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이 안 팔리는 시대가 되니까, 책 쓰기가 몇 곱 어려워졌다. 사회과학은 더 그렇다. 내용만 읽을 수 있게 정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그 정도 해서는 거의 아무도 안 본다.

사회에 대한 생각은 서로가 다르다. 그래서 자기 편 아니면 보나마나 집어던진다. 자기 편이면? 어차피 아는 얘기일 거라고 생각하니까, 또 안 본다. 그렇다고 진짜로 이걸 아느냐고 말하는 것은 바보 짓이다. 왜 내 맘을 몰라주느냐고 말하면, 최상급 바보다. 생각이 달라도 최소한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생각을 해보자고 최소한의 관심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쓰지 못했다면, 일단 그 판은 판 접고 철수하는 게 상책이다. 글 쓰기 전략에서 실패..

물론 가끔은 팬심으로 책을 사주기를 기대하는 전략을 쓰는 사람도 있다. 방송 죽어라고 나가고, 뭔가 진행하는 '굳은자'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

2016년에 많은 것을 결정했다. 아마 결정적인 게, 광주의 한 공기업 사장 제안을 받지 않았을 때였을 것 같다. 그 전에 더 높은 자리도 몇 번 왔었는데, 그 때는 그만큼 고민을 하지 않고, 그냥 싫다고 했었다.

그 때, 앞으로 공직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마침 그 시절 라디오나 그런 거 진행하면 좋겠다는, 정말 고마운 제안도 많이 왔었다. 그런 것도 다 안 한다고 했다.

팬심으로 책을 판다.. 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출판사 사람들이 꽤 많은 얘기를 했었다.

그렇게 책을 팔아야 한다면, 책을 안 쓰는 편이 낫다고 생각을 했다. 돈 벌려고 책 쓰는 건 아니다. 뭘 해도 이 정도 노력하면 책 쓰는 것보다는 돈을 많이 번다.

그 이후로 책을 파는 방법에 대한 신경 같은 건 딱 껐다. 그 힘을 스토리 보드 만들고, 구성을 더 감성적으로 하거나, 이런 데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딱 50권까지는 어떻게어떻게 써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 후는? 모른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은 하지만, 책을 더 팔기 위한 노력은 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책을 쓰고 싶지는 않다. 최소한의 존심 같은 거다.

2.
농업 경제학은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10만 명은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책으로 만들겠다는 게 처음의 목표였다. 현실적으로는 2천 권 팔기도 어렵다. 최대치로 잡으면 3천 권이다. 그래도 나는 10만 부 짜리로 디자인하겠다는 게 작업 시작할 때의 목표였다.

안 그러면, 아무 변화도 안 생긴다.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독하게 마음 먹지 않아도 할 수 있던 일인데, 요즘은 택도 없다.

그 중간에 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이런저런 책을 해보자고 했다. 그 중에 몇 개는 정말로 잘 팔릴 만해보이는 소재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책 팔려고 책 쓰는 게 아니다. 지금 와서 그런 걸 하면, 지나온 내 삶이 너무 불쌍해보일 것 같아서, 그렇게는 안 한다.

긴 기간을 이렇게 살면서, 나도 많이 내려놓았다. 포기한 것도 많고, 내려놓은 것도 많다.

그렇지만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작은 소망 하나를 내려놓은 적은 없다.

3.
농업 경제학 딱 절반을 넘어가면서 번잡하게 펼쳐진 사연을 묶으면서 나가야 할 필요가 생겼다. 초반 갈등을 이제는 꺼내놓고 좀 정리정돈을 해야 한다.

후반부로 넘어갈 동력, 그런 게 필요하다.

