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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지나가는 날
세상에는 큰 일이라고 생각되는 게 있고, 작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게 있다. 돈의 크기나 권력의 크기 같은 것으로 재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집안 일, 바깥 일, 이렇게 구분을 하고 남자의 일, 여자의 일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 생명 앞에 서면 더 큰 일, 더 작은 일이 과연 있겠나, 그런 생각이 들 때도 많다.
태풍이 지나가는 날, 결국 오후에 우산을 쓰고 나가서 마당 고양이들 밥을 주고 왔다. 어제 밤에 주었으니까 하루쯤은 그냥 넘어가도 별 일 없을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또 생각이 나면 그냥 모른 척하기가 그렇다.
아기 고양이들이 비 맞으면서도 쪼르르 뛰어온다. 개집 안에 어젯밤에 넣어준 사료는, 옴팡 많이 넣은 것 같은데, 벌써 비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가, 그런 생각이 한 번도 안 드는 건 아니다. 큰 의미 같은 건 별로 부여하고 싶지만, 그래도 뭔가를 돌볼 수 있고, 내 주변의 것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은, 그런 작은 마음 같은 거다.
며칠만에 집에 온 아내한테 화초에 물 안줬다고, 또 옴팡 혼났다. 그냥 살아간다는 게 이렇게 수많은 것들이 엉켜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간만에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야옹구는 밖에 태풍이 오는지, 뭐가 오는지 그냥 신나기만 하다.
이 근심걱정 없는 해맑은 표정을 보라.
왜 나는 이렇게 웃을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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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새로운 시대
폭염이 사그러들고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엄마 고양이를 보기가 쉽지가 않아졌다. 봄에서 여름 내내 뒷뜰이나 마당 한 가운데 늘 버티고 있던 엄마 고양이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가슴이 놀라게 된다.
마당 고양이들은 이제 아기들과 바보 삼촌만 주로 있다. 밥을 주면서 엄마 고양이가 없는 걸 보면, 마음이 허하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가 또 오게 되는가 혹은 떠날 때가 되었는가,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아기들 밥 주고 뒤로 물러나서 우연히 담벽을 보니, 엄마 고양이가 담벼락에 앉아 있는 걸 보게 되었다. 가끔 엄마 고양이를 보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게 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로 이 순간, 빛이 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는 새로운 아기를 가진 걸로 알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벌써 분가를 했을텐데, 이 가족도 요즘 속으로는 고민이 많을 거다.
오늘 오후에 비가 내렸다. 잠시 일보러 마당으로 나오는데, 엄마 고양이가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부리나케 뛰어가서 캔 하나 들고 와서 현관 앞에 놓아주었다. 정말로 맛있게 먹었다.
옆에서 보던 아기 고양이 생협이 엄마 먹는 캔에 입을 들이밀었다가,
그야말로 제대로 정통 펀치가 들었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젖 먹이면서 정말로 끔찍하게 키우던 자식이기는 했는데, 강펀치가.
순간, 삶이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게 그냥 동물이라서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렵다. 바보 삼촌한테도 늘 먹는 걸 양보하고, 아기들에게는 당연히 양보하던 엄마 고양이였는데, 지금은 자기도 새로운 새끼를 가지고 있어서 그럴 형편이 아니라는.
살면서 요즘처럼 뉴스를 안 본 적이 있나 싶게, 뉴스도 거의 안 보고, 인터넷도 거의 안 하고, 그냥 조용히 지낸다. 원래 생각했던 2012년의 계획과는 많이 다르게 가는 거지만, 이것도 그냥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어쩌면 이렇게 뉴스 볼 때마다 신경 날카롭게 세우지 않아도 되는 삶, 그런 삶을 나는 오랫동안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일상에 아무 일도 안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 몇 마리의 소소한 세상 그것도 하나의 거대한 우주와 같다. 그 속에도 긴장과 갈등이 있고, 평화가 있다. 세상에 큰 게 있고, 작은 게 있고, 중요한 게 있고 덜 중요한 게 있을까 싶다. 생명 앞에 서면 뭐가 더 중요하고, 더 시급하고, 그런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큰 일처럼 보이는 것도 복잡하지만, 작은 것으로 치부하는 일들도 복잡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야말로 프랙탈 구조와 같은 것인지 혹은 작을수록 더 복잡한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고양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통해서, 내 안에도 20대부터 뿌리깊게, 차곡차곡 채워져 있던 증오들이 빠져나올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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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 만들기
김영현이라는 양반이 계시다. 아마 나한테 영향을 많이 준 사람 중에 몇 손가락에 꼽힐 것 같다. 대학교 입학식도 안 했을 때, 당연히 나는 학교에서 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같은 건 안 갔고, 그냥 학생회 가서 놀았다. 일부러 그렇게 할려고 마음을 먹은 건 아니었는데, 너무너무 재밌어서 막걸리 마시면서 밤을 새웠다. 그 날 있었던 나머지 사람들은 잘 기억이 안 나고, 누님 두 분과 형님 한 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난다. 그 때의 그 형님이 민주노총에 오랫동안 계시던, 지금도 가끔 소주 한 잔이나 하시는 분이다. 나머지 한 양반은, 참 이것저것 그 후에도 많은 인연을 가지고 살았는데, 지금은 아마 김문수 쪽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누님 한 분이, 바로 김영현이었다. 그 날이 내가 공식적으로 운동권의 삶을 살게 된 첫 날의 경험이었다. 그 후에는 물론 그 전에도 밤새워 술 마신 적이 여러 번 있지만, 정말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어린 시절에 알았고 나중에 글로 유명해진 사람들이 공교롭게도 내 주변에는 좀 있다. 그렇지만 영향으로는 그 양반 영향을 내가 제일 많이 받은 것 같다. 우선은 내가 좋아했고. 누님들 중에서도 특히 편하게 생각하고, 마음에 오래 남았던 분이다.
