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 카메라 쓰던 시절, 세검정 옛날 내 방. 여기서 책 10권 넘게 쓴 것 같다.. 아이 태어나기 전.) 

 

나한테 왜 계속 책을 쓰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제일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이다. 수없이 많은 답변을 해봤는데, 아마도 가장 진실된 답변은 그냥 책 쓰는 게 좋아서”, 이런 것 같다. 이걸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헝그리 정신이 가장 표준 답변이기는 한데, 나는 그런 헝그리 정신을 가졌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책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하는 거의 대부분의 일을 대충대충 한다. “이거 아니면 나는 죽는다”, 그런 생각 자체가 싫다. 그리고 너무 몰입해서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는 그런 바보 같은 일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대충대충, 건성건성, 되거나 말거나, 그런 자세로 살아간다. 그런 내가 책에서 만큼은? 에이, 그럴 리가 있나. 그렇게 목숨 걸고 책을 쓰면, 3권에서 4권 사이, 자살하고 싶은 순간을 한 번쯤은 맞게 된다. 책 쓰는 게 뭐라고, 자살 충동을 느끼고, 우울증 가고, 집안 식구들 달달 볶고.. 그건 아니다. 권장생 선생이 그러시지 않았나, 인생은 소풍 같은 것이라고. 인생의 소풍인데, 책이 목숨 걸? 그런 건 아니다. 그러면 2~3년 하다가 극도의 회의감에 빠져서 결국 가보지 않은 길을 내려놓게 된다. 대충, 살살, 그게 10년 이상 책을 쓰는 첫 번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관한 책>10년 넘게 책을 쓰면서 생겨난 약간의 노하우에 관한 책이다.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많이 쓰다보니까 요령 같은 것도 생기고, 패턴 같은 것도 생겼다. 그리고 저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 가짐 같은 것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소설가가 되는 것과 교양이나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쓰는 것은 좀 다르다. 소설 작법이나 시나리오 작법 같은 것은 꽤 나온 책이 많은데, 교양 분야는 아직 생각해본 사람이 없다.

 

예를 들어보자. ‘필자라는 표현을 쓸까 말까? 나는 라고 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요런 문장을 본격 책에서 처음 쓴 사람이 나다. 신문에도 나는 라고 쓴다. 요즘은 필자라는 일본식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내가 데뷔하던 시절, ‘라고 쓰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었다. 주로 비평하는 문학 쪽 선생님들이 나를 보면서 요즘 것들, 기본이 안 되어서”, 아주 혀를 끌끌 찼다. 대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거는 영어구요, 불어는 on,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주어 처리를 합니다”, 내가 싸가지 맞기는 맞다. 환갑 가까운 초절정 유명 평론가들에게도 불어 문장으로 되치기를 했다. 영어의 피동형과 우리 말의 주어에 관한 얘기다. 왜 건방지게 라고 하느냐고 아주 지랄들을 하셨다. 그래서 근대 이후에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해진 글에 관한 얘기로 뭐라고 되받아줬다. 물론 누구나 다 아는 에밀 졸라의 <J’accuse>에 관한 얘기다. 나는 고발한다, 누가 고발하죠? Je, 에밀 졸라가 는 이라고 했다. 에밀 졸라가 그 사건은 고발되었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시일야방성대곡, ‘오등은이라고 시작된다. ‘를 왜 쓰느냐, 무슨 소리예요? 선생님은 지금 영어 얘기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 말로 글 쓰는 사람들이구요. 불어, 독어, 다 그렇게 안 해요. Je, ich.. 베토벤이 ich liebe dich라고 했지요, 사랑하게 되었다라고 안 했어요. 뭔 소리예요? 나도 참 성질 지랄맞다. 하여간 그 사건으로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아버지들한테 개싸기지로 단디 찍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책에서 내가혹은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은 그렇게 스타일이 되었다.

 

내 책은 일반적인 책에 비하면 파격 투성이다. 물론 나는 더 파격으로 가고 싶은데, 아직도 가슴이 좀 쫄려서, 더 과감하고 더 과격하게 못 간다.

 

독자가 읽을 수 없으면, 그건 쓰나마나, 독자에게 감정이 안 생기면 그것도 쓰나마나. 내가 책을 쓰는 기준은 토요일 밤에 시작해서 일요일 아침에 한 숨에 읽을 수 있는 것, 그게 아니면 안 쓴다. 물론 일부러 거꾸로 간 경우도 없지 않지만, .. 그 책은 망했다. 결국 12권으로 기획된 경제 대장정 시리즈가 그 실패로 서게 되었다. 언젠가 해보고 싶은 코멘터리 북도, 바이바이.

 

그렇게 꾸역꾸역 오다 보니 36권을 썼다. 감정, 밀도, 흐름, 시퀀스, 꺾기, 이런 내가 사용하는 기법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기능 보다 100배는 중요한 게 일관성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삶이라는 게 그렇게 일관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 삶도 책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엉망진창이었다. 논리는 일관성을 가질 수 있지만, 삶이 일관성이 없으면 그 논리도 상황 논리에 빠진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안 그럴 수가 없다. 몇 년 하고 좌판 걷을 거면 몰라도, 10년이 넘어가면 논리적 일관성만으로는 일관성을 유지할 수가 없다.

 

결국 저자가 되는 것은 책을 완성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저자를 완성시키는 과정이다. 그게 제일 어렵다.

 

그래서 책은 연예인이나 배우와는 다르다. 책은, 연기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하는 사람, 서술하는 사람, 그 삶이 그대로 책에 투영된다. 연기와도 다르지만, 보고서와도 다르다. 보고서는 기능적이다. 누가 쓰느냐고 별로 안 중요하고, 기능과 결론만 중요하다. 책은 다르다. 그리고 그 인생이 거짓 인생이면, 책도 거짓이다. 책을 둘러싼 저자와 독자와의 메타 텍스트는 그렇게 형성된다. 거짓말을 한 번 할 수는 있지만, 10년 넘게 하기는 어렵다.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 이런 얘기를 두 번 하고 싶다. 책에 관한 것 한 번, 영화에 관한 것 한 번, 막상 해보니까 이렇더라.. 영화는 한 10년 후쯤, 그 때쯤 하면 어떨까 싶다. 나도 지식과 경험이 좀 더 쌓이고..

