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호의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내용에는 흠 잡을 데가 없었지만 지나치게 보고서 느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쉬움이 전혀 없는 책은 아니다. 익숙한 정책 보고서 양식을 벗어나서 얘기를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풍성함을 더 많이 살렸으면 어떨까, 초고를 덮고 나서 머리에 남는 아쉬움은 그런 것이었다. 이 문제는, 아마 저자로서의 오건호가 앞으로 고민할 문제일 것 같다.

누군가 나한테 뭔가 부탁할 때, 특별히 토달지 않고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생각보다는 나도 까다로운 편인데, 내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아주 드문 사람 중의 한 명이 오건호이다.

사실 오건호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 지난 대선 때, 당시 민주노동당의 공약집을 총괄할 수도 있는 그런 위치에 내가 서 있었는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었다. 당내의 아주 오묘한 정파사이의 갈등도 일일이 조정하기에는 좀 복잡했고,

결국 정책을 총괄하는 일은 포기했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미안함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뭔가 한 번 해보자고 마음을 맞췄던 오건호 박사에게는 아직도 갚지 못한 빚이 남아있는 것처럼, 마음 속으로부터 미안함이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책의 해제에는 지나치게 선정적인 것 같아 내용을 집어넣지는 않았지만, 지난 정권 후반기에서 진짜 유시민 저격수는 오건호였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유시민은, 솔직히 좀 너무하다 싶었다.

크게 보면 두 가지 흐름이 있었는데, 첫째는 송기호와 박상표 그리고 내가 추진하던 식품안전기본법에 대한 기존의 논의 과정이다. 송기호는 <곱창을 위한 변론> 등 광우병 때 맹활약했던 농업 분야의 통상을 전문하던 변호사, 역시 광우병 사태로 아주 유명해졌던 수의사 박상표 역시 식품 위생 문제로 같이 연구를 하던 동료였다. 나는 여기에 생태라는 관점을 집어넣는 일을 했었고, 시민단체에서 그렇게 꽤 오랫동안 식품안전기본법의 기본 방향에 대한 논이를 생각보다는 오래 했다. 유시민이 장관이 되면서 이런 논의가 다 뒤집어지고, 원래의 취지와는 상관없는 삼천포로 갔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유시민을 정책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 때의 기억 때문이다. 그는 그런 일보다는 '새만금에 골프장 100개', 요런 일들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흐름이, 여전히 폭탄처럼 잠재하고 있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에 대한 유시민식 개혁이었다. 와... 이게 계산 과정이나 시뮬레이션이 엄청나게 복잡했는데, 나는 원래 내가 하던 분석이 아니라서 이걸 손을 대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때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바로 오건호 박사였다. 솔직히, 이렇게 성실하고 꼼꼼한 사람이 다 있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당시의 유시민 개혁안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과 왜 근본적으로 이게 반동에 가까운 개혁안인가, 그리고 그가 열려고 있던 연기금 운용방안, 그 문제점을 실제로 현장에서 분석했던 것은 오건호였다. 외부에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자들끼리, 혹은 정책담당자들끼리, 오건호는 유시민 저격수로 불렸다.

그런 오건호가 지난 몇 년 동안 당시의 공공연금 개혁안에서 더 진도를 나갔다. 그의 연구소 활동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그가 새롭게 손을 맞춘 동료들과 꽤 많은 분석을 한 셈이다.

하여간 이게 책으로 나올까 싶었던 게 출간과정을 지켜보던 사람의 첫 번째 질문이었고, 과연 이걸 사람들이 읽을까, 그게 두 번째 질문이었다.

이건 일종의 파일롯 플랜트랑 비슷하다. 오건호 정도 되는 사람의 정책 보고서 정도의 내용을 가진 책이 어느 정도 한국 출판계에서 수용이 된다면, 이런 유사한 급의 연구결과들이 줄줄줄 출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실패하면, 이런 종류의 책들은 정부 출간기금의 지원을 받기 전에는 출간되기 어렵다. 명박 시대, 정부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서 "이건 좀 아니다"라는 결론과 의도를 가진 책들이 출판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크게 돈이 되지 않더라도 이건 의미있는 일이라서 내가 좀 돕겠다, 그런 독지가가 한국에는 지독하게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하여, 오건호의 새 책은 무조건 팔려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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