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책 초고 끝냈다. 언젠가 정세균 은퇴하면 평전 쓴다고는 했는데, 그걸 지금 써달라고 해서.. 고민을 하다가, 그와 거의 매일 같이 만나면서 지냈던 2년간 그리고 그에게 해 줄 잔소리들을 쓰기로 했다. 기왕에 정치에 대한 에세이를 쓰면서, 나중에 빨갱이 에세이 쓸 때 쓰려고 꼬불쳐두었던 것까지 탈탈 꺼내 쓰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없던 스타일의 원고가 되었다. 일단은 '다크 히어로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부제는 '오세훈을 꺾은 사나이'. 읽은 사람들은 엄청 웃기다고는 하는데, 내가 웃겨봤자지..

이걸 쓰면서 한 명이라도 사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다. 정치인에 관한 책은 정말 잘 안 팔린다. 선거철에 팬덤이 있으면 몰라도, 정세균은 팬 별로 없다. 그에 관한 책까지 찾아다니면서 읽을 사람은? 글쎄올시다.

그래서 진짜로 한 명이라도 순수하게 책 내용 때문에 읽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썼고, 정말로 한 명이 그렇게 본다면 일단은 성공. 매우 솔직하고 내가 알고 있는, 무의식 속의 기억까지 탈탈 털어낼 정도로 공들여 썼다. 그리고 그 한 명이 이 책을 읽고, 뭔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거나,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공들여서 썼다.

내 주변에서는 다들 반대했다. 안 팔릴 것도 안 팔릴 거지만, 정세균 책을 뭐하러 쓰느냐는 거다. 그 말들도 이해는 가는 말이지만, 나와 정세균이 지냈던 시간들을 알리는 기록하고 알리는 것이 책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특별하고 독특한 경험을 한 것은 맞다. 한국에서 정책 라인이 뭐고, 그런 게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런 얘기를 이 기회를 빌려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기도 했고, 아울러 이 기회를 빌어 내가 한국 경제에 대해서 기대하는 얘기를 좀 편안하게 해보기도 싶었다.

하여간 초고는 끝났고.. 이제 곧 내 손을 떠나갈 것이다. 진짜 한 명의 독자라도 책을 집어들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출판사 대표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웃는다. 겉은 웃어도 속은 쓰리겠지. 그래도 그 한 사람의 독자에게 저자로서 충분히 좋은 책을 읽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면 나는 대만족이다. 책이라는 게 늘 편안한 상황에서 안전한 주제만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극한의 작업을 한 번 마친 느낌이다.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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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원고와 결론을 수정한 팬데믹 경제학 최종 원고를 끝냈다. 요즘 누가 책을 본다고 그렇게 책을 쓰느냐, 그런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방송은 그 시기에 가장 핫한 얘기 1회성으로 다루고 넘어가는 것 이상은 하기 힘들다. 언론의 기획 기사도 깊이는 들어갈 수 있어도, 종합적으로 사태를 다루기는 힘들다. 한 사건을 일정한 깊이 이상으로 넓게 볼 수 있는 매체는 여전히 책이다.

이번의 팬데믹 경제는 내가 책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애먹었던 책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팔리지 않아서 힘들었던 책들은 좀 있었는데, 쓰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이렇게 애를 먹었던 책은 처음이다. 책 말고도 주변 여건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었다.

지난 몇 달간 진짜 이를 악물고 버텼다. 팬데믹 상황에서 팬데믹에 대한 얘기를 하기,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렇다고 애들이 협조를 하냐, 절대 그런 거 없다.

방학 중에 끝낼 생각이었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서 그새 개강을 했고, 벌써 학기도 절반이나 지나갔다. 낮은 걸음걸이로, 조금씩 조금씩.

사회과학책만 기준으로 하면, 10대를 위한 독서 책이 여름 후반부부터 작업을 시작할 것이고, 그게 끝나면 젠더 경제학 작업을 할 예정이다. 그 틈틈이 빨갱이 에세이를 몇 달에 걸쳐서 조금씩 쓸 생각이고.

