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

낸책, 낼책 2019. 6. 5. 15:09

 

1년에 감자꽃을 볼 수 있는 날은 며칠 안 된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나는 감자꽃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올해는 수 년간 미루고 미루었던 농업경제학을 쓴다. 감자꽃 보는 마음이 예전보다 더 각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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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번째 책이 되기를 희망하는..

1.
책을 쓰고 나서 만난 사람들이 있고, 그 전에 알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책을 쓰게 된 데에는, 아내가 제일 영향이 컸고.. 그리고 이재영과 노회찬이다. 2003년 정도에 그 둘을 만났고, 2004년에 민주노동당 총선을 같이 치루었고, 2005년에 첫 책이 나왔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많이 영향을 받았겠는가. 서로 영향을 많이 받았다.

'88만원 세대'를 썼을 때, 정말로 뛸듯이 좋아했던 사람이 노회찬이었다. 여러가지 중의적 의미다. 그 인세로 이재영이 월급을 받게 되었다.

50대 에세이가 잊혀지기 어려운 책이 된 건, 그 시절의 얘기, 정확히는 그 둘과 가장 행복했던 어느 날의 얘기를 썼는데..

그리고 이제는 노회찬 마저도 죽었다.

'붉은 돼지'의, 좋은 놈들은 이미 죽었어,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이라는 책을 쓰고, 그 표지에 노회찬 얼굴을 어마어마하게 달고, 그리고 시내버스에 광고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 시내에 노회찬 얼굴이 버스와 함께 달리게 하고 싶었다.

2.
이게 책이 될 것이라고 처음 생각한 것은, 이재영이 울산과 포항 지역에 기지를 만들기 위해서 처음 경주에 가던 시절의 얘기를 해주었을 때의 일이다. 정말로 웃겼다. 처음에 인천에 가던 시절의 얘기는, 오히려 경주에 가던 시절에 비하면 덜 재밌을 정도였다.

그래도 바로 못한 것은, 이게 거의 인류학 책 정도가 될 정도로 인터뷰도 많이 필요하고, 자료조사도 필요한, 품이 많이 드는 책이라서 그렇다. 그리고 점점 더.. 기억하는 사람들도 줄어가고, 자료도 없어져간다.

내가 인민노련 책을 준비하려고 한다고 하니까, 전국의 인민노련 활동가였던 분들이 연락을 많이 해오셨다. 참.. 눈물 나는 얘기들이 많다. 우울증이 많았고, 사회부적응 상태로,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인민노련 얘기를 누군가 해보려고 한다니까 갑자기 눈이 번쩍 떠졌다고..

그래도 너무 힘들어서, 일단은 접어놓았다.

3.
그 때 바로 하지 않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나도 조금 더 경제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힘은 많이 드는데, 팔릴 가능성은 별로 없는 책을 바로 추진하기에, 진짜 도니가 달랑달랑.

그리고 언제든지 이재영에게 얘기를 들으면 되니까, 좀 더 편안해지면 하자.. 고 했다.

그 때는 이재영이 그렇게 금방 죽을 줄 몰랐다. 아니, 알았어도 그 책은 못했을 것 같다. 너는 이제 죽을 거니까, 그 얘기 좀 해주라.. 그렇게는 못했을 것 같다.

긴 시간의 눈으로 보면, 어차피 그 책은 그 때 나올 수가 없던 책이었다. 발사대인 나도 너무 힘이 약했고, 주인공인 이재영은 곧 다가올 죽음을 자신도 모르면서 기다리던 중이었고.. 그리고 메인 주인공이었던 노회찬도 결국은 죽을 것..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그 후에 노회찬은 국회의원도 되고, 몇 가지 호칭이 생겼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던 노회찬의 호칭은 인민노련 조직부장. 이 사람이 어떤 20대를 보냈는지, 가장 잘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인민노련 출신으로 알기도 하는데, 그렇게까지 열심히 산 건 아니고, 그냥 인민노련 사람들을 많이 안.

4.
50권으로 나의 '경제 대장정'은 마무리를 지으려고 한다. 그 후로도 책을 쓸지, 아닐지, 나도 잘 모른다.

