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영상 인류학이라는 게 슬슬 유행을 탈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몇 달 전에 관련된 곳에서 심사위원을 맡아달라는 부탁이 있었는데, 내가 원래 심사위원을 안 하는 게 살아가는 신조이다.

 

나는 무엇인가 선정하거나 상을 주는 위치에 있지 않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생각이다. 심사위원이 되면 권력을 가지게 된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심사위원을 통해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이유는, 심사위원의 눈과 그러한 위치에서 세상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작업하는 사람들, 글을 쓰는 사람들, 그리고 다큐를 만드는 사람들과 같은 눈을 가지고, 같은 위치에서 세상을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기획자의 위치나 감독자의 위치에 있기 보다는, 똑같이 현장에서 굴르는 실무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그런지 꽤 된다.

 

내가 20대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사실 내 주변의 조언자나 감독자, 그런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동료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대학 교수가 되지 않으려고 생각한 것도, 그리고 '선생'으로 살아가지 않으려는 이유도, 내가 꼰대처럼 되어서, 위의 모습에서 보지 않으려고 한 그런 생각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극장에서 잘 개봉하지 않는 다큐멘타리를, 그리고 DVD 제작을 통해서 판매하지 않고 공동체 상영 등으로만 볼 수 있는 다큐들의 DVD를 방에서 편안하게 담배 뻑뻑 피면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부담스럽다.

 

나는 뭐라고 남들처럼 잠깐 공개되는 인디 상영관에서 줄 서서 보지 않고, 남보다 조금 먼저, 혹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이렇게 공들여서 만든 다큐들을 보게 되는 것인가.

 

2.

 

여성 다큐집단 '반이다'의 개청춘은 중간중간에 티저들을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다. 20대와 관련된 시사다큐는 지난 몇 년 동안 몇 개나 같이 만들 기회가 있었고, 후지 TV, 아사이 TV 그리고 NHK와 몇 번을 같이 만들었었다. 그래서 특별히 더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나도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시사 프로의 형식 그리고 다큐라는 형식을 통해서 참 많은 프로들을 같이 만들었었다. 르뽀에도 몇 번이나 참여했었고, 그 중에 한국과 일본에서 출간된 것도 몇 권이나 된다.

 

새롭게 편집되어 개봉된 다큐멘타리 <개청춘>은 이와부키 히로치의 <조난 프리타>와 주로 비교되는 것 같다. 개청춘 내에서도 <조난 프리타>를 같이 보는 장면이 나오고, 또 그로 인해서 20대 문제를 제기할 때 생겨나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드러내는 중면이 있다.

 

실제 제작자들도 그 영화와 많이 비교하는 듯하고, 또 셀프 카메라와 같은, 최근에 유행하는 그런 형식도 유사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내가 들은 평은, <조난 프리타> 보다는 훨씬 재밌고, 유쾌하고, 경쾌하다...

 

인데, 그 말은 맞기는 하다. <조난 프리타>는 무겁고, 진중하고, 철학적이다.

 

반면에 <개청춘>은 유쾌하고, 명랑하며, 현실적이다. 그리고 조금 더 입체적이다.

 

3.

 

그렇지만 <개청춘>은 <조난 프리타>와 비교될 다큐멘타리가 아니라, 다큐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바로 그 장르의 본질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일종의 메타 텍스트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일본의 20대 다큐 vs 한국의 20대 다큐, 이런 포맷 보다는 전문 다큐 vs 아방가르드 다큐, 혹은 다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그런 것으로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제작하는 20대 스탭들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유형의 20대들, 그 두 가지의 층위는 때때로 충돌하고, 때때로 해소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두 번 있는 것 같다. 군대를 앞둔 인식이, 더 이상 다큐를 계속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런 고민과 함께 다시 다큐팀에 합류하는 장면. 영화의 첫 째 클라이막스이다. 사실 나는 그가 계속해서 촬영을 할지, 그렇지 않을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결국 이전에 촬영한 부분들을 드러내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장치들을 찾아내게 될지. 그 얘기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어떤 액션 스릴러보다도 계속해서 결말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고, 그 장면의 클라이막스가 인식과 제작팀이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또 다른 클라이막스는, 그리고 영화의 진짜 클라이막스는 민희가 집을 나오는 장면이다. 대개 하나의 모순은 또 다른 꼬리를 물고 있는 다른 모순의 연장이며, 이 모든 것들이 집약되어서 터져나오는 장면들이 영화에서는 클라이막스를 형성하게 된다.

