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년은 나는 별 일 없는데, 주변이 온통 어수선했던 한 해였다. 어머니가 폐암 진단을 받으셨고, 6주 간의 항암 치료를 마치셨다. 너무 나이가 많아서 수술은 어렵다고 결론을 냈고, 항암 치료 받으시면서 버티시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때라도 암을 발견한 것이었다. 인생이란, 정말 모를 일이다. 어머니는 지난 여름에 코로나에 걸리셨다. 그리고 연달아 두 번의 장염이 있었다. 그렇게 병원을 자주 다니시게 되었는데, 혈압이 영 안 내려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하다가 결국 암을 찾아냈다. 결국 큰 병원으로 옮겨서 폐암 진단을 받았다. 그 당시 어머니는 치매와 함께 우울증이 심해져서 식사를 거의 안 하고 계셨다.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낫다. 몸무게도 5킬로 정도 늘었고, 상태도 아주 좋아지셨다. 우리 집 어린이들한테 설 세배도 받고, 어린이들 노래 부르니까 웃기도 하셨다. 몇 년은 거뜬히 버티실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되고 싶은 것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때도 없고, 지금도 없다. 딱 한 번 되고 싶은 게 있었던 적이 있었다.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 공사를 가는 수밖에 없는데, 점수는 문제가 없지만, 시력이 택도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육사를 가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나는 비행기를 몰고 싶었던 거지, 군인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와의 불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평생 풀리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는 내가 육사를 가지 않은 것이 평생의 한이 되었다. 그 대안으로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셨다. 물론 나는 행시 공부를 잠시 하다가, 이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공부를 계속 했다. 아버지가 그때 정말 서럽게 우셨다. 나중에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불행의 시작이라고 하셨고, 끝내 제대로 된 인생을 살지 못할 것이라 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육사에 가지 않은 순간부터 우울증이 심해지셨다. 잠시 총리실에 있을 때가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셨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때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직장을 정리하였다. 

연초부터 아버지 생각이 난 것은, 박근혜 탄핵 때 아버지가 헌법재판소의 태극기 집회에 열심히 나가셨기 때문이다. 광화문 지나갈 때 태극기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살아계셨으면 아버지도 지금 저기 어디 계셨을텐데, 사람이 묘하다. 안 보면 그리움이 생긴다. 아버지와는 불화의 시간을 길게 가졌지만, 그래도 태극기 집회 보면 아버지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생기기는 한다. 

내가 우리 집 어린이들에게 열심히 밥을 해주는 것도 사실 아버지가 우리에게 밥을 해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5학년 때부터 밥을 해서 동생들 먹이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 어린이들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나한테 해달라고 한다. 아내가 바빠서 특별식 먹는 식당을 찾아서 갈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렇기도 하다. 나중에 밥 해주는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 

2.
돌이켜보면 나를 위해 산 시간이 별로 없다. 공부는 학생 운동의 연장선에서 했다. 취직한 것은 시간강사 생활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서 그랬다. 진짜 힘들었다. 정권이 바뀌어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고, 청와대에 가는 게 좋겠다고 여러 사람이 추천을 했는데, 그냥 싫다고 그랬다. 그 뒤에도 청와대 갈 일이 몇 번 더 있었는데, 매번 싫다고 그랬다. 아침부터 기어나오는 거, 난 그거 못한다. 청와대 가는 대신에 정부 기관으로 옮겼다. 그리고 몇 년간, 나라를 위해 살았다. 매번 청와대에서 임명장 받아서 정부협상가로 몇 년을 살았다. 그 동안에도 참여사회연구소 등 시민단체 활동은 계속 했었다. 강의도 계속 했었다. 

책 쓸 생각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때 하버드 교수 될 기회가 있었는데, 조건이 좀 그랬다. 미국 국무부를 위해서 자문도 해달라는 것이었다. 미국의 큰 컨설팅 회사에서도 제안이 있었다. 당시 UN 기구 선출직 이사라서 그랬던 거다. 잠시 생각해보지도 않고 싫다고 했다. 공부를 한 것도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한 것이고, 프랑스에서 취직하지 않고 돌아온 것도 그야말로 나라를 위해서인데, 뒤늦게 미국 정부를 위해서 일할 생각은 없었다. 그 뒤에도 그런 비슷한 제안이 몇 번 있었는데, 그래도 나는 책 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냐? 그딴 건 없다. 나라와 사회를 위해 살다가, 지난 몇 년간은 우리 집 어린이들을 위해서 살았다. 그리고 아내와 결혼할 때 한 약속들을 지켰다. 난 내가 한 약속들을 성실하게 지키는 스타일이다. 

