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낭화. 2012년 4월. 예전 집에 있던 꽃인데, 진짜 철학적으로 생겼다. 못내 아쉬어서 오늘 줄기를 구매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진짜로 몽환적인 생각이 든다...) 

 

김희진이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에디터가 있다. 되게 많이 한 것 같은데, 사실은 <문화로 먹고 살기>, 한 권 밖에 같이 안 했다. <농업경제학>을 같이 할 예정이다. 하여간 출판 시장 상황이 지금처럼 어려워지지 않았으면 가볍고 편안한 책들 여러 권 더 같이 했었을지도 모른다.

 

50대 에세이 서문 마지막에 패러독스와 딜레마의 결합에 대한 얘기를 썼다. 나는 참 재밌고 좋았다. 내가 가진 내면을 진짜 잘 보여주는 글 같았다. 그리고 이틀을 고민하다가 결국 뺐다. 패러독스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 싶었다. 책에서 엄청난 기능을 하는 것도 아닌데, 초장부터 논리학 훈련시키는 그런 마음을 먹게 될까봐, 결국 뺐다. 무서워서 뺐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 같다. 별 의미도 없지만 엄청나게 고민하는 것, 그게 원래 내 특기다.

 

그리고 김희진 생각이 났다. 그녀와 초창기에 준비했던 책 중에 하나가 일상의 패러독스에 관한 것이었다. 몇 달 준비하다가 결국 접었다. 재미는 있는데, 준비하기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그 때만 해도, 내가 30대 후반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고, 또 내 주변도 내가 정신차리지 못할 정도로 급하게 돌아갔다.

 

이제 나는 목숨 걸고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사명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지도 않는다. 되는 대로 하고, 아니면 말고. 집중해서 하나의 주제를 계속 생각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하지만 긴 시간을 가지고 티끌 모아 태산전략도 잘 쓴다.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 몇 년간 일상적인 사회 생활에서 벌어지는 패러독스들을 모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흔하게 치는 뻥이나 과장법 중에 패러독스의 요소를 가진 것이 꽤 많다. 정부의 행정에도 많고. “진짜 힘들면 우리에게 요청하세요…” 요런 게 기본적으로는 패러독스다. 관광서 문을 두드리고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말할 정도의 사람이면, 사실 진짜 힘든 사람은 아니다. 홈 페이지 구석에 있는 눈꼽만한 공지문들 중에도 패러독스 요소를 가진 것들이 많다. 우리의 삶은, 매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끊임없는 패러독스의 재생산과 같다.

 

내 삶을 되돌아보면, 사실 내 인생 자체가 조그만 패러독스다. 나는 진짜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것도 싫어할 정도로 게으른 천성이다. 한 번 한 일을 두 번까지는 참고 하는데, 세 번째 하라면 정말로 때려죽여도 잘 못한다. 게으른 게 천성이다. 그래서 뭔가 몸을 움직여야 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미리 움직이는 편이다. 우와그래서 결국 게으르게 되는 데 성공했을까? 오스트리아 학파의 이론 중에 우회생산이라는 게 있다. 장비를 만들고, 좀 쉽게 하기 위해서 수단을 정비하는 데에 시간을 진짜 많이 들이게 된다. 요즘 말로 하면, 시스템을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할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서 시스템을 정비해 놓으면 처음 하는 일은 진짜 가볍게 한다. 그리고는? 다시 또 하기가 싫어진다. 벌써 지겹다. 그래서 결국 또 손가락을 움직이게 되는.

 

생각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패러독스가 많다. 특히 할배나 중년 남자들이 나는 말이야…”하고 시작하는 얘기들 중에는 대부분 한두 개의 패러독스들이 포함된다.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아서 잘 모를 뿐이다.

 

진리는 무엇일까? 사실 잘 모른다. 우리는 굉장히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잠시 생각그것도 역시 제한된 것들을 생각할 뿐이다. 대부분은 머리 속 이미지이고, 그 중의 아주 일부만 언어라는 도구를 거친다. 진리? 호모 사피엔스라는 입장에서 잠시 정형화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논리적인 오류에 빠지는 가장 쉽고 넓은 길이, 자신의 작은 성공에 기대어 많은 것을 일반화시키는 것이다. 사실 소크라테스가 니 꼬라지를 알라고 한 얘기가,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의 무지 사실은 횡포 에 관한 것이다. 해보면 알까? 알기는 뭘 아나. 긴 시간이 지나고 참고할 사례들이 늘어나면, 결국 아는 것 만큼이나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가 알았던 것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진리, 그딴 건 없다. 과연 우리가 뭘 알 수 있을까?

