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사람에게 로망이 있듯이, 어렸을 때 나는 위인전을 쓰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위인전을 너무 재밌게 읽었던 것도 있고. 40대에는 별로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 시기에 내가 뭐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김미화, 선대인과 팟캐스트를 5년 넘게 했던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시기에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슨 자료들을 보고 살았는지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희로애락, 그 나이에도 감정만큼은 격정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 슬픔도 많았고, 기쁨도 많았다. 

그 시기를 지나면서, 언젠가 여건이 되면 이승만에 대한 얘기를 써보고 싶고, 최종적으로 이완용 평전 같은 걸 써보고 싶어졌다. 물론 이건 나의 로망이다. 실제 그걸 다룰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이완용이 독특한 인생이라는 생각은 든다. 

예전보다 이런 로망이 있어서 그런지, 직접 누군가를 만나서 작업을 하는 걸 피하지는 않는다. 사람에 대한 이해, 이건 늘 어렵다. 사람은 변한다. 살아있는 사람은 생각도 변하고, 삶도 변한다. 안 바뀌는 사람도 있다. 이재영, 노회찬, 죽은 친구들은 변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변한다. 안 변하면 늙기라도 한다. 

2. 
박용진, 김세연과 한 대담집은 사람들이 초기에 말렸던 책이다. 정치인들 얘기하는 데에 끼어봐야 내가 얻을 게 없고, 괜히 정치 구설수에 휘말리기나 한다고, 좀 말렸던 책이다. 그들에게 내 오래된 로망인 이완용 얘기를 했다. 우리 시대의 눈으로 이완용 얘기를 다루는 게 내 오래된 로망인데, 좀 더 복합적으로 사람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연습을 나도 좀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 책은 이래저래 사연이 좀 있는 책이다. 우여곡절 끝에 박용진, 김세연 그리고 얘기를 정리하는 공희준으로 라인업이 결정되는 데까지 몇 달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내건 조건은 딱 하나였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 니가 맞니, 내가 맞니, 그런 치고받고 하는 건 안 한다.. 그런 건 나 말고도 하는 사람이 많고, 나보다 훨씬 더 잘 할 사람이 많다. 나는 “우리는 미래로 간다”, 그 정도의 작업 방향을 정한 것 같다. 좌든 우든, 당분간 한 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제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정책은 더더욱 그렇다. 21세기 들어, 정책에서 좌우는 요소라로만 남는 것 같다. 이리저리 섞이고, 혼합된다. 기든스가 제 3의 길을 얘기한 이후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환경이나 젠더 등 신좌파가 전면에 나서면서, 정책에 대해서는 좌우 보다는 좀 더 통합적으로 가거나 아니면 좀 더 예리하게 예각으로 자르고 들어간다. 

3.
처음부터 그렇게 디자인한 것은 아닌데, 결국 출연진이 좌우 대담처럼 잡혔다. 나는 두 입장이 너무 감정적으로 충돌하거나, 도저히 더 이상 같이 앉아서 얘기하기 어렵다고 자리 박차고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진행하면서 보니까 좀 쓸 데 없는 걱정을 했던 것 같다. 그 정도의 양식은 충분히 갖춘 사람들이라서, 연금 문제나 기업 개혁 등 처음에 생각했던 것 보다는 좀 더 깊게 들어간 것 같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하다 보니까, 기술 얘기가 많이 나오게 되었다. 내가 어렴풋이 생각한 것보다 김세연은 미래 기술에 의한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이 좀 더 확고했다. 어쨌든 자기 나름대로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4. 
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인기가 없고, 고루한 이야기이다. 게다가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정책이 아니라 그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고민들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인기가 없을 것 같다. 역시 싸움은 날이 선 상태로 죽이거나 죽거나, 그렇게 피가 튀어야 재미지다. 

그렇지만 그 정책이 만들어지기 전에 정책의 출발점과 한계를 짚어보는 일은, 과정을 아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체크 리스트 정도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책적 관점에서는 매우 화려하지만, 전투적 관점에서는 밍밍한 책이다. 그래서 더욱 독특한 위치를 가지고 있게 될 것 같다. 박용진, 김세연, 이 두 사람은 젊은 정치인들이다. 6.25에 대한 기억이 없고, 4.19와 박정희와의 관계로 정치를 하지 않은 세대다. 그런 사람들이 논의를 하면 뭔가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는데, 그런 것은 어느 정도 충족시킨 것 같다. 

확실히 기존의 정치 담론과 많이 다르다. 합의하지는 못 하더라도, 공유할 수 있는 문제의 출발점이 더 많다. 

5.
한국의 진보와 보수가 공동으로 뭔가를 놓고 고민하는 일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이런 일이 또 벌어질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자기 노선이 있어야 자기 생각을 더 열어놓고 만날 수 있는데, 그 정도로 자기 노선을 가진 정치인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기왕에 길이 열렸으니까, 비슷한 시도가 좀 더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정치가 꼭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책을 마련하고, 발전시키고, 살아갈 길을 열어 나가는 것이 궁극의 정치 아니겠는가? 

우리는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고,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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