 

책은?

 

기능적으로는 지금 바로 써도 된다. 앞으로 내가 14권의 책을 더 쓰면 50권이 된다. 그 동안에 변화는 오겠지만, 기술이나 기량이 점프하듯이 늘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체득하고 이해한 기술만 가지고도 많은 사람들이 책 쓰는 시간을 1/3 이하로 줄여줄 자신이 있다. 일반인도 자신이 살아온 삶을 가지고 어느 정도 이상 수준의 책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 기능에 관한 교과서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다.

 

내가 남자 애들 둘 보면서도 올해 책 3권을 냈다. 내년도 3권이다. 이렇게 하는 건, 엄청나게 내가 아는 게 많거나, 머리가 거의 천재급, 절대 이런 건 아니다. 기능으로 처리할 수 있는 건 기능으로 처리하고, 좀 더 감정적인 것이나 섬세한 데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 때문이다. ‘굼뱅이의 기는 재주에 관한 책이 의미가 없거나, 뭔가 더 많이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못 쓴다. 요즘 내 책이 엄청나게 잘 팔리거나 그렇지는 않다. 책 시장이 힘들어서 그런 것도 있고, 내 인기가 바닥을 달리는 이유도 있고. 좀 복합적이다. 나도 그 상황은 안다. 그래도 꾸준히 하다 보면 티핑 포인트가 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인생이 원래 좀 그렇다. 참고 기다리면 된다.

 

책에 관한 책을 지금 낼 수는 없다. 지 책도 못 파는데, 누구한테 책이 이러쿵 저러쿵, 지랄하네,그런 헛소리 취급 당하기 딱 좋다. 그래서 티핑 포인트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중이다. 이번 직장 민주주의 책에서 그런 티핑 포인트가 올까 싶었는데, 아직은 아니다. 1~2년 내에 오기는 할 것 같다.

 

그 티핑 포인트를 넘기면 쓰고 싶은 책이 또 하나 있다. 몇 년 전에 일본에서 제안이 왔던 책인데, <촌놈들의 제국주의> 일본판.. 그냥 하면 되는 일인데, ‘책에 관한 책처럼, 이것도 티핑 포인트 이후에 내야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쟁여놓고 있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누군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인생에도 사이클이 있다. 책에도 사이클이 있다. 어려울 때는 고개 숙이고, 힘들 때는 버티고, 잘 나갈 때에는? 그 때도 고개 숙여야 한다. 그래야 멀리 간다.

 

나는 별 욕심은 없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 두 개를 생각해보니까, 국민 경제가 IMF급으로 망하지 않는 것 그리고 살아서 전쟁 나지 않는 것, 이 두 개다. 나는 그렇지 않은 세상을 위해서 성실히 는 아니고 살살’ – 살아갈 뿐이다.

 

돌아보면, 내가 많은 사람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하는 건, 내 삶 그 자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초창기에 장정일 선배가 그런 얘기를 했다. “10년간 꾸준히 책을 쓰면, 부자는 아니더라도 밥은 먹고 살게 될 거다..” 실제 지내보니까 그렇다. 10년이 넘도록, 밥 먹고 걸 걱정하지는 않았다. , 워낙 쓰는 돈이 적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인지, 그야말로 뼈저리게 느껴질 정도다.

 

마치 장정일 선배가 나에게 도움을 주었듯이, 나도 다음에 올 사람에게 작은 참고자료는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은 개똥이라고 생각하는 순실이 시대도 지났고, 책이 뭐여, 아직도 책 보는 사람 있나, 이러고 있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그들에게 책이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보여주고 싶다. 책 한 권 남기는 게 평생 소원인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게 한국의 힘이고, 저력이다. 나는 그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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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젊은 연구원들하고 차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책은 겁나게 안 팔렸지만, 육아 에세이 가지고 같이 얘기했으면 한단다. 그래도 이게 정권 바뀌어서 좋아진 것. 야당 시절에는 혹시라도 나랑 만났다고 무슨 해꼬지를 당할지 몰라서, 정말 친한 경우 아니면 만나지도 못했다. 문재인 대표 시절, 우리 도와주다가 민간 연구원의 박사 한 명은 정말 짤릴 뻔했다. 그걸 좀 도와줘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서.. 결국 새누리당 국회의원 도움을 받았다. 된장. 야당 시절, 다들 몸사리느라 결국 집권 여당의 도움도 받은. 내가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정말 손이 발이 되게 빌었었다. (그 때 도와줬던 사람들 좀 챙겨줘야 하는데, 내가 이 꼴이라.. 한국은행 출신 한 명은 결국 시골에 집 짓고 낙향. 가슴이 무너지는.)

언제나 내 주변에는 쥬니어 박사들이 많았고, 그들과 기쁨과 슬픔을 늘 함께 했었다. 지난 2년간, 애들 보느라 새로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이, 그냥 버텼던.

이젠 둘째 폐렴도 끝났고, 나도 한시름 덜었다. 실무진들과 차도 좀 마시고, 수다도 떨고. 농업 관련된 연구소들은 다 나주로 내려가서, 지나면서 차 한 잔 하기가 힘들다 (원장이 절친급인데 ㅠㅠ..) 연구소, 원장이나 부원장들이 친한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사실 그런 대가리들은 실제로 연구할 때 아무 도움 안 된다 (행정들 하시느라, 얼마나 바쁘신지.. 그나저나 공무원들은 원장들 그렇게 앉아놓고, 진짜 시녀처럼 무려먹으신다.)