 

최근의 일이다. 외국 사람들 아니 외국 아이들하고 놀다가 라는 개념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 ? 이게 뭐지? 암만 생각해봐도, 영어로도 없고, 불어로도 없다. 그러네우리가 효를 아는 것일까, 효라는 단어가 없는 서양세상이 효를 모르는 것일까? 물론 효라는 단어가 개념적으로 없다고 해서 서양의 모든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가 개판이라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내가 나에게 다짐하는 게 있다. 나는 아는 게 없다, 하나도 없다진짜로 1도 없다. 이런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그런 생각을 안 하면, 볼 책도 없고, 참고할 것도 없고, 그냥 필요한 데이타만 보면 된다, 이런 겁나게 시건방진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런 지식도 이제는 새로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교조주의가 싫었고, 원본의 권위가 싫었다. 평생 그런 게 싫었다. 내가 뭔가를 안다고 생각하면, 내가 나한테 교조주의가 된다. 개뿔,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속에 든 거를 계속 비우는 게 더 편한 일이다.

 

패러독스는, 가장 쉽고 부드럽게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들을 해체시킬 때 도움이 된다. 내가 평생 안 하려고 하는 표현을 한 가지만 꼽자면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다. 대표적인 패러독스다. 몸도 늙었지만, 마음도 늙어서, 자신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끝까지 인정 안 하려고 하는 부작용을 만든다. 지가 무슨 엄청난 정신력을 가진 초능력 에스퍼맨이야? 어떻게 마음만 똑 떼어서 청춘이 돼? 그건 진시황도 못한 일이다.

 

아마 4~5년 정도 50개 정도의 패러독스들을 모으면 책 한 권이 되기는 할 것 같다. 아주 한국적인, 아주 20세기적인 그런 것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삶의 꿈은 하였던 것 같다. 모두가 맞다고 할 때 아니라고 하는 것. 그 꿈을 아직 나는 버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냥 싫어서 싫다고 하는 것, 이건 좀 아닌 것 같고.

 

나이를 먹고, 작은 성공을 몇 번 경험하면 자꾸 성을 쌓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혼자 맘 편하게 다른 사람을 야리고, 비웃게 된다. 결국 그렇게 병신이 된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소크라테스가 한 얘기를 그대로 따라하면, 돈 많이 번 넘은 돈 많아서 병신, 일 잘 한 사람은 일 잘 해서 병신, 회사 성공시킨 사람은 회사 성공시켜서 병신, 악기 잘 한 사람은 악기 때문에 병신, 그런 거다.

 

20세기 후반부터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자들이 한참 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개념이 아주 전세계를 싸그리 휩쓸었다. 그러면서 데리다가 얘기한 해체가 완전히근데, 이게 참. Deconstruire, 해체를 위해서는 앞의 것도 알고, 지금 것도 알고, 다음 것도 알고, 오매나야, 뭐 이렇게 알아야 할 게 많아? 차라리 그냥 헤겔만 보고 말래요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 그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요구하게 되었다. 그게 무슨 해체냐? 덕지덕지지.

 

선불교 얘기 한 마디만 하면 또 난리 난다. 5조와 6조 얘기는 물론이고, 길고 긴 선불교의 역사는 물론이고 혜총 등 한국 불교에 대해서도 어지간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도 성철 스님을 알고, 그 주변의 족보들도 알고. 모르면? 어디 찌그러져 있으라고 난리다. 원래 선불교가 그런 거였어?

 

우와. 결국은 레토릭의 세계일 뿐이다. 우리가 즐겁고 행복하게 세상을 살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게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런 얘기들을 틈틈이 모아볼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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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인터뷰 중, 진짜 걸작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전혀 없는데요."

