을까, 그런 게 궁금해졌다.

한국은 지금 분기점에 있다.

하여간 드라마 <전우>와 책으로 된 <PD 수첩>이 동시에 나왔는데, 한나라당은 이 황당한 일련의 드라마로 TV를 뒤엎으려고 하는 순간, 예기치 않은 역작용에 의해서 영구집권은 사실상 물건너갈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빡 때리고 지나갔다.

(그런 점에서는 월드컵 열기를 좁은 창으로 유도한 SBS가 역사에서는 '구국의 공신'이라고 기록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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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위한 새 인문학 사전>이라는 책을 집어든 것은, 순전히 도대체 원어가 무엇이었는데, 우리나라 번역어가 이렇게 생기게 되었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원 제목은, Idea that matters: Key concepts for the 21st century이다.

중요한 개념들, 21세기를 위한, 뭐 그 정도의 뜻인데, 저자인 그레일링이 철학자라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나?

하여간 어차피 잡은 건데, 잡은 김에 쭉 읽었다.

전문가한테는 별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세상에는 전문가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사전 유형의 개념 정리책들이 원래 그렇듯이, 이 책은 사전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전처럼 필요한 항목만 빼서 읽으면 아주 재미없을 것 같다.

저자의 권위를 믿고, 이런 개념들이 요즘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군, 그렇게 맨 앞에 선 철학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주제를 분류하고, 골라내는 것을 본다고 하면, 그럼 맨 앞에 선 사람들이 요즘 생각하는 것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은 평이하지만, 그가 골라낸 개념 그리고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개념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확실히 2010년, 세상은 막 밀레니엄이 시작한다고 하던 그 10년 전과는 좀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공부의 세계에서도 가끔 트렌드를 살피는 것도 중요할 것 같기는 하다.

그야말로 따끈한 이번 시즌 머스트 해브 아이템 (핫 아이템은 아니다...)

고전을 보고는 싶은데 골 아프기에는 좀 사는 게 빈한한 상황, 생각은 좀 하고 싶은데, 골 패기에는 체력이 좀 딸리는 사람, 약간 "최근에 영국에서는 말이야"하고 잘난 척을 한 번 때리고 싶은데 소재가 빈안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

트렌드는 트렌드일 뿐이야라고 정색을 하고 '인본주의'를 생각하시는 분에게는, 경기들만큼 천박한 책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으니, 최신 유행에 심약하신 분은 피하시기 바란다.

책을 딱 덮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이 책의 진짜 기능은 지식의 기초 체력 테스트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반나절에 읽었다면, 대학생 상식 수준.

하루가 걸렸다면, 10대 문학도 수준.

1주일이 걸렸다면, 이제 그림 없는 책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려고 하는 중학생 수준.,

꼼꼼히 읽으면서 한 달 가량 걸렸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흡수할 정도로 순발력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초등 5학년 수준,

그런 기초체력 테스트용 책으로는 딱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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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문사철이 죽으면서 언어학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도 같이 죽은 것 같다.

20세기 철학자들은 많은 경우, 언어학을 겸해서 하는데, 아마 한국에서 언어학을 기반으로 가장 유명해진 사람이 고종석 선생 정도가 아닐까 싶다.

몇 년 전에 <말들의 풍경>, <감염된 언어> 등 한국에서는 드물게 언어학을 주제로 한 고종석 선생의 책이 줄울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아마 당분간 언어학을 기반으로 한 책은 그 정도가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고종석 선생이 쓴 글 중에서 가장 웃겼던 것은 나프어 사전이었다.

우리는 프랑스만큼 언어학이 발달하지 않아서 <프랑스어-프랑스어 사전>처럼 방언과 특수언어를 정리한 게 거의 없는데, 2010  한국인은 그렇게 학문에 부지런한 민족이 아니라서 아마 그런 것은 영원히 생겨나지 않을 성 싶다.

나프어는, 쉽게 말하면 강남 TK어 사전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전또깡이 국어학자들 데려다가 표준어 배우면서 '궁중어'라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대구 사투리에 서울말이 대충 섞인 게 궁중어인데, 서울 사람도, 대구 사람도, 배우지 않으면 그렇게 하기 어려운 그 말을 궁중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주어는, "본인은"으로 시작한다. 말이야 따라할 수 있지만, 억양을 따라할 방법이 없다.

가끔은 서정주를 말당 선생이라고 부르는 고급 유머도 궁중어의 한 장르이다.

NAP는 Neuilly, Auteil, Passy라는 세 개의 파리 지역을 말한다. 뇌이유에는 파스퇴르 고등학교와 미국 병원이 있고, 오떼이유에는, 음,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부자 동네이고, 빠시에는 미국 문화원이 있다. 뇌이유에서 약간 위로 올라가면 구스타프 에펠의 생가가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갑자기 빈민촌으로 바뀌면서 홍세화 선생이 거기 사셨단다...

프랑스 신문에는 요즘 강남 TK가 그러는 것처럼, NAP가 프랑스 토지의 몇 퍼센트를 가졌다느니, 평균 소득이 어떻다느니, 그런 기사들이 종종 나온다.

분석을 보면, 프랑스 전역에 성을 가지고 있는 영주들이 파리에서 살 때에는 주로 NAP 지역에서 산다고...

