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마당 고양이들한테 먹이를 줬다.

야옹, 결국 먹다 남긴 콤보를 마당 고양이들한테 줬는데, 역시 상했는지...

토를 해놓았다. 미안했다.

그리하여 사료를 한 웅큼 주었는데, 한넘이 잽싸게 와서...

녀석들이 요즘 만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그맣게 감자와 고추를 심었는데, 고추는 냉해라서 겨우 이제야 몇 개 달렸고.

감자밭에는 고랑마다 화장실로 쓰느라고, 똥 치우는 일이 또 보통 일이 아닌데...

감자잎을 녀석들이 뜯어먹는다. 도대체 왜 감자 잎을 먹을까 싶지만, 하여간 한 무더기를 뜯어놓았다.




마당 고양이만 그러는가 했더니, 야옹도 마당에 나올 때마다 풀잎을 먹는데, 오늘은 감자밭으로 직행...

잡초도 뜯고, 감자잎도 뜯고.

귀리잎이나 그런 것들은 캣잎이라고 해서 고양이 헤어볼을 토하기 위해서 먹는다고 하는데, 넘들은 아무 거나 막...

야옹도 감자잎 먹는 장면이 현장에서 딱 걸렸다.



요즘 마당이 한참 좋을 때... 라고 하지만 하루에 30분씩 쭈그리고 앉아서 손톱 밑이 까맣게 될 때까지 풀들을 뽑아주는데, 이놈의 풀들은 하루밤 자고 일어나면 다시 원상회복되어 있다.

토종 민들레라고 해서 아주 귀하다고 누군가 그러길래 올해는 뽑지 않고 뒀더니, 아주 엉망이 되었다. 민들레가 한 번 피고 나면, 땅이 아주 엉망이 된다.

손으로 잔디 관리하는 게 나처럼 할 일 없는 사람이 하루에 30분씩 매달려도 이지경인데, 도대체 골프장 그린은 무슨 수로 그렇게 금잔디를 유지하는 건지...

가끔 골프쟁이들하고 논쟁하면, 자기들도 조금씩 이제는 제초제 안 쓰고 손으로 뽑기 시작햇다고 하던데, 넘들은 무슨 용빼는 제주가 있는 건가?



지금은 계곡 밑이라서 좋기는 한데 -모기 살벌한 것만 빼고 - 평창터널이 뚫리면 담벼락 바로 옆부터 공사장이 된다.

종로에서의 한 때의 아름다웠던 기억 정도로나 남게 될까? 나도 전세사는 처지라서, 탄원서 내거나 그럴 형편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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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은 요즘 약간 호전적으로 변했다.

마루에 있는 모기장을 드디어 밀어내고 밖으로 나갔다.

영화 <킬빌 2>에 보면, 생매장된 관에서 손날로 계속해서 쳐서 결국 관을 부수고 나가는 장면이 있다.

그래서 '햄버거 고양이'에서 '킬빌 고양이'로 별명이 바뀌었다.

사건의 전모는 다음과 같다.

하루 종일 마당에서 마루에 있는 고양이들을 놀려대는 마당 고양이의 놀림에 열 받았는지,

드디어 모기장틀을 밀어내고, 바깥으로 나가시어,

과감히 자기 보다 덩치 큰 고양이와 기어코 한 판을 뜨셨겠다.

마침 돌아왔던 아내가 보고 시껍해서 얼른 붙잡아서 집으로.

어쨌든 태어나서, 아니 우리 집에 와서 2년만에 처음으로 드디어 다른 고양이와 한 판을.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한 수 잡고 간다더니, 처음 해 본 싸움에서 이겼다.

그리고는 나중에 한 번 더 모기장틀을 열고 나가서 2시간 동안 혼자 놀다가 들어왔다.

(더운데 창을 못 연다...)

하여간 그 이후로는, 이제 어른이 다 된 듯한 표정으로, 완전 당당해졌다.

우리 집은 오래된 집이라서 별의별 벌래가 다 나오는데, 완전 반장 노릇이다.

떠들지 말란 말이야...

우리 집 반장은, 떠들면, 가차없이 다리를 끊어놓는.

(아, 무셔라...)

다시 파리의 계절이 왔다.

날아다니는 파리를 고양이 잡는 걸 보면, 정말 예술이다.

펄쩍 뛰어서 그 작은 손으로 파리를 박수 치듯이 잡아내는데, 진짜 예술이다.

(덕분에 마루에 죽은 시체가 즐비하다... 우에...)

모기도 좀 잡으면 진짜 사료값이나 캔값이 아깝지가 않을텐데, 모기는 잡지 못한다. 너무 작아서 그런가?

진짜 떠드는 애는 모기인데...