어떻게든 필라델피아에 갈 수 있으면 도서관 경제학을 올해 시작하려고 했었는데, 아마도 미국은 올해에도 가기 어려울 것 같다.

내년까지 밀린 책들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면 '한중일 경제학' 준비 모드로 넘어가려고 한다. 50권을 채우려고 지난 몇 년간 계속 책을 쓴 건데, 몇 년 전부터 이 책을 마지막 책으로 하려고 했었다. 준비 기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다.

지인들이 북경에 있는데, 간만에 북경도 좀 다녀오고.. 준비하면서 일본에 좀 길게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정 내 실력으로 딸리면 중국과 일본의 주요 인사들 인터뷰를 할 생각도 있다. 그 전에 출판사 관련된 일들을 좀 정리정돈을 하려는 것은.. 출판사에 돈을 좀 벌어줘야 몇 년이 될 이 큰 일에 연구자금을 좀 투입할 수 있을 거라서.

나도 학자 생명의 마지막을 건 일이라서, 숨 크게 쉬고 여유 있게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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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라는 소수자" 정도의 제목으로 생활 좌파 에세이를 써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난 번 에세이집이 왕창 망해서, 에세이집은 쉬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도 생활 좌파에 대한 얘기들이 뭔가 가슴에 불을 당긴다. 의무감으로 쓰는 책들이 있다. 농업 경제학이나 젠더 경제학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도서관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에세이집은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글들이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아직은 그런대로 머리가 도는데, 몇 년 지나면 이것도 힘들 것 같다. 아직 힘 있을 때, 이런 불편하고 골 아픈 얘기를 한 번 다루어 보고 싶어졌다. 

데뷔할 때 ‘C급 경제학자’라는 타이틀을 들고 데뷔했다. 실제로 그 시절 사람들이 나를 부르던 별명이 그거였다. 그냥 나는 평생 C급 타이틀을 들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빨갱이는 줄이라도 잘 서야 하는데, 나는 그것도 싫었다. 

DJ 정부 때 청와대에 들어갈 일이 있었다. 적당히 좌파 말고 진보 경제학자라고 하고 청와대 행정관 정도 하면 좋겠다고 하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 나이에 그렇게 나의 신념을 접으면 평생 이상하게 살 것 같았다. 그냥 싫다고 했다. 인연이 이상하게 꼬여서 청와대 가는 대신에 총리실로 가게 되었다. 

그 뒤로는 청와대 갈 생각을 진지하게는 한 번도 안 해 본 것이, 내가 거길 갈 마음이 있었으면 30대 초반, 진작에 갔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 나는 나 혼자서 ‘자랑스러운 빨갱이’로 이번 생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세상을 왕따시키는 편을 선택한 것 같다. 니들하고는 안 놀아.. 

요즘 생각이 든 건, 한국에서 좌파들이 당하는 취급은 일종의 소수자 취급과 같다는 것이다. 진보라고 하면 주류인데, 좌파라고 하면 갑자기 비주류다. 그 중에서도 빨갱이라고 스스로 말하면, 소수자가 된다. 그걸 나는 ‘비주류의 비주류’라는 말로 이해를 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이제 내 나이도 50대 중반이다. 이 나이를 먹고도 “그래, 나는 빨갱이다”, 이 말을 당당하게 못 하면 도대체 내 인생은 뭔가,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 내가 무슨 영광을 더 보겠다고, 적당히 묻어가고, 적당히 숨어서 살겠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워낙 인생이 삐딱선이라서,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그래도 그냥 막 살기는 싫고, 그런 사람들은 내 뒤로도 나오고 또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밀리고 밀리고, 결국은 혼자서 많은 것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세 끼 밥 먹고 살면 더 이상 행복할 게 없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았다. 남들 은근슬쩍 다 하는 소소한 부패도 나는 손이 떨려서 못 했다. 내 노동 소득 외에는 다른 소득을 갖는 것도 나는 싫었다. 집 몇 채씩 사고, 틈틈이 이사 가고, 주식도 여기저기 적당히 털어놓고, 그렇게 해서 돈을 벌어서는 나한테 떳떳하지가 못할 것 같았다. 