근데.. 그게 어렵다. 며칠 동안 청와대에 있는 아찌 등 예전에 농업 같이 했던, 꽤 많은 사람들과 차 한 잔씩 했다. 나도 하도 조용히 살았더니, 그 사이에 농촌경제연구원장이 바뀐 것도 몰랐다.. 지난 여름에 그만뒀잖아요, 모르셨어요? 윽. 잠깐만 검색해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을 모르고 차를 마시다니. 귀밑이 다 빨개질 정도로 창피하고 미안해서.

4.
후반부에 첫 장인 5장 제목이 필요하다. 사실 이걸 못 잡아서 1주일 동안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결론에 쓸 마지막 개념인 primitive industry라는 개념은 좀 전에 잡았다. '본원적 산업' 혹은 본원 산업 정도의 개념으로 쓰려고 한다. 원래는 맑스 용어에서 파생시킨 거다. 자본론 최고 번역본을 로이 본이라고 했는데, 사위였던 로이의 영향 때문인지, 맑스는 불어를 개념어로 잘 사용했다. 로이본에 나왔던 '위험한 도약'이라는 개념이 대표적으로.. 그래서 그걸 중요한 버전으로 쳐준다. 본원이라는 용어가 그런 이유로 맑스가 유행시켰던..

네 장에 걸쳐서 거기까지 배달할 첫 꺾기가 들어가는 5장의 제목은..

아직 못 잡았는데, '언플러그드'를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늘 아침에 했다. 원래는 에릭 클랩턴이 유행시킨 앰프 빼고, 그런 의미인데..

게임 중독인 중학교 2학년 소년 둘, 소녀 둘에게는 좀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영어를 쓰고 나니까 붙여서 쓸만한 개념이 마땅치가 않다. 영어 찍찍 쓰는 거, 나도 좀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대안이 잘 안 떠오른다.

아주 예전에..

세검정 살던 시절 발달 장애인 어린이 한 명이 집에 놀러왔는데, 마침 마당에서 감자 캘 날이었다. 그걸 해보라고 했는데, 줄기째 나오는 감자를 보면서 정말 해맑게 웃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 때 느낀 감정이 너무 커서 여기까지 얘기를 끌고 온 건데..

폭발시키기가 어렵다.

살다보니까 초등학교 장애인 교육에 행정적으로 좀 관여하게 된 일이 있었다. 30대의 일이다.

감정은 기억이 나는데, 그걸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오후에는 5장 제목을 잡는 게, 내가 할 일이다..

Posted by retired
,

농업 경제학, 후반부 대충 디자인 끝.

전반부는 끝났는데, 돌발 상황들이 많이 생겨, 처음 계획한 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이걸 수습해서, 넣고 빼고, 후반부에 정리하는 게 만만치 않아졌다. 일단은 후반부 디자인 끝..

5장. (경자유전) 100억 원 번 농부 – (중앙형 시스템)
감자 수확
벼꽃 견학

6장. (세계 시민과 세계 자본주의 : 지역과 지구의 공존)
사과농장 견학

7장. (마블링의 딜레마 – 축산과 어업)
돼지농장 견학

8장 초대받지는 않았으나
빵 굽는 남자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특목고 이후의 교육
본원적 경제

Posted by retired
,

농업 경제학 딱 절반 끝냈다. 미국의 팜빌 설명 끝냈고, wto 등장까지가 딱 반이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진짜 똥뺐다. 쓴 거 기준으로 하면 37권을 썼는데, 그 중에 제일 힘들었던 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아마 내 인생을 돌아봐도 가장 힘들었던 책으로 농업 경제학을 꼽을 것 같다. 기존의 교과서에 나오는 - 그래봐야 미국 쪽에서 자기들 입장으로 쓴 거 - 얘기들을 뒤엎어야 할 게 많고, 우리의 상식 특히 집권당인 민주당 고위급 인사들이 생각하는 적당한 상식을 뒤집는 게 워낙 많다.

