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미리 망원렌즈로 간이접사. 호박꽃이 이렇게 활짝 피는 게 몇 시간 안 된다는 것을 나도 처음 알았다. 얼핏 피는 거 보고 몇 시간 다른 일 하고 봤더니, 그 사이에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내가 아는 게 뭐가 있을까?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1.
직장 민주주의, 짧은 마지막 장 하나를 남겨놓고 있다. 앞의 내용이 길어져서, 분량 압박을 많이 받게 되었다. 맨 끝에 있는, 나머지 논의에 관한 장 하나를 아예 없애고, 그걸 결론 부분에 짧게 줄여서 쓰는 것으로 가름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여러 사람이 아쉬움을 얘기한다.. 기왕 펼친 김에, 삼동원칙 같은 거나 뮤턴트에 대한 얘기들도
며칠을 고민했는데, 그래도 다시 직장 민주주의를 다룰 기회는 없을 것 같아서, 절 하나를 원래 계획대로 쓰기로 했다.
‘우리의 꿈은 직장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제목에서부터 오는 댓구이기도 하고, 내가 경제를 대하는 원칙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평생을 꿈을 꾸면서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걸 위해서 여전히 나는 뭔가 쓴다.
2.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는, 약간은 희한한 주제다. 블로그든, 페북이든, 진짜 인기 없다. 하여간 형식적으로는 그렇다. 겉모습으로는, 내가 다루던 주제 중에서 극단적으로 인기 없고, 별 반응 없는 주제다. 아마 별 겉모습으로는 가장 반응 없는 주제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연락을 받은 주제이기도 하다. 하소연처럼, 뭐라도 들어주세요, 이런 것들도 있었다. 물론 의미 있다. 감정을 만들고, 생각을 가다듬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거의 보고서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상황이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보내준 사람도 많았다. 좋은 사례도 있었고, 눈물 나는 사례도 있었다.
이 상황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데, 내 생각에는…
한국에서 뭐가 좋아지겠어, 그런 절망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직장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은 생각도 전에 포기하고 사는 듯 싶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라는 게, 일단은 내 해석이다.
어쨌든 앞으로도 책 쓰면서 이렇게 자세하고 정밀하게 정리된 글들을 사람들에게 받을 일이 있을지 또 있겠나,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잘 예상하지 못한,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중간에 들었다. 그래서 나도 더 공을 들이게 되었다.
3.
나에게도 좀 변화가 생겼다.
내가 알던 것들은 지난 총선 때, 탈탈 털어 넣다시피 했다. 내가 아는 것도, 내가 모르는 것도 내 책상을 거쳐갔다. 그 다음 대선 때에는, 둘째가 아파서 나는 빠졌다. 그래도 계속 물어보고, 약간씩 자문은 해줬다.
그 과정을 통해서, 시민단체에서 온 것이든 혹은 학계에서 온 것이든, 하여간 우리나라에서 정책 형태로 제시된 것은 거의 한 번씩은 보게 되었다. 받은 것도 있고, 못 받은 것도 있다. 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누군가가 죽인 것들도 좀 있다. 한다고 약속했는데, 마지막까지 챙기는 사람이 없어서 흐지부지 사라진 것도 있고.
그 중에 여건이 충분치 않거나 “사세가 미약하야”, 내려놓은 것들을 <국가의 사기>에서 어느 정도 정리를 했다. 그리고는 나도 ‘창고 대방출’…
정도와 방향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본소득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논의는 창고대방출, 이제 주머니 속에 남은 것은 없음!
그리하여 매우 심드렁해지거나, 그건 그렇고, 이건 이렇고, 고주알 미주알 다 아는 것처럼 건들거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직장 민주주의는 지난 두 번, 멀리 보면 서너 번의 큰 선거에서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주제다. 나도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던 주제이기도 하다.
몇 달간 이 작업을 하면서, 내 삶이 충분히 보람 있는 삶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나는 미래를 향해 하고, 변화를 계속해서 생각할 것이다. 내가 아주 나이를 먹으면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더 나이를 먹으면 모르겠지만, 아직 나는 최전선에 서 있다. 그리고 쪼물딱 쪼물딱, 뭔가를 만들고 있다. 보람이 없으면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의미가 없어도 몸을 움직이기가 꺼려진다. 보람과 의미가 있는 일들은 아직도 꽤 있을 것 같다. 직장 민주주의는 내게는 보람도 있고, 의미도 있는 주제였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어떻게 받아들이든..
4.
인위적으로 시간을 나누거나 기간을 나누는 게 별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 일 끝나고 나서 사후에 하는 해석일 뿐이다. 전삼국시대, 후삼국시대, 그런 것도 다 나중에 하는 말들 아니겠는가. 버티느냐, 먹히느냐, 밀고 가느냐, 죽느냐, 이러고 있던 시절에 그들이 무슨 이 시대는 전삼국시대고, 이 시대는 후삼국시대고, 그랬겠느냐. 이러거나 저러거나, 결국은 왕건이 다 밀어버렸고, 왕건은 자기가 무슨 시대에 살고 있는지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거다. “나는 관심법을 쓰나니”, 이런 넘 손에 죽지 않기 위해서 그도 얼마나 바들바들 떨면서 살았겠냐. 죽지 않기 위해서 버티다보니 새로운 왕조를 만들게 된 거지, 그가 무슨 시대 구분 같은 것을 생각이나 했겠냐.
그렇지만 저자로서, 내 인생이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경계로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이게 36권째 책인가, 그렇다. 책이 잘 팔리면 어떻고, 안 팔리면 어떻겠냐, 나도 그런 단계는 넘어갔다.
얼마 전에 어떤 방송국에서 노동문제 얘기하면서 <88만원 세대> 가지고 코멘트 해달라고 해서, 안 한다고 했다. 그건 10년도 더 된 일인데, 그걸 들고 지금 상황을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차라리 접시물에 코를 박지, 그렇게 구질구질하게는 안 산다. <응답하라 1988>에서 흘러나온 가사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 말이 맞다.
미래와 관련되어 있고, 지금 진행 중인 내 고민만이 나에게 의미가 있다. 그 정도 곤조는 가지고 산다.
언젠가 “네, 제가 예전에…”, 이따구 얘기나 하고 있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핸펀 번호 바꿔버리고 완전 낙향할 거다. 과거를 뜯어먹고 사는 것, 내가 제일 혐오하는 모습이다. 지나갔으면 지나간 대로 좀 찌그러지는 맛이 있어야..
직장 민주주의는, 적어도 주제를 대하는 내 자세라는 관점에서는 그 이전과 그 이후를 나눌 책이라는 생각은 든다. 뭐, 그 이후가 꼭 더 좋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변화가 생겼다는. 더 건들건들 산다고 할 수도 있고, 이걸 더 여유 있게 본다고 할 수도 있고.
어쨌든 <88만원 세대>를 쓸 때보다 나는 덜 절박한 삶을 살고는 있는데, 그 대신 더 과감해졌다. 그리고 더 급진적으로 바뀐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 그게 나이를 먹는 것이기도 하고. 이제 내가 더 잃을 게 뭐가 있겠나. 더 갖고 싶은 것도 없다. 더 원하는 것도 없고, 간절히 바라는 것도 없다. 칭찬도 받을 만큼 받았고, 욕도 먹을 만큼 먹었다. 그러니 더 급진적이 될 수밖에. 이 마당에 내가 누구 신경을 쓰겠냐..
싫으면 마라, 니 손해지, 이렇게 배 내밀고 배짱부리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변화는 변화다. 그것도, 아주 큰 변화다. 책 36권째 오게 된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