대장금에서 선덕여왕 그리고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은 드라마의 작가가 김영현이기도 했다. 요즘도 그런 책 읽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경제학과에서는 성경책처럼 다 읽던 ‘한국 경제의 전개과정’ 같은 책들을 그 양반과 같이 읽었다. 사람한테 찐한 게 어린 시절의 기억이니, 어쩌면 평생 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많은 기억들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살아가지만, 그렇게 묻히지 않는 것들 것 있다.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은 다음에, 더 이상 숫자들이나 정부 보고서를 읽지는 않게 되었다. 원래 재미없는데 억지로 참고 읽은 것이다. 그 대신에 얘기 만들기를 다시 해보는 중이다. 물론 나는 원래 얘기 만들기를 좋아한다. 갖다 붙이는 걸 좋아하고, 음모론 만들기는 원래 딱 내가 좋아하던 일이다.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그만두고 제일 처음 잡은 것은 <듄>이었다. 이제는 <듄>의 세계에서 좀 나오지 않았나 싶었는데, 역시 나는 <듄>에 속한 사람이다. <듄>을 처음 읽은 것은 박사 과정 초입이었던 것 같은데, 하여간 정말 재밌게 읽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듄>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반가운지. <듄>의 세계에서 나오는 법은 없다더니, 정말로 그렇다.
영화는 두 번이 나왔는데, 좀 많이 아쉽다. 데이빗 린치의 영화는 아주 좋아하는데, 뭐… 별로였다.
얘기를 하는 건, 경제학이나 사회과학이나 영화나, 기본적으로는 다 마찬가지이다. 공식으로만 차 있는 듯한 논문도 사실은 얘기이다. 얘기를 재밌게 하는 사람이 있고 재미없게 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쨌든 다 얘기는 얘기이다.
그러나 얘기 만들기는 좀 다르다. 듣기 싫어하는 얘기를 편하게 하는 것과 없는 얘기를 그럴 듯하게 하는 것, 이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좀 있다. 사실이나 진실과는 또 좀 다른, 얘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속성이 있다. <듄> 같은 게 대표적이다. 보는 눈에 따라서는 아주 재미없을 수도 있고, 그 지독한 서양 중심적 사고가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얘기 자체가 워낙 재밌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준다. 그래서 듄에서 나온 것들이 참 많다.
많은 사람들이 알만한 <듄>의 한 장면이라면, 열폭탄이 터져서 장님이 된 폴이 비전을 통해서 앞을 보는 장면. 이 장면은 <매트릭스> 3편의 마지막에서, 네오가 눈을 다쳐도 앞을 보는 장면으로 다시 사용된 적이 있다.
<듄>을 보고 나서, 나는 듄 같은 얘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뭐, 그렇다고 정말로 강렬해서 모든 걸 그만두고 꼭 그걸 해야겠다는 건 아니었고,
요즘 놀면서 <듄>을 다시 챙겨보다 보니, 그 시절 생각이 다시 났다. 불어로는 멜랑쥬라고 되어있는데, 영어로는 스파이스라고 부른다. 그런 물질의 세계, 멘타트, 프레멘, 어보미네이션, 그런 한동안 잊고 있던 듄의 용어들이 다시.
물론 지금 당장 듄 같은 얘기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고. 어쨌든 그런 얘기 만들기의 재미로 살던 어린 시절이 다시 생각났다.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동화책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음울하고 음침하지 않은, 그러나 약간은 깊은 속내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얘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몇 년 전부터 들었다. 세상이 좋아질 수 있다는 꿈을 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결국은 아이들과 얘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가 조금씩 커가면서 볼 수 있는 책을 써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잠시 쉬면서, 앞에 써놓은 얘기들을 영현 누님에게 보내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잠시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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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 초고 끝내다
아이가 태어나는 날, 새벽까지 붙잡고 있던 원고가 시민의 경제였다. 뒷부분을 마무리하지 못해서 고생고생 했었는데, 오늘에야 마무리를 지었다.
책을 쓰다 보면, 논리만 가지고 쓰기는 어렵고, 감정을 사용하게 된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감정의 존재 아닌가? 내 경우는 감정을 잘 타는 편은 아니다. 그게 생각대로 감정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 늘상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그렇게 감정을 만들어낼 수도 없고.