 

고졸, 정규직, 민희라는 두 가지 조건을 형성하는 배경 속에 있는 남성 폭력 그리고 영화 초반에 스쳐 지나갔던 민희의 엄마, 이런 것들과 한국의 20대에 대한 모든 얘기들이 총합적 모순처럼 옥탑방에서 폭발했다.

 

전혀 울만한 장면이 아닐 듯 싶지만...

 

이 장면을 보고 울지 않는 남성은 자신의 젠더적 감성에 대해서 한 번쯤은 의심해봐도 좋을 듯 싶다.

 

4.

짧게 짧게 나온 음악들이 아주 좋았고, 무엇보다 인트로에 나온 음악의 나팔 소리들이 경쾌해서 너무나 좋았다.

 

<개청춘>이 어느 정도 흥행을 할지는 모르지만, 상업적 성공과는 또 상관없이, 과연 21세기 한국에서 다큐라는 독특한 영화의 위치가 무엇이고, 어떤 길을 갈 수 있는가, 제작자와 대상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화해해나갔던, 한 길을 먼저 걸어간 영화로서 한국 다큐사에 남지 않을까 싶다.

 

있는대로 보여준다고 해서, 솔직히 보여준다고 해서 다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장면을 만들고, 솔직한 그림들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내적 흐름을 만들고, 플롯들을 잡아내는 것에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다큐는 찍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고, 진짜 일은 바로 편집 작업에 있다는 세간의 평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한편으로 <개청춘>은 한국의 20대들에게 바쳐진 작품이지만, 정말로는 아직 메이저 매체의 얹저리에서 자리를 잘 못잡고 있는 한국 다큐멘타리에게 바쳐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실험적이며 성공적인 다큐를 한 번쯤 볼 수 있는 기회들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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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이거야 내 취향이니까. 나는 그보다는 훨씬 더 B급 감성을 좋아하고, 류승완의 '아라한 장풍 대작전', 요따구 영화를 더 좋아한다. (이 영화에, 최근처럼 유명해지기 전의 칩거 시절 이외수가 등장한다.)

 

하여간 그래서 임권택 영화는 뜨문뜨문 보고, <서편제>는 영 내 취향 아니다. 하여간 그렇긴 한데.

 

얼마 전부터 쿡 TV를 PD 저널 칼럼 때문에 달게 되었고, 이 안에 VOD 영화들이 있어서, 틈 나면 하나씩 꺼내본다. 그렇게 해서, 정말로 집에서 뒹굴뒹글 하다가 짜장면 시켜먹으면서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보다보다 더 볼게 없어서, 허름한 B급 영화들 중에서 대박을 기대하며 - 물론 대개는 실망하지만 - 보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다. 쿡 TV의 VOD 서비스는, 정말로 비디오방이 TV 안으로 들어온 딱 느낌이다.

 

하여간 그리그리 하여 임권택의 2004년 영화, <하류인생>을 보았는데.

 

영화는 재밌고, 아련한 기억들을 떠올르기 해주었다.

 

나도 이제는 짤탱이 없이 아저씨인가, 뭐, 그런 묘한 후줄근한 느낌을.

 

제목은 하류인생이지만, 여기에 하류인생은 나오지는 않는다.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하는 무소속 진보주의 정치인,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그녀의 딸, 명동파의 결국 제일 잘 나가게 되는 주먹, 이런 사람들이 주로 나온다.

 

자꾸 시라소니 생각이 났고, "동데, 한 판 붙자우" 하던 <야인시대>의 대사가 자꾸 입에 감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채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결국 유화풍이 되어버린 어색한 느낌 속에 그야말로 '공화국' - 경향신문의 그 공화국 시리즈 - 의 출발이 생각나는 그런 영화였다.

 

여선생 역할을 맡은 여배우가 인상에 남았는데, 그녀의 이름이 김민선이었다. 영화를 짝짝 입에 붙게 맛갈나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는데, 한국 영화에서 이런 여배우를 본 게 도대체 몇 년만인가, 박수를 다 쳐주고 싶었다.