가끔 우울해지면 고종석 선생의 나프어 사전을 보는데, 그냥 보면 강남어 사전하고 거의 유사하다.

친구. 거의 모르는 사람
좋은 친구. 친구
사적인 친구, 주치의나 전담 변호사, 회계사
절친한 사이, 밥 한 먹은 사이
검소하다, 극도로 인색하다
먹고살 만하다, 매우 부유하다
사람들, 나프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
우리 식구들, 나프
이주민, 이슬람 교도
불행해지다, 오쟁이 지다
그 친구는 자식 복이 없어, 그 친구 아이가 마약을 해
걔들 문제가 많아, 걔들 이혼했어

나도 강남에 몇 년 산 적이 있었는데...

신천역 일대를 뒷구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태춘 노래에 나올 정도로 유명해진 얘기이고,

강남에서도 문정동처럼 변두리로 나가면 시골이라고 부르거나 경기도라고 부르고, 강북은 아예 북한이라고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다.

광화문에서 만나자고 하면, 북한까지 어떻게 가냐, 그런 식으로 활용을 한다.

최근에 아내와, 패션어 사전, 인터넷 쇼핑몰 사전, 그런 걸 쉴 때마다 조금씩 만들어보는 중이다.

최근에 찾은 것 하나.

쓰탈... 카피본. 활용예. 마크 스딸, 이건 마크 제이콥스 카피본.

고종석 선생이, 가끔 언어학을 통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푹푹 찌르던 시절이 있었는데, 선생은 요즘 뭐 하시는지, 도통 종적이 잡히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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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 대구

독서감상문 2010. 5. 22. 11:52

선거 둘째날, 대구에 갔다가 대구 MBC 앞에서 신호에 조명래 유세차랑 나란히 신호에 걸려서 유세를 꽤 길게 구경할 기회가 되었다.

조명래는 잘 나오면 6% 정도 나온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에게" 하겠지만, 요즘 노회찬 지지율 보면 대구 진보신당의 6%에게 그렇게 말하기도 어렵다.

선거 구호 중에서, "색깔 좀 바꿔주세요"라고 하는 게 눈에 띄었다. 파란색 한나라당, 그 한 가운데에서 색다르면서도 눈을 끄는 구호였다.

이제는 '동토의 왕국' 정도로 생각되고, 박근혜 텃밭이자, 한나라당의 텃밭 근원지 정도로 생각되는 게 요즘의 대구 이미지이지만, 원래 대구가 한국에서 가장 좌파들의 도시였고, 어떻게 보면 한국 정치경제학의 고향이기도 한 셈이다.

맨 앞 줄에 서 있는 정치경제학자들 중에서는 대구 출신이 많고, 심지어 전라도 대학들에서 정치경제학 가르치는 선생님들 중에는 대구 출신이 적지 않다.

90년대 동구가 붕괴한 이후에도 가장 오랫동안 헌책방에서 자본론이 돌아다니던 곳이었다고 알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제는 좀 어려워졌지만, '새 정치경제학'이라는 구호로 일종의 new left 학술운동을 주도하던 곳도 경북대였다. 나도 성공회대로 소속을 바꾸기 전 2년 동안에는 경북대 소속이었고, 매달 어쨌든 대구에 내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대구에서 지역 종합지 형식으로 <레프트 대구>라는 잡지를 새로 만들었다. 창간호는 800권을 찍었는데, 그건 전부 소화했다고 한다. 대단한 일이다.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에는 논란이 좀 있었는데, 원래의 당명은 진보신당을 만들기 위한 연속회의 정도로, 실제 이름은 연석회인 임시이름이다. 입장에 따라서는 선호의 차이가 좀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 이름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여러 가지로 드러나게 된 셈이다.

도대체 어떻게 정세균과 내 이름을 같은 항목에 올릴 수 있는가, 도대체 어떻게 이해찬과 내가 같은 부류로 묶일 수 있는가, 이런 고민들이 많았는데, 아마 그렇게 곤란한 지경에 놓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의 분류대로 한다면, 그냥 좌파 혹은 괄호열고 구좌파가 한 계열이 있고, 뉴 레프트 계열이 또 한 부류가 있고, 이 후자에는 여성주의, 생태주의 그리고 문화주의와 같이, 구좌파에서 별로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운동의 계열들이 들어가고, 그 연장선에서 장애인 운동과 소수자 운동 같은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여성주의 내에도, 그냥 페미니즘과 영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골치 아픈 논쟁들이 있고, 생태운동 내에도 그냥 뉴레프트라고만 분류되기 어려운, 훨씬 더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흐르들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 모든 것을 '진보'라는 이름으로 때려넣게 되니까, 지방 선거에서 우리가 본 이 대 혼동상의 문제가 생겨난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진중권의 경우는, 뉴 레프트라고 분류하면 진짜 대표적인 뉴 레프트 계열의 평론가 혹은 지식인, 그렇게 분류될 것이다.

김규항은? 조금 복잡할 것 같은데, 흐름상으로는 구좌파 성향이 강하기는 하지만, <고래가 그랬어>와 함께 일종의 신매체 운동,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진중권과 비교하면, 조금은 더 fundamentalist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교과서적인 성향이 강하지 않을까?

