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쓸 때 문체는 늘 고민스럽다. 내가 다루는 문제들은 주로 어둡고, 슬픈 얘기들이 많다. 힘든 사람들, 어려운 형편의 일을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예전에 kbs에서 올해의 책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심사평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다른 책은 나쁜 놈들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이 책은 불쌍한 사람에 대해서 다루었다"는 것이었다. 어렵고 힘든 것들, 그런 곳에 주로 관심이 가고, 뭔가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을 주로 다루게 된다. 

'명랑'을 기조로 삼게 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재의 무게에 눌려서 얘기를 밀고 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힘든 얘기를 더 힘들게 묘사하면, 정말로 지지리 궁상이 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집어들기 너무너무 어렵고, 무거운 얘기가 된다. 세월호와 배에 대한 얘기를 다루었던 "내릴 수 없는 배"의 경우가, 그 무게감을 이겨내기 어려웠던 경우였던 것 같다. 그때 다루었던 연안여객의 문제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배에 대한 얘기를 다루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배에 대한 주제로 강연 부탁이 많이 왔었는데, 대부분 안 갔다. 섬에 대한 얘기도 아주 일부 다루었는데, 그런 얘기를 우리나라에서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섬의날에 열린 심포지엄에서 발제 부탁을 받았는데, 그것도 여러가지 상황상 하기가 어려웠다. 

팬데믹 얘기를 다루면서, 다시 한 번 톤과 문체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고, 생각보다는 '종료 선언'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인생이 바뀌게 된 사람, 그것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바뀌게 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만 수백만 명이 될 것 같다. 자살하게 될 사람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은 최대한 밝고 웃기게 써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2~3학년들이 읽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 

책을 처음 쓸 때에는 소위 정책당국에 있는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야말로 나의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간이 오래 지난 다음에 알았다. 그건 그냥 소망이고, 현실은 그와는 아주 다르다. 그런 방식으로는 현업에 있는 사람들이 보지도 않고, 또 본다고 해도 아무 변화도 안 생긴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물론 논문 보다는 그래도 좀 더 보기는 하지만, 그런 얄팍한 생각으로는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읍소를 하면? 택도 없다. 그런 식으로는 전달이 잘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책도 몰입감을 가지고 보던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아마도 사회과학을 그렇게 몰입감을 가지고 보는 사람은 우리 나라에서 2만 명 내외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영상이 주는 몰입감을 당할 방법이 없다.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데, 그 앞에서 하는 읍소는 지지리 궁상, 공감 대신 혐오만 사게 될 위험이 있다. 물론 읍소를 예술적으로 하는 방법도 있을텐데, 그건 매우 높은 수준의 예술이라, 나는 하기 어렵다. 

코로나의 경우는, 딱 비극적이고, 비장하게 가기 좋은 주제다. 내용도 그렇다. 그래도 그렇게 안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엄청나게 경쾌하고 밝게 가기는 어려운 얘기인데, 그래도 그렇게 해 볼 생각이다. 농업경제학 이후로 몇 권째 계속 중학교 2~3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책들을 쓰는 중이다. 어렵고 까다롭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 뭐라도 변화를 생각할 수 있다는 마음은 변화가 없다. 짧게 짧게 끊어가고, 얕은 유머도 많이 넣을 생각이다. 묵직한 직구가 아니라, 약간은 날리는 변화구 같은 느낌으로. 정통 사회과학으로 보자면, 정말 간지러운 문체가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과 같은 시기에 다른 옵션은 없을 것 같다. 유튜브랑 경쟁을 하는 건 아예 게임이 안 되지만, 그래도 어쩌겠냐.. 그렇다고 아예 반대 방향으로 갔는 것은 무모하고, 방법 없는 일이다. 그냥 편하게 마음 먹고, 개쪽을 한 번 판다고 숨 한 번 들이키고.. 쪽팔림을 감수하는 길을 가보려고 한다. 

쓸 수 있는 파격은 다 쓰고, 동원할 수 있는 유머는 다 동원하는 방식으로 팬데믹 경제학은 좀 다른 스타일로 가보려고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책 제목과 내용을 보면, 다 알 것 같다는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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