 

하여간 임권택 손에만 들어가면, 하류인생도 상류인생이 되어버리는, 아주 묘한 불균형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 교묘하게 만들어진 불균형이 바로 임권택의 영화를 예술로 만드는 그 힘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김민선이 어깨에 힘 주고 연기했다면, 우와, 또 임권택 필 난다, 하면서 우웩 했을텐데.

 

정말로 어깨에 힘 빼고, 부드러우면서도 도저히 살아갈 길이 없었던 60~70년대의 한국 여인들의 묘한 내적 모순들, 그걸 김민선이 재연한 것 같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막내 이모 생각이 났고, 어렸을 적에 우리 집에 놀러오시던 그 수많던 교대 출신의 여 선생님들, 나에게 이모라고 말해주던 그 수많은 얼굴들이 살짝 머리를 스쳐갔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그 당시에는 드문 양장을 곱게 차려입고 우리 집에 놀러오시던 그분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실까, 그런 지나버린 시절의 노스탈지아가 살짝 느껴지면서.

 

2004년도 영화인데, 그래도 시간을 다루는 데에는 임권택 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참 다루기 어려운 소재인데, 임권택은 간만에 B급 영화 찍던 다작 시절의 감성을 잠시 회복한 듯 싶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임권택이 자신을 위해서 만들었던 영화인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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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르뽀 문학이 있나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르뽀 작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고, 잘 팔리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몰라도 꾸준히 책을 내고 있다.

 

송구하지만, 그들 중 내가 기억하는 이름은 김순천 하나 밖에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부숴진 미래>는 아주 재밌게 읽었고, 또 그 당시의 작업 과정을 약간 곁눈질 할 기회가 있었다.

 

인터뷰라는 것은, 참으로 골 아픈 작업이다. 나는 사람을 만날 때, 내가 필요한 정보 중심으로 축약해서 이해하는 편인데, 이건 약식이다.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그 중 김순천이 만나는 사람들은 그의 글들이 왜 르뽀라는 장르로 포함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듯이, 특징적이지만 정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가 이번에는 10대들에게 눈을 돌렸다.

 

3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정말로 3년이 걸렸을 정도로, 인터뷰 하나 하나가 정성이 들어갔고, 나 같으면 도저히 하지 못할, 세밀한 묘사로 자신의 대상을 어루만지는 그녀 특유의 정서가 눈에 띈다. (내가 그렇게 잘 못하니까, 그런 부분이 더 자세히 보였다.)

 

한국의 10대, 그것을 날 것 그대로, 죽 펼쳐서, 자 이게 현실이야, 그렇게 그녀에게 한국은 캔버스이고, 10대들의 말을 모아서 넓적한 풍광을 그리고 있었다.

 

그 풍광이 밝은가, 어두운가, 그것은 읽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 같다. 무엇인가를 고쳐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현실이 이렇다고 하는 그 날것을 보는 것 자체가 출발점이 될 수 있기에 밝음일 것이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리고 아무 것도 변화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에, 봐, 10대들의 현실이 이렇게 어두울 뿐이라니까!

 

어쨌든 김순천이 고른 스펙트럼은 그야말로 다양한다.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는 상위 2~3%에 든다는 고등학생부터, 의상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친구, 하이닉스에 가고 싶어하는 기능과정, 지방에서 재수하는 친구, 그리고 맞다맞다 도저히 못 맞겠다 싶어 중학교를 자퇴한 친구.

 

이것은 현실이다.

 

그리고 그 인터뷰 뒤에 빼곡하게 채워넣은 코멘트들도 상당히 재미있다.

 

그 중에 가장 인상깊은 던 것은 강남 정신병원의 의사가 자신이 진단한 강남 학생들의 정신상태였다.

 

강남의 평범한 학생들은 대개 강박증, 우울증은 기본이고,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이는 학생들이 아주 많았고. 현실이 그럴 것 같았지만, 정신과 의사 아니면, 그리고 정말로 학교에서 진단해 본 사람들 아니면 해주기 어려운 얘기인데, 이 귀한 얘기들이 여기에 실려 있다.