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지금의 이 상황이 딱 나에게 맞는다. 되는대로 하고, 안 되면 말고... 이런 내 마음 자세도 아주 좋다. 괜히 어깨에 힘들어가봐야, 홈런이나 맞는다. 애들 안 아프고, 먹고 사는 데 불편함 없는데, 뭔가 해보고 싶어지는 건, 악마의 유혹이다... 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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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마지막 글은 '어른들의 얘기'라는, 반전은 있지만 밋밋한 제목을 잡았다. 책 마지막에서 김 빠지거나 우울한 얘기가 될 것 같아, 썩 내키지 않는 제목이었다. 어른들 얘기, 아무도 안 좋아해. 나부터도. 마지막 절을 쓰려고 하는데,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누가 50대를 가르칠 것인가?". 순간 일단은 이 방향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국의 50대 남자, 책도 안 봐, 극장도 안 가, 영화도 잘 안봐, 드라마도 뜨문뜨문 취향대로만 봐... 아무도 못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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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마지막 고치는 중이다. 그리고 한 꼭지 정도, 더 쓸 생각이다. 책을 핑계로, 진짜로 삶을 한 번 되돌아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남에게 충고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삶이 되었다. 나에게 해줄 충고도 없는데, 남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어제 사무실에 잠시 나갔다. 새로 들어온 스탭들이 복도까지 나와서 인사를 한다. 어색하다. 나는 그들 이름도 기억 못하는데. 미안할 뿐이다. 얼마 전에 아이들 데리고 산에서 산책했다. 누군가 인사를 하는데, 진짜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아빠 친구냐고 물어본다. 대답할 말이 궁색했다.

에세이가 참 독특한 분야다. 책 쓰는 동안에도 내가 많이 변했다. 그리고 탈고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동안, 서운하거나 서먹한 상태로 안 보고 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된다. 그걸 그냥 틀어쥐고 나머지 삶을 살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아내가 얼마 전부터 필라델피아 갔다오라고 한다. 돈은 줄테니까, 가서 좀 돌아보고 오라고 했다. 그럴 돈도 없고, 꼭 가야할 이유도 별로 잘 모르겠다. 아내는, 지금 내가 가면 뭔가 느낄 게 많을 것 같으니까, 혼자라도 갔다오라고 했다. 연말이든 연초든, 필라델피아에 갔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꼭 무슨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것만은 아니다. 그냥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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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짝패, 충청도 사투리가 겁나 나온다. 그렇기는 한데, 장소가 충청도 어디인가를 가르쳐주는 것 외에 언어로서의 내면적 기능은 없다...) 

 

1.

몇 년 전부터 코미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웃음과 풍자, 그런 것을 갈망하는 생각이 나에게 계속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20대에서 30대를 짙게 누르고 있던, 뭔가 모르는 비극적 결말 혹은 구조 악 같은 것만을 다루던 상태에서 잠시 일탈적 해방 같은 느끼고 싶다는 본능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지고 있지 못한, 아니면 가져 보지 못한 장난감을 더 가지고 싶은 그런 욕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형식이 무엇이든, 코미디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약간의 시도는 했었다. 정치 코미디를 써보려고 했었고, 기본적인 얼개를 잡아 놓기도 했었다. 매번 쓰다 만 글에는 바빠졌다거나 형편이 되지 않았다는 비겁한 변명이 달린다.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곧 죽어도 능력이 안되어서 포기했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그렇다.)

 

2.

여전히 코미디는 언제나 내가 써야 할 글 목록의 매우 상위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물론 예전에도 방법이나 대안은 없었지만, 지금도 그렇다. 리스트에 올리고, 때가 되면 뚝닥뚝닥 결국은 해치우는, 나는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은 아니다. 수많은 목록을 리스트에 올리고, 지우고, 또 올리고, 또 지우고, 언제나 그 지랄을 한다.

 

그래도 이렇게 쓰고 싶은 글을 리스트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영향을 받기는 한다. 잠재적으로라도 하고 싶다는 것이 지금 하는 일에 아주 약간이라도 영향을 주게 되기는 한다. 나의 리스트에 절대로 올라오지 않는 것은, 절절한 사랑 이야기 같은 거아니면 로맨스 코미디. 별의별 희한한 흡혈귀나 좀비 얘기 아니면 찌질한 SF류까지 전부 리스트에 올라오는데, 절절한 사랑류에 대해서는 한 번도. 하여간 마음이 안 간다.

 

3.

사투리를 사투리라고 그냥 생각하지 않게 된 계기는 제주도 연구할 때인 것 같다. 양씨니 고씨니 하는 제주 할망과 함께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들 혹은 입도 몇 대를 따지는 제주도 사람들하고 작업을 꽤 길게 했다. 그 시절에 지방의 방언, 사투리, 이런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었다.

 

요즘 지방에 가도 사투리 듣기가 쉽지는 않다. 처음 대구에 갔을 때 들었던 그 느낌을 지금은 거의 받기 어렵다. 지방 사람들을 만나도 마찬가지다.

