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노회찬 부탁으로 강연도 참 많이 했었다..)

 

 

어제 정의당 강의는 경기도 당원들 대상으로 한 당원교육이다. 움직이기 싫어서 거의 꼼짝도 안 하는데, 정의당 경기당 당원교육까지 간 건, 진짜로 노회찬 이후로 마음이 너무 짠해져서 그렇다. 어차피 해주기로 한 거, 가장 최신 얘기로 정성스럽게 준비할 생각이었다. 비슷한 때 광주 정의당에서도 강연 부탁이 왔다. 같은 내용으로 할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성이라는 것은, 가장 최근의 얘기, 다른 데서 아직 발표하지 않은 내용을 얘기하는 것이다. 하던 얘기를 가지고 하면, 폼도 나고, 준비도 쉽다. 아니, 준비랄 게 없을 경우도 많다. 그래도 늘 하던 얘기라서, 빠다 바란듯이 미끄럽게 넘어간다. 나는 이런 것을 싫어한다. 한 얘기 또 하고, 또 한 얘기 또 하는데, 이게 무슨 녹음 테이프냐 싶은 생각이 든다. 하던 얘기 또 하는 것을 계속 반복하는 건, 진짜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강연을 처음 시작할 때, 내가 나한테 했던 약속이 있다. “같은 강연은 안 한다”, 그렇게 생각을 했다. 거칠지만 그 때 새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들을 가지고 얘기를 했다. 원래의 주제와 새로운 생각, 이런 것들이 섞였다.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진짜로 고로운 일이지만, 길게 보면 그게 도움이 된다.

 

시간이 흘러서 사람들이 파워포인트를 쓰기 시작했다. 금강기획 같은 기획사에서도 아직 파워포인트 도입하기 이전 시절부터 나는 파워포인트를 썼다. 수학식 하나하나 다 에미네이션 걸고, xy축에서 지시선, 방향선, 전부 날려오는 짓을 했다. 그게 96, 97년이니, 나도 좀 난리부르스이기는 했다. 사장단 회의에서는 그렇게까지 할 시간은 없었고, 부사장단 회의에서는 그 난리를 쳤다. 그렇지만 그게 내용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UN 시절에도 파워포인트 썼다.

 

사실 강연하는 입장에서는 파워포인트가 훨씬 편하다. 한 번 만들어 놓고, 그냥 조금씩 고쳐서 때우면 된다.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다 보니, 만들어 놓은 걸 가지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면, 거절하면 된다. 더 편하다. 그러나 했던 걸 또 하는 일이 벌어진다. 나는 가장 최근의 내용 그리고 아직 얘기하지 않은 걸 가지고 얘기하지 않으면, 내가 부디낀다. 뭐 하는 짓이냐, 시방.

 

그렇다고 매번 파워포인트를 만들 수는 없다. 간단하게 해도 하루는 넘어간다. 그래서 결국 내린 결론이, 안 한다.. 돈이 필요해서 강연을 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견딜 수가 없다. 그래도 그렇게 막 살지는 않았다. 맨 앞에 서서, 가장 힘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산다고 생각했지, 돈도 필요하고, 에 또, 이렇게 생각하면서 산 적은 없다. 또 강연비를 받아야 할 정도로, 그렇게 생활이 궁핍한 것도 아니다.

 

정치인 중에서 내 강의를 가장 처음 들었던 사람은 노회찬과 단병호였다. 수많은 사람에게 강의를 해주었는데, 그래도 선생격이라고 꼬박꼬박 인사하는 사람은 단병호 정도였다. 노회찬은 친구 같은 처지라서, 들었니 말았니, 그럴 처지는 아니고.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나, 같이 스터디하던 후배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강의를 들은 사람은 정세균과 원혜영이다. 국감 때 정세균 외국 갔을 때를 제외하면, 개근했다. 안 불렀는데도 가장 많이 왔던 사람은 진선미와 박병석이었다. 그 때는 그냥 판서했던 때도 있고, 파워포인트 만들었을 때도 있다.

