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무어의 <다음 침공은 어디?>, 하여간 이건 꼭 봐야 한다는 사람이 내 주변에 많았다.


극장 관객은 2만명 약간 넘는... 도대체 10명이 넘는 내 주변의 이 영화 본 사람들은? 심하게 내 주변이 왜곡되어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다음 침공은 어디?>를 보면서, 마이클 무어와 싱크로율이 최소 90%는 넘는 것 같다. 게다가 클라이막스 지점쯤에서, 울었다. 이 영화가 울 데가 어디 있다고? 그래도 울었다. 약간은 감동, 그리고 요즘 내 처지를 좀 생각하면서 잠시. 차별이 당당한 우리나라 생각하면서 억울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미국을 반성하면서 유럽 특히 독일이나 프랑스에 관한 책들은 그간 나온 것들이 꽤 있다. 독일의 휴가와 노동강도에 대한 얘기들, 프랑스의 육아와 학교급식...


그 외에도 미국 입장으로 보면 생각할 만한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은.


튀니지 얘기는 나도 처음 봤다. 튜니지 얘기부터 슬슬 눈가에 눈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아일랜드 얘기나 노르웨이 얘기 나오는데, 정말로 펑펑 울 뻔했다.


겁나게 재밌다...


마이클 무어의 뻔뻐니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이미 성공을 거두었으니까 그렇게 뻔뻔할 수 있는 건지, 그렇게 뻔뻔하니까 성공을 한 건지.


하여간 안면 딱 깔고 대놓고 뻔뻔질을 해도, 그것이 정당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감독, 마이클 무어!


딜레마가 남는다.


이 정도 재밌고, 이 정도 뻔뻔하고, 이 정도 완성도 높은 다큐 관객이 2만명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유머와 뻔뻐니즘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깊은 고민에 빠트리게 한 작품이다.


(그리고 튀니지에 가보고 싶어졌다...)


쎈 넘이 독한 맘 먹고 만든 건, 뭐라도 배울 게 있다.


어여들 한 번씩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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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한다. 물론 매 시대는 바뀐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시대마다 생각도 바뀌고, 해석도 바뀐다.


<홍사익 중장의 처형>이라는 책을 선물받았다. 도조 히데키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거부터 보라고.


홍사익을 내가 알까? 알긴, 개뿔을 아나.


도조 히데키와 같이 처형당한 일본의 a급 전범 4명 중의 한 명이다. 그리고 조선인이다. 그 정도가 아니라, 영친왕과 함께 일본으로 유학 보낸 청년 중의 한 명.


중장까지 올라갔고, 거기에 처형까지.


아우라가 보통 아니다.


1986년 일본 문예춘추에서 발간된 책인데, 이제 번역되어서 나왔다. 직접 산 건 아니라 선물이기는 한데, 어쨌든 내 손에 이 책이 들어온 것도 기적적인 일이다.


그래서 볼 책 리스트에. 주말에 일부라도 펼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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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상 개인적 '바람 일다'에 갔다. 일부러 예정을 했던 건 아닌데, 차 한 잔 마실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마침 개인전이 있어서.


일부러 엄청나게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가급적 보려고 하는 편이다. 보면 좀 아나? 자꾸 보면 알까 싶어서.


흙을 소재로 민중적 일상성 같은 것을 모티브로 했다. 그리고 아주 수다스럽다. 하고 싶은 말이 이렇게 많았나?



2008년 촛불집회부터 지난 겨울의 촛불집회까지의 이야기다.


용산참사에 대한 대형작품은 차마 눈 뜨고 보기가 어렵다. 그리고 농민집회와 물대포.


댓구 형식의 mb 그림과 박근혜 그림은 좀 참혹하지만 눈길이 끌린다.


'대한민국 재도약의 힘, 창조경제'는 저런 일이 언제 있어나 싶게, 그렇게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 있다.


이 사건이 예술가의 눈에는 어떻게 비추었을까?