이 동네 모기는 '타이거 모기'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서울예고가 집에서 멀지 않은데, 서울예고 학생들이 하도 이 북악산 모기에 시달렸는지, 거기에 '타이거 모기'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물리면, 진짜 인생이란, 그런 질문이 나올 정도이다.

(다음에는 감자밭과 고양이 만행 사건에 대해서 한 번 써볼까...)

(고양이 얘기 책으로 내고 싶다는 출판사가 있어서 연락을 해왔는데, 아무래도 가벼운 얘기는 당분간은 쓰지 않을 생각이라고 대답을 했다. 생각보다, 고양이가 재밌기는 재밌는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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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위한 새 인문학 사전>이라는 책을 집어든 것은, 순전히 도대체 원어가 무엇이었는데, 우리나라 번역어가 이렇게 생기게 되었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원 제목은, Idea that matters: Key concepts for the 21st century이다.

중요한 개념들, 21세기를 위한, 뭐 그 정도의 뜻인데, 저자인 그레일링이 철학자라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나?

하여간 어차피 잡은 건데, 잡은 김에 쭉 읽었다.

전문가한테는 별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세상에는 전문가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사전 유형의 개념 정리책들이 원래 그렇듯이, 이 책은 사전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전처럼 필요한 항목만 빼서 읽으면 아주 재미없을 것 같다.

저자의 권위를 믿고, 이런 개념들이 요즘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군, 그렇게 맨 앞에 선 철학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주제를 분류하고, 골라내는 것을 본다고 하면, 그럼 맨 앞에 선 사람들이 요즘 생각하는 것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은 평이하지만, 그가 골라낸 개념 그리고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개념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확실히 2010년, 세상은 막 밀레니엄이 시작한다고 하던 그 10년 전과는 좀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공부의 세계에서도 가끔 트렌드를 살피는 것도 중요할 것 같기는 하다.

그야말로 따끈한 이번 시즌 머스트 해브 아이템 (핫 아이템은 아니다...)

고전을 보고는 싶은데 골 아프기에는 좀 사는 게 빈한한 상황, 생각은 좀 하고 싶은데, 골 패기에는 체력이 좀 딸리는 사람, 약간 "최근에 영국에서는 말이야"하고 잘난 척을 한 번 때리고 싶은데 소재가 빈안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

트렌드는 트렌드일 뿐이야라고 정색을 하고 '인본주의'를 생각하시는 분에게는, 경기들만큼 천박한 책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으니, 최신 유행에 심약하신 분은 피하시기 바란다.

책을 딱 덮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이 책의 진짜 기능은 지식의 기초 체력 테스트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반나절에 읽었다면, 대학생 상식 수준.

하루가 걸렸다면, 10대 문학도 수준.

1주일이 걸렸다면, 이제 그림 없는 책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려고 하는 중학생 수준.,

꼼꼼히 읽으면서 한 달 가량 걸렸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흡수할 정도로 순발력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초등 5학년 수준,

그런 기초체력 테스트용 책으로는 딱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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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화경제학을 준비하면서 영화계에 대한 현장 조사를 좀 했었다.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20대들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일은 없겠다... 생각보다 좀 처참했다.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었다.

곽지균 감독의 자살 소식은, 올 게 왔다는 생각과, 짠한 마음 그리고 남은 자들의 무거움.

지난 달에 그의 영화 중 <청춘>을 아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내가 지냈던 시간이지만, 90년대의 정서와 2010년의 정서를 비교하기 위해서 찾아본 영화인데, 다른 사람도 재밌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간만에 재밌게 본 영화였다.

진심으로 고인에게 애도를 보내고 싶다.

영화 <붉은 돼지>의 한 대사,

"좋은 놈들은 이미 죽었어..."

진짜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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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문사철이 죽으면서 언어학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도 같이 죽은 것 같다.

20세기 철학자들은 많은 경우, 언어학을 겸해서 하는데, 아마 한국에서 언어학을 기반으로 가장 유명해진 사람이 고종석 선생 정도가 아닐까 싶다.

몇 년 전에 <말들의 풍경>, <감염된 언어> 등 한국에서는 드물게 언어학을 주제로 한 고종석 선생의 책이 줄울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아마 당분간 언어학을 기반으로 한 책은 그 정도가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고종석 선생이 쓴 글 중에서 가장 웃겼던 것은 나프어 사전이었다.

우리는 프랑스만큼 언어학이 발달하지 않아서 <프랑스어-프랑스어 사전>처럼 방언과 특수언어를 정리한 게 거의 없는데, 2010  한국인은 그렇게 학문에 부지런한 민족이 아니라서 아마 그런 것은 영원히 생겨나지 않을 성 싶다.