이게 좀 웃기는 얘기이기는 한데, 가끔 나는 글을 쓰다가 운다. 칼럼 쓸 때 울었던 것은, 한겨레에 ‘헌법의 눈물’이라는 거 쓸 때 가장 많이 울었고. 책 쓰다가도 가끔 운다. 뭐, 매번 우는 것은 아니고. 팔리는 것과 내가 우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관계도 없다.
‘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라는 제목은 비교적 작업 초기에 정했던 제목 중의 하나였는데, 마지막 순간에 이 제목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제목이 이렇게 된 사연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파티 초대장’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괜히 눈물이 나서 엄청 울었다.
그냥 좀 운 게 아니라 정말 꺼이꺼이 울었다. 그렇게 소리내면서 운 건 정말 오랜만인 듯 싶다. 시민들이 파티에서 스스로 빛나는 별 같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그렇게 울만한 얘기도 아닌데, 어쨌든 나는 엄청 울었다.
그냥 울고 싶었나 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난 몇 달 동안 너무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힘들 때 누구한테 힘들다고 말하기도 힘든 게 요즘의 내 사정이다. 고양이 붙잡고 힘들다고 말할 순 없쟎아.
1부, 2부로 나누어서 1부는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것, 2부는 총선 끝나고 나서 새로 내 생각 정리한 것, 그렇게 했는데, 새로 쓴 원고는 A4로 50장 약간 넘는다.
글쎄… 책을 쓸 때 그 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시기상 안 맞기도 하고, 전체 구조상 뒤로 미루어야 하기도 하고, 그래서 모든 얘기를 다 했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는 별로 없다. 연작물을 할 때에는 요런 애로사항이 좀 있다.
이번에는,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한 것 같다. 분량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결론이 무엇이었느냐, 그 얘기를 끝까지 가느냐 마느냐, 그런 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얘기는 다 털어놓았고, 내가 더 알고 있는 얘기는 이제 없다 싶었다. 처음 출판사랑 얘기를 시작한지 4년만에 나오는 거고, 중간에 경향신문 연재도 1년이나 했고, 그리고도 또 최근의 내 심경에 관한 얘기까지 다 털어놓았으니, 이제 더 할 얘기도 없다.
책 마지막 열 줄 남겨놓고 그야말로 대성통곡이 터져나오는데, 정말 신나게 울었다. 고양이가 뭔 일이래, 그렇게 지켜보고 있고.
이 책에서는 쓰거나 읽으면서 울 대목이 있을 게 없고, 그런 마음으로 쓴 것도 아니었는데, 마지막 한 대목 쓰면서 눈물이 펑펑나서. 진짜 뭔 일인가 싶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울었던 대목을 부제로 옮겨놓았다.
증오로 시작해서 증오로 책을 끝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눈물을 질질 짜면서 마무리하게 되었다. 기쁨이나 경쾌함, 그런 마음을 내심 기대했던 건데, 그냥 서럽다… 요렇게 된 꼴이다.
연초에 시나리오로 시작했던 작업이 결국 소설로 넘어가게 되어서 소설 작업 진행하는 게 하나 있다. 처음 생각은 조금만 손을 볼 생각이었는데, 결국 클라이맥스 한 장면만 남기고, 주인공들 마저도 다 바뀌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난 그냥 오락 소설로 간다… 내 주제에 경제 소설은 무슨…
하여간 그렇게 바뀐 얘기를 가지고 앞부분을 좀 썼는데, 그래서 계약까지는 하기로 했고. 그냥 김영사에서 내기로 했다.
기획은 요것도 엄청 멋지다. 관료들 문제를 순서대로 모피아, 교육 마피아, 토건족, 이렇게 다루어볼 생각인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렵다.
꿈은 ‘듄’ 같은 얘기를 만들어보는 건데, 그야말로 내 주제에 무슨.
지금 작업은 돈을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 그런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돈을 어떻게 보여주지? 그런 고민이 스토리 전개보다 더 큰 고민이다.
연초에 처음 작업 시작할 때에는 소설까지 염두에 둔 건 아니고, 시나리오 트리트먼트 수준 정도는 해본다는 그런 소박한 출발이었다. 근데 이게 일이 커지면서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얘기가 먼저 나오고, 오매 나는 책임 못지겠네. 고런 황당무게 에피소드의 연속이었다.
여름이 되면서 좀 차분하게 앉아서 얘기를 재구성하고, 떼어낼 건 떼어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게 항공모함이 두 척이 뜨고, 뭐 그런 얘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늘 항공모함을 띄우는 그런 판타지를 가지고 있기는 했다.
돈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런 얘기를 정말로 좀 형상화해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있었다.
하여간 실컷 울고 났더니,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그것도 까먹었다. 마흔 넘어서는 오늘 제일 크게 운 것 같다.
해야 되서 하는 일이 있고,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사회과학 책에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 물론 쓰고 싶었던 주제들이기는 하지만, 이게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거냐고 하면, 그걸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소설도 정말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의무감도 조금은 있다.
소설 마지막 습작 했던 게, 96년으로 기억난다. 처음 강사 시절, 그러니까 YS 시절이었는데, 그 때는 재밌어서 소설을 썼었다. 정말 재밌어서 하는 건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취직을 하게 되니까 내가 쓰던 얘기들은 갑자기 까먹어버렸다. 뭐, 자신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거라는 걸 그 때 알았다.
