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 하다보니, 블로그 방문수가 백 만이 넘어갔다.

좀 열심히 쓰던 시절도 있었는데, 한동안 진짜로 정신이 없어서 그냥 방치해둔 시절도 있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어떻게 할 줄을 몰라서 가끔 글을 쓴다. 장기적 계획, 그딴 거 없다. 둘째가 언제 또 아파서 입원할지도 모르는 그런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사는데, 블로그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한 때는 여기도 어마무시하게 많은 사람들이 보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황폐하고, 망조 든 가문의 허물어져가는 대문을 보는 것과 같다.

뭐, 별 상관은 없다.

대다수의 청년들이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어를 외치고 있는데, 독야청청 잘났다고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폭망과 이생망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데, 내 인생은 그래도 값지고 보람있었다, 요러고 있는 게,

딱 반기문스럽다.

수많은 이생망들이 블로그에 와서, 똑바로 안하면 블로그 폭파시켜버린다고 할 때, 그 때가 내 삶에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

아주 열심히 살아가는 반기문을 보면서 요즘 배우는 게 적지 않다.

아, 저렇게 하면 저따구로 보이고, 요렇게 하면 요따구로 보이는구나.

<자본론> 전 3권을 통으로 읽어내는 것보다, 반기문 하는 거 유심히 살펴보는 게 배우는 게 더 많을 것 같다.

반기문이 인천공항에서 에비앙을 턱하고 드는 걸 보면서, 탄자니아에서 에비앙을 턱하고 들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 내가 그렇게 보였었겠구나...

아디오스 에비앙, 포 에버...

생수를 마시더라도 동네 가면 동네 물을 마셔야한다는 귀한 교훈을 얻었다.

한 때의 영광에 이제는 별 내용도 없어 황폐해진 블로그를 보면서, 그래도 내가 반기문스럽지는 않은 것 같다, 잠시의 위로를 받는다.

'지나간 곳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영광을 구하지 말지어다, 블로그와 반기문을 교차로 생각하면서 잠시 교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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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 토론회에서 쓸 발제문 쓰고 나니까 2시가 넘었다. 30대 때에는 관련된 거의 대부분의 토론회 발제문을 썼었다. 40대 때에는, 초반에는 좀 쓰다가 나중에는 꾀가 나서, 아예 토론회 참석을 안했다. 바쁘다는 핑게를 댔지만, 핑게는 핑게일 뿐이다.


옛날 서울말로 나이가 50이 되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했다. 그 말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내가 본 많은 영감들이 나이를 먹으면 지갑은 점점 더 꽁꽁 닫고, 입을 엄청 열었다. 이것저것 사정 아는 처지에, 정말 꼴값이라는 생각 많이 했었다, 내 처지에, 여전히 지갑을 열 형편은 아니다. 미안하니까 입이라도 연다는 건데, 이게 참 꼴값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나이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살았는데, 딱 그렇게 생겨먹는 꼴이다. 진짜 간만에 토론회 발제문 쓰고 나니, 역시 나도 나이를 먹으니까 지갑 대신 입을 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인가?


근혜 말대로, 내가 이러려고 공부했나, 자괴감 들어...


50이 넘으면서 단호함 같은 게 생기기는 했다.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서 움직이고, 보람이 있는 일을 피하지는 않겠다... 내가 생각하는 경제가, 모두가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보람에 의해서 움직이는 그런 세계이다. 돈 때문에, 의무감 때문에, 그게 좋은 건 아니다. 잠시 그렇게 움직일 수는 있지만, 평생 그렇게 움직이면 삶 자체에 자괴감 외에는 남는 게 없다. 돈이 모든 것을 보상해줄까? 돈은 잠시 행복하게 해주지만, 길게 기쁨을 주지는 않는다. 생물학에서 얘기하는 역치의 법칙 그대로이다. 없으면 티가 금방 나지만, 있으면 조금 더 있다고 해서 조금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돈 없으면 꽝이다, 사회 구성원들끼리 서로 이렇게 얘기하는 사회, 좋은 사회는 아니다. 정상적인 사회도 아니고. 성숙과는 거리가 먼, 그저 순실이 같은 얘들한테 놀림받기 딱 좋은 사회 아닌가 싶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정말로 대한민국이 순실이 놀이터였다. 신나게 놀고, 재밌게 놀고, 딱 털고 나가려는 순간, 그야말로 재수가 없어서 걸린 거 아닌가 싶다.


