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
솔직히 내가, 은희경의 산문집을, 그것도 정가 그대로 주고 교보문고에서 사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절반 정도는, 특히 후반부 절반은 책방에 선 채로 읽었다. 그 정도면 보통 내려놓고 오지만, 은희경 산문집은, 진짜로 소장하고 싶었다.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자료가 될 듯 싶기고 했고, 워낙 특이해서 기념품으로서의 가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팍 때리고 갔다. 이런 책도 있구나 하는 호기심, 그래도 간만에 간만에 은희경 책 하나 샀다는 스노비즘 그리고 시간을 좀 가지고 천천히 여러 번에 걸쳐 보고 싶다는 호기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곽노현에 대한 얘기들은 잠시 잊고 지낼 수 있는, 전혀 다른 세계의 그리고 다른 포맷의 읽을 거리가 필요했다. 책을 짚어들자 마자 딱 뇌를 스쳐지나간 건, 이것이 옳으냐, 저것이 옳으냐, 그런 얘기에 대해서 불가근 불가원인 그런 도원경 같은 지역도 글의 영역에서 분명히 필요하다는 것. 어쩐지 은희경이라는 작가는 그런 자기만의 공간을 누군가에게 열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좋은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시인 최형미의 산문집에서도 유사한 느낌이 들었었다.
은희경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것은, 90년대 후반, 현대에 있던 시절, 울산으로 가던 비행기에서 뭔가 읽어야 할 것이 필요해서 집었던 게 처음이었다. 아마 세 권인가, 책이 나왔던 것 같은데, 대구에 가는 비행기에서도 읽고, 몇 주 사이에 출장으로 지방에 내려가던 비행기에서 내려가고 올라가면서 읽고, 그리고 던져놓았던 기억이다.
고만고만한 시기에 읽었던 소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형경의 <새들을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운다>… 소설의 맨 앞에 나왔던 어느 여의사의 이름이 천리향인지, 만리향인지, 아직도 그 이름을 기억하고, 원하지 않은 결혼을 결국 하게 된 어느 여인의 아픔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김형경 소설을 읽은 이후로, 비슷비슷하게 그 때 나온 소설들을 어지간하면 챙겨서 읽었고, 짧게나마 감상문을 적어놓기도 했었다.
아마, 이제 이런 소설은 그만 보자, 마지막으로 그런 그런 소설을 접었던 거의 그 즈음, 아마 마지막으로 사서 본 게 은희경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10년도 더 된 기억이다
물론 그 후에 소설을 전혀 안 읽은 건 아니다. 일본 문학의, 문제적 젊은 작가에게 준다는 상을 받은 소설을 읽었는데, 진짜 재밌는 것들이 좀 있었다.
소설가 김사과의 책들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문학적으로 척박한 나에게는 너무 소화가 어려웠고. 인간 김사과에는 그래서 늘 송구함이 있다. 나는 그렇게 문학적 소양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니까.
어쨌든 지금에 와서, 나는 은희경의 소설을 꼼꼼이 챙겨 읽는 그런 성실한 독자는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의 소설을 읽을 수밖에 없던 그 시절의 삶, 그걸 더 혐오하는 편이고, 은희경은 마침 그 시절에 내가 읽었던 소설의 작가라는 이유로, 내가 지워버리고 싶던 그 우울증 시대의 한 요소처럼 나의 기억에는 남아있다.
공지영의 책은, <도가니> 이후로 진짜 읽기가 편해졌다. <도가니>는 불편한 얘기이고, 이중, 삼중으로 깝깝한 스토리가 얽개로 얽혀있다. 차라리 고대의 이 황당한 사건을 처리하는 고대의 얘기는, 그래도 스토리가 심플하다. ‘무진’이라는 상징으로 대변되는, 보나마나 광주일 것이 당연한 듯이 느껴지는 그의 얘기는, 진짜 사람 심난하게 만든다.
매번 사람들이 최근 소설을 읽고, 뭐라도 얘기를 해달라고 해서, 억지로 읽으려고 하다가, 진짜 미안한 얘기지만 토 나올 것 같아서 그냥 덮었다. 이건 순전히 개인 취향이다. 작가의 생각까지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내가 읽기에는 아무 것도 사회적인 것은 하지 않고, 자기는 그냥 돈만 벌겠다… 그렇게 느껴지는 소설들이 있었다. 뭐, 그냥 참고 읽어도 되는데, 나도 마음이 강퍅해져서 그런지, 왠지 토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박범신에 대한 복잡미묘한 심경과 비슷할 것 같다.