 

회사 사장들 강연 부탁도 많이 왔었다. 한 번은 진짜로 전경련 회장단 강연 부탁이 왔다. 고민하다가 할까 했다. 일본에서 하라는 거라서, 일본 정도는 나도 갈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니미럴.. 골프장에서 골프치다가 하라는 거다. 골프 안 치는데요? 그냥 치는 척만 하시면 돼요. 싫은데요. 그래도 이런 기회가.. 그래도 싫어요. 안 했다. 대통령을 만나라고 해도 골프 치면서, 안 한다. 남들한테 골프 쳐라 마라, 이러지는 않지만, 나는 안 친다.

 

강연이,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 명박이, 순실이, 이런 애들이 황당하게 하고 있을 때에는 그래도 조그맣게라도 모여서 서로 고민하고 하다못해 고통이라도 나누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그 때는 나도 전국을 돌아다녔다. 갔다왔다, 차비 빼면 진짜 내 돈이 더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시대를 같이 버티고 이겨내는데, 뭐라도 도움이 되면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시간은 변했다. 다시 니 편, 내 편 갈리기 시작한다. 굳이 나까지 나서서 이 편, 저 편,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생각을 만들고, 시대의 최전선에 가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분석하고 분석한 내용을 정리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하는 일이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았다. 책 나오면 하는 의례적 강연이나 신세진 사람이 하는 부탁, 그 정도만 하기로 했다. 그리고 눈 오는 겨울, 더운 여름에도 아무 것도 안 하기로 했다. , 가을로 피하기 어려운 강연 몇 번, 그게 내가 찾은 타협점이다. 물론 시민운동 차원에서 하는 건, 돈 받지 않고 내 돈 내서라도 한다. 사회과학 특강 같은 것은 정말로 무료로, 가끔은 맥주 한 잔씩 사기도 하면서 했었다. 그런 게 시민운동 차원에서 정말 의미가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지금은 애 둘 보면서 뭔가 하는 처지에 당분간은 힘들다.

 

그리고 파워포인트 만드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귀찮아서가 아니다. 판서가 더 좋은 강의 방식이라서 그렇다. 그 때 그 때 중요한 일, 아직 하지 않은 얘기를 전부 정리하는 게, 꼭 새로운 얘기를 위해서 좋은 방식은 아니다. 그러면 라디오 같은 매체는 전부 죽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라디오도 얘기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데 좋은 방식이다. 그래서 팟캐스트라는 매체가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부 보여줘봐, 시각형 정보가 전부는 아니다.

 

지난 주 토요일날 정의당 당원교육은 그렇게 생각한 첫 시도다. 마침 칠판이 있다고 했다. 몇 년 전에는 칠판 놓고 강의하면 칠판 3번 정도는 새로 썼던 것 같다. 내가 정렬적이던 시대다. 그렇게 판서하면서 눈사람형 경제니 8자형 경제 같은 개념들이 나오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강의 준비하면서 판서 분량으로 1장 정도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개념 10개 정도 썼는데, 끝난 것 같다. 그 대신 설명을 많이, 길게 했다. 파워포인트 20, 30컷 만들어 놓고. 시간 맞추기 위해서 막 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개념 열 개가 안 된다. 그리고 새로 분석하거나, 새로 알게 된 것은 한두 개 밖에 안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사실 한 개 분량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11월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 것도 안 한다고 철썩 같이 생각하고 있는데, 뭐가 뭐가 엄청나게 온다. 돈 많이 준다고 하는 게 오면, 사실 나도 흔들린다. 마침 또 그렇다. 그래도 그냥, 힘들다고 하고 말았다. 새로운 얘기나 새로운 분석을 계속 만들지 않으면, 시대는 퇴행으로 간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 그게 인간의 2대 욕망 중 하나라고 프로이드가 말했다. 타나토스라고 부르는, 죽음의 욕망이 후기 프로이드의 2대 축 중의 하나다. 계속해서 변화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하는 것, 이걸 프로이드는 에로스에 속한 영역이라고 했다. 20대 초, 나는 타나토스보다는 에르스의 영역에 속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타노트>는 그 후에 나왔다. 같은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그 시절 베르베르는 매우 프로이드적이었다.