 

강남의 엄마들은, 지독할 정도로 참견을 많이 하거나, 지독할 정도로 관심을 안 가지고 있는, 두 부류로 나뉘어서, 자식들의 정신 건강이 더욱 나빠질 수 밖에 없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김순천, 이 꼼꼼하면서도 자상한, 그러면서도 베가본드 같은 느낌이 드는, 한국의 밑바닥을 뒤지고 다니는 이 시대의 르뽀 작가, 그의 다음 발걸음은 어디로 향할까?

 

(르뽀작가협회의 교육 프로그램에 연락하면, 그녀가 해주는 르뽀 작가가 되는 기본 교육 같은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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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디 영화와 관련되어 극장에서 하는 토크쇼에 두 개나 참가를 하기로 했다.

 

정부에서 다큐멘타리 제작과 관련되어 돈을 좀 줄테니, 내용 있는 다큐를 좀 만들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건너건너 받았고, 그래서 다큐 제작을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물론 나는 촬영이나 그런 건 잼뱅이니, 내가 뭘 하겠다는 건 아니고, 정부에서 돈 따고, 기업 후원 받아서 돈 만들어내는 건, 하던 가락이 있어서, 20대들이 다큐를 하고 싶다면, 돈이나 지원해주는 그런 제작을 해볼 생각이 있었다.

 

결국 접은 건, 명박 정부한테 돈 받았고 궁시렁궁시렁 하는 소리들을 괜히 듣고 있을 필요도 없고, 또 정부 돈이라는 것은 아무리 꼬리표가 없다고 해도, 꼬리표 없는 공짜는 없다. 무엇인가 또 양보하고, 결국에는 검열을 하게 된다.

 

이래저래, 귀찮다, 마침 몸도 아프고. 그래서 접고 나서 인디 영화하는 사람들한테 약간의 마음의 빚이 있어서, 이름이라도 올려달라는데, 그 정도야.

 

하여간 그 첫 번째 일로, 오늘 인디 스페이스에서 하는 청춘불패라는, 의미는 있고, 좋은 다큐이지만, 감성상 좀 서글프고, 약간은 후반부에서 늘어지는 그런 다큐를 봤다.

 

영화 보다가 세 번쯤 울었는데, 내가 영화나 드라마 보면서 우는 건 아무 사건도 아니다.

 

심지어 차마 눈뜨고 봐주기 어려운 오드리 또뚜의 <코코 아방 샤넬>을 보면서도, 사실 울었다. 뭘 보면서 내가 울었다는 것은, 아무런 정보값도 없는 일이다.

 

난 눈물이 헤프다. 주성치 영화에 안 울면서 본 영화가 거의 없을 정도라면, 얼마나 헤픈지.

 

몇 년 전인데, 강연하다 말고 운 적도 있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타... 그날따라 몇 백명 모인 큰 강연이었는데.

 

하여간 인티 스페이스에 준 다큐 DVD가 몇 개 있고, 극장에서 기다리다가 자신이 만든 다큐라고 DVD를 건네 준 감독들이 몇 명 있었다.

 

솔직히, 이거 한 번 봐주세요, 하고 DVD를 건네는데, 괜히 코끝이 짜릿해졌다. 난 DVD든 CD든, 어지간하면  다 돈내고 사서 본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다.

 

간단한 다큐라도, 몇 년은 고생하는데, 봐 달라고 그냥 건네주는 감독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도 정말 무명시절 거치면서 출판사 문 앞에서 "출판 불가"라고 타박맞고 쫓겨나서, 들어오는 길에 그냥 쓰레기통으로 보낸 책이 10권 가깝다.

 

<88만원 세대>도, 출판 불가 판정을 받은, 그것도 몇 군데 출판사에서 받았던 원고였다.

 

독기가 올라서, 하나도 안 고치고, 그 대신 더 좌파 필 나는 내용을 더해서, 그렇게 출간한 원고였다.

 

<조직의 재발견>이, 내가 마지막으로 출판 판정을 받은 책이었다.

 

책 두 권을 놓고, 두 개의 원고가 다 출판 불가라는데, 참 홍대 앞에서 에디터 기다리면서 만화가게에서 만화 보는데, 자꾸 눈물이 만화책 위로 떨어지던데.