아마 남은 인생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적당히 개기면서 살아갈 것 같다. 

좌파라고 해서 꼭 무슨 정당 활동을 해야 하거나, 시민단체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건 지금까지도 넘치도록 많이 했지만,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을 소소하게 생활 속에서 지키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런 걸 ‘생활 좌파’라고 부르고 싶다. 아마 나는 그런 정도의 모습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것 같다. 

난 아직도 가슴 한 구석에 로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고, 명랑한 마음을 유지하고 싶다. 그리고 남을 웃기지는 못해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고 싶다. 

누가 나한테 여유로운 삶을 살았겠다고 얘기하면 “네, 큰 고생은 없었네요”, 그러고 만다. 내가 얼마나 큰 고생을 했는지, 살아남기 위해서 뭔 짓들을 했는지, 그걸 구질구질하게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건 그냥 가슴 한 구석에 가끔 꽃을 피는 선인장처럼 살아남아 있으면 된다. 지우려고 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 그 기억들을 굳이 꺼내서 인생을 다시 지옥 같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해봐야, 결국 아무도 감동받지 않는 빛 바랜 영웅담의 우중충한 이야기일 뿐이다. 

생활 좌파 정도로 키워드를 잡을까 했는데, 기왕에 좌파 얘기 하는 것, 아예 화끈하게 ‘빨갱이’로 키워드를 잡고 나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언제 이런 얘기를 또 쓰겠나 싶다. 이게 묘하게 진보라는 말과 좌파라는 말의 차이점이 있다. 진보는 뭘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옘병. 한국의 진보들은 세상은 안 바꾸고, 자기 인생들만 바꾸었다. 좌파는 변하지 않는 태도를 지키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고, 자본주의에 대한 삶의 방향 같은 것이다. 

나 아직도 진보가 뭔지 모르겠다. 그리고 한 번도 나의 정체성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세상은 변한다. 계속 변한다. 방송에서는 시사 교양이라고 부르는 분야들이 소위 ‘연성화’를 넘어서 괴멸적 타격을 받는다. “이게 맞다, 저게 맞다”, 그런 얘기하는 시기는 한국식 계몽주의의 종료와 함께 끝났다. “가르치는 것 같아요”, 뭔가 얘기하려는 것은 외면 받는다. 시대가 그렇다. 

그래도 여전히 교양이 중요하고, 삶에는 원칙 같은 게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하는 사람 한 명쯤 한국에는 있어도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드냐”, 그렇게 얘기하는 것처럼 “권력이 그렇게 좋드냐”, 그런 말 하는 사람 한 명쯤 있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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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회식이 있어서, 급하게 애들 저녁 밥 먹였다. 둘째가 약간 편식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충 해줘도 잘 먹어서 밥 먹이는 게 어렵지는 않다. 게다가 얼마 전에 식기 세척기를 사서, 설거지 일도 대폭 줄어들었고.. 

UN에서 활동하던 시절, dish washer의 딜레마라는 짧은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캐나다 공무원들이 엄청 재밌게 들었다고 찾아와서, 엔알캔 공무원들하고 몇 년 동안 잘 지냈던 적이 있었다. 

dish washer를 집에 놓는 게 좀 그래서 안 사고 그냥 버텼는데.. 코로나 2년 차, 줄구장장 집밥에 쌓이는 그릇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서 결국 샀다. 

밥 먹고 잠시 쉬는데, 요 며칠 들었던 생각들을 좀 정리해보려고.. 

'좌파'를 키워드로 하는 에세이집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도서관 경제학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코로나 문제로 올 겨울에도 필라델피아에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뭔가 봄에 해볼 수 있는 게 필요하기는 한데.. 

이런저런 제목과 키워드들을 잠시 생각해보다가, 기왕 하는 거 화끈하게..

"나는 빨갱이다", 

요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다니던 시절에도 하도 빨갱이라는 소리 많이 들어서, 그래 나는 빨갱이다, 어쩔래.. 이러고 다녔다. 

그래도 프랑스에서 공부했다고 사람들이 좀 봐주기는 했다. '구라파 좌파', 요런 별명이 있었다. 