 

강연도 요즘은 상업화 정도가 아니라 산업화가 되었다. 강연산업에서 강연자의 수명을 보통 2년 정도로 본다는 것 같다. 2년이면 한 얘기의 수많은 변주도 거의 다 끝나고, 인기도 떨어지고. 물론 그걸 계속하기 위해서 자기도 새로운 것을 만들기는 하는데, 그것까지 포함해서 평균적으로 2년이라고 본다. 내가 처음 대중 강연한 것부터 치면 15년 정도 된 것 같다. 강연 논리 그대로 따라가면 2년 후에 아주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내가 성격이 지랄맞아서 이렇게 저렇게 했던 결정들이, 우연이지만 아주 나중에 산업적 논리와 분석과 맞추어 보니까 내가 내린 선택들이 맞는 것 같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결국은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새로운 것은, 많은 시간과 많은 집중을 필요로 한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겠지만, 나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하고, 계속 관찰한다. 그게 내 스타일이다. 시간 많이 들어간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지 않는 것, 이게 내가 지키려고 하는 딱 하나의 명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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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민주주의, 에필로그까지 끝냈다. 이제 내가 쓸 글은 다 썼고. 나중에 수정 다 끝낼 때쯤, 아주 짧은 서문 하나만 쓰면.

지난 2년 동안, 나는 내가 살아오던, '습'이라고 하는 많은 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애 쓴 것 같다. 버린다고 버려지지 않는 것들도 많다. 빈도도 줄고, 강도도 줄었지만, 여전히 술 처먹는다.

사는 건 많이 편해졌다. 애들도 그나마 좀 커서, 어린이집 데리고 가고 오고, 엄청 편해졌다. 통장도 편해졌다. 아내 버는 돈으로 생활비는 된다. 내 인세도 작은 돈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지난 달에 예정에 없게 차를 사느라고 돈이 좀 나갔는데, 그 사이에 빈 자리가 대충 찼다. 워낙 내가 쓰는 돈이 없으니까, 그냥 적당히 살고, 적당히 참으면 그만이다.

책 한 권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잡으면, 큰 책이든 작은 책이든, 거기에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털어넣는다. 물론 그래도 제대로 못 털어넣었다고, 나중에 후회하게 되기는 한다.

직장 민주주의는 잔고 걱정하지 않게 된 이후로 첫 책이다. 아마도 국가의 사기와 직장 민주주의를 경계로, 나의 책 세계도 좀 바뀔 것 같다. 국가의 사기가 잔고 들여다보던 시기의 마지막 책이고, 직장 민주주의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시절의 첫 책이다.

그 사이에 벌어진 일은?

책을 계속 쓸지, 이제 그만 쓸지, 좀 생각을 했다. 돈 때문에 책 써야하는 상황은, 그걸 약간 즐기기도 한 것 같지만, 별로 계속 하고 싶지는 않다. 왜 책을 쓰는가, 생각을 지난 2년간 많이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딱 우리집 생활비 만큼은 당분간 계속 책을 쓰기로.

누군가 책을 쓴다고 마음을 먹을 때, 어느덧 내가 기준점이 되었다. 나는 엄청나게 팔리는 분야의 책을 쓰는 것도 아니고, 뭔가 크게 유행이 되기 어려운 주제를 주로 다룬다. 그 대신, 꾸준히 한다.

초창기에는 밤 그것도 12시 넘어서 주로 글을 썼다. 그리고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잠깐씩 눈 붙이는 거 말고 며칠씩 계속 쓰기도 했다. 옛날 일이다.

요즘은 주로 오전에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나서 쓴다. 보통 2시간, 많으면 3시간, 그리고 땡이다. 오후에 한 번 더 자리에 앉기를 매일 바라지만, 그런 날이 별로 없다. 그리하여..

강연, 방송 기타 등등, 11월 이후로는 일단 종료. 오후에 두 시간 정도 더 책상에 앉아있는 것과, 그래도 나가면 몇 십만 원은 받는 것 사이를 비교하며, 주변에서 이러면 안된다고 나에게 말해준다.

됐슈.