 

짜장면 까지 시켜먹으면서 다섯 시간 동안 홍대 앞에서 기다리다가 에디터에게 바람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늘이 노랬다. 정말 노랬다. 그런 시절이 3년 전의 내 모습이다. 마흔을 코 앞에 남겨둔, 에디터 전화 연락 기다리면서 홍대 앞 만화가게에서 너무 배 고파서 짜장면 시켜먹던.

 

뭐, 그래도 청춘불패의 주인공처럼 외롭지는 않았다.

 

친구 불러서, 12시까지 술 처먹고 잘 놀다가 집에 들어갔다.

 

어쨌든 오늘 인디 스페이스에서 받아온 다큐들, 시간 나는 대로 곰곰이 하나씩 보고, 꼼꼼하게 독후감을 써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이 장면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된다, 오늘도 풀빵으로 끼니를 떼우며 카메라 들고 몸빵하는 다큐 감독들에게,

 

내가 보낼 수 있는 최선의 경의와 지지를 보내고 싶다.

 

다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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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샤넬 영화 본 김에, 전기라도 다시 읽고 가려고, 저녁 때 교보 나간 김에 책 몇 권 샀다.

 

전기라는 것도 그렇게 평가에 관한 것들도, 시대가 바뀌면 새로 해보는 것들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럭셔리 : 유혹과 사치의 비밀>은 상당히 중요한 책으로 알고 있는데, 1쇄도 아직 못 턴 것 같다.

 

같은 패션 책이지만, 스타일이라는 코드로 묶여서, 이런 걸 입어라 하면 날개 돟친 듯이 팔리지만, 하다못해 마케팅 아니면 경영학 코드로 묶여서 분석서로 분류되면, 한쪽 구석에 처박히게 된다.

 

패션으로 연구팀을 구성할까 말까, 몇 달 전부터 동료들과 좀 고민을 했었는데, 아직 문화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팀을 구성할 단계까지, 우리의 공부가 가 있지 못하다.

 

나는 못가지만, 가을 프리미어 비전이나 밀라노의 텍스타일 시장이 열릴 때, 이번에는 연구진들이 어떻게든 출장에 가서 좀 분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하는 중이다.

 

내년이면, 그래도 내가 직접하지 않는 연구라도, 젊은 연구진들이 집중해서 이런 코너코너를 분석할 수 있도록, 선배들이나 기업들 등이라도 쳐서 연구 자금이라도 좀 만들어주고 싶다.

 

큰 돈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인 연구팀을 꾸리려고 하면, 언제나 돈이 왠수다.

 

이넘의 돈, 도대체 공부하는 동네에는 왜 이리 얼굴도 안 보여주고 지랄이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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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

영화 이야기 2009. 9. 6. 00:13

간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코코 샤넬>...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 가브리엘 샤넬에 대한 얘기를 좀 길게 썼고, 사실상 결론이 가브리엘 샤넬인 셈이라서 봤다만...

 

샤넬 얘기를 가지고 이렇게 영화를 재미없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구나, 그리고 오드리 또뚜가 나오는 데도 이럴 수 있구나, 사실상 경악을 금치못하게 재미는 없었다.

 

샤넬이라는 최고의 상품을 가지고도 이렇게 장사를 못하는 수도 있나 싶었다. 꺄날 +에서 후원한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재미는 있었는데, 도대체 이럴 수가 있나.

 

지금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샤날에 대한 책을 써보고 싶었고, 내가 샤넬을 얼마나 좋아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니까, 더 괴로웠다.

 

그래도 배운 건 있다. 한국은 망할 것이라는 점.

 

용산 CGV에서 봤는데, 관객이 열 명이 채 안되었는데, 이 관객들은 아주 특색있는 사람들이었다.

 

40대 중후반은 될듯한 부부가 전부였는데, 아마 샤넬을 동경하거나 흠모하거나 혹은 소유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남편을 끌고 온,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내 극장 생활에서 이렇게 중년 부부들로만 차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 본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마크 제이콥스의 옷을 입는다거나 아니면 샤넬의 옷을 입는다고 해서 내가 뭐라고 그런 적은 없다.