명박이 시장 시절, 서울문화재단이라는 아주 이상야릇한 걸 만들었다. 그리고 그 운영을 맡긴 게 유인촌이다. 명박은 대통령되고, 유인촌은 장관되고, 그럼 서울문화재단은 누가? 아, 그게 박범신이다. 그 정도면 심정 복잡미묘하지 않겠는가?
이제 몇 달 되었나? 아내랑 병원 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너무 힘이 들어서 그냥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동네 식당에 갔다. 옆 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느무느무 시끄러워서, 누가 이렇게 시끄럽나, 홀깃 쳐다봤더니 아 박범신… 이런 순전히 식당 옆 자리에 앉은 이유로, 너무 내적인 대화를 고스란히 들어버렸을 때의 그 난감한 심정…
은희경의 산문집은, 인터넷에 연재된 소설의 과정에 생성되는 감정의 부산물들을 가감 없이 풀어놓은 글들을 모아놓고 있다.
그냥 보면 정말 산만하도록 산만하고, 도대체 뭔 소리를 하고자픈거냐, 그런 말 딱 나오기 좋은 책이다.
그러나 이게 은희경의 삶의 얘기야,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순식간에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고, 또 다른 에피소도로 넘어가면서, 아마 한 두 시간은 정신 없이, 아직도 소녀이고픈 듯한 어느 아줌마의 삶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게 된다. 아, 이 아줌마가 연재 중에, 요런 고민과 요런 감성의 변화와, 요런 귀여운 데가 있었구만, 그런 진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상황 속에 한 번쯤은 푹 빠져들게 된다.
이 아줌마가 킬힐을 사서 뭐하고 싶대나, 그러나 사고 싶어서 샀지만, 과연 살아서 오늘 집에 갈 수 있을까, 문인들이 가는 선술집의 좁다란 계단길을 올라가면서 했던 은희경의 독백에, 나는 문득… 이것이 살아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포맷도 재수없고, 내용도 재수없다. 그러나 한 번 뒤틀어서 생각하면, 포맷도 전위적이고, 내용도 전위적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은희경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은, 때때로 폭소를 지지 않을 수 없고, 다음에 만나면 누님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는, 도저히 나이 먹지 않는 것 같은 젊은 시절의 선배를 만나는 느낌.
글이라는 게, 작전과 전략을 가지고 철투철미하게 계산된 게 있는 반면에, 은희경의 첫 번째 산문집처럼, 극한적일 정도로 풀어헤치고 나가는 글도 있는 것이다.
지난 지방 선거를 두고, 은희경이 경기도민으로 짧게 쓰고 나간 글이 있다. 투표하자는 얘기인데, 과연 그는 누구에게 투표했을까, 그런 무감한 듯하지만 지난 1~2년 동안 우리를 뒤흔들었던 사건들로부터 그의 삶이 무관하지는 않았다. 노골적으로 표현할까, 그러지 말까, 그런 차이 정도라고 할까?
어쨌든 곽노현 사태를 맞아, 이 편이냐, 저 편이냐, 그걸 선택하는 길 외에는 없어 보이는 이 척박한 시점에…
소설가 은희경의 우연히 나온듯한 산문집의 아줌마가 되기를 거부하는 어느 아줌마의 산문집, 제대로 우리를 무장해제 시킨다. 읽다 보면, 자신이 어떤 마음에서 처음 이 책을 잡았는지, 마지막 페이지를 내려놓을 때쯤이면 잊어버리게 될 것 같다. 그게 연재의 힘일까?
아줌마의 수다, 그건 진짜 이게 원단이다. 산만하고 재수없고, 정신 없고, 그러나 그 역시 삶의 한 가운데 있는 글, 그리하여 다음에 만나면 ‘누님’이라고 불려드려야만 할 것 같은 어느 아줌마의 삶의 짧은 노정.
재밌다. 일찍이 이런 책은 한국에 없었다. 역시 은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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