먹고 살만혀유. 만드는 시간과 파는 시간의 균형, 그딴 거 필요없다. 모든 힘은 만드는 데에 집중. 시간 나면, 더 새로운 거, 더 극한의 것, 안 해본 얘기, 여기로 투입. 간단한 원칙.

안 팔리면, 더 잘 만든다. 그래도 안되면? 그럼 진짜 더 잘 만든다. 그것도 실패하면? 그 때 안 만들어도 된다. 아직은 그 때는 아니다.

문체, 문장, 이런 거 신경 쓰던 시절도 있었다. 이젠 그런 것도 아 잊었다. 무슨 얘기, 누구 얘기 할 거냐, 이게 다다. 재미없는 얘기에 문체니 문장이니, 의미 없다. 별로 관심가지 않는 사람 얘기, 그 얘기를 하지 않는 게 낫다.

장식, 필요 없다. 한 페이지가 아까워서 가뜩이나 고밀도로 압축하는 중인데, 장식 달 여유 없다. 독자가 숨쉬면서 넘어갈 공간, 필요 없다. 내 책은 꼭 필요한 사람이 보는 거고, 그 꼭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얘기를 채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면 그만이다.

불어로 portee라는 단어가 있다. 그런 말은 영어에도 없고, 우리 말에도 별로 안 쓰는 말인데, 철학 등 이론에서 현실적으로 많이 쓰는 중요한 단어다. 사정거리 정도 된다. 이게 쏘면 얼마나 멀리 나가는 것이냐.. 나는 그 사정거리를 최대로 키우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왜?

안 그러면 내가 지금 책을 쓰고 있을 이유가 없거던. 볼 책도 많고, 볼 영화도 많고, 놀러갈 데도 많고, 이 나이가 아니면 하지 못할 일도 많거던.

하여간 이런 마음으로 꾹꾹 눌러서 내 책 중에서는 가장 사정거리가 긴 책을 마무리했다.

쓰면서 이런 정도는 나도 생각했다. 내가 언제까지 책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직장 민주주의 책 이전과 이후로 나뉘겠구나 싶은..누가 그렇게 봐서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변했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변하면, 내가 하는 일이 바뀐다. 당연한 얘기다..

하여간, 며칠이라도 당분간 좀 놀아야겠다.

 

 

(직장 민주주의 에필로그에 윌리엄슨을 인용했다.. 사람 이름 최소로 쓰려고 했는데, 정말 최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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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백만년만에 글 쓰면서 밤을 새볼까 싶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국의 가장 큰 위기는 중산층 이하,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별로 없다는 것 아닐까 싶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삶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은퇴하면 어쩌지, 이런 걱정들이 많다. 자기 자식이 자신보다 잘 살 거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보기 어렵다. 자기는 어떻게 살 것 같은데, 자식들은 잘 모르겠다는. 그래서 아이를 안 낳는다는 게, '솔로계급'에서 정리한 내 생각이다.

단기적으로는 아이 키우는 게 너무 힘드니까, 이게 육아대책이라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희망이 있는 경제를 만드는 게 거의 유일한 대책일 것이다. 희망.. 없는 희망을 가지라고 하는 것이 잔인한 얘기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이렇게 장 제목을 잡고나니까 나도 뭔가 깊이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은.

돈 많은 사람들 사는 거 보면, 참 지랄맞다 싶다. 법 안 지키는 게 몸에 뱄다. 큰 법이든 작은 법이든, 그리고 뭐라 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내가 좀 지랄맞은 성격이라서, 막 뭐라고 한다. "남들도 다 이래요..." 그걸 대답이라고 하나 싶다.

희망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박정희 때 기억은 초등학교 기억이라, 사실 희미하다. 전두환 시절은 대학 시절이라 강렬하다. 그 때 우리는 자본주의를 한 건가, 군사 놀이를 한 건가, 헷갈릴 정도다.

지난 10년은 어땠을까? 정치 과잉의 시대를 살았던 건지도 모른다. 공무원이 통치하는 건지, 재벌이 통치하는 건지, 뭐가 힘의 원천인지도 잘 모르는 시절을 지냈다. 삼성이야, 아니면 모피아야? 강만수? 뭐가 진짜 힘이야.