한국이 빠른 시간에 그렇게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자랐을 때, "돈 없으면 꽝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그런 것을 법칙처럼 모시지 않아도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 그 편이 서로에게 편하다. 돈과 권력이 마법의 열쇠가 되어서 뭐든지 열고 다닐 수 있는 사회, 그렇게 좋은 사회는 아니다. 한국의 상층부, 마법 열쇠 들고 다니는 순실에게는 그냥 훌렁훌렁 열렸다. 그들이 청년에게는, 약자에게는 또 얼마나 단호하게 잘 난 척을 하시고, 갑질들을 하셨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지갑을 열 수 없으면, 입이라도 다물어야지... 토론회 발제문 다시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떠벌떠벌 입을 여는 게 과연 잘 하고 있는 것인가, 다시 한 번 물어보게 된다. 그냥 머리 박고 살면서, 이래라 저래라, 그런 거 절대 안하고, 참견질, 상관질, 조언질, 이딴 거 없는 삶, 그렇게 살고 싶다.


입을 열면, 약속을 하게 되고, 약속을 하면 지키고 싶어지고, 그렇게 되면서 집착이 생긴다. 그리고는 욕심이 생긴다. 되고 싶은 것도 생기고, 이루고 싶은 것도 생기고. 그리고 이런 게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꼴불견이다. 순실이도 자신은 충신이 되려고 했다는 거 아니냐...


그렇다고 살아있는 사람이 아예 입을 다물 수는 없고. 어떻게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앞으로 1년간 곰곰히 생각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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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에게 뇌물죄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당연한 일인데, 당연한 것이 너무 당연하지 않게 돌아가던 나라라서 신기할 정도이다.

작게 보면 삼성이라는 하나의 기업에 관한 문제이고, 크게 보면 세습 자본주의로 전락해가는 3세 경영의 문제이기도 하다. 2세든 3세든, 정상적으로 상속세 낼 거 내고 진행되었으면 좀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하면 또 다른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

이건희의 삼성, 그건 크게 보면 공포를 상징했다. 과장되었든, 제대로 보았든, 한국은 이건희를 두려워했다. 미화하든, 칭송하든 혹은 공포에 떨든, 이건희의 삼성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삼성 국정원'이 국정원 정보보다 더 낫다는 것을 은연 중 받아들였다.

3세인 이재용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다. 부러워하는 사람은 있을 수도 있고, 시기하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그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공포가 없으면 실력이 좋아야 하는데, 별로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덩치가 그렇다. 순실이 뭐가 무섭다고, 그 앞에서 덜덜덜 떨면서 아기 취급을 받았을까?

이재용이 감옥가면 경제가 망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한국이 덩치가 커져서, 부패와 조직 비효율로 인한 손해가 당장의 기계적 손실보다는 더 클 것 같다. 이재용이 감옥 간다고 해서, 당장 재벌에 엄청난 변화가 오지도 않고, 갑자기 오너들이 경영에서 손 떼고 전문 경영인 체계로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궁극의 모습은, 오너가 쥐고 흔들면서 불법과 합법의 기묘한 경계를 타는 지금의 모습은 완화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재용의 구속영장이 제대로 처리되면, 그만큼 한국 경제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성도 손을 못 쓰는데, 다른 곳은 어쩔까 싶은, 그런 전체적 교훈이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세 승계, 3세 승계, 세금 낼 거 내고 해라. 그렇게 할 지분이 없으면, 오너로서의 명예만 갖고, 적당치 않은 3세들 황제 경영 청산하고.