레드 컴플렉스 가득하던 시절, 주사파 친구들은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기겁을 하고는 했다. 내 주변에 주사파들이 왜 그렇게 많았던지.. 하긴 그 시절에는 주사파 아니면 운동권 내에서도 소수파이던 시절이라. 

이래저래 평생을 소수파로 살았다. 

문재인 당대표 시절에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한반도 신경제 지도를 발표하는 데까지, 좀 뭔가 한 적이 있다. 주사파 친구들이 그때 나에게 열렬히 열광.. 쟤가 살다보니 저런 일을 하는 때도 있네. 그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박근혜 시절, 목함 지뢰 막 나오고 그러던 시절이었다. 

한국에서 "나는 빨갱이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공직을 비롯한 일절의 정부와 관련된 일을 안 한다는 의미일 것 같다. 민간회사에서는 몰라도, 정부와 관련된 일은 평생 없다. 그 말이 그 말이지만, '진보'라고 슬쩍 묻어가는 쉬운 방법을 두고 굳이 멀리 돌아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빨갱이'는 한국에서는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소수자이고, 나의 생애에서는 주류는 물론이고 비주류도 형성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시대적으로, "나는 빨갱이다", 그런 얘기 하는 사람 한 명쯤은 있어도 되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살아서 무슨 영광을 더 보겠나. 이미 영광은 볼만큼 봤고, 더 가고 싶은 높은 자리도 없다. 

이번 생은 그냥 자랑스러운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마감을 해도 좋을 만큼, 이미 충분히 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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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배우들>에서 윤여정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출연료 깎자고 하면 막 화가 나다가도 그래, 내가 피부가 좀 안 좋 지, 이러면서 참아.” 나는 영화 참 많이 봤다. 지금도 많이 본다. <여배우들>은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화가 되었다. 이 유 없이 뒤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내 앞으로 아슬아슬 위험하게 끼어드는 차를 만나도 ‘그래, 나는 유쾌한 모닝이니까!’ 하고 넘 긴다. 이제 나는 길 가는 모든 차를 형님으로 모시면서 산다. 그 리고 배우 윤여정을 선생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나도 아주 잘 참게 되었고, 버티는 힘이 생겨났다."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중)

50대 에세이에서 윤여정에 대해서 한 귀절을 쓴 적이 있다. 영화 <여배우들> 본 이후로, 윤여정을 마음 속 선생님으로 모시면서 살았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그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속으로 울컥 화가 날 때면, "그래, 나도 한 물 간 사람이니까",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 산다. 그리고 가능하면 명랑하려고 노력한다.

윤여정이 만난 큰 영광에 잠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인생은 길다. 심통 내고 인상 써봐야 풀리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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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대한민국>.. 안 해봤던 일이라서 한다고 했는데, 사실 겁도 좀 났었다. 시간은 많지 않고, 대판 싸움 나서 "나 안해", 그러고들 일어나버리면 어떡하나, 그런 우려도 좀 했었다. 좌든 우든, 우리는 악마랑 같이 살아가는 건 아니다. 어떻게든 대화를 하고, 접점을 찾아야 제도 하나라도 만드는 거 아닌가 싶었던. 나름 배운 게 많았던 시도였다.

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469&aid=0000584325

 

'적과의 동침'... "진영을 뛰어넘으니 문제가 풀리더라"

정치인 책은 뻔하다. 본인이 살아온 경력 혹은 정책 비전을 정리해, 선거를 앞두고 내놓는 식이다. 자기 진영을 향한 구애적 성격이 강하다. 대담집 ‘리셋 대한민국’(오픈하우스)은 그 뻔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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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사람에게 로망이 있듯이, 어렸을 때 나는 위인전을 쓰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위인전을 너무 재밌게 읽었던 것도 있고. 40대에는 별로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 시기에 내가 뭐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김미화, 선대인과 팟캐스트를 5년 넘게 했던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시기에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슨 자료들을 보고 살았는지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희로애락, 그 나이에도 감정만큼은 격정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 슬픔도 많았고, 기쁨도 많았다. 