 

샤넬의 옷을 입는다거나 샤넬의 상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샤넬의 혁명 정신을 소비하는 것이고, 그래서 일종의 언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내에서는 별 중요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푸르동의 저서를 샤넬이 읽게 된다. 그리고 푸르동의 책을 다 읽은 샤넬은, 아마 틀림없이 다음 책으로 니체를 읽게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자본론>을 모든 것의 전부라고 아는 사람들은 푸르동을 아주 이상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고, 비과학적 접근을 한 사회주의자로 알고 있겠지만, 사실 프랑스 좌파의 역사에서 푸르동은 아주 중요한 사상가이다.

 

푸르동과 샤넬의 만남, 그리고 그의 혁명성 같은 것들은 아직도 채 해석이 끝나지는 않은 일이라고 알고 있다.

 

하여간 충격적인 것은...

 

샤넬을 그렇게 좋아하면 샤넬에 대해서 좀 궁금해지기라도 할텐데, 그런 흔적은 극장에서 전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아니, 샤넬의 정신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샤넬처럼 돈 벌고 싶지는 않은가 보지? 샤넬처럼 돈 벌고, 샤넬처럼 신나게 사는 것도 즐거운 일 아닌가?

 

영화는 재미없었지만, 그래도 샤넬이 어떤 사람인지, 지금 샤넬을 소비하는 사람들 중에서 전혀 궁금증이 없다는 사실에, 약간 절망하고, 이 나라가 결국 망하기는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세상에는 샤넬을 소비하는 사람과 샤넬과 같이 무엇인가를 만드는 두 부류의 존재로 나뉘어진다.

 

지금 좌파가 해야 할 일은, 내 평소의 소신이라면, 샤넬과 같이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샤넬처럼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한국은 소비하면서도 도대체 뭘 소비하는지도 모르고, 생산한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집단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샤넬이라는 이름을 듣고도 가슴이 설래이지 않는 사람들, 도대체 입에 밥이 들어갈까, 그런 생각이 좀 들었다.

 

샤넬을 소비하면서 샤넬에 대해서 궁금해서 어쨌든 극장까지 오는 40대 주부들과, 역시 샤넬을 동경하면서도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20대 여성들이 경쟁하면 누가 이길까?

 

어쨌든 영화라도 보는 아줌마들이 결국에는 파라다임 싸움에서 이기게 되지 않을까?

 

샤넬도 푸르동 정도는 읽고, 자본론도 읽었고, 니체도 읽었다. 그리고 20세기가 열었다.

 

샤넬이 연 20세기는 버나드 쇼와 같은 남자들이 열어제낀 그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이거 진짜... 샤넬 전기라도 한 번 쓰던지 해야지.

 

아르테꼬의 진지한 전사들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국가 장식학교로 번역되나? 하여간 정부에서 연간 수 백만원씩 재료비 지원하면서 패션을 배우는 사람들을 좀 안다.

 

20대 초반에, 샤넬이 사치품이라고 한 마디 했다가, 아주 뼈도 못추리게 프랑스 넘들한테 논쟁으로 당했던 기억이 소록소록.

 

넌 샤넬을 이해못하면, 20세기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아주 처절하게 당하고, 뼈도 못추리게 당한 적이 있다.

 

하긴, 그러면 뭐하나...

 

프랑스도 사르코지한테 넘어가고, 자신들이 자랑하는 그 생산체계도 마크 데이콥스 같은 뉴욕 좌파들에게 결국 조금씩 넘어가는 중인데 말이다.

 

한국은 패션계로 들어오면, 우파와 극우파들이 득실득실하다.

 

프랑스는 패션계의 마네킹이라고 부르는 모델들까지, 좌파들이 득실득실하다.

 

이 차이가 생산과 소비의 차이인 것 아닐까, 그런 가설들을 하나 가지고 있다.

 

우파들이 패션 시장에서 쪽도 못 쓰는데, 우파 코드로 대구에서 밀라노 프로젝트 하다가 결국 지방 토호들 주머니만 채워주게 되었다.

 

우파들은 생산, 특히 이론과 예술 분야에서 아주 약하기 때문에, 결국 밀라노 모델이든, 파리 모델이든, 프랑스 모델이든, 그런 생산의 영역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좌파 코드와 좌파의 유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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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rchy

독서감상문 2009. 9. 4. 18:23

 

 

21세기에 나온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을 한 권 꼽으라고 하면 나는 이 책을 꼽겠다.