하여간 선거 기간 중에, 그런 분류에 대한 곤혹스러움과 불만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인데, 한나라당 버전 '동토의 왕국'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대구에서 '레프트 대구'라는 화끈한 간판을 걸었다. 

브라보!

책자 하나가 얼마나 시대를 대변할까 싶지만, 비로소 좌파가 스스로를 좌파라고 자랑스럽게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시대의 흐름이 어느 한 구석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고통이 깊어야 새로운 잉태가 나온다... 는 데미안 버전의 부드러운 얘기가, 이번에도 유효할 것 같다. 

대구에서 시민운동이든, 민중운동이든, 한나라당이 아닌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버거웠겠는가? 

그러나 대구는 노동자의 도시였고, 한국에서 노동운동의 원형을 만들어낸 곳의 하나이기도 하다. 

인민노련의 역사를 찾아가면서, 인천에 있던 인민노련이 전국 조직화하면서 맨 처음 제대로 된 활동가를 파견한 곳이 경주이기도 하다.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은 경주에서 첫 페이지를 시작할려고 생각하는 중이다.) 

2010년, 계몽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누구 위에서 지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고, 누구도 누구를 계도해서 새로운 길로 가게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평등과 수평이라는 말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평등은, 말이 좋아 평등이지, 결국 평등이라는 개념을 매게로 누군가 누군가를 지도하는 그런 구조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극단적인 평등주의는, 스탈린주의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수평은, 방향은 없고, 구조만이 존재하는, 매우 밋밋한 개념이기는 한데.

2010년, 한국에서 레프트라는 새로운 질문은, 수평이라는 새로운 구조에 대한 질문이기도 한 것 같다.

무엇이 이 시대의 레프트인가?

'레프트 대구'라는 잡지의 제호를 보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피가 끓기는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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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나침반

독서감상문 2010. 5. 14. 10:35


1.
나는 책은 돈 주고 사서 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본다는 게 원칙이기는 하지만, 부끄럽게도 요즘 내가 보는 책 중의 상당수는 그냥 보내줘서 읽는 것들이 많다. 더 부끄러운 것은, 그렇게 나에게 오는 책을 다 읽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박스로 책들이 오는데, 잘 감당이 안된다.

그 중에는 좋은 책도 있고, 그렇게까지 좋아보이지 않는 책도 있는데, 그냥 받은 책에 대해서 혹평을 하는 게 미안하다.

그리고 더 힘든 게 그렇게 책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오는 책만큼이나 파일로 된 원고로 된 책들도 많이 온다.

그런 책들을 하도 많이 보다보니까. 별 내용은 아니지만 팔릴 것 같은 책, 그리고 정말 좋은 책인데 그냥 묻힐 책, 그런 게 이제는 조금 구분이 된다.

가끔 추천사 부탁을 받을 때, 몇 줄짜리 추천사 대신에 해제 형식으로 좀 길게 나름대로 글을 쓰는 경우가 있다. 장 지글러의 빈곤에 관한 책이나 세계사에 관한 책이 대표적인 책들이었는데, 원고 상태에서는 도대체 한국에서 이게 얼마나 팔리겠나, 싶어서 나름대로는 좀 고민을 해서 해제를 달았는데, 반응이 썩 괜찮았던 경우이다. 내가 원고 보는 솜씨가 별로인가 보다...

2.
책 중에는 책 자체가 중요한 책도 있고, 책을 둘러싼 맥락이 중요한 책도 있다. 김예슬 선언의 경우는 책도 중요하지만, 그 맥락이 훨씬 중요한 책의 경우가 아닐까?

현각 스님이 엮어낸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 선의 나침반>이라는 책이 그런 경우이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지금 최대의 이슈 중의 하나와 직접 연관되어 있는 책이지만, 아마 그렇게 이 책이 한국에서 수용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현각도 그리고 출판사였던 김영사도, 그렇게는 생각을 안해봤을 것 같다.

3.
기독교에 관한 책은 꽤 많이 읽어봤는데, 불교에 대한 책은 나도 그렇게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니다.

지난 10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의 책들은 편집 방식이나 디자인도 많이 바뀌었지만, 어투나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다. 불과 10년만에 한국 책에서 생겨난 스타일 차이 역시, 좋거나 싫거나와 상관없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 변화 속에서 본다면, 불교의 책들은 정말 올드 스타일, 여전히 한문체 혹은 언문체, 그래서 나도 읽는데 불편함을 가끔 느낀다.

야, 딱딱하다...

도법스님의 책들도 좀 그렇다. 직접 말씀을 들을 때는 정말 재밌는 얘기였는데, 책으로 바뀌면 엄청 딱딱하다.

그런 점에서 법정스님은, 불가에서는 드물게 스타일리쉬한 셈이고, 시대의 문법을 정말 기똥차게 포착한.

3.
숭산이 누군가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니, 숭산 얘기 하기 전에 숭산의 글을 엮어낸 현각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는 게 순서일지도 모르겠다.