 

4.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 멀리 놀라 가기가 어려우니까 요 몇 년간은 주로 충청도로 갔었다. 태안과 그 인근 지역들. 꽤 길게 머물기도 했다.

 

사투리에 관한 얘기들이, 사실 우리는 많이 써먹었다. 전두환 시절부터 서울말 가미된 대구 사투리를 궁중어라고 불렀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했던 바로 그 말. 강남 살던 시절, 사방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바로 그 궁중어였다. DJ 시절에는 목포 형님들과 함께, 전라도 사투리에 익숙해졌다. 한 때 내 바로 위의 상관이 목포 형님, 그와 함께 매생이국이라는 것을 처음 먹었다. 그리고 노무현 시대가 되었고, 평생 들은 것 만큼의 부산말들을 듣게 되었다. 부산 말, 다시 대구 말, 부산 말 대구 말 그리고 그 틈틈이 광주말

 

충청도 사투리는, JP와 함께 찾아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직은 익숙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덜 소비된 말이기도 하다. 백제로 치면, 어디가 본당이야? 전라도권, 충청도권? 지금에 와서, 알게 뭐냐? 그리고 그런 화석화 된 논쟁이 뭐가 중요할까 싶다.

 

그래도 재미는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당분간 나는 충청도 갈 일이 많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보면, 얻어걸리는 것도 있기는 할 것이다.

 

5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재능과는 아주 거리가 먼 스타일이다. 아쉽지만 그렇다. 뭔가 기똥찬 생각이나 아이디어 같은 것이 불현듯 떠올라, 일필휘지별로 안 그렇다. 앞으로 할 것, 꼬박꼬박 리스트를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일정표도 몇 년치, 꼬박꼬박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계획한 대로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매번 수정한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는 처지였으면, 그렇게 일정표 만들고 메모 정리할 시간에, 그냥 그걸 쓰라고 할 것 같다. 그렇긴 하다.

 

<88만원 세대>가 대표적으로, 몇 년간 모아둔 메모와 이건 좀 이상한데?”, 그렇게 적어 둔 것들 것 모아서 만든 대표적인 책이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이 기획하다가 버린 메모 노트 같은 것까지 참고했다. 자기는 쓸 필요 없다고 버리려고 하는 걸 그것 좀 잠깐 줘보세요”, 그런 것까지 탈탈탈 털었다. 독일 사례가 그렇게 나온 얘기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아니, 종종 배신한다. 그렇지만 그런 배신까지 다 포함해서, 뭐라도 진도를 나가기 위해서는 그래도 땀은 좀 흘려야 한다.

 

뭔가 메모를 하고, 리스트에 올려놓으면 시간이 지났을 때, 모이는 게 좀 생긴다. 그런 메모도 없이 멍하고 있으면, 시간이 흘러도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다. 내 경우는 그렇다.

 

블로그에 이것저것, 되는 얘기 건 되지 않는 얘기 건, 생각날 때 정리해 놓는 것은 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한 것 같다 (제일 잘 했다거나, 제일 많이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충청도말 + 코미디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결합한 메모 하나를 더 한다. 조각조각 모아서 해보는 일을, 한 번 더 하려고 한다.

 

어차피 나는 시간이 많다. 가진 것은 시간밖에 없다. 천천히 모아가면서 해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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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고와 배화여고를 비교하는 교육 책은, 내년 출간 일정에서 빠지게 되었다. 자사고와 혁신고를 비교하는 내용을 담을 수 있어서 꼭 해보고 싶기는 했는데... 내년에는 일정이 안 나온다. 그렇다면 후년에는? 그것도 모른다. 빛의 속도로 날라와서 꽂히는 것들이 있어서, 후년에도 기약이 없다.

원래는 모피아 2권을 교육 마피아로 할 생각이 있었다. 모피아가 기획 단계부터 처음부터 3부작이었다. 드라마 판권은 팔렸는데, 박근혜 시대라 편성은 안되었다. 그리고 나도 계속 모피아 시리즈 붙잡고 있기에는, 일정이 급해져서 결국 내려놓았다. 모피아 2권이 이화여고 3학년 여학생과 중앙고 3학년 남학생의 연애 얘기를 중심으로 구성이 되었었다. 여주인공 이름도 정해놓았었다. 결국 계속 쓰지 못한 건, 교육 얘기가 생각보다 인기가 없다. 전체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 내 주변 동료들 사이에서는 우선 순위가 떨어진다.