쓰던 책을 마무리하는 와중에, 인민노련 책은 해야할 것 같고, 만약에 정말로 쓴다면, 59번이 되는 게 맞을 것 같다. 60권째는 전체를 마무리하는 코멘터리 북이 되는 게 맞을 것 같고.

딜레마도 있다.

일단은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감정적인 것은 차지하고라도, 육체적으로 해야 할 작업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어디론가부터 후원이나 지원을 기대할 상황도 아니고.

또 다른 딜레마는, 지금 아니 4년 후라도, 그 시기에 과연..

집을 떠나 인천으로 가서 노동자가 된 대학생들의 얘기가 청년들에게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 얘기가 될 것인가? 이걸 잘 모르겠다.

그냥 꼰데들의 노스탈지아.. 이러면 재미 없다. NL과 PD가 싸우던 시절의 얘기, 그런 것을 지도부가 아닌 현실의 얘기로 일부 다루려고 한다. 느무느무 재미 없다. 그렇지만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 얘기가 빠지면 왜 민주노동당이 집권하자마자 정책국장이던 이재영이 당에서 짤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이제 막 국회의원이 된 노회찬이 역시 개고생을 하고, '풍찬노숙'의 길로 들어갔는지, 설명이 좀 쉽지 않다.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 괴로운 얘기라서 이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나만 해도 한 다리 건너라서, 그 때 그랬어요..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해도 나에게도 감정 소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왜 내가 갑작스럽게 유학을 가게 되었는지, 그 출발점에 해당하는 얘기들이 인민노련 안에 복잡하게 엉켜있다.

5.
그걸 명랑하게 그리고 재밌게, 그렇게 쓸 마음의 준비가 되면 나도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을 쓸 거다. 그러나 그냥 가슴만 후벼파고, 죽은 사람들에게 "내 책을 바친다", 이런 개 같은 소리나 할 거라면, 필요없는 책이다. 레토릭.. 그딴 거 필요없다. 명랑할 수 없다면 결국은 그냥 개소리일 뿐이다. 너무 생생한 과거의 얘기이고, 승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렇기도 하다.

하여 나도 생각 중이다.

마음은 그렇지만, 현실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걸 읽어줄 독자들이 과연 있을지, 어떻게 집 나온 대학생 얘기들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질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며칠 전에 인천에 갔었다. 아니, 올해 인천에 자주 갔다. 그리고 앞으로도 자주 갈 일정이다. 그 때마다 인민노련 생각이 나고, 이재영에게 들었던 얘기들이 생각난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마도 한국에서 인민노련 얘기를 쓰고 싶어하고, 또 진짜로 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내가 쓰면 그래도 이 얘기가 남는 거고, 내가 안 쓰면 아마도 그냥 사라질 것 같다.

인민노련 출신들하고 이렇게 생활도 하고, 삶의 중요한 순간을 같이 나눈 사람들이 또 얼마나 있겠나? 지금도 많이 잊혀졌다. 시간이 지나면 더 잊혀질 것이다.

그래서 계속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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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간 일정을 전면적으로 조정을 했다.

'당인리'는 6월 출간을 생각했었는데, 지금으로서는 택도 없다. 애들 키우면서 하다보니까 방법이 없는 것도 좀 있지만, 생각보다 일이 잘 된 이유도 좀 있다. '모피아' 이후 6년만인가, 소설 작업하는 게.. 오랜만이기도 하고, 또 그 사이 내가 뭔가 모르게 시선이 변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그래서 8~9월 출간으로 좀 늦췄다.

기왕에 하는 김에, 이어서 하나 더 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가 물망에 올랐는데, 결국에는 이승만 얘기 하기로. 순서대로라면 이완용 쓸 차례이기는 한데, 이건 자료 조사가 더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이건 원래 하려던 순서대로 할 생각이고, 이번에는 이승만 얘기.

그 두 개 사이에 어느 정도 얘기 골격이 형성되어 있는 농업 경제학이 들어간다. 이건 올해를 넘기면 좀 그럴 것 같아서. 그리고 지금 잡고 있는 틀도 시간이 지나면 까먹을 것 같은.

원래 중간중간에 에세이 같은 작은 글을 쓴다. 이건 시간 나거나 심심하면 틈틈이 써두는.