상속 자본주의로 한국은 너무 빨리 가고 있었다. 그것에 약간의 브레이크 역할을 이재용의 구속이 해줄 것 같다. 괜히 국민연금 건드리고, 정권과 한 배 타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비즈니스가 잘 되는 건 아니라는 우리의 제도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상속의 경제적 실익과 사업의 성과, 잘 계산해보지도 않고 식구 경영하는 것, 이제 차분히 생각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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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1차 시장

 

1.

팔순이 다 되는 전병석 선생이 간만에 차 한 잔 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2년 만인가, 다시 차 한 잔 했다. 그 또래의 영감들 중에서 주기적으로 뵙는 분들이 몇 분 있다. 그리고 많이 배운다. 뭘 배울려고 만나는 건 아닌데, 그렇게 오래 산 양반들을 만나면 느껴지는 바가 없지 않다.

 

<데미안>을 처음 읽은 것은 6학년 때의 일이다. 소설이 원래 얘기하려고 했던 거는 잘 이해하지 못했고, 사과 술을 만드는 과정, 그런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만든 칼바도스 같은 사과술이 있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소설 <개선문>에서 주인공이 칼바도스를 마실 때마다 나는 <데미안>을 처음 읽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독 짓는 늙은이>도 그 시절에 읽었다.

 

<갈매기 조나단>은 중학교 1학년 때 읽었다. 이 두 책을 읽는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어쨌든 그렇게 읽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 조나단 얘기가 그렇게 우아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정말로 재밌었었다. 그리고 다음에 읽은 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건 도저히 이해도 못하고, 왜 보는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내 주변의 여학생들은 정말로 이걸 재밌게 읽었다. ", 베르트르여, 나의 베르트레여", 이렇게 시작하는 시로 독후감을 쓴 친구가, 그걸 다 읽지 못하고 울었던 것은 평생 잊기 어려운 기억이다. 끝까지 읽기도 힘든 저 소설에 감명 깊어하고, 슬퍼하고, 그리고 그걸 동감하는 내 또래 친구들이 그렇게 많다는 데에, 놀랐다. 정말로 놀랐다. 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덮고 바로 펄벅의 <대지>를 읽었다. 진짜로 재밌었다.

 

데미안이나 조나단,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책들이다. 그걸 출간한 사람이 전병석 선생이다. 그 앞에 앉으면 세월의 기억이 묵중하게 다가온다. 책을 생명처럼 생각하고, 그 삶을 귀하게 여겼던 양반들의 시절이다.

 

전병석 선생도 경제학도였다. 그 시절에 공부하던 얘기를 하고 싶으시면, 이래저래 나에게 연락을 한다. 그 또래 할아버지들 중에는 직접 아는 분도 있고, 건너서만 전설처럼 아는 분도 있다. 하여간 이 양반이 살면서 지키고 살았던 것은 딱 두 가지라고 하신다. 땅을 사지 않는 것, 주식을 하지 않는 것한국 최초의 주식 전공책도 이 양반 출판사에서 냈는데, 초고를 보니까 자본주의에서 허가된 도박이 바로 주식이라는 생각이 드셨다고팔순이 다 된 지금까지, 그걸 지키고 사신다.

 

그런 삶을 마주 대하면, 배우는 것이 적지 않다.

 

2.