그래도 이제 좀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그런 희망에 대한 얘기가 하고 싶어졌다.

내가 공부할 때, 스웨덴이 한계까지 온 거 아니냐, 박사 과정에서 이런 얘기들이 많았다. 나도 그런가보다 했다. 노르웨이는 별로 신경도 안 썼다. 독일의 통일은 약간 미화되었고, 경제적 한계 같은 것은 진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났는데, 스웨덴 모델이 한계가 오기는 개뿔. 더 잘 나간다. 독일은 보수 정권이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통일의 영향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진짜 자기들 스타일을 만들어나가는 것 같다.

노르웨이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노회찬 생각이. 노르웨이에 간다고 아는 사람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 내가 알던 일본-노르웨이 부부를. 진짜 사민주의자들 식구들 만나고 노회찬이 정말 즐거워했었다..) 내년 봄에는 노르웨이나 가볼까?

아주 소수의 부자들 말고는 대부분의 국민이 미래는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생각을 좀 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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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민주주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하기로. 많이 쓰는 표현이기는 한데, 나도 이 말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capitalism with a human face... 아마도 지금 한국 보수들에게는 물론이고, 정치만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말일 것 같다. 린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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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미리 망원렌즈로 간이접사. 호박꽃이 이렇게 활짝 피는 게 몇 시간 안 된다는 것을 나도 처음 알았다. 얼핏 피는 거 보고 몇 시간 다른 일 하고 봤더니, 그 사이에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내가 아는 게 뭐가 있을까?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1.

직장 민주주의, 짧은 마지막 장 하나를 남겨놓고 있다. 앞의 내용이 길어져서, 분량 압박을 많이 받게 되었다. 맨 끝에 있는, 나머지 논의에 관한 장 하나를 아예 없애고, 그걸 결론 부분에 짧게 줄여서 쓰는 것으로 가름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여러 사람이 아쉬움을 얘기한다.. 기왕 펼친 김에, 삼동원칙 같은 거나 뮤턴트에 대한 얘기들도

 

며칠을 고민했는데, 그래도 다시 직장 민주주의를 다룰 기회는 없을 것 같아서, 절 하나를 원래 계획대로 쓰기로 했다.

 

우리의 꿈은 직장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제목에서부터 오는 댓구이기도 하고, 내가 경제를 대하는 원칙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평생을 꿈을 꾸면서 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그걸 위해서 여전히 나는 뭔가 쓴다.

 

2.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는, 약간은 희한한 주제다. 블로그든, 페북이든, 진짜 인기 없다. 하여간 형식적으로는 그렇다. 겉모습으로는, 내가 다루던 주제 중에서 극단적으로 인기 없고, 별 반응 없는 주제다. 아마 별 겉모습으로는 가장 반응 없는 주제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연락을 받은 주제이기도 하다. 하소연처럼, 뭐라도 들어주세요, 이런 것들도 있었다. 물론 의미 있다. 감정을 만들고, 생각을 가다듬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거의 보고서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상황이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보내준 사람도 많았다. 좋은 사례도 있었고, 눈물 나는 사례도 있었다.

 

이 상황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데, 내 생각에는

 

한국에서 뭐가 좋아지겠어, 그런 절망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직장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은 생각도 전에 포기하고 사는 듯 싶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라는 게, 일단은 내 해석이다.

 

어쨌든 앞으로도 책 쓰면서 이렇게 자세하고 정밀하게 정리된 글들을 사람들에게 받을 일이 있을지 또 있겠나,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잘 예상하지 못한,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중간에 들었다. 그래서 나도 더 공을 들이게 되었다.

 

3.

나에게도 좀 변화가 생겼다.

 

내가 알던 것들은 지난 총선 때, 탈탈 털어 넣다시피 했다. 내가 아는 것도, 내가 모르는 것도 내 책상을 거쳐갔다. 그 다음 대선 때에는, 둘째가 아파서 나는 빠졌다. 그래도 계속 물어보고, 약간씩 자문은 해줬다.