지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동화책을 쓰는 거다. 이건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거.
정말로 아이들이 읽어서 재미도 있고 도움도 될만한 그런 동화책을 쓰고 싶다.
어린이용 경제책, 경제동화, 경제만화 심지어는 아동용 경제 다큐까지, 제안이 엄청나게 많이 오기는 했는데… 미쳤나, 내가 어린이용 경제 책을 쓰게.
어린이들이 경제에 대해서 알 필요가 뭐가 있나, 그게 내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 시기에 경제를 채워 넣으면 커서 악인이 되거나, 지독할 정도로 메마른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돈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알면 좋을 것이라는 건 부모의 욕심이고, 자기 투영과 같은 것이다. 그 마음은 알겠지만, 정말로 자녀를 위해서라면 돈이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한 꿈이나 즐거움을 채우는 것이 나을 것이다.
돈 밖에 모르는 인간이 성공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명박 보면서 충분히 느끼지 않았나?
어쨌든 이런 저런 생각들이 모여서 동화책을 써보고 싶다는 동기가 되었다.
영화는… 아직 잘 모르겠다.
워낙 실험해볼 여지가 적은 분야라서, 내가 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정말로 기획자로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경제학자로서의 삶이나 생각이 한 번에 털어지는 게 아니라서, 결국은 이렇게 조금씩 털어내는 중이고, 빈 공간에 그 전에 해보지 않던 일들이 들어와서 차는 중이다.
사실 난 살면서 뭐가 되고 싶다거나 뭐가 하고 싶다는 그런 강렬한 종류의 욕망은 가져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도 그랬는데, 커서도 별로 그런 게 생겨나지는 않았다.
한참 기후변화협약 협상 다닐 때에는 서브스타 의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있었다. 평생을 쫓아다니면 결국 나이 먹어서 한 번쯤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리이기는 했다. EGTT 멤버가 되면서, 사무국에서는 정말로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더 높은 자리에는 더 많은 대가가 따르는 법.
만약 그 자리 유지한다고 계속 버티고 있고, 그냥 눌러앉자, 이렇게 했다면 나라고 별 수 있겠나, 이명박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뭐라도 바둥거리면서 했었겠지.
이명박 외국 순방길에 모 박사께서 옆에 서 있는 걸 보고, 아, 그냥 있었으면 내가 저 자리에 서 있겠겠구나, 그런 생각에 식은 땀이 잠시 흐른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깨끗하게 잘 털고 나왔다는 생각이 강하다.
사람의 행동을 구성하는 것은, 욕망만은 아니다. 자기한테 그 행위가 설명이 되어야 하는데, 그 설명이 잘 안되면 이제 욕망과 보람이 그 안에서 충돌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충돌은, 결국은 암이 된다. 장수무강에 지장 있다.
나는 얘기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
경제학이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강했고, 그 의무감이 무게가 점점 더 버티기가 싫어졌다. 의무감으로 평생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의무감을 명박에 대한 증오로 대체하면서 지난 몇 년간 살아온 것 같다. 짧은 시간 동안 증오를 극대화하면서 살 수는 있지만, 평생 증오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 마지막 증오가 빠져나가는 순간이, 시민의 경제 탈고하면서 터졌던 것 같다. 증오가 큰 에너지일 것 같지만, 그 상태를 버티는 게 제 정신은 아니다.
앞으로의 일은 나도 모른다. 어쨌든 내가 생각했던 즐거운 미래에 대한 얘기는 이 책에 탈탈 털어 넣었다. 정말 서럽게 울었다.
왜 눈물이 났는지, 왜 그렇게 서러웠던 건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예기치 않게, 나도 신나게 울었다.
가끔 이런 순간을 좀 멋있게 표현하면 매듭을 짓는 순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뭘 하고 싶은지, 뭘 그만두고 뭘 더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을 해보는 순간이 가끔은 온다. 마음 먹고 생각하자고 그렇게 생각이 나는 건 아니고.
증오 위에 세울 수 있는 성은 없다…
정말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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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지나가는 날
1.
태풍이 지나가는 날, 온 국민은 잠시 하나가 된다. 이 거대한 바람 앞에서, 인간은 잠시지만 대체적으로 평등해진다.
그리고 높은 건물에 살든, 낮은 건물에 살든, 대체적으로 약간씩 거대한 바람이 주는 공포 앞에 서게 된다.
지진도 가난을 차별한다는 연구들은 이제 유명해졌고, 사실 데이터 작업을 해보면 태풍도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남미에 지진이 생기면, 더 가난한 사람들의 집들이 무너지고, 빈민가가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
오래된 주택의 창문은 문을 열면, 창틀째로 날아갈 듯이 흔들린다. 창문을 못 열고 있다. 덥다고 불평할까 하다가도 더운 게 문제가 아닌 사람이 많을 듯하여.
한국이 과장되었든, 아니든, 태풍의 영향권을 통과하는 동안에도 야옹구는 아무 생각 없이 디비지게 잠만 자고 있다. 참 얼마나 평온한 존재인가.
(얘는 가끔 잘 때 보면 얼굴이 웃는 얼굴이다.)
2.