마침 이재용도 나온다.





가끔 개인전에는 화가들의 메모나 작품 노트 같은 게 같이 전시되는 경우가 있다. 난 본작품보다 이렇게 사이드 디쉬가 더 좋았던 경우가 많다. 아주 오래 전에 이수근 전시회에서도 그가 남긴 그림 노트와 자녀들에게 만들어준 그림 책, 그런 게 훨씬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새만금은 임옥상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게 되었는가, 노트 너머로 약간의 이미지를 볼 수 있었다.


'새만금에 도요새 난다'


그런 메모가 있었다. 가슴이 약간 먹먹했다.


별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이런저런 잔상이 가슴 한 가운데.


이겨서 기쁘고 행복하다...


가 아니라, 예술가의 잔상 속에 남은 시대상, 그렇게 가슴에 맺혔다.


2002년에 많은 사람이 외쳤던 "오, 필승 코리아"와는 정반대편의 상이라고 할까? 잠시의 기쁨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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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얼굴 쳐다보는 거 사실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블로그 대표 사진은 바꾼지 얼마 안되는데, 사실 별 생각 없이 파일 크기 맞는 걸로, 그냥 잡히는 대로 걸었다. 거의 방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러다 자꾸 내 얼굴 보니까 우울해질려고 한다. 그냥 얼마 전에 큰 아이 읽어주느라고 읽은 동화책 표지를. 별 의미는 없지만, 내 얼굴 보고 있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바꾸는 김에, 페이스북 사진도. 몇 달 전 제주도 갔다오면서 찍은 아이들 사진인데, 그냥 오늘 강화도 가서 아무 생각없이 찍었던 사진으로. 역시 별 의미 없다.


1년 좀 넘게, 진짜로 돈이 부족해서 쩔쩔 맸었다. 몸부림을 쳤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진짜 몸부림을 치면서 살았는데, 이제 그 시기도 거의 끝나간다.


정말로, 아무 것도 안 했다. 아무 것도 안 사고. 그리고 일 때문에 정말 필요한 경우 아니면, 아무도 안 만났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부림을 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50대 에세이집 준비를 하면서, 부제로 '절대 자유는 절대 겸손에서', 이런 말을 생각했다. 뭐, 꼭 그 부제를 쓰겠다는 건 아니다. 별 이유 없이, 그런 제목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남 신경 쓸 일도 아니고, 몸부림을 치면서 살 일도 아니고.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어깨에 힘 빼고, 하고 싶은 대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요즘 청년들에게 어떤 어감으로 느껴질 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절대 자유'라는 표현이 좋다. 헤겔 용어에서는 '절대'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반대말은? 아마도 '악' 혹은 '악무한' 정도가 될 것 같다. bad infiny... 여기에 댓구해서 절대라는 말이 사용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불교적이기도 하다. 요 구절만 떼어놓고 보면, 얼마 전에 읽은 능엄경 얘기와 비슷하기도 하다 (말년의 세종이 능엄경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 같고, 그래서 새로만든 한글로 최초로 번역한 책이 능엄경이기도 하다.)


이제 50이다. 지켜야 할 것도 많고, 책임져야 할 것도 많고, 기타 등등. 마음이 무거웠다.


근데 절대 자유라는 말을 생각한 다음부터,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죽는 날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약간 마음이 편해졌다.


그냥 하던대로, 돈 조금 더 벌고, 애들 조금 더 잘 키우고, 에 또 에 또, 약간의 허세를 가지고, 그리고도 좀 넉넉하면서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고, 어어, 그리고 또 조금은 착하게, 에 또 그리하여...


요런 게 다 개수작이다.


자기 두 다리로 자기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질 수 있는 책임의 전부다. 그 외의 책임은, 사실 아무도 못 진다.


절대 자유, 그 정도 삶이면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을 문득.


그러면 진짜 <월든>처럼 그렇게 고독한 사색의 길을?