그 시기를 지나면서, 언젠가 여건이 되면 이승만에 대한 얘기를 써보고 싶고, 최종적으로 이완용 평전 같은 걸 써보고 싶어졌다. 물론 이건 나의 로망이다. 실제 그걸 다룰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이완용이 독특한 인생이라는 생각은 든다. 

예전보다 이런 로망이 있어서 그런지, 직접 누군가를 만나서 작업을 하는 걸 피하지는 않는다. 사람에 대한 이해, 이건 늘 어렵다. 사람은 변한다. 살아있는 사람은 생각도 변하고, 삶도 변한다. 안 바뀌는 사람도 있다. 이재영, 노회찬, 죽은 친구들은 변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변한다. 안 변하면 늙기라도 한다. 

2. 
박용진, 김세연과 한 대담집은 사람들이 초기에 말렸던 책이다. 정치인들 얘기하는 데에 끼어봐야 내가 얻을 게 없고, 괜히 정치 구설수에 휘말리기나 한다고, 좀 말렸던 책이다. 그들에게 내 오래된 로망인 이완용 얘기를 했다. 우리 시대의 눈으로 이완용 얘기를 다루는 게 내 오래된 로망인데, 좀 더 복합적으로 사람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연습을 나도 좀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 책은 이래저래 사연이 좀 있는 책이다. 우여곡절 끝에 박용진, 김세연 그리고 얘기를 정리하는 공희준으로 라인업이 결정되는 데까지 몇 달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내건 조건은 딱 하나였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 니가 맞니, 내가 맞니, 그런 치고받고 하는 건 안 한다.. 그런 건 나 말고도 하는 사람이 많고, 나보다 훨씬 더 잘 할 사람이 많다. 나는 “우리는 미래로 간다”, 그 정도의 작업 방향을 정한 것 같다. 좌든 우든, 당분간 한 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제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정책은 더더욱 그렇다. 21세기 들어, 정책에서 좌우는 요소라로만 남는 것 같다. 이리저리 섞이고, 혼합된다. 기든스가 제 3의 길을 얘기한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환경이나 젠더 등 신좌파가 전면에 나서면서, 정책에 대해서는 좌우 보다는 좀 더 통합적으로 가거나 아니면 좀 더 예리하게 예각으로 자르고 들어간다. 

3.
처음부터 그렇게 디자인한 것은 아닌데, 결국 출연진이 좌우 대담처럼 잡혔다. 나는 두 입장이 너무 감정적으로 충돌하거나, 도저히 더 이상 같이 앉아서 얘기하기 어렵다고 자리 박차고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진행하면서 보니까 좀 쓸 데 없는 걱정을 했던 것 같다. 그 정도의 양식은 충분히 갖춘 사람들이라서, 연금 문제나 기업 개혁 등 처음에 생각했던 것 보다는 좀 더 깊게 들어간 것 같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하다 보니까, 기술 얘기가 많이 나오게 되었다. 내가 어렴풋이 생각한 것보다 김세연은 미래 기술에 의한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이 좀 더 확고했다. 어쨌든 자기 나름대로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4. 
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인기가 없고, 고루한 이야기이다. 게다가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정책이 아니라 그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고민들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인기가 없을 것 같다. 역시 싸움은 날이 선 상태로 죽이거나 죽거나, 그렇게 피가 튀어야 재미지다. 

그렇지만 그 정책이 만들어지기 전에 정책의 출발점과 한계를 짚어보는 일은, 과정을 아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체크 리스트 정도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책적 관점에서는 매우 화려하지만, 전투적 관점에서는 밍밍한 책이다. 그래서 더욱 독특한 위치를 가지고 있게 될 것 같다. 박용진, 김세연, 이 두 사람은 젊은 정치인들이다. 6.25에 대한 기억이 없고, 4.19와 박정희와의 관계로 정치를 하지 않은 세대다. 그런 사람들이 논의를 하면 뭔가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는데, 그런 것은 어느 정도 충족시킨 것 같다. 

확실히 기존의 정치 담론과 많이 다르다. 합의하지는 못 하더라도, 공유할 수 있는 문제의 출발점이 더 많다. 