나프어는, 쉽게 말하면 강남 TK어 사전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전또깡이 국어학자들 데려다가 표준어 배우면서 '궁중어'라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대구 사투리에 서울말이 대충 섞인 게 궁중어인데, 서울 사람도, 대구 사람도, 배우지 않으면 그렇게 하기 어려운 그 말을 궁중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주어는, "본인은"으로 시작한다. 말이야 따라할 수 있지만, 억양을 따라할 방법이 없다.

가끔은 서정주를 말당 선생이라고 부르는 고급 유머도 궁중어의 한 장르이다.

NAP는 Neuilly, Auteil, Passy라는 세 개의 파리 지역을 말한다. 뇌이유에는 파스퇴르 고등학교와 미국 병원이 있고, 오떼이유에는, 음,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부자 동네이고, 빠시에는 미국 문화원이 있다. 뇌이유에서 약간 위로 올라가면 구스타프 에펠의 생가가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갑자기 빈민촌으로 바뀌면서 홍세화 선생이 거기 사셨단다...

프랑스 신문에는 요즘 강남 TK가 그러는 것처럼, NAP가 프랑스 토지의 몇 퍼센트를 가졌다느니, 평균 소득이 어떻다느니, 그런 기사들이 종종 나온다.

분석을 보면, 프랑스 전역에 성을 가지고 있는 영주들이 파리에서 살 때에는 주로 NAP 지역에서 산다고...

가끔 우울해지면 고종석 선생의 나프어 사전을 보는데, 그냥 보면 강남어 사전하고 거의 유사하다.

친구. 거의 모르는 사람
좋은 친구. 친구
사적인 친구, 주치의나 전담 변호사, 회계사
절친한 사이, 밥 한 먹은 사이
검소하다, 극도로 인색하다
먹고살 만하다, 매우 부유하다
사람들, 나프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
우리 식구들, 나프
이주민, 이슬람 교도
불행해지다, 오쟁이 지다
그 친구는 자식 복이 없어, 그 친구 아이가 마약을 해
걔들 문제가 많아, 걔들 이혼했어

나도 강남에 몇 년 산 적이 있었는데...

신천역 일대를 뒷구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태춘 노래에 나올 정도로 유명해진 얘기이고,

강남에서도 문정동처럼 변두리로 나가면 시골이라고 부르거나 경기도라고 부르고, 강북은 아예 북한이라고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다.

광화문에서 만나자고 하면, 북한까지 어떻게 가냐, 그런 식으로 활용을 한다.

최근에 아내와, 패션어 사전, 인터넷 쇼핑몰 사전, 그런 걸 쉴 때마다 조금씩 만들어보는 중이다.

최근에 찾은 것 하나.

쓰탈... 카피본. 활용예. 마크 스딸, 이건 마크 제이콥스 카피본.

고종석 선생이, 가끔 언어학을 통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푹푹 찌르던 시절이 있었는데, 선생은 요즘 뭐 하시는지, 도통 종적이 잡히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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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느에서 우리는 매번 상탄다매..

한국 영화는 배고플 일 없다는데, 왜 이 사람들은 맨날 배고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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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 대구

독서감상문 2010. 5. 22. 11:52

선거 둘째날, 대구에 갔다가 대구 MBC 앞에서 신호에 조명래 유세차랑 나란히 신호에 걸려서 유세를 꽤 길게 구경할 기회가 되었다.

조명래는 잘 나오면 6% 정도 나온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에게" 하겠지만, 요즘 노회찬 지지율 보면 대구 진보신당의 6%에게 그렇게 말하기도 어렵다.

선거 구호 중에서, "색깔 좀 바꿔주세요"라고 하는 게 눈에 띄었다. 파란색 한나라당, 그 한 가운데에서 색다르면서도 눈을 끄는 구호였다.

이제는 '동토의 왕국' 정도로 생각되고, 박근혜 텃밭이자, 한나라당의 텃밭 근원지 정도로 생각되는 게 요즘의 대구 이미지이지만, 원래 대구가 한국에서 가장 좌파들의 도시였고, 어떻게 보면 한국 정치경제학의 고향이기도 한 셈이다.

맨 앞 줄에 서 있는 정치경제학자들 중에서는 대구 출신이 많고, 심지어 전라도 대학들에서 정치경제학 가르치는 선생님들 중에는 대구 출신이 적지 않다.

90년대 동구가 붕괴한 이후에도 가장 오랫동안 헌책방에서 자본론이 돌아다니던 곳이었다고 알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제는 좀 어려워졌지만, '새 정치경제학'이라는 구호로 일종의 new left 학술운동을 주도하던 곳도 경북대였다. 나도 성공회대로 소속을 바꾸기 전 2년 동안에는 경북대 소속이었고, 매달 어쨌든 대구에 내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대구에서 지역 종합지 형식으로 <레프트 대구>라는 잡지를 새로 만들었다. 창간호는 800권을 찍었는데, 그건 전부 소화했다고 한다. 대단한 일이다.