그렇게 한 번 내려놓았던 이화여고 얘기를, 다시 한 번 배화여고와의 비교로 올려볼까, 그럴 생각이 있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강남의 돼지엄마를 중심으로 한 시나리오도 한 번 테이블 위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할 생각이 있었는데, 결국 나중에 밀고 들어온 아이템들에게 밀려서...

이래저래 교육 얘기들은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아이들 학교 들어가면 후회할까? 그래도 어떻게든 이 얘기를 좀 다루면서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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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이 나온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나름 과감했던 책인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고, 의미도 있었다.

 

이 책은 MB 시절을 맞아,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가, 그런 전망을 하기 위해서 준비했던 책은 아니었다. 그 즈음에 스위스의 로잔느 대학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좀 고민을 하게 될 일이 생겼다. 그리고 파리의 시앙스포에 교환교수 건도 있었고. 어떻게 할지, 나는 잘 판단을 못하고 있었다. 우선은, 건강이 너무 안 좋았다. 그래서 로잔느에서 좀 편하게 지내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던 중이었다.

 

한 학기 정도, 한국경제론을 강의한다는 생각으로 정리하던 것이 결국은 한국경제 대안시리즈 같은 형태의 결론편이 되었다. 그 시절만 해도, 내가 정말 힘이 좋았다. 그리고 머리도 잘 돌아갔다. 이젠 그런 작업은 못할 것 같다.

 

지금은 좀 아닌 것 같고, 문재인 정부 중반에서 후반 정도에 이 책을 한 번 업데이트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 때의 토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내가 제 3 부문이라고 불렀던 사회적 경제가 2~3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아직도 진행형인 질문들이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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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극한치가 변화의 극한치다 2/2

 

5.

한국 기업들인 아직은 좀 형편없다. 좀 더 잘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회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아직은 별로 그런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정부와 국가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얘기를 했다. 국가의 사업에 대해서도,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외의 공간에 두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기업은 그 논의의 예외였던 경우가 많다.

 

이게 지금 바뀌는 중인 것 같다. 기업이라고 해서 공적인 논의에서 이제 예외로 빼주지는 않는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기업 문제라는 것은 삼성과 현대 문제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바깥에 있는 기업들은 대기업 문제의 연장선에서 같이 다루었다. 순환출자부터 시작되는 지배 구조의 문제와 계열사 문제들, 이게 기본이었다.

 

그리고 그 바깥에 있는 중소기업의 문제, 이건 그냥 뭘 더 도와줄까”, 소위 진흥의 대상일 뿐이었다. DJIT 기업들도 그랬고, 박근혜도 창조경제 아래에서도 그랬다. 안철수가 4차 산업혁명 엄청 얘기한 이후, 온갖 염병들을 떤다. 도와줘야 하는 이유만 바뀌지, 큰 틀에서는 중소기업을 엄청 도와줘야 한다, 여기서는 바뀐 게 거의 없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전통적으로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한국에서는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다.

 

중소기업은 중견기업이 되고, 다시 그 중견기업이 대기업이 되면 많은 문제가 나아질 꺼야, 이게 큰 흐름이다. 그 생각이 21세기 초, 삼성을 마음 속으로 응원하던 판사나 검사들이 했던 얘기, “삼성만큼만 하라고 그래”, 그 얘기와 크게는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이걸 전체적으로 모으면 기다리라”, 이 한 마디가 나온다. 우리의 기업 논의라는 것이, 사실 좀 그렇다. 기다리라는 것 외에는 별 거 없다. 노조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고, 회사가 좀 더 발전해서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리고,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서 시민운동이 관심 가질 때까지 기다리고우리는 그렇게 기다리다 날 새는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6.

내가 출발하려고 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기다리기에는 지쳤어우린 너무 오래 기다렸어

 

기다리던 사람의 상상, 그런 게 필요한 순간이 왔다.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아, 어떻게 보면 그게 지금 우리의 직장 민주주의 논의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건 뭐 없어?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게 뭐야?

 

회사 내의 불필요한 위계를 완화시키는 것, 조금은 지금 보다 더 수평적인 것,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지금보다는 조금은 더 평등한 관계, 이런 것들은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 하지도 않다. 다만, 그렇게 상상하는 것 자체가 회사라는 구조 내에서 쉽지 않았을 뿐이다.

 

질문하는 각도를 조금 바꾸면, 지금 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으로 갈 수 있는 개선책을 훨씬 쉽게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주 먼 곳 같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해법은 단순할 수 있다.