5.
한국의 진보와 보수가 공동으로 뭔가를 놓고 고민하는 일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이런 일이 또 벌어질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자기 노선이 있어야 자기 생각을 더 열어놓고 만날 수 있는데, 그 정도로 자기 노선을 가진 정치인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기왕에 길이 열렸으니까, 비슷한 시도가 좀 더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정치가 꼭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책을 마련하고, 발전시키고, 살아갈 길을 열어 나가는 것이 궁극의 정치 아니겠는가? 

우리는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고,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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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대한민국

낸책, 낼책 2021. 2. 10. 18:33

 

박용진, 김세연과 했던 대담집.

책으로 내는 대담집은 처음인데, 또 할 일이 있을까 싶다. 인생에 한 번 정도라고 생각하고..

박용진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알고 지냈는데, 시시껄렁한 소리들 말고 진짜로 각 잡고 얘기를 해본 건 처음이다.

김세연은 정말로 처음 본. '나이스'하다는 표현을 흔히들 쓰는데, 그걸 제곱 정도 하는 인간이라는 느낌이었다.

나보다 살짝 나이 많은 보수들은 양아치만 아니라도 점잖다는 평가를 내려주고는 했다. 나보다 어린 보수들은, 왜 그러고 사는지 잘 이해가 안 되기는 했다. 멀쩡한, 아니 나이스한 보수를 정말 간만에 본 듯한.

실제 대담에는 사적인 얘기들이 훨씬 더 많았는데, 좌우로 격하게 나뉜 작금의 현실을 우려한 출판사에서 사적인 얘기들을 많이 덜어낸. 그래도 일상적인 입장 보다는 훨씬 더 과격하게 좌우를 넘나드는 얘기가 진행되기는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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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낸책, 낼책 2021. 1. 28. 12:33

2012년, 예전 살던 집에서 바보삼촌..

 

둘째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오는데, 정말 간만에 보는 폭설이다. 어릴 적에는 눈이 오면 그냥 좋기만 했던 기억인데, 이제는 이것저것 머리 복잡하기만 하다. 

팬데믹 경제학은 내일까지 쓰면 초고는 끝낼 것 같다. 20년 가까이 사회적 논쟁의 맨 앞에 서 있었다. 책을 낸 걸로 봐도 15년은 그랬던 것 같다. 그 동안에 딱히 쉰 기간도 거의 없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칼럼을 1년 정도 내려놓은 기간이 있기는 한데, 그 동안에도 책은 계속 썼다. 

2년 전에 워낙 헤매느라고 책 데뷔하고 처음으로 책을 못 낸 한 해가 되었다. 작년에도 책은 당인리 한 권 밖에 못 냈다.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이 책이 내 삶에서는 일종의 분기점이 된 것 같기는 하다. 원래도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삶을 평생 살았던 것 같다. 장래희망, 그딴 건 옛날에도 없었다. 희망직업란에 외교관을 써넣기는 했는데, 처음 그 조사를 할 때 단짝 친구 아버지 직업이 외교관이라서 그냥.. 대학 준비할 때에도 국문과나 사학과 같은 데에서 적당히 간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어찌어찌 점수 맞춰서 들어가다 보니 경제학과에 가게 된 거고. 

요즘 가끔 뭐 안하겠느냐는 얘기를 듣기는 하는데, 그때마다 질색을 하고 "머리에 총 맞았어?", 이렇게 대답을 한다. 내 나이도 이제 50대 중반으로 넘어간다. 점점 더 아무 것도 안 하다가 완전히 아무 것도 안 하는 상태가 되는 게, 나름 꿈이라면 꿈이다. 김상조 등 여러 사람의 삶이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말년에 그게 뭔가 싶다. 잘 좀 하지. 저렇게 욕망이 많은 존재인지, 미처 몰랐다. 