한국의 많은 정책들은 집권과 함께 어느 정도 틀을 잡혔다, 그런데 너무 살살 한다 혹은 너무 천천히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대부분이 분석이 된다.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해라, 공약대로 해라, 이러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농업은 좀 다르다. 하기로 한 게 거의 없다시피 하고, 공약도 미니멀리즘이다. 그 기본이..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 일부 전문가들도 영역주의 같은 데 많이 빠져 있어서 폐쇄적으로 운용된다. 그래서 일반 국민과의 대화는 물론, 시민이라는 개념 자체도 제대로 자리를 못 잡았다. 시민 농업, 이런 얘기가 10여년 전부터 외국에서는 유행인데, 우린 그딴 거 없다. 물론 거기서 논의된 얘기를 우리도 안 하는 건 아닌데, 개념만 들어왔다. 그래서 적당히 얘기하다가, 사람들 관심 없대요, 흐지부지. 실체가 없는 얘기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출판 여건도 아주 어렵다. 전에는 만 부 정도 생각한다고 하면 "선생님, 저희가 그 정도 할려고 이 책 내는 건 아니예요", 그렇게들 말하고는 했다. 요즘은 만 권 정도 얘기하면, 언감생심,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20만 부, 10만 부, 그런 단위로 내 책이 팔리던 시절에는 만 부는 정말로 내가 꼭 필요해서 내는 책들이라는 의미였다. 요즘은.. 택도 없다. 주력 책들이 겨우겨우 몇 년에 걸쳐서 만 권 턱걸이 한다.

상황이 이러니까 장치를 더 넣고, 더 압축하고, 더 읽기 편하게 하고, 드라마적 요소들도 더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한 마디로.. 힘들다.

그래도 꾸역꾸역, 딱 반 썼다. 초고 끝내고도 몇 달은 더 손을 봐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틀은 어느 정도 잡혔다. 우와.. 생각보다 요소들이 잘 들어가서 붙었다. 끝까지 본문에 안 붙는 건, 나중에 싹 덜어낼 생각이지만, 아직까지는 나름대로 역할을.

그저께 정말 간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선배들 만나서 술 진창. 아내가 금주령을 내렸다. 회사 짤린 친구가 있어서. 인간아, 왠간히 좀 하자..

딱 술 처먹고 싶은 타이밍인데, 분위기상 택도 없고.

작년을 한 해 통으로 헤매고 지내서 하던 일들이 전부 올해로 넘어왔다. 올해는 일정이 나름 빡빡하다.

Posted by retired
,

농업 경제학, 11번째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30개 내외의 편지를 쓸 생각인데, 이제 중반부로 들어간다. 냉정하게 말하면 학내 폭행범인 남자 애들 두 명에게 쓰기 시작한 편지에 중반부부터 게임 중독인 여학생 두 명이 합류하게 되었다. 뒷쪽 얘기는 대체적인 흐름만 정해놨는데, 일단은 얘기 풀어가면서 하나씩 정리할 생각이다.

맨 마지막 편지 제목만 정해놨다. "초대 받지는 않았으나.." 고은희, 이정란 노래 제목이다. 마지막에는 학생들과 만찬을 하고, 그렇게 1년 간에 걸친 사건을 마무리하는 형식이다.

이 책은 처음 계약한 시점으로만 쳐도, 10년이 넘는다. '88만원 세대' 나온지 얼마 안 되어서 계약을 했고, 그 시리즈의 10번째 책으로 할 생각이었다.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세 번째 시리즈, 응용경제학의 두 번째 책이 처음에 내가 이 책에 주었던 자리다.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계획한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나에게도 시련이 왔고, 부침도 생겼다. 결국은 대장정 시리즈는 처음 설계한 대로 마무리되지는 않았고, 문화경제학을 마지막으로 일단은 섰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는 더 미룰 핑게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고.. 뒤늦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용 쓰는 중이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만큼이나, 처음에 생각한 책과는 아주 다른 형태의 책이 되었다.