진보신당이라는 이름에는 논란이 좀 있었는데, 원래의 당명은 진보신당을 만들기 위한 연속회의 정도로, 실제 이름은 연석회인 임시이름이다. 입장에 따라서는 선호의 차이가 좀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 이름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여러 가지로 드러나게 된 셈이다.

도대체 어떻게 정세균과 내 이름을 같은 항목에 올릴 수 있는가, 도대체 어떻게 이해찬과 내가 같은 부류로 묶일 수 있는가, 이런 고민들이 많았는데, 아마 그렇게 곤란한 지경에 놓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의 분류대로 한다면, 그냥 좌파 혹은 괄호열고 구좌파가 한 계열이 있고, 뉴 레프트 계열이 또 한 부류가 있고, 이 후자에는 여성주의, 생태주의 그리고 문화주의와 같이, 구좌파에서 별로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운동의 계열들이 들어가고, 그 연장선에서 장애인 운동과 소수자 운동 같은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여성주의 내에도, 그냥 페미니즘과 영 페미니스트들 사이에 골치 아픈 논쟁들이 있고, 생태운동 내에도 그냥 뉴레프트라고만 분류되기 어려운, 훨씬 더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흐르들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 모든 것을 '진보'라는 이름으로 때려넣게 되니까, 지방 선거에서 우리가 본 이 대 혼동상의 문제가 생겨난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진중권의 경우는, 뉴 레프트라고 분류하면 진짜 대표적인 뉴 레프트 계열의 평론가 혹은 지식인, 그렇게 분류될 것이다.

김규항은? 조금 복잡할 것 같은데, 흐름상으로는 구좌파 성향이 강하기는 하지만, <고래가 그랬어>와 함께 일종의 신매체 운동,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진중권과 비교하면, 조금은 더 fundamentalist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교과서적인 성향이 강하지 않을까?

하여간 선거 기간 중에, 그런 분류에 대한 곤혹스러움과 불만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인데, 한나라당 버전 '동토의 왕국'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대구에서 '레프트 대구'라는 화끈한 간판을 걸었다. 

브라보!

책자 하나가 얼마나 시대를 대변할까 싶지만, 비로소 좌파가 스스로를 좌파라고 자랑스럽게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시대의 흐름이 어느 한 구석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고통이 깊어야 새로운 잉태가 나온다... 는 데미안 버전의 부드러운 얘기가, 이번에도 유효할 것 같다. 

대구에서 시민운동이든, 민중운동이든, 한나라당이 아닌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버거웠겠는가? 

그러나 대구는 노동자의 도시였고, 한국에서 노동운동의 원형을 만들어낸 곳의 하나이기도 하다. 

인민노련의 역사를 찾아가면서, 인천에 있던 인민노련이 전국 조직화하면서 맨 처음 제대로 된 활동가를 파견한 곳이 경주이기도 하다.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은 경주에서 첫 페이지를 시작할려고 생각하는 중이다.) 

2010년, 계몽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누구 위에서 지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고, 누구도 누구를 계도해서 새로운 길로 가게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평등과 수평이라는 말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평등은, 말이 좋아 평등이지, 결국 평등이라는 개념을 매게로 누군가 누군가를 지도하는 그런 구조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극단적인 평등주의는, 스탈린주의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수평은, 방향은 없고, 구조만이 존재하는, 매우 밋밋한 개념이기는 한데.

2010년, 한국에서 레프트라는 새로운 질문은, 수평이라는 새로운 구조에 대한 질문이기도 한 것 같다.

무엇이 이 시대의 레프트인가?

'레프트 대구'라는 잡지의 제호를 보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피가 끓기는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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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은 황윤 스타일의 영화가 있다.

한국에서 생태에 관한 영화를 위해서 논하기 위해서는, 정말 황윤의 영화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한국의 생태 다큐멘타리를 대표하는, 그런 영화라면 결국 황윤의 <어느 날 그 길에서>를 꼽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학생들한테 이 영화를 보여주었는데, 정확히 한 지점, 인간이라면 당연히 눈물을 흘리는, 정확히 한 포인트가 있다.

그닥 눈물이 날 것 같지 않은 흐름 속에서, 정확히 누구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 영화를 보고 울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갑자기 머리 속에서,

엠비 리, 오만 오 메이어, 문수 킴 등등, 아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하겠구나 싶었다.

드디어 출시, 소장용 DVD 박스 셋트...

한국을 사랑하고, 생태를 사랑하고, 감성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표현주의 영화의 대중 버전을 사랑한다면, <어느 날 그 길에서> 박스 셋트 정도는 소장하고 있어야.

다큐를 보다 말고 울까 싶었는데, 나도 눈물이 팍. 또 봐도 울까 싶었는데, 또 봐도 팍.

