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극은 어렵다. 위아래 편차가 너무 크다. 적당히 영점 맞추기가 어렵다. 잘 된 영화와 잘 안 된 영화 사이의 격차가, 하늘과 땅 차이다. 거기다 돈은 많이 든다. 적당히 작게, 이런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걸 감안하고 봐주느냐, 그런 건 또 아니다.

 

영화 <흥부>는 여러 가지로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주었던 영화다. 매우 김주혁에게는 이게 유작이 되었다. 이래저래 쉽게 말하기가 어렵다.

 

원래의 얘기와는 상관없지만 글이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게 된 영화로 <대장 김창수>를 생각할 수 있다. 이게 김구 얘기인 것은 마지막 엔딩에서나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리고 그걸 끌어가는 큰 얘기는 인천 감옥에서 김구가 수감자들에게 한글과 한문 등 글을 가르치는 과정이다.

 

영화 <흥부>는 기본적으로는 작가에 대한 영화다. 여의도에만도 수만 명의 이무기가 있다고 하는 드라마 작가로 치환하고 보면 좀 더 편할 것 같다. 1류와 2류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드라마 작가들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고, 뭘 꿈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영화 각본을 맡은 백미경 자신의 삶이 상당 부분 영화에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끔 각본의 세계관이 영화의 중심을 구성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형식적으로나 본질적으로나, <흥부>도 그런 영화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흥부 얘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상상해본 사람 역시 없을 것 같다. 글을 쓰는 작가, 흥부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시대상은 헌종, 조선조 후기의 최고 인기스타 효명세자의 아들이다. 효명은 그냥 아우라로만 나올 줄 알았는데, 후반부의 마당놀이 장면에서 탈을 쓰고 소환된다. 아 효명… (나도 효명세자에 대한 책을 쓰는 게 영원한 로망이다.)

 

그리고 수렴청정을 하는 대비, 어 누구지? , 깜딱야, 김완선이다. “피에로는 나를 보고 웃지”,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웃을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김완선의 등장에 , 이건 영화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역시 망한 영화인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선조로 김창완 아저씨가 나온 적이 있다. 그 때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영화 끝날 때까지도 잔상만 남지, 김창완인 줄 몰랐다.

 

이후로는 장면 장면 넘어갈 때 개연성들이 좀 안 맞는다. 정치적 라이벌인 김씨가 사약을 받게 되는 장면은 딱 컷트 두 개로 처리된다. 물론 그 전에 눈치챌 정황들이 아주 없지는 않은데, 갑자기 , 이 배신자 새끼”, 요 대사 하나를 남기고 사약 마시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팽팽할 수도 있던 라이벌 구도의 형성이 무너지고 난 뒤에 영화는 다시 긴장을 끌어올리지는 못한 것 같다.

 

나중에 <심청전>의 저자로 설정된 천우희가 독박 옴팡 뒤집어쓰고 그냥 죽음을 맞는 것도 조금은 어색하다. 뭐야, 여자라서 저렇게 수동적으로 스승 사랑을 하라는 거야? <곡성>에서 소름 이빠이 오르게 했던 천우희가 갑자기 1차원적 인간으로 내려온 느낌이다.

 

원래 마당극이 이렇게 점프가 많잖아? 그럴 수도 있기는 한데, 원래 마당극의 인물들보다도 더 평면적인 인물들의 연속이다.

 

3.

결국 영화가 달려간 곳은 백성이다. 그리고 그 백성들은 임금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조가네의 역모를 막아낸다

 

이게 근본적인 딜레마이기도 하다. 너무 외국 것만 좋은 거시여, 그런 것도 좀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마리 앙뚜와네뜨에게 달려가고 도망가려는 루이 16세를 막아서서, 결국에는 단두대에 올리는 그 기세등등한 프랑스 여인들의 얘기와는 좀 거리가 멀다. 굳이 이렇게 기능적으로만 작동할 백성 얘기를 보자고 앞에서부터 머리에 스팀을 올렸나, 생각하면 좀 뒤가 허무하다. 그게 백성 패러다임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는 왕과 귀족 그리고 외세인 일본의 한계를 넘어선 동학의 어린이개념은 더 모던하다. <흥부>에서 보여준 백성은 좀 올드하다. 왕이 나쁜 게 아니라, 조가나 김가에 휘둘리지 말고 제대로 좀 하라고 말이여옴머머머, 이거 뭔 말이여?

 

현실과 이런 백성들의 인식이 아주 다르다고 하기는 어렵다. 비운의 세자인 효명세자가 끊임없이 이 시대에 소명되는 것과 같은 이해다. 고종 역시 서류상으로는 효명의 핏줄. 효명이 왕이 되었더라면, 이 아쉬움을 떨쳐내는 것과 백성에 대한 끊임없는 호명이 올드해 보이는 것이 어느 정도는 같은 맥락일 것이다. <흥부>는 구조적으로 요 틀에 갇혔다. 그래서 익숙하고 때로는 진부해보이기도 하는, 흔히 하는 조선 말기의 역사 그대로다.

 

그래도 새로운 시도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효명에서 철종에 이르는 기간을 우리는 맨날 비극의 역사라고만 하는데, 음악 등 예술의 눈으로 보면 가장 멋지게 예술이 피어난 기간이기도 하다. 왕실을 틀어쥔 세도가들 얘기만 이 시대에 있던 것 아닌 듯싶다. 그래서 이 시기에 집중한 얘기들이 좀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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