민주당 경선이 지나가는 중이다.
누굴 찍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머리 수라도 하나 보태줄까 싶어서 선거인단에 신청을 했는데, 그냥 투표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투표는 꼬박꼬박 한 편이고, 피곤하게 신청한 다음에 안 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 경선에는 그냥 투표하지 말까 한다.
식자우환이라고 했나? 그래, 환이 많다.
나중에 통합후보 결정되면, 대선 때에 투표는 할 생각이다. 뭐, 싫든 좋든, 그 때는 찍을 거지만, 찍는다고 꼭 지지하는 것도 아니쟎아?
자기 편 지지 안할 거면 닥치고 투표나 하라는 얘기에 꼬박꼬박 대꾸하기도 피곤한 일이고, 왜 너는 얘 안 좋아해, 왜 너는 얘 지지 안해,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좋으면 니가 충분히 좋아해주면 되쟎아.
마음이 안 가는데, 어떻게 해.
논리적으로도 이해 못하겠고, 감성도 안 가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쪽에 줄을 댄다. 기절초풍, 많은 사람들이 줄을 댄다.
사실 이 와중에 줄을 댔다고 해서, 마치 친일파를 우리가 한 번도 정리한 적이 없는 역사를 가진 것처럼, 어용교수들을 정리한 적이 없는 이 나라에서 손해볼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 너도나도 앞 다투어서 줄 대는.
태풍 지나가는 한 가운데, 고양이들 개집 안으로 먹을 거 밀어넣어 주고, 그래도 좀 잘 버텨보라고 육포도 꺼내놓아주면서, 이 얼마나 한가하고 평온한 태풍 보내기인가, 잠시 생각을 했다.
이 또한, 결국은 모두 지나가리라.
(이 태풍 와중에 NHK 인터뷰 시간이 정확하게 서울에 태풍이 통과한다는 3시에 잡혔다. 9월 8일 방송이래나, 더는 미루기가 어려워서 꾸역꾸역 영화사에 기어나갔다. 카메라 끈 붙잡고 놀아달라는 녀석을 보면서 나도 대략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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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만 의미 있는 사진
며칠 동안 엄마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가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마당에 그냥 사는 것 같지만, 녀석들이 집을 떠나야 할 이유나 사고가 날 가능성은 많다. 집에 사는 고양이들이 요즘은 10년 넘게 살지만, 길고양이들의 수명은 보통 2.5년에서 3년 정도 된다. 두 번의 겨울을 넘기면, 나름 길게 산 것이고, 세 번의 겨울을 넘기기는 쉽지가 않다는 게 통계다.
고양이들이 사라질 때에는 사람들이 구질구질하게 헤어짐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달리,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올 봄에 아빠 고양이가 한참 멋진 폼을 가지고 있었는데, 녀석이 그렇게 어느 날 떠났다. 많은 고양이들이 그렇게 마음에 묻히고 떠나간다. 그게 싫으면 아예 돌보지 않으면 되지만, 그래도 기왕의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주고, 또 그렇게 서로 관계를 가지게 된다.
엄마 고양이는 아기 낳은지 얼마 되지 않지만, 벌써 또 새끼를 가지고 있다. 고양이들이 너무 많으면, 엄마들이 자기가 살던 데를 아기들에게 두고 떠나기도 한다. 새끼도 낳기 전에 떠나는 것은 아직 못봤지만, 어쨌든 좁은 지역에 너무 많은 고양이가 있으면 종종 떠난다. 그러지 말라고 밥을 많이 주기는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고.
하여간 며칠 엄마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 동안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엄마 없이 바보 삼촌과 두 아기들만 밥을 먹는 게 며칠 째 되면서, 엄마 없는 삶에 대한 생각을 생각해보고. 길에서의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만나고, 또 그렇게 헤어지는 것과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영화사에 갔다가 집에 들어오는데, 역시 엄마 고양이가 없었다. 뒷뜰과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오늘도 없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당에 길게 난 잡초들을 자르는 일을 한참을 했다. 올 여름까지는 그래도 이렇게 덤불이 되도록 방치하지는 않았는데, 아기가 태어나고 정신 없는 한참이 지나가면서, 풀까지 뽑아줄 여유는 없었다. 마침 검둥이가 나무 밑에 있어서 빗자루로 한 번 쫓아내고… 녀석, 내가 쫓아내도 전혀 겁 먹지는 않는다. 두 팔이 다 떨릴 때까지 한참 풀을 자르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담벼락 밑에 엄마 고양이가 편하게 쉬고 있었다. 몇 번이고 다시 보는데, 엄마 고양이 맞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가슴을 누르고 있던 게 다 내려가는 듯 싶었다.
그 순간에 찍은 게 이 사진이다. 보통 쓰는 캐스퍼 보다는 한급 떨어지는 슈퍼줌을 가지고 있었는데, 슈퍼줌 200미리로.