 

문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 뿐일지도 모른다.

 

지난 번 50대 에세이 작업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 역사에서 친구 사이의 우정으로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오성과 한음이다. 그들이 맹활약하던 시기는 조선이 위기에 빠졌던 시기다. 그래서 그들의 우정이 더욱 빛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성과 한음의 나이 차이가 다섯 살이다. 자신의 절친이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한 살만 차이가 나도 엄청 선후배라고 나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입상 동기, 한 해 차이면 엄청 무서운 차이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오성과 한음, 뭐야 이건?

 

회사 안의 위계, 어떤 것은 기업이 자연스럽게 만든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것도 있다. 선후배와 연령별 위계, 이런 것의 상당수는 한국 사회의 질서가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다섯 살 차이면 친구 안돼? 대부분 안된다고 할 것이다. 오성과 한음은? 걔들이 선후배 사이는 아니쟎아?

 

상상하면 변화할 수 있지만, 상상도 못해 본 변화를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 한국의 회사가 변한다면, 그것은 상상했던 최대치 이하의 변화이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변화의 극대치가 상상의 극대치보다는 작을 것이다. 그러면 더 많이 상상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우리의 상상력 역시 제약되어 있다. 경험해보지 못하고, 들어보지 못하고, 본 적이 없는 것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7.

여기까지는 차분히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얘기다. 한국 경제라는 특수한 상황과 우리가 가졌던 자본주의 역사, 이런 것의 별스러움 같은 것들을 놓고 보면 차분하게 얘기를 정리할 수는 있다. 그게 엄청나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전에 썼던 조직의 재발견작업 위에 세우는 거라서, 기능적으로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상상이라고 하는 개념을 끌고 나가게 되면, 글을 쓰는 양식에 대해서도 같이 질문을 하게 된다. 불행히도 우리가 사회과학에서 쓰는 문체와 서술 방법이 상상력을 확 넓혀주는 데 유리한 방식은 아니다. 아무리 유연하게 쓴다고 해도, 논리 진행과 전개가, 아주 빡빡하다. 게다가 시대가 또 변했다. 책을 읽는 사람도 더 줄었고, 책을 보면서 상상력을 펼치겠다고 마음을 먹을 사람은 더 소수일 것 같다.

 

내가 부딪힌 벽은 여기다. ‘상상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해서 사람이 상상하지는 않는다. 진실을 필터 없이 바로 눈 앞에서 보여준다고 해서 상상하게 되지도 않는다. 외국의 선진 사례를 마구마구 던져 놓고, 원래는 이런 거야, 이런 성공 스토리혹은 모범 사례들을 막 던진다고 해서 마구마구 상상하고, 그런 것은 아니다.

 

글의 양식에서, 어떤 것이 좀 더 독자들에게 더 많은 상상이 가능할 수 있게 해주는 양식일까? 이건 사실 안 해본 고민이다. 문체와 서술 방법에 대한 고민은 꽤 했는데, 양식 자체에 대한 고민은 나도 처음이다. 주제가 주제라서 그렇다.

 

나라고 무슨 엄청난 방법을 처음부터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한 것은 아니다. 얘기를 하나씩 정리하다보니 결국 양식의 문제까지

 

8.

일단 결정한 것은, 상황을 설명하는 몇 개의 콩트를 넣기로 한 것이다. 단편소설 보다 훨씬 짧은 A4 2장 내외의 콩트를 통해서 압축적으로 상황을 설정하는 것. 재밌는 시도이기는 하다.

 

문제는, 이것을 몇 개나,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할 것인가? 아직 마음을 못 정했다.

 

극단적으로는 전체 얘기를 전부 개별 꽁트로 바꾸고, 여기에 약간의 설명들을 뒤에 다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제도의 기원과 유래와 같은 깊은 얘기들을 설명하는 데에는 양식 자체가 한계가 있다. 국가 복지와 기업 복지의 차이 같은 것을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려면, 머리에 쥐 엄청 날 것 같다. 쥐 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설명 자체가 부차적으로 보여서 아에 못 달 수도 있다. 이 정도 되면, 뭐가 우선인가, 좀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남아있는 결정은, 설정에 해당하는 꽁트와 설명을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할 것인가, 그 정도 된다. 말은 복잡하지만 10, 20, 30, 이런 개수에 해당한다. 개수가 늘면 설명이 줄고, 개수를 줄이면 서술적인 설명 부분이 더 늘어나게 되고.