일단은 10대들을 위한 서평집을 먼저 하기로. 책에 관한 책은, 10대용 서평집 이후로. 이건 조금씩 써서 모아두는 형태의 책이라서, 언제 나갈지 나도 모른다.

농업경제학이 중3 올라가는 중2 학생에게 쓰는 편지 형식이 될 거다. 10대 연구하는 김에, 10대용 서평집까지 모아서 한 번에 하면 더 감정적으로 편할 것 같다. 물론 이게 언제 끝날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서 올해 나가는 건, '당인리'하고 농업경제학 두 권이다. 실제로 내는 건 2~3권이라도 매년 계획은 4권씩 잡았었다. 올해는 계획도 두 권이다.

주변 여건이 개판이다. 방법 없다. 큰 애가 어린이집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하루에 두 탕 뛰면서 왔다갔다,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다. 나머지 여건들은? 개판에 개판이다.

에디터들이 너무 자주 바뀐다. 나도 사람인데, 책마다 새로운 에디터들하고 새로 만나고, 새로 익숙해지고.. 도저히 이 짓을 더는 못하겠다. 지금까지는 출판사를 중간에 바꾼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주로 에디터들하고 작업을 하는데, 에디터 바뀌면 나도 너무 힘들다. 이제부터는 출판사 바꾸는 것도 염두에 두려고 한다. 이래저래 개판에 개판인 상황에서, 묵묵히 글 쓰는 것도 너무 지치는 일이다.

나머지 여건은? 나머지 여건도 개판이다.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솔직히, 이 상황에서도 묵묵히 글을 쓰고 있는 날 생각하면, 이게 진짜 감정도 없는, 상또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상황에서도 글이 써져? 그래도 묵묵히 하기로 한 건..

변한 상황에 맞춰, 새로 출간 계획도 정리하고, 원칙도 바꾸었다. 이제부터 에디터 바뀌면, 나도 출판사 바꾼다. 그리고 작업 여건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해도, 출판사 바꾼다.

하여간.. 내년 봄까지는 출간 일정이 결정이 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의 순서도 정리가 되었다.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 될 때까지는 아직 4년 남았다. 지금까지 낸 책이 36권인데, 14권 마처 채우면 50권 된다. 50 권 될 때까지는, 벌려놓은 몇 가지 일들 무리하지 않게 마무리하는 정도로만..

50권 되면? 글쎄.. 잘은 모르겠는데,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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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 고타로, 아사히 신문 기자의 우다탕탕 벼농사 도전에 관한 '맛있는 자본주의' 해제 원고를 끝냈다. 올해는 추천사는 일절 안 쓰기로 했는데, 책이 진짜로 웃겼다. 우와..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은. 너무 웃겨서 원고 읽고 바로 써준다고 했다.

김의겸 얘기를 좀 많이 쓴 버전 하나가 있었는데, 너무 슬퍼서 날려버리고, 좀 더 코믹 버전으로 새로 썼다.

내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삶이 변해서 그런지, 이제 진지하기만 하고 호통치는 얘기는 내가 싫다. 조롱만 하는 얘기도 싫다. 답 없다.

나처럼 해봐요, 요렇게, 이건 정말 내가 못 참겠다. 우짜라고..

한 때 '멘토'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어지간하게 멘토라고 하는 사람들, 왠만하면 내가 아는데, 그 사람들, 그렇게 멘토질 할만한 사람도 아니다.. 마케팅이 움직이다 보니, 어떻게 자기도 모르게. 구역질 나는 시대를 참고 왔다.

요즘 권위가 무너진 시대가 슬프기는 하지만, 누가 멘토라고 쌩지랄 떠는 것도 같이 없어져서, 한결 홀가분하다.