정말 제목 그대로이다. 어느 날 그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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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집에 있는 고양 말고 또 다른 길냥이들과 같이 사는 중이다. 이게 같이 사는 게 맞다고 해야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작년 장마 때 오들오들 떠는 새끼 4마리와 어미가 안되어 보여서 가끔 먹이를 준다.

너무 자주 주면 안 좋다고 해서, 한달에 한 두 번 주는 것 같다. 아주 추울 때, 비올 때...


아내가 애지중지 하는 아주 조그만 텃밭이기는 한데, 고추모종을 심어 놓았고, 감자도 막 싹이 나기 시작한다.

넘들은, 텃밭 둔덕을 파헤치고 실례를 하고 다녀서, 내내 돌아다니면서 녀석들 똥 치워주는 게 생각보다 큰 일이다.

해 있는 날은 밥을 잘 안주는데, 모처럼 주말에 개운한 기분으로, 에라 기분이다...



덩치가 비슷해보이지만, 새로 온 녀석이 새끼이고, 먼저 온 넘이 엄마이다.

실제로 보면, 새끼 먹으라고 엄마는 조금만 먹고 금방 자리를 비겨준다.

이넘들 말고도 식구 관계는 아니지만 종종 놀러오는 뚱땡이가 한 마리 있는데, 그 뚱땡이가 자기가 먼저 다 먹지 않고,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다른 새끼들을 위해서 조금만 먹고 옆으로 비켜줄 때, 정말 감동이었다.

남의 자식이라면 자기가 먼저 다 먹어버릴 것 같은 인간들을 좀 아는데, 뚱땡이는 그러지 않았었다.


얼핏 보면 형제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덩치 차이가 좀 난다. 모녀 관계이다.


잘 쓰지 않는 기능이기는 한데, 정말 간만에 디지탈 줌이라는 걸 써서 2배로 키워보았다. 그냥 크롭 기능 같은 거라서 실제 출간용 사진에서는 거의 쓰지는 않지만, 그래도.

보통 나는 수동 아니면 셧터 속도를 고정하는 그런 사진을 좋아하는 편이기는 한데, 고양이 찍을 때에는 그딴 거 없다.
요즘 주로 고양이들을 찍는데, 수풀 사이에서 잠깐 얼굴 보는 순간에 이것저것 조정할 틈이 없다.

고양이 하품 하는 걸 한 번 찍어볼까 싶었는데, 그게 기회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대신 필름 시뮬레이션이라는 걸 사용해서, 약간 색조가 다른 사진을 얻을 수 있기는 하다. 3번째 사진이 커스텀 채널로 설정한, 벨비아 톤이고, 나머지 수치들도 훨씬 올려놓은 건데. 같은 거 두 장을 놓고 확대해서 보면 좀 차이가 있지만, 그냥 찍으면 그게 그거다.


곧 장마가 올텐데, 이넘들은 어떻게 살까?

작년에 같이 지내던 4마리 새끼들은 그래도 그 장마를 무사히 잘 넘겨서 이렇게 어미가 되었다.

이렇게 보면 정말 평화로워보이지만, 어미는 그새 어디 가서 싸우고 와서 꼬리가 반쯤 끊겼고, 새끼는 아직 꼬리는 멀쩡한다.

내가 본 것만 이제 벌써 3대째인데, 원조 할아버지에 해당하는 얼룩 고양이는 요즘도 가끔 우리 집 부엌 앞 담장 위에서 햇빛을 쬐고 있기도 하다.

넘들도 사는 게 힘들고 고달퍼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생명이라는 것은.

삶은 언제나 치열하지만, 가끔은 다른 생명을 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 그런 게 내가 누릴 수 있는 호사 중의 하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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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나침반

독서감상문 2010. 5. 14. 10:35


1.
나는 책은 돈 주고 사서 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본다는 게 원칙이기는 하지만, 부끄럽게도 요즘 내가 보는 책 중의 상당수는 그냥 보내줘서 읽는 것들이 많다. 더 부끄러운 것은, 그렇게 나에게 오는 책을 다 읽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박스로 책들이 오는데, 잘 감당이 안된다.

그 중에는 좋은 책도 있고, 그렇게까지 좋아보이지 않는 책도 있는데, 그냥 받은 책에 대해서 혹평을 하는 게 미안하다.

그리고 더 힘든 게 그렇게 책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오는 책만큼이나 파일로 된 원고로 된 책들도 많이 온다.

그런 책들을 하도 많이 보다보니까. 별 내용은 아니지만 팔릴 것 같은 책, 그리고 정말 좋은 책인데 그냥 묻힐 책, 그런 게 이제는 조금 구분이 된다.