연구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그냥 바닥에서 박박 기는게 결국은 가장 효율적이다. 시간과 품이 들지만, 그만큼 배우는 게 많다.

내 인생도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같다. 난 그냥 영원한 실무자로 바닥에서 살아갈까 싶다. 보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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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진 뒤적거리다 보니, 2011년에 노회찬 사진이 나왔다. 맙소사. 진행자는 이재영.흔들리기는 했지만 이재영 사진도 있다. 내가 몸처럼 사랑했던 두 친구였다. 그들은 벌써 떠나고 나만 남았다..)

 

1.

한 해가 간다. 어제는 아내가 요즘 내가 하는 일들의 흐름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저녁 때 아내가 회의에 갔다가 늦게 와서, 애들 데리고 내가 좀 고생한 날이기는 하다. 글쎄.. 요즘 내가 하는 일이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덜컹덜컹, 이리 박고, 저리 박고..

 

어쨌든 한 해가 지나면서 생각해보면, 그냥 꾸역꾸역 하기로 한 일을 빵꾸내지 않고 그냥 버티기에 정신 없던 시간들이었다. 가끔은 왜 이러고 사나 싶지만, 그래도 별로 방법은 없다. 애 둘 어린이집 보내고, 회사에서 정신 없는 아내 뒷바라지 하면서 버티는 중이다. 이 이상은 나도 잘 모르겠다.

 

뭔가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예 없다면, 그건 좀 뻥이다. 나도 사람인데, 뭘 좀 멋지게 해보고, 근사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왜 없겠는가? Mbc 쪽에서 경제방송 얘기가 잠시 나왔을 때에는 별로 안 흔들렸는데, 생각지도 않다가 sbs에서 라디오 진행에 대한 얘기 들었을 때는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몇 초, 방법 없다. 어렵다고 했다.

 

1년 내내, 특히 상반기에는 뭐 해보겠냐, 어렵다,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걸 버티고 참아내는 것도, 사실 감정적 에너지 소비가 많은 일이다. 물론 통장에 돈이 겁나게 많고, 아무 일도 안 해도 되면 좀 더 버티기가 쉬울텐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그냥 세 끼 밥 먹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

 

50이 되면 난 뭘 할까? 모르겠다. 생각해 놓은 것도 없고, 생각해본 것도 없다. 그냥 에세이집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를 쓰면서, 마음만 준비한 것 같다. 뭘 할지, 모르겠다. 둘째가 다섯 살이다. 최소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갈 정도까지는 본격’,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직도 4~5년은 이렇게 살게 된다. , 길다.

 

2.

뭘 같이 하거나 뭘 해보라는 얘기는 엄청나게 온다. 장관 자문, 뭐 이런 것들은 그냥 한 칼에.. 쳤는데, 조한혜정 선생 같은 식구 같이 지내는 양반이 뭘 하자고 하면, 이건 또. 그래서 하나씩 둘씩, 정부의 작은 기구에 이름이 올라간다. 된장. 이거 아닌데. 억지로 겨우 시간을 만들었더니, 또 무슨 봉사를 해달라고. 내가 봉사할 처지가 아닌데. 이거 또 인생 옆구리 터지는 느낌인데.. 그래도 또 어떻게 꾸역꾸역.

 

젊은 박사들이 때때로 이런 책, 저런 책, 이런 연구, 저런 연구, 그렇게 얘기할 때면 잠시 삶이 행복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아주 인심 사납게 굴지는 않았나벼? 내 삶에 크게 도움되는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성심성의껏, 내가 아는 만큼.

 

쓰고 싶은 책이나 써 달라고 부탁하는 책들이 죽 늘어서 있다. 쓰는 거는 그냥 일정 맞춰서 쓰면 되는데, 잘 안 팔린다. 초창기에는 출판사에서 잘 안 내줘서 쓰고 싶은 걸 잘 못 썼는데, 이제 내가 안 팔리는 게 부담되어서 덜 쓴다. 방법 없다. 동료들은 이제 책은 그만 쓰고, 자기들하고 그냥 놀잔다. 그럴까? 솔깃한다. 그것도 좋네요..

 

그래, 36권이면 많이 썼다. 출판사에서 계약금 받은 게 천만 원 정도 되는 것 같다. 내년에는 이거 그냥 다 돌려주고, 그냥 놀까? 생각이 오락가락 한다. 요즘은 언제 돌려주고 그만 쓰게 될지 몰라서, 새로운 계약도 안 한다. 딱히 돈 필요한 것도 아니고.

 

3.

그래도 꾸역꾸역 진도를 나가는 건, 내가 만드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 안 하던 얘기를 만드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걸 좋아하고. 딜타이 등 해석학을 그렇게 좋아하기는 했는데, 해석하는 것 보다는 만드는 게 더 좋고, 더 재밌다. 재주는 곰이 벌고 돈은 떼놈이.. 원래 세상이 좀 그렇기는 한데, 한국이 그게 아주 심하다. 알기는 아는데, 어려운 주제를 알아 먹을 수 있는 말로 설명틀을 만들고, 안 해본 얘기를 개척하고, 그런 게 재밌다. 그래서 그냥 꾸역꾸역.

 

애들 둘 데리고 숨어 턱턱 막히는 한 해를 보내면서 무슨 재주로 이 시간을 내가 버텼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내가 하면 다르다”, 이런 생각을 버린 게 제일 큰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나도 좀 했던 것 같다. 운이 좀 좋았던 것은 같은데, 그 운이 언제까지 나를 따라다닐 것 같지 않다. 어쩌면 내가 써야할 운은 나중에 아이 둘을 키우게 되는데, 이미 다 써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해도 별 수 없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그렇지만 자꾸 내가 하면 다르다”,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생각들을 억지로 하면서 견딜 수 없는 노동강도를 견디게 하는 사회에서 살았던 것 같다. 병신!