그냥 다이다이, 니나 내나, 그렇게 사는 거 아닌가 싶다. 조금은 더 21세기 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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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밑에서, 서평을 썼다. 문득.. 청년을 위한 서평집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들을 위한 독서 목록집 비슷한 느낌으로. 움베르트 에코는 축구의 나라이자, 축구광의 나라인 이탈리아에서 축구 싫어하면서 살았다. 그냥 싫어한 게 아니라, 축구 싫다고 아주 공개적으로 칼럼을 쓰면서 살았다. 그렇게 살고 싶은 청소년도 있을 거 아니냐.. 부모가 알았으면 절대로 못 보게 할 금서 같은 책들만 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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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에서 히사이시 조 책과 류이치 사카모토 다큐, 코다를 주문했다. 히사이시 조 책은 돌려 읽던 책이 있었는데, 내 앞 차례에서 어떤 작가가 보고 행방불명. 그냥 보고 싶어져서 샀다. 코다는 몇 번 본 다큐인데, 추가영상 50분 정도가 있는 것 같아서, 마저 보려고 샀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쓴 책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인생이 뭐 특별한 라이벌도 없었지만, 되고 싶은, 그럴 롤 모델 같은 게 아예 없었다.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그렇게 살기는 했는데..

작년에 류이치 사카모토의 <코다>를 보고, 나는 어떻게 늙어가고, 죽음 앞에서 어떻게 갈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몇 년 전에 원혜영이 웰다잉 얘기를 엄청 했었다. 솔직히 실망했다. 세월호 한참 수습 국면인 와중에, 앞으로 뭐하실 거냐고 물어봤더니, 웰다잉 정책..

잘 죽든, 못 죽든, 죽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그리고 나서 보니까, 죽음을 처연히 준비하는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물고, 나이 먹어가면서 점점 더 애정 결핍 아니면 감정 과잉으로 자신만을 사랑하게 되는 영감들만 자꾸 눈에 들어오는.

미쳤어, 미쳤어, 곱게 좀 늙지.

태극기에 목숨 걸거나, 자기 이름을 높이는데 목숨 걸거나, 돈을 죽어라고 부여잡고 추하게 늙어가거나.. 내 주변의 노친네들이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때 되면 추한 꼴 안 보이고 곱게 죽는 것도 복이야, 내 죽음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때쯤 류이치 사카모토의 <코다>를 보았다.

멋있었다.

내 주변의 수많은 영감들은 늙으면 늙을수록, 교회에 더 지랄 맞게 집착하고, 자기가 살아온 것에 대한 변명이 점점 더 늘어난다. 그리고 뭔가 복수하고 싶어지고.

나이를 먹으면 복수 같은 것은 좀 내려지고 싶어지지가 않나?

암으로 죽어가는 프랑스 할아버지 - 나름 겁나 유명한 - 가 20대의 나에게 남겨준 말은..

니는 외국어 공부에 시간 낭비하지 말거레이, 나처럼 죽을 때 후회하게 된다.

나름 짠했다. 7개 국어 affluent.. 죽기 전에 그거 아니라는 얘기는, 감동적이었다.

내 주변의 할배들은,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아마 자기처럼 7개 언어는 꼭 하고 죽으라고, 나처럼 해봐요, 요렇게.

그런 할배들 보면, 속으로는, 미친 거 아냐. 태극기나 죽어라고 나가는 주제에..

삶의 전환점을 맞아, 히사야이시 조와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한 비교를 좀 해보고 싶어졌다.

조선의 할배들은 왜들 다 늙으면 "나처럼 해봐요" 그러면서 자꾸 화만 내는지 모르겠다. 공무원 욕해, 신문 욕해, 교수 욕해, 무식하다고 대중들 욕해, 자기 신경 안 써주는 부인 욕해, 자식들 욕해, 가끔 찾아와주지 않는다고 지인들 욕해.

욕하다가 죽는 게, 억울하지도 않은가 싶다. 칙칙하고 불운한 근현대사를 지내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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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놈들 전성시대>는 판매는 그저 그랬다. 그렇지만 술 마시다가 독자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던 책이기도 하다. 근혜 시대, 시대도 힘들었고, 나도 힘들었다. 그 고통의 클라이막스에서 썼던 책이다. 그 책의 연장선 위에서 '삐꾸들 전성시대'를 써보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하긴.. 책 내면서 나는 c급 경제학자를 표방했다. 이건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그런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21세기 초반.. 미국 박사들을 1류, 서울대 박사들을 2류, 그리고 기타 등등 나머지들을 다 묶어서 3류 취급하던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뭐, 지금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우리가 만드는 '질서정연한 바보짓'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각약각색의 삐꾸들의 약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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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맑스의 가족사에 관한 얘기는 어떨까 싶은. 빨갱이에게는 절대로 돈 못 줘, 편지를 들고 간 조카 며느리를 돌려보낸 사나이. 그가 필립스의 창업자 중의 한 명이래나.. 그렇게 돌아온 본 베스트팔렌 부인이 보게 된 자신의 몸종과 남편과의 불륜.