 

그리고 지금 명박 시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책 한 권을 꼽으라고 해도, 역시 나는 이 책을 꼽겠다.

 

지금 4대강 살리기와 정반대의 사례가 미국의 에버글레이즈 사례인데, 주민들이 참여해서 뭔가를 바꾼 지역은 아주 많은 반면, 에버글레이즈는 생태학자인 홀링과 그의 동료 과학자들이 직접 참여해서 바꾼 대표적인 사례이다.

 

에버글레이즈에 대한 생태학자들의 연구와 성과가 사회 시스템 전체에 적용되어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이 파나키라는 책이다.

 

(지금 쓰고 있는 '생태 유토피아'에서 상당히 중심 텍스트로 이 책을 다루고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이 책을 번역하려고 몇 팀이 시도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너무 두껍고, 논문집이라서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히 번역에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한 번 번역팀을 구성해서 번역해볼려고 하기는 했었는데, 워낙 엄두가 나는 일이 아닌 데다가, 받아줄 출판사가 도저히 없어서 포기한 적이 있다.

 

알리딘 수입가로 75,000발, 읽으면 현 상황에서 상당히 도움이 될만한 책인데, 너무 비싸서 도저히 사서 보라고는 말 못하겠다.

 

http://www.resalliance.org/593.php

 

이 책을 읽고, 뭔가 실천하자고 한 사람들이 만든 resilience alliance라는 그룹이 있다.

 

어떤 얘기들 하시는지, 한 번쯤 보셔도 좋을 듯.

 

(얼마 전에 크루그만 글을 여기서 봤는데, 지금까지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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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에 유학 시절에 케이블 TV를 잠깐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나는 TV는 공중파만 보는 편이다. 유학 시절부터 머리 맡에 CD를 켜거나 TV를 틀어놓는 게 습관이 되어서, 남들처럼 조용한 방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차 마시는 중에 책도 보고, 글도 쓰고.

 

나는 조용해지면 잡념이 늘어서, 대체적으로 뭐라도 틀어놓는 편이다. 이게 참 성격 이상하다. 시끄러운 데에서는 아무 일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조용한 방에서는 또 아무 것도 못한다.

 

대체로 그렇게 살았는데...

 

이사하고 나서는 청와대랑 등을 대고 북악산 한 가운데의 계곡 입구에 살고 있는데, 여기가 지독할 정도의 난시청 지역이다. 튜너를 위해서 꽤 비싼 FM용 안테나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도 전혀 통하지가 않는다.

 

여덟달만에 포기하고 결국 케이블을 들이기로 했다. 매주 PD 저널에 칼럼을 쓰는데, TV는 하나도 보지 않고 PD들에게 뭔가 말을 한다는 것도 영 양심상 꺼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비 내리는 호남선'을 참으면서 선덕여왕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결국 쿡 티비를 달았다.

 

아... 이게 스타 리그가 안 나온다. 아무 생각없이 시간 때우기에는 스타 크래프트 만한 게 없는데.

 

그 대신에 VOD 기능이 있다. 좀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지만, 하여간... DVD 보는 마음으로 너무 뻔해 보이는 영화를 골라서 볼 수 있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그리하여 개시 기념으로 영화 한 편을 때렸는데, 이게 <타짜>다. <타짜>는 옛날에 만화로 좀 보기는 했는데, 뜨문뜨문 본 이유 때문에 그렇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섹스, 반전, 돈, 전형적인 B급 코드였다.

 

이 영화는 아마 한국 영화사를 정리한다면, 결국은 김윤석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영화 정도로 남지 않을까... 싶다.

 

호러 특히 괴기 영화나 무서운 영화에 대해서는 나도 한 B급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내가 혀를 내두룰 정도로 무섭다고 느낀 영화가 바로 <추격자>였다. 솔직히, 이 영화는 이제는 좀 끝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공포가 끝까지 같고, 정말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김윤석은... 간만에 보는 좋은 배우 같다. 그는 <즐거운 인생>에서도 아주 느낌이 좋았었다.

 

사람마다 스타일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송강호를 비롯한 몇 명의 맨 앞에 서 있는 배우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론 싫은 이유를 찾으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냥 내 스타일 아니라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어지간하면 싫은 소리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김윤석이 가진 매력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여간 잠깐 그렇게 하고...