그런 건 아니고, 카메라를 다시 집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한동안 늘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가 여의도 가면서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닌데, 워낙 검색대를 많이 통과해야 하니까 가방도 안 가지고 다니고, 그냥 몸만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여름에 차도 없앴다. 이래저래, 카메라를 내려놓고. 또 마침 센서 청소도 해야 하는데, 이래저래 귀찮아져서 그냥 내려놓게 되었다.


당장 카메라를 바꾸거나 그럴 건 아니고, 내려놓았던 카메라를 다시 집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뭐, 그렇게 좋은 카메라는 아니지만, 내 능력으로는 그 정도도 감지덕지.


요즘 나오는 카메라 스펙을 보니까, 어마무시, 입이 딱 (안 갖고 싶다면 거짓말.)


원래 인생에서 최고 남는 것은, 얻어 걸리는 것이다. 마치 뭔가 엄청난 준비를 하고 기획을 하면서 세세하게 계획한 것 같지만, 그런 건 대부분 사후적으로 갖다 붙이는 얘기들이고, 진짜로 의미 있는 것은 얻어걸리는 것.


근데, 이 얻어걸리는 것도 무조건 적인 것은 아니고, 약간의 조건들이 필요한 것 같다. 뭘 좀 해야, 하다보니까 얻어걸리기도.


그 얻어걸리는 일이 자주 벌어지게 하는 것, 그것을 자유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유롭지 않으면, 얻어걸리는 건 없다. 준비한 것만 꾸역꾸역, 진짜로 몸부림이 몸부림을 다시 낳는다. 힘만 들고, 억지로 억지로.


그리고 그 얻어걸리는 확률을 좀 더 높이기 위해서 더 많이 전제조건을 떼고, 뮤턴트가 등장하기 편한 상황을 최대로 하는 것, 그것을 '절대 자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 좋은 점은?


늘상 보던 것을 조금은 더 신경 써서 보게 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다 보면 전혀 생각지 못한 딴 생각이 들게 된다.


그냥 눈으로 잘 보면서 생각하면 안돼? 그건 천재들이 하는 거고, 나는 절대로 천재 아니다. 기계의 도움도 좀 받고, 장비의 도움도 좀 받는 스타일이다. 왜냐? 난 평범하니까.


카메라를 통해서 보고, 사진을 통해서 보면 현장에서 있던 느낌과는 다른 각도, 다른 형태의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 자꾸 하다보면 카메라 없이도 그런 경지?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기는 좀 어렵고.


포장하는 일이 아니라, 만드는 일을 좀 더 하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블로그든 페이스북이든, 눈이 가게 되고, 생각을 고정하게 되는 사진들을 치워버렸다. 아주 약간의 느낌만 남고 담백한 것. 그래야 눈이 자유로와지고, 생각도 자유로와질 것 같은, 그런 느낌적 느낌.


열심히 한다고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참 잔인하다.


그렇지만 좀 맘 편하게 생각하면 가끔 얻어걸리는 게 있다. 그래서 살만하다.


이런 점에서 세상이 공평하지는 않다. 몸부림을 치면서 살려고 해도, 결국 개수작으로 종료되는 잔인함이 있다.


그렇지만 가끔은 얻어걸리는 게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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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작업하는 감독이 영화 <박열>이 최소한 이 영화보다는 일본 각료들의 회의 시쿼스가 훨씬 낫다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찾아서 보게 된.


일본의 사소설에 기반한 개인 영화는 이 얘기를 하든 저 얘기를 하든 별 상관이 없는데, 조금만 심각한 영화에 대한 건 한국에서는 여전히 말하기 힘들다. 그냥 가만 있는 게 장땡?


영화 <일본 패망 하루 전>은, 사실 그렇게 재밌게 보지는 않았다. 일본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고 '하따 일본넘들 징하제'하는 한국 사람들 아니라면, 이걸 앉아서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한다.