그렇게 태어난 딸과 결혼한 로이. 자본론 프랑스본을 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그 로이가 아내와 함께 번역한 거래나? 하여간 그걸 로이본이라고 부른다. 나도 로이본을 기본으로 읽었다. '위험한 도약'이라는 구절이 가장 정확하게 나와있대나 뭐래나.

그리고 또 다른 사위. '게으름의 권리'를 감옥에서 쓴 폴 라파르그. 이 책이 68 때 엄청 떴다. 노동권에 관한 선언이 나올 때, 그거 아니라고 쓴 일종의 선언문이다.

굳이 엥겔스와의 우정에 관한 얘기로 가지 않더라도, 맑스의 삶과 그 주변 사람들의 얘기가 파란만장하다.

20대 때 술 마시면 줄구장창, 대학시절의 결투니, 폰 베스트팔렌 여사와 도망치면서 결혼하는 얘기.. 하여간 마초들의 시대에 진짜로 어울릴만한 그런 마초틱한 얘기들로 가득했다. 나도 그런 얘기에 푹 빠져서 20대 초반을 보냈고.

예전에 동경대 경제학사 하는 사람들이 이런 거 엄청 뒤지고 다녔다는 전설 같은 얘기들을 듣기는 했는데, 막상 동경대 사람들 만나보니까, 그런 전설 같은 시대가 과연 있기나 했던 건지.

사상사 전공하던 시절에는 그런 뒷얘기들 엄청 많이 알고 있었는데,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대학에서 낭만이 사라지고, 그런 전설적인 얘기들도 같이 사라졌다.

정치경제학의 시대가 다시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경제학을 아주 낭만적으로 공부하고, 술자리에서나 오고 갈 법한 얘기들이 강의 시간에 흘러나오던 시절이 있기는 했다. 우리가 그 시절에 수학 문제만 풀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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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고 지방정부고 할 것 없이, 신나게 토건으로 복귀하는 중이다. 아이들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오면서 문득 '토건 광주, 토호들의 광주', 이런 제목이 생각났다. 민주당발 토건의 핵심 진원지는, 결국 광주 아니겠는가? 도서관 등 사회 기반 시설들 살펴보다가, 광주도 좀 너무 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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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고개 시절, 배우 정진영, 이준익과 함께..) 

 

2011년 설날은 영화 <평양성>이 망한 해였다. 이준익은 물론이고, 당시 타이거 픽쳐스를 맡고 있던 조절현도 완전 패닉. 이준익은 은퇴를 선언했고, 전부 멘붕. 이송원과 내가 이 팀에 합류하게 된 것은 <평양성>의 실패로, 더 이상 해 볼 도리가 없던 조철현이 진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시작하기로 한.

 

그 시절 나는 김미화 누님과 나는 꼽사리다만들고 있었고, 책도 그런대로 잘 팔렸다. 그리고 경제 대장정이라고 이름 붙인 일련의 시리즈 책들을 순서대로 정리해가던 중이었다. 글쎄, 블랙리스트 사건이 나중에 알려지기는 했지만, .. MB 후반기, kbs 등 몇 군데 출연하기로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출연진이 바뀌기도 하고, 방송 자체가 없던 일로 되기도 했다. 그 중에 백미는 아예 방송 자체가 없어지기도. 이래저래 괜히 뭐 한다고 해봐야 민폐나 끼칠 것 같아서, tv는 물론이고 공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예 포기한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조철현 등 통료와 이제는 전설이 된 아리랑 고개 사무실에서 지지고 볶고. 돈이 없어서 누구 돈 주고 말고 할 거 자체가 없고, 그냥 몸으로 떼우면서 지지리 궁상을 떨던 시절이다. 배우 정진영이 와서 그 시절 밥 사주고 갔던 정도가 기억으로 남는다. 서로 돈이 없어서 뭐 얻어먹을 데도 없고, 그냥 몸으로 때우던.