'명랑'을 모토로 사는 나에게 그런 적이 있었을까 싶지만, 나에게도 우울증 중증 시절이 있었고, 아침에 눈만 뜨면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그런 때가 있었다.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앞 부분에 딱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대기업에 가고 싶어 애타는 사람들에게 가끔 그 시절 얘기를 해주면, 별로 동감하는 눈치는 아니지만, 지금 대학생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바로 그 위치의 최정점에 서 있을 때, 나는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해서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시절에 보았던 책이 단테의 <신곡>과 현각의 책이었다.

얼마 전에 본 다큐에서 하버드에 간 한국 학생들에 대한 얘기가 있다.

얘기는 간단하다. 요즘 난리치는 고등학교의 하버드 입학 열풍에도 불구하고 하버드에 간 한국 학생의 자살율이 너무 높아서 미국 교육당국에서 그 원인을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에 가는 것까지는 생각을 해봤는데, 막상 하버드에 가고 나니, 이제 뭘 하지? 그런 질문이 생겨났고, 그래서 자살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는 하버드에 갈 일이 두 번이 있었는데, 두 번 다 안 갔다. 갔다면 인생이 좀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을까? 어차피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이계안이 하버드에 1년 가 있었다. 자기는 즐겁다고 맨날 나한테 얘기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좀 별로였다. 요즘에야, 그 일이 후회된다고 얘기를 하두만.

하여간 현각은 한국에서는 인기 최고인 바로 그 하버드에 있었고, 하버드에서 숭산의 강연을 들었고, 그 길로 다 때려치고 불가에 입문한 사람이다.

약간 맥락은 다르지만, 불교계의 박노자인 셈이다.

현각이 <선의 나침반> 맨 뒤에 달아놓은 글이 있는데, 바로 명박이 들으면 펄펄 뛸, 광우병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이 뉴스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더욱더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다. 시끄럽고 자극적인 서울을 떠나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경북 영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많이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길에서 벗어나 있는가 생각하며 나는 억누를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숭산, 현각 그리고 광우병으로 통하는 이 얘기가 숭산의 책을 편역한 그 책 말미에 있다는 사실.

이게 지금의 한국 불교가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예전 내가 자살충동에 시달리던 시기에는 현각의 책을 읽으면서, 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딱 보자마자, 맞아 이거야,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만, 당시 나는 내가 왜 사는지, 그 질문에 도저히 답할 수가 없어서 아주 괴로워했는데, 눈을 뜨면 그래도 출근을 하고, 외국으로 출장을 나가야 하고, 뭐 그랬다.

4. 숭산이 누구야?

세계 4대 성불이라는 표현이 몇 년전까지 유행했다.

달라이 라마, 틱탓한, 마하 거사난다 그리고 숭산.

한국에서 숭산을 물어보면, 아마 거의 모를 것 같지만, 불가에서는 배분이 엄청 높으신 분이다.

예전에는 법문으로 된 불경을 중국어로 옮겨오고, 그걸 다시 우리 말로 옮기는 그런 게 중요했었던 것 같다.

<쌍윳따 니까야> 등 최근에 법문을 다시 번역하는 게 유행이기도 하고, 선이고 혜능이고, 그딴 거 없고 다시 초기 불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그게 좀 유행이다.

나도 그런 유행에 빠져서 또 한참 그런 강의를 하기도 했었는데, 작년 가을에 법문으로 된 불경 공부 한참 하다가 문득...

그것도 덧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아함경 같은 것을 잔뜩 쌓아놓고 읽다가, 어느날 든 생각이.

유행 다 덧없다.

하여간 49년, 고봉의 법맥을 이어받아 78대 조사가 되었는데, 국내 보다는 해외에서 선원을 설립하여, 외국에서는 엄청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뭐, 그런 사람 있나보다, 원래 스승들이 고향에서는 별 대접받지 못하는 편이니, 그렇게 간단하게 치부하고 넘어가기도 좋기는 한데.

숭산이 말년에 화계사에 있었고, 2004년에 화계사에서 입적을 하셨다.

자, 이제부터 노무현과 새만금 그리고 불교의 얘기가 나온다.

5.
딱 고만 때, 수경과 문규현 신부, 그리고 나의 아내의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내는 태권도 사범이고, 삼보일배 한참일 때 삼보일배단에서 스포츠 마사지 전담이었다. 고된 일과가 끝나고 마사지 하는 그런 게 일이었다.

나는 물대포를 제대로 맞은 적이 없는데, 아내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시절, 새만금 방조제 위에 올라가서 물대포 제대로 맞았던 적이 있다.

하여간 아내는 수경스님의 전담 트레이너였던 셈이고, 수경스님은 그런 여인과 결혼한 사람 그렇게 나를 알고 있다.

결혼은 그 뒤에 했다.

도법스님과는 불교에 대한 얘기도 꽤 많이 물어보고, 그랬던 것 같은데, 수경스님하고는 불교 얘기, 그딴 거 없다.

어떻게 하면 노무현이 새만금에 대한 생각을 돌리게 할 것인가, 맨날 그 딴 얘기만 했고, 삼보일배로도 안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느냐, 그런 불교와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만 했다.

아주 드물게 불교에 대한 얘기는, 봉은사가 어떻고, 화계사가 어떻고, 그런 부패한 사찰에 대한 뒷다마, 당취 얘기, 그런 정도.