 

문득 그리고 생각이 났다. 되면 되고, 말면 말고. 이렇게 살아야겠다. 무슨 엄청난 것을 한다고, 그렇게 죽어라고 밤 새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너무 빡빡하게 살았고,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하도록 설계한, 잘못된 삶을 살았다. 그게 인간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해도 다르지 않고, 어차피 똑 같은 결과가 나올 건데, 굳이 내가 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맘 편하게 먹고, 나는 조금 더 아이들하고 놀기나 하고, 남들 건들이지 않는 아주 한적한 곳에 있는 주제들을.

 

201812, 올해 나의 마음을 움직인 문장은 내가 해도 다르지 않다”, 이 문장이다. 나에게 돈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무지막지했을 수도 있을 스트레스들을 줄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명랑이라는 단어를 써도 이상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다.  

 

애 둘 보면서 하루하루 보내는 아빠, 아니 늙은 아빠가 무슨 엄청난 일을 하거나, 엄청난 책을 쓰거나, 엄청난 돈을 벌 것 같지는 않다.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거의 전부다.

 

그러나 남들 하는 일은 안 한다. 내년에는 더더군다나 안 할 거다. “내가 하면 다르다”, 이딴 거 없다. 내가 해도, 남들하는 거랑 별 차이 없거나, 아니면 그만도 못할 확률이 높다.

 

그냥 남들 하는 건 안 한다, 그 정도의 생각으로 2019년을 맞으려고 한다. “나 아니면 못한다”,가 아니라 아무도 안 하는 것, 그런 거나 꾸역꾸역 일정에 너무 늦지 않게 하는 정도로 살려고 한다.

 

다행히 한국에는 아무도 안 하는 게 너무 많다. 직장 민주주의가 그랬다. 정말 이게 본격적인 분석으로는 첫 번째 책이라는 데에, 나도 놀랐다. 농업경제학이 그렇다. 아무도 안 한다. 앞으로도 아무도 안 할 것 같다. 큰 성공과 큰 명예 그리고 큰 돈을 마음 속에서 내려놓으면, 보람과 명랑, 두 가지는 내 삶에 꾹꾹 채워넣을 수 있을 것 같다.

 

남들 다 하는 것을 잘 잘 하기는 아주 어렵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남들 안 하는 것을 왠만큼 하는 것은 명랑하게 할 수 있다. 아주 잘 하면 좋겠지만, 그건 내가 능력이 안 된다. 그냥 왠만큼, 평타 정도, 진루타,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완벽하게 하면 좋겠지만, 명랑하게 하는 것,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내가 해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남들 피하고 기피하는 것만 할 거다. 춥고, 어둡고, 꼬질꼬질한 데.. 다행히도 난 그런 데에서 뭔가 사부작사부작 하는 걸, 보람 있게 생각한다.

 

혹시 아나? 아주 다른 주제만으로 50권 넘기면, 그래도 역사 책에 한 줄 들어갈지도. 영광은 필요없고, 명랑은 필요하다. 그 출발점에, 내가 하면 다르다, 이런 생각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찬란한 사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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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먹고 사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요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게, 책이라는 게 묘한 거다. 쓰면 쓸수록 쓸 얘기가 늘어난다.

 

나는 책 쓰는 것을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하다 보니까 하고 싶은 얘기가 생겨서 책을 쓴 거지, 책 쓰는 게 직업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쓸 마음도 없다. 적당히 하다가 쓸 얘기 다 떨어지면 내려 놓아야지, 그런 마음으로 산다. 그게 10년이 넘었다.

 

10년 내내 2~3년 정도의 출간 예정을 늘 가지고 있었다. 가졌다기 보다는,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 시간이 그렇게 편치만은 않았다. 예정된 시간, 그거 재미없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배운 게, 출간 일정을 미리 잡지는 말아야겠다..

 

그렇기는 한데, 내년에는 정말 바늘 하나 찔러넣을 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차 있다. 그 다음 해의 일정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은, 절대로 장기계획을 세우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이다. 스스로 내 삶을 재미없는 일정이라는 틀 안에 가둘 이유가 전혀 없다.

 

책을 계약하면 계약금을 받는다. 돈으로서 큰 의미는 없다. 나는 그래도 좀 많이 받는 편이기는 한데, 어차피 받을 돈을 미리 당겨서 먼저 받을 뿐이다. 프로야구 같은 데에서 보는 사인 보너스, 그런 건 아니다. 둘째 아프고 돈이 빠듯할 때에는 나도 계약금 받기는 했는데, 보통은 안 받는다. 앞으로는 따로 받을 생각은 없다. 그러면 쓸지 안 쓸지도 불투명한데, 출판사하고 미리 먼저 뭘 약속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몇 년치 일정을 미리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 병신들이 하는 짓이다. 내가 그 병신 짓을 10 년 넘게 했다. 해보고 나니까, , 내가 병신짓을 한 거구나..

 

물론 계약금을 많이 받으면 출판사에서 좀 더 열심히 팔아주기는 하는데, 그건 외국 작가들 얘기다. 엄청나게 돈을 주고 외국 번역서 들여올 때에는 그렇게 하는데, 한국에 있는 대형 출판사 하시는 분들이 국내 작가들에게 투자하고 뭐 그런.. 그럴 생각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작가들 잘난 척 하는 거 눈꼴 셔서 일부로라도 안 하겠다는 입장이 99.99%.

 

독자들이 책 안 사줘서 출판이 요 모양 요 꼴이기는 한데, 그 얘기는 대형 출판사들이 할 얘기는 아니다. 당신들은 한국의 작가들을 어떻게 대하셨는데? 개차판 아니면 쪼다.. 지켜보는 마음이 아프다. 존경은 못 하더라도 존중은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감?

 

하여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책을 쓰면 점점 쓸 내용이 늘어난다. 이건 데뷔할 때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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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도, 애들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오면 꼭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된장. 일정표를 보니까, 점심 약속, 커피 약속, 오매나야 줄줄줄. 강연과 방송 일정을 다 없애고나니까, 또 뭐 별로 우선순위에 넣지 않아도 되어도 좋은 일들이 줄줄줄. 내 입장에서는 집에서 나가게 만드는 일은 다 일이다. 그리고 책 추전 부탁이 엄청은 아닌데, 꽤 온다. 잠시 생각을 정리해본다.