작년에 처음 설계할 때와도 많이 다르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중반부를 넘으면서 여학생 두 명이 더 합류해서, 이제는 편지를 읽는 사람이 4명으로 늘었다. 그리고 학생들 학교 담임 선생님이 같이 텃밭에 합류했다.

원래는 두 번, 지금으로는 세 번을 여행을 가게 되어있다. 여섯 명이 여행가는 일도 큰 일이다. 복잡하기는 한데, 어려운 얘기를 꺼내는 또 다른 방법은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방식일 것이다. 별 거 아닌 일도 여러 명이 같이 하면 얘기 자체는 더 풍성해진다.

내가 잘 하는 일이 별로 없는데, 집중하는 건 좀 하는 편이다. 별 준비 동작 없이 바로 집중이 가능하고, 한 번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 시간도 아주 오래 간다. 그 정도의 집중도를 몇 달씩 유지할 수도 있다. 이것저것 잡다한 의사결정을 많이 하는 관리자의 길보다, 그래도 뭐라도 쓰거나 만드는 일을 하는 걸로 50 이후의 내 삶을 결정한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기도 하다. 집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실 별 거 하는 일이 없는 편이 낫다.

그렇게 계속 생각을 하다 보면, 몇 번은 기존의 생각을 넘어서는 다른 생각이 난다. 내가 늘 아쉬워하는 게, 내가 조금만 머리가 좋은 스타일이었다면.. 머리가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라서, 시간을 많이 들이고, 에너지를 탈탈 털어넣어야 조금 생각이 난다. 후루루 후루루,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들 보면 좀 부럽다.

그래도 요령이 좀 생겼다. 금방 생각이 잘 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나는 그냥 시간을 많이 털어넣으면 아주 조금 그리고 아주 가끔, 생각이 난다.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때려박아도 아예 생각이 안 났으면.. (그랬으면 더 쉽고 편안하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흐르다보니, 담당 에디터도 아이 엄마가 되었다. 그 집 딸이랑 우리 큰 애랑 동갑내기다. 고민하는 것도 비슷하고, 겪게 되는 고충도 비슷하고. 그런 얘기들을 농업 경제학에 좀 녹여넣으려고 한다.

이제 중반부에 꺾고 들어가면, 슬슬 마무리로 넘어간다. 2월 안에 끝내면 좋겠다는 게 소소한 희망인데, 그건 해봐야 아는 거고.

Posted by retired
,

영혼을 갈아넣는다는 표현이 있다. 농업 경제학이 딱 그렇다. 쓸 수 있는 재주는 다 쓰고, 영혼까지도 갈아넣는 중이다.

오전에 지난 해까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장 했던 김창길 박사랑 차 한 잔 했다. 통화는 여러번 했는데, 실제로 본 게 10년도 넘는다. 명박 시대, 근혜 시대,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되도록이면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 시절, 나랑 만나봐야 좋을 일 생길 게 없었다. 오랫 동안 반정부 인사로 살았다. 힘든 시절을 그냥 버티고 버텼다.

최근에 예전에 농업과 관련해서 일하던 사람들과 시간 나는 대로 차 한 잔씩이라도 하려고 한다. 한 때 농지제도 연석회의라는 시민단체 연대회의에서 사무국장을 했었다. 건강이 정말 안 좋아져서 후반부에도 제대로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전농 등 그 시절에 농업 관련된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파트너였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뭐라도 좀 줏어들으면 약간이라도 나아지겠지, 그런 심정이다. 차 한 잔 할 시간도 애들 키우는 입장에서는 편치 않지만, 그래도 이게 자료에 나오지 않는 최근의 흐름을 업데이트 하는 가장 빠른 방식이다. 원래는 전문가 인터뷰들 다 마치고 글을 시작하는 게 맞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후반부에 나오는 결말을 위해서 지금이라도 돌아다니는 게..