6.
화계사는 큰 절이다 보니 금전 문제로 인한 부패가 아주 곤란했던 상황인데, 그건 봉은사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봉은사 개혁이 먼저 진행되면서 봉은사에 불교생협을 만들고, 그런 일에 나도 관여를 하게 되었다. 처음 봉은사에서 대중강연할 때가 기억이 난다. 맨날 지나가면서만 보았지, 여기서 강연할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하여간 그런 일이 생겼다. 이게 불교계에서는 아주 큰 개혁에 대한 흐름이었다.

안상수 선수가 요즘 봉은사 때문에 약간 곤경을 치루는 것 같은데, 사실 봉은사에서 했던 것은 안상수가 생각하듯이 그런 좌파 불교 그런 건 아니었고, 생명 불교로의 전환에 따른 유기농업 운동, 그런 게 본류이다.

다 새만금과 삼보일배에서 시작된 일이다.

하여간 막 그러던 시절, 화계사에서 숭산의 제자들이 모여서 숭산이 입적한 화계사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런 아주 길고 긴 회의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삼보일배의 여파로 무릎 수술 하고, 장애인 수첩 나왔다고 좋아하던, 지리산 선방에 다시 처박히겠다는 수경을 들어다가 화계사 주지로 앉힌 것이다.

수경이, 부패는 하지 않을 거 아녀...

숭산 선원, 나이스 샷!

내가 마지막 타본 마티즈가, 수경스님이 화계사에서 부르셔서 갔더니, 동네 마실이나 나가자고 어느 신도분이 운전해주시던 차에 같이 탔던 것이다.

화계사 주지쯤 되면 뭐 벤츠 정도야, 할 사람이 있겠지만, 진짜 마티즈였다. 

어떤 단체에 후원금 내야될 일이 있었는데, 진짜 여기저기 부탁해서 꼬깃꼬깃 만원짜리들로 겨우 얼마를 모아서 후원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후원받은 단체에서는, 수경스님이 돈을 너무 적게 주셨다고 불평을 해서, 간만에 내가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도대체 그 돈이 어떻게 생겨난 돈인지 알기나 하느냐!

화계사 주지를 근접 거리에서 모시면서, 정말 맛잇는 간장 한 병 얻어먹은 적이 있고, 손수 그림과 글씨를 쓰셔서 코팅한 걸로 설날 선물로 받은 적이 있고.

다른 건 몰라도 수경이 부패는 하지 않을 거다...

이게 숭산의 제자들이 수경을 화계사 주지로 모시면서 했던 생각으로 알고 있다.

그 수경이 바로 촛불집회 때 열렸던 대법회에 개회사를 하셨던, 바로 그 장애인 스님이다.

그런 수경에게 나도 꼭 하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한 번도 못했던 말이 있다.

스님, 녹색당 당원 좀 하시지요...

차마 나도 그런 말은 못했다.

하여간 숭산선원에서 화계사 주지로 수경을 모셔오면서, 지리산 뒷방에서 10년간 면벽이나 하고 분파는 물론 제자도 거느리지 않던 수경이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족보를 따지자면, 수경은 해인사에서 성철을 모시던 성철의 직계 제자이기는 하다.

해인사 청동불 사건의 바로 그 '토깽이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그로 인해서 해인사의 토깽이 제자들에게는 '죽일 놈'이 된 바로 그 양반이기도 하다.

7.
요즘은 수경이 4대강에 대한 참회를 한다고 여주 남한강 앞에 콘테이너 갔다놓고 계신데, 삼보일배 후유증이 있어서 그 안에서는 못 주무시고 그냥 노숙을 하시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다음 주에 한 번 찾아뵙기로 하고, 읽으실만한 책이 뭐가 있나 이것저것 뒤적거리던 중에...

딱 <선의 나침반>이 걸렸더라, 그래서 식탁에 앉은 길로 쭉 읽었더라...

한국 불교의 힘은, 아직 부패하지 않은 제자들이 남아서, 힘과 권력을 탐하지 않고, 초기 불교의 가르침대로 가난하게,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살아가는 게 남아있더라, 그런 거 아닐까?

가만히 앉아서 따져보니, 성철의 법통과 숭산의 법통이 지금 한나라당에서 좌파 주지라고 하고, 촛불집회 때 개회사했던 그런 사람을 화계사 주지에 어떻게 앉혀놓을 수 있느냐하지만.

숭산의 제자들이 수경을 그 자리에 앉혔고, 진짜 장애인 수첩 외에는 딸랑 아무 것도 없는, 진짜 가난한 스님이 화계사 주지이고, 그 주지는 지금 남한강변에서 노숙을 하고 계시더라...

8.
<선의 나침반>은 원래 영어로 쓰여진 책이고, 그래서 외국인들을 위한 불교 입문서이다.

불교를 처음 접하면, 불가의 사람들은 다 줄구장창 입에 달고 다니는 얘기들인데, 저게 무슨 뜻일까, 궁금해하는 말들이 좀 있다.

딱 그거, 정말 입문서용으로 불교에 대해서 궁금했던 이것저것, 딱 고렇게 되어 있다.

한 번쯤 읽어두면 재밌을 얘기이기도 한데, 책 보다도 이 책을 둘러싼 얘기들이 현재 진행형의 한참 클라이막스로 가고 있는 얘기라서.