공직을 안 하기로 하고, 방송을 정리하고 나서 내 삶은 그래도 좀 단촐해졌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코로나 2단계로 올라가면서 카페가 문을 닫았다. 내 인생에 잘 없는 휴식 같은 시간을 좀 가졌던 것 같다. 집 앞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정 급한 사람들 중에서는 집으로 오는 사람들도 좀 있는데, 워낙 친한 사람들이다. 전직 차관 한 명이랑 밖에서 소주 마시다가 방법이 없어서 그냥 집에 와서 술을 처먹은 적이 있었다. 아내한테 겁나 깨지고, 손 들고 벌 설뻔 했다. 

농업 경제학은 작년 봄에 초고를 끝냈는데, 에디터가 그만두고 나서 이래저래 책은 표류 중이다. 이래저래 상황이 바뀌어서 대대적인 수술을 한 번 하기는 해야 하는데, 담당자가 없는 셈이라서 그냥 밀리고 밀린다. 나도 내 일에 치어서 지나간 초고를 다시 들여다 볼 겨를이 없고. 이래저래 농업 경제학은 워낙 인기가 없다보니, 초고를 써놓고도 책이 찬 밥 대접이다. 올해 안에 나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다. 

이것저것 밀린 것들 처리하면서 올해에 최우선 순위는 젠더 경제학이다.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는 안 넘기려고 한다. 내년의 최우선 순위는 밀리고 밀려서 뒤로 가게 된 도서관 경제학.. 원래는 작년 여름에 필라델피아에 가면서 시작하려고 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꽝. 올 겨울 방학에는 무조건 간다.. 고 일정만 잡고 있는데, 진짜로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고. 

에세이집은 요즘 판매가 그닥이라, 딱히 우선 순위가 앞으로 올 것 같지는 않은데.. 나름 나이를 처먹다 보니까, 요즘 또 새로운 감성 같은 게 생겨서 적당한 시기에 한 번 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뭐 하나 찔러넣을 틈이 당분간 없다. 올해 카메라 살 여유가 좀 생기면 포토 에세이 같은 거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기는 한데, 애들 보면서 카메라랑 렌즈 들고 다닐 손이 없다. 딱히 찍고 싶은 게 당장 있는 것도 아니고. 피사체는 역시 고양이 만한 피사체가 없다. 인간은 고양이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수가 없다. 

나이 먹으면 경제 다큐 만든다고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영 주변 여건이 마땅치가 않다. 그냥 마음 속의 로망 같은 것으로 품고 살아간다. 

그저 살면서 만들어보고 싶은 삶이라면, "꿈꾸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 삶이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래도 살아보니까 밥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지내면 별 집착이 없기 때문에 양아치 짓도 덜 하게 된다. 눈만 감으면 보고 싶은 애틋한 사랑, 그딴 것도 없다.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어 죽겠고, 눈 감으면 조는데, 무슨 아스라한 그리움 같은 거가 있겠나 싶다. 

축구를 원래 싫어하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2002년 붉은 악마 응원전 열기에 확 질려서, 축구 안 보는 성격으로 바뀌었다. 월드컵 축구에 응원을 안 한 건 아닌데, 그게 최고의 놀이고, 그냥 좀 즐기면 안 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 보기 싫어서.. 국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과도한 국가주의는 싫다. 나도 성격 참 모났다. 중간중간 축구를 보기는 하지만, 그 후로 90분 게임을 전부 앉아서 본 적이 없다. 2002년 생각이 나서, 영 마음이 불편하다. 

움베르트 에코 책을 그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재밌게 보기 시작한 게.. 이탈리아에서 축구 싫어하는 사람이라니, 얼마나 곤란한 상황을 많이 겪었는지, 그런 에코의 글을 읽은 다음부터다. 음, 에코도 축구 안 좋아하는군, 이거네, 딱이다. 

원래도 비주류였는데, 2002년 응원전을 싫어하게 되면서, 나는 완전 제대로 비주류 감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 때문인가? 마초들의 세계에서 일찍 나오게 되었다. 남자들이 군대 가서 축구 얘기하는 것처럼 그 시절에 모이면 하던 얘기들이 골프 치러가서 캐디랑 연애한 얘기들이었다. 이것들이 주머니에 돈 좀 생기니까 운동권 얘기는 소주 첫 잔 마실 때 장식품으로만 하고, 본격 마음에 담은 얘기들이 다 연애담이다. 재미없었다. 대학 시절에 지리산 빨치산에 관한 글 쓴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친구가 캐디랑 최근 연애담 얘기하는데, 돌아비리.. 그 후로 친구들 별로 안 만났다. 

