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나올 예정인 화폐경제학 준비하면서, 요즘 금융 문제들을 간만에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아, 이게 진짜 나라인가, 동네 친구들끼리 전방 차지하고 뒷돈 빼돌리는 장면 생각나더군요.

금융 민주화와 '강한 원화', 요 두 개의 개념을 가지고, 화폐 경제학 얘기들 다시 정리하는 중인데, 보면 볼수록 도대체 이런 나라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다음 대선에서, 어떤 식으로든 정권은 교체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를 이꼬라지로 만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은행 가지고 장난치는 일들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금융이라는 곳이 아주 약간의 전문성을 가지고 엄폐된 골방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에서 글 좀 쓰고 말 좀 한다는 사람들이 주로 인문학적 배경을 가지신 분들이 많은데, 유독 금융 얘기를 어렵게 생각하시는 것 같더군요.

외환은행 사태, 우리은행 합병 등,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결정해도 괜찮은 것들을, 내년 4월이면 의석 과반수가 깨질 거라고, 지금 시급히 밀어붙이는 중입니다.

어차피 야당에서 의석수를 가진 건 민주당 밖에는 없는데, 김진표 원내대표가 실제로 그런 걸 견제할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손학규 대표가 금융 시스템에 변화가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닌 건지, 현재로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어쨌든 금융을 이대로 방치해서, 대통령 우리들의 대통령과 그 친구분들이 쌈지돈처럼 장난치고 있는 걸 그냥 두어서는, 우리의 미래도 없고, 복지 같은 건 꿈도 못 꾸어 봅니다.

3조원 가량이면 대학 등록금 문제를 상당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돈 없다고 정부에서 난리치지요.

저축은행 부실로 당장 국가와 예금주들이 추가로 부담하게 될 돈이, 십조원 단위를 훌쩍 넘어갑니다.

<인사이드 잡>은 다큐 형식이지만, 맷 데이먼이 나레이션을 할 정도로, 오락적 요소를 많이 집어넣은 영화입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그냥 PD 수첩이나 KBS 스페셜 혹은 MBC 스페셜 같은 데에서 90짜리 방송으로 만들어도 되는데, 왜 이걸 굳이 영화로 만들었을까?

아, 참, 미국은 우리 식의 공영방송이라는 게 없지.

그 생각을 하자마자, 이미 방송이 막혀버린 우리의 상황에서는, 결국 이런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다큐를 만드는 수밖에 없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은 헐리우드가 지킨다는 통상적인 말, 그냥 괜히 생긴 말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은 공영방송들이 모여있는 여의도가 지켰나? 과거에는 모르지만, 지금은 여의도가 한국 망치지, 한국을 지키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공중파가 이지랄 하는 동안, 한국의 모피아들은 더더욱 견제없이, 대통령 감싸안고 자기 맘대로 제 세상을 누리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인사이드 잡> 같은 다큐를 못 만드는가?

바로 우리가 시사 다큐들을 돈 내고 보는 데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충무로의 누군가, 저런 걸 한국 버전으로 만들어보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개봉하고, 같이 보게 할 다큐 시장이라는 게 아직 없습니다. 한국 다큐 시장의 상당 방송국 납품용으로 만들어집니다.

MBC 기준으로, 12%의 방송이 다큐이고, 이 중 외부 제작분은 40% 정도 됩니다.

그런 다큐 중에 한 개를 금융 문제와 같은, 우리가 잘 알기 어렵지만 꼭 해결해야 할 일들에 할애한다면, 여의도가 한국을 지키는 일이 가능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의 KBS 사장, MBC 사장, 그런 높으신 분들의 고매하신 문화적 소양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고품격 다큐는, 외국에서 가서 아름다운 자연을 찍는 것들 밖에는 없습니다.

구질구질하고 멋진 자연도 나오지 않지만, 진실이 담긴 다큐, 당분간 한국에서는 극장에서 개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사이드 잡>은, 꼭 미국이나 외국이 우리보다 다큐를 잘 만들거나, 잘 분석한다는 그런 의미로 볼 필요는 없는 영화입니다.

다만, 현재의 이명박 시대에, 우리는 그런 걸 만들 수도 없고, 틀 수도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지지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인사이드 잡>이 국내에서 개봉될 수 있게 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주 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틀기로 결정하는 과정, 작지만 숨막히는 과정들을 통해서 이명박 시대에 이게 겨우겨우 개봉관까지 오게 된 겁니다.

먼저 이 영화를 보신 분들께, 제가 정말이지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영화는 취향에 따라서, 재밌게 생각하신 분도 있을 것이고, 별 거 없다고 생각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한 분 한 분들의 그런 작은 정성이 모여서, 우리는 금융 민주화로 가는 첫 번째 단추를 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봉일날 영화 보신 분 10분께는, 제 책 중에서 가장 비싼 책인 '디버블링' 드리기로... 금요일 오후에 발송 예정입니다.)

거듭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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