한나라당에서는 화계사의 수경을 끌어내리려고 할텐데, 그러면 숭산의 제자들, 그야말로 세계 4대 성불의 직계제자들과 일전불사를 치루어야 할텐데, 그게 만만치는 않아보인다.

4대강과 불교의 싸움은, 카톨릭의 경우와 달리, 세계적인 선불교의 법통을 이어가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 하버드의 동양철학 전공자들을 비롯한 전세계 선불교와 한나라당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천주교도 이번에 마음 단단히 먹고 마지노선을 치고 있지만, 불교계도 만만치 않다. 돈으로 간단하게 이미 매수해버린 조계사 총무원과는 또 다른 불교의 법맥이 있는 셈이다.

성철의 제자들, 법정의 제자들 거기에 숭산의 제자들, 불가는 방송국과 달리 사장만 장악하면 간단히 '9시 뉴스'로 장악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이사회 구조가 아니다.

여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 또 오래된 숨은 힘들이 몇 개 더 있다.

한나라당이 불교를 KBS 비슷한 거라고 생각한 게... 한국은 좋으나 싫으나 불교의 나라이다. 그 천년을 넘은 법통이, 어찌 조계종만 장악하면 된다고 생각했누...

책을 다 읽기 어려우면, 뒤에 실린 현각의 글이라도 읽으시기 바란다.

한나라당 조기유학파들이 그렇게 숭배하는 하버드 출신의 현각 스님이 광우병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주 잘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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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여러 단체들이 있다. 올해는 특히 고민이 많을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와 김예슬의 <김예슬 선언>, 이 두 가지를 놓고 고민 많이 하게 될 것이다. 아직 올해가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아마 이 두 권의 책을 제외한 다른 책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다면, 판매량과 메시지와 상관 없이, 그 단체는 그것이 언론이든, 문화단체든, 이 시대를 우리와 같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니 말이다.

 

미덕을 얘기해보자.

 

김용철 변호사의 책은 이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물론 이 사회를 그냥 내버려둔 나 자신도 돌아보게 하지만, 역시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김예슬의 책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물론 그의 책도 이 사회의 구조를 돌아보게 하지만, 멍 때리고 살아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미덕을 가지게 하고 있다.

 

가장 나쁜 책은, 왜 샀는지, 광고지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거야말로 악마의 목소리일테니 말이다.

 

악마가 뭐 별거냐?

 

너나 잘 하면 돼...

 

올해 상반기에 나온 이 두 권의 책은, 다른 잘 나가는 책을, 순식간에 악마의 목소리라는 것이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 '소돔과 고모라'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단 한 명만 제 정신이라도, 너희를 용서하겠다...

 

다행이다. 이 두 사람 덕에, 한국이 불바다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박해자이면서, 동시에 대속자이기도 하다.

 

우리의 죄를 대신 사하여주신.

 

법조인 김용철의 책이 다분히 경제학적이었다면, 경영학도 김예슬의 책은, 다분히 신학적이다.

 

대속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2.

나는 두 번 그만둔 적이 있다.

 

한 번은, 에너지관리공단 3급 부장에서 2급 부장으로 승진을 생각하던 즈음에. 아마 1~2년 참고 버텼으면, 사업단장이나 작은 처의 처장 정도가 되었을텐데. 더 이상 공부를 안하면, 이제 공부는 더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만 두었었다. 후회한 적은 없다.

 

또 한 번 그만둔 것은, 실제로는 연말이지만, 그만둘 것을 결심한 것은 작년 5월의 일이었다.

 

15년간, 보통은 겸임교수, 아니면 시간강사 신분으로 대학에서 계속해서 학생들을 가르쳤었다. 보통은 대학원 수업에서 박사과정들을 가르쳤는데, 어쨌든 계속해서 학생들을 가르쳤었다.

 

작년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여수 앞바다에서 마음을 먹은 일이다.

 

사람들에게는, 별 돈도 안되는 강사를 계속하는 게 힘들다고, 그렇게 말했다만.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게 너무 힘들어져서,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학생들이 변한 건가, 내가 변한 건가. 나는 학생들 쪽이 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건 모른다. 어쩌면 내가 변한 것인지도 모른다.

 

연말에, 15년간 몸 담았던 대학이라는 공간을 떠나면서 딱 한 마디를 신문에 남겼다. 별 얘기는 아니다.

 

상대평가 대신에 절대평가로 바꾸자, 그런 글 하나를 남기고 대학이라는 곳을 떠났다.

 

그 때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났다.

 

대학은, 크든 작든, 좋든 나쁘든, 지금은 '소돔과 고모라'이다.

 

뒤를 돌아보면, 소금기둥으로 변할 것 같이, 그런 곳이다.

 

그래도 나는 한 소리도 못했다.

 

대학의 부패를 내 위치에서 본다면, 기절초풍, 상상초월.

 

신문 보거나 TV 보면서 상상하는 그것과 궤와 질을 달리한다.

 

안 썩은 곳이, 사실상 단 한 곳도 없어보였다.

 

한국에서의 대학 개혁,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이건 내 얘기이다.

 

3.

김예슬의 책은,

 

한국이라는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지금 바로 여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대답을 하게 될 것이다.

