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일곱 살 큰 애는 며칠 전부터 게임기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못들은 척 하지만, 이게 고민은 고민이다. 다들 그렇게 노는데, 얘만 안 사주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일단 시작하면 벌어질 일도 뻔하기는 한데.

 

우리 집 애들은 사립학교도 안 갈 거고, 그냥 되는대로 동네에 있는 학교 그냥 다닐 거다. 로얄코스와는 거리가 먼. 왜 애들을 그렇게 방치하느냐고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된장. 윗길과 아랫길, 벌써부터 아랫길이 뻔히 보인다고, 나를 한심 맞게 바라본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나는 최대한의 자유와 여유를 보장해주려고 한다. 그렇지만 이 길의 끝에는, 핸펀과 게임기가 있다. 우리 집 애들만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그러면 그게 과학 하는 마음은 아니다. 로또식 요행수지.

 

부모님 말 잘 듣고, 비싼 학교 다니고, 공부 열심히 하는 중3 남학생이, 잘 찾아보면 어딘가 있기는 할 거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한국의 중3 남학생들은 열심히 게임을 하고, 책 같은 것은 구닥다리라고 생각하고, 여성들을 열심히 혐오할 것이다. 우와. 그 엄청난 적개심, 내가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 가면? 대안학교 남학생들도 근본적으로 그런 여성혐오에서 많이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2병이라는 말이 있다던데, 하여간 게임기 붙잡고 있는 중3, 어마무시하게 살벌하다.

 

모르겠다. 청와대에 가신 높은 아저씨들은 자녀들이 다들 좋은 학교 다니고 공부 잘 해서 그런지, 방치된 공교육의 남학생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싶다. 우리 애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나도 노력을 하겠지만, 세상의 흐름에서 저 혼자 비껴날 수 있겠나 싶다.

 

동네에 수학학원이 있다. 별로 성적은 오르지는 않는데, 애들이 학원은 잘 간댄다. 아줌마들이 곗고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들이다. 피자 파티도 자주 하고, 이렇게 저렇게 연애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 같다. 하여간 학원에 열심히들 간다. 그래, 가기만 하는 게 어디야. 어떤 아줌마가 정답을 말했다. 학원 안 가고 땡땡이가 기본인데, 그래도 이 성적 오르지 않는 학원에는 열심히들 간단다. 이게 우리 아들들이 몇 년 후에 정면으로 만나게 될 현실이다. 그리고 나의 현실이 될 것이다.

 

성적으로는 여학생한테 밀리고, 돌아서면 게임기, 어쩔 것이냐, 이 운명적 위치 앞에서! 그나마 힘 좀 있다는 한국의 엘리트들은 쯧쯧쯧, 우리 애는 안 그래. 그게 좀 아니다 싶으면, 잽싸게 외국으로 고고씽. 이게 이완용급이 안 되어서 그렇지, 대체 뭐여!

 

여성들을 혐오하며 게임기 붙잡고 있는 공교육의 무수히 많은 우리의 중3 남학생들, 문제아로 찍히고, 사회적 관심도 없고, 그냥 방치. 그렇다고 거기에서 영국 등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화장실 유머로 대표되는 서브 컬처가 나오는 것 같지는 않고. 뭐야?

 

영국도 우리랑 사정이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이 때 등장한 영웅이 있었으니, 바로 제이미 올리버. 학교에서 학생들이 먹고 있는 것은 음식도 아냐.. 영국에 일대 충격을 가지고 왔다. 그리하야 중학교용 교과목 가정요리기술이라는 정식 교과목이 탄생하게 되었다. 바라바라바라밤!

 

영국에 벌어졌던 농업 혁명과 같은 일과 제이미 올리버의 사회적 등장, 이런 게 뒤져보면 광우병 사태와 뿌리가 다르지 않다. 대충 먹지, 아무 거나 먹지, 그러다 광우병과 함께 영국 농업 폭망!

 

그 뒤에 사회적 변화가 왔고, 제이미 올리버와 함께 그 태풍의 핵은 바로 중학생이 되었다. 그것도 건들건들, 미래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던 방치된 그 공교육의 현장에서.

 

이게 내가 해보고 싶은 농업경제학 책의 기본 밑바탕이다. 제이미 올리버도 했는데, 우리는 왜 못해? 그리고 나는 왜 못해?

 

그리하야, 나도 되든 말든, 3 남학생들에게.

 

공부 잘 하고, 책 열심히 읽는 그런 중3 말고, 그냥 사회가 포기하고, 부모들만 속 태우는 바로 그 친구들을 위하여.

 

그들 손에 어떻게 책이 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배달방식은 오리무중이다. 하여간 부모든 친구든, 어떻게든 그 손에 책이 들어갔다고 가정하고..

 

그리고 그들이 주말 하루에 읽을 수 있고, 뭔가 가슴에 남을 수 있는 책. 나는 농업경제학을 그렇게 하려고 한다. 되면? 나는 제이미 올리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가 영국에 뿌린 씨앗의 의미를 이해한 최초의 조선 경제학자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학자, 99%핸드폰 팔아 쌀 사먹으면 된다고 믿고 있다. 안 그런 사람들, 손에 꼽는다, 꼽아.

 

최근에 생긴 나의 믿음이 하나 있다.

 

한국의 위기를 돌파하는 장기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두가 포기한 중3 남학생이 똑똑해지는 것, 아니면 우리 다 망한다. (그리고 나는 중3부터는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생각이다..)

 

 

(7살 큰 애, 얘가 중3이 되어서 열심히 책 읽고, 공부 착실히 하는 그런 소년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게임기 달고 있는 중3 남학생이 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는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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