무심한 듯 바라보는 엄마 고양이에게 애틋함을 느끼는 것은 나밖에 없는데, 사실 그런 내 감정은 잘 표현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겠고,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사진이 되어버렸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애틋함들이 생긴다. 그게 반드시 사람에게만 느껴지는 감정은 아니다. 그런 감정을 가슴에 많이 담으면 더 행복해질까? 애틋함, 간절함 같은 것들이 인간적인 감정이고,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그게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들이 통제 가능한 영역에 있을 때에만 편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너무 삭막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통제 가능한 상황에 놓는다고 하더라도, 컴의 하드디스크 같은 게 한번에 날라가거나, 그렇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발생하고야 만다.
익숙한 것들과 때때로 이별하고, 원치 않는 일들이 매 순간 생겨나는 것, 그게 삶이다.
삶은 배반과 통제불가능 그리고 가끔 만나게 되는 안도 그런 것들로 채워지는 것 아닌가?
그 속에서 무언가 기다리고 조그맣게라도 뭔가가 만들어보는 게 재밌지, 거대한 성을 세워놓고 그 안에서 군림하고 있을 때에만 평온을 느끼는 것, 그런 건 좀 아닌 듯 싶다. 손에나 가득 쥔 것, 그런 건 언젠가 결국 사라지게 된다.
나한테만 의미 있는 것, 그게 큰 돈이 들거나 크게 정성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는 말,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영 이상하다. 마음을 주는 것들이 커지는 것, 그게 삶을 풍성하게 해주고 감성 넘치게 해주는 것 같다. 물론 감성으로 찬다고 해서, 매 순간 웃음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애절함이 그 한 가운데를 흐르고 있다.
(내가 지네 엄마를 못 찾아서 애타고 있는 사이, 바보 삼촌은 태연덕스럽게 아기들 데리고 밥 먹거나, 이렇게 풀 뜯어먹고 있다. 하긴, 지 입장에서는 엄마 멀쩡이 잘 있는데, 내가 왜 애태우고 있는지, 의아하기도 하겠다. 녀석의 천진하면서도 너털스러운 삶은, 나도 참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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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의미는 없는 사진이다. 태풍 몰려오기 전, 구름이 너무 예뻐서.)
뒷방 늙은이의 사랑방
우리 시대의 싸움은 우리 시대에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라는 게 뭐, 언제 그렇게 생각한 대로 움직이겠나... 그저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알리바이만 남기는 것.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일 뿐이기는 하다.
어쨌든 질 수 없는 짐은 이제 좀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별 의미 없는 비판이나 욕질은 그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연인으로 돌아오면, 내가 누군가에게 뭐라고 할 일이 뭐가 있겠나. 어차피 알던 사람들도 아니고, 또 볼 사람들도 아닌데.
뭐 별로 정리할 게 거창하게 남아있는 것도 없지만, 어쨌든 요즘은 내가 내려놓을 수 있는 것들 것 계속해서 내려놓는 중이다. 나꼽살 방송이 좀 더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기본 기획과 아이템 선정 같은 것들은 대부분 선대인 소장에게 넘겼다. 계약되어 있는 남은 책들이 조금 있지만, 그거야 뒷전으로 물러나서 조용히 원고 작업하고, 조용히 출간하면 되는 거고.
수업 정리는 작년에 이미 했고, 경제학과나 사회학과에서 새로 더 수업을 개설하거나 그럴 계획은 없다. 그냥 해보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학교에 가는 것에 대한 얘기가 주변에 있기는 하다. 내가 내 스스로가 좋은 선생이 될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냥 되었다고 아뢰오…
작년 말부터 준비를 좀 해서, 이제 영화기획자로 주로 보내는 시간이 많이 바뀌었고, 첫 번째로 영화기획자로 참여하는 영화가 투자단계는 넘어가서 캐스팅 단계로 가 있다. 물론 엄청나게 내 영향이 많이 들어간 영화는 아니지만, 아직은 내가 손 볼 구석이 좀 있는 것 같다.
뭐, 이렇게 하면서 대단히 큰 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 그냥 하고 싶은 책이나 읽고, 보고 싶은 영화나 보면서, 큰 돈 쓰지 않고 이럭저럭 살아가려고 한다.
남은 게 블로그 같은 그냥 수다나 떨던 공간을 어떻게 할 거냐, 뭐 그런 건데.
원래도 별 의미는 없던 건데, 그냥 뒷방 늙은이의 사랑방 같은 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좀 했다.
그래서 엄청난 얘기들을 할 생각은 없고, 소소한 얘기들이나 살다보면 느껴지는 작은 얘기들, 그런 걸 사람들과 나누고, 그냥 수다들이나 좀 떨 수 있는.
우리 사회가, 긴장도가 너무 높다. 그래서 어떤 공간이든 열리면 금방 날 선 공방장이 되어버린다. 때때로 그런 일들도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사람이 어떻게 늘 그렇게 날이 선 상태로 살 수가 있나…
너무 그렇게 들이대기만 하면, 결국에는 자신이 무너지게 된다.
사람은 그렇게 강한 존재가 아니고, 또 생각보다 다면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한동안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해봤는데, 엄청나게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또 별 다른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뒷방 늙은이의 사랑방 같은 걸로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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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구는 노동의 신성함을 좀 배워야 한다
개는 집 지키는 일을 하고, 고양이는 쥐 잡는 일을 한다. 예전부터 군영에서 주로 길렀고, 페르시아 인근에 있던 고양이들이 근대에 대항해가 시작되면서 항구를 중심으로 급격히 퍼져나간 걸로 알고 있다.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식량을 쥐들이 다 먹어버리면 곤란할테니.