저자로 데뷔한지, 나도 이제 10년은 넘었다. 그 동안에 많이 변했다. 기본적으로는,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변했다. 10년 전에 책 쓰겠다고 하면, 걱정은 하면서도 "어려운 일 한다"고 사람들이 약간은 격려를 해주었다. 지금은 책 쓰겠다고 하면, 인생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약간의 안스러움, 약간의 경멸, 이런 시선으로 본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회과학 책이 거의 안 팔린다는 사실 자체는 변한 게 없는데, 약간의 존경심 같은 것도 사회적으로는 사라진 것 같다. 그 영광은 요즘은 웹툰으로 많이 간 것 같다. 만화와 사회과학 사이에 웹튠의 등장과 함께 교차한 지점이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가장 크게 변한 것은 1차 시장에서 2차 시장으로 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1차 시장과 2차 시장, 말 그대로 본원적 시장 혹은 선시장과 파생시장 혹은 후시장 사이의 차이이다.

 

예전에 텍스타일에서 파리와 밀라노 관계가 그런 선시장과 후시장 관계였다. 파리 프리미어 비전에서 그 시즌에 유행할 천이 먼저 선보인다. 그리고 1월달쯤, 미처 소화되지 않은 천 혹은 수요조절에 실패한 천이 시즌을 마감하기 전에 후시장으로 나오게 된다. 주로 밀라노에서 열렸다. 유명한 디자이너들은 선시장으로 가지만,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은 후시장으로 갔다. 안목만 뛰어나다면 아직 시즌에 유행하지 않은 천을 대량으로 아주 싼값에 살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이나 중국 같은 개도국을 노리고 저렴한 가격에 크게 한 번 유행을 시킬 수 있다. 별로 틔는 안 나지만 떼돈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내가 알바로 무역 에이전트 비슷한 거 할 때, 선시장에서 후시장으로 넘어가는 트렌드 분석 같은 것을 했었다. 패션 시장에서는 손 뗀지 워낙 오래라서, 요즘은 후시장 구조를 잘 모른다. 런던 등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다. 폼은 선시장이 나지만, 돈은 후시장이 더 벌기 좋다. 물론 기회 확률을 따지면, 결국에는 비슷해진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책은 1시장이었고, 선시장이었다. 좋은 책이나 읽기 편한 책을 쓴 사람들이 책 시장에서 알려지고, 신문이나 방송으로 진출하는 방식이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저자 발굴 방식이었다. 유시민도 그랬고, 진중권도 그랬고, 조금은 결이 다르지만 강준만도 그랬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 시절의 맨 끝에 속했다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은 책 시장이 1시장도 아니고, 선시장도 아니다. 책으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사람이 책을 쓴다. 그리고 유명한 사람의 책이라야 그나마 좀 팔린다. 한국의 사회과학 책 시장, 좀 넓게 보면 인문교양을 포함한 '양서 시장', 이 자체가 일종의 파생 상품이 되었다.

 

3.

지난 10, 책 시장과 비슷하게 움직인 시장이 한국에는 또 하나 있다. 정치인 시장이 그렇다.

 

원래 정치는 정치로 유명해지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그 유명을 기준으로 다른 일을 하는 시장이다. 10년 전까지, 한국은 대체적으로 그랬다. 3김으로 대표되는 정치인들도 그랬고, 노무현도 그랬다. 그들이 무슨 방송을 하거나, 책을 내거나 아니면 또 다른 유명해지는 일을 해서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민주화의 시절, 한국 정치는 1차 시장이고 선시장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3김 시대 청산'이라고 하지만, 지나와서 보니까 3김만 청산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정치 절차 자체도 청산된 듯하다.

 

지금은 정치를 해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명해진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다. MB가 그랬고, 안철수가 그랬고, 조금 먼저는 문국현도 그랬다. 근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너무너무 유명한 아버지를 등에 엎고 모든 일을 했다.

 

정치가 정상화된다는 것은, 기초의회나 광역의회, 이런 데에서 성공을 만들어서 유명해지고, 그걸 자산으로 국회의원이 되거나 단체장이 되는 게 일반적인 상황으로 받아지는 것이다. MB가 튀어나오고, 트럼프가 튀어나오고, 장기적으로 보면 좋은 일은 아니다. 지난 10, 한국의 정치도 이렇게 길게 보면 좋은 일이 아닐 것이 일반화되었다. 기초자치단체장인 이재명의 경우는 어떨까? 조금 특이한 경우이기는 한데, 엄밀히 생각하면 자치의 영역에서만 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샌더스 모델과 유사한 점과 상이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4.