농업 경제학은 중반부로 가면서 텐션이 떨어질 것 같아서, 중학교 2학년 여학생 두 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설정을 설계하느라고 일주일 정도 작업을 세워놓고 있었고. 둘 다 원 모델이 있는 사람들인데, 눈물 나는 설정이다. 현실에 있는 지금의 중학교 2학년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서 나름 신경 쓴. 언젠가 "가난한 소녀들을 위한 수학 도서관"이라는 책을 한 번 준비하려고 해 본 적이 있었다. 와.. 지금 내 주변에 여성 수학박사들과 통계학 박사들 너무 많다. 힘들게들 살아간다.

10대에 대한 얘기를 준비하면서 작년에는 고등학교도 많이 돌아다녔다. 생각보다 많이 놀랐다. '88만원 세대' 쓰기 전에 먼저 하던 연구가 '10대들과 대화하기'였었다. 그 때 내가 20대 연구를 주로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은 10대 연구가 선행 연구였다. 그리고 10년 넘어서 최근에 업데이트를 좀 했다. 그 사이에 변화가 많았다.

기왕에 10대들 얘기를 손에 잡은 거, 독서 얘기와 경제 얘기로 몇 번 더 하기로 했다. 왜? 그건 내 양심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는 청소년 학대를 하게 되었고,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가 10대들을 보는 눈은 '지갑'이다. "공부해라", 학대하는 부모와 돈만 보는 마케팅의 세계, 이것 외에 한국이 10대들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모든 것들은 유예되어 있을 뿐이다.

내가 한다고 해서 잘 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어떻게 보게 된 거, 그냥 있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래라 저래라 할 생각은 없고, 그렇게 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이들의 삶을 행정적으로 맡고 있는 교육감 등 공무원들에게, 이런 건 좀 아니다, 그런 말이라도 해주고 싶다.

책이라는 게 그렇다. 이게 올드 매체다. 시청율과 구독율 같은 통계로 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고, 또 천천히 움직이는 올드 매체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게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성공한 책은 어떤 것은 조금 빠르게, 어떤 것은 조금 늦게, 그렇지만 뭔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확실하다.

주변을 보면 돈은 엄한 데로만 흘러 들어간다. 올드 매체들로 들어오는 돈이 점점 더 줄면서, 교체 주기는 더 짧고, 휘발성은 더 높은 것을 찾는다. 그렇게 다들 변화를 생각하고, 다음 번 '아이템'을 찾거나 베끼거나, 그렇게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안 나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 한 명 정도 있어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내가 갈 뻔했던 길에 대해서 가끔 얘기한다. 거의 대부분, 그렇게 좋은 걸 왜 안했느냐, 지금이라도 해라, 그렇게 얘기한다. 나이가 50이 넘어가니까,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다. 폼 좀 나는 거 한다고 몇 년 우왕스럽게 움직이다 보면, 나도 금방 환갑줄이다. 그 때,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후회해도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냥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조그맣게라도 하는 게 낫다.

작년은 최악의 한 해였다. 2002년이 정말 힘들고 최악이었던 한 해였는데, 충격의 크기로만 치면 그보다 더했던 것 같다. 그냥 머리 박고 조용히 지내면서 한 해를 버텼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마음 먹은 게 하나 있다.

"재미있는 것만 하겠다."

이걸 하고, 그걸 발판으로 또 뭘 하고, 그 다음에 뭘 하고, 이렇게 참고 버티는 방식으로 사는 건 재미 없다. 남들 눈에 의미 없어 보이는 거라도, 내 눈에 의미가 있고, 재미도 있는 일들은 많다. 난 그런 것만 하기로 했다. 버티는 방식으로 사는 것, 내 인생에 그런 건 다시 안 하기로 했다.

농업 경제학은, 영혼을 갈아넣는 재미가 있다. 어렵고 힘들기는 한데, 그래도 최선을 다 해서 가진 걸 탈탈 갈아넣고 나면.. 보는 눈이 좀 커진다. 그것도 재미라면 재미다. 세상이 좋아지는 것 혹은 조금이라도 좋아질 것을 기대하면서 뭘 하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다.