나라나 남을 위해 살면 뭐가 좋은가? 암은 안 걸리는 것 같다. 별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성격이다. 늘 웃고, 조금이라도 남을 웃기려고 한다. 암 퇴치에는 그 이상 좋은 거 없다. 

이렇게 살면 결국 후회한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잔소리질들을 해댔다. 돌이켜보면 별 후회할 일은 없다. 세 끼 밥 먹고 사는 데 별 어려움 없다. 너무 형식적인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독자들 덕분에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3.
아버지는 정말이지 평생 아버지만을 위해 사셨던 것 같다. 평생 바둑만 두시다가, 노년에는 진짜 유튜브만 보셨다. 어쩌면 유일하게 남을 위해 하신 게 태극기 집회 나가신 것인지도 모른다. "변희재 알아?" 아버지 입에서 변희재 이름이 나올 때 정말 시껍했다. 
올해는 이제 좀 움직여보려고 한다. 나도 시민단체에서 잔뼈가 굵었다. 현장 투쟁도 오래 했고, 밑바닥에서도 오래 굴렀다. 명박 서울시장 시절에는 명박의 약식 기소로 벌금형도 나왔었다. 

아직 둘째가 병원에 안 가는 건 아니라서, 크게, 무리하게 움직일 수는 없다. 그래도 시민단체 자문해주고, 그런 건 할 수 있다. 책 준비된 일정 따라서 좀 더 시민단체의 목소리와 애로사항 그런 것들을 좀 더 들으려고 한다. 지난 연말에 정말 몇 년만에 한 교육 단체의 입법활동과 관련해서 정식으로 임명장을 받았다. 물론 그런 거 없어도 움직이는 데 큰 상관은 없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마도 시민단체 인근에서 내 몸값이 가장 쌀 것 같다. 돈은 따로 안 받는다. 역시 싼 게 장땡이다. 능력 없으면 몸값이라도 낮춰야.. 

대체적으로 나는 낙관주의다.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한다. 물론 어지간해서 현실이 변하는 일은 잘 없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이루어냈고, 내가 만든 변화도 작지 않다. 그래서 다시 최선을 다 할 힘이 생긴다. 

새 책이 나왔고, sbs 뉴스에 신간 소개가 나왔다. 이제 한시름 놓아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날, 그날 밤에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가 있었다. 하이고야. 그래도 계엄 해제되는 것에서 헌재 재판관이 추가로 임명되는 순간까지 지켜보며,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게 황당한 인간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서 생지랄하는 것들을 오랫동안 보면서 살았다. 최고의 실력? 설마!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김용태 신부님 말대로 그야말로 ‘지랄발광’이다. 이 말만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잘 표현해주는 말도 없을 것 같다. 20대에 어떤 삶을 살았든, 보수들 사는 그대로 살아가면 결국 50이 넘으면 줄 서고 비비는 것만 잘 하고,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인간으로 완성된다. 자기 손으로는 아무 것도 못한다. 게다가 줄만 서다가는 새롭게 배우고 익히는 능력이 사라진다. 한국의 권력형 보수의 특징은? 재수 없는 거, 실력 없는 거, 그런 건 아니다. 가장 큰 특징은 호기심이 사라지는 것이다. 머리 속에 돈과 권력만 남으면, 결국 아기 때, 청년 때 가졌던 호기심이 사라지게 된다. 호기심이 사라지면 남는 동기는 아주 단순하게 돈과 권력, 그렇게만 남는다. 자기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 남도 그렇게 본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불행하게 만든다. 

계엄 해제하는 그날 밤, 힌국에 정말 실력 없는 보수들이 쥐고 있던 공간에 균열이 생겼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런 문제들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는 단초가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나도 좀 움직이고, 한 손이라도 거들려고 한다. 쿠테타 있던 밤, 나도 밤 새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가, 어떤 세상을 후대에 물려주고 싶은가, 그런 고민이 더욱 더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2025년 1월 1일, 이런 생각들을 좀 했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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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는 용산의 ‘지랄발광’으로, 나머지 모든 건 다 잊혀진 한 해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모두 망했습니다, 완전히.

내년에는 기쁜 일이 빡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즐거워서 빡 돌아버리는 일들이 종종 생겨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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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산 홍두깨살 주문했다. 우리 집 어린이들이 동파육 해달라고 해서, 해준다고는 했는데, 요즘 둘째가 알레르기라서 돼지고기를 못 먹는다. 그러다가 쇠고기 장조림을 이번 주에 해주려고 하다보니까, 동파육이나 장조림이나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동파육을 쇠고기로 하면 되잖아. 

