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에서 올해의 책 선정 부탁을 받았다. 작년에는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를 골랐었다.

올해 한국에서 올해의 책이라면 외국인 저자로는 마이클 샌델, 국내 저자라면 장하준을 고를 수밖에 없을텐데, 주문이 좀 특별했다. 알라딘과 같이 하기 때문에 대중적이고 알려진 책은 소개가 될 것이니, 좀 묻힌 책이나 가려진 책 중에서 골라달라는 것이다.

고민을 좀 했는데, 송기호의 <맛있는 식품법 혁명>을 골랐다. 아마 판매량으로는 올해의 책급이 아니기는 한데, 중요도로 치면 이 책을 고르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게 송기호의 3번째 책으로 알고 있다. 앞의 두 권은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딱딱한 변호사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렇게 법조문에서 금방 튀어나온 판례집 같거나 통상 문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 문체가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단호해지기도 했다.

모티브가 된 데라우치 식품위생법은, 사실 좀 충격적이었다. 나도 송기호 변호사와 비슷한 작업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박정희까지 올라가고 말았다만. 조선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가 1911년 만들었던 이 법령 체계가 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좀 충격적이었다.

프로이드가 '공공위생'에 관해서 꽤 길게 분석한 적이 있다. 제국이 식민지에 들어가면서 일종의 제국학으로 썼던 학문이 바로 이거라는 건데, 이걸 통해서 제국의 국민들이 제국주의 신민들에 대해서 형성된 무의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딱 그 얘기를 연상시키는 공공위생학, 한국인은 불결하다는 신화... 총독부에서 그렇게 만든 셈이다. 위생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은 그 때 형성된 셈이다.

영양사와 조리사와의 알력관계도 상당히 재밌었다. 아, 그렇구나... 조리사에 대해서는 나도 따로 덧붙이고 싶은 얘기들이 있는데, 이런 건 현재 낸녀 상반기에 작업할 '농업 경제학'으로 전부 미루어놓고 있는 상황이다.

사카린 소주에 대한 얘기는, 푸하하... 송기호식 유머의 절정판이다. 물론 나도 소주를 마시기는 한다만,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런 걸 마실 수 있나, 그런 정도만 생각해 봤었다. 술이 생태계에서 일탈했을 때 생겨나는 탈주라고나 할까...

식품, 생태, 이런 주제가 나도 다시는 쓰고 싶지 않은 주제이다. 참, 넘어서기 어려운 벽 앞에 서 있다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어렵게 쓰면 너무 어렵다고 하고, 쉽게 쓰면 쉽다 하고, 그 묘한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난 다 알고 있어"라고 하는 벽은, 넘어설 수 없는 벽이다.

나는 좌절했고, 어차피 안 팔릴 거라면, 그냥 강공이다... '농업 경제학'을 끝으로, 생명과 식품에 대한 얘기는 종료하는 게 지금의 계획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송기호의 책을 넘겨나가는데, 솔직히 그가 느꼈을 답답함을 생각하면서 누워서 뒹굴뒹굴 책 읽다가 눈물 한 방울이 찔끔 났다.

송기호, 촛불 집회 정국의 한 가운데에서 100분 토론에서 번역상의 오류를 잡아냈던, 바로 그 영웅 아니던가. 그도 이렇게 힘들게 한 발 한 발 나가는 중이다.

언젠가, 송기호와 함께라면 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글쎄, 이길 거라는 자신은 없지만, 허망하게 지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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