책 추천이 귀찮은 일이다. 특히 나에게 추천 부탁이 오는 책들은 어렵거나 까다로운 책들이다. 전에 내가 지금처럼 요 모양 요꼬라지 아닐 때에는 추천사나 해제로 어마어마하게 팔아준 책들이 있기는 하다. 연이나... 그것은 힘 좋던 시절의 일이고. 지금은 그냥 밥 세 끼 입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하는 시절. 내 추천사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까다로운 책, 그것도 읽을 일정에 없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요즘 애들 보면서 책 한 권 읽는게, 진짜 없는 시간을 쥐어짜는.

그래서 추천사는 가급적 안 쓴다. 예전부터 그랬다. 꼭 써야 할 거면 차라리 좀 더 공을 들여서 해제를 쓰고, 해제 쓸 정도로 여유가 없으면 아예 안 쓰고.

이 짓도 10년이 지나니까 약간의 이해가 생겼다. 추천사도 10년이 넘었는데, 아직 추천사로 고마워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저자나 출판사나.. 사람이 원래 그렇다. 잘 되면 자기가 잘 한 거고, 안 되면, 다른 넘들이 못한 거고. (88만원 세대 때 남재희 장관이 정말 공들여서 추천사를 써줬고, 그 이후로는 가급 술 받아들인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도 한 가지 배웠다. 정말로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 때가 아니라 훨씬 늦게라도 꼭 고맙다고 전화라도 한다. 그게 어려우면 안부 인사라도 한다. 쑥스럽다고 고맙다는 말을 미적미적하면, 나중에 진짜 어색해진다. 고맙다는 말은, 고맙다고 생각드는 순간에.

출판사에서 부탁오는 경우는 거절이 쉽다. 내가 하루 단가로 생각하는 나의 일당은 50만원이다. 난 가끔만 일하니까. 물론 단가 안 맞거나, 돈 안 줘도 남들 돕거나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한다. 돈 내고도 한다. 그렇지만 상업적인 활동의 최소 단가는 50만원이다. 그 밑은.. 원칙적으로 안 한다. 애 둘 보면서 한 번 움직이기 위한 원가를 생각해보면, 그 이하로는 정말로 삶만 힘들어지고 고달픈 뿐이다. 추천사의 원가는.. 뭐, 택도 없다.

머리 아픈 경우는 저자가 직접 부탁하는 경우. 이 순간 참, 다양한 종류의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그걸 해봐서 좀 더 생각이 많아진다. 거절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편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내가 거절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사람은,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야.

냉정하게, 한다 안 한다, 이것만 결정한다. 안 하는 경우에는 최대한의 예절로, 하는 경우에는 아주 짧고 드라이하게 '예스까 노까', 이렇게만 대답한다. 나머지 얘기는 원고로.

추천사 하나를 오늘 내로 써야 하는데, 추천사는 안 쓰고, 추천사에 대한 글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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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노회찬 부탁으로 강연도 참 많이 했었다..)

 

 

어제 정의당 강의는 경기도 당원들 대상으로 한 당원교육이다. 움직이기 싫어서 거의 꼼짝도 안 하는데, 정의당 경기당 당원교육까지 간 건, 진짜로 노회찬 이후로 마음이 너무 짠해져서 그렇다. 어차피 해주기로 한 거, 가장 최신 얘기로 정성스럽게 준비할 생각이었다. 비슷한 때 광주 정의당에서도 강연 부탁이 왔다. 같은 내용으로 할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성이라는 것은, 가장 최근의 얘기, 다른 데서 아직 발표하지 않은 내용을 얘기하는 것이다. 하던 얘기를 가지고 하면, 폼도 나고, 준비도 쉽다. 아니, 준비랄 게 없을 경우도 많다. 그래도 늘 하던 얘기라서, 빠다 바란듯이 미끄럽게 넘어간다. 나는 이런 것을 싫어한다. 한 얘기 또 하고, 또 한 얘기 또 하는데, 이게 무슨 녹음 테이프냐 싶은 생각이 든다. 하던 얘기 또 하는 것을 계속 반복하는 건, 진짜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강연을 처음 시작할 때, 내가 나한테 했던 약속이 있다. “같은 강연은 안 한다”, 그렇게 생각을 했다. 거칠지만 그 때 새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들을 가지고 얘기를 했다. 원래의 주제와 새로운 생각, 이런 것들이 섞였다.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진짜로 고로운 일이지만, 길게 보면 그게 도움이 된다.

 

시간이 흘러서 사람들이 파워포인트를 쓰기 시작했다. 금강기획 같은 기획사에서도 아직 파워포인트 도입하기 이전 시절부터 나는 파워포인트를 썼다. 수학식 하나하나 다 에미네이션 걸고, xy축에서 지시선, 방향선, 전부 날려오는 짓을 했다. 그게 96, 97년이니, 나도 좀 난리부르스이기는 했다. 사장단 회의에서는 그렇게까지 할 시간은 없었고, 부사장단 회의에서는 그 난리를 쳤다. 그렇지만 그게 내용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UN 시절에도 파워포인트 썼다.

 

사실 강연하는 입장에서는 파워포인트가 훨씬 편하다. 한 번 만들어 놓고, 그냥 조금씩 고쳐서 때우면 된다. 그리고 좀 시간이 지나다 보니, 만들어 놓은 걸 가지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면, 거절하면 된다. 더 편하다. 그러나 했던 걸 또 하는 일이 벌어진다. 나는 가장 최근의 내용 그리고 아직 얘기하지 않은 걸 가지고 얘기하지 않으면, 내가 부디낀다. 뭐 하는 짓이냐, 시방.