동파육을 다큐에서 몇 번 본 적은 있는데, 해본 적은 없다. 심지어 먹어본 적도 없다. 중국집에 가서 코스 요리 먹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물론 먹게 되면 먹지만, 내가 내 돈 주고 먹지는 않는다. 중국집에 안 가는 건 아닌데, 제일 선호하는 건 여름에 먹는 중국집 콩국수. 이게 최고다. 콩국수는 소면이 아니라 중화면에 먹어야.. 

어쨌든 우리 집 어린이들이 흑백 요리사 보고 해달라고 하는 동파육, 이번 주 도전이다. (해보고 잘 되면, 장조림 대신, 냉장고 보관 밑반찬으로 써볼까 싶은. 겨울방학, 느무느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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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한대행인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헌재 재판관으로 정계선, 조한창, 두 명을 임명했다. 마은혁 후보는 여야 합의가 아직 안 되었다는 게 이유다. 

이렇게 국무회의가 진행. 내가 듣기로는 헌재 재판관 6명 중 한 명이 7명이 안 되면 판결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 결정 판결이 미루어지고 있었다는. 이렇게 헌재 재판관이 여덟 명이 되었으므로, 본격적인 탄핵 결정 과정이 진행될 수 있게 되었다. 탄핵 결정에 한 달 정도로 걸릴 거라는 예측과, 두 달 혹은 그 이상은 간다는 예상이 있다. 어쨌든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들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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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체포영장이 나왔다. 보고 자고 싶어서 새벽까지 버텨봤는데, 이게 밤 샌다고 될 일이 아닐 것 같아서 그냥 잤다. 이거 기다리면서 책을 읽을까 했는데, 나도 신경이 그렇게까지 굵은 편은 아니다. 

신부님들 미사 동영상을 몇 개 봤다. 지랄발광 동영상은 처음 봤다. 김용태 신부는 김대건의 마지막 후손이라는데, 진짜 한 방이 있다. 안 웃으려고 했는데, ‘용산’ 대목에서 안 웃을 수가 없었다. 김대건 초상화와 얼굴 비교해보니까, 진짜 닮았다. 저런 스타일로 조선 말에 미사를 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사 동영상 하나를 더 보았는데, 미사 내용도 재밌었지만, 미사 끝나고 “그날이 오면”을 부르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참 오랜만에 들었다. 

오늘, 내일, 결국 윤석열은 체포될 것이다. 계엄 해제 이후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되었다. 진짜 좀 어이가 없는 일이기는 한데, 3월달부터 계엄을 준비했다는 거 아니냐. 지나간 시간이 기억에서 주르르 지나간다. 총선 전부터 대화하고 토론하고, 협상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인간. 

윤석열이 구속되고 나면, 많은 흐름이 급변할 것 같다. 무엇보다 보수 쪽에서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물을 버리면서 아이를 같이 버린다는 말이 있다. 지금 국민의힘이 그렇다. 버티고 버티면서, 민주주의를 같이 버렸다. 

박근혜 생각이 가끔 난다. 천막당사하던 시절 박근혜는 진짜 멋있었다. 사람이 어수룩해서 그렇지, 윤석열과 비교할 그런 악랄한 인간은 아니다. 오죽하면 박근혜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다 날까 싶다. 

쿠데타 나던 밤, 당사로 모이면서 사실상 민주 공화국의 거의 대부분의 정당성을 잃었다. 그 뒤는 어떻게 될까? 윤석열 구속 이후, 뒤로 미루어두었던 이 변화가 현실로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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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감기 때문에 병원 데리고 가는 길에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라디오에서 나왔다. 이 노래가 세월호 때 많은 사람들이 추모곡으로 썼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둘째는 어제 비행기 사고 때문에 나오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아들하고 잠시 노래를 들었다. 

대학원 시절에 국제경제학 수업에서 각 나라의 항공사의 특징을 비행기 사고와 관련되어서 들었던 적이 있었다. 비행기의 정속성과 사고의 확률, 그런 걸 중심으로 했던 수업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비행기 사고의 무서움에 대해서 생각을 했었다. 

잠시 멈춰 서서 애도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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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체포 영장이 들어간다. 국회가 계엄령 해제한 이후로 가장 중요한 순간일 것 같다. 최상목은 헌재 재판관 임명 안 하겠다는 입장이고. 결국 대통령 체포와 함께 구속 절차가 움직이는 게 현재의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한 마지막 절차가 아닐까 한다. 