버티면서 때우는 방식의 삶은 재미 없다. 영혼이라도 갈아넣을 정도로 죽어라고 할 정도의 동기는, 돈으로는 생기지 않는다. 누구에게 이기기 위한 것도, 이런 동기가 생겨나지는 않는다.

'농업 경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업 경제학 책, 절반 끝내고 나서..  (1) 2020.01.22
열한 번째 편지를 쓰며..  (1) 2020.01.20
대지의 미래, 니체..  (0) 2020.01.10
농민신문 기고문..  (5) 2020.01.03
농산물 유통 보고서..  (6) 2019.12.06
Posted by retired
,

"인간의 대지는 아직도 싹을 심기에 충분할 만큼 비옥하다. 그러니 이 대지는 언젠가 메마르고 생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대지로부터 다시는 나무가 자라지 못할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초반부에 나오는 구절이다. 별로 전체 맥락과는 상관 없는 얘기지만, 니체가 이런 얘기를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공교롭고 우연한 일이지만, 지금 쓰는 농업 경제학의 주제가 딱 이야기라서 신기하게 읽었다. 데리다가 니체에 대해서 쓴 책을 도서관 계단에서 너무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도 니체의 이런 측면에 대해서 얘기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농업 경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한 번째 편지를 쓰며..  (1) 2020.01.20
영혼이라도 갈아넣는..  (1) 2020.01.18
농민신문 기고문..  (5) 2020.01.03
농산물 유통 보고서..  (6) 2019.12.06
농업 경제학, 두 번째 편지..  (2) 2019.11.29
Posted by retired
,

'농업 경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혼이라도 갈아넣는..  (1) 2020.01.18
대지의 미래, 니체..  (0) 2020.01.10
농산물 유통 보고서..  (6) 2019.12.06
농업 경제학, 두 번째 편지..  (2) 2019.11.29
농업 경제학의 첫 번째 편지를 끝냈다.  (0) 2019.11.29
Posted by retired
,

'농산물 유통체계의 국제비교분석과 유통정책 개선방향'이라는 이름의 2017년 보고서를 읽고 있는 중이다. 하이고. 얼핏 살펴보려고 하다가 너무 재밌어서 하던 일 다 착파하고 읽고 있다. 이게, 소설이나 영화 보다가 피가 끓어야 하는데, 보고서 요약문 보면서 피가 끓기 시작하니.. 나도 참 특이 체질인 것 같다. 어지간한 영화 보다는 보고서가 더 재밌다..

Posted by retired
,

농업 경제학, 두 번째 편지 마쳤다. 8장 중에서 setup에 해당하는 1장이 끝났다. '최소한의 농업'이라는 제목 만큼이나 최소한의 얘기들을 담으려고 한다. 관건은 얼마나 경쾌하게, 읽을만하게, 그리고 읽고 나서 좀 찡하게 감정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한동안 이 '최소한' 시리즈로 몇 권을 더 해 볼 마음이 생겼다. 다음 책도 역시 10대들에 관한 최소한의 제목으로 쓸 생각이다.

많이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최소한이라도 방향을 보게 되면, 그걸로 족하다.

쉽게 쓰는 게 제일 어렵다고 하는데, 그렇기는 하다.

우리 시절의 나쁜 버릇이다. 니가 잘 알아, 내가 잘 알아, 니가 똑똑해 내가 똑똑해.. 지금 와서 돌아보면, 참 고만고만하게 제대로 모르면서 엄청들 잘난 척들 하고 살았다. 그리고 남에게 상처주고 집에 가서 기분 좋아하고. 지금 와서 보면, 그게 뭔 의미가 있나 싶다.