 

그렇다고 매번 파워포인트를 만들 수는 없다. 간단하게 해도 하루는 넘어간다. 그래서 결국 내린 결론이, 안 한다.. 돈이 필요해서 강연을 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견딜 수가 없다. 그래도 그렇게 막 살지는 않았다. 맨 앞에 서서, 가장 힘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산다고 생각했지, 돈도 필요하고, 에 또, 이렇게 생각하면서 산 적은 없다. 또 강연비를 받아야 할 정도로, 그렇게 생활이 궁핍한 것도 아니다.

 

정치인 중에서 내 강의를 가장 처음 들었던 사람은 노회찬과 단병호였다. 수많은 사람에게 강의를 해주었는데, 그래도 선생격이라고 꼬박꼬박 인사하는 사람은 단병호 정도였다. 노회찬은 친구 같은 처지라서, 들었니 말았니, 그럴 처지는 아니고.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나, 같이 스터디하던 후배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강의를 들은 사람은 정세균과 원혜영이다. 국감 때 정세균 외국 갔을 때를 제외하면, 개근했다. 안 불렀는데도 가장 많이 왔던 사람은 진선미와 박병석이었다. 그 때는 그냥 판서했던 때도 있고, 파워포인트 만들었을 때도 있다.

 

회사 사장들 강연 부탁도 많이 왔었다. 한 번은 진짜로 전경련 회장단 강연 부탁이 왔다. 고민하다가 할까 했다. 일본에서 하라는 거라서, 일본 정도는 나도 갈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니미럴.. 골프장에서 골프치다가 하라는 거다. 골프 안 치는데요? 그냥 치는 척만 하시면 돼요. 싫은데요. 그래도 이런 기회가.. 그래도 싫어요. 안 했다. 대통령을 만나라고 해도 골프 치면서, 안 한다. 남들한테 골프 쳐라 마라, 이러지는 않지만, 나는 안 친다.

 

강연이,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 명박이, 순실이, 이런 애들이 황당하게 하고 있을 때에는 그래도 조그맣게라도 모여서 서로 고민하고 하다못해 고통이라도 나누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 그 때는 나도 전국을 돌아다녔다. 갔다왔다, 차비 빼면 진짜 내 돈이 더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시대를 같이 버티고 이겨내는데, 뭐라도 도움이 되면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시간은 변했다. 다시 니 편, 내 편 갈리기 시작한다. 굳이 나까지 나서서 이 편, 저 편,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생각을 만들고, 시대의 최전선에 가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분석하고 분석한 내용을 정리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하는 일이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았다. 책 나오면 하는 의례적 강연이나 신세진 사람이 하는 부탁, 그 정도만 하기로 했다. 그리고 눈 오는 겨울, 더운 여름에도 아무 것도 안 하기로 했다. , 가을로 피하기 어려운 강연 몇 번, 그게 내가 찾은 타협점이다. 물론 시민운동 차원에서 하는 건, 돈 받지 않고 내 돈 내서라도 한다. 사회과학 특강 같은 것은 정말로 무료로, 가끔은 맥주 한 잔씩 사기도 하면서 했었다. 그런 게 시민운동 차원에서 정말 의미가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지금은 애 둘 보면서 뭔가 하는 처지에 당분간은 힘들다.

 

그리고 파워포인트 만드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귀찮아서가 아니다. 판서가 더 좋은 강의 방식이라서 그렇다. 그 때 그 때 중요한 일, 아직 하지 않은 얘기를 전부 정리하는 게, 꼭 새로운 얘기를 위해서 좋은 방식은 아니다. 그러면 라디오 같은 매체는 전부 죽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라디오도 얘기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데 좋은 방식이다. 그래서 팟캐스트라는 매체가 나름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부 보여줘봐, 시각형 정보가 전부는 아니다.

 

지난 주 토요일날 정의당 당원교육은 그렇게 생각한 첫 시도다. 마침 칠판이 있다고 했다. 몇 년 전에는 칠판 놓고 강의하면 칠판 3번 정도는 새로 썼던 것 같다. 내가 정렬적이던 시대다. 그렇게 판서하면서 눈사람형 경제니 8자형 경제 같은 개념들이 나오게 되었다.

 

이제는 나도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강의 준비하면서 판서 분량으로 1장 정도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개념 10개 정도 썼는데, 끝난 것 같다. 그 대신 설명을 많이, 길게 했다. 파워포인트 20, 30컷 만들어 놓고. 시간 맞추기 위해서 막 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개념 열 개가 안 된다. 그리고 새로 분석하거나, 새로 알게 된 것은 한두 개 밖에 안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사실 한 개 분량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11월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 것도 안 한다고 철썩 같이 생각하고 있는데, 뭐가 뭐가 엄청나게 온다. 돈 많이 준다고 하는 게 오면, 사실 나도 흔들린다. 마침 또 그렇다. 그래도 그냥, 힘들다고 하고 말았다. 새로운 얘기나 새로운 분석을 계속 만들지 않으면, 시대는 퇴행으로 간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 그게 인간의 2대 욕망 중 하나라고 프로이드가 말했다. 타나토스라고 부르는, 죽음의 욕망이 후기 프로이드의 2대 축 중의 하나다. 계속해서 변화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하는 것, 이걸 프로이드는 에로스에 속한 영역이라고 했다. 20대 초, 나는 타나토스보다는 에르스의 영역에 속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타노트>는 그 후에 나왔다. 같은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그 시절 베르베르는 매우 프로이드적이었다.