한국의 보수라고 습관적으로 얘기하지만, 이제는 그야말로 이익 집단 그 이상도 아닌 것 같다. 최상목을 보면, 보수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익 집단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소름 끼칠 정도다. 말이 경제 관료라고 했지, 법대 출신 경제관료들이 실제로 그 사이에서는 주류일 정도다. 이런 식의 오래된 끈적끈적한 관계가 지금의 사태 깊은 곳에 숨어 있다.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는 상황에서도 내란을 유지하겠다는 선택은 그야말로 몸에 밴 습관적 선택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서울 정도다. 

이제 법원에서 체포 영장이 발부되고, 용산에서 직무 정지된 대통령을 체포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지금 대통령 경호실에 대한 결정권자는 최상목이다. 두 정부 기구 사이의 무력 충돌에 대한 결정권자도 최상목이다. 과연 그가 총을 쏴서라도 대통령을 지키라고 할지..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무조건 지키라는 명령을 내린 셈이다. 법에서는 그걸 부작위라고 부르는 것 같다. 

경제 관료가 이런 어마무시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평소에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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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오면 독자 티타임을 조그맣게 갖는다. <천만국가>는 출판사가 워낙 작아서 안 할 생각도 있었는데, 이것도 일종의 루틴 같이 되어서 그냥 하기로 했었다. 예전에는 꽤 많이 오고 북적거리던 시절도 있었는데, 아이들 보기 시작한지 몇 년 되니까, 이제는 정말 조촐하게 진행된다.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 사람이 많으면 아주 개인적인 얘기나 밀도 있는 얘기를 하기가 어려운데, 사람이 적어지니까, 이제는 좀 더 사적인 얘기와 내 개인적인 계획 같은 얘기도 같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책 준비하는 과정이나 쓰는 과정에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리고 사람들 얘기도 많이 듣는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더 팔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혼자 고립되어서 생각을 하다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너무 먼 데로 가고 싶지는 않다. 얘기를 많이 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는 것, 이게 내가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둘째가 생각보다 오래 아파서 많은 것이 계획과는 틀어졌다. 원래 올해는 좀 움직여보려고 했던 때인데, 작년에도 둘째가 입원을 하고, 이래저래 힘든 일이 생겨서 그냥 처박히게 되었다. 둘째는 올 추석에도 병원에 입원을 했다. 사실 당장 입원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추석 때에 응급실에 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병원에서 미리 입원을 권유했다. 그 대신 평소보다 하루 먼저 퇴원했다. 

내년에도 둘째가 입원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점점 커가고 있고, 호흡기도 많이 좋아지고 있으니까 입원하더라도 몇 년 전처럼 그렇게 사경을 헤매지는 않을 것 같다. 

최근에 잡 오퍼가 두 번이 왔다. 하나는 외국 많이 다니는 그런 일이었다. 본부장 정도 얘기하는 것 같았다. 또 다른 하나는 대기업 계열사 대표였다. 이거 원래 내가 하고 싶어하던 일이었다. 만약 아내가 취업하지 않았으면, 원래 하려고 계획했던 일이었다. 

잠시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중간에 내려놓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인생에서 돈이 다가 아니고, 명예가 다가 아니다. 

그래도 내년에는 좀 움직여볼 생각이다. 보통 나는 책 준비하면서 관련된 단체나 전문가랑 많이 상의를 하면서 하는데, <천만국가>는 그런 걸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일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그런 단체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제목은 <모두의 문제는 아무의 문제도 아니다>였다. 만약 너무 부정적인 어감이 아니었다면, 감성적으로는 나는 이 제목을 선택했을 것 같다. 

지금 준비하는 책들은 같이 고민할 사람들이 좀 많은 주제들이다. 도서관 경제학은 사서 등 도서관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인권과 경제는 처음부터 인권 단체들하고 고민을 하던 와중에 시작된 책이다. 원래는 공개 강연을 좀 하면서 준비하려고 했었는데, 작년에 둘째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인권 단체 사람들과 좀 더 많이 상의를 하려고 한다. 오래 동안 미루어두었던 농업 경제학은 내년 말에 하기로 했다. 초고를 한 번 쓴 적이 있었는데, 도저히 팔 자신이 없어서 포기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생협 조합원 관점에 맞출 생각이다. 그게 맘도 편하고,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여력도 된다. 

당분간은 책 내면 늘상 하던 독자 티타임을 계속 하려고 한다. 이것도 몇 년째 하다보니까, 책을 핑계로 사람들과 같이 고민하고, 이것저것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어쨌든 내년에는 좀 더 움직여보려고 한다. 