 

김예슬의 책은,

 

결계와도 비슷하다. 마방진 구조라고나 할까...

 

일단 들어오면, 도무지 도망갈 구석을 주지 않는, 그러면서도 순환과 격자의 기하학적 문양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결계 구조이다.

 

도저히 답하지 않고 빠져나갈 틈이 없다.

 

답하지 않고 도망간다면,

 

그냥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나는 도망갈 틈을 찾지 못했다.

 

김용철 얘기는, 그래도 그건 삼성 얘기니까 혹은 잘 사는 사람들 얘기니까...

 

도망갈 틈이 있는데, 김예슬의 논리 구조는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는다.

 

4.

책을 덮고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대로 망하고, 불타버리거나, 아니면 도망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소금 기둥이 되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가느다랗게, 살 길이 열릴 것인가?

 

그 어느 편이라도.

 

우리가 신의 저주를 받고 죽지 않는다면...

 

김예슬의 글은 결국 교과서에 실릴 것이다.

 

국사 교과서에 실리거나, 아니면 국어 교과서에 실리거나.

 

'올해의 책' 정도로 끝날 경미한 사건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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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선언

독서감상문 2010. 4. 14. 23:00

 

 

출판사 이름은 '느린 걸음'인데, 그야말로 잰걸음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광화문 교보가 공사중이라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나는 인터넷 쇼핑몰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데. 보통 같으면 벌써 사봤을텐데, 아직 못사봤다...

 

'빰쁠렛'의 시대가 있었다. 말더스도 열심히 빰쁠렛 쓰던 사람이었고, 존 스튜아트 밀도 그렇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인 루이스 캐롤은 우파인데, 그도 역시 시대의 지식인이라 그가 썼던 정치적 팜플렛들이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홍기빈이 빰쁠렛 시대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가장 열심히 외친 것으로 알고 있다.

 

김예슬의 선언에 관한 소책자는, 다시 이 빰쁠렛의 시대가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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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성 목사님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딱딱한 글의 틀과 달리, 사례를 일반인들이 알아먹을 수 있게 다루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신 분이다. 늘 목사는 쉬운 얘기를 딱딱한 말과 속 보이는 톤으로 한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최병서 목사님은 그런 나의 생각을 깨주었다.

 

나도 플로리다의 에버글레이즈 사례를 몇 번 다루었는데, 나보다 훨씬 잘 다루신다.

 

주여, 낮은데로 임하소서!

 

내가 아는 목사 중에서,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 낮은 데로 임하신 분은 최병성 목사님이 맨 처음이시다.

 

이 책 좀 팔렸으면 좋겠다. 4대강으로는 첫 번째 나오는 책이고, 대운하 논쟁과 관련해서, 가장 부드러운 버전이다.

 

사례가 풍부해서, 상식을 늘리기에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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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해제를 쓴 책인데, 해제와 추천사 그리고 내 책을 다 포함해서 가장 잘 팔린 책이 되었다.

 

처음에 이 원고를 받았을 때, 과연 팔릴까, 싶었는데 다행이다.

 

부탁을 처음 받았을 때, 역사책에 대한 해제를 쓰는 날이 나에게 올까 싶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가장 못한 과목이 세계사였고, 국사도 완전 잼병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역사는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사회에 대해서도 잘은 몰랐다. 내가 읽었던 책은 소설과 시, 딱 두 가지 밖에 없었다. 물론 소설은 엄청 많이 읽었지만, 흔히 사회과학이라고 부르는 그런 책은 대학 들어가기 전에 읽은 것이 없다.

 

세계사는, 당시 대입 시험에 열 문제가 나왔는데, 모의고사에서 세 개 맞은 적도 있었다.

 

세계사 선생이 나한테 난리를 치고, 엄청 맞기도 했지만.

 

나는 질병이라고 할 정도로 암기력이 나쁘다. 특히 단순암기는, 좀 병적으로 못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마 나는 경제학과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간호학 개론을 조금 공부하면서 간호학과 시험문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살벌한 암기들, 정말 각주에 나온 코너 솔류션들이 시험 문제로 나왔다. 생물학과에도 질린 게, 엄청나게 외워대야 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을 '인간 제록스'라고 불렀다.

 

나는 지금도 집 전화번호와 아버님댁 전화번호 이런 것을 못 외운다. 집 우편번호 외우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다. 한 번도 집 우편번호를 외우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사학이 암기과목이 아니라는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 알게 되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당시는 원주 교수였던 홍성찬 선생이라는 분이 계시다. 요즘은 모르겠는데, 그 시절에 사상사가 2학기짜리 과목이 있었고, 경제사가 역시 2학기 과목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고전학파 경제학으로 도배를 해놓은 학교에서 그런 과목이 있어서 좀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나중에 김용섭 선생의 조선사 수업들까지 쫓아다니면서 경제사 공부를 했는데, 경제사에는 외우는 게 거의 없다. 그렇게 해서 역사 공부를 시작한 셈이다.

 

물론 나는 경제사라는 창으로 들어간 셈이라서, 일반적인 역사학자들과는 역사를 보는 눈이 조금 다르기는 하다.

