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살아도 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나 싶다. 물론 나도 아이들 둘과 아내의 눈치를 보기는 한다. 아내가 아침에 애들한테 시달리다가 결국 출근 시간 놓쳤다. 반차 내고 좀 쉬다가 나가면서 ‘no merci’라는 말을 했다. 애들은 정말 no merci.. 인정사정 없다. 남자 애들 둘이 크는 우리 집은 더 그렇다. 졸렵다고, 피곤하다고 봐주는 것 일절 없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게 된다. 공무원들도 장관 등 상사 눈치 무지하게 봐야 한다. 가끔 자신만의 왕국을 세워놓은 기관장 같은 똘아이들도 있지만, 그 힘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잠깐 그런다. 언론도 다 눈치 본다. 방송 진행해도 마찬가지다. 힘 있을 것 같지만, 사장이나 편성국장 같은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한다. 아무 눈치도 안 보는 것 같은 사람은 거의 정봉주가 유일했던 것 같은데, 그는 너무 눈치 안 봤던 것 같다.
학자들 특히 교수들도 눈치 엄청 본다. 정부에서 뭔가 하고 싶으면 진짜로 하다못해 7급 공무원 눈에라도 날까봐 벌벌벌 떤다. 모 학회 회장님께서 전직 차관님 눈치 엄청 보는 얘기가 최근에 들은 가장 웃긴 얘기였다.
나는 눈치 안 본다. 더 얻고 싶은 것도 없고, 더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청와대에 있는 아저씨들이 날 어떻게 볼까? 지 맘대로 생각하겠지. 나는 내 길 가는 거고, 너거는 너거 길 가는 거고.
직장 민주주의는 이렇게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서 쓸 수 있었던 책이다. 내 밑에 아무도 없지만, 내 위에도 아무도 없다. 대안이 실현 가능할 것인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인가, 그런 기술적 측면만 고려했지, 누가 어떻게 볼까, 그딴 건 키우지 않았다.
나도 보나마나 애들 둘이 한국에서 빌빌거리고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먹고 살겠다고 어딘가 취직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아빠가 줄 수 있는 건 별 거 없고, 그래도 세상이라도 지금보다는 좀 낫게.
우리나라 직장들, 하여간 개떡 같다. OECD 국가 중에서 이렇게 지랄 맞은 나라는 또 없다. 그런데 그게 이상한 걸 잘 모른다. 남들도 다 그래.. 아냐, 니들만 그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겠냐, 그런 생각이 책 쓰는 내내 들었다.
내가 뭐라도 하면 뭐 좀 바뀌어? 내가 바꾼 건 생각보다 많다. 별로 티가 안 나서 그렇지. 국격이라는 말을 논쟁 중에 내가 제일 처음 썼다고 하면 아마 지랄이라고 난리들 칠 것 같다. 실제로 노무현 말기에 라디오 토론에서 논쟁하다가 그 말을 썼고.. 그걸 mb 인수위 메시지팀에서 받았다. 뭐, 나는 국격이라는 용어가 그보다는 좀 더 우아한 맥락에서 사용되기를 바랬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따져보면 좋게 바꾼 것도 있고, 결국 나쁘게 바뀐 것도 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안 바뀐다. 뭐라도 자꾸 만들고, 안 되면 개념이라도 만들 거나, 말이라도 만들어야.. 결국 뭐라도 조금 바뀐다.
안 바뀌면? 될 때까지.. 설령 내가 끝내지 못하더라도, 뭐라도 변화의 기점을 만들면, 난 그걸로 충분히 족하다.
남의 눈치를 안 보는 삶을 살게 된 것은,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할 이유도 같이 사라졌다는 말과 같다. 최선을 다 해서, 열심히.. 누구는 그렇게 안 살겠는가?
나는 그저 명랑하게, 웃길 수 있을 때 웃기고, 못 웃기면 다음 웃기는 찬스를 기다리며 그냥 술 처먹고 기다리는.
한국의 많은 독자들 덕분에, 세 끼 밥 먹고 사는 데 불편함이 없게 되었다. 내가 누구 눈치를 보겠냐? 그저, 더 웃기지 못하고 더 발랄하지 못한 것을 반성할 뿐이다. 다음 챤스는 또 온다..
(직장 민주주의 한참 작업하던 시절, 강화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