 

보통 추억은 지나면 적당한 기억으로 미화되거나 아련한 기억으로 남는데, 그 때는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그런 것도 없다. 그렇게 몇 년을 헤매다가 나중에는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 이사가자.. 그래서 지금의 충무로 사무실로 그 꼬질꼬질한 일상을 버티던 사단들이 전부 이동을 했다. 그렇게 너무너무 힘들고 배고팠고, 그래서 또 서로 싸우게 되었던 아리랑 고개 시절은 끝났다. 그 때 얼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싸웠는지 아직까지도 약간의 앙금들이 남아있을 정도다.

 

<모피아>는 그 아리랑 고개 시절에 썼다. 처음에는 간단한 경제 코미디 같은 거 해보자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된 것인데, 쓰면서 나도 오기가 생겼다. 버전을 거듭하면서 나도 정색을 하고. 마지막 버전까지 가면서, 하여간 나도 고생 할만큼은 했다는 생각이.

 

MB 말기, 마지막 작업은 큰 아이가 태어나는 것과 시간이 맞물렸다. 거기다 이사도 했다. 아내는 병원에 있었고, 나는 아주 복잡한 종료의 부동산 거래를 하면서 진짜 땀 뺐다.

 

그리고는 좀 한숨 돌릴까 싶었는데, 대선판이 커졌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 실패 이후, 국민연대라는 조직을 만들고 거기에서 대선을 총괄하기로 했는데, 엉겁결에 그 기구의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다. 예전 대선으로 치면 선대위원장에 해당하는 자리다. 나꼽살하고, 소설 발간 막바지 준비하는 와중에 선대위원장 역할을 하고. 그리고 막 태어난 아이는 백 일을 향해서 막 달려가고 있었고. 어수선의 절정이었다.

 

다행히 <모피아>는 반응이 좋았고, 드라마 판권도 금방 팔렸다. 영화 판권은, 드라마랑 기간이 겹쳐서 좀 더 후에 팔기로 했는데, 결국 그렇게 가지는 않았다. 대선은 지고, 모두가 멘붕, 그 시절에 <모피아>가 그런대로 버티면서 나는 차분하게 그 겨울을 버텼다.

 

박근혜 시대에 내가 쓴 얘기를 원본으로 드라마 편성이 잡히지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MB 시대에 내가 움직일 공간이 거의 없었는데, 박근혜 때는 더 했다. 집권한 몇 달간은 그래도 좀 괜찮았는데, 그 후에는 좀 치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조여왔다.

 

그리고 <불황 10>이라는 책이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 둘째가 본격 아프기 전까지, 그런대로 난 큰 변화없이 살던 대로,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그 후에 그 모든 것들은 일단 올스톱’.

 

2년 전 여름이었다. 이젠 정권도 바뀌었고, <모피아> 얘기 다시 살려보자는 얘기들이 있었다. 나도 좀 고심을 했다.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미쳤냐”, 이런 소리 들었다. 얘기를 계속 만들어야지, 옛날에 했던 거 쪼물닥거리는 건 영 아니라는.. 그래서 그 해 여름과 가을 사이에 새로 만든 얘기가 <당인리>.

 

그리고 계속 손에 쥐고 있었다. 아직은 시기가 좀 이르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원래 D-day로 잡은 게 올해 12월이었다. 엄청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저렇게 일정을 잡아보니까 그랬다. 그런데 그렇게 못 했다.

 

아이 둘 데리고 뭔가 한다는 게, 늘 일정보다 늦어지게 된다. 생각보다 어렵다. 몸도 힘들지만, 실랑이하고 있다 보면 좋은 심리상태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그런 마음이 종종 든다. 그 상태에서 애 보는 건 할 수 있는데,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좀 돌발 변수가 생겼다. ‘국가의 사기는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 되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 50대 에세이는 생각보다 훨씬 짜증나는 작업이 되었다. 중간에 에디터가 바뀌었고, 그나마 마무리한 에디터는 책 나오자마자 퇴사. 완전히 새로 쓰는 정도로 중간에 크게 한 번 판갈이. 하기 싫은데,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직장 민주주의는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작업이 되었다. 자존심을 걸고, 최대한 읽기 편하게 그리고 최대한 낮은 시선으로, 크게 한 번 탈탈 털었다. 그리고 연말이 되었다. 나는 기진맥진.

