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제일주의


 


1.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다빈치 코드>를 아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그가 작년에 <비틀즈 : 에잇 데이즈 어 위크>라는 다큐를 만들었다. 나도 다큐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모든 다큐를 다 볼 수는 없다. 우연히 이 다큐를 보고, 꽤 충격을 받았다. 바로 다큐를 구매하고 며칠 동안 보고 또 보고,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또 보았다. 나만 본 게 아니라, 내 주변의 동료들에게도 다 보라고 했다. 동료들은 다 보았고, 모두들 엄지 척.


 


비틀즈는 63년에 혜성과 같이 등장하여 64년에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강타한다. 도대체 이 열풍이 언제까지 갈까, 비틀즈 현상에 대해서 사람들은 해석도 잘 못했고, 예측도 못했다. 66 8,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마지막으로 비틀즈는 돈 받고 하는 대형 공연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들의 끝은 좋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공연 자체도 초라했고, 어느 관객이 공연장을 뛰어다니는 난장을 치면서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것이 공식적인 비틀즈 공연의 마지막이었다.


 


여기까지는 뭔가 했다가, 잘 안되었다가, 접었다가규모가 커서 그렇지, 평범한 얘기다. 물론 론 하워드도 "애네들, 진짜 잘났어요", 이런 평범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 상업영화 감독이 갑자기 다큐를 집어든 것은 아니다.


 


그 후로도 상당 기간 그랬지만, 비틀즈도 초기 계약조건이 좋지 않았다. 앨범은 큰 돈이 되지 않는 구조였고, 공연을 해야 비로소 돈을 벌 수 있었다. 더 크게, 더 자주, 그렇게 공연을 했다. 그리고는 지쳐갔다. 이 상황에서 제일 처음 문제점을 느낀 것은 존 레논이었다. "Help"라는 노래가 그렇게 존 레논의 작사작곡으로 만들어졌다. 그 당시만 해도, 나머지 멤버들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이게 뭔 소리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샌프라시스코 공연이 엉망이 되고 아마 폴 메카트니가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Enough!"


 


아마도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실제로 그 공연을 마지막으로, 진짜로 비틀즈가 공연을 모두 접는다. 다큐에서는 이 장면이 진하게 온다. 아마 비슷한 구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1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그리고 다시 3부 리그로, 그렇게 점점 더 하위 리그로 내려가면서도 어떻게든 상황을 더 끌고 가려고 할 것이다.


 


90년대 후반에 미사리가 한참 뜨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미사리에 놀러 가자는 말을 많이 했었다. 한 번 가보고는 다시 안 갔다. 거기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도 고통스럽겠지만, 그걸 지켜보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좀 이후에, '미사리 가수'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얘기다.


 


공연을 그만둔 비틀즈의 다음 얘기는 다큐에서 아주 짧게 지나간다. 그렇지만 길게 사연을 서술하면서 충분히 감정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얘기는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조금 감정선이 강한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한 번쯤 울기도 할만할 것 같다.


 


비틀즈는 스튜디오로 돌아간다. 그리고 정말로 노래만 만들고 녹음만 한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들이 만들어진다.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말자."


 


비틀즈 멤버들끼리 약속한 것은 딱 하나였다. 예전에 했던 것들과는 어떻게든 다른 걸 하자. 그렇게 비틀즈 후반기의 노래들이 만들어진다. 여기서부터가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다.


 


"렛잇비" 앨범을 준비하는 와중에 애플음반사 옥상에서 깜짝 콘서트를 한다. 애초에 애플음반사와 앨범 계약을 할 때 그 내용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더벅머리를 하고, 같은 스타일의 양복을 입고 있던 네 명의 청년은 66년부터 4년 동안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개성은 극대화된다. 그 모습을 그 유명한 옥상 컨서트에서 볼 수 있다.


 


 


2.


살다 보면 뭔가 잘 안될 때도 있고, 의미 없이 재미가 없어질 때도 있다. 잘 안되거나, 하기 싫거나. 위기는 그 둘 중의 하나이다.


 


왜 안 되는가? 그 이유를 알면 세상에 안 되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중에 지나보면 알 수 있을지 몰라도, 뭔가 안 되는 순간에 그 이유를 잘 모른다. 알 것 같지만, 사실은 모른다. 안 되는 이유를 알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면 서운할 것 같아서 안 되는 이유를 이것저것 대보지만, 사실은 모른다.


 


안 되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거의 대부분은, 핑계다.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이유를 모른다. 같은 이유로, 잘 되는 사람도 잘 되는 이유를 모른다.


 


"자기가 잘 해서 잘 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할 일일 것 같다. 분석도 이상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성격도 이상해진다. 자기가 잘 하는 것, 거기에도 수많은 이유가 있다. 엄청나게 많은 동료들의 도움이 있고, 많은 사람의 지지가 있고, 여기에 인생에 한 두번 올 법한 운도 따랐고


 


자기가 잘 해서 잘 되는 거, 세상엔 그런 거 없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없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결국에는 자본의 입맛에 맞는 것잘 하긴 뭘 잘해, 그냥 자본에 예뻐 보인 거지.


 


자기가 잘 해서 잘 된 게 아니라면, 논리적으로 곤란한 일이 생긴다. 잘 되는 것도 이유를 잘 모르는데, 안 되는 것의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잘 되는 것의 이유도 불분명한데, 그것의 반대 상황인 안 되는 것의 이유를 우리가 알 수 있을까? 그냥 재수가 없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최소한 '큰 바위 얼굴' 같은 얼굴은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논리적으로는 그렇긴 한데, 결심하는 순간이 하나가 필요하기는 하다. 66년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엉망으로 끝내고 비틀즈 멤버들이 했던 결정은, 말 그대로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렇다고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안티테제, 그야말로 비틀즈의 그룹 역사가 서양철학적 논리 구조와 같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뭔가 전환이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하나가 있기는 했다.


 


그런 복잡한 얘기들을 내 식으로 하나의 용어에 묶어 넣었다.


 


창작 제일주의.


 


옳고 그르고는 모르겠고, 좋다와 나쁘다도 모르겠다. 될 거다, 안 될 거다, 그런 건 더더욱 모르겠다. 그렇지만 뭔가를 만들기는 해야 한다는 거.


 


그런 걸 나는 창작 제일주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진짜 삶을 삶답게 만드는 힘은 스타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있는 거 아니겠는가 싶다. 만드는 거, 그게 재밌는 일이다. 재밌고 재미없고, 되고 안 되고는 그 다음 일이다. "본질이 스타일에 있지 않다…" 이 생각을 하는데 50년이 걸렸나 싶다.


(그리하여 10년만인가, 블로그 이름을 '우석훈의 임시연습장'에서 '창작 제일주의'로 바꿨다. 내 이름을 뺐는데, 이름 필요 없고. 수식어도 필요없고. 창작을 하느냐 마느냐, 행위만 남는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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