 

지난 한 달 동안, 솔직히 이 개수를 두고 아침에 맘 변하고 저녁 때 맘 변하고, 그랬다. 별로 본질적인 것도 아닌데, 어느 정도의 실험적 시도를 할 것인가, 사실 그걸 놓고 오락가락 하는 내가 좀 한심해 보이기는 한다.

 

사실 책은 내용이 가장 중요한데, 내용과는 별 상관도 없는 양식 문제를 가지고 몇 주째 죽을 동 살 동 몸부림을 치고 있는 나를 보면 좀 한심 맞기도 하고.

 

그래도 방법이 다른 없다. 더 고민을 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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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극한치가 변화의 극한치다 1/2

 

1.

살다 보면 얻어 걸리는 게 가끔은 있기 마련이다. 노력한 것이 그 사람이 삶에서 얻는 모든 것은 아니다. 가끔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것도 얻어 걸린다. 좀 극단적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얻어 걸리는 것 중의 최고는 부자 아빠일 수도 있다. 대한항공 조씨라고 부르기는 하는 대한항공 자녀들의 일탈을 보다 보면, 가족은 무엇이고 자본주의는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공평할까? 공정할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기업에서 회장님 자녀들이 그냥 고속 승진하고, “어차피 내 꺼야”, 이런 되도 않는 꼴불견을 연출할 때, “쟤는 너무 많이 얻어걸린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게 된다.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부모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받은 사람들이 회사를 자기 맘대로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 우리가 왕조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니쟎아? 물론 그렇기는 하다. 가끔 2세 혹은 3세 정치인이 있기는 하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3세 정치인이다. 아베 가문은 그보다 훨씬 더 예전의 통일 이전에도 가끔 등장하는 가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냥 자식이 아버지의 정치적 권능을 그냥 물려받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박근혜도 아버지의 권능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 능력까지 물려받은 것은 아닌가 보다. 지금은 감옥에 있다. 아마도 독재자의 자식이, 그냥 아버지의 권능을 물려받아 대통령까지 가는 일은 한국에서 다시 벌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5년 전, 아버지의 권능을 물려받아 대통령이 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국민의 절반이 넘었다. 불과 5년 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 한국에서 시간은 정말 빠르다.

 

2.

대한항공 직원 1,800명이 참여한 단톡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직원의 1/10 가량이 참여했다고 한다. 대한항공 조씨 일가의 부당한 대우에 관한 얘기들이 차고 넘친다. 자발적인 참여이고, 많은 사람들은 글을 쓰면서 여전히 두려워하는 것 같다. 여기서 나온 특별한 얘기들은 두 개다.

 

1) 사축 나가라회사 가족들과 결탁한 짐승들, 나가라

2) 노조 나가라… (아마 사태를 이렇게 만드는 데 일조했을 것이 분명한) 어용노조 나가라.

 

이 사건은 어떻게 해결될 것일까? 그리고 무엇이 해결일 것일까? 과연 무엇이 궁극의 해결책이고 개선책일까? 이런 것은 진행형의 질문이다.

 

오랫동안 노동에 관해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노조 나가라라는 질문은 좀 뜨악할 것이다.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오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저기에는 제대로 된 노조가 아니라 어용노조가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좀 편하다. 시간이 지나면 제대로 된 노조가 저기에도 생겨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노조의 영향력이 많아져서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다

 

이 논의는 87 6월에 뒤 이은 877월 이후로 우리가 노동에 대해서 생각한 기본적인 시각이다. 지금 노조가 없어서 그렇지, 노조만 생기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질 것이야

 

전교조 만들 때 아마 우리가 그랬을 것 같다. 교육과 노동이라는 두 가지 주제가 여기서 만났다. 교육 문제가 뭐가 좀 나아졌을까? 솔직히 뭐가 좋아졌는지 전혀 모르겠다. 80년대의 과외 금지 시절 보다 지금의 교육 여건이나 환경에 좀 개선이 있을까? 적어도 교육 문제에 있어서는 전교조가 지금보다 더 본격화되고 더 강화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노동 문제나 개별 부문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서 제시했거나 혹은 제시 받은 것은, ‘노조를 만들자’, 대체적으로 이 한 문장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쩌면 조금은 다른 시대를 만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탄핵까지 가는 큰 흐름의 시작은 이화여자대학교의 학내 분규 과정이었다. 좀 황당한 총장이 이상한 과를 만들고 자기들 맘대로 뭔가 하려고 하는 순간에 학생들이 제동을 걸었다. 이게 더 커지면서 정유라의 특급 대우와 입학 과정에 대한 비리들이 막 쏟아져 나왔다. 이 사건은 커지고 커져서, 결국 현직 대통령의 하야가 아니라 파면까지 끌고 가게 된다. 나중에 생긴 사건들에 묻혀서 지금은 크게 주목을 안 하지만, “돈도 능력이야라고 했던 정유라의 되도 않는 얘기가 그들의 파멸에 도화선이 되었다. 그 때 이대 학생들 사이에서 나왔던 얘기도 대한항공 단톡방에서 나왔던 얘기와 같다.