그렇지만 남는 것이 아주 없지는 않다.


전쟁광이라고, 어차피 역사에는 그렇게 남게 될 패전국 사람들이 그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심각하지 않은 스케치들이 몽타쥬라고 생각하면 생각할 거리가 좀 남기는 한다.


그리고 나도 또 일본 현대사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상식도 약간 남기도 하고.


일본이 평화헌법을 과연 고칠까? 흐름으로만 보면 결국 고칠 것 같은.


우리보다는 일본 사람들에게, 곰곰이 한 번 생각해봐, 그런 효과가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몇 년 되었는데, 야스쿠니 신사에 가 본 적이 있다. 그냥 간 정도가 아니라, 거기서 해주는 40분짜리 홍보 영화도 보았다.


배경 음악이 힙합이라, 그야말로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 아주 몸부림을 친다는 생각이 잠시.


군사정권에서 육군과 해군을 대표하는 장관이 있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도죠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나미 육군대신을 맡은 아쿠쇼 코지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꼭 자살하는 장면을 그렇게까지 길게 처리해야 했을까 싶은.


(보니까 심지어 나는 <우나기>도 재밌게 보았다. 이 양반 나온 영화 한 두 개 본 게 아닌데, 전혀 기억을, 끌끌...)


역사의 전환기에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굵은 흔적을 남긴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찬찬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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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키우면 주말 나기가 아주 어렵다. 어린이집은 놀고, 그렇다고 매 번 어딘가 갈 수도 없고.


 


주말 지나고 나면 서로 지나면서 가족애가 돈독해지는가? 아내와 주말마다 싸우거나 냉전인 빈도수가 점점 더 늘어난다. 올해부터 아내가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일이 익숙해지면서 수입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달부터, 아내가 버는 돈이 우리 집 생활비랑 비슷해졌다. 내년에는 아마 우리 집 생활비하고 조금 남을 것 같다. 물론 그 사이에 생활비를 겁나게 많이 줄였다. 그리고 나는 진짜로 미니멀리즘의 삶을 구현하고 있다. 화려함은 점점 더 몸에서 사라지고 있다. 원래도 화려할 거야 없었는데, 이제는 추접스러운 것으로 넘어가기 직전이다.


 


아내가 벌어오는 돈이 많아지는 것은, 그만큼 아내가 더 정신 없이 바쁘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다음 주에 나도 이것저것 마감이고, 아내도 중요한 발표가 있다. 그런 주말을 지내기는 더더욱 힘들다.


 


방법이 없어서 오늘 오후에는 내가 애들을 대리고 공원에 갔다. 원래는 차 타고 나가는 길에 아이들이 차에서 낮잠을 자지 않을까, 그런 얄팍한 생각이었다.


 


공원에는 마침 분수가 올라오고 있었다. 둘째가 너무 재밌게 놀았다. 마침 오전에 로보카 폴리 일행이 계곡에서 캠핑하는 그림을 가지고 한참 놀았었다. 재밌게 노는 건 좋은데, 둘째가 결국 분수에 옴팡 물을 뒤집어썼다. 조금은 더 있고 싶었는데, 갈아입을 옷을 가져가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후퇴.


 


계절이 넘어가는 순간이면 늘 생각이 많아진다. 그렇게 매 번 몇 개의 계절을 보내고, 또 다른 계절을 맞는다. 그 순간들이 모두 기억이 날까? 그 때는 생각이 많았었는데, 지나보면 사실 또 그렇게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그 때만 그렇게 감정이 깊었던 걸까?


 


올해 마지막 분수를 보면서, 뭔가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산다는 게 뭔가 하는 생각도 잠시. 세상을 보고, 시대를 보다가, 정작 내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별 생각을 못했다는 생각이 문득.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어지고, 뭐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집착과도 같은 생각도 사라졌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나이테가 하나씩 늘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삶은 씹다가 버린 껌처럼 되었다. 그러면 의미가 없는 거냐? 무엇인가 공격하고, 누군가 욕하면서 삶의 의욕을 느끼는 것보다는, 이 심심하면서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 더 진짜 삶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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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핀 것은 처음 본 것 같다. 산에 그렇게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절에 꼬박꼬박 가는 것도 아니다.