우리 집에 야옹구가 오게 된 계기도 쥐 때문이다. 동물이라면 질색하고, 게다가 고양이라면 도대체 왜 그런 걸 기르냐고 하던 아내가 고양이 없으면 안된다고 하던 첫 사건도 쥐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야옹구가 집에 온 다음에도 가끔 쥐가 출몰한다. 지난 겨울에는 북악산 산쥐로 판명된 녀석이 싱크대 밑에 자리를 잡고 계속해서 플라스틱 하수관을 쏠아대는 바람에 두 번이나 관을 갈고, 결국 세스코가 출동해서 며칠만에 산쥐를 잡았다.
우와, 이렇게 큰 쥐가 있다니...
천정 사이로 지나가거나 싱크대 관 밑으로 지나가는 쥐를 고양이가 어쩌지는 못한다. 마당 바깥에도 고양이들이 득실득실거리고 있지만, 잠시라도 빈팀이 생기면 쥐들이 들어오는 걸 어쩌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이사온 첫 해에 비하면 쥐들이 출현 빈도가 확실히 줄어들기는 했다.
야옹구 쇼파에서 뒹굴뒹굴, 놀고 있는 걸 보면, 문득...
너도 노동의 신성함에 대해서 좀 배워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고양이는 16시간 정도는 자고, 깨어있는 시간 중에서 2시간 정도는 몸단장 하는데 쓴다고 들었다.
야옹구도 자고 있거나, 몸단장 하거나, 남아있는 빈 시간은 놀아달라고 매달린다. 마당에 있는 고양이들은 내가 밥을 주니까 그래도 좀 편하게 지내는 편이지만, 그 바깥에 있는 고양이들은 살아가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집에 올라오는 언덕 밑에 회색 암컷이 한 마리가 보였다. 녀석은 우리 집 마당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한 번은 마당 고양이들이 웅얼거리며 신경전을 펼치고 있어서 보니까 뒷마당 쪽에 그 회색 고양이가 밥 좀 먹자고 버티고 있었다.
그 녀석의 애인도, 우리 집 마당에 사는 검둥이다. 참 녀석, 생긴 건 별 시덥지 않은데, 올해만 벌써 녀석의 자식이 8마리이다. 우리 집 마당의 강북과 생협의 아버지도 그 녀석이다. 애기들 아빠라서 어지간하면 잘 해주려고 하는데, 바보 삼촌과 워낙 싸워서 요즘은 보는대로 쫓아내는 중이다. 그 회색 암컷 사이에서 또 4마리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걔들이 요즘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다. 뭐 먹고 사나, 가끔 걱정을 한다. 마당에 있는 녀석들 사료통에 요즘 살벌하게 많이 부어주고 가는데, 몇 시간 있다 와보면 정말로 다 먹고 비어있다. 배 고픈 회색 고양이의 아기들이 먹고 갔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노동의 신성함, 이런 얘기를 나는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보다는 폴 라파그, 맑스 사위였던 그의 '게으름의 권리'에 대해서 더 눈길이 많이 간다. 한국에서는 그런 통계를 별로 쓰지 않지만, 프랑스에서는 휴가 일자 같은 통계를 종종 쓴다.
지난 프랑스 대선 때, 좌파전선에서 내놓은 공약집에도 프랑스 노동자의 바캉스의 감소 같은 게 부의 양극화의 지표 같은 걸로 언급되어 있었다. 우리가 얘기하는 휴일과는 좀 개념이 다르다. 말 그래도, 몇 퍼센트의 노동자가 바캉스를 떠나느냐, 이걸 가지고 격차 사회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이건 분명히 한국이나 일본과는 좀 다른 문화적 전통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중산층이라고 얘기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벌까? 몇 번 계산해봤는데, 생활비로 꼭 필요한 돈들 제하고 정말로 가처분 소득만 가지고 계산해보면 3억에서 4억 정도가 나온다. 내가 기준으로 삼았던 게, 공기업 같은 데 부장에서 처장까지로 정년을 하는 걸 기준으로 했었으니까, 다른 업종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정년의 차이라는 게 있어서 결국은 3억에서 4억 정도의 돈을 버는 거라고 볼 수 있을 거다.
여기에 3억원 정도의 아파트 한 채 정도를 샀다는 걸 계산에 넣었는데, 아파트 환산 지수로 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공기업이나 대기업에서 죽어라고 평생 일하면 소형 아파트 한 채 그리고 그만큼의 현금, 그 정도를 손에 가지게 된다. 물론 그 중간에 룸살롱에 자기 돈으로 갔거나, 애인이 있었다면, 이것저것 다 빠지고 마이너스 인생이다. 골프도 자기 돈으로 쳤다면, 거기에서 돈이 빠지는 거다. 자기 돈으로 안했다면? 그 순간부터는 부패의 댓가이다.