 

그 과정을 통해서, 시민단체에서 온 것이든 혹은 학계에서 온 것이든, 하여간 우리나라에서 정책 형태로 제시된 것은 거의 한 번씩은 보게 되었다. 받은 것도 있고, 못 받은 것도 있다. 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누군가가 죽인 것들도 좀 있다. 한다고 약속했는데, 마지막까지 챙기는 사람이 없어서 흐지부지 사라진 것도 있고.

 

그 중에 여건이 충분치 않거나 사세가 미약하야”, 내려놓은 것들을 <국가의 사기>에서 어느 정도 정리를 했다. 그리고는 나도 창고 대방출’…

 

정도와 방향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기본소득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논의는 창고대방출, 이제 주머니 속에 남은 것은 없음!

 

그리하여 매우 심드렁해지거나, 그건 그렇고, 이건 이렇고, 고주알 미주알 다 아는 것처럼 건들거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직장 민주주의는 지난 두 번, 멀리 보면 서너 번의 큰 선거에서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주제다. 나도 이렇게까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던 주제이기도 하다.

 

몇 달간 이 작업을 하면서, 내 삶이 충분히 보람 있는 삶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나는 미래를 향해 하고, 변화를 계속해서 생각할 것이다. 내가 아주 나이를 먹으면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더 나이를 먹으면 모르겠지만, 아직 나는 최전선에 서 있다. 그리고 쪼물딱 쪼물딱, 뭔가를 만들고 있다. 보람이 없으면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의미가 없어도 몸을 움직이기가 꺼려진다. 보람과 의미가 있는 일들은 아직도 꽤 있을 것 같다. 직장 민주주의는 내게는 보람도 있고, 의미도 있는 주제였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어떻게 받아들이든..

 

4.

인위적으로 시간을 나누거나 기간을 나누는 게 별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 일 끝나고 나서 사후에 하는 해석일 뿐이다. 전삼국시대, 후삼국시대, 그런 것도 다 나중에 하는 말들 아니겠는가. 버티느냐, 먹히느냐, 밀고 가느냐, 죽느냐, 이러고 있던 시절에 그들이 무슨 이 시대는 전삼국시대고, 이 시대는 후삼국시대고, 그랬겠느냐. 이러거나 저러거나, 결국은 왕건이 다 밀어버렸고, 왕건은 자기가 무슨 시대에 살고 있는지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거다. “나는 관심법을 쓰나니”, 이런 넘 손에 죽지 않기 위해서 그도 얼마나 바들바들 떨면서 살았겠냐. 죽지 않기 위해서 버티다보니 새로운 왕조를 만들게 된 거지, 그가 무슨 시대 구분 같은 것을 생각이나 했겠냐.

 

그렇지만 저자로서, 내 인생이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경계로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이게 36권째 책인가, 그렇다. 책이 잘 팔리면 어떻고, 안 팔리면 어떻겠냐, 나도 그런 단계는 넘어갔다.

 

얼마 전에 어떤 방송국에서 노동문제 얘기하면서 <88만원 세대> 가지고 코멘트 해달라고 해서, 안 한다고 했다. 그건 10년도 더 된 일인데, 그걸 들고 지금 상황을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차라리 접시물에 코를 박지, 그렇게 구질구질하게는 안 산다. <응답하라 1988>에서 흘러나온 가사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 말이 맞다.

 

미래와 관련되어 있고, 지금 진행 중인 내 고민만이 나에게 의미가 있다. 그 정도 곤조는 가지고 산다.

 

언젠가 , 제가 예전에…”, 이따구 얘기나 하고 있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핸펀 번호 바꿔버리고 완전 낙향할 거다. 과거를 뜯어먹고 사는 것, 내가 제일 혐오하는 모습이다. 지나갔으면 지나간 대로 좀 찌그러지는 맛이 있어야..

 

직장 민주주의는, 적어도 주제를 대하는 내 자세라는 관점에서는 그 이전과 그 이후를 나눌 책이라는 생각은 든다. , 그 이후가 꼭 더 좋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변화가 생겼다는. 더 건들건들 산다고 할 수도 있고, 이걸 더 여유 있게 본다고 할 수도 있고.