가끔 추천사 부탁을 받을 때, 몇 줄짜리 추천사 대신에 해제 형식으로 좀 길게 나름대로 글을 쓰는 경우가 있다. 장 지글러의 빈곤에 관한 책이나 세계사에 관한 책이 대표적인 책들이었는데, 원고 상태에서는 도대체 한국에서 이게 얼마나 팔리겠나, 싶어서 나름대로는 좀 고민을 해서 해제를 달았는데, 반응이 썩 괜찮았던 경우이다. 내가 원고 보는 솜씨가 별로인가 보다...

2.
책 중에는 책 자체가 중요한 책도 있고, 책을 둘러싼 맥락이 중요한 책도 있다. 김예슬 선언의 경우는 책도 중요하지만, 그 맥락이 훨씬 중요한 책의 경우가 아닐까?

현각 스님이 엮어낸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 선의 나침반>이라는 책이 그런 경우이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지금 최대의 이슈 중의 하나와 직접 연관되어 있는 책이지만, 아마 그렇게 이 책이 한국에서 수용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현각도 그리고 출판사였던 김영사도, 그렇게는 생각을 안해봤을 것 같다.

3.
기독교에 관한 책은 꽤 많이 읽어봤는데, 불교에 대한 책은 나도 그렇게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니다.

지난 10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의 책들은 편집 방식이나 디자인도 많이 바뀌었지만, 어투나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다. 불과 10년만에 한국 책에서 생겨난 스타일 차이 역시, 좋거나 싫거나와 상관없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 변화 속에서 본다면, 불교의 책들은 정말 올드 스타일, 여전히 한문체 혹은 언문체, 그래서 나도 읽는데 불편함을 가끔 느낀다.

야, 딱딱하다...

도법스님의 책들도 좀 그렇다. 직접 말씀을 들을 때는 정말 재밌는 얘기였는데, 책으로 바뀌면 엄청 딱딱하다.

그런 점에서 법정스님은, 불가에서는 드물게 스타일리쉬한 셈이고, 시대의 문법을 정말 기똥차게 포착한.

3.
숭산이 누군가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니, 숭산 얘기 하기 전에 숭산의 글을 엮어낸 현각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는 게 순서일지도 모르겠다.

'명랑'을 모토로 사는 나에게 그런 적이 있었을까 싶지만, 나에게도 우울증 중증 시절이 있었고, 아침에 눈만 뜨면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그런 때가 있었다.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앞 부분에 딱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대기업에 가고 싶어 애타는 사람들에게 가끔 그 시절 얘기를 해주면, 별로 동감하는 눈치는 아니지만, 지금 대학생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바로 그 위치의 최정점에 서 있을 때, 나는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해서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시절에 보았던 책이 단테의 <신곡>과 현각의 책이었다.

얼마 전에 본 다큐에서 하버드에 간 한국 학생들에 대한 얘기가 있다.

얘기는 간단하다. 요즘 난리치는 고등학교의 하버드 입학 열풍에도 불구하고 하버드에 간 한국 학생의 자살율이 너무 높아서 미국 교육당국에서 그 원인을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에 가는 것까지는 생각을 해봤는데, 막상 하버드에 가고 나니, 이제 뭘 하지? 그런 질문이 생겨났고, 그래서 자살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는 하버드에 갈 일이 두 번이 있었는데, 두 번 다 안 갔다. 갔다면 인생이 좀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을까? 어차피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이계안이 하버드에 1년 가 있었다. 자기는 즐겁다고 맨날 나한테 얘기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좀 별로였다. 요즘에야, 그 일이 후회된다고 얘기를 하두만.

하여간 현각은 한국에서는 인기 최고인 바로 그 하버드에 있었고, 하버드에서 숭산의 강연을 들었고, 그 길로 다 때려치고 불가에 입문한 사람이다.

약간 맥락은 다르지만, 불교계의 박노자인 셈이다.

현각이 <선의 나침반> 맨 뒤에 달아놓은 글이 있는데, 바로 명박이 들으면 펄펄 뛸, 광우병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이 뉴스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더욱더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다. 시끄럽고 자극적인 서울을 떠나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경북 영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많이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길에서 벗어나 있는가 생각하며 나는 억누를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숭산, 현각 그리고 광우병으로 통하는 이 얘기가 숭산의 책을 편역한 그 책 말미에 있다는 사실.

이게 지금의 한국 불교가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예전 내가 자살충동에 시달리던 시기에는 현각의 책을 읽으면서, 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딱 보자마자, 맞아 이거야,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만, 당시 나는 내가 왜 사는지, 그 질문에 도저히 답할 수가 없어서 아주 괴로워했는데, 눈을 뜨면 그래도 출근을 하고, 외국으로 출장을 나가야 하고, 뭐 그랬다.

4. 숭산이 누구야?