 

강연도 요즘은 상업화 정도가 아니라 산업화가 되었다. 강연산업에서 강연자의 수명을 보통 2년 정도로 본다는 것 같다. 2년이면 한 얘기의 수많은 변주도 거의 다 끝나고, 인기도 떨어지고. 물론 그걸 계속하기 위해서 자기도 새로운 것을 만들기는 하는데, 그것까지 포함해서 평균적으로 2년이라고 본다. 내가 처음 대중 강연한 것부터 치면 15년 정도 된 것 같다. 강연 논리 그대로 따라가면 2년 후에 아주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내가 성격이 지랄맞아서 이렇게 저렇게 했던 결정들이, 우연이지만 아주 나중에 산업적 논리와 분석과 맞추어 보니까 내가 내린 선택들이 맞는 것 같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결국은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새로운 것은, 많은 시간과 많은 집중을 필요로 한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겠지만, 나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하고, 계속 관찰한다. 그게 내 스타일이다. 시간 많이 들어간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지 않는 것, 이게 내가 지키려고 하는 딱 하나의 명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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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나는 독서감상문 형태로 책 읽은 소감을 쓰지, 서평의 형식으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평... 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농담 보태면 절을 하는 자세로 읽는다. 내용이든 스타일이든, 무엇인가 배우기 위해서 돈을 지불하고 책을 보는 것이 아닌가? 스승을 대하는 자세로 책을 대한다. 그리고 스승에게 평? 이런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스승을 대하듯이 책을 대해야 나에게 뭐라도 좀 남는다. 하다못해 진한 자극이라도. 그래, 얘는 뭐라고 씨부려댔나, 내 함 봐줄께, 요런 자세로 보면 나에게 남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좋아하는 책이든 좋아하지 않는 책이든, 일단은 스승을 대하는 자세로 책을 대한다.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의 책도? 물론이다. 설령 그것이 이완용의 책일지라도, 그가 뭔가 자신의 삶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생겨나서 쓴 거 아니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책을 본다. 그래서 서평을 쓴다는 게, 여전히 부담스럽고 거북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서평을 쓰게 된다. 참 어렵다. 국내 작가들의 책을 주로 고르려고 하는 편이다. 세상이 그렇다. 누군가의 책을 집어들면,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왜 뺐는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책 한 권을 집어드는 순간, 그보다 훨씬 많은 변명을 하게 된다. 이게 아예 모르는 사람이거나, 볼 일이 없는 사람이면 그냥 눈 감고 있으면 될텐데. 그렇지도 않다. 많은 경우, 이렇게 저렇게 결국에는 만나게 된다. 언젠가 어색한 만남을 하게 되는.

이걸 피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 외국 책을 집어든다. 죽은 사람이면 더 편하고. 고전이면 정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고. 설령 엄청 유명한 이 시대 사람이라도, 볼 일이 있겠어? 이게 약간은 비겁하고, 가벼운 방식이다.

에고고... 하면서도 나는 가급적 우리나라 책을 집어든다. 대책 없는 정면돌파 방식이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변명할 게 부담스럽기는 한데, 그렇다고 우리 시대, 지금 여기의 질문을 피해나가면 내가 내한테 '쪽팔'..

그래서 이래저래, 독서감상문을 쓰지 서평은 잘 안쓰려고 한다. 비슷한 이유로, 심사위원 같은 것도 안 한다. 평을 쓰거나 심사를 하는 것 보다는, 뭔가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

하다보니까 조선일보에 서평을 쓰게 되었다. 이게 약간 기구하고도 우연스러운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게 되면서..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 한다. 박노자 서평을 쓰면서, 진짜 많은 점에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곤혹스러운 상황에 나 스스로를 몰아넣게 되었는가.. 난, 원래 그렇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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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동안 참 별의별 생각이 많았다. 결론적으로 내린 생각은, 그냥 나는 자랑스러운 좌파로 살아가겠다는. 당연한 얘기이기는 한데, 진보니 그런 어정쩡한 말 쓰지 않고, 빨갱이로.

물론 나도 좌우가 공통으로 가져야 할 소양이 있고, 같이 추진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얘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냥 좌파로.

이런 결정은, 앞으로는 정부에서 일하는 건 안 하겠다는 것과 같다. 어서 빨갱이가..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또 해야 할 이유도 잘 못 느끼겠다. 나는 그냥 좌파 경제학자로, 편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아마 죽을 때까지 뜨슨 밥 먹고 살기는 힘들겠지만, 뭐 많이 먹는 스타일도 아니고, 누가 나 챙겨줘야 일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해보고 싶은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이 꼭 내가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내가 하면 다르다", 이 생각과 2년간 싸워서, 결국 내가 이겼다. 내가 해도 별 수 없다...

오늘 간만에 교보에 가서 여기저기 돌아보았다. 문화칸에 갔는데, 보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았다. 시급한 일들 좀 끝나고 나면 다시 한동안 도서관에 틀어박히는 삶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게 제일 행복하다.

20대, 나는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는다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전혀 모르는 분야 칸에 가서 몇 주씩 머물면서 책을 읽었다. 다 읽은 것은 아닌데, 몇 년에 걸쳐, 내 손에 한 번도 머물지 않았던 책은 없을 정도로.

책방에 가면 전혀 모르는 분야에 가서 한동안 봐야 직성이 풀리고는 했다. 좀 무모한 방식의 독서를 한 건데...

결국 밥은 먹고 살게 되었다.

20년 가까이 좁게 보면 환경, 좀 넓게 보면 생태 쪽에서 주로 움직였다. 50대에는 이걸 크게 바꿔서 문화 쪽으로.. 요런 고민 중이다. 재미는 있을 것 같다.

한국이라는 데가, 뻔하다. 돈 좀 돌고, 권력 좀 있는 데에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줄도 길고, 텃세도 심하다. 별로 돈 없고, 빛 볼 일 없는 분야는 늘 가난하고, 배고프다. 사람도 별로 없다.

나는 그런 춥고 배고프고, 보람만 있는 (그러나 잘 못느끼는) 그런 데 있으면 진짜 우리 집 안방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행복하다.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그런 춥고 외지고, 각광받지 못하는 분야에서 보냈다. 그러다보니, 그게 체질이 된 것 같다.

문화 쪽도 엄청 배고프다. 문화연대 최근 상황 물어봤더니, 사무실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더 싼 데로 옮겼다고. 이런 분야에서 일하는 게, 난 제일 속 편하고 즐겁다.