 

박사과정에 있을 때에는 경제인류학 공부를 좀 했다. 인류학이라는 게, 세상을 보는 눈을 아주 많이 바꾸게 해주었다.

 

지금도 선생 중에서 가장 반갑게 만나는 분이 홍성찬 선생이다. 유학 가기 전에는, 차세대 경제사 주자로 내가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가치론 전공한다고 유학을 시작해서, 결국 사상사 분과에서 생태경제학 가지고 박사 논문을 쓰면서, 사상사나 경제사나, 한 때 전공으로 생각했던 과목이 되어버렸다.

 

꼭 그런 인연은 아니지만, 서울대로 간 주경철 선배와 같이 공부를 했었고, 그 양반 논문 한참 쓸 때 나는 코스웍과 논문준비를 했었다.

 

삶도 인연이라는 게 있는지, 처형도 역사 전공이다. 자연스럽게 내 주변에는 역사 전공하는 사람들이 좀 많게 되었다.

 

내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경제학과에서 더 이상 경제사 전공들이 등장하지 않는 사소한 문제에서, 우리나라 전체로 사학 전공하는 사람들이 더는 등장하지 않게 된 것이다.

 

외사촌 중에 서울대에서 국사를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나온 동생이 있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는데, 다시 인천교대에 들어가서 교사가 되었다. 집안이 넉넉하면, 그냥 공부를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리 집안은,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니다. 그 안타까움이, 요즘 문사철이라는 단어 속에서 나한테도 느껴진다.

 

역사책은 언제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아주 좁게 학술적인 논의를 할 것인가, 아니면 아주 넓게 통사에 관한 대중적 서술을 할 것인가.

 

어떤 의미에서는 통사는 매 시대에 필요하고, 그 시대에 맞게 통사를 재해석하는 작업이 계속해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우리 시대의 통사는 과연 누가 쓸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질문들을 가끔 해본다.

 

좁은 분야에서의 기술적 해석에 관한 논의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학에 아직은 남아있는 셈이다.

 

그러나 진짜로 통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강준만 선생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통사를 쓰는 마지막 학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역사에 대한 강준만의 서술 방식에 약간 불만이 있기는 하다만... 그래도 그가 마지막 학자일 가능성이 높다.

 

사학과에서도 그리고 사학과가 아닌 곳에서도, 통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을 우리 시대가 배출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90년대 중후반에 통사의 성격을 가진 역사 입문서들이 한참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책에서도 아주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이제는 그 정도의 얕은 지식으로라도 전체를 꿰뚫는 책을 한국에서 다시 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일본에서 나온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중고등학생들이 세계사 공부를 삼아서 보아도 좋고, 역사라는 것을 진지하게 접해보지 못한 일반 대중들에게도 꽤 도움이 될 책이다.

 

언제 조선 사람이 쓴 책으로 이런 세계사 버전 혹은 특수사 같은 것들을 볼 수 있을까, 그런 회한이 해제를 쓰면서 들었다.

 

기 소르망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우파 학자이다. 프랑스에 신자유주의 붐을 만든 것이 바로 기 소르망이고, 그 때 그가 썼던 구호가 retour de l'individu, 개인의 복귀라는 용어였다. 프랑스에서는 신자유주의를 경제적인 의미로만 해석한 것은 아니고, 국가의 전성 시대를 거쳐 다시 개인이라는 범주가 돌아오는 것으로 이해를 시켰다. 물론 나는 기 소르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만...

 

그는 독서를 엄청 많이 하고, 취재에도 성실한 편이다. 그가 중국에 대해서 쓴 책을 읽었는데, 조선일보가 아주 좋아할 그런 내용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는 범죄자 수용소 같은 곳에 트럭 뒤에 장막을 덮고, 그렇게 숨어들어가서 현장을 보면서 그 책을 썼다. 정말 할 말 없게 만들었다...

 

그 정도 위치의 세계적 석학, 그런 사람이 중국 공안을 피해서 몰래 트럭을 타고 현장에 잠입하는 그런 노력을 하는데, 그게 "날탕이다" 혹은 "쌩뻥이다" 하기는 어렵다. l'anne de cocq, 닭의 해인가, 아마 그런 제목의 책이었던 것 같다.

 

한기호의 컨셉력에 관한 책에도 해제를 단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과연 21세기의 지식이라는 게 어떤 형태일 것인가, 그런 질문을 좀 가져본 적이 있다. 한기호는 그걸 컨셉력이라고 불렀는데, 그냥 편한 이름으로 하면 기획능력 정도가 될 것 같다.

 

문화기획자라는 이름을 좀 띄워보려고 연대에서 강의하던 시절에 좀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 cultural animator를 조한혜정 선생이 그런 이름으로 번역해서 사용하는데, 좋은 번역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이 책에 대한 해제를 달면서, '백과사전적 지식'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창의성이라는 고민과 이 개념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요즘 해보는 중이다.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이 책이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해제를 쓰면서도 많이 배웠고, 또 한동안 고민하게 될 질문거리들을 찾아내게 되었다.

 

조선인이라면, 이 정도 책은 한 권씩 갖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얕다. 그러나 그 정도의 얕음도 우리는 가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과의 격차는, 더더욱 벌어지는 것 같다. 이걸 어떻게 줄일 수 있나... 그런 고민들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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