적당히 맞춰주면서 살아도 되지 않나.. 그럴 거면 그냥 죽어버리고 만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남들 몰려가는데 피하고, 다들 한다는 거 피하고.. 그러다 보니, 그런 주변부적이고 춥고 음습한 곳이 내 삶이 되었다. 그래도 이런 삶도 나름 괜찮다. 스포트라이트는 없지만, 그 대신 경쟁도 별로 없다. 순위싸움 싫어하고 경쟁 싫어하는 내 성격에는 딱 맞는다. 

왜 그렇게 소극적으로 사느냐는 얘기는 많이 들었다. 몇 권 더 내면 내 이름으로 낸 책이 50권 채워진다. 소극적으로 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는 꿈이 없냐? 그딴 거 안 키운다. 그냥 하루하루 재밌으면 된다. 재미 없는 날은? 다음 날 재밌으면 된다. 

MB 시절 후반부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증오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비주류 감성에 증오도 내려놓았다. 증오를 내려놓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아날로그 사랑법'이 그 시절에 나온 책이다. 그냥 그렇게 하기는 어려웠고, 한 때 열 마리도 넘는 고양이들 밥 주면서 지내다 보니까 좀 삶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그 후에 태어났다. 

눈 오는 날, 잠시 눈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50권째 책은, 큰 욕심 버리고 "꿈꾸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 정도의 제목으로 에세이집으로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그러고 있으면 선배들이 막 화를 냈다. 넌 도대체 꿈이 뭐냐? 그딴 거 없어요, 되는 대로 살아요. 그럼 유학은 왜 갔어? 도피유학요.. 

십만 명 아니 백만 명이 맞다고 해도, "아니요", 그렇게 말하는 삶을 살기는 했다. 요즘은 뭔가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쓰지마라, 생기는 거 아무 것도 없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절반이 넘는다. 얼마 전에 총리랑 밥을 먹었다. 정부 기피인물이라고 막 웃었다.. 저, 원래 이렇게 살았어요. 결국 이번 정부에서도 기피인물이 되기는 했다. 좋아서 된 건 아니다. 정부의 수소경제 몰빵만 아니었으면, 그래도 좀 좋은 덕담이나 하면서 지낼 수도 있었을텐데. 그냥, 생겨먹은 게 그런가보다 한다.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이다. 눈은 하염없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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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다섯 장 원고 쓰고 나니까 헤롱헤롱, 머리가 빡빡하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책의 하일라이트 위치고, 또 내용도 그런 내용이라서. 알고 있던 얘기는 탈탈 털어넣은.

이재영 살아있을 때 eitc가 엄청 중요한 제도가 될 거라는 얘기를 종종 했었다. 그 시절에는 민주노동당 일각에서 그 얘기를 주로 했었는데.. 결국 그걸 갖다가 제도화시키고 도입한 건 mb였다. mb가 해서 그런지, 좋은 제도이고, 성과도 적지 않은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잘 거론하지 않는..

하여간 탈탈 털어놓고 좀 쉬자.. 그럼 술 한 잔? 술 처먹기 위한 핑계는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이렇게 쓰는 글이 언젠가 누군가의 경제적 운명을 바꾸거나, 최소한 푼돈이라도 더 들어가게 해주겠지..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쓴다.

이제 나이를 처먹다 보니, 내가 하자고 해서 생겨난 제도가 적지 않고, 그걸로 한국이 바뀌기는 조금 바뀌기는 한 것 같다. 물론 얘기해봐야 잘 알지도 못하고, 진짜라니까, 그래봐야, 뻥치시네, 이런 얘기나 듣는다. 그냥 마음에 담고 살아간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바꾸었다.

그런 보람이 있으니까 a4 다섯 장씩 쓰게 되지 않겠나 싶다.

팬데믹 경제학, 이제 네 꼭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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