최소한 지난 3년 동안, 농업 경제학에 관한 책을 정리해본다고 할 때, 고개 푹 숙이고 한숨 쉬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니는 왜 또 그렇게 아무도 안 볼 책을 붙잡고 인생 한심스럽게 사냐, 그런 표정들이었다.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안 볼텐데.

그저께, 첫 번째 편지의 첫 번째 꺽기 들어가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 책을 경쾌하게 쓰고 지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도 오래 쓰다 보니까, 진흙탕도 즐기면서 경쾌하게 지나가는 재주가 생긴 것 같다.

40 통 정도의 편지를 쓰게 될 것인데, 이제 두 통 썼다. 우리 또래에 편지 많이 써 본 사람이 별로 없다. 나는 편지 정말 많이 썼다..

'농업 경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민신문 기고문..  (5) 2020.01.03
농산물 유통 보고서..  (6) 2019.12.06
농업 경제학의 첫 번째 편지를 끝냈다.  (0) 2019.11.29
스토리 보드, 농업 경제학..  (0) 2019.11.24
38번째 책을 시작하며..  (0) 2019.11.19
Posted by retired
,

농업 경제학은 중학교 2학년인 아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책이다. 3월 중반부터 크리스마스까지 매주 한 통씩 쓰게 되는데, 방학 때 좀 줄이고 하면 대략 40개 내외의 편지가 될 것 같다. 여기에 8장보다 좀 줄여서 장 구조를 갖추게 되고, 장마다 시작하는 글 하나씩 들어가니까, 이래저래 50개 미만의 절로 만들어지는 책 구조를 갖게 된다.

첫 번째 편지를 막 끝내고, 내가 지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88만원 세대' 쓰면서, 십만 부는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는 몇 배 더 팔렸다. 그 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책 사정은 그 때보다 훨씬 나쁘지만, 그 때도 사회과학 상황이 좋다고 하던 때는 아니었다. 요즘 농업에 대한 관심이 정말 바닥이지만, 그 시절, 20대나 세대에 관한 문제에 대한 관심은 아예 없었다. 물론 결과는 내봐야 아는 거지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갖게 되는 느낌 같은 게 있다.

책이라는 게 그렇다. 매번 최선을 다하지만, '케미'를 만드는 것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게 뭔지 실체도 불분명하다. 역사적으로 그런 게 성공한 대표적인 책이라면 나는 '빨간 머리 앤'을 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캐나다 어느 한 변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한 여성이 쓴 글이 그렇게 세계적인 히트를 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 내가 이 얘기에 대해서 들여다보게 된 건,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등 반지의 제왕의 상징들을 찾아보다가 북구 신화와는 또 다른 계열의 기괴한 상징들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면서였다. 마침 그 시절, 마법 학교 호그와트에서 벌어진 해리포트도 세계적인 히트를 치던 중이었다. 이런 얘기들을 따라가다보니까 나도 아일랜드 환상이 가득한 몽고매리 여사의 얘기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프랑스 사람에게 아일랜드 등 소위 켈트 상징은 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빨간 머리, 대놓고 켈트족의 환상을 거론하는 얘기인데, 어린 시절 앤의 얘기는 이런 켈트풍 상징으로 가득하다. 런던과는 좀 경계감이 있는 상징인데, 프랑스로 대표되는 또 다른 대륙에서는 "엄머, 이건 내 얘기야", 그렇게 먹어주고 들어간. 여기에 스코틀랜드의 소위 '네오스토이시즘', 신금욕파가 가졌던 매우 별란 서구 근대사의 사상적 전통을 만나게 된다.