세계 4대 성불이라는 표현이 몇 년전까지 유행했다.

달라이 라마, 틱탓한, 마하 거사난다 그리고 숭산.

한국에서 숭산을 물어보면, 아마 거의 모를 것 같지만, 불가에서는 배분이 엄청 높으신 분이다.

예전에는 법문으로 된 불경을 중국어로 옮겨오고, 그걸 다시 우리 말로 옮기는 그런 게 중요했었던 것 같다.

<쌍윳따 니까야> 등 최근에 법문을 다시 번역하는 게 유행이기도 하고, 선이고 혜능이고, 그딴 거 없고 다시 초기 불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그게 좀 유행이다.

나도 그런 유행에 빠져서 또 한참 그런 강의를 하기도 했었는데, 작년 가을에 법문으로 된 불경 공부 한참 하다가 문득...

그것도 덧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아함경 같은 것을 잔뜩 쌓아놓고 읽다가, 어느날 든 생각이.

유행 다 덧없다.

하여간 49년, 고봉의 법맥을 이어받아 78대 조사가 되었는데, 국내 보다는 해외에서 선원을 설립하여, 외국에서는 엄청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뭐, 그런 사람 있나보다, 원래 스승들이 고향에서는 별 대접받지 못하는 편이니, 그렇게 간단하게 치부하고 넘어가기도 좋기는 한데.

숭산이 말년에 화계사에 있었고, 2004년에 화계사에서 입적을 하셨다.

자, 이제부터 노무현과 새만금 그리고 불교의 얘기가 나온다.

5.
딱 고만 때, 수경과 문규현 신부, 그리고 나의 아내의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내는 태권도 사범이고, 삼보일배 한참일 때 삼보일배단에서 스포츠 마사지 전담이었다. 고된 일과가 끝나고 마사지 하는 그런 게 일이었다.

나는 물대포를 제대로 맞은 적이 없는데, 아내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시절, 새만금 방조제 위에 올라가서 물대포 제대로 맞았던 적이 있다.

하여간 아내는 수경스님의 전담 트레이너였던 셈이고, 수경스님은 그런 여인과 결혼한 사람 그렇게 나를 알고 있다.

결혼은 그 뒤에 했다.

도법스님과는 불교에 대한 얘기도 꽤 많이 물어보고, 그랬던 것 같은데, 수경스님하고는 불교 얘기, 그딴 거 없다.

어떻게 하면 노무현이 새만금에 대한 생각을 돌리게 할 것인가, 맨날 그 딴 얘기만 했고, 삼보일배로도 안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느냐, 그런 불교와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만 했다.

아주 드물게 불교에 대한 얘기는, 봉은사가 어떻고, 화계사가 어떻고, 그런 부패한 사찰에 대한 뒷다마, 당취 얘기, 그런 정도.

6.
화계사는 큰 절이다 보니 금전 문제로 인한 부패가 아주 곤란했던 상황인데, 그건 봉은사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봉은사 개혁이 먼저 진행되면서 봉은사에 불교생협을 만들고, 그런 일에 나도 관여를 하게 되었다. 처음 봉은사에서 대중강연할 때가 기억이 난다. 맨날 지나가면서만 보았지, 여기서 강연할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하여간 그런 일이 생겼다. 이게 불교계에서는 아주 큰 개혁에 대한 흐름이었다.

안상수 선수가 요즘 봉은사 때문에 약간 곤경을 치루는 것 같은데, 사실 봉은사에서 했던 것은 안상수가 생각하듯이 그런 좌파 불교 그런 건 아니었고, 생명 불교로의 전환에 따른 유기농업 운동, 그런 게 본류이다.

다 새만금과 삼보일배에서 시작된 일이다.

하여간 막 그러던 시절, 화계사에서 숭산의 제자들이 모여서 숭산이 입적한 화계사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런 아주 길고 긴 회의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삼보일배의 여파로 무릎 수술 하고, 장애인 수첩 나왔다고 좋아하던, 지리산 선방에 다시 처박히겠다는 수경을 들어다가 화계사 주지로 앉힌 것이다.

수경이, 부패는 하지 않을 거 아녀...

숭산 선원, 나이스 샷!

내가 마지막 타본 마티즈가, 수경스님이 화계사에서 부르셔서 갔더니, 동네 마실이나 나가자고 어느 신도분이 운전해주시던 차에 같이 탔던 것이다.

화계사 주지쯤 되면 뭐 벤츠 정도야, 할 사람이 있겠지만, 진짜 마티즈였다. 

어떤 단체에 후원금 내야될 일이 있었는데, 진짜 여기저기 부탁해서 꼬깃꼬깃 만원짜리들로 겨우 얼마를 모아서 후원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후원받은 단체에서는, 수경스님이 돈을 너무 적게 주셨다고 불평을 해서, 간만에 내가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도대체 그 돈이 어떻게 생겨난 돈인지 알기나 하느냐!