 

운동권 나가라.”

 

좀 더 복잡한 맥락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대한항공에서 노조 나가라는 얘기와 학생들의 게시판에서 운동권 나가라는 얘기가 공통된 부분도 존재한다.

 

3.

전통적인 직장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산업 민주주의의 하위 분과이며, 작업장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렸다. 좀 거칠게 단순화시키면, 노조가 힘을 키워서 회사 권력을 제어하자, 이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개별 기업차원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좀 더 넓은 산업 차원에서 생각하지, 이런 얘기들이다. 전통적인 좌파의 기업 논의다. 이 얘기가 지금 한국에서 유효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답하기는 쉽지 않다.

 

노조와 기업, 아마도 자본주의가 망하는 그 날까지 계속될 질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좀 뉘앙스 조절이 필요할 것 같다. 노조와 직장 민주주의라고 큰 줄기를 잡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고민은 노조조직론정도일 것이다. 어떻게 노조 가입률을 높이고, 노조의 활동을 조금 더 강력하게 만들 것인가, 즉 어떻게 노조를 강화시킬 것인가, 그런 질문 하나가 남는다. 방법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다야?

 

이 줄기를 잡으면 아주 계몽적인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노조를 잘 몰라서 그런데, 그게 엄청 중요하고또 여러분이 잘 모르셔서 그러시는데, 노조가 결국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이 되는 게 자본주의가 더 나아지는

 

이 얘기가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그리고 결국은 2단계 접근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 힘 빠지게 한다. 1차로 뭘 하고, 2차로 필요한 것은 1차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

 

,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서 있는 장소 혹은 출발할 장소가 딱 여기다. 전통적인 접근 방법을 벗어나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논의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4.

몇 년 전에 현대자동차 노조를 둘러싸고 좀 큰 논쟁이 한 번 벌어진 적이 있었다. 직원 자녀들이 취업할 때 가산점을 줄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게 논쟁의 핵심이었다. 노조에서 이 가산점을 선거에서 공약으로 걸었었나 보다. 하여간 해야 한다는 게 노조 입장이고, 이건 좀 아니다, 그걸 말리는 사람들이 한 편이었다. 이 논쟁은 생각보다 많은 상처를 남겼다. 노조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 흐름은 노조와는 사실 별 상관없는 복지 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잘 얘기하지 않지만 회사 복지와 국가 복지라는 두 가지 다른 흐름이 있었다. 당연히 우리는, 미국을 따라서 회사 복지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보니까 회사가 어디냐, 이게 엄청나게 중요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그걸 제공해주는 회사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해졌다. 이게 끝까지 가다 보면? 그 회사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 권리가 되는 시대가 오게 된다. 우리가 이미 21세기 초에 만난 한국이다.

 

한국 기업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얘기인데, 외국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얘기다. 유럽은 그런 거 없으니까 안 다루고, 미국은 그게 기본이니까 안 다루고.

 

기업에 대해서는 중요한 얘기인데, 우린 거의 안 다룬다. 노조 얘기를 강화시키면, 사실 기업 복지에서는 정반대의 방향에 대한 결론이 나올 위험성이 있다.

 

5.

이런 게 내가 직장 민주주의를 다루기 위해서 세워 놓은 줄기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서술의 방법이라는, 양식과 구성의 문제를 만나게 된다. 자 이 문제는… (계속)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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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출간일이 6월 4일로 잡혔나봅니다. 이제 정말 제목을 정해야 하는 마지막 순간인데... 저는 1) 달달한 50대, 2) 어영부영 50대. 이 정도로 생각합니다. 부제는  1)개수작과의 결별, 2) 바쁘면 지는 거다, 이 정도 하면 어떨까 싶은...

 

의견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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