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프랑스와 독일은 많이 다르고, 라틴 국가들은 또 다르다. 북유럽 국가라고 하지만,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다르고, 스위스는 또 다르다.

 

이런 것을 뭉뚱그려서 유럽이라고 표현할 때, 솔직히 좀 괴롭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유럽에 가는 게 귀찮아지고, 새로운 흥미도 줄어든 게 사실이다. 꽤가 난다고나 할까? 그 대신 일본 연구로 점점 더 옮겨가는 중이고, 일본이라는 사회를 좀 이해해보기 위해서 나름 시간을 들이는 중이다.

 

토마스 케이건의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는 취리히의 첫 장면에서 시작한다. 유럽에는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나도 취리히에 2주 정도 처음 머물 때 정말 충격을 받았던 게 기억난다.

 

좋든 싫든, 나에게는 파리가 제 2의 고향 같은 곳이다. 물론 많은 파리에 살았던 외국인들이 그렇듯이, 나는 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방으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에펠탑을 보고, “아 집에 왔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나를 엄청 혐오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한가, 그런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다.

 

내가 정말 잘 사는 곳이라고 느꼈던 곳은 리옹,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라는 책에서 꽤 길게 소개된 본이라는 곳이다. 파리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도시는, 어쨌든 본이다. 수 년 동안 1년에 두 달 가량은 어떻게든 체류하게 되던 게, 예전의 내 직장 시절의 생활이었다. 줄기차게 가고 또 가고. 만약 본이 평안한 곳이 아니라면, 정말 가기 싫었을 것 같다.

 

이런 것을 기질이나 민족성 탓으로 설명하는 것은, 가장 쉬운 설명이다. 초기의 생태 인류학이 좀 황당했던 것들은, 이런 차이점들을 그 지역의 생태적 여건으로 환원시켜서 설명하려고 한 것.

 

사회라는 것은 좀 더 복잡하다. 토머스 게이먼은 지금의 미국과 독일 사이의 차이점을 노동조합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 그리고 기걸 복합적으로 결정하는 사민주의 체계라는 것으로 설명을 시도한다. 어쨌든 어느 사회에 속해있었는가를 기점으로, 두 집단의 삶은 차이가 많이 나니, 무엇이든 설명하려고 하는 수밖에.

 

그것이 제도 때문이든, 아니면 교육 때문이든, 독일적 삶과 미국적 삶, 그 사이에는 이제는 현격하게 많은 차이가 벌어져 있다. 삶의 불안으로 설명하든, 여가와 여유라고 설명하든, 혹은 실질 구매력 또는 가처분 소득에 근거한 개인 자산으로 표현하든, 어떤 지표를 들어도 차이는 명확하다. 다만 1인당 명목 GDP에서만 별 차이가 없다.

 

간만에 지나온 삶과 몇 가지 생각들을 잔잔하게 떠올려 보게 되는 책을 만났다.

 

머리 속에 몇 가지 수치와 시스템을 떠올리면서 보려고 하면 이 책은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책이 된다. 수 십년 동안 저자가 독일을 방문하면서 가졌던 그 때 그 때의 경험과 변화, 이런 것들이 통독과 EU 창설, 세계화, 그런 논의들과 엮이면서 복잡한 메커니즘을 머리에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기처럼, 복잡한 내용들은 좀 잊고, 저녁 6시면 가게 문을 닫아버리는 그런 사회에 대한 구경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편해진다. 나는 책의 절반쯤에 가서야, 여행기편이 뒤에 있고, 그걸 정리한 저자의 결론이 앞쪽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좀 더 편한 독서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순서를 뒤집어서 뒤쪽을 먼저 읽고, 그 다음의 앞의 절반을 읽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책의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영원할지는 모르겠지만, 독일이 향후 수 십년 내에 당장 망할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

 

저자는 일중독과 함께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독일에 대한 문을 들어가려고 하였는데, 나는 점심이라는, 좀 독특한 문으로 들어가보려는 생각을 몇 년째 하는 중이다.

 

하긴 그 입구가 뭐가 중요하겠나. 찬찬히 살펴보면 대부분 크게 다르지 않은 결론이 나올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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