책과 정치가 1차 시장이나 본원시장이 아니라 2차 시장, 파생 시장이 되었다는 기이한 공통점을 왜 가지고 있을까? 여러 가지로 설명을 시도해볼 수는 있는데, 딱 찍어서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한국의 지식 사회 혹은 엘리트 집단의 재생산 구조에 문제점이 생겼다는 것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엘리트 집단 역시 노후화된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연성화된다는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점점 더 딱딱한 지식이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스타가 될 가능성이 줄어든다.

 

이어령이 서울신문 논설위원으로, 당대의 주요 소설들에게 시비를 걸던 게 26세이다. 그 뒤에 이어령만큼 똑똑한 사람이 한국 사회에는 태어나지 않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만큼 늙어갔고, 그만큼 벽이 높아졌다. 나이와 상관없이, 저자로서 혹은 작가로서 기성 세대에게 당당하게 버틸 수 있는 장치로는 책 만한 것이 없다. 이런 길이 점점 더 막혀간다.

 

젊은 정치인이 지역에서 성공하면서 정치로 유명해지는 것이 어려운 것만큼, 책으로 유명해지기도 어려워졌다. 이게 지금 당장에는 문제가 아니지만, 5, 10년 혹은 20년 후, 이런 장치를 유지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은 분명하다.

 

5.

왜 책을 쓰느냐, 나도 10년 만에 다시 이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재미 있어서 쓴 건 아니다. 10년 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그럼 돈이 없어서? 10년 전도 아니고, 지금도 아니다.

 

10년 전에는, 내가 생각한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다. 생태나 환경 혹은 문화와 같이, 당시에 내가 공부하던 영역은 한국에서 워낙 비주류이고, 좌파 내에서도 소수였다. '비주류의 비주류', 당시 내 위치였다.

 

지금은? 꽤 많은 책을 이미 썼고, 아직도 정리해야 할 것이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다. 물론 해보고 싶은 것과 써보고 싶은 것들이 아직 좀 남아있기는 하지만, 죽을 고생을 하면서까지 그걸 꼭 정리해야겠다는 열정은 이미 남아있지 않다. 나도 그 사이, 이제 나이를 먹었다.

 

10년 전에도 팔릴 것이라는 생각을 안하고, 누군가 해야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책을 썼다. 그 사이 출판 환경은 더 안 좋아졌다. 안 팔리는 것은, 몇 곱절로 더 안 팔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책을 쓴다고 하면 '쯧쯧', 진짜 신세 망친 사람처럼 사람들이 지켜본다.

 

간단하게 10년 사이의 변화를 정리해 보면

 

안 팔리는 건 똑같은데, 격려라도 좀 받으면서 쓰는 것과, 만류를 무시하고 쓰는 것,

 

딱 그런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 나는 책을 쓰는가?

 

그래서 이 질문에 답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답을 하려고 해봤는데, 양심에 맞고, 논리에 맞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답변을 가름하기로 한다.

 

잠시만

 

공식적이고 논리적인 대답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속마음은, 한국의 책 시장이 1차 시장이 될 단초라도 생길 때까지, '조금만' 더 버틸 수밖에 없다고.

 

한국이 정상적이 된다는 말은, 책시장이 다시 1차 시장이 되고, 정치가 다시 1차 시장이 된다는 말과 같다. 유명한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해서 유명해지는 것, 이게 일반적인 선진국의 정치이다. 우리가 순실이와 함께, 그리고 명박과 함께 겪은 이 이상한 나라는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그 동안에, 우리의 정치는 아주 이상해졌다. 정치는 혐오재가 되었고, 정치를 한 사람은 '똥 묻는 사람'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미 다른 걸로 유명해진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 그래서 뿌리가 얕다.