화계사 주지를 근접 거리에서 모시면서, 정말 맛잇는 간장 한 병 얻어먹은 적이 있고, 손수 그림과 글씨를 쓰셔서 코팅한 걸로 설날 선물로 받은 적이 있고.

다른 건 몰라도 수경이 부패는 하지 않을 거다...

이게 숭산의 제자들이 수경을 화계사 주지로 모시면서 했던 생각으로 알고 있다.

그 수경이 바로 촛불집회 때 열렸던 대법회에 개회사를 하셨던, 바로 그 장애인 스님이다.

그런 수경에게 나도 꼭 하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한 번도 못했던 말이 있다.

스님, 녹색당 당원 좀 하시지요...

차마 나도 그런 말은 못했다.

하여간 숭산선원에서 화계사 주지로 수경을 모셔오면서, 지리산 뒷방에서 10년간 면벽이나 하고 분파는 물론 제자도 거느리지 않던 수경이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족보를 따지자면, 수경은 해인사에서 성철을 모시던 성철의 직계 제자이기는 하다.

해인사 청동불 사건의 바로 그 '토깽이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그로 인해서 해인사의 토깽이 제자들에게는 '죽일 놈'이 된 바로 그 양반이기도 하다.

7.
요즘은 수경이 4대강에 대한 참회를 한다고 여주 남한강 앞에 콘테이너 갔다놓고 계신데, 삼보일배 후유증이 있어서 그 안에서는 못 주무시고 그냥 노숙을 하시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다음 주에 한 번 찾아뵙기로 하고, 읽으실만한 책이 뭐가 있나 이것저것 뒤적거리던 중에...

딱 <선의 나침반>이 걸렸더라, 그래서 식탁에 앉은 길로 쭉 읽었더라...

한국 불교의 힘은, 아직 부패하지 않은 제자들이 남아서, 힘과 권력을 탐하지 않고, 초기 불교의 가르침대로 가난하게,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살아가는 게 남아있더라, 그런 거 아닐까?

가만히 앉아서 따져보니, 성철의 법통과 숭산의 법통이 지금 한나라당에서 좌파 주지라고 하고, 촛불집회 때 개회사했던 그런 사람을 화계사 주지에 어떻게 앉혀놓을 수 있느냐하지만.

숭산의 제자들이 수경을 그 자리에 앉혔고, 진짜 장애인 수첩 외에는 딸랑 아무 것도 없는, 진짜 가난한 스님이 화계사 주지이고, 그 주지는 지금 남한강변에서 노숙을 하고 계시더라...

8.
<선의 나침반>은 원래 영어로 쓰여진 책이고, 그래서 외국인들을 위한 불교 입문서이다.

불교를 처음 접하면, 불가의 사람들은 다 줄구장창 입에 달고 다니는 얘기들인데, 저게 무슨 뜻일까, 궁금해하는 말들이 좀 있다.

딱 그거, 정말 입문서용으로 불교에 대해서 궁금했던 이것저것, 딱 고렇게 되어 있다.

한 번쯤 읽어두면 재밌을 얘기이기도 한데, 책 보다도 이 책을 둘러싼 얘기들이 현재 진행형의 한참 클라이막스로 가고 있는 얘기라서.

한나라당에서는 화계사의 수경을 끌어내리려고 할텐데, 그러면 숭산의 제자들, 그야말로 세계 4대 성불의 직계제자들과 일전불사를 치루어야 할텐데, 그게 만만치는 않아보인다.

4대강과 불교의 싸움은, 카톨릭의 경우와 달리, 세계적인 선불교의 법통을 이어가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 하버드의 동양철학 전공자들을 비롯한 전세계 선불교와 한나라당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천주교도 이번에 마음 단단히 먹고 마지노선을 치고 있지만, 불교계도 만만치 않다. 돈으로 간단하게 이미 매수해버린 조계사 총무원과는 또 다른 불교의 법맥이 있는 셈이다.

성철의 제자들, 법정의 제자들 거기에 숭산의 제자들, 불가는 방송국과 달리 사장만 장악하면 간단히 '9시 뉴스'로 장악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이사회 구조가 아니다.

여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 또 오래된 숨은 힘들이 몇 개 더 있다.

한나라당이 불교를 KBS 비슷한 거라고 생각한 게... 한국은 좋으나 싫으나 불교의 나라이다. 그 천년을 넘은 법통이, 어찌 조계종만 장악하면 된다고 생각했누...

책을 다 읽기 어려우면, 뒤에 실린 현각의 글이라도 읽으시기 바란다.

한나라당 조기유학파들이 그렇게 숭배하는 하버드 출신의 현각 스님이 광우병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주 잘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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