쇼파에서 빈둥빈둥거리고 있는 야옹구를 보면서 문득 노동의 신성함에 대한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런 계산도 옛날식 계산이다. 그 삶도 그렇게 아름다워보이지 않는데, 그 자리에도 목숨 걸고 가야하는 게 또 청춘의 모습 아닌가.
예전에 사람의 소득, 사람의 삶, 이런 것들을 한참 재밌게 계산해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내가 한 결정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기로 한 것, 넥타이를 매지 않기로 한 것, 그런 소소한 것들이었다.
어지간한 사람이 평생 마실만한 포도주보다 더 많이 이미 20대에 마셨다. 보르도와 꼬뜨뒤론느를 주로 마셨는데, 정말로 왠만한 사람들이 평생 마실만한 보르도를 나는 20대에 이미 마셨다.
럭셔리 산업이 포도주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남자들을 위한 사치품이 꼬냑이다. 이렇게 준비한 길 대로 따라가다보면, 3억이라는 가처분 소득에서 줄줄줄 새어나가고 남는 게 없다.
남들도 다 하는데...
요 단어가 바로 사람들의 가처분 소득을 노리는 마케팅이 하는 얘기다.
남들도 다 하는 것은, 하루에 세 끼는 먹어야 한다는 사실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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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만에 집에서 좀 쉰다. 내일은 아내와 아기가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다.
정신 하나도 없다. 고생은 아내가 혼자 했는데, 나는 덩달아 그냥 밤 새운다고, 나도 체중이 줄었다. 이거야 원…
야옹구가 집에 온 다음에 가장 길게 내깔려둔 셈인데, 드디어 잔뜩 골이 났다.
급하게 밀린 글 좀 쓸려고 앉았는데, 드디어 방문을 박박 긁기 시작했다. 수 없다. 한참 놀아주는 수밖에.
원래는 카메라를 아주 싫어하는데, 오늘은 카메라 끈을 다 붙잡고 놀았다. 낮에 쓰던 16미리 끼워놓은 틈에, 그냥 그걸로. 16미리로 찍으려면 정말로 가까이 가야 하는데, 야옹구는 카메라를 엄청 싫어한다. 그래도 오늘은 놀려니, 그냥 참고 카메라 끈이나 붙잡고 논다.
생각해보면, 우린 모두 조금씩 애정결핍인지도 모른다. 말이 좋아 공동체지, 사실 공동체의 느낌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대부분 아니냐? 나도 맨날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혼자 있는 게 제일 편하고, 아무도 안 보고 싶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모습은 아주 잠깐만 보게 되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 눈에 띄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증오하는 모습이다. 증오만큼 단기적으로 신나는 일이 또 있겠는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증오만큼 허전한 것도 없다. 증오 위에 무엇인가를 세우기가 쉽지 않다.
우린 조금씩 애정결핍이고, 가끔은 자기 정체성에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과도한 동일시의 짜릿한 기분에 빠지기도 하고.
야옹구는 자신에게 애정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걸 실천한다. 내 나이쯤 되는 남자들은, 이제 자신이 애정결핍이라는 사실 자체도 잊어버렸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주변으로부터 그 존경과 힘을 인정받으려고 하지만, 이거 사실 서로 피곤한 일이다.
예전에 들은 얘기 중에, 구축함이 지나가면 상어들이 자기 크기를 대어보기 위해서 줄을 선다는 얘기가 기억이 난다. 아니 딱 보면 군함이 자기보다 크다는 걸 몰라, 그걸 꼭 대봐야 해? 그게 한국의 남자들이 아닌가 싶다. 메갈로매니아, 일종의 남근 크기에 의한 증후군이라 해야 할까.
그걸 내려놓으면, 이젠 또 자기가 발가벗은 것처럼 불편하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더 달달 볶게 된다.
놀자고 보채는 야옹구를 보면서, 그냥 솔직하게, 같이 놀자라고 얘기하지 못하는 내 주변 사람들 얼굴이 살짝 지나갔다. 뭐, 나라고 크게 다르겠나 싶고, 얼마나 내가 모범적으로 살았겠나, 그런 생각도 슬쩍 들고.
정말로 이상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런 사람은 십중팔구, 재미가 없고, 가슴을 끓게 하는 파토스가 없다. 사람이란 보통 그런 존재이다. 우리는 조금씩 부족하기 때문에, 좀 부족한 사람을 지지할 때 속이 편해진다.
명박의 진짜 힘이 그거 아니겠는가? 저런 인간도 대통령 하는데, 하물며 우리 같이 살짝 맛탱이 간 사람들의 작은 허물 정도야…
아주 환상적이고, 이상적이며 또한 기가 막히게 대중의 파토스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 치자. 그럼 되겠는가? 케네디가 그래서 죽은 거 아니겠나. 정말로 그런 기가 막힌 존재가 나타나면 총으로 빵.
그렇지 않았다면, 세계 각국의 나라들은 벌써 요순 시대가 되었을 거다. 우린 조금씩 흠결이 있고, 조금씩 모나거나, 살짝 뒤틀어져 있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애정결핍.
아, 가을 장마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폭우가 며칠 째 계속 내린다. 야옹구와 나 사이에는 애정결핍을 둘러싼 작은 신경전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놀아줄거야, 안 놀아줄거야, 오늘 담판을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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