큰 애가 기침이 심상치 않아서 병원에 갔다가, 그냥 바로 집에 들어가기가 좀 그래서 집에서 멀지 않은 봉원사에 잠깐 들렸다. 별 생각 없이 잠깐 애들하고 산책이나 할까 싶은.


그래도 연꽃이 핀, 쉽지 않은 구경을 했다.


지난 번 봉원사에 왔던 게, 아마 애들 태어나기 이전인 것 같다. 몇 년 되었다.


별로 절에 오는 편은 아닌데, 봉원사에는 외할머니의 기억이 좀 담겨 있다.


태어난 곳이 봉원사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가 모두 교사라서, 좀 길게, 외할머니 손에서 컸었다. 그 때 기억이 지금도 내 인생에서는 가장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 성격이 외할머니를 닮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삶에 가장 많이 영향을 남긴 분이 외할머니인 것 같기는 하다.


일곱살 때인가, 죽을 고비를 한 번 넘기시고는, 내가 학위 받고 현대 다니던 시절까지 살아계셨다. 말년에는 자주 뵙지 못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가 봉원사에 기와를 사셨다는 얘기는 아주 나중에 들었다. 그랬는지 아닌지, 내가 알기는 어려웠고.


내가 기억하는 건, 어렸을 때 할머니 손에 잡고 봉원사에 와서 절밥을 먹고 갔던 건 기억에 남는다. 설탕을 묻힌 아주 큰 튀각이었는데, 정말로 맛있게 먹었던 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밥 먹고 나오는데, 문 앞에 있던 스님이 튀각을 한 줌 손에 쥐어주였던 것도 기억이... 나중에 생각해보면 네 살 아니면 다섯 살 때쯤인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연꽃을 보면서 꼭 외할머니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그건 아주 오래 전 기억이고, 나는 또 내 삶이 정신이 없다.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내 삶은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은? 정신도 없고, 굉장히 쫓기는 마음이 강하고, 되는 건 없고, 그래서 편안한 시기는 아니다. 날 도와줄 사람은 거의 없고, 내가 도와야 하는 사람은 겁나게 많고 (가끔은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짜증이 거의 극한으로 가고 있는 시기라고 하면, 아주 틀리지는 않을 얘기일 것 같다. 폭발하고 싶은 것을 겨우겨우 누르고, 버티고 있다고 하면 맞을까?


운 좋게 피어난 연꽃을 보고, 약간 마음이 풀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풀렸다기 보다는, 이제부터 풀어나갈 수 있는 약간의 단초를 보았다고 할까?


강하고 편한 것 같아 보이는 삶, 많은 경우 개뻥이다. 삶은 늘 힘들고, 건조하고, 그 사이로 걱정이 소나기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라도 아름다운 것을 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좋은 것은, 그 아름다운 것이 겁나게 비싼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산과 강을 건너서 가야만 그 아름다운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래서 여전히 삶은 부디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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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그냥 애들하고 노래 부르고 노는 중이다.


생각보다, mp3 화일이 다루기가 쉽지 않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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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노래부르는 걸 좋아한다. 이제 좀 있으면 세 번째 생일이다. 곰 세마리.


어느 토요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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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작업할 연출 처음 만나는 날이다.

빈 손으로 만나기가 밍숭맹숭해서 cd 한 장.

별 거는 아닌데,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할 때 주로 집어드는 음반.

중2 때, 태어나서 두 번째로 산 lp였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들은 lp가 되었다.

내가 소년이 될까 말까하던 시절의 감성.

다행히 전세계 어디가나 대부분 판다.

비 많이 내리는 오늘 같은 날 더욱 땡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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