해보고 싶은데 못 한 것, 제일 기억에 오래 남는 게 아프리카 경제학이다. 환경이나 경제 이런 전문가가 아니라 아프리카 경제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원 때 지도교수가 프랑스 최고의 아프리카 전문가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돈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돈 없으면, 아프리카 연구 자체를 할 수가 없다. 그게 마음 속에 남아있는 아쉬움 혹은 애잔함.

이건 나 아니면 못할 거라는 생각을 몇 번 했었다. 그리고 몇 십년 지나보니까, 나도 못했다. 별 방법 없다. 애도 낳아야 하고, 낳았으니 키우기도 해야 하고. 그래서 아쉬움만 남기고 손을 내려놓았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볼 수는 없더라도..

그냥 좌파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달리, 별로 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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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박산호씨의 에세이집을 샀다. 나는 필요한 책이면 어지간하면 사는 편이다. 꼭 내가 알아야 하는 내용이 아니더라도, 그냥 세상 동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사고. 박산호 에세이집은 읽고 짧은 감상기라도 쓰려고 한다. 감상기를 쓰면 책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기억도 오래가지만, 자료 정리의 의미도 생긴다. 읽고 해석하면서, 책은 나에게 의미가 생긴다.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30대에 책을 쓸지 말지 고민하던 시절, 이런 분석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회과학의 독자는 대체적으로 2만명.. 그게 15년 전의 계산인데, 아직도 그 정도는 될 것 같다. 그렇게 가설을 놓고 검산을 해보면, 대체적으로 맞는다. 사회과학 독자들이 전부 사 보는 책이면 2만부.. 사실 거기까지 가기 어렵다.

같은 책을 사서 읽는 집단이 만 명 정도 있다고 하자. 그래서 괜찮은 책이거나 아니면 미래가 담겨 있다고 하는 책은 만 명 정도 사준다고 해보자. 물론 그렇게 받는 인세가 엄청난 돈도 아니고, 팔자 고칠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새롭게 데뷔하는 저자나 작가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런 걸 운동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애 태어나고 어쩌구 저쩌구 하다 보니까, 나도 독서량 자체가 줄었다. 잠시 책상에 앉아있기도 힘든데, 이것저것 벌일 여유가 없었다.

50대, 나는 뭐 엄청난 일을 할 생각은 없다. 그냥 소소하게 하던 일이나 망치지 않고 처리하는 이상의 일을 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어떻게 하면 새로운 저자들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데 약간 손 보태는 정도의 일은 할 생각이 있다. 책이라는 게, 목숨 걸고 그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내지 않으면 그냥 나오고 버티는 게 아니다. 원래도 책이란 건 그랬다. 자본주의 시절에도 그렇고, 그 이전에도 그랬다. 책 특히 좋은 책은 목숨 걸고 그 사회 구성원들이 지키는 것이다. 안 그러면? 별 거 없는 문화가 되고, 그 문명도 별 거 없다.

만 명 정도가 1년에 책 20~30권 사는 거,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니다. 최소한 그 정도의 일들이 몇 번 벌어져야 이 사회가 좋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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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기분이 좀 이상했드랬다. 점심 때 문예출판사에 갔었다. 그랬더니, 노회장님 별세. 고인의 뜻에 따라 직계가족들만 모시고 조촐히 장례...

이 양반하고 얽힌 얘기를 풀면 책 한 권은 좀 그렇고, 2~3장은 나올 만한 얘기들이 많다. 하여간 경제학 전공인 양반이라, 몇 년간 노닥노닥, 사연이 많다. 진짜 친구처럼 지냈다.

"우박사, 우리랑 책 한 권만 더 합시다."

사회적 경제 책을 내고 나서, 이 양반이 몇 번을 부탁을 했다. 그렇다고 달랑 한 권만 하기도 좀 그렇고 해서, 도서관 책 등 책에 관한 책 두 개를 묶어서 여기서 하기로 했다. 그게 타계하신 분과의 마지막 만남이 될지, 진짜 몰랐다. 건강이 좀 간당간당하기는 했지만, 워낙 잘 버티셔서 한 10년은 더 노닥노닥거리고 놀 줄 알았다.

아드님을 만났는데, 우신다. 장례도 따로 없어서, 문상이라고 치면 내가 첫 번째로 간 셈이다. 햐아, 진짜 가는 데 순서 없다더니.

노회장님하고 나는 정치적 견해는 많이 다르지만, 많은 것이 통했다. 나는 죽고 나면 장례 따로 지내지 않는 게, 식구들한테 남겨놓은 거의 유일한 유언이다. 처음 만났을 때 장례식 얘기가 나와서, 나는 장례 안 지낼 거라고 했더니, 이 양반이 자기도 그렇댄다. 햐, 그리고 진짜 장례식 안 했다.

돈이 있어도 건물 챙기는 것은 좀 아니라고 하는 생각이 같았다. 태극기에 가까운 보수지만, 그렇다고 태극기 들고 나가시지는 않고.

이 양반하고 한동안 태극기 흉 많이 봤다. 출판계 사장 중에는 누가 가고, 누가 가고... 멀쩡하신 양반들이 왜 그러신디야.

어렸을 때 갈메기 조나단 얘기를 너무 재밌게 봤었다. 데미안도.. 그게 이 양반이 내신 책들이다. 시간을 훌쩍 건너 뛰어 지난 몇 년간 친구처럼 지냈다. 나도 영향을 많이 받고, 실제 도움도 좀 받고.

예정된 책이 앞으로도 여러 권 더 있는데, 사회적 경제 책 딱 한 권 하고 보내드리게 되었다.

전병석 회장님, 천국에 가셔서 몇 년 동안 못 드신 술이라도 친구분들과 맘껏 드시길. 더 오래 같이 놀아드리지 못해서 늘 송구스럽기만 하네요.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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