요즘 욕 더럽게 많이 먹는 꿀벌의 우화의 맨더빌이나 공리주의의 벤담, 이 사람들이 매우 독특하다. 이 사람들하고 사상적으로 직접 연결되는 게 멘더빌-아담 스미스, 벤담- 존 스튜어트 밀, 그렇게 나온다. 동시대 사람들이고, 다들 정말 친했다. 거기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왔고, 존 스튜어트 밀에게서 여성들의 인권과 권리 그리고 참정권에 대한 주장이 나온다. 19세기에 여성에 대해서 교육을 해야한다는 가장 적극적인 얘기들을 스코트랜드의 전통이라고들 한다. 신금욕주의의 또 다른 정신적 다리이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 관심 갖는 사람은 잘 없다.

이런 게 '빨간 머리 앤'에 다 모여있다. 비슷한 흐름의 또 다른 축으로는 당연히 '오만과 편견'인데, 지독할 정도로 지적인 스노비즘을 추구한 런던의 전통과, 뭔가 이교도적이면서도 환상적 그리고 어디선가 엘프가 튀어나올 것 같은 낭만의 전통에 서 있는 '빨간 머리 앤'이 기묘하게 대척점을 이룬다.

뒤에 성공한 얘기의 성공사례를 분석하는 것만큼 허탈한 얘기도 없지만, 나는 켈트 전통과 스코틀랜드의 근대철학의 흐름 같은 게 만든 환상적 공간, 그런 게 빨간 머리 앤을 뒷받침하는 철학적 배경이라고 보았다.

처음 책을 쓰면서 내가 제일 많이 참고한 것은 움베르트 에코와 '빨간 머리 앤'이었다. 그리고 보조적으로 프랑크 허버트와 아이작 아시모프를 보았고. 앤 얘기의 4권은 편지와 일기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도 수많은 로맨스 코미디가 만들어지지만, 앤의 얘기는 캐나다에서 본 세상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 있는 수많은 켈트적 상징과 환상 그리고 여성들만이 갖게 된 복잡한 의식 그런 게 일종의 케미를 만들게 된다. 그래서 세익스피어의 골 때리게 웃긴, 그렇지만 런던 중심의 서사와는 좀 결이 다른 게 만들어진 거 아닌가 싶다.

농업경제학 첫 번째 편지를 마치고, 낭만의 시대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블랙유머를 다루는 법에 대한 생각이 좀 들었다. 나는 실패한 인생이다. 뭔가 좀 더 아는 게 많다고, 그 실패가 가려지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생으로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그렇다고 험악하고 힘들게 살 필요까지 있나 싶다. 그 주변부적 의식이 켈트 전통에 있고, 몽고메리 여사에게 있었던 것 같다.

첫 편지를 쓰고 나서 나도 알았다. 내가 속세적 관점의 인생으로서는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을. 그걸 내가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두 번째 편지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영화 대사 하나를 고르자면..

대부 2편에 마이클의 둘째 형인 프레도가 엄마 장래식에서 했던 대사다.

"I'm smarter than you."

망설이던 마이클이 결국 이 말 한 마디로 형을 죽이게 된다. 그 가족을 끝까지 따라다니는 동족 살해의 비극을 잉태시킨 한 마디이다. 한국 남자, 아니 한국의 엘리트 남성들이 가장 마음 속으로 하고 싶은 한 마디가 이게 아닐까 싶다. "난 너보다 똑똑해."

이 얘기로 한국을 가장 처절하게 읽은 사람이 강준만 선생이라고 생각한다. 수없는, I'm smarter than you들.

이 충동을 내려놓기는 어렵다. 망한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해도, 그래도 사실은 내가 쟤보다 더 똑똑해, 이런 바보 같은 전통 속에서 살아간다.

이제 나는, 그런 생각도 좀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몽고매리 여사가 앤의 첫 권을 마무리하는 여정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늘 그 생각이 문득 들었다.

'농업 경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산물 유통 보고서..  (6) 2019.12.06
농업 경제학, 두 번째 편지..  (2) 2019.11.29
스토리 보드, 농업 경제학..  (0) 2019.11.24
38번째 책을 시작하며..  (0) 2019.11.19
농업 경제학의 50개 주제..  (0) 2019.11.16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