(다음 번 독자 티타임에는 뭔가 조그만 기념품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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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런 격동의 시기를 또 볼 줄은 몰랐다. 대통령 탄핵에 이어 국무총리가 탄핵되었다. 드디어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었다. 뭐라고 서류에 썼든,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는 권한 대행은 이제 즉각 탄핵각이다. 

그렇다고 무한대로 이 탄핵을 진행할 수도 없다. 탄핵된 국무위원이 너무 많아지면, 국무회의 자체가 마비 된다. 거기까지가 할 수 있는 한계점이다. 그야말로 대혼돈의 시대다. 

정치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뭐라고 말하든, 정치는 국가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윤석열이 정치인도 아니라고 하는 건, 도통 대화라는 걸 안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만 했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얘기를 하고, 대화를 하는 게 정치다. 

그건 지금 민주당에게도 마찬가지다. 헌재 재판관 임명해. 안 해? 그럼 탄핵, 자 다음!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게 기분은 속시원하겠지만, 그럼 다시 정치 실종이다. 그렇게 해서는 명분이 않고, 당위만 남게 된다. 그렇게 당위로 직진하는 게 정치는 아니다. 국민 모두가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고, 그때그때 판단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도 많다. 직진형 정치, 이게 다가 아니다. 게다가 지금의 국무위원 면면을 보면 금방 알겠지만, 한국은 여전히 기득권 세력이 강하다. 그리고 그들끼리 강하게 결탁되어 있다. 그렇게 끈적끈적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명예보다 ‘배신자’가 현실적으로 더 두려운 요소다. 이 정도면 받을 것도 같은데, 그게 현실이 되기 어렵다. 차라리 그냥 탄핵당하고, 언젠가 돌아올 자신들의 시기에 영웅이 되는 게 개인으로서는 더 현실적인 선택이다. 

민주당은 그냥 성명서 내거나 기자회견을 하는 게 아니라, 최상목을 만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싫다, 혹은 시간 없다, 그래도 계속 만나자고 해야 한다. 공식적으로도 하고, 비공식적으로도 해야 한다. 설득이 안 되어도 그렇게 만나려고 하고, 다양한 경로로 특사가 가든, 혹은 사회원로가 가든, 대화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한덕수 때에는 워낙 위중해서 그렇게 못했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는 총리가 아니라 국무위원이다. 최후 통첩 거기에 또 최후의 통첩, 이렇게 지켜보는 사람들이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맞다. 딱 보니까, 안 할 것 같아, 이렇게 하는 건 그렇게 사려 싶은 행동이 아니다. 계속 만나고, 만나지 못해도 만나려고 하는 것, 그게 정치적 모양내기다. 그렇게 명분을 가져야, 사회적 압박이라는 게 생긴다. 힘만으로 모든 걸 풀 수는 없다. 

만나주지 않더라도 계속 만나려고 하고, 커피라도 한 잔 마시자고 하는데, 권한대행이 계속해서 만나는 것도 거부하고 있다.. 이런 모양새가 나야, 나중에 탄핵을 하더라도 할 명분들이 생긴다. 아니, 국정을 총괄하는 사람이 용산에 틀어박힌 누구처럼 편지도 안 받고, 전화도 안 받아요, 이런 모양새를 만들어내는 것, 그런 게 정치다. 물론 답답하다. 그렇지만 답답한 것을 기꺼이 하는 인내심과 포용력을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 아닐까? 그냥 우리랑 의견이 달라, 그래서 직진. 이런 건 정치 과정 실종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냥 최종묵이 마음은 어떨까, 그런 판단은 어떨까, 그렇게 처분만 기다리는 것처럼 뚱하니 있는 것은 안 좋다. 시급하게 만나려고 하고, 만나자고도 하고, 그렇게 가는 게 맞다. 정치원로나 종교계 원로, 시민단체 대표들도 “최상목 선생, 우리 만나요”, 이렇게 움직이는 게 더 부드럽다. 

급해도 돌아가는 게 정치다. 내란 세력과 무슨 정치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도 돌아가고, 얘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는 게 궁극적으로는 명분을 갖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따져보면 결국은 그게 더 빠르다. 더 부드럽게, 더 많은 명분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움직이는 것, 그게 정치의 현실적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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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탄핵..

잠시 생각을 2024. 12. 27. 16:47

한덕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절차상으로 탄핵 정족수 문제에 관한 권한쟁의도 헌법재판소로 갈 것이다. 윤석열 탄핵을 먼저 처리할 건지, 국무총리 권한대행 탄핵 정족수를 먼저 처리할 건지, 정해진 것은 없다. 헌재 손에 달렸다. 


당분간 무정부 상태가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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