 

이런 게 정상적인 된다는 말과, 책이 정상적으로 된다는 것은 같은 과정이다. 동어 반복이기도 하다. 인과의 복잡성이 발생한다. 그렇지만 현상적으로, 결과적으로는 같은 것을 관찰하게 된다.

 

도매 서점 하나의 부도와 함께, 얕고도 얕은 뿌리를 가진 나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중이다. 정상적인 상황도 아니고, 바람직한 상황도 아니다.

 

책으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사람이 책을 쓰는 지금의 상황, 사실 악몽과 같은 상황이다. 이 상태를 빨리 극복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게는 '저자'라는 말은, 다른 유명한 나라의 저명한 저술가의 전설 같은 얘기일 뿐이다. 내가 본 태국이 그랬다. 자기 나라에 사회과학이라는 쟝르가 있고, 사회과학 저자가 있다는 얘기를, 내가 아는 태국 교수들이 정말로 부러워했다. 우리의 미래가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

 

지금의 20~30대 젊은 학자나 저술가 중에서 책으로 유명해지는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싶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인구 천 만도 될까 말까 한 작은 나라들이다. 문화와 학술, 강대국이다.

 

유명한 사람이 정치하는 나라가 정상적이 되기 어렵고, 이미 유명해진 사람들이나 책 쓰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가 없다. 2017년 한국, 정치든 책이든, 악몽이다. 이 악몽은 빨리 깨어나야 한다. 순실이 패거리가 힘 쓰는 나라, 그 반대에 해당하는 의미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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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의정활동 보고 내용이다.

정동영에 대해서 엇갈린 평가가 있는 것으로 알지만, 나는 대체적으로 우호적이다. 늘 잘 해주었으면 싶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개인적 바램도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SOC (계속사업)
▲새만금 남북도로 착공 364억 확보
▲새만금 동서도로 공사 639억 확보
▲전주-새만금 고속도로 125억 확보
▲새만금 2단계 수질개선사업 1,530억 확보
▲새만금 신항만 414억 확보

__________________________

정동영의 후분양제를 중심으로 하는 주택법개정안이나 공정임금법 발의는 굉장히 중요한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공정임금법은 나도 시도를 좀 했었는데, 어마어마한 벽에 부딪혀 제대로 논의도 꺼내보지 못했었다. <연봉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에 prevailing wage에 관한 절은, 현실에 부딪힌 아쉬움을 적어놓은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필요성은 충분하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 걸 다시 정동영이 끄집어 낸 것이다. 한국 사회를 근본부터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법이다. 주목하고 지켜보는 중이다.

그렇기는 한데...

새만금과 관련된 소소하고도 쫀쫀한 내용을 너무 앞에 그것도 너무 많이 내세워서,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새만금 신항, 새만금 공항, 이런 건 고민스러운 내용이다. 노무현 정부는 새만금과 한미 FTA로 지지자들이 반토막이 났었다. 과거에 대한 소소한 내용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북으로 가면 여전히 중요하게 작동하는 현실이다.

소소하고도 쫀쫀한 예산들이, 중요하고도 긴급한 사안들보다 더 위에 그리고 더 크게 배치되어 있다.

연초,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예전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새만금에 대해서 다른 해법을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믿는다.

2년 전의 일이다. 한국 경제학회에서 비공식적으로, 새만금에 대한 다른 대안을 제시해볼 수 없느냐는 요청이 온 적이 있었다. 실력도 안 되고, 자신도 없어서, 다른 사람이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비겁하게 도망갔었다.

경제학계의 많은 원로들이, 그리고 전북 지역에서도 상당수의 원로들은 새만금에 대한 다른 대안이 제시되기를 소망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정동영의 새만금 예산안 확보에 대한 의정활동 보고를 읽으면서, 아직도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게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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