 

좀 쉬고 싶은데, 이게 쉴 여지가 별로 없다. 아내도 회사 다니느라고 힘들어서 그런지, 요즘은 청소 제대로 안 해놓고, 음식들 냉장고에 정리 안 했다고 집에 오자마자 막 소리지르고 그런다. 어렵겠지, 그러고 참기는 하지만, 몇 년째 웃는 얼굴만 보여줬더니,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이 소리를 나한테 막 지른다. 아니면 인상 쓰거나. 다들 힘들다. 그래도 그나마 크게 힘들지 않고, 스트레스 덜 받고 버티는 나한테 막 뭐라고들 한다. 그리고 애들도..

 

아빠, 코 묻혔어.”

 

큰 애는 내 바지에 코딱지 붙이고 좋다고 한다. 둘째도 코딱지 붙인다고 막 쫓아온다. 도망간다. 이게 뭔 일이래.. 이러고 산다. 행정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정말 최악의 상황인데, 이게 몇 년째 되니까 특별히 더 힘든 건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작업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히, 요즘 나는 따로 작업실 낼 형편은 안 된다. 카메라 렌즈 하나를 더 살 필요가 생겼는데, 150만 원 넘는다. 예전 같으면 모델 넘버 나오면 바로 샀는데, 지금은 그러면 당장 생활비가 달랑달랑하다. 술도 한동안 일본 사케 마셨는데, 얼마 전부터 다시 그것도 소주로 내렸다. 돈이 좀 넉넉해져도 내가 쓰는 돈은 별로 늘이지 않다가, 약간 부족해지면 내가 쓰는 돈부터 먼저 줄인다. 그렇게 지낸지 5년쯤 되는 것 같다. 그냥 참고 지낸다. 나한테 작업실이 필요할까?

 

돈도 돈이고, 애들도 봐야 하고, 이래저래 나와는 좀 거리가 먼 세계의 일이다. 고양이랑 같은 방 쓴다. 서로 나오라고 난리다. 그래도 이런 건 애교라서 즐겁게 생각할 여지가 있기는 하다.

 

<모피아><당인리>는 크게 다르지 않은 작업이다. 그 시절의 동료들이 지금도 그대로 있고, 그래도 다들 그 때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아지기는 했다. 덜 싸운다. 다만 내가 그 때보다 몇 배로 힘들 뿐이다. 그 때는 아이가 없었고, 주머니 사정도 훨씬 나았다. 나꼽살 같은 방송도 이제는 안 하고, 책 시장은 비교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졌다. 그래서 인심도 더 사납다. 돌아보면 열악한 요소가 너무 많다. 그렇지만 책을 쓰는 건, 지금 이 시기에 이 얘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땅히 넘길 다른 사람도 별로 없다.

 

나는 연말에 한 번 크게 그리고 여름에 한 번 좀 작게, 일정을 전체적으로 조율한다. 꼭 필요한 얘기라도 지금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뒤로 넘긴다. 농업경제학이 그렇게 넘기고 넘겨서 내년까지 밀렸고, 나머지 것들도 당장 필요한 거 아니면 다 뒤로 넘긴다.

 

<당인리>는 지금 필요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지난 2년 동안 넘겼듯이 또 뒤로 넘겨도 되지만, 이제는 더 넘기기가 쉽지 않다. <당인리> 얘기 후반에 서브 플롯으로 등장하는 발전소가 바로 이번에 비정규직 청년이 죽은 바로 그곳이다. 2년 전, 누적된 문제들이 이제 슬슬 터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이제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다.

 

새로 주변을 돌아보며 정리정돈하는 중이다. 그 김에 잠시 <모피아> 시절을 돌아보았다. 대략 6년 전, 그 기간을 나는 죽지 못해서 살아남은 것 같다. 정말 꾸역꾸역, 모멸과 조롱을 일삼는 사람들의 잔인한 말들을 버티면서 지내왔다. 그래도 내 마음에 원망이나 회한 같은 것은 없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 편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욕한 적은 없다. 가끔 견디기 어렵게 힘들지만, 대체적으로 명랑한 편이다. 그리고 살면서 웃을 일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 정도면 썩 괜찮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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