 

역시 나는 아저씨는 아저씨고, 옛날 사람이다.

 

DVD로 3편 세트를 전부 가지고 있는 <영웅본색>을 틀고야 말았다.

 

(아버지가 빌려가서 몇 년째 돌려주시지를 않는다.)

 

<영웅본색>을 볼 때, 비로소 나는 가장 편안한 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나는 왜 나에게 윤발이 오빠 느낌이 나지 않을까, 아주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어쩔거냐. 하늘이 나를 이 형편 없고 느낌 없는 모습으로 태어나게 했는데 말이다.)

 

(참 쿡 티비의 VOD 리스트 중에는 김현진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린 바로 그 <언니가 간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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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의 새 책이 나왔다. 아직 못 읽어봤다.

 

연애 얘기를 내가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성학 교재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한 번 읽어보려고 하던 참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출판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건데, 이 책 인세를 거의 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조에 기부하기로 되어있어서, 정작 김현진에게 경제적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란다.

 

정말 여러 사람 부끄럽게 만든다. 물론 나도 얼마 전부터 내 책 인세의 일부를 학술운동이나 시민단체에 기부하고 있기는 한데, 김현진처럼 통으로 기부하는 것은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다.

 

참, 여러 사람 부끄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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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을 꽤 쓰는 것 같다. 어쨌든 신자유주의 최고이 이데올로그라면 바로 밀턴 프리드만을 꼽을 수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옛날에 읽던 책들을 뒤적뒤적 거리다가 밀턴 프리드만의 53년 논문집을 찾아냈다. 유학 시절에 여기저기 헌책방 돌아다니면서 구하기 어려운 책들을 구해놨었는데, 이제는 여기저기 다 찢겨져서 어디있는지도 잘 모르는데, 용캐 이 책이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었나 보다.

 

밀턴 프리드만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꽤 공부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오미 클라인이 알려준 그의 과거 행적은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중남미 국가들에서 그야말로 고문관 행세도 톡톡히 했었다. 이런 짓까지 했었나?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은 추천사를 부탁받아서 읽었던 책인데... 그야말로 추천할 기회가 생겨서 고마워... 라고 할 정도로, 나도 잘 모르던 밀턴 프리드만의 중장년사에 대해서 공부할 기회가 되었었다.

 

내년에 나올 사회과학 방법론 책에는 학부시절의 밀턴 프리드만의 생각에 대해서 그가 청년기에 정리했던 생각들을 좀 써볼 생각이다. 바로 카르납의 수업을 들으면서 그가 했던 '실증주의'에 대한 생각들... 이 논문도 어딘가 잘 뒤지면 나오기는 할텐데, 찾을 자신이 없다. 직장도 몇 번씩 옮기고 이사도 몇 번씩 하면서, 한 때는 애지중지하면서 정리했던 자료들이, 산산히 흩어졌다.

 

레닌이 난리를 치면서 비판했던 그 마하에서 카르납 그리고 밀턴 프리드만을 거쳐서 지금의 명박 진영의 경제학자들까지. 그 인식의 계보가 신기하기만 하지만, 정작 우리가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그 도그마들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 연구한 것은 잘 보기가 어렵다.

 

geneology 같은 것은 귀찮고 정말로 밥 먹고 살기에 도움 안되는 학문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너무 이런 것을 공부하지 않는다.

 

돈 안되는 일을 재미든, 사명감이든, 하여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잘 속지 않는 사회라는 나의 20대의 신념을 지금도 버릴 생각은 없지만.

 

밀턴 프리드만을 찬양하고 찬송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많은 미국 유학 경제학자 중에서 밀턴 프리드만의 책들을 정식으로 앞에서부터 찬찬히 읽은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하이에크의 책도 마찬가지이다. 하이에크의 제자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한국 사람들은 많지만, 하이에크의 책들 특히 예전에 슘페터 같은 사람들과 논쟁하면서 썼던 책들을 꼼꼼히 읽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스스로를 monetarist라고 부르고 싶어했던 밀턴 프리드만, 신자유주의가 이제 클라이막스를 넘어 조금씩 꺾여가는 요즘, 더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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