 

어쨌든 <88만원 세대>를 쓸 때보다 나는 덜 절박한 삶을 살고는 있는데, 그 대신 더 과감해졌다. 그리고 더 급진적으로 바뀐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편하게 생각하면, 그게 나이를 먹는 것이기도 하고. 이제 내가 더 잃을 게 뭐가 있겠나. 더 갖고 싶은 것도 없다. 더 원하는 것도 없고, 간절히 바라는 것도 없다. 칭찬도 받을 만큼 받았고, 욕도 먹을 만큼 먹었다. 그러니 더 급진적이 될 수밖에. 이 마당에 내가 누구 신경을 쓰겠냐..

 

싫으면 마라, 니 손해지, 이렇게 배 내밀고 배짱부리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직장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변화는 변화다. 그것도, 아주 큰 변화다. 36권째 오게 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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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박사편을 끝으로, 직장 민주주의 인터뷰 분석을 끝냈다. 직장 민주주의 끝판왕 사례로, 덴마크의 에너지 전문회사 PlanEnergi 사례를 마지막에 넣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에너지 엔지니어링 회사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전 직원이 같은 연봉을 받는다. 동일 임금을 넘어 동일 연봉.. 진짜 직장 민주주의 끝판왕이다.

 

https://nordjyske.dk/nyheder/graesroedderne-skyder-igen/43297d62-98f5-4408-a164-acc48246bf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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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아침에 새 운동화를 신었는데, 이게 발에 잘 안 들어간다. 그냥 이전 신발 신으라고 했더니 그건 낡아서 싫단다. 큰 애는 오늘부터 감기 1일이다. 약국 들러서 어린이 감기약 사주고 왔다. 긴 팔 입히고, 이래저래 밥 먹이고 하다보면 정신 없는 한 시간이 간다. 같이 일하는 미술감독 부친상 연락이 왔다. 가야 하는데.. 멀다. 어쩌지. 내일도 하루 종일 나가있어야 하는데.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데리고 오는 게 많이 편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끝나고 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마트 문 열 때 개장 준비하는 게 이런 기분일까?

하여간 별 거 없는 것 같아도 이렇게 한 시간 보내고 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남들은 노는 줄 안다. 가사 노동이 원래 gdp 계산에서 빠지기는 한다.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을 도우미한테 부탁하면 돈 옴팡지게 든다. 그러면 gdp 계산에 들어간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하면 경제가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빠들이 애들 어린이집 보내는 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8만 달러, 9만 달러 간 나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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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축구. 이제 얼마 후면 생일이 되고, 내년이면 여섯 살이 된다.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할 때, 정말로 종아리가 젓가락처럼 가늘었다. 2년 넘게 죽어라고 먹이고, 또 먹였다.

이젠 달리기도 곧잘 하고, 축구할 때 골키퍼도 시켜달라고 한다. 인생이 뭐 있나, 그런 생각이 가끔 든다. 애 돌보고, 시간 모자라면 그냥 하던 거 덮는. 그런 삶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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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모녀와 저녁 먹었다. 둘째가 똥 마렵단다. 화장실이 차 있다. 다른 층으로 가서 응가. 그리고 왔더니 큰 애가 배가 아프지는 않은데, 살살. 이번에도 화장실이 차 있어서 다시 다른 층 화장실로. 그리고 나니까 30분이 지났고, 집에 올 시간. 간만에 잠실에 갔는데, 진짜 밥만 먹고, 도 아니고 화장실만 들락날락. 그래도 기저귀 가방 들고 다니지 않는 게 어디냐 싶은... 시간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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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는 어른 농구대는 오늘 처음 서봤다. 공도 그냥 축구공. 하다보니까 골이 들어갔다. 골 들어가면 농구는 재밌다.

살면서 아주 힘든 순간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앞 일은 보이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잘 모르는 순간들. 그 때 그냥 농구공 들고 동네 공원에서 농구만 했었다. 몇 달을, 그냥 농구만 했었다. 오늘 큰 애가 처음 농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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